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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15 인터뷰 > 교수 > 매거진

제목

`즐거운 춤이 가장 훌륭한 춤이다`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52

김자영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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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ooOC

내용

 몸의 언어로 빚어낸 한글 사랑

 

생활체육과학대학장 이숙재 교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란 것이 있다. '막간 여흥' 혹은 ‘기분 전환'을 지칭하는 이 말은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에 있어 유희를 위한 일련의 무용을 말하는 것으로, 작품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볼꺼리를 위해 삽입하는 화려한 춤이다. 무용에서 디베르티스망이 적절히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춤이란 '이해'에 앞서 '보는' 예술인 까닭이다. 안산캠퍼스 생활무용예술학과의 이숙재 교수 역시 '춤이란 고귀하고 우아하기 이전에 즐거워야 하는 것'이라 단정하고 나선다. '본다'라는 행위는 언제나 말보다 선행한다.

 

 나는 춤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교수는 오는 9월 26일 아시안 게임 개막식 공연에 이어, 10월 9일과 10일 이틀 간 국립대극장에서 있을 한글날 기념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밀물현대무용단의 이사장을 비롯한 각종 직함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최근 생활체육대학 학장에도 임명된 바 있다. 분주한 일상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학장으로서도 정도를 따라, 정의롭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업무에 임할 테지만 결코 무용인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모 광고의 문구가 머리 속을 스치는 순간, 공연에 대한 이 교수의 분주한 언어가 계속된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의 대 전제는 '통일로, 세계로, 미래로'입니다. 특히 이번 아시안 게임에 북한 선수들이 우리와 함께 경기에 출전하게 됩니다. 한글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한 까닭은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 염원을 앞에 두고, 북한과 우리의 공통점을 찾다보면 언어가 제 1순위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글은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가장 극명한 상징입니다. 이번 개막식 공연의 춤을 통해서 북한 선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동포들이 그것을 꼭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에 이은 10월의 공연은 문화관광부 주최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준비된 한글날 행사의 일환이다. 매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려 온 공연에 대해 이 교수의 애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올해의 공연을 위해서도 일 년여 시간 동안 준비를 해왔노라 설명하는 이 교수는 학예회를 앞둔 소녀처럼 상기된 표정이다.

 

 춤으로 승화된 한글, '읽지 말고 느껴라'

 

   
 

 "미국 유학시절에 다민족이 모여서 수업을 듣는데, 과제가 그 민족이 가진 고유한 소재를 통해 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와집, 덕수궁, 장구 등의 사진을 가져갔는데, 중국 동료와 일본 동료가 가져 온 사진들이 저의 것과 너무 흡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영향 아래 이루어 진 탓이었죠. 너무나 낙심하여 한국문화원에 가서 조사했더니 한민족만이 가진 독자적인 문화유산은 오로지 한글과 금속활자뿐이었습니다"

 

 20여 년의 세월동안 이숙재 교수를 한글에 매달리게 만들었던 '한글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때부터 한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한글을 무용에 끌어 들였다. 춤 역시 무언(無言)의 언어임에 자꾸만 '말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이 결국 '언어'에 귀착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교수의 이런 '한글 사랑'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홀소리와 닿소리를 주제로 처음 무용을 만들었더니, 한글학회 분들이나 다른 무용하는 분들이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그 동안 무용이라고 하면 서정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적인 소재로 무용을 만들어낸 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처음에는 이런 분들의 냉대에 힘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무용제에 출품한 작품이 수상을 하면서 점차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한글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무용제 수상 이후 한글의 홀소리와 닿소리 뿐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원리인 '천(天)·지(地)·인(人)' 사상과 음양오행의 '화수목토(火水木土)'사상 모두를 무용의 소재로 개발해 오고 있다고 이 교수는 부연한다. 게다가 이 교수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비롯해서 현대 무용계에서는 드물게 수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무대에서 공연되어 왔다. 전국의 한글사랑 동아리들과 한글을 사랑하는 학자들의 지극한 애정 때문에라도 공연을 쉴 수 없다는 이 교수의 말에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움직이는 한글' 입니다. 많은 부분 사회 고발 형식을 가지고 있죠.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에 돌입하면서 한글이 점차 왜곡되고 변형되어 가고 있습니다. 외래어가 접목된 단어들이 너무도 빈번히 사용되고, 이미지들이 언어를 대체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글의 변화주기가 50년, 10년으로 줄어들다가 근래에는 1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글이 변모해 갔을 때 우리의 민족성과 자주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즐거운' 춤이 '훌륭한' 춤이다

 

 공연 예술이란 관객과의 호흡과 감동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문화다.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무대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예술인에게 공통된 바램이다. 특히 현대무용은 타 예술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 지지기반이 미약하기에 이 교수가 지닌 바램은 더욱 크다. 안산캠퍼스에 건립중인 무용관을 두고 마치 새 집에 이사를 앞둔 신혼부부처럼 이 교수는 설레이는 마음을 비춘다. 학교 당국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이번 기회를 통해 한양의 문화의식이 발전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인다.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우선 무용이 즐거워야 합니다.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시간에 공연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연이 즐거워야 합니다. 둘째는 그 작품을 연구해서는 안됩니다. '저것이 무엇일까?'라는 것을 가지고 보면 그 작품은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듯이 무용에 있어서도 먼저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밀한 호평보다 '즐거웠다'라는 관객의 반응이 작품에 던지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이 교수는 현대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을 설명하면서 무엇보다 무용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을 당부한다. 기존에는 무용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키가 크고, 수려한 외모와 함께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점차 미인에 대한 기준들이 무너지고, 무용도 개성에 맞는 스타일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데로, 키가 작은 사람은 작은 데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춤이 일상으로 들어온 시대에 우리는 있다고 덧붙인다.

 

 욕망의 피날레, '갈 길이 멀다'

 

 한 시간 여 동안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작품들과 수상작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단호한 표정 속에 '없습니다'라는 짧은 대답이 뒤를 잇는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끝없는 욕망이 짧은 언어에 담겨있다.

 

 "20대부터 인간의 세포가 노화되기 시작하여, 30대가 되면 늙기 시작하고 40대가 되면 기능이 저하되고, 50대가 되면 갱년기가, 60대가 되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집니다. 어떤 면에서 저도 이미 무용수로서의 기량을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무가가 되어 내가 가진 철학과 사유를 무용으로 승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나의 작품이 200년, 300년 그리고 영원히 남기를 희망합니다. 평생을 바쳐서라도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숙재 교수는 이화여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밀물현대무용단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이사, 한국현대무용진흥회 부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1989년 제6회 코파나스상을 비롯해서, 1991년 한국예술가협회 최우수 예술가상(홀소리·닿소리), 1993년 서울무용제 대상 및 안무상, 1997년 이사도라 무용예술가상, 2000년 제1회 PAF 예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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