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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08 인터뷰 > 동문 > 매거진

제목

`우리의 무대는 세계입니다`

한양 동문이 뛴다 27

김자영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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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bLPC

내용

 "휴대폰은 살림이 아닌 하나의 패션입니다"

 '차별성' 앞세워 시장 공략 성공한 SK-텔레텍


윤민승 상무이사 (전기 86년 졸)

 

 '미국의 과학자들이 땅을 100미터쯤 파다가 구리조각 하나를 발견한다. 그들은 이를 근거로 2만 년 전에 유선전화망을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놀란 일본의 과학자들이 땅을 파다가 작은 유리조각을 발견하고는 자신들은 광통신망을 갖고 있었노라 주장했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땅을 파 보았다. 수 백미터를 파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은 2만 년 전에 이미 무선통신망을 갖고 있었노라 주장했다.'

 

 웃지 못할 상기의 유머는 어쩌면 오늘날 현실이 되어버린 듯 하다. 2001년을 기준으로 전국 휴대폰 가입자수가 2천 6백 만 명에 달하는 지금, 휴대폰은 마치 제2의 눈과 귀처럼 우리의 일상을 잠식하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듣고 말하는 즐거움에 만족하던 휴대폰 단말기는 이제 보는 즐거움을 넘어서 외형적인 디자인뿐 아니라 칼라 액정과 대용량 정보 전송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에 있어 세계 선두를 자임하는 국내 휴대폰 시장은 그야말로 세계 휴대폰 기술의 첨단을 보는 것과도 같다. 그 중심에 'SKY'란 브랜드로 잘 알려진 핸드폰으로 국내 시장에 우뚝선 SK-텔레텍이 있다. 후발 주자로 창립 4년 만에 굴지의 휴대폰 제조업체로 성장하기까지 윤민승 상무는 그 시작과 끝을 함께 하고 있는 마케팅 전문가다.

 

 4년만에 시장 공략 성공한 비결, 'It's different'

 

 5분 여를 기다리고 있을 때쯤 40대 초반의 신사가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악수를 청한다. 국내 굴지의 핸드폰 제조업체, SK-텔레텍의 윤민승 상무다. 카키색의 와이셔츠에 도라에몽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콜라를 마시는 윤 동문과의 첫 만남. 그 느낌은 마치 청량음료의 탄산이 입으로 가득히 퍼지는 기분이다. 독특한 그의 인상이 회사의 광고 문구와도 너무 닮아있다. 'It's different.'

 

   
 

 "처음 20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4년만인 지금 사원 400명이 넘는 메이저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보수적이던 기존 전자업계에서 이 같은 단기간의 성장은 전대미문한 사건입니다. 이런 성장의 요인으로 '차별화' 전략을 내세우고자 합니다. 최초로 아이보리 색상의 단말기, 화음벨소리 그리고 카메라가 부착된 단말기를 국내에 도입한 것이 자사였습니다. 이렇게 기존의 것과 차별화를 주장하는 우리의 슬로건 'It's different'와 거기에 걸맞는 신기술이 결합되어 오늘의 성공이 가능했다 봅니다."

 

 SK-텔레텍이 후발주자로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소로 '차별성'을 꼽으면서, 자사 브랜드인 'SKY'의 프로모션을 꾸준히 한 것도 기업 성장의 요인이었다고 윤 동문은 덧붙이다. 또한 자사 브랜드 없이는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그의 부연에 현재 단말기 시장을 이끌고 있는 'SKY' 브랜드를 창출한 SK-텔레텍의 위상을 다시금 실감하기도 한다. 회사 창업 때부터 마케팅 팀장을 맡아 시장 개척을 주도하고 현재 상무이사에 오른 그의 경력을 생각할 때, 회사의 성공을 위한 그의 역할과 노력이 사뭇 예사롭지 않았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신의 별명이 워크홀릭(workholics)이라 소개하는 그의 미소 뒤로 고단했던 지난 시절이 아련히 비친다.

 

 한국의 휴대폰, 세계 시장 공략의 첨병 자임

 

 윤 동문은 본교 재학 시절인 80년대 초, 당시에는 매우 드물었던 배낭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세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유별났다 설명한다. 그래서일까, 1986년 입사초기부터 글로벌 마켓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그가 최근 가장 행복하다 말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60억 인구의 중국시장에서 SK-텔레텍이 승승장구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SK-텔레텍은 중국 유니콤 CDMA 사업장에 단말기 100만개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아직 어떤 언론에도 공개하지 않은 따끈한 뉴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 즐거워 보인다.

 

 "우리나라의 휴대폰이 해외에서 호평을 받는 이유는, 첫째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제조업 분야에 탁월한 손재주를 지녔던 까닭이죠. 둘째로는 단말기 시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많은 연구자원이 투입되어 여타 산업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셋째는 60-80년대의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이미 휴대폰에 들어갈 기술적인 부품산업들이 발달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즉 잠재적 역량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는 겁니다."

 

   
 

 특히 그는 우리의 휴대폰 산업이 전자업계에서 일본을 앞지른 최초의 기술 영역이라고 덧붙인다. 항상 일본보다 한 걸음 느린 산업 경영을 하던 우리나라로서 모든 관심이 이 분야로 쏠린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관심이 현재 휴대폰 기술의 비약적 발전을 더욱 가속화 시켰다는 것이 윤 동문의 지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 뒤에도 음지가 존재한다. 날이 갈수록 디자인과 색상이 화려해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능을 갖추어 가는 휴대폰은 소비자들에게 너무나 유혹적이다. 게다가 기업 간의 경쟁으로 인한 현란한 광고들은 소비성향을 더욱 자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휴대폰이 지닌 내구성과 무관하게 교체 주기가 다소 빠른 현재의 상황은 일면 자원의 낭비라는 지적에 그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그러나 휴대폰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에서 그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제 휴대폰은 패션입니다. 새로운 모델의 운동화가 출시되어서, 이미 여러 개의 운동화가 있음에도 그것을 산다고 하면 뭐라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휴대폰도 운동화와 다를 바 없습니다. 한시도 몸에서 떨어뜨릴 수 없는 필수품입니다. 게다가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욕구는 기업들에게 엄청난 생존경쟁을 부추겼고, 그 결과 지금 세계 시장에서 우리의 휴대폰이 이렇게 선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낭비라고만 생각하기에 그 결과물들이 너무 달콤하지 않습니까?"

 

 윤 동문은 내수시장이 없으면 기업이 살아남지 못한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기업들의 치열한 기술경쟁에는 어떠한 정치적 개입 없이 순수한 자율경쟁만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좁은 한국바닥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계 무대에 나가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겠습니까?"라고 부연하는 그의 말 뒤에는 SK-텔레텍에 대한 자부심이 짙게 배어난다.

 

 잊지 못할 최고의 브랜드, '한양인'

 

   
 

 본교 음대 교수를 지냈던 정은모 교수의 차남이기도 한 그의 한양 사랑은 각별하다. 80년대 초 대학 재학시절에 한번도 학교 배지를 가슴에서 뗀 적이 없다는 그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한양에 대한 그의 애정은 모든 것을 증명한 셈이다. 그런 그는 요즘 한양인들에 대해 조금은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과거보다 한양인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다소 줄어든 게 아니냐'하는 것이 그의 솔직한 고백이다.

 

 "우리나라 산업이 이만큼 발전해 오기까지 한양동문들의 역할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어느 산업전선에서나 묵묵히 맡은 바 성실함을 다해 온 한양인들이 자랑스럽습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자신이 성공적으로 업무를 수행한 뒤에도 그것을 공공의 성공으로만 돌린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동문들과의 연계가 미약한 점도 아쉽습니다. 어느 분야에 가더라도 자랑스런 한양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위대한 한양인들'이라는 수식어를 서슴치 않으며 한양에 대한 기대와 조심스런 걱정들을 풀어놓는 그는 나이를 뛰어 넘어 살가운 선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1시간 남짓의 짧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또 다시 회의실로 뛰어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가 남긴 말들을 곰씹어보았다.

 

 "입사 면접을 치르면서 당시 최종현 회장에게 '동기 중에서 최초로 해외 지사를 가고 최초로 임원이 되고자 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작년에 제 동기가 네가 말한 것을 다 이루었다라고 하더군요. 이럴 수 있었던 것은 제 나름대로 10년, 20년의 장기적인 미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양인 여러분, 멀리 내다보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미래는 여러분들에게 열려있습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윤민승 상무는 1979년 본교 전기공학과에 입학하여 1986년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 선경 전자 본부에 입사하여 1991년부터 1994년까지 SK의 뉴욕지사에서 전자과장을 역임했다. 1997년 SK-텔레콤의 기획조정실 부장, 1998년 SK-텔레텍 창립과 함께 마케팅 팀장을 거쳐 현재 마케팅 담당 상무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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