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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15 인터뷰 > 교수 > 매거진

제목

`실사구시가 민주주의를 살찌운다`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55

서용석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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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LYHC

내용

 풀뿌리 민주주의의 견인차


행정학과 박응격 교수

 

 '민주주의의 꽃',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찬사를 받으며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지 12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 참여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새롭게 출범할 민선 3기의 지방정부를 통해 보다 성숙된 모습의 지방자치제가 구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불거지는 단체장들의 비리와 제 기능을 못하는 지방의회 그리고 심화된 지역이기주의, 현저하게 낮은 지방재정 자립도 등으로 지방자치제에 대한 불신과 무용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7년 본교에 지방자치연구소가 설립된 이후 현재까지 12여 년 동안 지방자치의 정착과 발전을 위해 매진해 온 박응격(사회대·행정과) 교수를 만나는 길은 주머니에 넣어둔 못이 언제 비집고 나올지 모르는 것 마냥 불편하기 짝이 없는 심정이었다.

 

 지방자치 토착화와 함께 한 15년

 

   
 

 "1987년 당시에는 암울한 권위주의가 팽배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기에 개설된 지방자치연구소는 지방자치 없는 민주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신념 하에 지방자치 발전은 물론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곳입니다. 그 후 90년 1기 지방의원이 선출되자 경험이 전무한 단체장들의 교육훈련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으로 지방자치대학원을 설치했지요.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지방자치를 이끌어 갈 인재를 양성하고 현직 지방공무원이나 단체장, 의원들을 위한 단기 코스도 마련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의 지방자치에 관련한 연구와 활동은 국내 최초로 설립돼 주목을 받았던 지방자치연구소와 지방자치대학원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지방자치연구소의 문을 두드렸을 때 박 교수는 나흘 후 본교에서 개최 예정인 '세계 대도시 거버넌스(governance)의 새로운 정책방안'에 대한 국제합동세미나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지난 86년 한국의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 독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과 공동연구협정을 체결한 이후 지금까지 지방자치연구소는 매년 3∼4회 정기적인 지방정책 세미나와 국제 학술세미나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번 국제 학술세미나는 예전의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적인 통치방식으로 대변되는 거버먼트(government)가 아닌 국민의 생활과 직결되는 다양한 정책에 대해 정부와 시민단체가 보조를 맞춰 나가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개념을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에 관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지방자치가 가장 잘 돼 있다고 평가받는 독일의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과 15년 간 변함 없는 교류협력사업에 앞장서온 박 교수는 지방자치가 우리나라에 탄탄한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대학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지난 2000년 3월에 지방자치대학원장으로 부임하면서 당시 30명이던 정원을 42명으로 늘이고 석사과정뿐 아니라 지역주민, 공무원, 단체장 등을 대상으로 시민의식과 정치의식을 고양시키기 위한 아카데미를 개설하는데 주력하기도 했다. 그간의 활동이 말해주듯 박 교수는 지방자치에 대한 무용론과 허무주의가 계속적으로 고개를 내미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희망은 있고 또 그렇게 돼야만 한국의 민주주의는 발전한다'라고 자신 있게 잘라 말한다.

 

 지방자치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

 

   
 

 "지방자치 없는 민주주의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성급한 사람은 지방자치의 해악을 확대해서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유기체적으로 보면 지방자치제는 부활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등학생 수준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뿌리를 내리는 단계라 볼 수 있지요. 폭풍이 불면 줄기는 흔들리지만 뿌리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뿌리만 살아 있으면 다시 싹이 돋기도 하지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민주주의의 궁극적인 정상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며 성황리에 막을 내린 월드컵이나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보듯 부정부패가 만연돼 혼란스러운 중앙정국에서도 지방자치만 꿋꿋하게 살아있으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그러나 박 교수는 막연히 앞으로 잘 될 것이라는 낙관론만을 나열하지는 않는다. 지방자치의 3요소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주민의 민주의식, 단체장의 자질과 능력, 의회의 투명하고 성실한 견제가 두루 갖춰지지 않고서는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해버릴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역주민들의 민주의식은 나머지 두 가지 요소들을 견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재라고 강조한다.

 

 "유권자들이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남의 살림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단체장들은 지역주민의 무관심 속에 자의성이 커지기 마련이죠. 또한 아직까지도 단체장들의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서 집행부의 의도대로 끌려가기 쉽습니다. 한편 지방 의원들을 인물보다 정당 중심으로 뽑다보니 능력 있고 청렴한 인물을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와 달리 생활정치이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두 눈을 부릅뜨고 성실한 지방행정을 했는지 잘 살려서 다음 선거에서 평가를 해 주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을 통해 민주주의를 향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이지요"

 

 지방자치 없는 민주주의가 있을 수 없듯이 재정 자립 없는 지방자치 또한 어불성설일 것이다. 지방재정 자립에는 관심이 없고 얼마나 큰 사업을 벌여 많은 재원을 끌어오느냐가 지방자치단체장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박 교수는 재정 자립 정도에 따라 자치권도 부여해주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지적한다. 즉 10퍼센트만 재정 자립이 가능한 곳은 10퍼센트만큼만 자치를 인정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의 자구적인 노력을 보조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말이다.

 

 법치주의와 실사구시에 입각한 공직자의 사명

 

 지방자치의 성공은 지역주민과 단체장, 의회의 자질이나 재정자립만 갖추어졌다고 성공할 수는 없다. 박 교수는 관료들의 기본 자질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관료는 국민 대다수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정책을 실행해 간다'라는 말이 있다. 박 교수는 이렇듯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관료들에게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행정을 하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건축가가 집을 지을 때 어림으로 지으면 안되고 설계도를 따라야 하듯이 관료들 역시, 법에 따라 집행하고 그것에 어긋날 때는 역시 법에 의해 엄중하게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공직자들이 정권 말기 레임덕 현상이 극대화됨에 따라 자신이 소속된 집단의 이익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정부 실패의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직자가 희생하더라도 국가와 국민의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따져봐야겠지요. 어떤 정치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집권당에 줄서지 않고 국민만 보고 나가는 중립성을 지켜야 합니다."

 

   
 

 박 교수는 학자로서의 최고 지향을 율곡 이이 선생으로 꼽는다. 비록 48세의 짧은 생애를 마쳤지만 낮에는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맡은 바 일을 완수하고, 저녁에는 대학자들 이상으로 학문에 매진해 중국 당 태종 때의 정관정요를 능가하는 부국강병책을 제시한 점이 크게 본받을 만 하다는 것이다.

 

 "이이 선생같이 고위 관료뿐 아니라 소장관료까지 지식경영사회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해박한 전문지식을 함양해야 합니다. 학자들도 선진국의 학설보다는 우리 현실에 맞는 실사구시의 학문을 하도록 매진해야 하지요. 한양대의 건학 이념이 사랑의 실천인데 부모나 이웃에 사랑을 전하는 자선적인 개념으로 보기보다는 자기 전문분야의 지식을 필요한 곳에 쓸 수 있는 것이 참된 사랑의 실천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 교수가 제시하는 지방자치제의 성공요소나 관료로서의 기본 자질은 실질적인 행동으로 구현되지 않으면 교과서에서나 나옴직한 공허한 문구로만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견지해 가면서 밤낮으로 학문에 매진하며 제자들을 가르치고 현실에 적용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는 박 교수가 있기에 거센 바람에도 뽑히지 않는, 민주주의라는 뿌리깊은 나무는 거목으로 자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박응격 교수는 1968년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1970년 서울대에서 도시계획학 석사를, 1979년 독일 슈파이어 대학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1974년부터 1981년까지 건설부 국토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을 지냈으며 1981년부터 지금까지 본교 행정학과 교수 및 지방자치대학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건설부 중앙도시계획위원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신행정론』, 『현대행정학』, 『지방자치의 신사고』, 『독일연방정부론』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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