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등록
검색섹션
검색영역
기사등급
기사형태
검색영역
검색단어 또는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컨텐츠
검색된 정보가 없습니다.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관련기사 검색결과 리스트 컨텐츠
검색된 정보가 없습니다.
게시글 상세보기
정보

2002/01/15 인터뷰 > 학생

제목

한국무용계 긴장시킨 `물 오른 춤꾼`

한양의 영파워1

인터넷한양

URL복사/SNS공유

http://www.hanyang.ac.kr/surl/hoMC

내용

 한국무용가 김신아(무용학과 95) 양

 

 지난해 여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을 지켜본 평론가들은 일제히 쾌재를 불렀다. 평론가들이 우수한 신예 무용가들을 선정, 초청하여 무대에 올리는 위 공연에서 스물 다섯 살, 최연소 나이의 어린 춤꾼이 보여준 열정과 에너지가 모든 관객과 평론가들을 흥분시키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김신아를 두고 '이번 공연이 찾아낸 보석 같은 존재'라 호평하며 한국무용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감하고 있었다.

 

 안무작 포함 출연작만 30여편 "당신 신인 맞아?"

 

   
 

 가녀린 몸매와 날카로운 눈매, 반듯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또박또박 말을 잇는 그녀를 두고 풋풋함이 감도는 '신예무용수'라 호칭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1995년 문예회관 대극장에 올랐던 '흰 옷'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0여편이 넘는 작품들에 출연했던 경력은 물론, 2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5편의 작품을 직접 안무한 바 있는 그녀다.

 

 그렇다고 경력상의 이유를 들어 '중견'의 대접을 받기에는 스물 여섯의 나이가 좀 억울하다. "다소 어린 나이에 일찍 안무를 맡을 수 있었던 것도 저를 지도해주신 김운미 교수님의 큰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김신아는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레슨을 빠져 본 적이 없다고. 한국무용계에서 돋보이는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운미 교수의 지도와 함께 남다른 근면함이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것이다.

 

 서울캠퍼스 무용과를 졸업하고 현재 대학원에 재학 중인 그녀가 무용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보수적이던 집안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잠시 무용을 접었다가 고교 2년에 춤에 대한 넘치는 '끼'를 결국 이기지 못해 다시 무용을 시작했다. "어렸을 적에 음악만 들으면 밥상에 올라가 춤을 추었대요. TV를 봐도 노래하는 가수보다 그 뒤에서 춤을 추는 무용수들에 관심이 있었다니까요."

 

 무릇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굳어진다. 학창시절에도 음악소리만 들리면 누워 있다가도 몸이 욱신거려 벌떡벌떡 일어나 춤을 추고 싶었다는 말을 들으면 더욱 할 말을 잃고 만다. 이를 누가 말리랴. 타고난 열정 탓에 결국 춤꾼의 길로 접어든 그녀가 일찍부터 '한양대'로 자신의 입지를 정하고 시험을 준비했다는 사실은 몹시 흥미롭다. 한국무용의 대가 김운미 교수의 명성을 일찍부터 듣고 있었던 탓이다. 김신아는 원대로 합격 후부터 지금까지 김 교수를 사사하고 있다.

 

남다른 예술적 광기와 기개

 

   
 

 무용계가 김신아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99년의 일이다. (사)한국무용연구회에서 주최한 '신인 안무가전'에서 작품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하며 연기상을 받았다. 그녀는 무용계의 주목을 받게 된 〈싸늘한 휴식Ⅱ〉에 출연할 수 있었던 것이 큰 행운이었다고 회고한다. 존경하는 선배인 지제욱 동문이 안무한 이 작품에서 김신아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같이 작업하는 기회가 더욱 많았으면 한다는 바램이다.

 

 지난 2000년 같은 '신인 안무가전'에서는 본인이 직접 안무한 〈얼음 위의 영혼Ⅰ〉을 내놓으며 안무상을 수상해 안무를 맡기에 다소 어린 나이라는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며 김신아는 1999년 이후에만 5편의 작품을 창작, 무용계를 놀라게 했다. 특히 지난 해 있었던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공연' 출품작인 〈내가 깊은 곳에서〉는 한국무용계에 '김신아'라는 이름 석 자를 새롭게 각인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평론가 성기숙은 "폭발하는 끼와 예민한 감각, 도발적 실험을 서슴치 않는 용기 그리고 나이답지 않은 안무의 저력 등 김신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다양하다."고 밝히며 그녀를 '한국창착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기대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김신아의 저력은 그녀가 지닌 예술적 광기에 있다. 그녀는 기존의 고답적인 한국무용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기존의 문법에 적응하기보다는 왜곡과 해체, 굴절을 일삼아 새로운 코드와 기법을 창출해 낸다. 지난해 직접 안무하여 '젊은 무용가전'에 출품한 〈내가 깊은 곳에서〉를 지켜본 성기숙은 이를 두고 "한국춤의 기본원리와 호흡체계가 단단히 녹아있다. 무대 위에서 표출되는 무당적 기질에 몽환적 분위기는 단연 압권"이라고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춤만 추겠습니다"

 

   
 

 김신아는 자신의 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배경으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는 성실함을 두번째는 체력을 그리고 세번째는 스승이다.

 

 춤이란 화가처럼 앉아서 어깨품을 팔아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정적 범주의 예술이 아니다. 몸을 부려 하루 일당을 받는 노동자들처럼 춤이란 움직이고 뛰어야 '밥값'을 하는 가장 고된 예술의 부류다. 공연이 닥치면 하루 12시간 이상 강행되는 연습과 훈련을 이겨내야 하고 공연이 없는 기간에도 만들어진 몸을 잃지 않기 위해 4시간 이상 꾸준한 연습을 유지해야 한다.

 

 "새벽 별을 보며 등교해서 저녁 별을 보고 귀가하는 나날이 많았어요. 하루는 밤 늦게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에 언뜻 잠이 들었다가 깨어보니 혀가 축 처져 입 밖으로 나와 있는 거에요. 순간 눈물이 날 뻔 했어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춤을 추는 일이라 버틸 수 있었어요." 아버님이 편찮으셔서 수발을 해야했던 시간만을 제외하면 단 한번도 레슨에 빠져 본 적이 없다는 김신아의 근면함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그녀가 스물 여섯의 나이에 이 만큼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까닭도 거기에 있다.

 

 김신아가 스스로 토로하는 자신의 또다른 저력은 강인한 체력이다. 그토록 힘겨운 연습과 훈련을 지속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막역한 의지와 각오 탓도 있지만 남들보다 체력이 좋아 보다 오래 참을 수 있고 더 많이 연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론가들 역시 김신아의 체력과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 평론가 성기숙은 말한다. "솔로로 20여분 이상을 무대에서 견뎌낸다는 것은 중견무용가로서도 그리 쉽지 않다. 김신아는 20여분 이상을 홀로 춤추고도 언제나 거뜬한 모습이다. 광기서린 그녀의 춤의 에너지가 넘쳐나지 않은 곳이 없다."고.

 

 김신아가 인터뷰 내내 빠뜨리지 않고 얘기하는 것은 스승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이다. 이는 김신아가 밝히는 세 번째 저력이기도 하다. 김신아는 올해 2월 대학원을 졸업하면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김운미 무용단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녀가 사사한 김운미 교수에 대해서는 "어머님 같으신 분이세요. 때로는 무섭고 때로는 엄하시지만 늘 자상하시고 저를 가장 예뻐하세요. 교수님 제자들은 모두 교수님이 자신을 가장 아끼시는 것으로 믿어요."라고 농담 어린 애교를 던진다.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교수님의 지도와 주위 동료들의 덕분이라 밝히는 겸손함도 예사롭지 않다. '죽는 그 순간까지 춤만 추겠다' 말하는 그녀의 각오가 섬뜩하다.

URL복사/SNS공유

기사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