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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 26 중요기사

[교수][신문 읽어주는 교수님] 정란수 교수가 말하는 '체류형 관광' 

‘매번 언제든 떠난다’, ‘여행의 일상화’. 최근 관광 트렌드는 체류형 관광이다. 대표적으로 ‘한 달 살기’가 있다.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는 것. 체류형 관광에서 일상과 관광의 분리는 모호해진다. 대안관광컨설팅 프로젝트수 대표이기도 한 정란수 관광학부 교수를 만나 체류형 관광의 미래를 물었다. 체류형 관광이란 체류형 관광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내 여행지로는 제주, 여수나 서핑이 유명한 양양, 외국에는 태국 치앙마이가 있다. 정란수 교수는 “체류형 관광은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지만, 생활 패턴의 변화로 인해 최근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있어 실제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나 프리랜서가 늘어나며 가능해지고 있어요.” 체류형 관광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행 경력 패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행 경력이 쌓일수록 그 지역으로 들어가 지역민들의 일상을 느끼는 것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선 그들의 문화나 환경을 파괴해 일상을 침범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정 교수는 한국인들이 체류형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행 철학’이 발달해야 한다고 했다. “여행자의 행복을 위해 지역민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공연을 찾아가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지역민들의 권리까지 뺏을 권리는 없습니다. 체류형 관광이 늘어날수록 더욱더 이들에 대한 배려를 고려해야 하는 게 여행 철학입니다.” 배려는 필수 여행은 쉬려고 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문화를 배려하는 것이다.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땐 거주지를 지날 수밖에 없어요. 그때 지역민에 대한 배려는 필수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조용히 지나가야 해요. 본인에게는 10초만에 지나가는 길이 그분에게는 매일이죠. 안동하회마을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체류형 관광이 정착되려면 ‘공정여행, 공정관광’이 정착돼야 한다. 지속 가능한 여행이라는 뜻으로, 여행자가 지역민들을 배려하고 여행 철학을 숙지하는 것이다. “요즘 체류형 관광을 가는 사람들은 준비를 오랫동안 해가요. 동아리를 만들어 전문적으로 여행지를 공부하고, 지역민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투적인 일상, 여행에서는 그만 대부분의 여행은 전투적으로 명소를 가 사진을 찍는다. 이런 비판이 ‘체류형 관광’을 불러왔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반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정 교수는 “여행을 오랫동안 떠나면 지역민을 이해하고 동시에 저를 볼 수 있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어떤 삶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대안관광은 개념 있게 여행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 교수는 “토마스 풀러(Fuller)는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고 했다”며 “공정여행을 떠나 여행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6 19

[교수]이상욱 철학과 교수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뒷이야기 (1)

과학철학자 이상욱 철학과 교수가 지난 5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차클)’에 출연해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몰랐던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이상욱 교수를 만나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가 필요해 이상욱 교수는 한양대학교 기초필수 교양과목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강좌를 만든 장본인이다. 과학기술 기본사회인 21세기에서는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 탐색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욱 교수가 방송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도 이와 같다. ▲ 이상욱 교수는 "과학철학은 과학적으로 복잡한 내용이 범람하는 21세기에 꼭 필요하다"며 "21세기 시민들이 꼭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은 사회적 활동이다. 부자가 모든 빌딩을 다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천재도 과학이라는 학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작다. “방송에서 다뤘던 ‘우리가 몰랐던 천재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천재가 최고라는 말이 아닙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자가 함께 해야 해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가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죠. 혼자 이뤄낼 수는 없었거든요.” 이상욱 교수가 말하는 철학 이상욱 교수는 이번 방송 출연을 통해 철학에 대한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바랐다. “철학은 과거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철학사죠. 현 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과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보다 현 시대에 주어진 문제를 철학을 통해 풀어나가는게 더 중요합니다.” 철학과를 취업률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대학교에서 배운 학문을 졸업해서 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라며 “대학은 전반적으로 능력을 키우는 곳이고 사회가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학이 실용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과학철학으로 준비하는 미래 한국과학철학회 편집인이자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 위원회 위원인 이상욱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책을 내거나 현대 과학기술을 연구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술적인 연구가 정책에 바로 적용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유엔기구 내 다양한 국가들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이상욱 교수는 앞으로 과학기술을 연구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 교수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과목을 잘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과학기술 기반 사회가 어떻게 인문학적인 쟁점이 되는지 공부하는 기회가 되고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윤리적 고려를 통해 사회적 지원을 통해 지속 가능하게 과학 연구를 할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6 10 중요기사

[학생]와줘서 고마워-'한양을 찾은 교환학생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가수 015B ‘이젠 안녕’의 한 소절이다.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다시 만나기 위해 약속한다. 하지만 때론 불확실한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한다. 그래서인지 이별을 앞둔 한양대 교환학생들의 하루는 더욱 소중하다. 귀하게 흘러가는 하루 중 유난히 비가 내린 어느 날, 뉴스H와 이들이 만났다. 한양대학교는 70여개 국가와 해외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매년 한양대로 오는 교환학생은 1300명 정도다. 2018년 4월 기준 지난 봄학기에 서울 캠퍼스를 방문한 교환학생 수는 총 336명, ERICA캠퍼스는 87명이다. 교환학생을 위한 국제처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교환학생들의 생활과 학업을 돕는 학생단체 ‘한양글로벌라이언즈'(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와 수준별 한국어 교실 등이 있다. 뉴스H가 만난 세 명의 교환학생들은 모두 다양한 도움을 받으며 한양대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Q1: 어디서 왔나요? 자기 소개 부탁해요. 멜빈 이스만토(Ismanto,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4): 안녕하세요, 저는 컴퓨터소프트웨어학을 전공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멜빈입니다.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Tran, 영어영문학과 3): 안녕하세요, 앨리스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라온 베트남 사람입니다. 원래 전공은 간호학이지만 교환학생으로 간호학을 듣는 것은 제한돼있어 영어영문학과로 왔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에슐린 페레스(Perez, 파이낸스경영학과 3): 안녕하세요. 에슐린이에요.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6일 한양대 근처 카페에서 교환학생 3인방을 만났다.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Tran, 영어영문학과 3)의 모습. Q2: 벌써 6월,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네요. 한양대학교는 어땠나요? 멜빈 이스만토: 한양대는 제가 다니던 대학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요. 건물이 크고 다양한 전공들이 각기 다른 건물들에 있었죠. 제 대학교에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10명 밖에 없었는데 이곳은 사람들도 많고요. 사실 전공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기초 수업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4학년 수업이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인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교수님을 오피스 아워(Office hour)에 찾아가 여러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같이 사진도 찍었어요. 모두 고마웠죠. ▲교수님과 꼭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는 멜빈 이스만토(Ismanto,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4).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 저도 한양대의 웅장함에 놀랐어요. 네덜란드에서 제 학교는 한 개의 건물이 다였습니다. 계단이 정말 많아서 인문대까지 가는 건 힘들었습니다. 영어영문학과 수업이 정말 좋았어요. 학생들과 교수님의 관계가 예의 바르지만 굉장히 친밀한 점이 인상 깊었고, 학생들이 영어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한양대 친구들을 보고 공부 자극도 많이 됐습니다. 에슐린 페레스: 한양대는 정말 큰 학교입니다. 한마당에서 열린 ‘중앙동아리 모집 박람회’를 보고 놀랐어요. 다양한 동아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인상깊었어요. Q3: 한국친구들은 많이 만났어요? 멜빈 이스만토: 다섯 명 정도 만났어요. ‘한양글로벌라이언즈’에서 만난 친구도 있고, 네팔에서 온 유학생 친구가 한국인들을 소개해주기도 했죠.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 한양대학교 학생과 교환학생을 친구로 맺어주는 HY-Buddy 프로그램에서 친구들을 만났어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각 한 명씩 배정돼요. (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에슐린 페레스: 많은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했어요. 한국인 친구들은 제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잘하지만, 말하는 건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래도 도움을 요청한 친구들은 열심히 도와줬어요.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에 감동받았다는 에슐린 페레스(Perez, 파이낸스경영학과 3)의 모습. Q4: 한양대학교에서 인상 깊었던 일화는? 멜빈 이스만토: 친구들과 했던 술 게임이 기억에 남네요. 한국 친구들은 게임을 잘해서 교환학생들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에슐린 페레스: 국제처가 진행하는 수준별 한국어 수업을 두 시간씩 매주 두 번 들었어요. 선생님이 수준에 따라 질문을 내주셨는데 저에게 쉬운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멜빈과 앨리스도 수업에서 같이 저를 많이 도와줬는데 모두가 서로를 돕는 분위기였죠. Q5: 마지막으로 교환학생으로 한양대학교에 올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교환학생들이 한양대 캐릭터 하이리온 1.0 인형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레스, 트란, 이스만토. 멜빈 이스만토: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세요. 가능하면 많을수록 좋아요. 어떻게 한국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지 알려줄 거에요.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 모든 걸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해요. 불편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에슐린 페레스: 북한산에 꼭 가세요. 홍대나 이태원에서 파티도 즐기고요! 식당에 들어가 메뉴가 한국어로 돼 있어도 그냥 시켜보세요. 한국어로 인사하는 법은 꼭 배우시고요. 한국을 즐기세요!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5 27 중요기사

[학생]코드(code)에 옷을 입히다

코드(code)는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다. 컴퓨터에 명령들을 작성할 때 코드를 사용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코드를 작성하는 ‘코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코드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읽기 힘든 만큼 가독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영수(컴퓨터공학부4) 씨는 코드의 특정 키워드를 자동으로 칠해주는 프로그램(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Color Scripter’를 개발해 6년째 운영하고 있다. Color Scripter 탄생 이영수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Color Scripter’를 개발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진 그는 여러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씨는 블로그에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코드와 함께 강의로 올리기 시작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구문 강조법(Syntax Highlighter)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영수(컴퓨터공학부 4) 씨는 “필요한 구문 강조법이 존재하지 않아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는 사용자들에 의해 자체적인 생태계로 구성된다. 이 씨는 “Color Scripter를 사용할 시 표식을 남기게 했고, 사용자들이 블로그에 Color Scripter를 사용한 코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표식이나 링크를 통해 Color Scripter에 찾아온 방문자 수가 늘어나 현재는 일평균 550명을 기록했다. 점점 증가하는 사용자 수는 6년간 지속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됐다. “모르는 사람들이 제가 만든 것을 사용하고, Color Scripter를 써서 올린 블로그 글을 종종 발견했습니다. 굉장히 뿌듯한 경험이죠.” 유료화보다 값진 경험 이영수 씨와 사용자들이 함께 만든 Color Scripter는 무료 웹사이트다. 이 씨는 “사용자들에게 무료 서비스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며 “돈을 버는 제품은 사용자들의 불만을 바로 처리해야 하는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무료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Color Scripter의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이 씨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디자인 변경, 언어 추가, 옵션 설정 등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찾는 서비스가 없을 시 직접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확장 스토어’도 생성했다. (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이 씨는 1년 전부터 사용자들에게 후원을 받았다. “후원을 처음 열었을 때 후원금이 얼마나 모일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사용자들에게 벅찬 부분이 있다고 공개하니 바로 후원자가 생기더군요. 1년이 지난 지금 전체 누적 100명 이상의 사람들의 후원으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영수 씨는 “사용자들의 후원 덕분에 안정적인 서비스 운영이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Color Scripter 홈페이지 제공) 함께 성장하는 서비스 이영수 씨에게 Color Scripter는 ‘함께 성장해 좋은 추억이 많은 친구’다. “무료이기에 얻을 수 있던 경험은 유료 서비스로 판매할 때보다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사용자들과 소통하면서 만들어낸 생태계이기 때문이죠.” 이 씨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항상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될 때 원하는 것을 바로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4 07 중요기사

[학생]카자흐스탄과 한국을 잇다 

의료관광은 개인이 자신의 거주지를 벗어나 다른 지방이나 외국으로 이동해 현지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을 말한다. 2017년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강남을 찾은 외국인 의료관광객은 7만2346명, 카자흐스탄에서 오는 관광객이 네번째로 많다. 최근 3년간 한국을 찾은 카자흐스탄 방문객은 약 90%가량 증가하는 추세다. 이를 포착한 카자흐스탄 출신 유학생 자나딜 탈디바예프(Taldybayev, 경영학부 석사과정) 씨는 한국을 찾는 카자흐스탄 의료관광객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컨설팅사 KMK(KazMediKor)를 설립했다. 한국에서 창업할래요! 카자흐스탄에서 동양학을 전공했던 탈디바예프 씨는 우연히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접했다. 그 후 교환학생으로 1년간 한국을 방문했고, 2017년 9월 국가초청장학생으로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창업하고 싶던 탈디바예프 씨는 한양대학교 창업지원단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10월 의료컨설팅사 KMK 회사를 설립했다. “카자흐스탄에는 한국 기업들이 많고, 한국과 사업 파트너 관계도 돈독해요. 따라서 한국에서 창업하면 전망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의료컨설팅사 KMK(KazMediKor, 클릭 시 홈페이지로 이동) 회사는 김슬아(경영학부 박사과정) 씨와 자나딜 탈디바예프(Taldybayev, 경영학부 석사과정) 씨와 카킴 다나바예프(Danabayev, 언론정보대학원 박사과정) 씨가 함께 설립했다. 의료관광을 창업 아이템으로 생각한건 탈디바예프 씨. 그는 “어머니가 의료관광으로 한국을 방문해 치료를 잘 받으셨다"며 "이후 다른 카자흐스탄 친구들이 계속 한국에 치료를 받으러 오는 걸 보면서 창업 아이템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탈디바예프 씨는 지난해부터 247 스타트업 돔(클릭 시 관련기사로 이동)에서 생활했다. 그는 "상담을 받으며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계획서를 작성해 피드백을 주고받고, 겪는 문제도 비슷하니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도 상의해요. 매주 보고서를 제출해 학기 말에 최종평가를 받습니다. 팀별 멘토링도 받으며 점차 성장하는 것이 느껴집니다." 폭풍 성장 의료컨설팅사 KMK 의료컨설팅사 KMK는 한국과 카자흐스탄을 이어주는 의료관광 플랫폼 역할뿐만 아니라, 고객들에게 통역 및 여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회사는 지난해 10월 설립 이후 올해 2월부터 활발히 성장하고 있다. 탈디바예프 씨는 의료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다 알게 된 병원들과 사업관계를 맺고, 카자흐스탄에서 저명한 인플루언서(유명인)들을 초대해 회사 서비스를 홍보한다. “올해 백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카자흐스탄 국회의원이 한국을 방문해 저희 서비스를 사용했습니다. 한국 병원에서 건강검진과 피부관리를 받은 뒤에 한양대학교도 방문했죠. 덕분에 연예인들과 인플루언서들이 끊임없이 한국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탈디바예프 씨의 안목은 뛰어났다. 그는 우연히 방문한 취업박람회에서 만난 카자흐스탄 유학생 카킴 다나바예프(Danabayev, 언론정보대학원 박사과정) 씨에게 같이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유튜버와 기자로 활동하며 카자흐스탄에서 넓은 인맥을 보유한 카킴 씨는 현재 진행 중인 홍보활동을 모두 가능케 했다. 탈디바예프 씨의 연구실 동료인 CEO 김슬아(경영학부 박사과정) 씨 또한 한국 관련 행정을 도맡아 회사 성장에 박차를 가한다. 그는 셋의 팀워크가 뛰어나다며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국말이 유창한 탈디바예프 씨는 직접 통역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컨설팅사 KMK의 총 직원 수는 일곱명으로, 한국에는 공동대표 세 명과 프리랜서 한명, 카자흐스탄에는 두 명의 직원이 있다. 앞으로의 계획 탈디바예프 씨는 앞으로 기존 카자흐스탄 고객을 포함해 러시아권 고객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넓힐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한양대학교에서 박사과정에 진학할 그는 “한양대학교의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너무나도 많고, 이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3 10 중요기사

[동문]대한민국과 한양대를 빛낼 예술인, 박지윤

국악(國樂)은 나라의 고유한 음악이다. 대표적인 국악기인 가야금은 900년 가까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에 가야금이 따분하다는 시선을 바꾸기 위해 고민하던 박지윤 동문(음악학 박사)은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추구하며 가야금의 새로운 모습을 세계에 알렸다. 곰삭은 소리를 내기까지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던 박 동문은 음악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는 등 악기 연주에 재능을 보였다. 이모부이자 인간문화재인 고흥곤 선생의 가르침으로 가야금을 중학교 때 시작했고,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 피아노로 쇼팽의 교향곡을 치던 아이에게, 단선 악기인 가야금은 상대적으로 쉬웠죠.” ▲지난해 12월에 열린 서초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25현 가야금'으로 새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박지윤 동문(음악학 박사) 가야금에 매력을 느낀 박지윤 동문은 화려한 가락이 돋보이는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30년간 끊임없는 연주자의 길을 달렸다. “가야금에도 산조가 다양해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때까지는 김죽파류를 연주했는데, 이와 굉장히 상반되는 산조인 김병호류도 연주해보고 싶었습니다.” 박 동문은 김병호류 산조를 공부하고, 가야금으로 '곰삭은 소리'를 내기 위해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곰삭은 소리'는 무르익는다는 뜻으로, 손 끝에서 나는 성음이 깊을 때 사용한다. 서양 음악과의 만남 세계가 변화하는 만큼, 가야금 또한 다양한 형태로 개량됐다. 박 동문은 ‘줄의 수에 따라 17현, 18현, 25현 가야금 등이 있고, 25현은 거의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퓨전 국악이나 협주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전통음악을 고집하지 않되 서양음악을 그대로 따라 하지도 않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 “세계적인 음악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죠. 저는 배경음악은 세계적이지만 익숙하고도 가야금이 주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박 동문은 지난해 12월 서초교향악단과 함께 독주회를 열었다. 이는 박 동문의 명성을 드높이는 기회가 됐고, ‘2019년 대한민국을 빛낼 인물·브랜드 대상’ 중 ‘예술인 부문 대상’ 수상의 명예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아시아 금(琴) 교류회 연주, 음반 발매, 중국 난닝에서 개최하는 축제 참여 등 서양 음악과 조화가 어우러진 가야금 연주를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다. 잘 가르치는 교수 박 동문은 모교인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출강하면서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음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로 가톨릭대학교 통합예체능과목 교수로 활동하며 동시에 한양대에서 강사로도 나서고 있다. 박 동문은 '제일 뿌듯한 순간은 가르쳤던 학생들이 콩쿠르나 정기 연주회 때 빛날 때'라며, 지금처럼 한양대가 국악으로 빛나기 위해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지윤 동문의 최종 목표는 '국악을 통해 한양대의 이름을 드높이고, 대한민국을 빛낼 수 있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자로서 대한민국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저의 꿈도, 학생들의 꿈도 모두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2018-04 12 중요기사

[동문]네덜란드의 무사가 되어 한국에 알리다

박물관은 영어로 ‘Museum’이다. 이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됐고, 여신 뮤즈(Muse)의 신전을 뜻한다. 시, 음악 등 아홉 가지의 학예에 능한 예술의 여신, 한양대에도 이에 적합한 사람이 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이 그 주인공.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생활을 보낸 그는, 박물관과 사랑에 빠져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동생과 함께 쌓은 피아노의 추억 김수현 동문과 동생 김소연 동문(피아노과 10)은 어린 시절을 피아노와 함께 보냈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했어요. 한 살 터울이었던 여동생은 금세 따라치기 시작했고, 피아노를 늘 곁에 두고 놀았습니다.” 이후 동생과 김 동문은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때론 친구가, 때론 경쟁자가 되곤 했다. “무대 공포증이 있는 제겐 피아노 콩쿨이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그 영향이 입시에도 미쳐 동생보다 늦게 한양대학교에 입학했어요.” ▲ 2013년 백남음악관에서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과 동생 김소연 동문(피아노과 10)이 함께한 피아노 듀오 연주 모습. (출처: 김수현 동문) 김 동문은 한양대학교에서 꿈꿔왔던 대학 생활을 이뤘다. “한양대학교는 당시 타 대학과는 다르게, 공연 기회의 확대, 편의시설 확충 등 음악대학에 대한 투자가 남달랐어요. 덕분에 한양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학교를 열심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동생과 함께 수업을 듣고, 고향에서 첫 공연을 여는 등 김 동문의 생활은 활기찼다. 특히 김 동문은 이대욱 교수(피아노과)와 함께했던 음악 공부를 가장 뜻깊은 시간으로 꼽았다. “지속적인 연주 활동을 하셨던 교수님을 보고,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을 느꼈습니다. 또한, 음악이 주는 무한한 감정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음악 교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로 떠나다 김수현 동문은 학부생 때 ‘서양 음악사’, ‘낭만주의음악 연구’ 등 학문적인 분야의 수업을 듣고 학문 쪽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보다 연필을 잡고 책을 들여다보는 일이 더 좋았습니다. 때마침 찾아온 교직 이수를 병행하면서 교육학을 공부했어요.” 교사로서의 경험이 김 동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 그는 교단에 올라섰다. 하지만 졸업 후 유럽여행의 여운은 김 동문에게 네덜란드를 추억하게 했고, 결국 음악 교사를 그만두고 네덜란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게 됐다. ▲ 2017년 6월 네덜란드 출국 전, 김수현 동문(피아노과 11)의 학교 마지막 근무 날.(출처: 김수현 동문) “홀로 갔던 3주간의 유럽여행은 꿈만 같았어요. ‘모나리자’를 비롯해 ‘키스’ 같은 명화를 직접 보고, 미술에 일가견이 없는 저 또한 넋을 놓았죠. 그때 유럽으로 공부를 하러 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결국, 김 동문은 국민의 80%가 영어를 사용하고, 지리적으로 여행하기 편리한 나라 네덜란드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영어를 생활화하기 위해 네덜란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작품에 대한 공부 후 언제든 박물관을 찾는다는 김 동문의 삶은 어느새 미술로 바뀌어 있었다. 미술과 네덜란드에 사랑을 느끼다 김 동문은 “미술 작품은 힘이 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저는 피아노를 전공한 사람입니다. 미술도, 역사도 공부하지 않은 제가 작품을 통해 당시 시대적 배경과 인간의 생애를 알아본다는 점이 너무 흥미로웠죠.” 그는 작품의 힘과 음악을 접목했다. “음악 작품은 귀로, 미술작품은 눈을 통해 감상하죠. 이 상반되는 특성을 하나로 합쳐 작품을 감상할 때 더욱 집중할 수 있었어요. 제가 알지 못했던 화가의 생애를 조사하다 보면, 비슷한 시대의 음악가들과 연관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모두 예술을 즐기는 나라에서 김 동문은 많은 사람에게 네덜란드를 알리고 싶었다. 이는 경남일보에 박물관에 대한 기사를 연재하게 이끌었고, 수차례의 노력 끝에 나온 원고는 큰 사랑을 받았다. 또한, 현재 김 동문은 외교부 해외정보센터 네덜란드 통신원으로서 네덜란드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정보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박물관에 쏟았던 저의 큰 노력과 지식을 쉽게 풀어내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이러한 공부는 제 삶을 더욱 풍요롭고 빛나게 하지만, 나눌수록 더 빛나기 때문이죠.” (경남일보 기사 확인하기 / 네덜란드 정보 확인하기) ▲ 네덜란드 로테르담 박물관 방문 후 김수현 동문의 모습. (출처: 김수현 동문) 따듯한 마음, 오래 간직하시길 김수현 동문의 최종 목표는 예술과 대중이 한층 가까워지는 것이다. “요즘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음악과 미술 작품을 이해하기 쉽도록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구상 중입니다. 또, 네덜란드를 찾는 한국 관광객들에게 반고흐 미술관, 레이크스 박물관에 대한 투어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내년 박물관학과 진학을 목표하는 김 동문은 “글을 계속 써서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했다. 네덜란드에 키워온 사랑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김 동문, 예술에 대한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그의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2018-03 21

[학생]최고의 언어를 가진 두 무용수

얼마 전 인터뷰에 응한 조영재 동문 말고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무대를 빛낸 한양인이 있다. 우리대학 무용학과 학생들이 한국의 도깨비로서 ‘타오르는 소망의 불꽃’을 표현했다. 유천예(刘天艺, LIUTIANYI, 무용학과 3), 진천소(陈天笑, CHENTIANXIAO, 무용학과 석사과정) 씨가 그 주인공, 개막 공연에 참여한 다섯 명의 외국인 중 둘이다. 성화의 불꽃이 타오를 때 개막식 중 평창홍보대사 김연아의 성화가 점화되자 12명의 도깨비가 등장했다. 한바탕 난장을 이뤄지는 동안 강원도 곳곳 23명의 도깨비가 모였다. 도깨비로 분한 건 우리대학 무용학과 학생 23명. 그 중 두 명의 중국인 유천예, 진천소 씨가 당당히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9월, 지도교수이신 손관중 교수님이 저희를 선발했어요.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좋은 기회이니 놓치지 말라고 하셨죠. 정말 감사했습니다.” ▲지난 14일, 미래자동차공학관에서 유천예(刘天艺, LIUTIANYI, 무용학과 3), 진천소(陈天笑, CHENTIANXIAO, 무용학과 석사과정) 씨를 만났다. 수백 번 옆돌기를 하는 등 4개월 동안의 혹독한 연습을 거치고서야 이들은 무대에 섰다. 유난히 추웠던 날씨에 유천예 씨는 “평창에서 한 달 동안 연습했는데, 너무 추워서 속눈썹이 얼어붙었고, 장이 놀라 병원을 갔다 온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유 씨에게 평창의 감동은 컸다. “중국 유명 피겨스케이팅 선수를 볼 수 있어 신기했고, 무대가 끝난 뒤 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어요. 사진도 찍고 손도 흔들고. (웃음) 연예인이 된 것 같았어요. 매 순간 재미를 느꼈습니다.” 중국 양저우(揚州) 출신인 진천소 씨는 지난 2008년 열린 베이징 하계올림픽 때도 공연무대에 올랐다. “올림픽 성화 주자가 동네로 와서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저는 축하 공연에서 춤을 췄어요. 그렇기에 한국을 대표해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은 더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평창올림픽 개막식을 위해 진 씨는 일주일에 세 번씩 평균 다섯 시간의 연습량을 소화했다. “개막식 연습 중 5살 꼬마가 연습하는 모습을 봤어요. 열심히 하는 모습에 자극을 받아 저도 힘낼 수 있었죠. 또한, 세심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는 한국인의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리허설마다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공연영상 확인하기) 춤과 한국을 사랑하다. 유천예 씨는 어머니의 권유로 무용을 시작했다. 9살 때 유 씨는 중국 전통 무용을 시작했다. “사실 무용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조금 웃긴데, 제가 목이 아주 짧았어요. 목이 늘어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무용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적성에 맞았죠.” 올해로 무용 14년 차 유 씨는 14살 때 한국문화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전 중국 청도(靑島) 출신인데, 고향에 한국 사람이 아주 많아요.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접했습니다. 10년 동안 중국전통무용을 배운 뒤 우연히 한국현대무용을 접했는데, 너무 배우고 싶었어요.” ▲유천예(刘天艺,무용학과 3) 씨의 어릴적 모습 (좌), 개막공연의 무대의상을 입은 모습 (우) 유 씨는 춤을 창작할 수 있는 한국현대무용에 큰 매력을 느꼈고 한국 유학을 결심했다. “한국에 온 지 4년이 돼가는데 이제는 중국이 조금 낯설어요. 한국현대무용이 너무 즐거워 수업을 한 번도 빠진 적도 없죠.” 한국을 사랑하는 유 씨는 한국어에도 큰 매력을 느꼈고, 통역사의 꿈을 꾸게 됐다. “안무도 재밌지만 한국어가 좋아요. 한국어 자격증은 딴 상태이고,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입니다.” 진천소 씨는 지난해 3월부터 한국에서 한국현대무용을 전공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좋아했던 진 씨는 난징예술대학 (京藝術學院)에서 무용을 전공한 후, 무용 교사와 전문 무용수로 활약하며 경험을 쌓았다. “지난 2015년 국제무용콩쿨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왔다가 한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한국무용은 서양 무용과 비슷한 점이 좋았고, 좋은 환경에서 춤을 추고 싶었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진천소(陈天笑, 무용학과 석사과정)씨를 검색한 화면(출처:웨이보 갈무리) 진천소 씨는 현지 매체에 평창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로 소개되고, 웨이보(微博)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달구며 중국인들의 높은 관심을 받는 유명인이다. 중국과 한국의 무용을 통해 안무를 창작하는 안무가를 꿈꾸는 진 씨는 연습시간을 쪼개 힙합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 중이다. 진 씨는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즐겁기 때문에 한국어를 공부하며 한국에 오래도록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춤은 최고의 언어 진천소 씨에게 무용은 ‘최고의 언어’다.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몸으로 소통을 하는 무용은 진 씨에게 가장 큰 매력이다. 유천예 씨 또한 춤은 “예술과 영혼의 만남”이라며 “춤을 출 때는 감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에 감정을 관리하는 것도 춤의 중요한 영역이다.”고 했다. 한국에 오래도록 남아 무용을 하고 싶은, 누구보다 한국과 춤에 대한 열망이 큰 이들이다. 그렇기에 지금의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편견은 마음 한 켠에 아쉽다. “우리와 같이 성실하고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아요.” 이들이 바라는 점이라면 중국인 유학생에 대한 얼룩진 인식을 지우는 것이다. 전 세계인이 하나 되어 즐겼던 평창동계올림픽처럼, 언젠가는 모두가 따듯한 시선으로 서로를 대하길 기대해 본다. 이들에 관한 더 많은 소식은 다음 SNS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천예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진천소 씨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3 08

[동문]누가 뭐래도 가야금 할래요 (1)

“아리아리”는 성대하게 막을 내렸던 2018 평창동계올림픽, 패럴림픽의 공식 인사법이다. ‘없는 길을 찾아가거나 길이 없을 때 길을 낸다’는 뜻으로, 파이팅 대신 순우리말로 쓰였다. 이를 알리기 위한 홍보대사 아리아리걸스는 지난 12월 앨범 <아리아리>를 발매했다. 총 6곡 중 4곡에 아름다운 가야금 선율이 담겼고, 이는 조영재 동문(음악 교육학 석사)의 참여로 이뤄졌다. ‘가야금영재’라는 예명으로 국악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조 동문이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했다. 뭐든 잘하고 싶었던 영재 “피아노는 배우기 싫어요.” 초등학생 시절 조 동문이 어머니께 했던 말이다. 그 후 조 동문은 가야금을 배웠고, 싫증내지 않고 곧잘 했다. 그는 가야금을 켜며 한양대 진학에 대한 꿈을 키웠다. “처음부터 한양대에 오고 싶었어요. 중고등학생 시절 존경하는 선생님들이 한양대 출신이셨거든요.” 꿈은 이뤄졌다. 조 동문은 한양대 입학해 최연소로 가야금 독주회를 열고, 성적우수장학금을 받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가야금영재' 조영재 동문을 지난 3일 미래자동차공학관에서 만났다. 하지만 조 동문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신문방송학과 복수전공의 길을 택한다. “고등학교 때 국악방송의 존재를 알았어요. 가야금으로서 돈을 벌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고, 막연히 국악방송연출을 꿈꿨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면, 해보자고 생각했죠.” 복수전공을 통해 관련 지식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을 알게 됐다. 모두 큰 자산이었다. 5년 동안의 공부는 국악방송 시험 3차 통과로 결실을 보았지만, 조 동문은 부모님의 바람대로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다. 가야금과의 ‘필연’ 대학원 석사를 졸업하고, 조 동문은 중·고등학교 음악 교사가 됐다. “안정적인 생활을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답답함이 자리 잡았다. “항상 가야금 1등을 목표했는데, 교사가 되니 하고 싶은 게 없어졌어요. 꿈이 없으니 재미도 없고, 아무것도 잡히지 않더라고요. 가야금 연주를 다시 하고 싶었어요. 결국, 교사 일을 그만두고 지난해부터 ‘가야금영재’라는 예명으로 앨범 활동을 시작했다. “스스로 영재라고 칭하면, 사람들이 궁금해서 물어보더라고요. 제 이름이 영재라는 점과 함께 자연스레 이름을 알릴 수 있었어요.” 조 동문은 가야금에 탱고, 재즈, 삼바 장르가 혼합된 ‘가야금영재의 필연’을 발매했다. 익숙한 음악에 어우러진 가야금 선율은 전통음악의 편견을 깼다. “탱고 선법, 라틴계 음계 모두를 고려해서 가야금 리듬을 융합했어요. 우리 민요에 재즈를 얹는 시도도 감행했죠.” 이후 총 6회의 독일 순회를 진행한 조 동문은 앨범에 대한 세계인들의 뜨거운 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재독 동포와 독일 현지인이 공연을 보며 감동하는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 외국에서 공연하면 기사에 제 얼굴이 실리기도 하는데, 동네 전체가 저를 알아봐 주더라고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조영재 동문은 지난해 12월 평창응원가에 특별히 참여했다. “여자연예인야구단 소속이라, 일주일에 한 번씩 야구연습을 해요. 야구단이 홍보대사가 되면서 앨범을 낼 기회를 얻었죠.” 2018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조 동문은 강원도 아리랑, 본조아리랑의 선율을 넣은 곡 ‘Everybody Passion Crew’ 등을 전속작곡가와 함께 만들었다. “올림픽 기간 내내 20번이 넘는 연주를 했어요. 신나는 응원가와 가야금 선율이 정말 잘 어울리더라고요..” 꿈이 있어 행복합니다 흔히 국악이라면, 지루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한다. 하지만 조 동문은 이에 “딱 한 번만이라도 내 음악을 들어본다면 깜짝 놀랄 것”이라고 했다. “제 음악은 재즈, 라틴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져 지루하지 않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국악을 많이 듣지 않아요. 선진국이 자국 문화의 가치를 제고하는 데 힘쓰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전통음악의 가치를 높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조영재 동문의 재치있는 농담으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가야금은 물론, 후배들에게 애정이 남달랐던 그는 인상깊은 조언을 건넸다.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둔 후 전보다 통장에 여유가 없어졌지만, 조 동문은 꿈이 있어 행복하다. 가야금의 대중화를 위해서 방송인 데뷔를 앞둔 그는 “설레서 잠이 안 올 때도 있다”고 했다. “EDM, 재즈 등 여러 가지 가야금 음악을 구상 중이에요. 가야금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나의 상표 가치를 올리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방송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도움을 미안하게 여기는 대학생들을 향해 조 동문은 “여러 가지 하고 싶은 건 대학교 때 마음껏 하라”고 말했다. “성인이 됐지만, 충분히 어린 나이에요. 대학교 4년 동안 조금만 더 투자를 받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본인이 원하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몇 배가 넘는 보답을 할 수 있어요. 삶의 목표는 취업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재미있게 하며 사는 것 아닐까요.” 조 동문에 관한 더 많은 소식은 다음 SNS계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페이스북 바로가기]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8-03 02

[동문]아쟁의 시대에 획을 긋다

예술을 창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오랜 활동 기간이 무색하게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만큼 예술가는 끝없이 연습하고 전문적인 노력을 더한다. 아쟁은 훌륭한 국악기임에도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악기다. 정미정 동문(음악학 박사)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아쟁 크로스 오버’ 음악을 만들어내며 아쟁을 위한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아쟁과 재즈의 결합 지난 1월, 정미정 동문은 음반 발매기념 콘서트 ‘The Moon’ 연주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연은 정 동문이 새롭게 선보인 ‘아쟁 크로스 오버’로 이뤄졌다. 공연에는 재즈피아니스트, 드럼, 베이스, 보컬리스트 등 국내 최정상 재즈 연주자들이 함께했다. “개인 독주회를 열고 전통음반을 냈었지만, 이런 음반은 처음이에요. 일반인들의 취향에 부합하기 위해 대중적인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그의 앨범 ‘Moon’에는 재즈피아니스트와 정 동문의 작곡, 편곡을 거친 9개의 수록곡이 담겼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9호 한일섭제 박종선류 아쟁산조 이수자’, ‘성남시립국악단 상임 단원’ 등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정 동문은 이번 앨범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작곡은 영감을 받으면 한꺼번에 이뤄져요. 이후 완성하는 데 2~3달 정도 걸렸어요.”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도 어렵지 않았다. “재즈 연주자들과 한 번 만나서 맞추고 공연을 했어요. 제 분야에 정통한 상태고, 모두 내공이 있었기에 즉흥연주도 어렵지 않았네요.” ▲지난 1월 19일에 열린 정미정 동문(음악학 박사)의 아쟁음반 발매기념 콘서트 'The Moon' 동영상 아쟁과 시작된 사랑 정 동문은 국악을 좋아했던 아버지와 오빠의 영향으로 아쟁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쟁 연주를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일반 학생처럼 공부했고, 진로 고민 후 아쟁을 연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정 동문에게 아쟁은 운명이었다. “악기는 연주자와 비슷하게 간다고 생각해요. 아쟁은 조용하고 낮은 제 목소리와 어울려서 좋았습니다.” 독주 악기로서 70년이 된 아쟁은 역사가 짧다. “대학교에 아쟁 전공이 생긴 것은 최근 일이에요. 제가 한양대 아쟁 박사 2호니까요. 그래서 다른 국악기보다 시장경쟁력이 유리했습니다.” 정 동문은 연주자로서 박사학위가 중요했고, 이에 맞는 최고의 학교가 필요했다. “실기가 중심이지만, 이론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았어요. 한양대는 워낙 음악 분야에서 유명한 학교라 합격했을 때 영광이었죠.” ▲지난 1월 30일, 재즈음악이 가득했던 신사동 카페에서 정미정 동문(음악학 박사)을 만났다. 세계와 만나다 ‘대만 국립 대북예술대학 교류연주회’를 비롯해 정미정 동문은 지금까지 12회의 개인 독주회와 4회의 듀오 음악회 등 세계 각지에서 아쟁을 연주했다. “한 번은 러시아에서 협연한 적이 있었는데요. 할머니가 ‘브라보’라고 외치시며 우셨어요. 전통아쟁은 사람을 붙잡는 매력이 있어서 러시아 감성에도 맞았죠.” 정 동문의 목표는 미국, 유럽 등에서 현지인들과 음악을 하는 것이다. “저는 세계음악을 지향해요. 미국에 가서 재즈 연주자를 만나고, 유럽에 가서 집시음악을 하는 것이 꿈이에요. 즉흥연주를 위해선 음악적인 내공이 필요해요. 지금은 차곡차곡 내실을 쌓으며 한 발을 내딛는 단계죠. 현지인과 같이 음악을 하는 것이 큰 공부가 될 겁니다.” ▲정미정 동문은 "연주자로서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는 문화예술의 길을 넓히겠다"고 했다. 아쟁을 기억해주세요 정 동문은 아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토대로 아쟁의 시대를 열고 있다. 그의 최종 목표는 교육자가 되는 것이다. 정 동문은 “후배 아쟁 연주자가 시험 독주곡으로 사용할 수 있게 ‘국악 작품집’을 내고 싶다”고 했다. 대중에게 아쟁을 알리고, 후배를 위한 교육자를 꿈꾸고, 세계 음악을 지향하는 정 동문. 우리 악기 아쟁을 매개로 많은 이와 교감하는 정 동문의 열렬한 모습을 응원한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8-01 24

[학생]마음을 담아 소리를 내다

하모니카에는 억지가 없다. 작은 호흡에도 소리가 난다. 박종성(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 씨가 하모니카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유다.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 '세계 하모니카 대회' 등 10군데가 넘는 곳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고, 한양대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박종성(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 씨를 만났다.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 하모니카 하모니카는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좋고, 들숨과 날숨으로 간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자그마한 관악기다. 이 악기와의 만남은 박 씨의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됐다. “여러 악기를 연주해봤지만, 하모니카를 불 때 제일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제 모습이 좋았죠. 하모니카 선생님과의 추억들도 꽤 많아서, 평생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하모니카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박 씨는 처음 참가한 2002년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청소년 트레몰로 독주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부각을 나타냈다. “제가 상을 받을 때 최광규 선생님의 우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선생님의 사랑에 처음으로 보답한 느낌이었어요. 좋은 연주자가 되면 선생님께 음악으로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연주 곡 대부분이 다른 악기의 곡을 편곡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하모니카만을 위한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박종성 씨는 "하모니카를 부는 그 순간이 진실된 나의 모습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과 하모니카 전공으로 입학하며 국내 대학 하모니카 1호 전공자가 됐다. 단과대학 전체 수석으로 졸업 후, 꾸준히 대회에 참가한 박 씨는 ‘2005년 세계 하모니카 독일대회 트레몰로 독주 3위’, ‘2006년 일본음악 연주제 1위’ 등 좋은 성과를 냈다. 한편, 이 과정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뒤따랐다. 하모니카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악기라는 점에서 생긴 편견 때문이었다. “하모니카로 뭐 먹고 사냐는 둥, 할아버지가 부르는 거 아니냐는 둥 처음엔 오기가 생겨 그 편견을 깨려고 했어요. 지금은 좋은 연주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2009년 세계 하모니카 대회 트레몰로 독주 1위’을 석권한 박 씨는 당시 자작곡 ‘런 어게인(Run Again)’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어머니의 별세와 함께 다른 좋지 않은 일이 겹치며 슬럼프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곡이다. 이외에도 자작곡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는 박 씨가 특히 아끼는 곡이다. “여러 사건이 해결 안 된 시점에서 지인에게 터놓고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영감을 받았어요. ‘뭐 어때? 너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라는 말에 힘을 얻었고, 30분 뒤 이 곡을 완성시켰죠.” ▲KBS 더 콘서트 하모니카 연주영상 끝없는 도전과 지휘공부의 시작 각종 영화음악,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의 드라마음악, ‘2016 전주세계소리 축제’ 참가 등 박 씨는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하모니카는 여러 장르에 잘 어울려요.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엔 클래식 작곡 공부, 대학교 때는 재즈, 탱고, 펑크,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공부할 수 있었죠.” 장르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박 씨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장르와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곡 공부를 통해 곡을 만드는 원리를 깨달았고 연주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박 씨는 더 높은 이상을 꿈꿨다. 그 과정 속에서 지휘를 알게 됐고, 현재 한양대 음악대학원에서 최희준 교수(관현악과) 사사로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자와 듣는 귀, 카리스마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지휘는 이론, 역사, 인간의 심리, 무대 음향 등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같은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도 공부할 예정이에요. 이제는 지휘자로서 콩쿨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부산 조수미 스페셜콘서트에 게스트로 참가한 박종성 씨(왼쪽). (출처: 박종성 페이스북) 영원히 무대 위 행복한 연주자가 되길 이토록 뛰어난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씨는 “무대에서 즐겁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 전과 후 청중들의 모습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대 위에서 박 씨가 느끼는 행복이 고스란히 청중들한테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여전히 음악공부를 지속하는 그의 모습은 하모니카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될 경우 즐기기 어렵다’는 말의 반례를 보여준다. 작은 악기가 만든 기적에서, 또 다른 음악세계를 내보일 박 씨의 행보가 기대된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7-12 05 중요기사

[교수]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버텨라

자전거를 오랜 시간 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바퀴를 굴려야 한다. 25년간의 연구를 통해 기업을 설립한 박재구 교수(자원환경공학과)는 본인의 인생을 ‘자전거 타기’에 비유했다. 주변의 만류나 기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걸어간 그는 한 분야에 정통하기까지 철저한 ‘장인 정신’을 지켰다. 최근 국내 유일의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벤처캐피털 KTB네트워크(대표 신진호)로부터 30억을 투자유치에 성공한 박재구 교수를 만났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실험실 창업기업’ 박재구 교수가 실험실 창업기업 ‘㈜마이크로포어’(이하 마이크로포어)를 설립하던 2000년, 정부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시행하며 교수의 창업을 독려했다. 실험실 창업기업이란 해당 대학의 교수가 대학이 보유한 연구시설을 활용해 신제품을 연구〮개발하는 벤처기업을 말한다. 박 교수는 산업 전반적으로 적용범위가 넓은 기초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꾸준히 자원산업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상용화하기 위해 마이크로포어를 설립했다. 마이크로포어의 주력제품은 ‘가열로 단열재’다. 박 교수는 지각을 이루는 수많은 성분 중 연구 목적에 적합한 미네랄을 조사했다. 이후 실리카(silica, SiO2) 소재를 선택, ‘가열로 단열재’를 생산했다. ‘가열로 단열재’는 약 500도 고온을 가하는 열처리 장비에 사용된다.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아 온도가 빠르게 상승하도록 돕고, 열처리 장비 외부로 열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현재 디스플레이 공정의 부품소재인 ‘가열로 단열재’는 독일과 일본 등에서 전량 수입으로 공급되고 있어요. 각각의 제품들은 무겁거나 단열 효과가 낮은 등 한계점을 갖고 있죠. 이러한 제품들의 대체제로서 제가 개발한 ‘가열로 단열재’는 단열 효과가 뛰어나고 표면이 매끈매끈해 가루가 나오지 않아요.” ▲박재구 교수(자원환경공학과)가 본인이 개발한 ‘열처리 장비용 가열로 단열재 재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단열재 재료의 핵심은 공극률이다. 공극률은 재료에 공기층이 얼마나 많은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그 정도가 많을수록 단열 성능이 높아지지만, 공정 과정에서 분진이 많이 생겨 표면의 매끈함에 악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박 교수가 개발한 기술력은 표면의 입자가 발생하지 않는 것에 비해 공극률이 높고, 단열 성능이 높다. 수입 가열재보다 뛰어난 품질은 소재의 국산화를 이끄는 계기가 됐다. 현재 30억 투자 유치를 통해 국산화의 첫 발자국을 내디딜 예정이다. 창업 18년차에 접어드는 현재, 박 교수는 한양대학교 내의 실험실 창업기업 중 가장 긴 업력을 갖고 있다. 물론, 주변에선 창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재정적인 지원이 필수적이고, 제품을 생산하기까지 많은 변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한때 도쿄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닌 박재구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에 이런 말이 있어요. ‘물건을 만들 줄 모르면 아무것도 아니다.’ 제조업이 강해야 우리나라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가능성을 보고 창업을 감행했죠.” 도시광산 개발, 주머니 속에 있는 광산을 연구하다 1974년 한양대 자원공학과에 입학해 전공에 큰 매력을 느낀 박 교수는 20년간 도시광산 개발에 관한 연구도 지속했다. 도시광산 개발은 폐 휴대폰, 폐 노트북 등을 선별적으로 처리해 금속을 회수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다. 박 교수는 해수 중에서 Li 이온을 회수하기 위한 도구를 개발하는 한편, 해저 퇴적물에서 회수한 중광물(비중이 표준입자의 비중보다 큰 퇴적암의 입자)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자원은 크게 세가지 과정으로 나뉩니다. 자원을 찾는 것이 ‘탐사’, 찾은 것을 캐내는 것이 ‘개발’, 그리고 캐낸 것이 지상으로 나오면 ‘처리(processing)’. 저는 ‘처리’, 즉 자원활용으로 부가가치를 올리는 연구를 하죠.” 박 교수는 더 이상 자원은 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닌, 사용하고 남은 자원을 재활용하는 ‘순환자원’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광산에서 귀금속을 캐던 시대는 지났어요. 이제는 주머니 속에 있는 스마트폰에 더 많은 금이 존재합니다. 우리나라 해남 금광의 광석 1t 중 금속함량이 5g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양의 자원이 방치되고 있는 셈이죠.” ▲박재구 교수를 지난 2일 과학기술관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났다. 이렇듯 원자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서 순환자원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원은 제조업의 원천이에요. 순환자원기술로서 자원을 확보하고 이후 생산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우리나라에 있는 공장 수를 늘려서라도 국가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제조업의 중요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교수로서의 역할과 기업 경영을 병행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재구 교수는 끈기라고 답했다. “하루에 두 시간 자면서 생활했습니다. 신발이 닳았는지도 모르고 시간을 쪼개 바쁘게 살았어요. 꾸준히 제 갈 길을 갔죠. 늪이 있으면 빠지지만, 빠져 나오는 과정 또한 재미있었네요.” 버텨라, 그리고 도전해라 코스닥 상장을 목표로 둔 박 교수의 마이크로포어는 전성기로 도약하고 있다. 주변의 우려 속에서 우직한 힘으로 버텨낸 그는 후배 공학도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도전하세요.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본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벤처에 대한 제도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스스로의 도전정신이 중요해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창업 후 3년 생존율은 38%에 그친다고 발표했다. 이러한 가운데 국내 유일의 원천기술로서 30억 투자 성공을 이끈 박재구 교수는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는 공학도다. 계속해서 순환 자원과 소재 개발을 연구하는 박 교수의 새로운 소식을 기다려본다. ▲국내 유일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박재구 교수는 새로운 자원 산업 시대에서 힘차게 도약할 것이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