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9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20-04 24

[동문][동행한대] 장재영 동문, 기부는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기쁨입니다. (2020년 봄호)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 (공업화학 82) 천천히, 그렇게 올곧고 바른 마음으로 이어갈 터...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 (공업화학 82) 스승의 참 모습을 그대로 닮은 제자.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는 그 가치와 마음을 이어받아 지난 2012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용도의 발전기금 약 6,000만 원을 모교에 기부해왔다. ‘한양대’인 모교를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하는 그는 회사명처럼 여전히 순수하고 푸르른 ‘청춘’이다. 스스로 선택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부를 참된 기쁨으로 느끼는 장재영 대표이사는 그만의 소신으로 천천히 아름답게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Q1.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용도의 발전기금을 기부하셨는데요. 어떤 동기가 있으셨는지요? A1. 전임 총장이셨던 이영무 교수님이 제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셨지요. 이 교수님이 2012년 9월 <경암 학술상>을 수상하시면서 수상 상금 2억 원 전액을 모교에 기부하시는 것을 보고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교수님과 상의하여 제가 배운 것과 연계해 모교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후진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올해 2월에는 화학공학과 학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2,000만 원을 약정했지요. 시험기간 중에 아르바이트로 미처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후배들을 위해 매년 500만 원을 사용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Q2. 혹시 다른 기부에도 참여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A2. 이영무 교수님이 부총장으로 재임 시, 에너지공학과 학부 학생들이 <적정기술연구회>를 만들어 동아리 활동을 할 때 멘토 역할을 했습니다. 주로 필리핀, 캄보디아 등의 식수가 좋지 못한 환경에 있는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함께 하였습니다. 적정기술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적은 자본, 비교적 간단한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좋은 기술을 이용하지 못하는 곳에서는 삶의 질을 궁극적으로 향상시킬 수가 있지요. 그것을 계기로 무동력 마을 정수장치를 개발하였고, <굿네이버스>,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등을 통해 제가 보유한 기술로 사회에 기여할 방법을 궁리하며 찾아가고 있습니다. Q3.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다소 위축되었는데요.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A3. 기부에 대한 비뚤어진 시선은 선입견 아닐까요? 서로 칭찬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사회 자체가 건강하고 구성원이 비로소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국가를 비롯한 공적인 기관을 통하지 않는 직접적인 행위라고 생각하는데요. 결국 기부란 우리 모두의 공동체 발전을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며 구성원의 사회적 책임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부와 관련된 원칙을 세웠습니다. 강요에 의한 기부보다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 즉 기부자가 기부의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교발전을 위한 기부는 모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모교인 ‘한양대’가 저의 ‘정체성’입니다. 특히 뉴스나 미디어에서 우수한 인재를 배출해 글로벌 시대의 리더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한양대의 기사를 접하거나 국내를 비롯해 외국에서 유능한 학생들이 오고 싶어하는 배움의 터전이 제 모교라는 생각을 하면 한양인으로서 자부심뿐 아니라 더불어 함께 성장하는 것을 느낍니다. 제가 공학도로서 이렇게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바로 모교에서의 배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장재영 퓨어엔비텍 대표이사 (공업화학 82) Q4. 한양대의 든든한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하고 싶으신가요? A4. 저는 공과대학 공업화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지난 1995년 11월에 화학공학과와 통합했는데요. 이를 계기로 각각의 동문회도 합쳐져서 ‘화공계열 총동문회’로 운영되고 있지요. 앞으로도 ‘화공계열 총동문회’의 발전과 성장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요즈음 주위를 보면 후배들이 졸업 후 학교와의 관계가 단절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큰 업적을 이루고 사회에 기여를 한 많은 선배님들과 후배님들이 교류해 함께 성장하며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양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나이 많은 선배에게도 서슴없이 “선배님!”하면서 다가오기를 희망합니다. Q5. 퓨어엔비텍. 회사명에서부터 깨끗하고 정직한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퓨어엔비텍의 향후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A5. 퓨어엔비텍은 멤브레인을 제조하는 회사입니다.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대학원 석사 논문이 바로 회사의 근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환경분야 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비롯, 바이오 분야 및 이차전지용 소재 등으로도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한양’의 이름과 자부심으로 누구보다 한양을 사랑하는 장재영 대표이사. 그런 마음으로 그는 오늘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하루를 맞이하고 있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동행한대'의 2020년 봄호(1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동행한대 2020년 봄호(17호) 보러가기

2020-04 24

[동문][동행한대] 이홍기 동문, 우리의 삶도 예술도 함께 나누는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2020년 봄호)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우리의 삶도 예술도 함께 나누는 기쁨에서 비롯되는 것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약자를 배려하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 아름다운 기부문화의 기준 아닐까요?" 커다란 거목의 나이테는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자신이 걸어 온 인생의 향기와 흔적은 비로소 겹겹이 쌓여 하나씩 주름을 만들어간다.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지난해 5월, 모교 경영대학 발전기금 1억 원을 기부한 그는 다만 신이 주신 것을 기쁨으로 함께 나누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가 사랑하는 예술처럼, 아름다운 색을 지닌 나눔과 기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지금은 무엇보다 한양인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서 함께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더 성숙한 기부문화로 성장하길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접했습니다. 우리 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몇 평 아파트와 자동차에 의해 분류된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를 보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이나 선진국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그들의 성숙한 사고와 문화의식을 말입니다.” 외국의 경우에는 중산층의 기준이 우리와는 사뭇 다르단다. 과연 나 자신은 얼마나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약자를 배려하며 함께 나누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홍기 회장은 ‘나눔’을 몸소 실천하고 봉사를 하는 것이 진정한 중산층의 기준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 가짐은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되어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어릴 적부터 교육을 통해 배우고 스스로 익혀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기부 문화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지고 성장하고 있지만, 좀 더 성숙한 문화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파트의 평수와 자동차가 중산층의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나는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과연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아름다운 기준 말이에요.” 서로의 꿈을 이뤄가며 감동을 나누다 이유 있는 고집은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오로지 물류산업으로 한 우물만, 한 길만 꾸준히 걸어 온 이홍기 회장은 기업의 외형적인 성장보다 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진정한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지난 1989년, 골드라인 금속공업㈜으로 첫 출발을 한 골드라인의 의미는 ‘값어치 있는, 귀중한 직업’을 뜻한다. “제가 이탈리아에서 근무 했을 때 그들의 선진 물류를 보고 놀랐습니다. 선진국에서는 파렛트를 사용해서 효율적인 생산활동이 이뤄지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나라에도 물류표준화를 제안했고, 결국 서로가 윈윈하며 고객에게 감동을 주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골드라인은 국내 최초로 물건을 운반하는 파렛트 시대를 열며 회사는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그때 당시 골드라인의 기업 마인드는 ‘고객 감동, 물류 혁신’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홍기 회장의 마음 속에 이런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단다. “물류 절감이 고객을 위한 것이 되었고, 고객에게 감동을 주었지만 과연 나 자신은 기쁨이 있었고, 감동했었나? 직원들도 함께 성장하고 기뻐했을까? 그래, 내 꿈만이 아니라 직원들의 꿈도 함께 이루어주자. 생각을 조금만 바꾸어 달리 보면, 오너 입장에서는직원들도 제게는 소중한 고객이니까요.” 그런 고민 끝에 골드라인의 경영철학은 ‘꿈을 이루는 창조기업’으로 바뀌었고, 이홍기 회장과 직원들은 세상을 항해하는 멋진 꿈을 꾸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이홍기 골드라인그룹 회장 (경영학 67) 자신의 기쁨으로 비로소 완성되는 기부 아침에 회사로 들어서면, 이홍기 회장은 조금은 특별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 복도를 지나 사옥에 입주해 있는 작가들의 작업실을 찾아가 인사하고 작품을 둘러본다. “인생을 예술처럼 사는 것!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 일 입니까.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듣고, 좋은 그림을 보면 마음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많은 작가 분들과 예술인들이 제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만 오히려 그분들 덕분에 감동을 받고 기쁨을 느낍니다.” 운동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 회장의 남다른 지역사랑과 미술사랑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하나님을 믿고 봉사를 하면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봉사와 기부가 얼마나 큰 감동을 주는지 알게 되었지요. 어차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아깝지가 않아요. 기쁜 마음으로 남과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지요.” 나눔은 스스로,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기쁨이 생기며 그것이 바로 진정한 기부다. 종교가 다르고, 신앙의 원천이 다르더라도 자신만의 철학과 믿음을 지켜가면서 약자와 함께 나누는 것. 바로 올바른 ‘나눔문화’로 가는 길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기부철학인 이홍기 회장. 그는 이처럼 사회에 대한 책임과 도덕적 의무를 다하고 있다. “뒤돌아보니 정작 저와 인연을 맺은 모교인 한양대에 가장 늦게 기부한 것을 알게 되었지요. 조금 더 빨리 봉사하고 기부했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요.” 해외 명문 대학들이 후원자들의 후원과 기부금에 의해 운영되는 문화가 새삼 부럽기도 하다는 이홍기 회장은 그런 이유로 산학연 모두가 융합하고, 함께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경영대학의 발전을 위해 잘 쓰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발전기금을 기부하면서 제 모교인 한양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한양대와 훌륭한 동문, 후배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큰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지금은 모쪼록 한양인 모두가 함께 마음을 나누고 어울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나눈다면 한양대가 더 크게 성장하고, 재정적으로도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경제 리더로, 한양발전후원회 위원으로, 다양한 곳에서 나눔의 기쁨과 열정으로 인생의 나이테를 완성해가는 이홍기 회장. 그의 삶이 유독 예술처럼 아름다운 이유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동행한대'의 2020년 봄호(1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동행한대 2020년 봄호(17호) 보러가기

2020-04 24

[동문][동행한대] 오충근 동문, 기부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달란트입니다. (2020년 봄호)

▲오충근 동문 (독어독문학 05) 기부는 누구나 마음에 품고 있는 달란트입니다 오충근 동문 (독어독문학 05) 청량하고 맑은 사람. 오충근 동문을 본 처음 느낌이 그랬다. 자신이 평범하기에 모든 일에 열심이라는 그는 무대에서는 반짝이는 열정으로, 사람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따뜻하다. 매 학기 학과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150~200만 원을 모금해 꾸준히 기부하고 있는 독문과 동문들의 모임에서 겸손하고 소신 있게 책임을 다하는 오충근 동문. 이미 그는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달란트’를 함께 나누고 있다. Q1. 독문과 동문들 모임에서 자발적으로 학과 장학금을 정기적으로 모금해 기부 중이신데요. A1. 제가 재학 당시 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때의 경험은 다른 친구들과 조금 다른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조금은 가까이에서 친구와 학우들의 일상에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때 안타깝게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장학금이었습니다. 좋은 취지의 장학금들이 있었지만, 행정심사나 서류적인 부분의 이유로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선배, 후배, 동기들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를 보곤 했습니다. 그때 타 학과에는 동문회에서 재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도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4학년이 되어 졸업을 앞두고 공익근무를 할 때 주변 선배, 동기들을 한 두 명씩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동문장학금입니다. 그 이후에도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 그분들 덕분에 지금까지 동문장학금을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Q2. 독문과 동문들 모임의 구성원 소개와 어떤 식으로 교류하시는지 말씀해주세요. A2. 서로의 맡은 일이 있고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특별한 모임이 정해져 있지는 않습니다. 장학금 모금시기나 현황보고시기에 문자와 메일을 통해 연락드리는 정도로 교류하고 있어요. 구성원은 학창시절 가깝게 지내던 분들과 동문 장학금의 필요성에 공감해주신 분들이 주변사람들에게 권유해 주시면서 함께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게 되었어요. 독문과는 인원이 많지 않아 재학 당시, 학생들 모두와 알고 지낼 수 있는 환경 덕분에 지금까지 가까운 관계가 지속될 수 있었는데요. 학생회 차원에서 진행했던 동문멘토링과 홈커밍데이를 준비하면서 졸업한 선배들과도 연을 맺게 되어 이후에 동문장학금을 알리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91학번 문우식 선배님께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오충근 동문 (독어독문학 05) Q3. 기부하셨을 때, 그때의 소감과 경험은 어떠셨나요? A3. 장학금을 전달할 때마다 매번 뭔가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신청한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모두에게 혜택을 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생활을 위해 꿈을 접는 친구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 학생들의 꿈을 이뤄가는 데에 조금 더 도움이 되어주고 싶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단이나 단체도 아닌데 좋은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그분들의 마음이 전달될 수 있도록 꾸준히 계속 해나가야겠다는 책임감도 듭니다. Q4. 이 기부금이 모교 내에서 어떤 일에 어떻게 쓰이기를 바라시나요? A4. 학교에 있는 장학금제도 외에도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또 함께 참여해주고 계신 분들의 좋은 마음이 그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5. 기부에 대해 망설이고 있는 ‘한양인’들이 있다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A5. 주위를 살펴보면, 좋은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나누고 싶은 마음’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달란트’ 같은 것 아닐까요? 다만 방법을 몰라서 그 마음을 전달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쪼록 동문장학금만큼은 자발적인 모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6. 동문님에게 ‘한양’이란 무엇인가요? A6.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는데요. 단대 학생회장 시절, 축제기간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과 함께 무사히 각 학과 일일호프 준비를 마친 후, 인문대 옥상에 올라갔죠.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을 즐겁게 즐기고 있던 모습을 바라보던 장면이 저에게는 잊혀지지가 않네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저는 ‘한양’과 함께 했던 그 시간, 그 시절로 돌아갈 거에요. 제게 ‘한양’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 특별하고 소중한 공간이니까요. 연극배우로 작은 배역도 소중하고 감사하게 생각한다는 오충근 동문. 무대 위, 그곳에서 오충근 동문의 따뜻한 달란트가 더욱 더 반짝이길 그려본다. 본 내용은 한양대 소식지 '동행한대'의 2020년 봄호(17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 동행한대 2020년 봄호(17호) 보러가기

2020-04 01

[학생]ERICA 홍보대사 '사랑한대'의 사랑의실천

한양대학교 ERICA에는 학교를 사랑하는 홍보대사, 사랑한대가 빛을 내고 있다. 사랑한대는 어떤 단체일까? 그들이 사랑하는 ERICA는 어떤 모습일까?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어수선한 학교 분위기 속에서 그들이 만들어낸 기적을 함께 살펴보자 Q.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기부금 모금에 힘써주신 ‘사랑한대’를 모셨습니다. 어떻게 이 기부 행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A : 갑작스러운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인해 저희도 준비한 활동을 하지 못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코로나 19 극복을 위해 사랑한대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부금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공정하고 세심하게 단체를 선정했고 한양대학교 ERICA의 재학생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다양한 단체에 홍보를 부탁했습니다. 또한, 투명한 재정관리를 위해 매일 입금내역을 정리하여 공개하는 등 일주일의 모금 기간 동안 사랑한대 대사들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본교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재학 중에 실천할 수 있어 뿌듯했고, 이를 사랑한대가 주체가 되어 시작할 수 있어 영광스러웠습니다. 학교를 대표하여 모금을 시작하는 것에 약간의 부담감도 있었지만, 걱정과 달리 많은 한양 가족분들이 따뜻한 손길에 동참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Q. 홍보대사 사랑한대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요? A : 사랑한대는 입학팀 소속의 한양대학교 ERICA 공식 홍보대사로, 대내외적으로 우리 학교를 홍보하는 일을 합니다. 2020년, 올해는 9명의 대사가 15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랑한대는 한양대학교 ERICA를 홍보하기 위해 캠퍼스투어와 HY-LIGHT(고교생 대학 탐방 프로그램),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수시 박람회, 정시 박람회, 지역 고교 방문 행사 등을 통해 많은 중·고등학생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더불어 학교의 공식 행사 시 의전을 수행하고 있으며 재학생들과 소통하는 다양한 재학생 행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교를 대표하는 만큼 학교 홍보용 잡지나 교내 소식지, 홍보 영상의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Q. 사랑한대가 사랑하는 한양대학교 ERICA만의 자랑거리를 소개해주세요. A : 학교와 연구기관, 기업체가 연계하여 인재를 양성하는 학연산 클러스터로 유명한 한양대학교 ERICA는 우리 학교만의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교육모델인 IC-PBL을 모든 학과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IC-PBL은 기업과 연계하여 자기 주도적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학습자 중심의 수업입니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실제 기업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학교는 학생 창업을 활발히 지원하고 있습니다. 창업에 관심 있는 누구나 창업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기초 필수강의와 교양수업으로 창업 강좌를 운영하고 있어 재학생들은 이를 통해 창업 기초 지식을 함양할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창업을 시작하는 창업동아리에는 시제품 제작비, 마케팅, 홍보 비용 등과 사무실 및 미팅룸도 지원하고 있어 많은 학생이 학생 창업에 도전하고 있고 그 결과 한양대학교 ERICA는 매년 높은 창업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Q. 사랑한대에게 꼭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 사랑한대는 한양대학교 ERICA 재학생을 대표하여 우리 학교를 홍보하는 단체이기 때문에 애교심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교에 대한 큰 애교심으로 다양한 정보를 알고 있으면 홍보대사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한, 중고등 학생뿐만 아니라 교직원 선생님들, 학부모님들, 외부 인사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발표하거나 대화를 나눌 일이 많습니다. 그렇기에 친근한 태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단체 생활을 위해서 팀에서 각자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높은 책임감이 요구됩니다. 학교에 대한 애교심, 사랑한대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을 가진 분들이라면 본인이 자신 있는 것들을 어필하여 지원서를 작성하고 면접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Q. 마지막으로 20학번 새내기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을까요? A : 20학번 신입생 여러분, 힘든 수험생활을 견뎌내고 한양대학교 ERICA에 입학하기까지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코로나 19로 많은 신입생 여러분이 기대했을 캠퍼스 생활을 즐기지 못해 아쉬움이 클 것 같습니다. 사랑한대도 어서 혼란의 시기가 지나가고 벚꽃이 만개한 교내에서 20학번 새내기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능력을 의심하지 말고, 4년 동안 다양한 경험, 소중한 추억들을 쌓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사랑한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 부탁드리며, 한양대학교 ERICA에서 꿈꿔온 모든 것들을 마음껏 펼치시길 사랑한대가 응원하겠습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김동립 교수, 기부는 후배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2019년 겨울호)

▲ 김동립(기계공학 97) 기계공학부 교수 기부는 후배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김동립(기계공학 97) 기계공학부 교수 기계공학부의 독립건물이 될 기계관 설립을 위해 기계공학부 김동립 교수도 마음을 보탰다. 김동립 교수는 기계관 건립기금으로 지난 해 9월 1억 원의 기부금을 약정하면서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양대가 있었기에 현재의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김동립 교수는 자신이 받은 혜택과 사랑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기부 는 더할 나위 없이 큰 만족감을 준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저는 한양대로부터 받은 자부심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Q1. 김동립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기계관 건립기금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기계관 건립을 위한 활동은 얼마만큼 진행이 되었나요? A1. 많은 동문분들이 건립기금 캠페인에 참여해주셔서 기계관은 현재 설계 진행 중입니다. 기계공학을 선도하는 교육과 연구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기계공학부의 바람입니다. 동문회에서 기계공학부에 맞는 공간설계를 위한 큰틀은 정해졌고 현재 세부적인 사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 캠페인에 참여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하게 되셨는지요? A2. 지난 해 한양대가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으로 지정되고 제가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융합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은 오픈된 문제를 여러 가지 지식으로 해결하는 PBL(Problem-Based Learning)과 융합 교육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모여서 토의하고 협업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해외 유수의 대학들도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연구와 교육을 해나가는 추세입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에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문회에서 기계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3.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계관 건립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컸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기대가 되시나요? A3. 지난 해 2월 종료된 기계공학부 특성화사업이 있습니다. 그때 설계교육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학생들이 좋아했습니다. 뭔가 만들고 고민하는 공간이 부족했던 차에 생겨서 지금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계공학부 친구들은 수업을 듣고 바로 집이나 도서관을 가는 게 아니라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서 프로젝트를 해내기도 합니다. 저에게 찾아와 지도를 해달라고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하고요. 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기계공학부 학생들은 실체가 있는 것을 만들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져야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기계관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Q4. 한양대 기계공학부를 졸업한 동문이신데, 재학 당시 학교로부터 받은 혜택이나 기억에 남는 도움이 있으셨나요? A4. 2005년도에 학부 졸업을 한 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하루는 상담을 해주는 지도교수인 아카데미 어드바이저가 저와 상담 중에 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내 기억에 남는 우수한 학생 중 하나가 한양대 출신이었다”며 “너는 한양대를 나왔으니 앞으로 잘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격려가 유학 시절 내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학부 때 잘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성장에는 한양대라는 기둥이 있었습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 한양대에 언젠가 제가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Q5. 동문회 장학재단의 간사로도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A5. 장학재단 간사를 맡으면서 어려운 친구들의 사연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밤에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이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후배들을 보면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고 얼마 안되어 월 2만 원씩 1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우리 후배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액을 썼는데도 마음이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Q6. 기부도 여러 선택 중 하나입니다. 기부를 선택하신 뒤 현재 어떤 마음이신지 궁금합니다. A6. 저에게 기부는 그 자체로 뿌듯한 선택이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돌려줄 수 있다는 만족감이 저를 마음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양대로부터 받은 자부심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김장순 동문, 늘 생각해온 나눔이 후배들에게 빛이 되길 바라며 (2019년 겨울호)

▲ 김장순(국어국문학 79) 지아이엠시스템 대표 늘 생각해온 나눔, 후배들에게 빛이 되길 김장순(국어국문학 79) 지아이엠시스템 대표 김장순 대표는 1984년 제1기 교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2년 간 유학생활을 했다. 학비가 절실했던 시기에 한양대에서 받은 장학금은 학업을 이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때 받은 도움을 내내 잊지 않았던 그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세 번에 걸쳐 국어국문학과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앞으로도 힘들게 학업을 해나가는 후배들에게 조그만 빛이라도 되어주고 싶다는 김장순 대표와 마음 훈훈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학을 전공하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Q1. 국어국문학과에 총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셨습니다. 학과를 위해 이 같은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가 무엇인지요? A1. 저는 11남매 가운데 막내인데, 저희 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대학원도 장학조교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서 다녔는데, 마침 교비유학생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아서 첫 교비유학생으로 뽑힐 수 있었습니다. 한양대는 국내에서 최초로 교비유학생을 모집한 학교입니다. 그 장학금이 없었다면 유학도 어려웠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양대에서 받은 도움을 언젠가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기왕이면 국어국문학과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고요. Q2. 대표님의 아버님께서는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위원이자 언어학자인 무돌 김선기 선생이신데요. 1992년에는 한양대에 장서 5천여 권을 기증하시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후배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A2.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공과는 다른 분야인 LG화학에 입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결혼도 한 상태였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어려운 면이 있었죠. 저의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국어국문학과라는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 나가는 데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특히 언어학은 더욱 그렇고요. 한양대 중앙도서관에 아버지 책을 기부해 ‘무돌문고’라고 별도의 서고를 만든 것도 우리나라의 국어학발전을 위함과 동시에 한양대 후배들이 언어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위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Q3. 졸업하시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학교와 후배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간 한양대와는 어떻게 인연을 유지해 오셨는지요? A3. 국문과 교수님들 가운데 정민 교수와 이도흠 교수가 79학번 동기라 정기적으로 만나는 벗입니다. 제 아내 역시 79학번 동기고요. 만나서 학교 이야기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양대로 뭉친 인연들이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마음도 각별할 수밖에 없지요. Q4. 국어국문학과의 여러 학생들이 대표님이 기부하신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혹시 발전기금을 기부하시면서 장학금이 어떤 학생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을까요? A4. 지난 2019년 12월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과 간담회 자리가 있었습니다. 장학생 여덟 명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몸이 불편해서 어머니가 등하교를 시킨다는 학생이 기억이 납니다. 제 기부가 학생의 노력과 어머님의 수고에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참 좋은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어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의 기회가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대부분이고 언어학을 하는 친구는 점점 줄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Q5. 대표님께서 한양대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데 영향을 주신 분이 있을까요? A5. 무돌문고를 만들 때 故 이종은 교수님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종은 교수님은 제 은사이시자, 저희 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7년 아버님의 탄신 100주년 기념식도 아버님이 몸 담으셨던 서울대나 연세대가 아닌 이곳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개최했습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을 심도 있는 언어학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Q6. 대표님에게 기부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기부에 대해 계획하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A6. 살아가면서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낀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부는 평생을 살며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양대에 기부를 하기 전에도 다니는 교회에 계속 기부를 해왔고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난 3년간 회사 경상이익의 10%를 무조건 기부하는 것으로 스스로 약속했었고, 결국 실천했습니다. 앞으로도 회사의 이익을 꾸준히 상승시켜 더욱 많은 기부를 하는 것이 제 꿈이자 소망입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故 정순애 동문, 한양에 대한 사랑을 기부로 새기다. (2019년 겨울호)

▲ 故 정순애 동문 (간호학 74) 한양에 대한 사랑, 기부로 깊이 새기다 故 정순애 (간호학 74)동문 2019년 6월 13일, 故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한양대학교와 한양대학교병원에 각각 2억 원의 발전기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1978년부터 2015년 퇴직할 때까지 37년 동안 한양대학교병원에 몸 담았던 故 정순애 간호사는 암 투병 말기에 자신의 유산이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양대 간호학과에서 함께 공 부하고, 많은 시간을 한양대병원에서 함께 근무한 최정순(간호학 73) 동문과 박경복(간호 학 73) 동문을 만나 故 정순애 간호사의 한양대와 한양대병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성실하고 반듯하게 일했던 간호사 시절 故 정순애 동문은 1974년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후 졸업과 함께 바로 한양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대의 시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0여 년을 한양대와 함께 지내온 셈이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살뜰하게 살피던 효심은 간호사라는 직업적 자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최정순 동문은 아직도 기억한다.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정말 성실했어요. 옆에서도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근면하게 일했죠.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어요. 자기 자리를 떠난 적이 없을 만큼 반듯하게 일하던 사람이라 어디가 아프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2011년에 유방암이 발병하자 故 정순애 동문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고 1년 만에 복직을 했다. 동기들도 차츰 퇴직을 준비하던 시기라, 이때 같이 그만두고 쉬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도 본인이 거부했다. 자신은 병원에서 아직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방암 말기였으니까 치료는 했다고 하지만 몸 상태가 예전 같을 수가 없죠. 걱정이 되어서 저희가 퇴직을 권유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그만큼 한양대병원과 환자들에 대한 소명의식이 확고했어요.” 2015년 2월 퇴직을 하고 난 뒤, 故 정순애 동문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전에 모아온 재산을 정리하면서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한 것은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고 가장 자신답게 살아온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밴 검소함과 후배에 대한 지극한 사랑 故 정순애 동문은 외투 한 벌로 겨울을 날 정도로 평소 검소하게 생활해왔다. 박경복 동문은 한 번도 고인이 허투루 돈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부금을 결심할 때 모아둔 재산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병원과 집만 오가는 생활을 했어요. 그래도 미혼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그렇게 큰 금액을 모아뒀을 지는 몰랐어요. 저희도 나중에 알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상으로 참 착실하게 살았구나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간호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성실한 태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환자를 대할 때 차등을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이런 바른 모습은 후배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유독 따르는 후배가 많았던 것은 사람을 챙기는 것에도 마음을 잘 썼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에게도 깍듯했지만 후배들에게 마음을 많이 썼어요. 후배들이 뭐가 부족하고 뭐가 필요한지를 잘 알아챌 정도로 세심하게 살폈어요. 선배로서 자신이 뭘 도와줘야 하는지를 제때제때 아는 선배였죠. 그래서 후배들과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후배와 환자를 향한 사랑의 실천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은 故 정순애 동문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은 천직이었고, 한양대병원이 집과 같은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을 들어왔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처럼 다른 데 한 눈 파는 일 없이 수업을 들었어요. 졸업하자마자 다른 데를 볼 것도 없이 한양대병원으로 취업을 했고요. 이런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끼리 서로 애착도 강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죠. 고인도 한양대병원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자주 말했어요.”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기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옆에 있었던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에게 故 정순애 동문은 후배와 병원을 위해 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전했다. 한양대에는 간호학과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한양대병원에는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 건립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자신의 기부금이 후배들과 환자들을 위해 쓰이길 원했는데 그 뜻이 잘 전달되어 저희로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故 정순애 동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한양대에서는 현재 한창 공사 중인 간호학부 미래교육관에 ‘정순애 홀’을 조성할 예정이다. 평생 사랑을 실천해온 故 정순애 동문은 앞으로도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2019-10 18

[교수][동행한대] 이승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자원환경공학과 100주년을 바라보며 실천하는 기부(2019년 가을호)

▲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자원환경공학과 100주년을 향한 마음으로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미국에서 모교인 한양대로부터 부름을 받고 자원환경공학과로 돌아온 이승원 교수는 뿔뿔이 흩어져 수업을 받고 강의를 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원환경공학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모금사업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십시일반의 힘, 이승원 교수는 작은 힘이 모여 큰 목표를 이룬다는 진리를 이번 모금사업을 통해 더욱 깨닫고 있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올해 벌써 두 배 정도가 모인 것 같습니다. 작게 모아 크게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Q1. 몸 담고 계신 자원환경공학과에 최근 학과 발전기금을 기부하셨습니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1. 2년 전 부임해서 자원환경공학과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실과 연구실 등 학과 공간이 4개 건물에 나눠져 있어 학생과 교수, 선배와 후배 간에 서로 접촉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뭐 중요할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공간의 분리가 소통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구나.’를 많이 느꼈습니다. 또 과거에는 수업이 일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토론식의 쌍방향 수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의 강의실로 그런 수업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론식 수업보다 실용적인 교육이 필요할 때도 많고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환경도 바뀔 필요가 있지요. 발전기금을 통해 그런 공간이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2. 자원환경공학과 설립 80주년을 맞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모금사업을 진행 중인데요. 어떤 모금사업인지요? A2. 자원환경공학과는 1939년 한양대 개교와 함께 시작한 학과입니다. 지난 10월 17일, 학과 설립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많은 동문들이 모여 그 동안 해온 일들을 되돌아보고, 20년 후인 100주년 때는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원환경공학관(가칭) 건립은 20년 안에 우리가 이뤄내고 싶은 미래입니다. 이번 발전기금 모금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2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모아 자원환경공학관을 건립하고, 단기적으로는 학과를 위한 작은 공간이라도 하나하나 넓혀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3. 학과 교수님들과 동문들이 모금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현재 모금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3. 학번 별로 기부금을 모으는데 현재는 80년대 학번이 주축이 되어 모금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90년대, 2000년대 학번이 이끌어 나가겠지요. 기부 방식은 몇 년 전부터 자원환경공학과에서 운영해 오고 있는 ‘십시일반 장학금’처럼 할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을 지속적으로 기부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올해 벌써 두 배 정도가 모인 것 같습니다. 작게 모아 크게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학과장으로서 교수님들의 기부와 학생들의 재능기부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4. 기부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평소 기부나 나눔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4. 어릴 적, 저희 어머니께서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안동 시내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번 돈으로 ‘깡통장학금’을 만들어 운영하셨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부활동을 하셨지요. 연세가 드셔서 이제는 더 이상 하기 힘드셨던지 얼마 전 저에게 장학금 기부 내역 장부를 건네주시면서 그 동안 모아 놓은 돈도 모두 장학금으로 나가도록 조치를 해놨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위해 좀 더 써주지 뭘 저렇게 남을 위해 돈을 모으나’하고 서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그렇게 기부를 하고 나눔을 행하셨던 것이 제 삶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제가 모금사업을 기획하고 열심히 동참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에게 받은 긍정적인 영향 덕분이겠지요. Q5.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를 전공하고, 다시 같은 학과에서 후배를 제자로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후배(제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5. 한양대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사자처럼 용맹한 청춘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1학년 때부터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으로만 진로를 결정하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자신의 야성을 깨워 더 큰 모험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019-10 18

[동문][동행한대] 이경록 효봉물산 대표,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2019년 가을호)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봉물산 대표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방법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봉물산 대표 30년 가까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장학회를 운영할 정도로 오랫동안 나눔을 실천해 온 이경록 대표는 올해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게 되면서 한양대 선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잦아지자 마음에 계속 담아두었던 결심을 실행했다. 지난 4월, ROTC 재학생 후배들을 위한 발전기금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한 것이다. 나의 도움이 다른 도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믿음은 그를 꾸준한 기부천사로 만들고 있다. ''저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거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제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Q1.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A1. 동문회장 자리는 1년씩 돌아가며 순임제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22기 차례라 제가 동문회장이 되었습니다. ROTC 동문회는 대학 동문 모임이지만 군대 모임이기도 해서 우애와 유대감이 매우 강합니다. 매달 만나 친목을 다지는 활동을 주로 하지만 최근에는 재능기부를 하는 동문들에게 한학이나 민간요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또 동문회 집행부에서 한 달에 한 번 밥퍼 등 봉사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Q2. ROTC 발전기금 용도로 기부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2.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모교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마침 올해 ROTC 동문회장을 맡아 오랜 만에 모교를 찾게 되면서 그 마음을 실천한 것뿐이고요.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우리 동문회에서도 기부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ROTC 동문회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면서 우리 동문회가 학교와 함께 걸어간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지요. Q3. 광성장학회를 운영하시면서 소년소녀가장이나 탈북 청소년들을 돕고 있으신데요. 어떤 동기로 장학회를 시작하셨는지요? A3. 운영 중인 광성장학회는 1990년에 설립해 어느덧 29년차가 되었습니다. 부친께서는 한국전쟁 시기에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어렵고 힘든 생활 끝에 재산을 모으셨습니다. 이북5도청에서 하는 장학재단에도 관여를 하셨을 만큼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았던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아들인 제가 유지를 받들자는 마음으로 광성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대개 장학금이라고 하면 성적을 보게 마련인데, 저는 성적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우선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Q4. 기부는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기부의 가치가 궁금합니다. A4. 사실 저는 부친이 고생하시면서 생활을 잘 일궈내셨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도 돈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요즘말로 ‘금수저’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의 가치를 일찍 깨달은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사회가 양극화 되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거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제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Q5. 오랜 만에 모교를 방문하면서 한양대의 변화를 한 눈에 보셨을 텐데요. 기부자로서 한양대에 전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A5. 제가 80학번으로 입학할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의 한양대 위상은 너무나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특히 공과대학의 위상은 국내 최고 수준이기도 하죠.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 같은 한양대의 성장이 졸업생에게는 축복과 같지요. 졸업생 가운데 한 명으로서 학교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Q6. ROTC 발전기금이나 장학회 장학금 등 어려운 학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학업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6. 저는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가락도 각각 길이가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그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길이가 짧다고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고 길이가 길다고 더 잘난 존재도 아닙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실감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경험이라고 믿으면서 현재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019-10 18

[동문][동행한대] 김성윤내과의원의 김성윤 원장, 한양의대의 더 큰 발전을 바라다 (2019년 가을호) (1)

▲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한양 의대, 더 큰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국내 최초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한양대 병원에 설립했던 김성윤 원장은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의과대학의 발전과 함께한 동문이다. 2013년 익명으로 첫 기부를 시작해 조용하게 기부를 이어오던 김성윤 원장이 올해 1월 3억 원이라는 큰 기부를 또 한 번 실천했다. 한양대 의과대학이 지난 50년 간 국내 의료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만큼, 앞으로도 더욱 큰 걸음으로 나아가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번 기부에 담았다. 모교에 대한 지극한 애정, 김성윤 원장은 자신의 기부를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일뿐이라 말한다. ''올해 5월 24일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는데,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어요. 후배들이 좋은 상황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Q1. 올해 1월 의과대학 발전기금으로 3억 원을 기부하셨는데요. 이렇게 큰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한양대의 교훈이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교훈으로만 여기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한양대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제 직장이었기도 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20여 년 전, 병원을 그만 둘 때는 ‘다시는 한양대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나는 한양대에 서운함이 많았는데 한양대는 여전히 날 잊지 않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학교로부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고, 저도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기부를 했습니다. Q2. 2015년에 바이오메디컬센터 건립기금, 2016년에 의과대학 발전기금 등 꾸준히 기부를 해오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2013년에 하신 첫 기부는 1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익명으로 하셨습니다. 익명을 원하셨던 이유가 있으신지요? A2. 1975년 한양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고 레지던트까지 마친 후, 198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류마티스는 정형외과의 영역이었지요. 1989년 한양대 병원에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열었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떠나긴 했지만 병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계속 있었지요. 그래서 류마티스 전문병원에 힘을 보태고 싶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고 조용히 기부를 했어요. 이번에 다 드러나 버렸네요.(웃음) Q3. 기부와 나눔에 대한 원장님의 평소 생각도 궁금합니다. A3. 미국 병원에 있을 때, 한쪽 벽에 ‘밀리언달러 트리’라는 게 있었어요. 병원에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나무 잎사귀에 새겼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이렇게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의사라는 직업은 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부나 나눔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보면 재능이나 노력 봉사 등 다양한 기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발전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Q4. 지난 5월 의과대학 내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습니다. 직접 한양대에서 강의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공간을 후원해주신 소감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4.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김성윤 LAB도 그렇고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얼굴과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제가 아들에게 그랬죠. “나중에 나 죽거든 따로 묘지나 묘비를 세우지 말고 여기 와서 묵념을 해라.”고요. 이곳이야말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니까요. Q5. 한양대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후배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A5. 후배나 제자들에게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입학한 해가 1969년입니다. 그 시절은 제게 가장 힘든 시기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힘들면서도 좋은 이유는 가능성 때문이지요. 제가 나아가려고 하는 꿈에 도달하려면 힘들게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꿈이 있었으니까 너무 행복한 시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지금이 힘들지만 가장 좋은 시기다.”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Q6. 2000년에는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는데요. 이처럼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학교를 빛내는 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 원장님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A6. 한양대 병원에 처음으로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세운 공이 인정되어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받고, 이희호 여사님을 오래 치료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설립할 때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서울대 병원도 세브란스 병원도 하지 못한 게 뭘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길이었지요. 미국을 건너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새롭게 개척한다는 것은 길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젊은 시절, 그런 오기와 마음가짐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그러한 도전을 한양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성과였지요. Q7. 벌써 한양대에 네 번째 기부를 하셨는데요. 기부를 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7. 기부는 처음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하고 나면 계속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돈이 생기면 ‘뭘 더 사야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부를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변화했어요. 이런 것도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자세의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가지 변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장려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가 주는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모교의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니만큼, 기부를 하고 난 후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우리 세대들이 더 나서야지요. Q8. 한양대 의과대학에 중요한 획을 그으신 한 분으로서, 앞으로 한양대 의대가 어떻게 발전해나가기를 바라시는지요? A8. 지난해가 한양대 의과대학이 생긴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지닌 의과대학이 국내에 몇 없지요. 지난 5월 참석한 ‘의대 5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한양대 의과대학이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을 목표로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양대 의과대학에는 훌륭한 교수진과 의료진이 많으니,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뒷받침이 되어 그 목표에 꼭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2019-09 05

[학생][HY ERICA] "노래로 건네는 사랑의 손길" 최아임 학생

한양대학교 최아임 학생(실용음악과 보컬 전공 18)은 지난 4월 23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진행된 4·27 남북 공동선언 1주년을 기념한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32대 1의 예선 경쟁을 통과하며 본선 무대에서 ‘라구요’를 열창한 최 학생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 날 경연은 신청한 485팀 중 65팀이 2차 예선을 치러 최종 15팀이 본선 무대에 올랐고 최 학생은 강산에의 ‘라구요’를 열창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수상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기에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최 학생은 “전에 나갔던 대회들과 달리 즐긴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했다”며 “워낙 실력이 출중한 참가자가 많아 수상까지는 기대를 못 했는데 좋은 추억을 남기고 큰 상까지 받게 돼 영광이다”라고 전했다.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라구요'를 열창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최아임 학생(실용음악과 18) 예선부터 본선까지의 과정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전국노래자랑’편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최아임 학생은 드라마에서 본 모습과 같은 생동감과 재미를 느꼈다. 경쟁이라기보다는 세대를 불문하고 함께 즐기는 화합의 장에 가까웠다. 음악을 즐기는 하나의 공동체로 모여 각자의 끼를 발산하는 자리였다. 최 학생은 다른 참가자들이 준비한 무대와 심사위원들의 재치있는 언변 덕분에 긴 대기시간을 즐겁게 보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참가자들 무대를 봤는데, 모두 행복해 보였다”며 ”상금에 연연하거나 상을 타겠다는 욕심을 품으면 그 순간의 가치를 느낄 수 없듯이 나 역시 경쟁하기보다는 즐기려고 했다“고 말했다. 최 학생은 자신의 친할머니를 매주 전국노래자랑을 본방사수하는 애청자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전국노래자랑이 파주시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친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참가를 결심했다. 취지에 맞는 뜻깊은 무대를 준비하고 싶다는 열정으로 강산에의 ‘라구요’를 택했다. 음악인으로서 그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녀는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산가족의 아픔을 다룬 강산에의 ‘라구요’를 선곡했다”며 “시간 날 때마다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이동하는 아버지 차 안에서도 엄청 많이 불렀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수상 소식에 가족들 모두 기뻐했다. 최 학생은 최우수상 메달을 받아 가장 기뻐하실 친할머니께 가져다드렸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위해 참가했던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최아임 학생. 그녀는 기꺼이 모든 상금을 기부하는 큰 결정을 내렸다. 공직에 몸담아 파주시의 발전을 위해 일하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상금을 쓰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다. 상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불우이웃에게 기부됐다. ‘경쟁’이라는 단어는 우리를 치열하게 만든다. 치열해진 만큼 결과에 대한 야심도 커진다. 하지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시간 자체가 아닐까? 이번 경험을 통해 최아임 학생이 얻은 것은 명예도 상금도 아닌 행복한 경험이었다. 자신의 발전뿐 아니라 지역 사회의 발전에까지 기여한 최아임 학생. 최 학생은 앞으로 어떤 가수를 꿈꾸고 있을까. 그녀는 “전국노래자랑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 경험을 계기로 차근차근 성장하고 싶다”고 전했다. 덧붙여 “좋은 음악을 오래 할 수 있는 단단한 가수를 목표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누군가가 힘들고 지칠 때 잔잔한 위로가 되고 때론 버팀목이 되는 그런 존재로 남고 싶다”고 말했다. ▲ KBS 전국노래자랑 1945회(경기도 파주시 편)에 출연한 최아임 학생 (출처:KBS 전국노래자랑 공식 사이트) ** 최아임 학생이 출연한 해당 방송은 KBS 전국노래자랑 공식 사이트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 (링크 / 23분부터) * 본 내용은 ERICA캠퍼스 소식지 'HY ERICA' 2019년 가을호 게재된 인터뷰를 일부 수정하여 게시한 것입니다.

2019-07 15

[동문][동행한대] 박화영 인코코 회장, 기부는 당연한 사회적 의무입니다 (2019년 여름호)

▲ 박화영(성악 卒) (주)인코코 회장 기부는 당연한 사회적 의무입니다. 박화영(성악 卒) (주)인코코 회장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주)인코코 박화영 회장은 지난 해 11월 모교인 한양대에 20억 원의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했다. 박화영 회장이 기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는 확고하다. 기부는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사회적 의무 중 하나라는 것. 이번 기부는 거기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앞으로 후배들의 꿈을 응원하고, 모교 성장에 함께하겠다는 시작의 의미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기부를 하고 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 제가 졸업한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의미이지요.’’ Q1. 미국에 거주하시면서도 한국의 모교인 한양대에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하셨습니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몇 해 전, 뉴욕대학을 다니는 딸에게 들은 말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의 장학기금이 너무 적다고 말해 궁금해서 어느 정도냐고 물었는데 제가 듣기에 상당한 금액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버드 같은 대학은 장학기금의 규모가 훨씬 더 크더군요. 미국의 많은 대학들은 기부금을 펀드로 운영하며 그 돈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한 내용을 알고 나니, 문득 모교인 한양대 생각이 났습니다. ‘한양대에는 어느 정도의 기금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죠. 학교의 운영은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기부금이 꾸준히 들어와야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능하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임덕호 전 총장님과 김종량 이사장님이 미국 동문 행사에 왔다가 저희 회사를 방문해주셨고, 이런 계기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Q2. 평소 미국에서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나눔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2. 미국 생활 초기에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의료보험조차 없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청구된 치료비는 가난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병원에 솔직하게 치료비를 낼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처지를 듣던 병원 담당자가 저에게 서류를 보내더니 거기에 저희 가족의 경제적 상황을 쓰라고 하더군요. 2주가 지난 뒤, 병원에서 운영하는 자선기금을 통해 어머니 치료비가 감면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실 미국은 세금 등 제도적인 부분에서부터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기부문화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 탄탄하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자연스럽게 기부를 당연한 사회적 의무라 생각하고 시작했고요. 뿌리교육재단에 박화영 장학금을 만들어서 매년 5명의 한인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힘든 가정을 돕는 패밀리터치에 기부를 하는 등 10년 전부터 기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기부는 혜택을 받은 사람이 다시 기부를 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그 선순환의 힘을 믿어야 기부를 통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Q3. 2014년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올해 한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으셨는데요. 모교와의 꾸준한 인연이 회장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A3. 지난 35년 동안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면서 한양대와의 인연은 거의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미국에서 총장님과 이사장님을 만나면서 한양대와 인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동문들과 교류도 많이 생겼지요. 학교에서 준 자랑스러운 한양인상과 명예공학박사 학위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격려로 여기고,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기부를 통해 한양대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기부를 하고 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 제가 졸업한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의미이지요. Q4. 2017년 한양글로벌인재 특강을 통해 후배들을 만나셨습니다. 당시 강연에서 하셨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을까요? A4.특강 제목이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음악으로 성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막상 미국에서 공부해보니 이 땅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언어적 소통도 힘들었지만 문화적 차이가 더 큰 벽이었습니다. ‘나에겐 아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구나.’하고 절망도 했지요. 음악 공부만 했지 경제적인 공부나 활동을 해본 적 없던 제가 어떻게 가족을 위해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나 막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에 없던 제품인 ‘붙이는 매니큐어’라는 아이템을 생각해냈고,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학 공부까지 하게 되었죠. 그런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좌절은 가치 있는 좌절이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패와 좌절이 없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00% 승률을 가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죠.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좌절을 그대로 남기면 ‘손실’이 됩니다. 대신 실수라고 생각하고 극복하면 ‘자산’이 되지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좌절을 자산으로 만듭니다. 모든 건 자기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죠. 미래를 꿈꾸는 우리 후배들이 좌절에 굴복하지 말고 극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건넨 말이었습니다. Q5. 모교에 전달한 회장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5. 음악 전공자이면서도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학자처럼 기계를 제작하고 특허를 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처음에는 제 기부금이 공학도에게 쓰이길 원했지요. 생각이 바뀐 건 지난 2월, 한양대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음악대학을 오랜만에 들러보고는 마음이 찡했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시설을 갖춘 연습실이나 콘서트홀이 없이 공부하는 게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 음악대학에 필요한 건물을 지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요. 음악대학 동문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시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하면 더 아름다운 기부가 될 테니까요. Q6. 마지막으로 기부를 망설이시는 다른 잠재 기부자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6. 많은 분들이 기부는 돈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부는 왠지 큰 금액을 해야 한다고 여기지요. 하지만 기부는 준비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둥도 필요하고 못도 필요하지요. 기둥을 기부해야 기부가 아니라 못을 기부해도 기부를 한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돈이 없어 기부를 못하고 돈을 많이 벌면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기부를 할 형편이 안 된다는 생각 대신 내 형편만큼 기부를 하면 됩니다. 백 원이든 천 원이든 자신의 상황에 따라 기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부가 모여 계속 선순환이 되면,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미래를 만들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