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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 06 중요기사

[동문]김신비 동문, 한양대학교 최초 외교관 선발시험 합격 (2)

매년 10월이면 한양대학교 캠퍼스에서 5급 기술직 공무원 합격자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특히 올해는 2차 합격자를 18명 배출하면서 전국 1위로 한양대의 위상을 높였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기술직이 아닌 다른 분야의 합격자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김신비(정치외교학과 12) 동문이 외무고시 폐지 이후 한양대 최초로 외교관 선발시험에 합격했다. 외교관 선발시험은 지난 2013년 외무고시 폐지 이후 신설된 자격시험이다. 외교관 선발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공인된 영어성적 ▲한국사 2급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제2외국어 시험 성적 요건을 갖춰야 하며 총 3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1차 시험은 선택형 필기시험으로 헌법과 공직적격시험(PSAT)으로 이뤄져 있다. 2차 시험은 통합논술 시험인 학제통합논술Ⅰ과 전공 평가시험인 학제통합논술Ⅱ을 통해 과목별 지식과 소양을 테스트한다. 그 뒤 3차 집단심화토의 면접과 개인발표 및 면접을 통해 최종합격자를 선정한다. 최종합격자는 국립외교원에 입교해 1년의 정규과정을 거친 후 외교관으로 임용된다. 올해는 1192명 중 41명의 최종합격자가 선발됐다. ▲김신비(정치외교학과 12) 동문이 수험 기간과 한양대 외교원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Q : 왜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나요? A : 선화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클래식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당시에 서양 클래식에 한국적인 느낌을 가미한 곡을 쓰려고 했었죠.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덕분에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음악을 더 공부하기보다는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교환학생 경험이 저에게 확신을 줬어요. 저는 한국이 선진국이고 대부분의 외국인이 한국을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북한에서 왔니?, 남한에서 왔니?”였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한국을 알리고 싶어 외교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Q :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요? A : 많은 수험생분들이 공감하실 부분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많은 이해와 보살핌이 있었지만 결국 혼자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점은 하루에 12시간 넘게 공부만 하는데, 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어요. 운도 필요한 시험이기 때문에 “헛된 공부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한양대 국립외교원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서로를 다독이며 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Q : 국립외교원반에서 큰 도움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국립외교원반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A :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을 때, 시험 관련 정보를 몰라서 막막했는데 김성수 정치외교학과 교수님께서 국립외교원반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입반을 위해서는 외교관 1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고 외교원반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1차 PSAT 모의시험과 면접을 봐야 합니다. 아마 외교원반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거예요. 외교원반은 지원이 많습니다. 5급 공무원 강의 수강료가 매우 비싼 편인데, 이를 보조해줍니다. 재학생과 졸업생 간에 차이는 있지만 열람실과 기숙사도 지원해줍니다. 매달 모의고사를 보기 때문에 저의 위치와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면학 분위기도 좋았고, 대부분 같은 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견제하기보다는 서로 도움을 많이 주는 분위기입니다. Q : 바로 국립외교원에 입교하시는 건가요? 어떤 외교관이 되고 싶나요? A : 오는 12월 말쯤에 입교하고 1년 동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52주 과정의 교육을 받습니다. 영어와 제2외국어도 공부해요. 그다음 해에 임용되면 광화문 외교부 청사에서 근무합니다. 외교관는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 저는 의전(儀典)과 경제 분야의 외교를 담당하고 싶습니다. 국빈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행사를 관리하는 분야인 의전은 우리나라를 알릴 기회가 많아요. 행사 도중에 돌발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분야기도 합니다.제가 갈고 닦은 위기 대처능력을 활용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수입수출 의존도가 높아서 경제 외교가 어떻게 흘러가느냐가 일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국익을 위해 일하고 싶기 때문에 양자외교, 다자외교 모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 마지막으로 합격하신 소감과 앞으로의 다짐 부탁드립니다 A :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쁘기도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믿고 지켜봐 주신 부모님, 많은 지지를 준 친구들과 큰 도움을 준 외교원반. 이분들이 없었다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외교원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조금이라도 외교원반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모범이 되는 외교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글/ 윤석현 기자 aladin@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6-04 07

[동문]우크라이나 대사의 삶... 헌신 그리고 사명

안보(Peace), 번영(Prosperity), 국가 브랜드(Prestige) 그리고 자국민 보호(Protection). 이를 합쳐 ‘4P’라 한다. 4P는 유능한 외교관의 자질로 불린다. 국가 안보와 번영을 위해 헌신하고, 국가 브랜드 제고에 힘쓰며, 해외의 자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것. 한국의 유능한 외교 인력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주 우크라이나 대사 이양구 동문(정치외교학과 79)이 지난 3월 21일 한양대학교에 방문했다. 32년 째 외교관 생활을 이어온 이양구 대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회의 땅, 우크라이나 대사로 임명되다 이양구 동문은 지난 2월 29일 주 우크라이나 대사로 임명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사 임명 이후 우리나라와 우크라이나 간 관계 증진에 특히 공을 쏟고 있는 이 동문. 이번에 우리나라를 방문한 것도 양국 간 교류의 중요성을 몸소 강조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다. 재외공관장회의 참석차 잠시 귀국한 이 동문은 지난 3월 16일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진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관련 정부 인사와 언론, 연구소와 대학 등을 차차 방문할 예정. 그 일환으로 지난 3월 21일 우리대학 이영무 총장과 만나 우크라이나와 한양대학교 간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소개했다. ▲ 이양구 동문(정치외교학과 79)이 지난 3월 21일 한양대를 방문해 한국과 우크라이나 간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출처 : 한양대학교 미디어전략센터) 우크라이나는 어떤 곳일까. 많은 이들은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인 우크라이나를 ‘흙 속에 감춰진 보석’이라고 부른다. 이 동문의 설명도 이와 같다. “우크라이나를 이해하면 할수록 상당한 가능성이 있는 기회의 땅이자, 한국에 중요한 가치를 지닌 지역임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이 동문은 특히 항공우주산업과 농업, 물류 산업을 핵심 협력 분야로 꼽았다. 우크라이나는 우주선 발사체를 자체적으로 만드는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며, 유럽의 ‘빵 바구니’로 불리는 곡창 지대다. 게다가 흑해로 나아가는 육해로를 모두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넓은 영토에다 우수한 과학기술과 문화 자원, 인적 자원을 모두 갖추고 있어요. 이 기회를 잘 활용하면 우리에게는 ‘제2의 베트남’이나 ‘제2의 러시아’가 될 수 있는 지역입니다.” 러시아를 향한 동경에서 시작된 꿈 ▲ 이양구 동문이 지난 2월 29일 주 우크라이나 대 사로 임명됐다. (출처 : 국제뉴스) 이 동문의 경력을 살펴보면, 러시아에 오랜 기간 머물렀단 사실이 눈에 띈다. 주 러시아 대사관 2등 서기관(1993-1996), 주 러시아 대사관 1등 서기관(1998-2002), 러시아 CIS과 과장(2003-2004), 그리고 주 블라디보스톡 총영사(2011) 등을 지낸 것. 이 동문은 가슴 한 구석에 러시아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동문이 어렸을 때는 구 소련에 관한 영화가 자주 방영됐다고 한다. 때문에 이 동문의 머리 속에는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됐다. 그러나 이 동문이 자라면서 읽은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등 러시아 대 문호들의 고전은 러시아에 대한 인상을 바꿨다. 그들의 작품에서 받은 감동은 기존의 부정적인 이미지와 충돌하며 호기심을 자아냈다. ‘러시아는 어떤 나라일까.’ 이 동문을 외교관의 길로 이끈 원동력은 어릴 적부터 품었던 러시아를 향한 동경이었다. 이 동문은 1984년부터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지금까지 러시아와 미국, 프랑스, 카자흐스탄 등을 거쳤다. 30년이 넘는 외교관 생활 중 가장 잊지 못할 기억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 동문은 “러시아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것”이라 답했다. “1993년의 러시아는 정말 최악의 암흑기였어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실탄과 대포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던 곳이었죠. 러시아 역사에서는 ‘전환기’ 였습니다. 이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생각만으로 여전히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외국어는 기본, 국가에 대한 헌신은 필수 마지막으로 이 동문이 생각하는 외교관의 자질을 물었다. 망설임 없이 이 동문은 ‘외국어’와 ‘국가에 대한 헌신’이라고 말했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알리고 지키는 일을 하려면 외국어는 기본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외교관 생활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에 더해 외교관은 최전방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국가에 헌신하는 직업이라 생각합니다. 외교관이라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주 우크라이나 대사로 새롭게 시작한 이 동문. 그에게는 남은 기간 동안 이루고 싶은 세 가지 포부가 있다. 먼저,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급 인사들과의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와 우크라이나 간 협력 사업을 준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우크라이나까지 직항으로 움직일 수 있는 육로와 해로를 개척하는 것.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을 우크라이나로 진출시켜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것이다. 노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의 안위를 생각하는 이 동문. 자랑스런 한국인의 초상이다. ▲ 국가를 향해 헌신하는 이양구 동문은 우리나라에서 꼭 필요한 외교 인력이다. (출처: 한양대학교 미디어전략센터) 글/ 박윤정 기자 dbswjd602@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