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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 19

[교수]이상욱 철학과 교수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뒷이야기 (1)

과학철학자 이상욱 철학과 교수가 지난 5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차클)’에 출연해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몰랐던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이상욱 교수를 만나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가 필요해 이상욱 교수는 한양대학교 기초필수 교양과목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강좌를 만든 장본인이다. 과학기술 기본사회인 21세기에서는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 탐색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욱 교수가 방송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도 이와 같다. ▲ 이상욱 교수는 "과학철학은 과학적으로 복잡한 내용이 범람하는 21세기에 꼭 필요하다"며 "21세기 시민들이 꼭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은 사회적 활동이다. 부자가 모든 빌딩을 다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천재도 과학이라는 학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작다. “방송에서 다뤘던 ‘우리가 몰랐던 천재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천재가 최고라는 말이 아닙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자가 함께 해야 해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가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죠. 혼자 이뤄낼 수는 없었거든요.” 이상욱 교수가 말하는 철학 이상욱 교수는 이번 방송 출연을 통해 철학에 대한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바랐다. “철학은 과거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철학사죠. 현 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과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보다 현 시대에 주어진 문제를 철학을 통해 풀어나가는게 더 중요합니다.” 철학과를 취업률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대학교에서 배운 학문을 졸업해서 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라며 “대학은 전반적으로 능력을 키우는 곳이고 사회가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학이 실용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과학철학으로 준비하는 미래 한국과학철학회 편집인이자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 위원회 위원인 이상욱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책을 내거나 현대 과학기술을 연구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술적인 연구가 정책에 바로 적용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유엔기구 내 다양한 국가들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이상욱 교수는 앞으로 과학기술을 연구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 교수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과목을 잘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과학기술 기반 사회가 어떻게 인문학적인 쟁점이 되는지 공부하는 기회가 되고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윤리적 고려를 통해 사회적 지원을 통해 지속 가능하게 과학 연구를 할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7-05 12

[동문][한양피플] 친구에서 부부로, 부모에게서 자녀에게로

부부는 한양대 캠퍼스에서 만났다. 여느 청춘들이 그렇듯 이곳에서 웃고 공부하고 사랑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가정을 꾸려 올해로 25년이 됐다. 어느덧 아이가 자라 부모의 추억이 담긴 그 자리에서 자신의 청춘을 그려가고 있다. 부부이자 동문이고 선배이자 후배인 최종호·성주은 부부와 딸 최정윤 학생의 이야기다. 글. 오인숙 / 사진. 안홍범 ▲최종호·성주은(철학과 86) 동문 부부 30년의 시간을 건너 캠퍼스 커플이었던 최종호·성주은 부부는 친구에서 연인으로, 연인에서 부부로 인연을 맺었다. 30년 전, 재학 시절의 한양대는 부부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최종호 씨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교내 중창단 동아리 ‘징검다리’다. 동아리방이 없어 강의실을 전전하며 연습하던 그 시절이 그에겐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아 있다.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징검다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만큼 한양대에 대한 자긍심도 상당하다.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징검다리가 일정 부분 학교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졸업 후에도 누구보다 더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죠.” 성주은 씨는 가파른 진사로의 모습을 먼저 떠올렸다. “지금은 지하철역에서 학교로 바로 이어지지만, 저희 때는 등교하기가 만만치 않았어요. 가파른 진사로를 따라 올라가면, 그 뒤에 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인문대가 나왔어요. 강의가 없거나 쉬는 시간이면 인문대 화단 앞에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놀았죠. 그곳이 만남의 장소였어요. 남편도 그 자리에서 자주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곤 했어요.” 2대를 이어준 한양 1992년에 부부가 된 이들은 화목한 가정을 꾸렸고, 아이 둘을 낳았다. 부모의 바람이었는지 혹은 영향이었는지 딸 최정윤 학생이 지난 2014년에 한양대에 입학했다. 딸의 합격 소식에 부부는 뛸 듯이 기뻤다. 사실 부부가 딸의 입학을 이렇게 반긴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최정윤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까지 가수를 꿈꾸며 보컬과 재즈 피아노 등 음악을 공부했다. 그런데 3학년을 앞두고 슬럼프가 찾아와 음악 공부를 중단했고, 대학 진학을 위해 1년 남짓 공부에 매달렸다. 그동안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게는 아주 큰 도전이었다. “힘들었지만 제 인생의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려가던 즐거운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양대를 선택한 데는 부모님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한때나마 엄마의 마음을 졸이던 딸은 이제 성주은 씨의 말을 빌면 ‘거침없이 멋지게’ 살고 있다. 최정윤 학생은 입학 후 단과대 회장, 유엔 대학생 홍보대사, 세이브더칠드런 해외 인턴, 아시아나 플라잉마케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많은 경험을 쌓고 있다.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며 최종호 씨는 “저희 부부가 학창 시절 하지 못한 것들을 딸이 지금 다 하고 있다”며 대견해 했다. 최정윤 학생은 현재 교환학생으로 영국 리즈대학교에 가 있다. 학기를 마치면 프랑스와 그리스 등을 여행하고 7월 초에 한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부모님은 저를 믿어주시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주시는 멋진 분들이에요. 도전을 즐기는 저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셔서 항상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추억을 공유하다 ▲ 어머니 성주은 씨(왼쪽)와 딸 최정윤 학생 부부와 자녀가 모두 동문인 이들에게 한양대는 어떤 의미일까. 최종호 씨는 “예전에 학교에 잠깐 들른 적이 있는데, 내가 이곳에서 지낸 시간을 아이가 다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며 “한양대에서 아내를 만났고, 딸도 이곳을 다니고 있으니 제 인생에서 한양대를 빼면 마음 둘 곳이 없어진다”며 웃었다. 최정윤 학생에게 한양대는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추억이자 20대의 시작”이다. “부모님과 같은 대학교에 다녀서 좋은 것 중의 하나는 학교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거예요. 가끔 30년 전과 현재의 왕십리를 비교하면서 사라지거나 새로 생긴 곳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신기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꽃다운 20대를 상상하면서 같은 곳에서 같은 나이의 제가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하고요.” 딸이 자랑스러운 한양인으로서 세계를 무대로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치길 바라는 최종호·성주은 부부. 그리고 부모의 기대 이상으로 멋지게 성장하고 있는 최정윤 학생. 한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들은 오늘도 행복한 꿈을 꾼다. 사랑한대 2017년 5-6월호 이북 보기

2016-09 21

[교수]사서(四書) 완역, 24년간의 결실 맺다

1992년 여름, 우리대학 부총장을 역임했던 고(故) 김병채 교수와 대만유학 1세대 동료 학자들이 모여 ‘동양고전연구회’를 설립했다. 이들은 동양철학의 기본서인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의 온전한 번역을 시작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 나가고자 했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24년, 지난 8월 드디어 완역본이 출간됐다. 김병채 교수의 권유로 2009년부터 번역작업에 참여해 지난 8년 간 <대학>, <중용>의 수정 작업과 <맹자>의 번역 작업에 참여한 김태용 교수(철학과)에게 25년 간의 완역 작업에 얽힌 이야기를 들었다. ▲김태용 교수(철학과)를 지난 9월 6일 연구실에서 만났다. 김태용 교수는 "사서에 대한 책임감이 나를 번역 작업으로 이끌었다"고 했다. 전공 분야 아니라 망설였지만 책임감에 참여해 김태용 교수는 중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자리를 잡아가던 지난 2009년 고(故) 김병채 교수로부터 번역 작업에 참여할 것을 제안 받았다. 노자(老子)를 전공한 김 교수는 전공 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참여를 망설였다고 했다. “<중용>으로 학위논문을 쓰긴 했지만 제 주전공이 아닌 원전을 번역한다는 것, 특히 유가의 가장 중요한 서적인 사서를 번역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어요.” 그런 그를 번역 작업으로 이끈 것은 사서에 대한 ‘책임감’이다. “모든 동양철학자들의 입문서가 사서예요. 그 책들을 통해 처음으로 한문을 익히고 동양철학의 기본 관념을 배우죠.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사서의 목소리를 ‘원의(原意)’ 대로 전달해 지금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하겠다는 책임감은 김 교수를 동양고전연구회로 이끌었다. 김 교수가 참여할 당시 동양고전연구회는 이미 10년 간의 <논어> 번역을 마친 후 2002년 출간하고, <대학>과 <중용>의 번역 작업을 마무리하던 시점이었다. 김 교수는 <대학>과 <중용>의 수정을 맡고, <맹자>의 초역과 완역에 참여하게 된다. 여러 학자가 모여 정확한 번역에 뜻을 모으는 것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여러 세대, 여러 대학에서 모인 학자들이니 의견 차도 많았죠. '모두가 해석에 동의할 때까지'라는 원칙 아래 어떨 때는 7-8시간씩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토론을 통해 합의를 도출해도 다른 작업이 있었다. “의미에 대해 합의한 이후에는 적절한 표현을 찾는 과정이 뒤따랐어요. 옛 문헌을 지금에 옮기다보니 표현을 찾기가 쉽지 않았죠.” 이처럼 여러 단계의 장고를 거쳐 <대학>과 <중용>은 도합 8년, <맹자>는 3년이 걸려서야 세상에 나왔다. ▲사서는 <논어> 번역에 10년, <대학>과 <중용>에 8년, <맹자>의 번역에 3년이 걸렸다. 이후 검토와 수정 작업까지 24년이 걸려서야 완역됐다. 사서(四書) 번역의 방향성과 원칙 동양고전연구회는 기존의 사서 번역과 어떤 차이를 두고 작업했을까. 평균 5-6년이란 긴 시간을 번역에 힘쓴 데는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원의(原意)’에 가깝게 쓰는 것. “우리나라에서 나온 사서의 번역본은 주희(朱熹)의 주석본에 기초하고 있어요. 하지만 주희는 사서가 집필된 시기와 800-900년 정도의 거리가 있는 학자입니다." 동양고전연구회는 주희의 해석을 벗어나 사서가 집필될 당시에 맡는 의미를 밝히고자 했다. “사서가 집필됐던 당대부터 나온 모든 주석본을 참고하며 썼습니다. 작업이 더딜 수 밖에 없었죠." ‘현대적 언어로의 번역’에도 공을 들였다. “동양고전연구회의 취지는 ‘동양고전에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을 찾기 위함’이에요. 때문에 현재의 독자들이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김 교수를 비롯한 동양고전연구회 학자들은 지난 2014년 번역이 일단락 됐음에도 불구, 출판사 측과 합의해 2년 간의 수정 작업을 추가로 거쳤다. “당시에는 뜸만 들이고 출판은 안 한다고 출판사 내부에서 불만이 많았어요. 결과물을 보니 그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었음이 느껴집니다." 마지막은 ‘이름을 건다’는 책임감. “학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쓴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예요. 자신이 쓴 것에 대해 모두 책임을 지겠다는 거니까요." 우리대학 교수진뿐만 아니라 강원대, 연세대 등 여러 대학의 학자가 모여 자존심을 걸고 작업했다. “'지(知)'라는 글자 하나를 해석할 때도 도덕을 뜻하는 지(知), 앎을 뜻하는 지(知) 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기 때문에 앞뒤가 맞을 수 있도록 조율하고 통일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했어요.” 결국 ‘원의의 탐구’, ‘현대적 해석’, ‘학자의 명예’라는 3가지 요소는 번역 과정을 지난하게 했던 동시에 더 ‘완전한’ 번역본이 만들어질 수 있게끔한 원동력이었다. 사서(四書), 현대적 감각으로 다가설 수 있길 김 교수는 동양철학이 생소하다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의 근대화 이후 들어온 서양철학의 역사는 기껏해야 100년이지만 동양철학은 최소 500년 이상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어른에게는 예의를 갖춘다’, ‘친구 사이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와 같은 것들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에요. 동양철학은 우리 안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해하기 쉬울겁니다.” 이번 사서의 완역이 우리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는 김 교수는 <논어>의 한 구절을 전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지식을 넓히고 쌓는 것’을 의미해요. 하지만 정심성의(正心誠意), 즉, 바르게 마음을 가다듬고 그 지식을 사용해야만 세상을 아름답게 할 수 있을 거예요. 사서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바른 마음과 성실한 뜻을 찾아보길 바랍니다." ▲김태용 교수는 지식을 넓힌단 의미의 '격물치지(格物致知)'와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의미의 '정심성의(正心誠意)'를 강조하며 "학문의 길 또한 올바른 마음을 갖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말한다. 글/박성배 기자 ppang1120@hanyang.ac.kr 사진/문하나 기자 onlyoneluna@hanyang.ac.kr

2014-09 03

[동문]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어린이와 더불어 어른도 감동시킬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싶어"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사회가 온다면 어떤 모습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하트’라는 기계를 가슴에 달아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는 미래 사회 모습을 그린 동화 <감정조절기 하트>. 김보름 동문(철학.04)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201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며 작가의 길에 오른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철학을 즐겼던 여대생, 동화(童話)를 만나다 조용히 사색을 즐기는 학생이었다는 김 동문. 김 동문은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았고, 그것을 글로 옮겼다. 일기든 평론이든 꾸준히 글을 써 왔지만 작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헤르만 헤세를 좋아했고, 다독상을 받을 정도로 책을 많이 읽었어요. 전공 서적이든 무엇이든요. 헤세의 작품 <싯다르타> 평론을 써서 ‘한대문예상’에 당선된 적도 있고요.” 김 동문은 ‘흔히들 예상할 수 있는’ 철학과 학생이었단다. “철학과 학생들이라면 책만 많이 읽을 것 같고, 현실적인 고민은 하지 않을 거란 편견들이 있잖아요. 사실 다 같은 대학생인데. 철학과 학생들도 똑같이 현실적인 취업 고민을 많이 해요. 저는 좀 달랐지만요.” 김 동문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을 뒀다. “취업 문제 보다 ’나는 누구일까, 나는 왜 이럴까’ 하는 것들을 많이 생각했죠.” 철학으로 석사과정까지 공부하는 긴 시간 동안 그는 홀로 방황했다. 복잡한 심리적 고민들 가운데 동화를 만났다. “사회의 어떤 단면을 다루는 여타 문학 장르와는 달리 동화는 보다 더 조화가 이루어진 세계를 보여주기를 지향하거든요. 어려움을 겪던 주인공이 마지막엔 희망을 찾는다거나.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며 완전성을 추구해요. 그렇게 자연스레 동화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감정조절기 하트> 2029년, 초등학생들은 저마다 가슴에 하트 모양의 기계를 달고 다닌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스스로 감정을 통제하는 법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조절기 하트’는 사람의 감정의 파장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빨주노초파남보 중 한 색깔로 나타낸다. 빨간색은 감정의 최고조 흥분상태, 보라색에 가까워 질수록 저조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기쁘고 행복한 기분도 빨강. 실컷 웃으면 ‘극도의 흥분’이라며 하트는 빨간불을 반짝이게 된다. 2029년에는 ‘하트’가 항상 초록색을 띄며 평정을 유지할 때를 ‘감정을 잘 조절한 상태’라 말한다. 차분한 아이들이 학업 성취도도 좋고, 감정을 잘 조절해야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 폭소를 터뜨릴 수도 없고, 기쁨의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된다. 감정을 통제해야 하는 상상 속 미래 사회를 그린 <감정조절기 하트>는 김 동문의 당선작 <하트>를 장편화하며 출간된 책이다. 김 동문은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버스 안 TV광고를 보고 <하트>의 영감을 얻었다.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이었어요. 무심결에 바라본 TV광고가 ‘사람이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일부러 눈을 돌려 피하지 않는 한 보게 되잖아요. 무언가를 억지로 받아들이게 한다는 게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버스 안에서 자유로운 생각의 흐름을 방해하는 TV광고. 김 동문은 이대로 흘러가다가는 미래 사회에는 감정까지 통제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수많은 경쟁 속에 살아가고 있잖아요. 알게 모르게 통제된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보다는 사회가 원하는 것들을 우선시하게 되는 거요. 놀고 싶지만 학원에 가야하고, 사회의 기준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것들.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이야기 속의 ‘엄마’에요.” 심지어 ‘감정조절과외’까지 받았던 주인공 은찬이는 엄마의 바람대로 ‘감정조절어린이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은찬이는 밤마다 악몽을 꾸게 되고, 자신이 언젠가부터 ‘가슴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은찬이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이 흥분시킨다는 이유로 ‘사라진 놀이기구’로 그려진 ‘퐁퐁(트램플린)’을 만나게 된다. 퐁퐁에 올라가 짜릿한 쾌감을 느끼며 빨간 빛에 경보음이 울리는 하트를 가슴에서 떼어버리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인간은 감정을 억누르고서는 원하는 바를 이룬다 해도 마음 깊은 곳까지 행복해질 수는 없어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 당하면 영혼은 메말라 갈 수밖에 없죠. 하트를 떼어버리는 결말은 은찬이가 감정을 분출할 수 있게 회복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비록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했지만, 성공을 위해, 좋은 성적을 위해 감정을 통제한다는 것은 우리네 현실과 닮았다. 김 동문의 작품은 출중한 동화적 상상력과 시의성을 잘 띠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신춘문예 동화 부문의 230여편 응모작 가운데 당당히 당선됐다. “세상에 따뜻한 빛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 ‘작가’의 운명을 타고 난 걸까. 김 동문은 “말 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하는 게 더 쉽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의 고민과 잡념들을 써내려 간 일기들이 창작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하는 그녀. 대학 시절부터 글을 쓰는 것이 일과나 다름없었던 그에게도 ‘동화’를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시작할 때 원초적인 두려움 같은 게 있어요. ‘백지의 공포’라고도 하죠.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평소에 찾지 않았던 분야의 책들을 읽어요.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가거나 산에 올라가 신선한 공기도 마시고요." 그는 어떤 작품이든 작가의 의식에 그 근원이 있다고 말한다. "제가 읽고 감동을 받은 작품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영혼에서 나온 것들이라 생각해요. 작가의 삶과 존재성 자체가 글에 묻어나잖아요. 생물학적 출산이 유전자를 물려받는 것처럼 작품도 작가의 정신적 유전자를 물려받는 거라 생각해요.” 끝으로 김 동문은 “비전이 담긴 작품으로 세상에 따뜻한 빛을 전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어린이와 더불어 어른도 감동시키는 작품이 좋은 동화라 생각해요. 개별적인 현상들보다 마음 깊숙한 곳의 본질적인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제 작품을 읽고 세상이 밝아질 수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읽고 나서 ‘잘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이요. 마음을 위로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흔히들 ‘환상적, 허구적, 비현실적’이라 말하는 동화, 김 동문은 동화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 영혼을 치유하는 법을 말한다. 조지윤 학생기자 ashleigh@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