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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 28

[동문][NOW 꿈꾸는 사람들] ‘유척 정신’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경제 사령탑 (1)

지난해 11월 9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된 홍남기 동문은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예산 전문가이자 경제 관료로 초대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해 국정 과제에 대한 이해도가 넓다고 평가받는 그가 경제 전반을 아우르며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리. 편집실 ▲홍남기 동문(경제학 80) Q. 경제부총리가 된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활력 제고를 위해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경제장관회의 등 각종 회의 주재, 국무회의·총리회의 등 참석, 경제정책 조율회의 진행, 산업 및 수출 현장 방문 일정 등이 빼곡합니다. 특히 취임 시 말한 소위 ‘1+2+3 약속’, 즉 경제팀 one 보이스(1), 정부-청와대 두 목소리(2) 없도록 조율, 소상공인·중소기업·대기업(3) 등 매주 현장 방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매일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한 달 동안 미국 워싱턴DC에서의 G20 재무장관회의 및 IMF/WB(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총회 참석, 북경에서의 일대일로 정상회의 참석, 피지에서의 ASEAN+3(동남아시아국가연합+한·중·일) 재무장관회의 및 ADB(아시아개발은행) 총회 등 세 차례의 국제회의에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Q.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A. 1985년 한양대를 떠난 후 줄곧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예산처-기획재정부 등 한 부처에서 근무했습니다. 물론 청와대와 외교부(주미대사관) 파견 근무도 있었지만요. 공직을 시작한 경제부처에서 33년 만에 해당 조직의 장에 오르는 운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공직 생활 내내 지녔던 신조는 두 가지입니다. 나의 역량과 실력을 높이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저의 자산이었고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그 바탕에는 한양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하며 축적한 경제학 지식과 늘 몸에 체화되도록 듣고 접했던 건학 정신이자 교훈인 ‘사랑의 실천’이 있었습니다. Q. 공직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요? A.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며 한결같이 지닌 마음가짐은 정도(正道)입니다. 이는 업무나 생활에 있어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유척을 가장 좋아해 제 스스로 이를 ‘유척 정신’이라 이름 붙이고, 공직 생활 내내 가능한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Q. 재학 당시와 지금의 대학이 다른 점이 있을까요? A. 제가 다닐 때 대학은 ‘학업+학문 연구’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의 대학은 ‘학문 연구+산학 협동+창·취업 연계’ 등으로 그 영역이 크게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양대는 순수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산학연 연계 강화 및 활발한 창업 연구·지원 등으로 발 빠르게 선제 대응해 온 대학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캠퍼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ERICA캠퍼스의 부각이 가장 뚜렷한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Q. 대학 재학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A. 한양대 기숙사에서 졸업할 때까지 숙식하며 공부했기 때문에 제게는 한양대 캠퍼스 자체가 가장 그리운 곳입니다. 대학교, 대학원 생활의 모든 것이 한양대 캠퍼스에 녹아 있어 제 청춘이 그대로 머문 곳이기도 하지요. 기숙사에서 저를 포함한 80학번 동기 네 명이 함께 고시 공부를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합격했습니다. 모두 기획재정부에서 함께 공직 생활을 하고 퇴직했지요. 저만 아직 공직에 복무 중입니다. 한양대 출신이라는 동지애와 친우애가 공직 생활 내내 큰 자산이었습니다. Q. 예전 인터뷰에서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가요? A. 예. 변함없습니다. 대학생에게 공부가 전부는 아닙니다.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며 글로벌한 시야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개인적으로는 공직 기간 중에 영국 유학(2년), 미국 워싱턴주정부 예산성 파견 근무(2년),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의 경제공사참사관 근무(3년) 등 해외 근무 경험과 수많은 해외 출장으로 글로벌 마인드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세계 여행을 할 겁니다.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은 저의 위시 리스트 중 하나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시야와 견문을 넓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Q. 한양의 후배 또는 동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지금 우리는 초연결, 초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대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면, 지금은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격이랄까요.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빠르게 적응할수록 기회와 가능성은 그만큼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 한양대 동문 그리고 후배들께서 시대를 잘 읽고 그 흐름을 타서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우뚝 서길 기대합니다. 사랑한대 2019년 05-06월 (제248호) 이북 보기

2019-05 21

[동문][사랑, 36.5°C] 기부는 적은 돈을 크게 쓰는 방법

미국 회계법인 ‘더 리 어카운턴시 그룹(The Lee Accountancy Group)’ 이종혁 대표는 입학한지 60년 만인 지난 2017년 건축공학과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오랜 만에 모교를 찾으면서 그는 당시 등록금을 전액 면제 받으면서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을 갚기 위해 1년에 1만 달러씩, 총 4만 달러의 발전기금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글 공주영 ▲이 동문은 "기부나 나눔 활동을 하는 이유는 제가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가진 것을 더 가치 있게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기부는 적은 돈을 더 크게 쓰는 방법입니다."라고 말한다. Q. 1958년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신 후, 공업경영학과로 전과를하셨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있으신지요? A. 입학 당시에는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며 복구에 힘쓰자는 결심으로 건축학과를 택했습니다. 그러다가 국가유학시험에 합격한 뒤, 국방대학원 연구사병으로 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만났죠. 연구사병 시절, 교수님 연구를 도우려고 도서관에 자주 드나들면서 경영학 책을 많이 봤습니다. 경영학 석학들의 책을 번역하면서 굉장한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대 후에 공업경영학과로 전과를 했죠. 수업을 듣다보니 경영학의 근간이 되는 회계학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1965년에는 졸업한 다음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했고, 2007년에는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Q. 2017년에는 한양대 건축공학부 명예졸업장을 받으셨습니다. 더불어 오랜 만에 모교를 찾아 여러 모로 감회가 남다르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A. 2017년 11월 20일은 저에게 무척 뜻깊은 날입니다. 입학한지 꼭 60년 만에 받은 건축공학부 명예졸업장이었습니다. 도중에 전과를 했지만 건축공학과로 입학했고 3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지금도 스무 살에 만난 과 친구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명예졸업장 때문에 오랜 만에 들른 모교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재학할 당시, 한양대학교는 목조건물 한 채와 석조건물 네댓 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규모이고, 학생들의 모습도 씩씩하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Q. 졸업증서를 받던 자리에서 한양대에 1년에 1만 달러 씩, 4만 달러의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하셨는데요. 당시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하셨나요? A. 저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다섯 살인 1945년에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6·25 전쟁이 터져 가족을 다 잃고 홀로 자랐습니다. 어렵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실향민인 저에게 한양대학교에서 여러 도움을 주고, 등록금도 전액 면제해 주었습니다. 한양대학교가 저를 키워준 것이나 다름없지요. 모교를 위해 뭔가를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명예졸업증서 수여식이 그 기회가 되었습니다. Q. 미국에서도 다양한 봉사활동과 기부를 펼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게 되었는지요? A. 24년 동안, 오클랜드시와 함께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2,500명 가량의 노숙자와 어려운 이웃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행사를 해왔습니다. 제가 자금 마련과 봉사자를 모으는 등의 일을 맡았는데 오클랜드시에서 그 공로를 인정해 2004년 3월 5일, ‘이종혁의 날(Jong H. Lee Day)’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 모교에 10년 동안 매년 1만2,000달러 씩 기부하면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장학금 조성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부나 나눔 활동을 하는 이유는 제가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가진 것을 더 가치 있게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기부는 적은 돈을 더 크게 쓰는 방법입니다. Q. 대표님이 전달하고 있는 발전기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 6·25 전쟁 때문에 저에게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습니다. 배움에 대한 애착이 큰 이유는 그만큼 어렵게 공부를 해서입니다. 35세가 되어서 석사 학위를 받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면서도 더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에게 돌아가는 장학금이 아니라, 발전의 가능성이 보이고 기회가 필요한 학생이라면 성적에 상관없이 기부금의 혜택을 받길 바랍니다. Q. 그 동안 꾸준히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80에 가까운 나이가 되다 보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나눔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한양대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여러 혜택을 누군가도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도 달라질 수 있겠지요. 기부는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지금 생각이 있다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적은 돈이 모여 큰 힘을 냅니다. 동행한대 2019년 Spring(제13호) 이북 보기

2019-05 21

[동문][사랑, 36.5°C] 나의 ‘빚’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길

곽용섭 변호사는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 고시반에서 생활하면서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았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받은 이러한 혜택을 모두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을 키운 것은 한양이며, 모교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10년 간 기부를 약정하고 2018년부터 매월 일정금액을 기부하며 빚진 마음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줄 것을 믿으며. 글 공주영ㅣ사진 이서연 ▲ 곽용섭(법학 84) 변호사 Q. 2018년 10월부터 매월 기부하고 계신데요. 10년간 6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A. 1984년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기숙사 고시반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기숙사 고시반은 260명 법학과 학생 중에서도 50명 이내만 선발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었으니 저로서는 굉장히 큰 행운이었죠. 고시반에서는 조교가 공부도 살펴주고 생활지도도 해주었기 때문에 꾸준함을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감사한 마음을 언젠가 목돈이 생기면 갚아야지 했는데, 때를 기다리다 보니 자꾸 늦어지더군요.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나눠서라도 기부를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Q. 기부를 약정하면서 ‘빚을 갚는다’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학교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요? A. 백남장학금과 대학 등록금, 대학원 등록금, 기숙사비까지 모두 제가 받은 혜택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받는 장학금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몰랐습니다. ‘공부를 잘하니 당연히 장학금을 주는 게 아닌가?’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죠.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건 개인이 지닌 재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만약 그 재능을 보살펴주는 한양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니 ‘내가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또 누군가가 나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빚을 갚는다’는 표현을 쓴 거죠. Q. 나눠서 내고 있지만 10년 동안 쌓이면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혹시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A. 제가 받은 것에 비하면 큰 금액이 아닙니다. 심지어 채무 관계의 빚이었다면 이자까지 훨씬 더 붙었겠죠. 또 제 마음의 빚을 금액으로 정산할 수도 없습니다. 매월 정해진 금액을 납입하니 오히려 적금을 붓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변호사 역시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형편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자동이체를 신청해서 기부금이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빠져나가도록 해놓았습니다. ▲곽 동문은 " 공부를 잘 하는 건 개인이 지닌 재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만약 그 재능을 보살펴주는 한양이 없었더 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라고 말한다. Q. 오래 전부터 기부를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부에 대한 변호사님의 철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광주에서 판사를 하던 시절, 여직원회에서 어린이를 돕는 기부에 동참해달라고 찾아왔어요.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5년 동안 여러 가지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이다.”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저를 스무 살 이전까지 키워준 사람은 팔 남매 가운데 다섯 번째 누나였고, 그 이후에는 한양대가 저를 키웠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빚 위에 서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빚을 갚아야 하겠죠. Q. ‘빚’이라고 표현하셨지만 변호사님의 기부가 그 누군가에게는 ‘빛’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 제가 낸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써주실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공부가 절실한 저에게 한양이 준 도움은 큰 ‘빛’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이 곳에서 제가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죠. 공부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후배들이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사용된다면 더욱 감사할 것 같습니다. Q. 기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시작을 어려워하는 분이 많습니다. 먼저 기부를 시작한 경험자로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졸업을 하고 보니 설립자의 정신인 ‘사랑의 실천’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저 역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인드라망(우주적 그물망)에 의해 모든 존재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동문들이 조금씩 나눔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온 세상으로 퍼져 한양을 더욱 빛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부에 있어 금액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천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동행한대 2019년 Spring(제13호) 이북 보기

2019-05 21

[동문][희망, 100°C] 좋은 기부를 통해 인생의 가치를 높이다

(주)나노 신동우 회장은 제자들과 함께 회사를 창업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모범 사례로 2017년 백남상을 수상했다. 이때 받은 상금 1억 원을 공과대학의 발전을 위해 기부했고 그 후 10년 간 10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신동우 회장의 이런 기부는 은퇴한 명예교수들의 편의공간인 ‘신동우 FACULTY LOUNGE’을 탄생시켰다. 그는 기부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훨씬 가치 있게 변화했다고 말한다. 글 공주영ㅣ사진 이서연 ▲신동우(무기재료공학 79) ㈜나노 회장 Q. 2017년 백남상 공학부문 상금 전액을 기부하시고, 10년 동안 10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하셨습니다. 어떻게 이런 큰 나눔을 결심하셨는지요? A. 백남상 수상은 대학 연구실에서 개발한 기술로 교수와 학생이 창업하여 세상에 이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데 대한 평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1억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받고 보니 부담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했던 일인 만큼, 상금 또한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하지 않나 싶어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항상 모교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이왕 시작한 김에 한 번에 내지는 못하더라도 가치 있는 나눔을 해보자라는 마음에 10년 약정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처럼 교수 생활을 하시다가 회사를 창업하셨습니다. 창업을 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A. 경상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 IMF사태가 터지면서 졸업생들의 취업 기회가 막혔습니다. 이를 어쩌나 고민하던 차에 정부에서 청년취업 문제 해결을 위한 파격적인 벤처 지원 정책을 펼쳤고, 학생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책임감으로 제자 4명과 함께 창업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제자를 대표이사로 하고 저는 뒤에서 도우려 했는데, 필요한 자금을 대출받으러 가니 대표이사가 보증을 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혹시라도 잘못되면 한 청년에게 평생 빚을 지게 하겠구나 싶어 대표이사를 바꿨죠. 그렇게 회사를 세우고 나니 이 친구들을 실업자로 만들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죽을 만큼 열심히 매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20년이 흘러 이제는 탄탄한 글로벌 기업이 되었습니다. Q. 우연한 시작이었지만 좋은 결과를 도출하는 힘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한양대에 기부를 시작하신지도 어느덧 3년차에 접어들었는데요, 기부를 실천하신 소감은 어떠신지요? A. 처음 기부를 할 당시에는 세금을 내는 마음과 큰 차이가 없었는데, 막상 실천해보니 제가 낸 기부액보다 몇 배 이상의 좋은 일에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백남학술관에 조성된 ‘신동우 FACULTY LOUNGE’는 은퇴하신 명예교수님들의 편의 공간인데, 디자인을 맡으신 교수님들께서 특별히 정성을 쏟아 주셔서 훌륭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탄생했습니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교수님들이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실 수 있다니 기쁘고 뿌듯합니다. 기부를 행하는 것도 서로 생각이 같은 분과 함께하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생각이 바르고 옳은 사람들이 모이니 나눔도 부가가치가 되어 돌아온다는 생각이 들었죠. Q. 한양대에서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하고, 한국과학기술원과 캠브리지대학교대학원에서 재료공학과 재료과학을 전공하셨는데, 이 같은 선택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A. 저는 경상북도 상주 출신의 시골 청년이었습니다. 과외 한 번 받아본 적 없던 제가 대학에 들어와서 놀란 것은 교수님들의 훌륭한 수업이었습니다. 2학년 때 오근호 교수님이 미국에서 한양대로 부임을 오셨는데, 재료과학 원서 한 권을 한 학기에 마치는 열강을 하셨습니다. ‘공부가 참 재미있구나.’라는 걸 그때 많이 느꼈죠. 기말시험을 본 날, 우연히 교수님을 만났는데 제 시험성적이 가장 우수하다고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그 격려가 힘이 되어 더욱 열심히 공부를 했죠. 전공이 적성에 맞았기 때문에 몰입할 수 있었고, 수석 졸업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한양이 저를 지금의 자리까지 이끌어준 셈입니다. Q. 한양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도 남다르신데요. 앞으로 모교가 어떻게 발전해나가기를 원하시는지요? A. 지난 2월 제 모교의 학위수여식에 학부형 자격으로 참석하게 되었는데, 제 아들이 졸업우수상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6년 전 제가 받았던 상을 제 아이도 받게 되니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골 청년을 이렇게까지 성장시켜주었는데, 제 자식까지 이렇게 잘 가르쳐주었으니 한양이야말로 제 은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치며 교가를 제창하는데, 몸에 소름이 끼치며 뜨거운 감사의 마음이 들더군요. 이 은혜를 길이 갚아 나가리라 새로운 다짐도 했습니다. 올해가 한양대 개교 80주년인데, 20년 후면 개교 100주년입니다. 한양대가 국내 사립대학 종합평가 1위의 대학이 되기를 바라며, 개교 100주년에는 이 소망을 자축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신 동문은 " 마땅히 할 일을 한 것뿐인데 1억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받고 보니 부담스러운 마음도 없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했던 일인 만큼, 상금 또한 학생들을 위해 쓰여야 하지 않나 싶어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라고 말한다. Q. 교직에 오래 몸 담으셨고, 한양대에서도 특훈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계시는데요. 후배이자 제자인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A. 최근 신문기사에서 한 청년의 성장과정을 의미 있게 보았습니다. 항공기 정비사가 되려고 항공기술고에 진학하였고, 위탁교육을 통해 대학교 기계과에 진학하였습니다. 우연히 공인회계사시험 합격 축하 플래카드를 보고 동기가 부여되어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여 합격했고, 공군 장교로 입대해서는 법적인 문제에 골몰하다가 군 복무 중 사법고시를 공부해서 현재 유명 로펌에 근무하는 신입 변호사의 이야기였습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꿈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최선을 다한 결과였죠. 청년들은 이런 삶을 배워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청년들에게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동기를 찾아서 몰입하다 보면, 한 단계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기부를 하고 난 후 더욱 그 가치를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기부를 하고 싶지만 망설이고 계시는 많은 잠재 기부자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백남상 수상자 선정 사유가 생각나는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공헌하신 분께 백남상을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기업 활동으로 백남상을 받았지만, 실은 한양에서 배운 근면, 정직, 겸손, 봉사의 정신과 실용학문이 오히려 경영 활동에 훌륭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갚고자 기부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기부가 오히려 제 주변에 좋은 사람을 모이게 해주고 제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었습니다. 큰 금액이 아니더라도 기부를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여러분도 함께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9년 Spring(제13호) 이북 보기

2019-03 21

[동문][도전#해시태그] 미디어와 커머스의 조우 (1)

미디어 커머스 시대가 도래했다. 최근 유통업계에서는 미디어 콘텐츠와 커머스(상거래) 상품의 융합이 주목받고 있다. 페이스북, 구글 등 소셜 미디어에 스토리를 입힌 동영상을 게시해 생생하고 효과적으로 상품 정보를 전달한다.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 욕구를 충족시키는 제품을 기획하고, 브랜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글. 유승현 사진. 안홍범 ▲ 퍼플링크 조관제 대표(경제금융학 08) 레드오션 속 브랜드와 소비자를 잇다 퍼플오션(Purple ocean)은 경쟁이 치열한 레드오션에서 발상의 전환으로 새로운 가치를 지닌 블루오션을 창출하는 전략이다. 퍼플링크도 마찬가지다. 퍼플링크는 이미 널려 있는 대중의 라이프스타일 니즈(요구) 중 ‘언멧니즈(Unmet needs, 미충족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회사 퍼플링크의 브랜드는 총 세 가지로 구성된다. 뷰티 브랜드 ‘낫포유’, 리빙 브랜드 ‘데이포유’와 향수 브랜드 ‘프라그라피’가 있다. 낫포유(NOT4U)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위한 뷰티라이프’를 지향한다. 주력 제품은 이중 복합필터를 사용해 수돗물의 잔류 염소와 녹물을 제거하고 비타민C를 공급하는 ‘비타클렌징 샤워’, 연고처럼 바르는 여드름 패치 ‘리얼스킨패치’ 등이다. 생활에 필요한 무화학 제품을 판매하는 데이포유(DAY4U)는 '당신에게 필요한 삶, 안심되는 삶을 제공한다'는 철학을 담았다. 제품으로는 세제를 사용하지 않고 세탁할 수 있는 ‘런드리볼(세탁볼)’과 광합성 작용으로 유해물질을 분해하고 악취를 제거하는 ‘광촉매탈취제’ 등이 있다. 프라그라피(Fragraphy)의 핵심 가치는 ‘나를 표현하는 향기’다. 이성에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데 초점을 맞춰 두 종류의 니치 향수(소수 성향을 위한 프리미엄 향수) ‘시그니처 블랙(남자 호감 향수)’과 ‘어나더 레이디(여자 호감 향수)’를 선보였다. 새로운 트렌드, 콘텐츠 마케팅 조관제 대표가 마케팅에 발을 디딘 건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다. 그는 ‘딩고 뮤직’으로 잘 알려진 모바일 방송국 ‘메이크어스’의 인플루언서 마케팅 사업부에 입사했다. 인플루언서(Influencer)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개인을 뜻한다. 멀티채널네트워크(MCN) 팀장을 맡게 된 조관제 대표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발굴해 인플루언서로 양성했다. 회사의 도움으로 성장한 인플루언서는 자신이 운영하는 채널 구독자에게 제품을 홍보한다.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상을 유통하며 뉴미디어 마케팅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인식했어요. 특히 연예인 위주였던 인플루언서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보다 친근하고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콘텐츠 마케팅을 활용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하기 시작했죠.”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에 매력을 느낀다는 조관제 대표 ▲#소비자 #사로잡는 #라이프스타일 #탄생 퇴사 후 창업에 도전하다 조관제 대표는 회사를 나와 남대광 블랭크코퍼레이션(이하 블랭크) 대표(경제금융학 05)와 미디어 커머스 기업 블랭크를 창업했다. 그는 자신의 메이크업 경험을 살려 남성 화장품 브랜드 블랙몬스터를 기획했다. 커머스 운영부터 제품 마케팅까지 도맡아 3개월 만에 15억 원 매출을 달성했다. “여기에 만족할 수만은 없었어요. 현실에 안주하기보다 제가 직접 회사를 꾸리고 싶었어요. 블랭크를 퇴사하고 또 다른 라이프스타일 미디어 커머스 회사인 퍼플링크 창업을 준비했어요. 한 개인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제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죠.” 조관제 대표는 반드시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전의 경험이 그에게 자신감을 줬다. 그렇다고 걱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조관제 대표는 수중에 있는 돈과 5000만 원의 청년 창업자금 대출로 초기 자본을 마련했다. 사무실을 구하고, 직원을 채용하고, 첫 제품을 준비하는 데 전부 사용했다. “성공에 대한 확신이 섰지만, 한편으로는 시장에서의 반응이 좋지 않을까 봐 불안했어요. 처음 창업하고 3개월 동안은 전기·수도·가스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미납했어요. 하루는 술을 마시고 싶었는데 수중에 2300원밖에 없는 거예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과 컵라면을 사니 딱 50원이 남더군요.” 좌절의 쓴맛은 얼마 가지 않았다. 제작한 비디오 콘텐츠가 확산하면서 대중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첫 제품 출시 다음 날 판매율이 전날 대비 30% 뛰었다. 우려가 기대로 바뀐 순간이었다. 미처 몰랐던 욕구를 발견하는 과정 퍼플링크의 마케팅은 다소 독특하다. 제품 기획 전 단계부터 콘텐츠에 제품의 메시지를 잘 담을 수 있는지 고려한다. 좋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콘텐츠 마케팅 적합성이 떨어지면 만들지 않는다. “동시에 소비자도 몰랐던 히든니즈(Hidden needs)를 파악하는 데 힘써요. 네이버, 구글 등 포털사이트의 키워드 검색량을 활용해 소비자가 원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어요. 경쟁 제품의 후기, 블로그 포스팅도 확인해요. 그다음으로 메시지를 충족하는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하죠.” 낫포유 제품 ‘클리어바디미스트’ 광고는 소비자의 큰 관심을 샀다. 클리어바디미스트는 등과 가슴에 나는 여드름 제거에 유용하다. 퍼플링크는 제품의 성능을 알리기 위해 바디 트러블로 고민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체험단을 모집했다. 최종 선발된 한양여자대학교 축구부 선수가 촬영한 제품 사용 과정이 소비자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출시 1년 만에 20만 개의 판매 실적을 거뒀다. ▲ 퍼플링크 직원들이 상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보랏빛으로 물들일래요 퍼플링크는 ‘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채울 수 있는 종합 커머스 기업’을 꿈꾼다. 현재 다양한 브랜드 론칭을 계획하고 있다. 뷰티와 리빙을 넘어 패션, 푸드와 펫 등 소비자 니즈가 존재하는 모든 분야에 진출하려 한다. 오는 2020년까지 10개 이상의 브랜드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퍼플링크는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가 아니에요. 제품 자체에만 집중하기보다 소비자가 원하고 흥미를 느낄 만한 메시지를 콘텐츠로 풀어 즐거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요. 고객이 꾸준히 퍼플링크 라이프스타일을 찾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콘텐츠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퍼플링크는 설립 2년 만에 12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여기에는 조관제 대표의 자기 혁신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에 뒤처지면 안 된다고 말한다. “퍼플링크가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크고있어요. 제 성장이 회사의 성장보다 느려지는 순간 과감히 회사를 떠날 생각입니다. 그때는 저보다 더 뛰어난 분이 회사의 경영을 맡아야해요. 퍼플링크에서 저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까지 회사의 앞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구하려고 합니다.” 사랑한대 2019년 03-04월 (제247호) 이북 보기

2019-03 19 중요기사

[동문]'운동장이 놀이터이자 배움의 공간인 학교를 만들다'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의 수업 분위기는 뭔가 특별하다. 주요 교과목에 열 올리는 요즘 중∙고교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적극적인 체육 활동에 그 이유가 있다. 학교 수업과 방과 후, 주말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놀이터 삼아 달리는 학생들의 모습이 신선하다. 학생들은 체육 정규교육과정 수업을 넘어 다양한 체육활동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학교 분위기 조성엔 한대부중 교장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과 체육 과목 교사들의 역할이 컸다. 체육시간이 즐거운 학교 한양대학교에서 체육학으로 학사(76학번)부터 박사 학위 과정까지 밟은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은 국내에 흔치 않은 체육 전공 교장이다. 후학양성이 보람된 일이라 여겨 노 동문은 체육 교사로 교직에 몸을 담아 25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교장 자리까지 왔다. 체육학을 전공한 교장 덕인지 한대부중은 다른 학교에 비해 '스포츠클럽'이라 불리는 체육 활동이 활발하다. “한창 클 시기의 중∙고등학생들은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발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폭력과 같은 각종사고가 줄고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더 즐겁게 합니다.” 이른 시기부터 경쟁을 강요받는 한국 학생들에게 예체능 교육은 사치라는 생각이 만연해지고 있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이 건강하고 인성이 바른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행하는 한대부중의 체육 활동 프로그램. 현 공교육 현상을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의 움직임이기도 하다. ▲ 한양대학교사범대학부속중학교(이하 한대부중)에서 만난 노지호 동문(체육학 박사). 학생들이 생활체육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 건강과 동시에 교육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학생들은 학교 체육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교내 수업부터 방과 후 활동으로 야구, 농구, 배드민턴, 풋살과 요가, 방송댄스, 치어리딩까지 다양한 범위의 스포츠 활동이 꾸려져 있어 학생들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한대부중 내 체육 교사들뿐 아니라 외부 강사를 초빙해 수업을 진행한다. 토요 스포츠 클럽도 운영해 방과 후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연습량이 부족한 학생들도 운동할 수 있다. 또 체육 활동을 교내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시합 및 대회에 참가하기도 한다. 이미 한대부중 학생들은 여러 종목에서 많은 수상 경력을 쌓고 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체육이 아닌 국∙영∙수 같은 교과목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지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2배 이상이다. “농구, 축구 시합을 하고 싶어서 학교에 온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듯이 학생들은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즐겁게 참여한다. ▲연식야구(여자) 수업에 방문한 강병철 전 프로야구 감독과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한대부중 여자 연식야구팀은 매년 교육청이 주관하는 ‘안중근 피스컵’에 연이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여자 연식야구팀의 김소연(한대부중 3) 양은 연식야구 외 축구와 배드민턴 등 다양한 체육 활동도 함께 하고 있다. “다 같이 협동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해요. 꾸준히 운동하면서 체력도 많이 좋아졌어요.” 김채원(한대부중 3) 양은 체육에는 소질이 없는 학생이었다. “처음에 어려워 잘 따라가지 못했는데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기초부터 차근히 다져졌어요.” 또 체육을 통해 소극적인 성격을 극복한 자신의 모습을 만족스러워했다. ▲ 스포츠 클럽 활동의 하나로 요가도 이뤄지고 있다. 편안한 복장으로 요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한대부중 제공) ▲ 지난 2015년도 서울시경찰청장배 청소년야구대회에 한대부중 야구(남자)팀의 경기 출전 모습. 야구팀은 창단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한대부중 제공) 사명감과 학생들에 대한 사랑으로 학생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에 참여하는 데는 노지호 동문과 함께해온 체육 교사들의 몫이 크다. 석현호 체육부장과 권창훈 선생 등 한대부중 체육 교사들의 열의와 학생들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가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한대부중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두 체육 교사는 “건강하고 활기찬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연식야구협회장 대회 안중근 피스컵, 소프트볼 협회사에서 진행하는 대회 등에서 좋은 결과를 많이 얻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니까 스스로 참여하면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거죠. 등수를 떠나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 씨와 석 씨는 성동광진교육지원청에서 체육교육 활성화 지원단으로도 참여하고 있다. 한대부중 뿐 아니라 중고등학교의 체육 활동관련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체육을 전공했기 때문에 학생들이 체육을 통해 얻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생각해보죠. 일반 교과목 선생님들은 성적 상승에 목표를 둘 것이고, 체육 선생님들은 체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가르칩니다” 노지호 동문은 “현재 한대부중의 체육 학습 프로그램과 면학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착됐다”고 말하며 “이에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계속 체육 활동에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은퇴가 1년 남짓 남았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한 체육 선생님들이 계속 학생들을 위해 활발한 체육 활동을 지속하길 바랍니다.” 노 동문의 말 속에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배어 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박근형 기자 awesome2319@hanyang.ac.kr

2019-03 15

[동문][사랑, 36.5°C] 기부의 무한 변신

프레디 머큐리의 하얀 민소매 셔츠, 스티브 잡스의 검은 터틀넥처럼 우리는 때로 옷으로 사람을 기억한다. 옷만큼 단번에 나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 또 있을까. 최근 권오수 대표는 우리 대학 졸업예정자 20명에게 권오수클래식의 맞춤 정장을 기부했다. 청년들을 향해 그가 선물하고 싶었던 것은 옷이 아니라 자신감이었다. 사회를 향해 당당하게 첫 걸음을 내디딜 수 있도록 힘찬 응원을 보낸 것이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권오수 권오수클래식 대표 Q. 졸업생에게 정장을 기부한다는 아이디어가 굉장히 신선합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요? A. 요즘은 대부분 기성복을 사서 입지만, 예전에는 대학을 졸업하면 부모님이나 친척 분들이 양복을 맞춰 주셨지요. 그 옷 한 벌 해 입히면서 사회로 진출하는 아들을 자랑스러워했고, 아들 역시 그런 부모의 마음을 읽으며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 일을 참 좋아합니다. 1년 열두 달 쉬지 않고 일해 왔지만 이 일이 싫었던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가진 이 기술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늘 고민하던 중 우리 청년들을 생각해냈죠. Q.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고 그 일을 통해 기부도 한다는 것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기부에 대한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양복 기술이 참 좋다고 자부합니다. 명동의 쇼윈도도 없는 작은 가게에서 시작했지만 조용필 씨, 이주일 씨, 임동진 씨 등 유명 연예인들에게 턱시도를 맞춰주며 돈도 제법 벌었습니다. 나이를 먹다 보니 어차피 인생이란 게 태어나서 갈 때는 옷 한 벌 입고 가는 건데, 이 사회에 좋은 일을 하면서 눈을 감는 것도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권오수클래식’이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바람이 생겼어요. 고민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장애인 사업장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장애인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거주도 할 수 있는 공간을 꾸미고 싶었죠. 그런데 저 혼자만의 결심으로는 어려운 일이더군요. 아내가 자주 아팠고, 한 15년 마음만 있었지 실행에 옮기지 못했습니다. 그게 계속 마음속에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기부를 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다가 학생들을 생각해 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도 이번 기부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학생들에게 손수 옷을 지어 입히며 어떤 생각이 드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공부할 시기에 마음껏 공부를 하지 못했어요. 원래는 미술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러질 못했죠. 마침 자형이 양복점과 양재학원을 하고 있어서 자연히 이쪽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는데, 그렇게 한평생 열심히 살다 이제 한양대 졸업생들에게 기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첫 걸음이라 더 많이 돕지 못하고 20명의 학생만을 선발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 위주로 선발을 했습니다.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갖고 있는 건 좋은 기술 하나뿐입니다. 이걸 이용해서 제 남은 인생을 값지게 사용하고 싶습니다. Q. 학생들이 매장에 와서 치수를 재고 옷을 입어보는 모습을 보면서, 기부자로서 특별한 감정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습니까? 학생들 연령대에서는 옷을 맞춰 입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선지 무척 신기해하고 좋아하더군요. 학생들을 직접 만나보니, 앞으로 이 기부가 좀 더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하니까, 졸업생들이 일정금액을 기부하고 우리는 재능을 기부해 좀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 기부를 확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양복 재킷 안에 기존의 라벨 대신 [한양대-권오수-기부자 이름]을 새겨 ‘선배가 해준 옷’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선배가 해준 옷을 입고 사회로 진출하면서 한양대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면 얼마나 의미 있고 값진 일인가요? ▲ 권 대표는 "옷은 포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는 수단이죠. 이제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 졸업생들에게 그 첫 단추를 좀 더 품위 있게 채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라고 말한다. Q. 마지막으로 대표님의 기부철학이 궁금합니다. 가수는 죽어도 노래는 남잖아요. 저는 일하는 게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행복한 일을 하면서 기부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저는 저의 재능을 선한 일에 보탬으로써 이 사회에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특히 저희처럼 작은 규모의 가게들의 기부는 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은 큰돈을 기부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대기업보다 저희 같은 작은 규모의 가게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런 기업들이 모두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한다면, 대기업의 기부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나라가 얼마나 밝은 에너지로 넘쳐나겠어요? 저는 작은 기부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inter (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삶 속에 스며든 사랑의 가르침

지난해 3월 윤성태 부회장의 기부로 제2공학관에 ‘Huons FABLAB(이하 팹랩)’이 문을 열었다. 팹랩은 ‘제작’을 뜻하는 단어 Fabrication과 '연구소'를 뜻하는 단어 Laboratory의 합성어로, 지난 2001년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처음 생긴 이래 세계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윤성태 부회장은 팹랩 관련 기부를 비롯해 지금까지 모교에 총 10억 원을 기부했을 뿐 아니라 각종 동문 모임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등 모교와 지속적으로 끈을 이어오고 있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윤성태(산업공학 83) 휴온스글로벌 부회장 Q. 부회장님께서 기부한 공간에서 후배들이 실습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A. 이 공간은 학생들이 실습도 하고 수업도 받고 토론도 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특히 3D 프린터나 레이저 커팅기가 갖춰져 있어 자신이 설계한 도안으로 직접 제작까지 해볼 수 있는 공간이죠.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책으로만 배웠지 실습하는 게 참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이 공간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자기가 설계한 걸 제작해보며 요긴하게 잘 사용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로서도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은 대학의 학습이 실습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한데요, 학교에서 공간을 마련해 제게 기회를 주셨으니 저로서도 무척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Q. 최근 5~6년간 꾸준히 모교에 기부를 해오셨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처음에 회사의 경영을 맡게 되면서 사업에만 전념하느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여유가 없었는데, 나중에 조금 여유가 생기면서 모교에 관심을 더욱 갖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면서부터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이 모두 학교에서 배웠다는 것을 많이 느끼거든요.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이나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 그런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습니다. 기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면, 83학번 홈커밍데이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83학번 동기회장을 맡았었는데 학교와 계속 연을 이어오다 보니 학교의 속사정도 좀 더 잘 알게 되고, 대출받아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들의 사정도 듣게 되었죠. 알면 알수록 어려움이 더 많이 보이니 회피할 수도 없고, 그러면서 학교랑 인연이 더욱 깊어진 것 같습니다. Q.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 수 있도록 영향을 끼친 분이 계신지 궁금합니다. A. 선배 한 분이 계셨습니다. 황성박 회장님이라고,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아마 저희 산업공학과 동문회 회장님이셨던 것 같습니다. 재학 시절 그분이 후배들을 위해 참 열심히 활동해주셨던 게 생각납니다. 후배들 만나서 술도 사주시고 밥도 사주시고, 때마다 도움을 많이 주셨죠. 그런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사회인이 되면 후배들을 격려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나도 언젠가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세월이 흘러 진짜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네요. Q. 말씀을 듣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는 선배나 학교의 잠재적 교육에 의해 전달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회장님께서는 학창시절의 경험을 굉장히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아요. A. 저는 제가 기업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그저 대학 졸업하면 직장 구하고 결혼하고, 그런 평범한 삶을 꿈꿨던 학생이었는데, 인생이란 게 예측한대로 흐르지 않더군요. 뜻하지 않게 선친이 경영하시던 회사를 맡게 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이 겪었고 큰 위기도 여러 번 견디면서 회사를 성장시켰습니다. 그러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고 나니 봉사의 기회가 주어져 이렇게 기부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나의 의도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나온 것 같습니다. 나의 잠재력을 녹여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토대가 모교에서 나왔다는 걸 요즘 부쩍 느끼며 삽니다. Q. 제약업계 10위권의 휴온스글로벌의 실무를 총괄하는 실질적 대표이신데, 직함이 부회장이십니다. 회장직을 공석으로 두고 계속 부회장직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실무를 디테일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1997년 영업적자였던 회사를 맡아 지금은 매출 3,000억 원이 넘는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그동안 숱하게 어려움을 겪어내면서 지금까지도 여전히 제가 현장을 챙기고 있죠. 부회장으로 있는 것이 실무를 챙기고 빠른 결정을 내리는데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전문의약품회사에서 이제는 의료기기와 화장품, 식품까지 아우르는 세계적인 헬스 케어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제가 실무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도 많습니다. 회장은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같잖아요. 하하하 ▲ 윤 동문은 "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건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한다. Q. 부회장님에 대해, 도그마에 빠지지 않고 유연하게 결정하는 경영인이라는 평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것도 한양대학교의 실용학풍에서 영향을 받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A. 우리 학교의 건학이념이나 실용 학풍은 저뿐만 아니라 모든 한양 동문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 코스닥 상장사 하이랭커 중에 우리 한양대학교 출신의 대표들이 많고, 벤처기업이나 창업부문에서도 우리 학교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지요. 4차 산업이 각광받는 요즘, 한양대학교의 건학이념과 실용학풍이 그러한 시대적 부름과 잘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 들고, 요즘처럼 산업이 고도화되고 복잡다단한 사회에서 우리 학교가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깁니다. 동문을 주축으로 한 여러 모임들이 생겨나고 있고, 한양미래전략포럼이나 바이오 포럼 등의 모임을 통해 동문 간 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으니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먼저 기부해보신 선배로서 기부를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잠재적 기부자인 우리 동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A. 사회가 각박한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를 낮추고 봉사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저도 누군가에게 알리려고 기부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개인적인 만족이랄까, 나 스스로에게 작은 자랑스러움 같은 건 있죠. 기부를 통해 느껴지는 삶의 만족감이 분명히 있으니 자기 형편껏 조금이라도 참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고,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작게, 누구나 쉽게 기부할 수 있는 길을 학교가 시스템적으로 마련해주면 더욱 좋겠죠. 우선은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떤 식으로든 시작을 하다 보면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면서 그렇게 싹이 틀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행한대 2018년 Winter(제12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함께 그려가는 한양의 미래

지난 2017년 11월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1층에 문을 연 ‘양민용 커리어라운지’는 재학생들의 진로 준비 및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복지공간이다. 오밀조밀 쓸모있게 지어진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보다 편리하게 취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 학교의 발전상을 이 곳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는 재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임도균 학생(정책학과 4학년)은 “선배님들의 기부로 학교가 발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받게 된다”고 대답했다.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선배들이 있다는 자부심, 나아가 자신들 역시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동기부여야말로 ‘양민용 커리어라운지’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시너지가 아닐까.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한양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현장, ‘양민용 커리어라운지’에서 양민용 동문을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양민용(영어영문학 77) 성광어패럴 회장 Q.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멋진 공간을 내어주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한마디로 행복하고, 기쁨 그 자체입니다. 저의 작은 기부가 우리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77학번인데 그 사이 학교가 참 많이 발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 건물도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캠퍼스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아진 점도 무척 색다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는데, 우리 후배들을 보니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모교의 평가 순위를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고,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느낍니다. Q.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제조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에 계시다보니 모교와 인연을 유지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 계기로 기부를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교와 인연을 다시 맺게 된 조금 특별한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한 15년을 앓아온 지병이 있었습니다. 건선이라는 악성 피부병인데, 그 병을 치료하려고 독일의 뒤셀도르프 대학병원부터 런던, 일본, 싱가포르, 중국까지 안 다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증세가 더 심해져서 거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죠. 그래서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양대학교 병원을 추천받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게 계기가 되어 학교에 처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 2016년 의과대학 메디컬센터 건립기금으로 2천만 원을 기부하신 게 바로 그때군요? 그럼 이번에 총장전략기금 5억 원을 기부하신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영문학과 1년 후배이자 현재 모교에 재직 중인 이기정 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캠퍼스에 학생들의 커리어 지원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영무 총장님과 이기정 교수의 애교심, 겸손한 태도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이 분들의 소유도 아니고, 임기가 만료되면 보직을 내려놓으실 분들인데 이렇게 학교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엄청나게 감동이 되더군요. 이런 분들이 학교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고, 그래서 기꺼이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 양 회장은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Q. 큰 돈을 주저 없이 기부하는 게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예전부터 기부에 뜻이 있으셨는지요? A.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제 인생의 모토였을 뿐, 특별히 기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고 살아서인지 기부나 나눔, 봉사에 대한 머뭇거림은 없었습니다.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모교에 기부하시는 것 외에 특별히 마음을 쓰는 곳이 또 있으신지요? A. 제 사업체가 있는 방글라데시는 정말 환경이 열악한 곳입니다. 특히 교육여건이 그렇습니다. 학교들이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학교운영 자체가 어렵고, 학교 수가 워낙 부족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신고만 하면 누구라도 학교를 지어 운영할 수 있어서 주로 외국인들이나 NGO단체들이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자금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0년 째 꾸준히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원하지 않으면 학교가 문을 닫기 때문에 정말 책임감을 많이 느낍니다. 돈을 버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쓰지도 못하는 돈을 움켜쥐고만 있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가 쓸 수 있는 데까지가 자기 돈이지, 쓰지 않고 쌓아두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회장님의 기부철학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혹은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시골이 고향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형,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매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썼는데, 어머니는 항상 “남이 한 번 밥을 사면 너도 꼭 사라. 절대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며 제가 원하는 액수보다 항상 1~2천원이라도 더 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은 아니지만, 베풀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늘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남을 돕는 일이 축복이 오는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 스스로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Q. 기업을 경영하시며 직원을 채용해본 경험이 많으실텐데 후배들에게 취업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인재상은 무엇입니까? A. 인성이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발전하게 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반대로 인성이 부족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야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신하기보다는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기업만 찾고, 서울 근무만 찾고, 순간적인 이익만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우리 후배들이 중소기업이나 지방 근무나 불리한 근무조건에 실망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 그 분야의 TOP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안전한 선택보다는 도전하기를, 우리 후배들이 인생의 개척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A. 저는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겸손한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잘 압니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거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따르는 편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계획이 있다면, 그동안 일에만 쏟아 부었던 에너지를 나눔으로 돌리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원이 2만 명이나 되니 잠도 제대로 편하게 잘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사업활동은 좀 줄이고, 실질적으로 제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동행한대 2018년 Autumn (제11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아픔을 아픔으로 머물게 하지 말고 슬픔을 슬픔으로 남게 하지 말라

ERICA 캠퍼스 경상대학 건물 앞. 나란히 마주한 벤치 두 개가 눈에 띈다. 학생들이 많이 앉았었는지 원래 칠해졌던 밤색이 다 지워지고 좌석과 등받이 부분이 닳아 하얗게 바랜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증) 김충연-02학번 경영학부 1983~2013’이라고만 간단히 씌어 있는 벤치. 바로 이 자리에서 故 김충연 동문의 아버지 김진호 대표를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진호 수호스포츠 대표│故 김충연 (ERICA 경영학 02) 동문 부친 가장 보람 있는 선택 벤치에 앉아 등받이를 이리저리 쓰다듬는 김진호 대표의 손길을 보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김진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2013년 8월, 생일을 열흘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고 난 뒤 깨달았죠.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구나.” 미국 출장 때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 마을에서 눈여겨봤던 벤치 기부를 이렇게 아들 이름을 넣어 활용하게 될 줄이야. 학교에서 소나무 아래 비석을 하나 세워주자고 제안했는데 김진호 대표가 비석 대신 벤치기증을 제안했다고 한다. 누구라도 이 벤치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쉬어갈 수 있기를, 누구라도 한 번쯤 이 자리에 앉으며 혹시라도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한 1년은 정상이 아니었어요. 항상 옆에 있는 것 같고, 어떨 땐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아이의 이름으로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 기부를 오래 지속하는 방법 사실 기부는 김진호 대표가 늘 생각하던 일이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는데 형제들을 둘러보니 세월이 흘러 다 팔아버리고 나중에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언젠가 나이가 들면 재산을 정리해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뜻하지 않게 아들 이름의 장학금을 먼저 기부하게 됐을 뿐. “교통사고 보상금과 취직했던 회사에서 들어준 상해보험, 장례식 부의금까지. 아들 이름으로 남은 돈은 1원 한 장까지 다 모았더니 한 5억이 되더군요. 여기에 돈을 좀 더 보태 신대방동에 원룸 건물을 하나 매입하고, 아들 이름을 따서 충연하우스라고 지었어요. 한 번으로 그치는 장학금이 아니라 좀 더 오래 기부하고 싶어서 생각한 방법이죠.” 충연하우스가 기금이 되어,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첫 해에는 2명, 이듬해부터는 3명으로 늘려 각 1백만 원씩 장학금을 수여했으니 올해까지 그 수혜자가 벌써 11명이나 된다. 선배가 주는 장학금 언젠가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단다. 받은 돈으로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학생에게 김진호 대표는 “아주 잘 했다”라고 칭찬을 해 줬다고 한다. 이 장학금이 무조건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는, 진취적인 꿈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돌아가는 게 김진호 대표의 바람이다. 절박한 친구가 받아 잘 쓰는 게 제일 좋고, 혹시라도 조금 여유 있는 친구가 받게 된다면 그동안 맘먹었는데 못했던 자기계발에 사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 절벽 시대라고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으면 젊은이가 아니에요. 세상을 두려워만 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말해요.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다, 니들 선배가 주는 장학금이다 라고요”. 기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 처음엔 하늘에 대고 화내는 심정으로 시작했다는 김진호 대표.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아들의 이야기가 이 사회에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든 혹은 다른 곳이든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문화를 자꾸 전파시키면서 경우의 수를 늘려나가고, 이것을 점차 전통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꼭 돈이 많아야 기부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 같은 경우도 있다는 걸,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한 저는 오래 기부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들의 뜻이고, 아들의 이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