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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 15

[동문][희망, 100°C]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함께 그려가는 한양의 미래

지난 2017년 11월 한양종합기술연구원(HIT) 1층에 문을 연 ‘양민용 커리어라운지’는 재학생들의 진로 준비 및 취업활동을 지원하는 복지공간이다. 오밀조밀 쓸모있게 지어진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보다 편리하게 취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한다. 학교의 발전상을 이 곳에서 직접 몸으로 느끼고 있는 재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임도균 학생(정책학과 4학년)은 “선배님들의 기부로 학교가 발전되는 모습을 보면서 강한 동기부여를 받게 된다”고 대답했다.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선배들이 있다는 자부심, 나아가 자신들 역시 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걷고 싶다는 동기부여야말로 ‘양민용 커리어라운지’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시너지가 아닐까. 선배가 끌고 후배가 밀며 한양의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현장, ‘양민용 커리어라운지’에서 양민용 동문을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양민용(영어영문학 77) 성광어패럴 회장 Q.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멋진 공간을 내어주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 한마디로 행복하고, 기쁨 그 자체입니다. 저의 작은 기부가 우리 후배들에게 꼭 필요한 공간으로 탄생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쁘고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77학번인데 그 사이 학교가 참 많이 발전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에 건물도 엄청나게 많아져서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캠퍼스에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아진 점도 무척 색다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저는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는데, 우리 후배들을 보니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언론에서 발표하는 모교의 평가 순위를 들을 때마다 자부심을 느끼고, 기회가 되면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싶다고 느낍니다. Q. 방글라데시에서 의류제조 사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랫동안 해외에 계시다보니 모교와 인연을 유지하시는 게 쉽지 않았을텐데, 어떤 계기로 기부를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 모교와 인연을 다시 맺게 된 조금 특별한 계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한 15년을 앓아온 지병이 있었습니다. 건선이라는 악성 피부병인데, 그 병을 치료하려고 독일의 뒤셀도르프 대학병원부터 런던, 일본, 싱가포르, 중국까지 안 다녀본 병원이 없을 정도로 백방으로 노력했는데도 낫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증세가 더 심해져서 거의 일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죠. 그래서 한국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양대학교 병원을 추천받아 깨끗하게 치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너무 감사해서 학교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언제든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그게 계기가 되어 학교에 처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 2016년 의과대학 메디컬센터 건립기금으로 2천만 원을 기부하신 게 바로 그때군요? 그럼 이번에 총장전략기금 5억 원을 기부하신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영문학과 1년 후배이자 현재 모교에 재직 중인 이기정 교수와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캠퍼스에 학생들의 커리어 지원을 위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이영무 총장님과 이기정 교수의 애교심, 겸손한 태도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학교가 이 분들의 소유도 아니고, 임기가 만료되면 보직을 내려놓으실 분들인데 이렇게 학교를 위해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엄청나게 감동이 되더군요. 이런 분들이 학교를 이끌어 간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고, 그래서 기꺼이 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 양 회장은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Q. 큰 돈을 주저 없이 기부하는 게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혹시 예전부터 기부에 뜻이 있으셨는지요? A.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 제 인생의 모토였을 뿐, 특별히 기부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고 살아서인지 기부나 나눔, 봉사에 대한 머뭇거림은 없었습니다. 기부는 습관인 것 같습니다. 머뭇거리는 건 습관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누구든 작은 기부라도 자꾸 하다보면 기부는 당연히 해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모교에 기부하시는 것 외에 특별히 마음을 쓰는 곳이 또 있으신지요? A. 제 사업체가 있는 방글라데시는 정말 환경이 열악한 곳입니다. 특히 교육여건이 그렇습니다. 학교들이 정부지원을 받지 못해 학교운영 자체가 어렵고, 학교 수가 워낙 부족합니다. 방글라데시는 신고만 하면 누구라도 학교를 지어 운영할 수 있어서 주로 외국인들이나 NGO단체들이 학교를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데, 운영자금이 너무도 절실합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10년 째 꾸준히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제가 지원하지 않으면 학교가 문을 닫기 때문에 정말 책임감을 많이 느낍니다. 돈을 버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다고 쓰지도 못하는 돈을 움켜쥐고만 있는 것은 바보같은 행동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가 쓸 수 있는 데까지가 자기 돈이지, 쓰지 않고 쌓아두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Q. 회장님의 기부철학에 영향을 준 사람이나 혹은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시골이 고향이라 초등학교 때부터 형, 누나와 함께 서울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매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썼는데, 어머니는 항상 “남이 한 번 밥을 사면 너도 꼭 사라. 절대 얻어먹고 다니지 말라”고 하시며 제가 원하는 액수보다 항상 1~2천원이라도 더 주셨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공부를 많이 하신 분은 아니지만, 베풀면 축복이 온다는 것을 자식들에게 늘 가르치셨습니다. 또한 남을 돕는 일이 축복이 오는 기회라는 것을 누구보다 제 스스로 수도 없이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Q. 기업을 경영하시며 직원을 채용해본 경험이 많으실텐데 후배들에게 취업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경영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인재상은 무엇입니까? A. 인성이죠.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좋은 인성을 가지고 있으면 사람이 발전하게 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습니다. 반대로 인성이 부족하면 실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겸손해야 올바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보신하기보다는 도전을 하라는 것입니다. 대기업만 찾고, 서울 근무만 찾고, 순간적인 이익만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는 우리 후배들이 중소기업이나 지방 근무나 불리한 근무조건에 실망하지 말고 일단 들어가 그 분야의 TOP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안전한 선택보다는 도전하기를, 우리 후배들이 인생의 개척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십시오. A. 저는 부족한 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겸손한 게 아니라 제 자신을 잘 압니다. 머리가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거나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항상 여러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고 따르는 편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계획이 있다면, 그동안 일에만 쏟아 부었던 에너지를 나눔으로 돌리며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동안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원이 2만 명이나 되니 잠도 제대로 편하게 잘 수가 없었거든요. 이제 사업활동은 좀 줄이고, 실질적으로 제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며 살고 싶습니다. 동행한대 2018년 Autumn (제11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아픔을 아픔으로 머물게 하지 말고 슬픔을 슬픔으로 남게 하지 말라

ERICA 캠퍼스 경상대학 건물 앞. 나란히 마주한 벤치 두 개가 눈에 띈다. 학생들이 많이 앉았었는지 원래 칠해졌던 밤색이 다 지워지고 좌석과 등받이 부분이 닳아 하얗게 바랜 모습이 유난히 정겹다. ‘(증) 김충연-02학번 경영학부 1983~2013’이라고만 간단히 씌어 있는 벤치. 바로 이 자리에서 故 김충연 동문의 아버지 김진호 대표를 만났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진호 수호스포츠 대표│故 김충연 (ERICA 경영학 02) 동문 부친 가장 보람 있는 선택 벤치에 앉아 등받이를 이리저리 쓰다듬는 김진호 대표의 손길을 보다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내 마음을 읽었는지 김진호 대표가 입을 열었다. “2013년 8월, 생일을 열흘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했어요. 기가 막힌 일을 당하고 난 뒤 깨달았죠. 인생은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내는 거구나.” 미국 출장 때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 마을에서 눈여겨봤던 벤치 기부를 이렇게 아들 이름을 넣어 활용하게 될 줄이야. 학교에서 소나무 아래 비석을 하나 세워주자고 제안했는데 김진호 대표가 비석 대신 벤치기증을 제안했다고 한다. 누구라도 이 벤치에 등을 대고 기대어 앉아 쉬어갈 수 있기를, 누구라도 한 번쯤 이 자리에 앉으며 혹시라도 아들의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다. “아들을 먼저 보내고 한 1년은 정상이 아니었어요. 항상 옆에 있는 것 같고, 어떨 땐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아프다고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어요. 아이의 이름으로 좀 더 보람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죠.” 기부를 오래 지속하는 방법 사실 기부는 김진호 대표가 늘 생각하던 일이었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있었는데 형제들을 둘러보니 세월이 흘러 다 팔아버리고 나중에는 아무 의미가 없더란다.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게 별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언젠가 나이가 들면 재산을 정리해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어 기부하기로 결심했다. 뜻하지 않게 아들 이름의 장학금을 먼저 기부하게 됐을 뿐. “교통사고 보상금과 취직했던 회사에서 들어준 상해보험, 장례식 부의금까지. 아들 이름으로 남은 돈은 1원 한 장까지 다 모았더니 한 5억이 되더군요. 여기에 돈을 좀 더 보태 신대방동에 원룸 건물을 하나 매입하고, 아들 이름을 따서 충연하우스라고 지었어요. 한 번으로 그치는 장학금이 아니라 좀 더 오래 기부하고 싶어서 생각한 방법이죠.” 충연하우스가 기금이 되어, 건물에서 나오는 월세 수입으로 2015년부터 매년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첫 해에는 2명, 이듬해부터는 3명으로 늘려 각 1백만 원씩 장학금을 수여했으니 올해까지 그 수혜자가 벌써 11명이나 된다. 선배가 주는 장학금 언젠가 장학금을 받은 한 학생으로부터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단다. 받은 돈으로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는 학생에게 김진호 대표는 “아주 잘 했다”라고 칭찬을 해 줬다고 한다. 이 장학금이 무조건 공부만 잘 하는 학생보다는, 진취적인 꿈을 갖고 있는 학생에게 돌아가는 게 김진호 대표의 바람이다. 절박한 친구가 받아 잘 쓰는 게 제일 좋고, 혹시라도 조금 여유 있는 친구가 받게 된다면 그동안 맘먹었는데 못했던 자기계발에 사용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용 절벽 시대라고 하지만, 그대로 주저앉으면 젊은이가 아니에요. 세상을 두려워만 하지 않도록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말해요. 이건 내가 주는 게 아니다, 니들 선배가 주는 장학금이다 라고요”. 기부,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 처음엔 하늘에 대고 화내는 심정으로 시작했다는 김진호 대표. 하지만 지금은 누구보다 아들의 이야기가 이 사회에 울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교든 혹은 다른 곳이든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문화를 자꾸 전파시키면서 경우의 수를 늘려나가고, 이것을 점차 전통으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꼭 돈이 많아야 기부하는 게 아니라고, 자신 같은 경우도 있다는 걸, 그리고 이런 방법으로 기부할 수 있다는 걸 알려 우리 사회에 기부문화가 더 확산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기부는 다음 세대를 위한 투자이자 의무라고 생각해요. 할 수 있는 한 저는 오래 기부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들의 뜻이고, 아들의 이름을 더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고 선한 행동은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남몰래 책상 위에 올려둔 도시락을 먹고 소년이 자랍니다. 소년이 먹은 건 단지 밥이 아닙니다. 그 속에 담긴 사랑일 겁니다. 소년은 성장해 훗날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고, 장학재단을 설립해 수많은 학생들을 돕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대학공부를 마친 아프리카의 한 청년은 보장된 자리를 마다하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갑니다. 배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찾아 학교를 세우고 사람을 길러냅니다. 지난 3월 한양대에 10억 원을 기부한 재미사업가 김동구 D.K.KIM 재단 이사장의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또 다른 사랑을 낳고, 한 사람의 선한 행동이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만들어 갑니다. 글 강현정ㅣ사진 현진 ▲ 김동구 D.K.KIM 재단 이사장 Q. 능산(能散)이라는 호에 이사장님의 삶의 철학이 모두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A. 예기(禮記) 곡례(曲禮) 편에 ‘賢者 積而能山 安安而能遷 (현자 적이능산 안안이능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재산을 쌓되 나누는데 능하고, 편안함을 즐기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뜻인데요, 이 구절에서 택했다며 지인이 지어준 호입니다. 세상을 살다 보니 이런저런 사유로 알게 모르게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게 되더군요. 특히 저는 한국 역사상 가장 어렵던 시절을 살아왔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그 시절을 겪으면서 나누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씨앗이 심어진 것 같습니다. 어찌어찌해서 올바르게 노력했더니 제게 더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그게 다 제 것은 아니지요. Q. 나눔의 삶을 살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A. 돈을 버는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며 살다 보니 갑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돈이 모이더군요. 그때쯤 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는 걸까 생각하다 보니, 옛날 내가 어떤 사람들한테 도움을 받았었는지 그런 생각들이 다 떠올랐습니다. 특히 나를 아무 대가 없이 진정한 사랑으로 돌보아주신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어요. 그 선생님을 생각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나 개인의 축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누기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했습니다. Q. 베풂의 삶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특별한 분이 있으신가요? A. 피난 시절 충남 합덕이라는 곳에서 한 1년 반 학교를 다니며 지낸 적이 있는데, 가뜩이나 보릿고개라 먹을 게 없던 때였어요. 도시락을 쌀 수 없었던 저는 점심시간이면 하는 수없이 밖으로 나와 운동장을 걸어 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제게 오시더니 “책상 위에 도시락이 있던데 가서 먹지 왜 나와 있냐?”라고 하시는 겁니다. 가봤더니 정말 도시락이 있더군요. 배가 고프니 그걸 먹었습니다. 누가 가져왔는지도 모르고 1년을 꼬박 먹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이 집으로 불러 시험지 채점을 시키신 일이 있었습니다. 때마침 저녁때가 되어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저녁상을 차려오셨는데, 그 저녁을 먹다 말고 눈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김치와 장아찌가 도시락에서 먹었던 그 맛이었거든요. 어린애지만 부끄러워할까 봐 아무도 모르게 도시락을 놓아두신 선생님.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날 밥을 먹으면서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Q. 이번에 한양대에 10억 원을 기부하신 건 어떤 인연에서인가요? A. D.K.KIM 재단을 설립하고 지원할 학교를 알아보다가 이영무 총장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한양대학교의 교수님들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분들이 진짜 교육자라는 생각이 들어 그게 참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방문해 역사관을 둘러보고 나가다 설립자이신 故 김연준 박사님의 설립정신이 새겨진 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실천’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표현은 다소 다르지만 제가 일평생 생각해왔던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일치했습니다. 그 생각을 실천하신 분이 나보다 훨씬 전에 여기 계셨다는 사실에 감동도 받았습니다. 이 학교가 나의 생각을 실천해줄 곳이라고 느꼈고, 한양대학교의 설립정신이 이 사회에 널리 퍼져 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Q. 한양대뿐 아니라 지금까지 캄보디아에 고등학교를 두 곳이나 세워 헌정하셨고, 미국 내에서도 오랫동안 UC버클리와 USC에 장학지원을 해 오신 걸로 압니다. 특히 교육분야에 꾸준히 기부하는 이유가 있으신지요? A. 어려서 꿈이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선생님이 되지 못했죠. 대신 다행스럽게도 많은 선생님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어렵게 살아온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모두가 잘 사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그 빠르고 정확한 길이 교육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옳은 결정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학생이 한 명 있습니다.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학생입니다. 제가 지원한 학생들은 주로 졸업을 하고 나면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됩니다. 그런데 그 학생은 졸업하고 바로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겁니다. 그곳에서 자선사업을 하고 학교를 세웠는데, 달랑 기계과랑 전자공학과 두 개밖에 없는 작은 학교지만 공과대학을 세워 그 나라에서 최고의 학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너무 기뻤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세상이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지요. Q. 이사장님이 성공을 일구기까지 지켜온 원칙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A. 저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물은 어차피 공동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열심히 그리고 올바르게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분배되는 거죠. 다만, 돈은 반드시 남의 주머니에서 기쁘게 나온 돈을 벌어야 합니다. 그래야 가치가 있습니다. 복권을 탔거나 억지로 쥐어짜서 버는 돈은 가치가 없습니다. 제가 자식들에게 돈을 주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면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 버는 방법이 정당해야 됩니다. 어디 내놔도 부끄러움이 없어야 되죠. 믿을지 모르지만, 무형의 가치를 실천에 옮기면, 더 많은 유형의 재산이 나에게 다시 돌아옵니다. Q. 실제로 무형의 가치 실천이 유형의 재산으로 돌아온 경험 한 가지만 들려주세요. A. 1979년인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일본의 엔화가 하루 사이 두 배로 오르고 반대로 원화는 반 토막이 났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에서 포토앨범을 제작해 다량을 수출하고 있었는데, 환율차로 원래 이익을 제하고도 50%의 추가 수익이 발생하는 상황이 된 겁니다. 수출액이 2백만 불이 넘었으니, 백만 불 이상이 하룻밤 사이에 공짜로 생긴 것입니다. 저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바이어와 추가 이익을 반씩 나눴습니다. 십여 년이 지나 저는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그야말로 사막에 떨어져서 오아시스를 찾고 있을 때였는데, 그때 이 바이어가 입이 닳도록 제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믿을만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까닭 없이 나눠줬던 5십만 불이 몇십 배가 되어 돌아왔는지 계산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당하게 벌고 가치 있게 쓰는 일만큼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다는 경험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은 보잘것 없지만, 최선을 다하는 누군가에게 길을 열어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앞으로도 기꺼이 돕고 싶습니다. 받아본 경험이 있는 저에게는 나눔이 더욱더 중요한 일입니다. Q. 이사장님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한양대에서도 또 다른 나눔으로 확산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학생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리겠습니다. A. 한국 학생들은 공부를 정말로 열심히 하고 많이 합니다. 그 자격으로만 보면 세상 어디 내놔도 떨어지지 않지요.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거기까지 가기 위해 너무 격심한 경쟁을 겪어서 자기 담벼락을 너무 높이 쌓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비를 위주로 하다 보면 그 경기는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내가 골을 넣어야 이기는 거죠. 너무 자기 것을 보호하려고 애를 쓰면 정작 세상의 것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기회란 아무 때나 오는 게 아닙니다. 너무 주저하는 사이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죠. 그만큼 성공확률도 줄어듭니다. 자기 보호를 하느라 체면을 따지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도전하길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8년 Summer (제10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나눌 수 있어 신바람난 이 남자

고슬고슬하게 지은 고두밥에 누룩을 섞고 물을 부어 한 열흘 묵혀두면 발효가 시작되며 술이 익는다. 물을 술로 만드는 힘은 얼마 안 되는 누룩 한 줌에서 나온다. 적다고 얕보지 마라. 누룩의 미약함이 독 안에 든 물 전체를 바꾸지 않는가. 행복은 어느 한 사람의 초인적 힘으로 만들어지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내 작은 실천에서 비롯되는 화학적 변화이기 때문이다. 나눔이 그렇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최종구 (정치외교학 84)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사회에 기여함으로 내게도 기쁨이 직업을 통해 사회를 이롭게 할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LCC(저비용항공사)에 대해 설명하는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최종구 동문의 모습에선 신바람이 절로 느껴진다. “저는 LCC의 존재 자체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항공사가 독과점 체제일 때는 항공요금이 비쌌지만, 저비용항공사가 생기면서 이제는 잘만 고르면 싼 요금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일함으로써 여행의 대중화가 가능해졌으니 그게 바로 보람입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힘이 넘쳤고, 더 잘해 보고픈 의욕이 옆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해졌다. 무엇이 최 동문을 이토록 신바람 나게 하는 걸까? 어디서 이런 의욕이 샘솟는 걸까? 정치외교학 후배들 위해 9년째 십시일반 최종구 동문은 지난 2010년부터 지금까지 9년째 정치외교학과 후배들을 위해 매월 3만 원씩 십시일반장학금을 기부해오고 있다. 9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꾸준히 모교와 끈을 이어오고 있다는 건 단순히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최근에는 사회과학대 장학금으로 매년 5백만 원씩 4년간 총 2천만 원 기부를 약정하기도 했다. 작은 관심으로 시작해 나눔의 영역을 점차 확장해 나간 것이다. 그리고 모교에 대한 기부 외에도 일터를 통해 싱글맘을 위한 대만 힐링여행, 홀로 사는 어르신을 위한 제주여행, 쪽방촌 연탄 나눔, 소아암 환우 돕기 등의 봉사활동을 끊임없이 벌여오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사회과학대학에 지속적으로 기부하고 싶습니다. 기부도 너무 한 곳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지 않습니까? 사회과학대는 정원수도 점점 줄고 상대적으로 기부도 적은 편이죠. 돈 버는 학문만 할 게 아니라 기초학문에 대한 투자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눔이 주는 짜릿한 카타르시스 도시의 밤하늘엔 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면 저만치 반짝이는 별 하나가 발견되고, 또다시 바라보면 그 옆에 또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눔도 똑같다. 나누다 보면 나눔이 필요한 곳들이 더 자꾸 눈에 들어오고, 외면할 수 없으니 또 돕게 된다. 그래서 결국 한 걸음을 뗀 사람이 두 번째 세 번째 발걸음도 뗄 수 있게 된다. 최종구 동문은 한사코 큰 금액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그 영역을 점점 확장한다는 건 나눔의 본질로 그만큼 더 깊숙이 다가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의 마음 씀이 결코 가볍다 할 수 없다. “저도 월급쟁이라 큰돈을 척척 기부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저의 작은 도움이 사회과학대 후배들에게 장학금이나 생활비로 사용될 걸 생각하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대학 졸업할 때까지 지원해주겠다, 결혼할 때 전세자금 일부를 도와줄 수는 있겠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라고요. 엄마 아빠가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올라와 일군 것이니 그 이상은 욕심내지 말라고 말입니다. 점점 더 삶에 가치를 둘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눔, 열심히 살아갈 동력이 돼 나눌수록 기쁨이 배가되는 원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최종구 동문을 보면, 어떤 형태로든 사회를 위해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은 결국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열심히 살아갈 동력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큰 금액의 기부보다 소액 기부의 가치가 굉장히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이 어렵지 일단 시작하고, 꾸준히 실천하다 보면 누구나 나눔의 기쁨과 보람을 경험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사랑, 36.5°C] 한양 쥬빌리, 한양 간호학이 꿈꾸는 미래 100년

2019년 12월은 한양대 간호학부가 설립인가를 받은 지 꼭 50년이 되는 해이다. 지금까지 반세기를 달려온 한양대 간호학부가 남은 반세기를 향해 백년지대계를 완성할 채비를 구축하고 있다. 사랑을 실천할 간호 인재 육성과 미래교육을 위한 교육 공간 마련을 위해 선배들이 나섰다. 글 강현정ㅣ사진 이서연 ▲ 탁영란 (간호학 77) 한양대학교 간호학부장, 이선이 (간호학 77) 한양대학교 간호학부 동문회장 한양간호 인재육성을 위한 미래교육관 건립, 미래 간호 리더의 산실이 되어주길 한양대 간호학부가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은 1900여 명. 졸업 후 대부분 동종 업계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특성상 아무래도 다른 학과에 비해 동문 모임도 활성화되어 있는 편이다. 간호학부는 기수 당 40명 소수 정예로, 간호사로 평생 같은 보건의료현장 혹은 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경우가 많아 유독 끈끈한 유대감을 자랑한다.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간호학부와 간호학부 동문회는 지난해 12월 13일 ‘한양 간호, 힘이 되는 밤’을 개최하고 그간 오랜 숙원이었던 교육혁신과 미래교육관 건립에 뜻을 모았으며, 2019년 50주년 기념해까지 모금 캠페인을 지속적으로 진행하여 십시일반 정성을 모으고 있다. 후배들이 미래 보건의료 인재로 사회의 힘이 되어 날아오를 수 있도록 교육혁신 인프라를 마련해 한양 간호의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것이다. 다음은 간호학부장 탁영란 동문 및 간호학부 동문회장 이선이 동문과 나눈 일문일답. Q. 간호학부 설립 50주년을 기해 ‘한양 나이팅게일 쥬빌리 기금’ 캠페인을 진행 중이신데요. 어떻게 이런 계획을 마련하게 됐습니까? 탁영란_교육에 있어 50주년은 변화의 상징을 필요로 하는 중대한 의미를 지닙니다. 간호학부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공간’이었거든요. 학생들의 학습공간이 현대 간호교육에 적합하냐에 대해 늘 도전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실무 중심으로 이뤄지는 간호교육은 임상실무의 혁신을 위해 교육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교육 공간 혁신을 위해 기금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나왔고, 이번에 우리가 제2의 도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감도 느꼈고요. Q. 그게 바로 ‘한양 나이팅게일 쥬빌리 기금’이군요. 탁영란_네, 저희 간호학부가 원래 모으고 있던 발전기금이 있었는데, 여기에 지난해 ‘한양 간호, 힘이 되는 밤’을 열어 캠페인을 선포하고 쥬빌리 기금으로 확대했습니다. ‘쥬빌리(Jubilee) 기금’ 명칭은 원래 나이팅게일이 간호사로서 소명을 밝힌 지 50년이 되던 해에 만든 간호교육기금이에요. 간호교육의 미래 100년을 위해 점진적으로 나아가되 50주년 기점으로 미래교육의 혁신을 도모하고 새로운 교육공간을 마련하자는 목표를 갖고 쥬빌리 기금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습니다. 후배들을 더 잘 키워내기 위해서는 교육에 투자해야 하고, 결국 이것이 우리 선배들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Q. 이선이 동문회장님은 한양대 구리병원 간호국장으로 지내시다 지난해 퇴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시점에 동문회장을 맡아 어깨가 무거우시겠어요. 이선이_일단은 50주년까지 미래교육관 건립에 목표를 두고 집중하고 싶고요.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선배가 후배들을 위해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한양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그동안도 사실 꾸준히 기부를 해왔어요. 어차피 한양 식구니까요. 마치 내 집 보수하면서 내 몫의 벽돌 한 장을 얹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죠. 나의 모교가 좋은 평가를 받고 이미지가 좋아지면 저에게도 그게 기쁜 일이거든요. 선배가 후배들을 위해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는 문화를 뿌리내리고 싶어요. Q. 앞장서시는 분이 항상 솔선수범하게 되죠. 이번에 탁영란 학부장님과 간호학과 재직교수 6인이 2억 원, 이선이 동문회장님이 천만 원을 쥬빌리 기금으로 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소감이 어떠십니까? 탁영란_이번에 쥬빌리 기금을 조성하면서 느낀 게 참 많아요. 우리 졸업생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모교사랑이 참 대단하다는 걸 느꼈어요. 한양 간호에 힘을 보태고자 하는 선배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고, 그런 점에서 교수님들도 많이 붐업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함께 힘을 보탤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기뻤고, 동문들에게서 학교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어 기쁘고 스스로 회복되었다 문자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선이_저는 우리 한양대 간호학과가 좋은 인재를 키워내고 밖에 나가서도 어느 대학에 밀리지 않는 후배들로 커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후배를 받고 싶고, 그러려면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건 선배들이 만들어줘야 하는 건데, 말로만 잘 크라고 할 수는 없죠. 후배들을 위한 초석을 다져주고 투자를 해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선배의 마음입니다. 그런 면에서 제 도리를 했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낍니다. Q. 동문회장으로서 계속 동문들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독려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선이_ 동문회장을 맡고 나니 동문들에게 기부를 독려하고 대표로 앞에 나가 말을 할 기회가 많아졌는데요, “누가 얼마 했으니 여러분도 얼마 정도는 해 달라”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모금 캠페인을 하면서 저는 정말 우리 동문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변에서 다른 대학 친구들이 노하우를 물어보지만, 사실 노하우는 없습니다. 진짜 우리 후배들을 위해 뭔가를 해주고 싶은 진심이죠. 말로써 설득하는 게 아니라, 동문들이 자발적으로 학교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있도록 선후배가 더 친해지고, 더 끈끈한 유대감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이번 기부를 계기로 학교와 동문 그리고 후배, 서로에게 마중물이 되어주길 끝으로 이선이, 탁영란 동문은 후배들에게 ‛한양다움을 잃지 말아줄 것’을 당부했다. 한양인 특유의 따뜻함, 측은지심을 갖고 있는 간호사, 마찬가지로 동문들끼리도 그런 마음으로 후배들이 힘들 때 도움이 되어주는 선후배 관계를 지속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교가 발전해야 현장에서 일하는 동문들도 한양의 힘으로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게 된다. 마중물, 펌프에 흘려버리는 한 바가지 물이 우리 모두의 목을 풍성하게 적시듯, 학교와 동문이 서로를 끌어줄 때 비로소 함께 성장해가는 역사를 쓰게 된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5

[동문][희망, 100°C] 한양의 색채로 시대를 리드하라

배움의 요람은 실로 놀랍다. 이 요람을 거쳐 간 이들은 마치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난 자식들처럼 묘하게 그들만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학풍이랄까? 이십 대 청춘을 이곳에서 물들인 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는 빛깔이 있다. 변봉덕 회장도 그랬다. 한양의 빛깔을 가졌으니, 유연하되 단단하고 역동적이지만 안온함이 내재한다. 글 강현정ㅣ사진 남윤중 ▲ 변봉덕 (수학 58) (주)코맥스 회장 사람이 최고의 자산 변봉덕 회장은 1968년 중앙전자공업사로 시작해 (주)코맥스를 스마트홈 IoT 시스템 분야 글로벌 톱 브랜드로 끌어올리기까지 회사를 진두지휘해 왔다. 전화교환기부터 도어폰, 이제는 스마트홈 시스템과 시큐리티 솔루션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기까지 그 모든 역사를 하나하나 직접 써왔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직접 그림으로 그려 금형을 요청해 디자인에 반영했고, 가방 하나 달랑 들고 전 세계를 다니며 회사를 알리고 거래처를 개척했다. 시대의 발전을 반 발짝 리드하며 차근차근, 하지만 탄탄하게 성장해온 코맥스는 최근 ‘2018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대상’에서 리더십 경영대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장기간 건실한 기업경영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문 장수기업’ 선정과 ‘금탑산업훈장’도 수훈했다. 말 그대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모든 게 자동으로 이뤄지는 꿈같은 기술을 우리 눈앞에 고스란히 가져다준 사물인터넷의 발전을 주도하는 위치에 올라섰건만 변봉덕 회장은 요란하게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는다. “나는 기술도 없고, 경영능력도 없고 판매능력도 없어요. 그런데 시작해놓고 보니 만들기도 해야 하고, 팔기도 해야 되고, 서비스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떡해요? 사람이 제일 중요하죠. 관계를 맺으면 신뢰를 주고, 끝까지 지켜내는 걸로 여기까지 왔어요.” 바쁘되 분주하지 않고, 첨단기술로 무장했으나 사람을 제일로 여기는 가치. 그래서 코맥스를 거쳐 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 신뢰의 관계망 안에서 촘촘하게 지속성을 유지한다. 거래처도 처음 관계 맺은 그 거래처가 지금까지 이어지며, 대리점을 하는 이들도 대부분이 코맥스 출신으로 한 번 맺은 관계를 끝까지 지켜내니 애사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정직을 실천해내는 것 변봉덕 회장은 정직을 실천해낸 것이 오늘의 코맥스를 만들었다며, 사업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사업 초기 겪었던 대량 리콜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지금으로부터 45년 전, 사업 초기였다. 그런데 이미 판매한 제품에서 불량이 발견된 것이다. 불량품을 회수하자니 문을 닫게 생겼고,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난 것이다. 변 회장은 용단을 내렸다. 비록 회사가 문을 닫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믿고 물건을 구입해준 사람들에게 보상해줘야 한다고. 변 회장은 구매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불량품을 전량 회수했다. 고객에게 책임을 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는 리콜이라는 제도 자체가 아예 없던 시절. 잘못을 인정하고 새 제품으로 교환해준다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오히려 의아하게 생각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덕분에 회사는 고객들에게 신용이라는 큰 자산을 얻을 수 있었고, 그때의 교훈이 지금까지 코맥스의 기업철학이 되었다. 정직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정직은 결정적인 순간 지름길 대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하게 한다. 잠깐은 손해를 안겨줄 게 분명하지만, 그러나 변봉덕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또렷이 말해준다. 피하지 않고 정직한 선택을 했던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성장의 동력이 됐다고 말이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문제는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 접근하는 방법이다. 회피하지 않을 때, 실패는 성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 한양스타트업타운 조성 기금 10억 원 기부 아니나 다를까.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친구로, 후배로, 그리고 고스란히 모교사랑으로도 이어졌다. 그간 경영활동으로 바쁜 와중에도 1987년부터 1996년까지 제 9, 10, 11대 총동문회장을 역임하는 등 남다른 애교심을 보여 왔던 변 회장이 이번에는 후배들의 창업지원을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재학생 창업지원공간인 ‘한양스타트업타운’의 조성 기금으로 모교에 10억 원을 기부한 것이다. “우리 대학은 창업자가 공업화의 역군이었고, 한양공과대학에서 시작한 뿌리를 갖고 있는, 실학적 학풍을 가지고 있는 대학이거든요. 한양스타트업타운을 통해 우리 후배들이 도전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아낌없이 던져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변봉덕 회장은 후배들에게 주변에 무한한 기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많은 사람들이 늘 기회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자신이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그 방향으로 매진하다 보면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한양은 나의 뿌리 변봉덕 회장은 자신 역시 한양의 뿌리에서 자라났기에 모교에 기부하는 일만큼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모교를 도울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능력이 된다는 건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라고 말했다. “제 일생을 한양대학교 졸업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지 않습니까? 한양은 내 이력에 영원히 남을 이름이죠. 모교가 발전해야 나의 긍지도 커지는 것이며, 모교를 자랑스럽게 만들어야 할 책임도 동문들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대학이 존경받는 대학이 되고 많은 인재를 배출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동문으로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양에서 배우고 익히고 숙성해낸 경험들을 바탕으로 충실하게 한 시대를 살아냈고, 이제는 견고하게 뿌리내린 큰 나무가 되어 후배들을 위해 그늘을 내어주는 선배. 한양으로부터 받았고 다시 한양으로 전수하며, 그렇게 한양의 빛깔로 세상을 물들인다. “우리 대학이 벌써 32만 명의 인재를 배출했다고 하는데, 이제는 모교 발전을 위해 동문들이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노력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거든요. 동문들이 함께 참여해 더욱 발전된 한양의 모습을 만들기를 바랍니다.” 동행한대 2018년 Spring (제09호) 이북 보기

2019-03 11 중요기사

[동문]그림책 작가가 된 건축학도

한 청년이 책 <그림책의 모든 것>을 쥐고 건축학부 수업이 있는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과학기술관 건물로 들어간다. 그림책의 대표 이론서로 불리는 책을 헤질 때까지 읽던 그는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하던 정 동문은 대학교에 입학한 후 그림책 작가로 데뷔한다. 어떤 계기였을까? 지난 8일 학교 앞 카페에서 그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 어릴 때부터 그림책을 좋아하던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은 학부 시절 강민경 인문과학대학 교수의 도움을 받아 <위를 봐요!>를 출판했다. 정 동문은 두 살 때 사고를 당한 뒤, 유년 시절 대부분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병실에서 할 일이 없어 그림책을 보기 시작했는데, 푹 빠진 후 커서도 보게 됐죠.” 그는 크면서 건축가라는 꿈이 생겼다. 한양대에서 건축을 공부했지만 학부 시절 건축회사 인턴을 한 뒤 생각이 달라졌다. “가고 싶던 건축 회사에서 7개월 정도 인턴을 했는데 제 생각과 업무가 달라 실망했죠.” ▲ 책 <위를 봐요!>의 한 장면이다. 책 <위를 봐요!>는 몸이 불편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정진호 동문 제공) 반면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여전했다. 대학생이 되어서는 읽는 것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그림책을 만들었다. 그림책 출판의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당시 강민경 인문과학대학 교수님이 개설한 동화책 관련 교양 수업을 들었어요. 교수님께 평가받고 싶은 마음에 제가 만든 그림책들을 보여드렸죠.” 정 동문의 작품을 높이 산 강 교수는 그림 파일을 여러 출판사에 보냈다. “그중 한 출판사가 책을 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죠. 그렇게 출판한 책이 <위를 봐요!>입니다.” ▲ 그림책 작가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이 자신의 책 <벽>을 보고 있다. <벽>은 3차원의 입체공간을 창의적으로 보여준다. 책 <위를 봐요!>는 몸이 불편해 병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주인공 ‘수지’의 시선을 보여준다. 유년기를 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정 동문의 기억이 담긴 이야기이기도 하다. 책 <위를 봐요!>는 보는 방향에 따라 사람이나 사물이 전혀 다르게 보인다는 점을 주시한다. 이후 출판한 책 <벽>도 마찬가지다. 방향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3차원의 입체 공간을 표현했다. 두 책 모두 건축학도의 시선이 녹아있는 점이 특징이다. 건축가라는 꿈에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정 동문에게 건축은 여전히 작품 속에 살아있다. 정 동문의 두 작품은 세계 최고 권위의 그림책 상인 ‘볼로냐 라가치’ 수상작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위를 봐요!>는 지난 2015년 오페라 프리마 부문 관심작에, <벽>은 작년 ‘예술〮건축/디자인(ART, ARCHITECTURE AND DESIGN)’ 부문 스페셜멘션(특별언급)에 선정됐다. ▲ 책 <벽>의 한 장면이다. 데뷔 5년 차 작가인 정진호 동문(건축학부 06)의 목표는 꾸준히 활동하는 작가다. (정진호 동문 제공) 정 동문은 평균 1년에 한 권의 창작 그림책을 출판한다. 주로 연초에는 작품을 만들고 나머지 시간에는 그림책 수업과 강연을 나간다. 정 동문은 현재 작업 중인 책에 대해 살짝 귀띔했다. “지금까지는 건축의 모습을 책에 많이 담았지만, 이번엔 도시의 모습을 담으려고 해요. 제목은 ‘까만 도시’로, 검은색 도시가 색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릴 겁니다.” 이제 데뷔 5년 차인 정 동문의 목표는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다. “예전에 존경했던 교수님이 ‘꾸준히 그 자리에서 노력한 사람이 대가’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저도 거창한 목표 없이 작가로서 계속 활동하고 싶어요.” 끝으로 그는 한양대 학생들에게 “전공과 다른 길을 걸어도 괜찮다”는 말을 전했다. “오히려 전공과 다른 일을 택했을 때 자신만의 특징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양하게 도전해 보고 겁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전공과 무관한 길을 택했기 때문에 오히려 행복하다는 정 동문이다. 글/ 옥유경 기자 halo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3 10 중요기사

[동문]대한민국과 한양대를 빛낼 예술인, 박지윤

국악(國樂)은 나라의 고유한 음악이다. 대표적인 국악기인 가야금은 900년 가까운 역사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즐기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에 가야금이 따분하다는 시선을 바꾸기 위해 고민하던 박지윤 동문(음악학 박사)은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추구하며 가야금의 새로운 모습을 세계에 알렸다. 곰삭은 소리를 내기까지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던 박 동문은 음악 콩쿠르에서 대상을 받는 등 악기 연주에 재능을 보였다. 이모부이자 인간문화재인 고흥곤 선생의 가르침으로 가야금을 중학교 때 시작했고,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을 했어요. 초등학교 때 피아노로 쇼팽의 교향곡을 치던 아이에게, 단선 악기인 가야금은 상대적으로 쉬웠죠.” ▲지난해 12월에 열린 서초교향악단과의 협연에서 '25현 가야금'으로 새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박지윤 동문(음악학 박사) 가야금에 매력을 느낀 박지윤 동문은 화려한 가락이 돋보이는 김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30년간 끊임없는 연주자의 길을 달렸다. “가야금에도 산조가 다양해요. 고등학교부터 대학교때까지는 김죽파류를 연주했는데, 이와 굉장히 상반되는 산조인 김병호류도 연주해보고 싶었습니다.” 박 동문은 김병호류 산조를 공부하고, 가야금으로 '곰삭은 소리'를 내기 위해 한양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곰삭은 소리'는 무르익는다는 뜻으로, 손 끝에서 나는 성음이 깊을 때 사용한다. 서양 음악과의 만남 세계가 변화하는 만큼, 가야금 또한 다양한 형태로 개량됐다. 박 동문은 ‘줄의 수에 따라 17현, 18현, 25현 가야금 등이 있고, 25현은 거의 모든 곡을 연주할 수 있어서 퓨전 국악이나 협주곡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전통음악을 고집하지 않되 서양음악을 그대로 따라 하지도 않는 새로운 음악을 추구한다. “세계적인 음악은 오케스트라로 연주되죠. 저는 배경음악은 세계적이지만 익숙하고도 가야금이 주가 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습니다.” 박 동문은 지난해 12월 서초교향악단과 함께 독주회를 열었다. 이는 박 동문의 명성을 드높이는 기회가 됐고, ‘2019년 대한민국을 빛낼 인물·브랜드 대상’ 중 ‘예술인 부문 대상’ 수상의 명예로 이어졌다. 그는 올해 아시아 금(琴) 교류회 연주, 음반 발매, 중국 난닝에서 개최하는 축제 참여 등 서양 음악과 조화가 어우러진 가야금 연주를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다. 잘 가르치는 교수 박 동문은 모교인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출강하면서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음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로 가톨릭대학교 통합예체능과목 교수로 활동하며 동시에 한양대에서 강사로도 나서고 있다. 박 동문은 '제일 뿌듯한 순간은 가르쳤던 학생들이 콩쿠르나 정기 연주회 때 빛날 때'라며, 지금처럼 한양대가 국악으로 빛나기 위해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박지윤 동문의 최종 목표는 '국악을 통해 한양대의 이름을 드높이고, 대한민국을 빛낼 수 있는 음악가가 되는 것'이다. “가야금 연주자로서 대한민국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저의 꿈도, 학생들의 꿈도 모두 이뤄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2019-02 21

[동문][NOW 꿈꾸는 사람들]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한양인

2006년 한국인 최초 UN 사무총장이 선출됐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기뻐했다. 국제기구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그 위상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작은 무대에서 세계를 누비는 일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유엔협회세계연맹(WFUNA)의 일원인 이영진 동문은 그 꿈의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쉽게 들여다볼 수 없는 세계라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 글. 강숙희 사진. 안홍범 ▲ 이영진 동문(국제학부 08) 책임과 어려움 있어도 보람과 성취 커 “처음엔 프로젝트사무소로 작게 시작된 곳이에요. 그러다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선출되면서 한국 내 UN 인지도가 더욱 높아졌고, 연맹에서도 마침 아시아·태평양권에 사무국을 찾고 있던 상황이라 서로의 요구가 맞아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에 이어 2015년에 세 번째로 한국 서울에 사무국을 차린 거죠.” 이영진 동문이 활약하고 있는 유엔협회세계연맹은 UN과 별도로 설립된 독립적 비영리 국제기구다. UN의 활동과 비전을 지지하고 이를 시민사회에 알리며 서로를 연계하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유네스코와 유니세프 등 또 다른 국제기구와의 협력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는 교육 주임으로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참여할 수 있는 청소년 캠프와 UN본부 연수 프로그램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한국 대학생 대표단을 UN본부에 파견해 관계자들과 토의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일을 돕고 있다. 이는 UN이 청년들의 생각을 소중하게 여겨 가능한 일이다. 그와 UN의 인연은 꽤나 길고도 깊다. 고등학교 때 담임교사의 추천으로 모의 UN 활동을 한 경험을 계기로 국제학부에 진학했다. 캠퍼스 생활을 하면서 한양대에 모의 UN을 만들어 사무총장으로서 매년 모의 UN을 개최하기도 했다. 그렇게 국제기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연맹 관계자의 추천으로 청소년 캠프 강사 역할을 맡게 됐다. “연맹 활동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꼭 함께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여기가 아니었더라도 국제기구 어딘가에서는 일하고 있었을 거예요.” 사실 국제기구라고 해서 모두 직원이 많은 건 아니다. 서울 사무국 직원만 해도 여섯 명이 전부다. 이는 뉴욕과 제네바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반 기업에 비해 담당해야 하는 일의 범위가 넓고 그로 인한 책임감과 어려움이 크다. 하지만 워낙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데다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통해 능력을 키울 수 있어 만족도가 매우 높다. 뜨거운 가슴으로 교류하고 토의하라 이영진 동문은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주재원으로 발령받아 5년간 아프리카 수단에서 학교를 다녔다. 이때의 경험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에는 언어를 익히는 게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한국에서처럼 학원을 다닐 필요가 없어 무척 즐거웠다. 방과 후엔 늘 다양한 여가 활동을 즐기고 운동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사귀고 교류하며 국제적인 시야를 갖췄다. 한양대 재학 시절, 대부분 외국 생활 경험이 있는 국제학부 친구들과도 그런 면에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워낙 열정적인 성격에 활동 분야도 넓어 학생회와 영어 토론 동아리 등에서 활약했다. 특히 교류하고 토의하는 복합적인 활동은 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애써 모의 UN을 한양대에 도입한 것도 그런 열정의 일환이다. “다른 학교에는 있는데 왜 우리 학교에는 없을까 고민하다가 친한 친구와 함께 임시로 사무국을 만들었습니다. 실제 UN 의제를 바탕으로 주제를 선정하고 참가자를 모집했죠. 모든 회의가 영어로 진행됐는데, 무려 백 명 가까운 학생들이 참여했어요. 정말 가슴 뜨거운 순간이었습니다.” 비록 모의이긴 했지만 실제 UN 의제를 가지고 젊은 시각으로 다시 토의하는 건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 이 동문은 "아이들이 진로를 정하고 꿈을 꾸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별 생각 없이 캠프에 참여했다가 중요한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걸 보면 감동적이더라고요." 라고 말한다. 교육으로 변화하는 세상 이러한 과정에서 필요한 능력은 바로 소통과 설득 그리고 이해다. 그런데 열정과는 별도로 이영진 동문은 의외로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발표하고 토의하면서 위축되기보다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그렇게 딛고 일어난 힘으로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졸업 전까지 참여한 프로그램이 무려 20여 개. 난민 문제와 환경 등 국제 이슈에도 관심이 많았고, 이를 조율하고 고민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보람을 느껴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나갔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느낀 것 중 하나가 바로 아이들에게 미치는 교육의 효과였다. 교육과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된 그는 교육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아이들이 진로를 정하고 꿈을 꾸는 것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낍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별 생각 없이 캠프에 참여했다가 중요한 국제 이슈에 관심을 갖고 파고드는 걸 보면 감동적이더라고요.” 지식 습득이 아닌 토의와 협상을 통해 교류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의 진정한 성장을 느낀다는 이영진 동문. 처음엔 자료 찾는 일도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노하우를 발전시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자주 놀라곤 한다. 물론 충분한 과정을 겪어야 가능한 일이다. ▲ 2017 제8회 WFUNA 청소년 캠프 ▲ 2018 UN청소년환경총회 대표단 워크숍에서 이영진 동문이 발표하고 있다 ▲ 2019년 2월에 뉴욕 UN본부로 출국하는 제5기 WFUNA UN본부 한국 대학생 대표단 발대식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 많은 이들이 국제기구를 보는 시선은 대체로 비슷하다.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의 자세한 활동은 알지 못하지만 그 명예에 대한 선망만은 명확하다. 하지만 아무리 평화를 기반으로 하는 국제기구라 해도 협의 과정을 주로 거치는 만큼 실제론 정치적 경쟁도 치열하다. 스트레스도 잦고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사소하게는 연맹에서 국제회의를 할 때 시차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아 밤 10시에 회의를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그럼에도 국제기구 취업을 희망하는 이들이 많다. 힘든 상황을 잊게 할 만큼 보람과 성취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경쟁률도 무척 높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연맹의 경우는 영어와 불어가 주 언어라 둘 중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팁은 언어 능력 중에서도 보고서 작성이 많은 만큼 쓰기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는 거예요. 이 외에도 팀워크가 필요하고 창의성도 갖춰야 해요. 또 학습에 대한 열의도 있어야 하고요.” 꿀팁 하나 더. 국제기구라도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곳을 정해 해당 기구의 업무 분위기나 실제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는 인턴십을 통해 직접 업무 분위기를 파악해보길 추천한다. 현재 유엔협회세계연맹에도 한양대 학생이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유엔의 경우 관련 사이트(careers.un.org)에 가면 직무기술에 대한 소개가 자세히 나와 있으니, 이를 분석해 준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취업을 앞두고 하는 준비가 모두 결과 중심이라 가끔은 안타까워요. 수료증 하나 더 받으려고 애쓰지 말고 어떤 활동이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그 과정을 즐겼으면 좋겠어요. 이를 통해 배우는 경험과 교류가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갈 큰 방향을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전문가로 성장하기 위해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 역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등 교육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교육이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믿는 이영진 동문.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꿈을 활짝 꽃피우는 일은 그의 말대로 과정을 즐기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사랑한대 2019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9-02 21

[동문][도전 #해시태그] 창업, 농업을 만나다

구한솔 ㈜농사청 대표가 한국 농업의 새 길을 열고 있다. 농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해 농자재를 온라인에서 구매할 수 있는 플랫폼 사업을 준비 중이다. 농사청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건강과 여유를 찾아주자’는 작은 생각에서 출발했다. 글. 유승현(학생기자) 사진. 안홍범 ▲왼쪽부터 농사청의 유지원 팀장, 구한솔 대표, 백가영 팀원 ▲ 구한솔 ㈜농사청 대표(파이낸스경영학 12) 농업을 사랑하는 청년들 농사청은 ‘농업을 사랑하는 청년들’을 줄인 말이다. 구한솔 대표(파이낸스경영학12)를 중심으로 2018년 초 유지원 팀장(중앙대 경영학 16)과 백가영 직원(중앙대경영학 16)이 만나 회사를 꾸렸다. 이들은 지속 가능한 농업 생태계, 도시농업 활성화, 가드닝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농사청은 첫 프로젝트로 온라인 쇼핑몰 ‘팜디포’를 기획했다. 기존 오프라인에서 유통하던 농자재의 판매 범위를 온라인으로 확장하려는 것이다. 팜디포 홈페이지(farmdepot.co.kr)에는 홈 가드닝용품부터 씨앗, 모종, 비료, 농기구, 묘목까지 다양한 제품이 올라와 있다. “한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전자상거래(이커머스)가 활발한데, 유독 농업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복잡한 농자재 유통 구조로 인해 소비자는 불편을 겪고, 생산자는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죠. 그래서 소비자가 다양한 농자재를 쉽고 빠르게 구매하고 나아가 유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을 떠올렸습니다. ”현재 팜디포는 농업 자재 구비와 쇼핑몰 홈페이지 단장을 마친 상태다. 오는 3월 초 론칭 이벤트와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전업 농부뿐 아니라 농사를 취미로 즐기는 도시인 모두 만족할만한 농업 환경을 조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창업에 빠진 시골 청년 구한솔 대표가 처음부터 창업에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는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반년 준비했고, 신림동에서 1년 반가량 행정고시 공부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주어진 내용을 익히는 것보다 직접 기획하고 꾸리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는 것을. 그래서 수험 생활을 접고 꿈을 찾는 여정을 떠났다. 가장 먼저 동문 스타트업 기업이자 인공지능(AI) 전문 개발사인 ‘블랙루비스튜디오’의 기획팀 인턴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어 사회혁신 비즈니스 동아리(SEN)에도 들어갔다. 이곳에서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소셜 비즈니스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유지원 팀장, 백가영 직원과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구한솔 대표가 농업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류창완 산업융합학부 교수의 농업 벤처 서적 집필을 보조하면서부터다. 프로젝트를 도우며 국내 농업 관련 정책이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약한 한국 농업 벤처의 현실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영향을 준 건 피부로 느낀 농촌 생활이었다. 충남 공주 출신인 그는 시골에서 자랐다. 농사를 짓던 외할아버지의 논과 밭에서 자주 뛰어 놀았다. 어릴 적부터 농촌이 친숙했다. 덕분에 농업이 눈에 띄게 쇠퇴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생각이 비슷했던 유지원 팀장과 백가영 직원이 뜻을 함께했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 1차 산업입니다. 그만큼 농업은 중요한 산업이죠. 하지만 정부에서는 농민을 지원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이나 이스라엘 같은 경우 농업 벤처 사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농업을 비즈니스로 접근해 농업 생태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농사청은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에서 주관하는 세대융합 창업캠퍼스 사업에 선정돼 약 9000만 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이들은 정부과제를 수행하며 창업을 이어가고 있다. ▲ #팜디포 #농자재 온라인 플랫폼 #farmdepot.co.kr 창업하기 좋은 한양대 구한솔 대표는 지난해 4월 개관한 한양대 창업기숙사 ‘247 스타트업 돔’에 1기로 입사했다. 247 스타트업 돔은 우수 학생창업기업의 발굴과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공간이다. 매년 30명을 선발해 1년간 기숙사실과 전용 창업 활동 공간 등을 제공한다. “247 스타트업 돔에는 다양한 스타트업 기업 대표들이 입주해 있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각자의 경험을 공유하며 배울 수 있는 데다 자극을 받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는 창업지원단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사업의 방향을 잡고 회사 운영 방법을 터득하는 등 창업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 “한양대는 창업 엑셀러레이팅 제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학생 입장을 고려한 창업 컨설팅도 진행됩니다. 저는 ‘점심한끼’ 프로그램에 참여해 창업지원단 교수와 식사하며 편하게 아이디어를 상담받기도 했습니다. 창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라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어요.” 또 창업지원단 ‘한양스타트업아카데미’에서 인사를 비롯한 재무와 세무에 대한 기초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힘들어도 즐거우니까 전공을 살리면 금융 회사에 어렵지 않게 들어갈 수도 있었을 터.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을까. 실제로 부모님이 걱정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차라리 취업을 할 걸 후회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걱정은 확신으로 변했다. 농자재 업체 종사자와 농부 등 업계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이 생각한 아이디어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막연했던 일도 점차 현실화돼 갔다. 약 열 곳의 기업과 제휴를 맺고, 온라인에서 판매할 농자재도 구비했다. “지난해 1학기까지 1년간 창업과 학업을 병행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즐거웠어요. 힘들었지만 좋아하는 일이어서 힘이 났죠.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습니다.” 구한솔 대표는 직접 농사도 짓는다. 회사 건물 베란다에서 오이, 토마토, 나팔꽃, 채송화 등을 키우고 있다. 불편한 점을 직접 느껴보며 소비자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헤아리고 싶은 마음이 크다. 게다가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루는 잘 자라던 오이에 반점이 생기더니 이틀 만에 죽었어요. 이유를 몰라 답답했죠. 그때 농사 관련 지식이 부족한 도시농부를 위해 농사 지식을 제공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올해는 성동무지개텃밭을 분양받아 직접 농사를 짓고 수익을 학교에 기부할 계획이다. 도시농업 선구자를 꿈꾸다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은퇴 후 귀농을 희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도시농업을 장려하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2018년 초 ‘제2차 도시농업 육성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도농 상생 사업 기반을 마련해 2022년까지 도시농업 참여자를 400만 명으로 늘릴 방침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서둘러 ‘도시농업 5개년 발전계획’을 구축하고 있다. “저는 이 분야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에서 육성하는 산업인데도 아직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거든요. 농사청은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남보다 앞서 시장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농사청은 당분간 온라인 쇼핑몰 홍보에 주력할 계획이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팜디포를 널리 알리는 것이 목표다. “우선 팜디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론칭시키고 싶습니다. 이후 현대인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농업 관련 프로젝트를 꾸준히 진행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동아리 차원의 농촌 봉사 활동(농활)이 아닌 농부와 대학생이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농사청은 도시농업 선구자를 꿈꾼다. 구한솔 대표는 농사청을 국내 최고의 농자재 회사로 만들고 나아가 한국의 농자재를 해외에 널리 알리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농업의 미래를 그리는 농사청의 사업으로 누구나 농부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앞당겨지길 희망한다. 사랑한대 2019년 01-02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