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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 10

[학생][꿈꾸는 청춘] 새롭고 다채로운 세상과 부딪쳐라

지난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으로 공공외교 현장실습을 다녀온 윤재성 학생은 자신만의 긍정 에너지를 유감없이 발산하며 당시의 체험담을 생생히 전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여전히 주체할 수 없는 가슴 떨리는 설렘과 벅차오르는 열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 윤재성(국제학부 11) 학생 한국을 대표하는 공공외교 사절단으로 활동 “흔히 장충체육관이 필리핀의 도움으로 지어진 것으로 아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장충체육관은 엄연히 우리 건축가가 우리 기술로 세운 건축물입니다.” 지난해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으로 6개월간 현장실습을 다녀온 윤재성 학생은 50여 명의 재외공관 현장실습원 중 우수 사례로 뽑힌 학생답게 필리핀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을 바로잡아주었다. 실습이 끝난 지 5개월이 지났는데도 공공외교 사절단으로서의 사명감이 여전히 투철하다. “현장실습 기간 중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관계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일을 맡았어요. 그때 장충체육관에 대해 조사하며 우리 기술로 지었다는 사실을 밝히게 됐죠. 그 일로 대사님께 칭찬을 받아 뿌듯했습니다.” 우리나라와 필리핀의 건축 관련 기관을 백방으로 수소문해 정보를 요청했다는 윤재성 학생. 필리핀의 건축부에 문의했을 때는 컴퓨터 DB 구축은 고사하고, 기본적인 문서 보존도 안 돼 있어 앞이 깜깜했다. 하지만 필리핀의 외교관이었던 까를로스 로물로의 기념관에서 ‘장충체육관 건설에 필리핀이 개입한 사실이 없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건축역사학회에서 관련 자료를 확인해 사실을 밝힐 수 있었다. 고대하던 첫 해외 체류 경험 윤재성 학생은 지난해 6월, 22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외교부의 재외공관 공공외교 현장실습원에 발탁됐다. 국제학부에 진학했지만 여행을 제외하곤 해외 체류 경험이 없어 늘 해외 생활에 대한 열망이 컸던 차였다. “국제학부에는 외국에서 살다온 학생들이 많아 제가 우물 안 개구리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게다가 해외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해 외교 사절단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이니 도전하지 않을 수 없었죠.” 해외 업무를 담당하는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한 달간 면접시험을 준비했지만 워낙 경쟁률이 높아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장실습원에 선발되는 행운을 안았고, 그렇게 필리핀에서 꿈에 그리던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그가 수많은 나라 중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류 영향으로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은 동남아시아 국가에 가야 보다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필리핀을 선택했습니다. 영어권 국가이기도 하고요.” 공항에 도착한 직후 도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의 코코넛 열매를 보고서야 필리핀에 발을 딛게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그는 처음에는 기후와 문화적 차이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다름을 몸소 겪어보기 위해 그동안 해외 생활을 동경했던 게 아닌가. 워낙 긍정적인 성격의 윤재성 학생은 모든 경험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주필리핀 한국대사관 정무과에 배정받은 후에는 주로 필리핀의 정치 동향을 파악해 주요 기사를 번역하거나 대사관 공식 홈페이지 및 SNS 관리, 필리핀 교과서 검토, 문화 행사 보조 등 제법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다. 인턴이라고 복사만 시키는 게 아닐지 걱정이 컸다는 윤재성 학생. 사실 처음에는 주재국에 대한 기본 지식을 숙지하라며 마땅한 일이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 아무나 붙잡고 도와줄 일이 없는지 일을 청했다. “제가 직원들을 귀찮게 한 편이에요.(웃음) 어렵게 얻은 기회라 최대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싶었거든요. 그랬더니 나중에는 일이 너무 많아져서 정신이 없었죠.” ▲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찰칵! 윤재성 학생은 "공공외교 현장실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무대에서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라고 말한다. 문화의 위력을 실감한 한류 체험 ▲ 문화행사 때 만난 필리핀 자원봉사자와 한 컷 한번은 필리핀의 주요 교과서에 한국 관련 내용이 어떻게 기술돼 있는지 조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단군왕검을 고려의 태조 왕건과 혼동하거나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등 여러 건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잘못 기술된 내용은 즉시 필리핀 교과서 측에 수정을 요청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주지 않아 애를 먹었지만, 국사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된 것도 사실이다. 이뿐만 아니다. 윤재성 학생은 한류 문화 교실, 한식 요리 콘테스트, K팝 스타 및 한국어 말하기 대회 등 대사관뿐 아니라 주필리핀 한국문화원의 각종 문화 행사를 도우며 많은 필리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말로만 듣던 한류 열풍이 그렇게 대단한 줄 몰랐어요. 한국 관련 문화 상품은 없어서 못 팔 정도였어요.”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 드라마나 K팝에 대한 관심은 자연히 한국어와 한국사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사극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행사 시 자원봉사를 자청하는 필리핀인들은 한국어로 소통해도 불편이 없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필리핀인들에게 보다 다양한 우리 문화를 소개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공공외교 활동이라고 생각한 그는 조선시대 궁궐을 주제로 한 예술작품 전시회 때 초중학생들에게 직접 작품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윤재성 학생은 한류 문화를 통해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을 보고 문화의 힘을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문화 콘텐츠가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군사력이나 경제력을 앞세운 국력 행사는 강제적인 것이지만, 문화를 통하면 자발적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어 더욱 강력한 것 같아요.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던 문화를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글로벌 탐험 시즌2 개막 필리핀에서 돌아온 윤재성 학생은 지난 3월, 새로 선발된 재외공관 현장실습원을 위한 오리엔테이션에 멘토로 서는 영광을 안았다. 후배 현장실습원들에게 그는 어떤 말을 전했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힘들어야 편한 것입니다. 시키는 일이 없어도 주도적으로 일을 찾아서 해야 자신에게 남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없는 일도 만들어 했던 윤재성 학생이 대표적으로 주도한 것은 외교부의 공공외교 홈페이지에 재외공관 현장실습원으로서의 체험을 정리해서 올린 일이다. 현장실습 기간 동안의 소중한 경험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그가 담당 외교관에게 제안한 것이다. 수기를 통해 그는 필리핀에서 비로소 우리나라를 되돌아보게 됐다는 소회를 밝혔다. 그렇게 고대했던 생애 첫 해외 생활의 수확은 기대 이상이었다. “필리핀에서 6개월간 살아보니 확실히 여행과는 차원이 다른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시야가 넓어지고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현지인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아 그들의 일상을 경험하고, 가톨릭 전통에서 비롯된 그들의 가치관을 이해하게 됐어요. 또 모계사회 전통으로 여성의 사회활동이 활발한 편인데, 그로 인한 양성평등 문화를 체험하며 배운 것도 많고요.” 생생한 경험담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그의 사고와 감성이 얼마나 활발하게 움직였을지 짐작이 된다.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된 그의 글로벌 도전은 이제 막 물꼬를 텄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UN 대학생대표단에 선발돼 올 8월에는 뉴욕 UN본부에 다녀올 예정이며, 하반기에는 LA 주재기업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계획이다. “공공외교 현장실습을 성공적으로 마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더 큰 무대에서 다른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매년 콘셉트를 정해 경험을 넓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이런 경험들을 해보겠어요. 지난해에 이어 올해 저의 콘셉트도 글로벌 체험입니다.” 열혈 청춘 윤재성 학생의 글로벌 탐험 시즌2가 찬란하게 펼쳐지길 기원한다.

2017-03 31

[학생][한양피플] 뇌병변 친구와 진한 우정 이어가는 한양 새내기

한양대는 다양한 전형을 만들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6년간 몸이 불편한 친구를 헌신적으로 도우며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한 김예환 학생은 서울의 주요 대학 가운데 유일하게 한양대에만 있는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자원환경공학과에 합격해 눈길을 끌었다. 글. 윤지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학교생활에 최선 다한 것이 합격의 비결 “학교에서 현장 체험 학습으로 뮤지컬을 관람하고 있을 때 합격 전화를 받았어요. 너무 기쁘고 흥분됐죠. 가족들에게 전화로 알리고, 친구들과 선생님들께도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합격 당시를 떠올리는 김예환 학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김예환 학생이 합격한 ‘학생부종합전형’은 성적을 반영하지 않고, 각 과목 교사들과 담임교사가 서술한 학생의 수업 태도와 성취도 등의 비교과 영역만 보고 학생을 뽑는 전형이다. 김예환 학생의 경우 오랫동안 뇌병변 친구를 도운 것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내신 및 수능 성적을 보지 않는 수시전형이라 자칫 오해의 시선이 쏠리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김예환 학생은 “비록 봉사 활동으로 화제가 됐지만 학교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보낸 것이 합격의 비결”이라고 말한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으로 생활한 것 같아요. 학원은 거의 다니지 않고 학교 수업을 정말 열심히 들었어요. 부족한 것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서 채웠고요. 물론 봉사도 한 부분을 차지하긴 했지만 저의 잠재력과 역량을 높이 평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예환 학생은 배드민턴 동아리를 하면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출전한 영어 팝송대회에서 기타를 연주해 수상한 경험이 있고, 미술에도 관심이 커 많은 시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도서부를 비롯해 다양한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어요. 특히 2학년 때 네팔 지진으로 학생들이 학용품이 없다는 말을 듣고 기부 캠페인을 벌여 연필 2,000자루와 식수 구입비를 기부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 김예환(자원환경공학과 17) 학생 6년 지기와의 변치 않는 우정 몸이 불편한 친구 최주희 학생은 중학교 1학년 때 만나 지금까지 우정을 이어가고 있다. “주희와 친하게 지내는 걸 알고 선생님께서 봉사 도우미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주희를 돕기로 마음먹었죠.” 중학교에서의 인연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다. 진학 후에도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고 야외 활동에 도움을 주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힘든 일은 없었을까? “다른 친구들의 배려가 부족한 모습을 볼 때 가장 힘들었어요. 예를 들어 급식시간에 줄을 서 있는데, 휠체어가 지나가도 길을 터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또 친구를 돕는 건 당연한 건데 주변에서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제 친구에게 거리감을 보일 때 힘들었죠. 주희가 뇌병변 장애 1급인데, 사고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지만 두 다리로 보행이 안 되고 왼쪽 팔 마비 증상이 있어요. 현재의 장애인 등급제에서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많은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루 빨리 제도가 개선됐으면 합니다.” 다양한 경험 쌓을 캠퍼스 생활의 시작 한양대에서 새내기로 첫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는 김예환 학생. 그녀가 꿈꾸는 대학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고 싶어요. 공부를 비롯해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 생활하고 싶고요. 또 선배님들이 사주시는 밥도 얻어먹고 싶습니다.(웃음) 한양대학교에 합격한 것이 무척 기쁘고 제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환하게 웃는 김예환 학생에게서 당찬 새내기의 모습이 엿보인다. 활기찬 캠퍼스 생활을 시작하게 될 그녀의 앞날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21

[학생][도전한대] 모두 피아니스트가 되는 그날까지

피아노를 사는 것부터 악보를 구하고, 연주하며, 수리하는 것까지. 이 모든 과정 중 무엇 하나 손쉬운 일은 없어 보인다. 피아노와 관련해 상세히 물어볼 지인이 있거나 검색해볼 전문 사이트가 있는 것도 아닌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럴 땐 마피아컴퍼니를 찾아보자. 마피아컴퍼니는 ‘마음만은 피아니스트’의 줄임말로 피아노의 모든 것을 다루는 곳이다. 마피아컴퍼니의 기술이사로 활약하고 있는 컴퓨터공학부 허상민 학생을 만나봤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공동 창업의 시작 마피아컴퍼니는 페이스북의 ‘피아노 치는 남자들’과 ‘피아노 치는 여자들’을 전신으로 하고 있다. 취미로 처음 시작한 피아노 페이지의 규모가 너무 커져 더 이상 관리하기가 어려워지자 페이지 운영자 정인서 씨(현 마피아컴퍼니 대표이사)는 고민에 빠졌다. 그러던 중 이장원 씨(현 마피아컴퍼니 운영이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12)로부터 이 페이지를 사업 모델로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게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페이지 사업화 기획을 시작했다. 그러나 페이스북 페이지만으로는 사업 진행에 한계가 있음을 느끼고 독자적인 웹사이트를 구축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허상민 학생이 기술이사로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웹사이트를 열게 됐다. 사실 허상민 학생이 두 사람과 인연을 맺은 건 페이스북 플랫폼 ‘대나무숲’의 제보함과 검색기를 개발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서울대 대나무숲 관리자의 소개로 이장원 씨와 만나게 된 것. 허상민 학생은 “원래 두 분이서 사업을 논의하고 있었는데, 제가 관련 영역에서 개발을 담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제게 함께하자는 제안을 했다”며 “비즈니스 모델이 바로 실현 가능할 만큼 체계적으로 기획되어 있어 합류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 ㈜마피아컴퍼니 기술이사 허상민(컴퓨터공학부 14) 학생 기술로 이어진 피아노와 인터넷 마피아컴퍼니의 주요 서비스는 피아노 연주 영상 업로드, 악보 업로드 및 다운로드, 커뮤니티 게시판이 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디지털 피아노 판매, 피아노 조율사 매칭, 공연 기획까지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마피아컴퍼니는 지난 2015년 6,000명의 회원으로 시작해 지금은 10만 명이 넘는 회원이 가입돼 있으며, 하루 접속자 수 1만 명, 한 달 접속자 수 30만 명까지 성장했다. 마피아컴퍼니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렇듯 마피아컴퍼니는 피아노를 주축으로 온라인상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용자 편의를 고려해 웹사이트를 구성하고, 접속자의 웹사이트 체류 시간을 늘리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바로 기술자인 허상민 학생의 일이다. ▲ 마피아 컴퍼니의 주요 서비스는 피아노 연주 영상 업로드, 악보 업로드 및 다운로드, 커뮤니티 게시판이 있으며 여기서 더 나아가 디지털 피아노 판매, 피아노 조율사 매칭, 공연 기획까지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때는 많은 관심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웹사이트 체류 시간을 최대한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SNS에서 볼 수 있는 알람 기능 탑재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또한 그는 영상 게시판에 인기 알고리즘을 따로 구성해 인기가 급상승하는 영상에 표시하거나, 접속자가 급증해도 사이트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적인 설계도 맡고 있다. “접속자가 폭주할 때 사이트가 버틸 수 있도록 설계하는 부분에서 전공 지식을 많이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접속자 수가 많아지고, 그 데이터가 쌓이면 쌓일수록 더 깊은 전공 지식이 요구되기 때문이죠.” ▲허상민 학생은 “피아노를 살 때부터 연습하고 더 이상 치지 않을 때까지의 이 모든 과정에 마피아가 함께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 됐든 마피아 사이트를 통해서 해 결이 가능하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피아노 콘텐츠를 제 공하는 게 저희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입니다.” 라고 말한다 학교에서 배운 전공 지식은 물론 학교의 지원도 큰 도움이 됐다. 마피아컴퍼니가 한양대 컴퓨터공학부 특성화사업단 지원 사업에 선정된 덕분에 초기 설립비를 지원받은 것. 게다가 한양대 학생이라면 마피아컴퍼니에서 일하며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고 학점도 인정받을 수 있다. “저 또한 이 제도를 통해서 학점을 인정받았습니다. 현재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제 동기도 마찬가지로 학점을 인정받고 있고요. 학생들이 편하게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학교에서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죠.” 한국을 넘어서, 피아노를 넘어서 최근 마피아컴퍼니의 검색률이 급등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영화 <라라랜드>와 <너의 이름은>의 돌풍을 그 요인으로 꼽았다.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OST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악보에 대한 수요가 증가했고, 그 과정에서 마피아 사이트의 방문자 수도 늘어난 것. 여기에 SNS에서 이 두 영화를 중심으로 한 마피아컴퍼니의 자체적인 홍보까지 더해져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전부터 마피아 사이트의 글로벌 버전 구축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더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습니다. <라라랜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기가 있는 작품이라 악보를 찾으려는 외국인들이 저희 사이트로 많이 유입된 것 같습니다.” 마피아컴퍼니는 사이트의 글로벌화 외에도 또 다른 포부를 가지고 있다. 바로 기존 피아노 중심으로 이뤄지던 서비스들을 다른 악기에도 적용해 그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음악이라는 큰 범주 내에서 기존 사업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애플리케이션 서비스가 그것이다. 마피아컴퍼니가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되면 사용자들이 기존 알람 서비스를 휴대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사용량이 훨씬 더 늘 것으로 기대된다. 허상민 학생은 “피아노 치는 사람들의 피아노 생애 주기의 모든 과정에 마피아가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피아노를 살 때부터 연습하고 더 이상 치지 않을 때까지의 이 모든 과정에 마피아가 함께하고 싶습니다. 어떤 상황이 됐든 마피아 사이트를 통해서 해결이 가능하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피아노 콘텐츠를 제공하는 게 저희가 궁극적으로 달성하고 싶은 목표입니다.” 그의 바람대로 한국을 넘어서, 피아노를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마피아컴퍼니가 되길 기대해본다. Q 마피아컴퍼니가 한양대에서 지원받은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A 저희 마피아컴퍼니는 컴퓨터공학부 특성화사업단 내의 비교과 활동 지원 프로그램에서 창업 활동 요건을 충족한 결과,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컴퓨터공학부에 재학 중인 학부생 중 창업을 한 학생이 신청서와 증빙 서류, 활동 보고서만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활동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제도입니다. Q 마피아컴퍼니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학점도 인정받을 수 있었나요? A 학점 인정은 사업단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현재 저희와 협약 관계인 서울어코드활성화사업단을 통해 진행하게 되면,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출근부, 업무 평가서 그리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됩니다. 세 가지 모두 사업단 양식에 해당하며, 이를 제출하면 학점을 인정받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저희는 컴퓨터공학부의 서울어코드사업단과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마피아컴퍼니에서의 근무가 현장 실습이 되어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고 장학금도 지원받을 수 있게 됩니다. 이 제도를 이용하게 되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큼 많은 것들을 회사에서 배울 수 있고, 직접 해볼 기회까지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Q 컴퓨터공학부가 아니더라도 현장 실습으로 마피아컴퍼니에 지원할 수 있나요? A 컴퓨터공학부가 아닌 경우에는 ‘하이웹(HY-WEP, HanYang Work Experience Program)’ 제도를 이용하면 됩니다. 하이웹도 실습 지원금이 지급되며, 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고, 현장 실습 수료증이 발급됩니다. 꼭 컴퓨터공학부 학생이 아니더라도 저희 마피아컴퍼니에서 선발하면 근무가 가능한 거죠.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21

[학생][동고동락] 한양인의 든든한 후견인, 키다리은행

여기, 까다로운 심사 없이도 자율 이자로 한양대 재학생에게 돈을 빌려주는 은행이 있다. 대출 자격은 재무 교육을 받고, 돈을 어떻게 갚을 것인지 상담받는 것으로 충분하다. 알수록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 은행, 바로 대학생자조금융협동조합 ‘키다리은행’이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서로의 키다리가 되다 키다리은행은 대학생들이 학생으로서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대학생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는 제한적이지만 동시에 대학생이라는 이유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자립성을 요구받는다. 돈이 필요한 곳은 많은데 돈을 벌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학생 신분으로는 신용 대출도 받기 어렵다. 올해 졸업한 키다리은행 초대 은행장 한하원(국제학부 12) 씨는 “대학생의 상황을 고려한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며 “혼자서도, 또 학교 밖 사회에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인 만큼 우리끼리 힘을 모아 협동조합이라는 틀 안에서 서로의 경제적인 안전망을 만들고 싶었다”며 키다리은행의 설립 취지를 밝혔다. 그렇게 시작한 키다리은행은 소액 신용 대출 제도인 ‘숏다리펀드’부터 ‘상환지원 프로그램’, ‘재무교육 프로그램’과 ‘꿈 키높이 통장’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자율 이자로 운영되는 숏다리펀드다. 대출을 통해 얻은 경험에 대해 스스로 가치를 매기고, 이자를 자율적으로 부과하는 행위가 키다리은행의 취지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에서 만든 프로그램이다. 한하원 씨는 “자율 이자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이자율이 연 3.7%로 시중 은행 이자율보다 훨씬 높아 놀랐다”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이자뿐만 아니라 원금 상환도 잘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인다. ▲ (왼쪽부터 순서대로) 키다리은행의 한경수(경영학부 11), 김보정(파이낸스경영학과 16), 김동환(경영학부 16) 학생과 한하원(국제학부 12) 씨 키다리은행의 기분 좋은 행보 좋은 취지와 제도 덕분이었을까? 지난 2015년 11월 시작한 키다리은행은 짧은 활동 기간에 비해 비교적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종종 언론에 소개되기도 하고, 다른 대학교의 학생들로부터 키다리은행 설립 요청도 받았다.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춰진 학교를 대상으로 키다리은행의 설립을 도와 다른 학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또한 키다리은행은 ‘2016 제11회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 사회혁신 분야에 선정돼 수상함으로써 그간 공들인 노력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한하원 씨는 “대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자체적인 금융조직은 그간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였다고 생각한다”며 “사회적 가치를 위해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협동조합 은행이라는 점에서 사회를 혁신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짧은 다리의 역습 키다리은행의 성과는 ‘숏다리’ 대학생들이 모여 서로의 ‘키다리’가 되길 바란 결과다. 때로는 기대 이상의 ‘숏다리’들을 만나기도 했다. 한경수(경영학부 11) 학생이 말하는 졸업생 출자금 기부가 대표적이다. “조합원이 졸업하면 자동적으로 키다리은행에서 탈퇴하게 됩니다. 그런데 졸업할 때 출자금을 돌려받지 않고 키다리은행에 기부하고 나가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의 출자금이 학생들의 생활협동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는 의미인 거죠.” 그렇다면 키다리은행 운영진들이 꿈꾸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김보정(파이낸스경영학과 16) 학생은 “공부하기 위해 대학에 온 학생들이 정작 학업보다는 학비, 생활비, 월세 걱정과 같이 생활에 더 치우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대학생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키다리은행이 그 역할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현 은행장 겸 이사장인 김동환(경영학부 16) 학생은 “키다리은행이 대학생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 든든한 발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열 키다리 안 부러운 한 명의 숏다리를 위한 든든한 후견인. 키다리은행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3 20

[학생][人사이드人터뷰] 글쓰기의 열정, 신춘문예로 비상하다

2017 신춘문예에서 한양대가 당선자 네 명을 배출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래빗 쇼>로 세계일보 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상희 동문을 비롯해 김세나(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13) 동문이 동아일보 영화비평 부문, 이진경(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15) 학생이 문화일보 문학비평 부문, 문은강(대학원 국어국문학과 15) 학생이 <밸러스트>로 서울신문 소설 부문 당선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중 이상희 동문과 문은강 학생을 만나 당선 소감과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글. 오인숙/ 사진. 안홍범 ▲ 2017 신춘문예에 당선된 영광의 얼굴들. 문은강 학생(왼쪽)과 이상희 동문이 환하게 웃고 있다. Q 글을 쓰는 많은 분들이 신춘문예를 통한 등단을 꿈꾸고 있습니다. 많은 예비 작가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셨어요. 수상 소감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상희(이하 이) 대개 신춘문예는 12월 초에 마감해서 다음 해 1월 1일에 지면에 실리는데, 세계일보가 마감이 가장 늦어서 마지막까지 고쳐서 낸 기억이 있습니다. 사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전날 과음한 상태라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당선 전화를 받아서… 하하. 정신없었죠. 문은강(이하 문) 저는 조교실에서 일하다가 전화를 받았어요. “서울신문인데요”라는 첫마디를 듣자마자 너무 놀라서 손이 떨리더라고요.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했어요. 당선 소식은 항상 선배님들의 몫이었기 때문에 제가 겪게 될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수상하면 마냥 좋을 줄 알았는데 막상 당선되고 나니까 기쁘기보다 무서워요. 더 이상 습작생이 아니라는 두려움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요. Q <래빗 쇼>와 <밸러스트>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이 이번 <래빗 쇼>는 훌리오 꼬르따사르의 <파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짧은 단편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이 단편은 20세기 중반에 쓰여진 것인데, 만약 주인공이 현대 사회로 호출된다면 토끼를 토하는 이 사람의 행위가 어떻게 소비될까 고민했죠. 저는 사회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도 사회학을 공부했는데, 제게는 문학을 좋아하는 것과 사회학을 좋아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둘 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일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주제에 이르게 됐어요. 문 저는 학부에서 문예창작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을 국어국문학과로 진학했기 때문에 학부 때부터 계속 소설을 써왔어요. 이번에 쓴 <밸러스트>는 남아 있는 분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쓴 소설이에요. 남아 있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거든요. 그게 요즘 제가 느끼고 있는 하나의 감정이기도 하고요. Q 신춘문예에 도전하게 된 배경과 그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 어려서부터 글쓰기와 문학을 좋아했지만 작가가 되고 싶다거나 소설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글쓰기를 좋아해서 혼자서 써 봤지만, 한 편 쓰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A4로 두세 페이지 쓸 땐 재미있는데, 9~10페이지까지 한 편의 분량을 만들어내는 건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취미로 두세 페이지 쓰다가 접은 적이 많았죠. 그렇게 혼자서 쓰다가 작년에 우연히 한 출판사에서 진행한 창작 수업을 3개월간 듣게 됐고,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됐어요. <래빗 쇼>가 제대로 완성한 거의 첫 작품인 셈이에요. 문 대학 때부터 글을 썼지만, 신춘문예에 도전한 건 두 번째라 ‘최종심까지만 가자’는 것이 목표였어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조금 더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그래도 내보라고 조언해주셨어요.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소설 구성의 틀은 갖추었다고 생각했을 때 도전한 것 같아요. 그동안 썼던 작품 중 하나를 골라서 여러 번 다듬어서 보냈어요. 준비라고 하면, 신문사별 당선작을 읽어보며 심사위원들이 어떤 부분을 좋게 평가하는지 파악한 정도예요. ▲ <래빗 쇼>로 세계일보 소설 부문에 당선된 이상희 동문(사회학과 02) Q 아마도 수많은 습작 과정을 거쳐 이번에 좋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것일 텐데요. 평소 습작은 어떻게 하셨나요? 이 자기가 쓴 글에 도취돼서 별로인데도 계속 쓰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개요를 많이 짜려고 노력해요.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개요를 짜놓고 조금 써보고 아닌 것 같으면 멈추죠. 저는 빨리 쓰고 여러 번 고치는 편이에요. 문장보다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 쓰고 싶은 이야기나 정황이 떠오르면 그걸 그대로 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글을 쓰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많이 쓰고 계속 고치는 과정을 반복하는 편이에요. 문 저는 학부 때 필사를 참 많이 했어요. 1~2학년 때는 글을 못 쓴다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거든요.(웃음) 학교 들어와서 글을 처음 썼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어떻게 표현하고 뱉어내야 하는지를 몰랐어요. 그래서 방학이면 매일 도서관에서 필사를 했어요. 그러면서 문장이나 구성, 과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작법 등을 배웠죠. 지금은 필사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고, 필요한 경우 필사 대신 필타를 합니다. 저도 글을 쓸 때 오래 걸리지는 않아요. 안 써지는 부분이 있으면 붙잡고 있지 않고 일단 다음 부분으로 넘어가죠. 어쨌든 완성시키는 게 중요하니까요. 뼈대를 잡아놔야 그 다음에 보충할 수 있거든요. Q 지금도 공부를 하며 혹은 일을 하며 등단을 준비하는 한양인이 많을 텐데요. 그들에게 힘이 되는 말이나 조언을 해주신다면? 이 소설을 쓰면서 제가 가장 힘들었던 건 이것이 소설이 되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는 거예요. 등단하기 전에는 내가 소설을 써도 될 사람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요. 그런데 제 생각에 소설은 누구나 쓸 수 있고, 또 쓰면 느는 것 같아요. 투자한 시간만큼 말이죠. 그래서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잘 마련해야 해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또 성실히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 <벨러스트>로 서울신문 소설 부문에 당선된 문은강 학생(대학원 국어국문학과 15) 문 소설 쓰기는 사실 너무 지루한 작업이에요. 하나의 집을 짓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 만들어진 걸 보면 기쁜데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리는 과정들이 재미가 없죠. 완성된 모습이 마음에 안 들어서 힘들어하는 친구도 있지만, 과정 자체가 힘들어서 행복하지 않다는 친구도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놓지 못한다면 ‘그마저도 언젠가는 당신의 소설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저는 대학원 다니면서 새롭게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무척 힘들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들이 소설 쓸 때 큰 도움이 됐어요. 한 교수님께서 ‘소설을 쓰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한 발짝만 더 가면 거기가 끝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 힘들더라도 계속 올라가야만 해요. 저 역시 여전히 올라가는 중이고요.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또 어떤 작가로 자리매김하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이·문 오래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계속 글을 쓴다는 건 결국 살아남았다는 뜻이니까요. 그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또 전작보다 나은 작품으로 꾸준히 발전하는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덕담 한 말씀 부탁드려요. 이 어리지만 저보다 준비가 많이 된 것 같아요. 이번 소설 읽어보고 잘 썼다고 생각했거든요. 그 나이대에 쓰기 힘든 어른들의 입말이 살아있는 대사들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앞으로 더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문 매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모두 읽는데, 이번 당선작 중에서 선배님 글이 최고로 좋았어요. 그래서 오늘 만남이 제게는 독자로서 작가를 만나는 기분이었어요.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다음 작품도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사랑한대 2017년 3-4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학생][벤처한대] 푸드트럭으로 첫발 내딛은 생활협동조합 '하이쿱'

‘한양대’ 하면 무엇이 가장 먼저 떠오를까? 왕십리? 사자상? 혹은 경사진 언덕? 생활협동조합 하이쿱(HY-COOP)의 노수영 대표는 앞으로 ‘한양대’ 하면 ‘하이쿱’이 떠오르길 희망한다. 지난해 한양대 학생의 복지 향상을 위해 설립된 하이쿱은 푸드트럭 프로젝트로 그 첫발을 내딛었고, 현재 다음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글. 이주비(학생기자) / 사진. 안홍범 협동조합, 그게 뭔가요? 하이쿱은 생활협동조합을 표방하고 있다. 협동조합은 일반 회사와는 다르게 운영된다. 일반 회사의 경우 주식과 채권을 기반으로 하는 반면,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바탕으로 자본의 토대를 마련한다. 즉 협동조합은 재화 또는 용역의 구매·생산·판매·제공 등을 협동으로 영위함으로써 조합원의 권익을 향상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는 사회조직인 것이다. 이처럼 하이쿱은 한양대 학생부터 교직원까지 학교 구성원 모두의 더 나은 학내 생활을 위한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창업에 관심 있는 학생들의 멘토 역할을 하며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창업 플랫폼을 마련해주는 활동을 또 다른 한 축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면 노수영 대표는 왜 협동조합을 선택한 것일까? “대부분의 해외 대학은 편리한 대학 생활을 위해 학생들이 조직한 협동조합을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몇몇 대학을 제외하고는 협동조합이 있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그래서 한양대에 협동조합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던 차에 마침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노 대표는 여러 학과에서 친구들을 모아 하이쿱을 만들게 됐다. 협동조합의 명칭은 한양의 이니셜인 ‘HY’와 협동조합을 의미하는 ‘Cooperative’를 합친 하이쿱(HY-COOP)으로 정했다. 현재 하이쿱은 학생 복지 증진 조합으로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생들의 더 많은 의견을 듣기 위해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hycoop)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설문조사도 진행 중이다. ▲ 하이쿱 노수영 대표(경영학부 14) 하이쿱의 첫 프로젝트, 푸드트럭 하이쿱은 지난해 4월 첫 총회를 갖고 약 한 달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설립됐다. 하이쿱이 선택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푸드트럭이다. 트럭을 개조해 조리시설을 갖추고 야외에서 음식을 파는 외식 사업의 한 형태인 푸드트럭 사업에는 노수영 대표의 대학생으로서의 고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푸드트럭 이외에도 구상해 놓은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밥’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푸드트럭을 시작했다. “저를 포함한 많은 대학생들이 경제적인 부담을 느낄 때가 많을 거예요. 여러 가지 고충이 있겠지만, 특히 식생활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푸드트럭의 핵심인 트럭은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마련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트럭을 확보하고 트럭 운영 방식을 정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이쿱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해선 학생들의 많은 관심이 필요했다. 노 대표는 고심 끝에 푸드트럭의 오픈 시기를 지난해 봄 대동제로 결정했다. “푸드트럭이 갑자기 캠퍼스에 등장하면 학생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주목받을 만한 큰 행사를 찾다가 학교 축제를 떠올렸습니다.” ▲ 노수영씨는 "하이쿱이 단순히 수익 창출을 목적 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라 말한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하이쿱의 트럭 두 대와 외부 트럭 세 대를 합쳐 총 다섯 대의 트럭을 축제 기간에 운영할 수 있었다. 이후 하이쿱 푸드트럭은 지난해 6월부터 생활과학대학 앞에서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푸드트럭의 오픈은 성공적이었지만, 사실 그간의 준비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노 대표는 푸드트럭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으로 푸드트럭에서 일할 인력을 구하는 것과 마케팅, 그리고 조합원 모집을 꼽았다. “푸드트럭에서 일할 사람을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지난 2학기에도 오픈 일주일 전에야 겨우 인력을 구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아직까지 저희를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지난 2학기에는 조합원 가입이 채 20명이 되지 않았어요.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모으는 데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한양인에 의한, 한양인을 위한 기업 노수영 대표는 식생활 다음으로 시급한 문제로 통학 불편을 꼽는다. 캠퍼스 내에 언덕이 많아 한양대역에서 강의실까지 가는 데 불편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캠퍼스 내 셔틀버스 운영을 계획 중이다. 교내뿐만 아니라 왕십리역에서 한양대까지도 셔틀버스를 운영해 학교 구성원의 편안한 학내 생활을 도울 예정이다. 이르면 올 1학기부터 만날 수 있다. “하이쿱은 아직까지 그저 음식을 팔고 수익을 내기 위해 들어온 푸드트럭 운영자 정도로만 학생들에게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가 다른 활동 없이 푸드트럭만 운영하다 보니 그런 선입견이 생긴 것 같아요. 하이쿱이 단순히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이 아니라, 학생들의 복지를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꼭 알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노 대표는 앞으로 하이쿱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길 기대할까? “외부에서 볼 때 한양대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습니다. 하이쿱도 이러한 한양대의 이미지처럼 기존 대학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협동조합을 운영해서 학생들의 힘으로도 충분히 대학 생활에 필요한 복지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하이쿱은 수익금의 일부를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 노 대표는 앞으로 학생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저렴한 가격으로 혹은 무료로 제공하고 싶다며 아직까지 푸드트럭 이미지가 강한 하이쿱이 생활협동조합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의 바람대로 하이쿱의 활동이 보다 나은 한양인의 생활을 이끌어가길 기대해본다. '하이쿱' A to Z what 하이쿱은 어떤 일을 하는 곳인가요? 하이쿱은 학생들의 더 나은 대학 생활을 위해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협동조합입니다. 대학 생활 증진을 목표로 하는 만큼 이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활동의 범위에 제약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why 왜 하이쿱을 설립하게 됐나요? 대학 생활을 하다 보니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또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일례로 학과 잠바의 경우, 5~6만 원 선에서 구입하게 되는데 학생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는 가격입니다. 식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격을 고려해 저렴한 음식을 먹으면 양이 부족하고 질도 좋지 않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문제를 학생들끼리 풀어나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저희가 직접 운영하고 해결할 수 있는 협동조합인 하이쿱을 설립하게 됐습니다. How 어떻게 하이쿱을 이용할 수 있나요? 하이쿱이 궁금하신 분들은 저희 페이스북 페이지(https://www.facebook.com/hycoop)를 참고하시거나, 이곳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실 수 있습니다. For Whom 하이쿱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하이쿱의 목표는 한양대 구성원의 복지 증진이고, 저희의 수익은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갑니다. 하이쿱은 곧 한양대 학생들을 위한 것이지요. Where 하이쿱에서 운영하는 푸드트럭은 어디서 만날 수 있나요? 생활과학대 앞에서 두 대의 푸드트럭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한 곳에서는 4,000원 대의 볶음밥 종류를 판매하고 있고, 카페 형식의 다른 한 곳에서는 샌드위치 2,500원, 음료 1,500~2,0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Who 누가 하이쿱을 운영하고 있나요? 한양대 학생들이 직접 운영합니다. 하이쿱에 참여하고 싶거나 교내에서 진행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누구나 조합원으로 가입해서 함께 실행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7

[학생][동고동락] 로봇공학과 1기 활약 알리는 신호탄을 쏘다

지난 2013년 신설된 ERICA캠퍼스 로봇공학과의 ‘프리라이더’ 팀이 2016 국제로봇콘테스트에서 대통령상을 받는 쾌거를 이뤄냈다. 이는 프리라이더 팀 학생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글. 이주비 / 사진. 안홍범 끝까지 노력했기에 맺을 수 있었던 결실 ERICA캠퍼스 로봇공학과의 ‘프리라이더’ 팀이 지난해 10월 14일부터 16일까지 사흘간 열린 2016 국제로봇콘테스트에서 ‘지능형 SoC 로봇워’ 분야 중 휴로 컴피티션(HURO-Competition) 종목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휴로 컴피티션 부문은 로봇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로봇이 카메라를 통해 들어오는 영상을 입력받아 사람의 조종 없이 스스로 장애물 미션 경기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로봇공학과 1기 학생들은 졸업하기 전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대회 수상을 목표로 지난해 3월 의기투합해 프리라이더를 결성했다. 프리라이더 팀의 김민지 학생은 “저희가 우승을 목표로 열심히 대회를 준비해왔지만 사실 우승할 수 있을지 계속 의문이 들었다”며 “대회 첫날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생해 겨우 예선을 통과했기 때문에 수상 자체가 힘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다음 날 본선에서 기대보다 결과가 좋아 너무 기뻤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김효정 학생은 “이번 수상으로 로봇공학과에 진학해서 4년 동안 배운 것들에 대한 보답을 받은 기분”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프리라이더 팀의 대표를 맡고 있는 최민준 학생은 “저 역시 첫째 날인 예선에서는 수상이 힘들다고 생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예선에서 4등으로 겨우 본선에 진출했기 때문에 본선이 열리는 다음 날까지 숙소에서 팀원들과 밤을 새가며 로봇에만 매달렸습니다. 다행히 다음 날 생각보다 경기가 잘 풀려서 처음부터 많은 점수를 확보할 수 있었는데, 그때 우승을 확신했습니다.” ▲ 로봇공학과 13학번 '프리라이더' 팀원들. 왼쪽부터 순서대로 하지수, 최민준, 김민지, 천회영, 김효정, 황순근 학생 이번 대회에서 프리라이더 팀이 쾌거를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은 ‘철저한 보완’이다. 이에 대해 최민준 학생은 “10월 본 대회에 앞서 8월에 일종의 연습 대회가 있었는데, 이때 로봇이 느리지만 정확하게 갈 수 있는 데 집중했다”며 “본 대회에선 이를 좀 더 보완해서 빠르고 정확하게 갈 수 있도록 개선한 것이 주효했다”고 전한다.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프리라이더’ 프리라이더 팀 구성원들은 모두 졸업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4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학교를 졸업하게 되는 이 시점에서, 그들은 로봇공학도로서 어떤 것을 꿈꾸고 있을까? 하지수 학생은 “우리나라 로봇 연구가 좀 더 심도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며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고, 황순근 학생은 “로봇이 사람을 도와주는 도구로서, 가능하면 몇몇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효정 학생은 “지금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듯이 언젠가는 로봇이 스마트폰을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앞으로 사람들의 일상 더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천회영 학생은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과 어우러지는 로봇을 꿈꾸고 있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서처럼 자연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연에서 모티브를 얻고, 인간과 더불어 자연에도 이로운 로봇을 만들고 싶습니다.” 최민준 학생은 예전에 어디선가 봤다는 문장을 떠올렸다. “‘사람을 향하는 기술이 진정한 기술이다’라는 글을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데요. 이 문장처럼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습니다.”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는 물론 우리나라 로봇공학계의 앞날을 이끌어갈 ‘프리라이더’ 구성원들. 다양하고 희망 찬 포부만큼이나 그들이 앞으로 로봇공학계에서 펼치게 될 활약이 기대된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학생][꿈꾸는 청춘]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도 없다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 지난해 5급 공채 행정직에 합격한 정치외교학과 이한결 학생은 도전을 해야 기회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을 만나 예비 공직자로서의 당찬 포부를 들어봤다. 글. 박영임 / 사진. 안홍범 ▲이한결(정치외교학과 10)학생 예비 공직자로서의 다짐 공무원에 임용되면 공무원 선서문을 낭독하는데, 선서문에는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흔히 공무원은 국가와 사회의 심부름꾼이라는 의미에서 ‘공복(公僕)’이라 일컬어진다. 그 어떤 직업보다 높은 수준의 윤리성과 사명감을 요구받는 고위 공무원일수록 공복의 자세를 다져야 할 것이다. 2016년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은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간명하게 발신하는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에게 돌아갔다. 그의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주인공은 구직 수당을 신청하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데, 담당 공무원들은 효율성과 원칙만을 내세우며 매뉴얼을 고수한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관료주의의 부조리함은 보는 이들을 참담하게 만든다. 사회보장제도에서조차 인간이 배제된 것이다. 이 영화는 대민 행정 서비스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할 공무원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공직자가 되면 복지부동의 태도를 경계하겠습니다. 면접을 준비하며 선배 공직자분들께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하시더군요. 저 역시 앞으로 민원에 귀 기울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난해 소위 행정고시로 불리는 5급 공채 행정직에 합격한 이한결 학생의 다짐이다. 막연한 동경으로 시작한 도전 지난해 11월 9일은 제60회 국가직 5급 공채의 일반행정직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그 전날부터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이한결 학생은 자는 둥 마는 둥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정확히 오전 9시 18분 전, 꿈에 그리던 합격 문자를 통지받았다. 가장 먼저 부산의 부모님 얼굴이 떠올랐다는 이한결 학생은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 전화로 기쁜 소식을 알렸다.“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오랫동안 바라던 공직을 맡게 됐다는 기대감과 어려운 과정을 잘 이겨낸 저 자신에 대한 대견함이었습니다.” 합격 문자를 다시 받은 듯 여전히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전하는 이한결 학생. 모든 시험이 그렇듯 국가시험을 준비한 지난 3년간의 시간은 그 누구도 대신 치러줄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보람된 일일 것이라는 막연한 동경으로 공직자의 길을 꿈꿨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군 복무 중 1차 시험인 공직적격성심사에 주저 없이 도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이 도전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았으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 이한결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겁 없이 도전하길 잘 한 것 같아요. 도전하지 않으면 기회조차 없었을 테니까요. 자신을 믿고 포기하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라고 조언한다. 1차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복학에 앞서 소위 행정고시준비반이라 불리는 한양대학교 국가시험반에 입반한 그는 국가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가급적 많은 문제를 풀어보라고 조언한다. “답안지를 작성하기 전에 먼저 문제의 의도를 파악한 뒤 어떻게 구성해야 좋은 답안이 될까 고민했습니다. 즉 논쟁마다 상충되는 가치가 충돌하는데 각각의 가치가 가지고 있는 논리 구조와 주장의 근거를 면밀히 살핀 뒤 현재 사회에 보다 타당한 가치와 저의 주장을 제시하는 것이 좋은 해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이한결 학생이 평소 자신의 주관과 가치를 축적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현재 국가시험반 스터디 모임에 멘토로 참여해 다른 학생들의 답안지를 점검해주고 있는데, 이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 문제의 논쟁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주장의 근거를 분명히 제시했는지 조언해주고 있다. 지난 2014년 여름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한 이한결 학생은 한양대학교 국가시험반 장학금 제도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워낙 학교의 지원이 탄탄해서 경제적 걱정은 한시름 놓고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 평가 시험, 합격한 선배님들의 면접 특강과 모의 면접에서의 세심한 멘토링 등 물심양면으로 학교의 지원을 받은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저도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누구보다 활기찼던 대학 생활 국가시험 수험생이라고 하면 잠잘 때를 빼고는 좌우가 막혀 있는 갑갑한 도서관 책상에서 꼼짝 않고 책만 파는 모습이 연상된다. 하지만 이한결 학생의 대학 생활은 그 어떤 학생보다 활기찼다. 1학년 때부터 학년 대표를 맡았던 그는 학과에서 진행하는 MT, 농촌 활동, 축구대회 등 각종 행사에 빠진 적이 없다. 이렇게 열심히 학과 생활에 참여한 이유는 부산에서 올라와 시작한 낯선 서울 생활에 선후배 및 동기들이 큰 힘이 됐기 때문이다. 국가시험을 준비하면서도 모의국회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서울 지역 8개 대학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친목을 다지는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하는 인권논문대회에 참가해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국가시험반 동기와 KTV 국민방송의 <정책 퀴즈왕>이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500만 원의 상금을 받기도 했다. 이한결 학생은 그동안 받은 장학금을 되갚는다는 의미에서 상금의 일부를 사회과학대학에 기부했다. 이렇게 한 번뿐인 대학 생활을 열심히 즐긴 덕분에 손에 꼽는 추억이 한두 개가 아니다. “중간에 친구들과 갈등이 있기도 했지만 잘 극복하고 좋은 성과를 올린 인권논문대회 참가 경험과 모의국회 행사를 준비하며 14학번 후배들과 두 달간 동고동락했던 일 등 모두 성취감이 컸습니다. 다른 학교 정치외교학과 학생들과 교류를 트기 위해 축구대회를 개최한 일도 보람 있었고요.” 활발한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활력과 위안은 수험 생활 중간중간 용기를 앗아가는 슬럼프를 극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그래서 자칫 공부에만 치우쳐 학과 생활이나 교우 관계, 일상적 삶이 훼손되는 것을 스스로 경계했다. 2월이면 정든 교정을 떠나는 그는 후배들을 위해 이렇게 조언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사회로부터 자신을 가두는 시간이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외로움을 참는 시간이 많아 오히려 시간을 제대로 못 보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어울리고,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 효율도 훨씬 높일 수 있습니다.” ▲ 중차대한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 전환기에 보탬이 되는 공직자가 꿈 구조적으로 저성장 기조에 들어선 우리 사회의 성장 모멘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최근 이한결 학생이 가장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회적 화두다. “저출산이나 양극화, 사회적 갈등도 모두 저성장 문제와 맞물려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나 미국, 일본의 혁신 사례 등을 참고해 구조 개혁을 이뤄 새로운 대한민국을 이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획재정부, 행정자치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싶다는 그는 국가적 위기에 당면했을 때야말로 공직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위기를 극복하고 국가의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려면 평소 선견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중차대한 국가의 전환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공직자가 되고 싶다는 이한결 학생. 그는 이를 위해 늘 열린 자세로 새로운 사고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민원의 목소리에 경청하면서 말이다. 우리와 약속한 이한결 학생의 초심이 앞으로 걷게될 공직자의 길에서 나침반으로 바르게 작동하기를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

2017-01 12

[학생][人사이드人터뷰] 즐겁게 노래하고 꿈꿀 수 있어 행복해요

성악가 조찬희 씨가 지난해 10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열린 제67회 비오티 국제 콩쿠르 성악 부분에서 최연소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다. “지금까지도 우승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쁘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새내기 성악가의 꿈을 들어봤다. 글. 오인숙 / 사진. 홍승진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쾌거 ‘비오티(Viotti) 국제 콩쿠르’는 이탈리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조반니 비오티를 기리는 대회다. 유엔에서 지정한 콩쿠르로, 음악가라면 누구나 알 만큼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성악가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미렐라 프레니를 비롯해 소프라노 조수미와 송광선, 테너 홍성훈이 이 콩쿠르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다. 조찬희 씨는 이처럼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우승을 거머쥐었고, 더욱이 출전 당시 23세(한국 나이 25세)로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까지 얻어 더욱 특별한 감동을 선사했다. “DVD와 이력서로 사전 심사를 거쳐 지원자 400명 중 70명이 선발됐습니다. 지난해 7월, 사전 심사 합격을 통보받은 후 약 석 달간 본격적으로 콩쿠르를 준비했어요.” 1·2차 예선을 무난히 통과한 그는 결선에서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와 베르디의 ‘돈 카를로’를 불러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조찬희 씨는 콩쿠르 우승 비결에 대해 “꾸준히 성실하게 준비하고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자신의 영역대와 캐릭터에 맞는 곡을 선정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고 귀띔한다. “심사 결과를 발표할 때 화면에 참가자의 이름과 점수가 뜨는데 그때 무척 짜릿하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내가 정말 입상한 게 맞나 싶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기쁘고 꿈인가 싶어요.” ▲ 조찬희 (성악과 12)씨 ‘완벽한 베이스의 소리’라는 극찬을 받다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는 각 분야의 상에 이름이 붙는데, 조찬희 씨가 수상한 1등상은 ‘Joseph Robbone’이다. 딱 한 명에게만 주어지고, 상금과 함께 제노바의 카를로펠리체극장에서 데뷔할 자격이 주어진다. 공연 날짜를 묻자 “2016~2017년 시즌 일정이 나오지 않아 아직 정확한 날짜를 받지 못했다”며 머쓱하게 웃는다. 흔히 테너와 바리톤에 비해 베이스는 타고 나야 하는 부분이 많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고음은 노력과 발성으로 낼 수 있지만 저음은 한계가 있어 재능을 타고 나야 한다는 것. 특히 한국인의 특성상 베이스가 많지 않은데, 이번 콩쿠르에서 크리스 메이트 심사위원장은 그에 대해 “완벽한 베이스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그런 극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가 조심스럽게, 그리고 과하지 않게 곡을 표현해서 ‘타고난 소리인가?’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 역시 한 음 한 음 소리를 공부하면서 작곡가의 표현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기성 성악가의 목소리를 흉내 내지 않고 저만의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오페라 등장인물의 성격을 파악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양부모의 사랑과 지원 아래 성악가로 성장 성악가에게 콩쿠르 수상 경력은 큰 이력이 된다. 특히 국제 콩쿠르는 18세부터 32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어 실력 있는 많은 이들이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도전장을 내민다. 조찬희 씨가 처음으로 준비한 국제 콩쿠르는 툴루즈 국제 콩쿠르였다. 2차 예선에서 떨어진 그는 심기일전해서 비오티 국제 콩쿠르에 출전, 두 번째 도전 만에 우승을 거머쥐었다. 그의 국제 콩쿠르 출전은 성악을 전공한 부모님의 권유가 컸다. “재학 중에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수업을 많이 빠져야 하기 때문에 대개 졸업을 앞두고 또는 졸업 후에 많이 도전합니다. 저 역시 지난해 2월에 졸업하면서 국제 콩쿠르를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조찬희 씨의 성악 입문은 부모님과의 남다른 인연에서 비롯됐다. 사실 그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부모님은 친부모가 아닌 양부모다. 그는 중 3때 지금의 부모님을 만났고, 현재 생활음악과 교수로 재직 중인 부친과 오페라단 단장으로 활동 중인 모친이 그에게 예고 진학을 권유했다. 그렇게 난생처음 성악을 공부했고, 2~3개월간의 집중 훈련 끝에 고양예고에 수석 입학하는 기쁨을 누렸다. 대학교 입시 때까지 바리톤이었던 그는 대학교 3학년 때 베이스로 전향했다. 나이가 들고 목소리가 성숙해지자 부모님이 베이스를 추천한 것이다. 그러니 그가 베이스를 한 지는 이제 겨우 3년여 밖에 되지 않은 셈이다. “베이스가 제 성격과 잘 맞아요. 진지하고 묵직한 느낌이 좋고, 노래로 곡을 표현할 때도 제 마음에 더욱 잘 와 닿습니다. 배역이나 역할에 대한 이해도 더 쉽게 되고요.” 대학 진학 후에는 학업에 매진, 지난해 평점 4.0으로 총장상을 받으며 졸업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의 삶은 지금의 부모님을 만나 송두리째 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모님의 지극한 보살핌과 아낌없는 사랑 속에서 그는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양부모님을 만난 건 제게 정말 큰 행운이에요. 좋은 환경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으니까요.” ▲ 조찬희씨는 "언젠가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이탈리아의 라스칼라극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로얄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최고의 무 대에서는 게 꿈이에요." 라고 말한다. 노래는 곧 삶이고, 평생 즐겁게 함께할 동반자 성악가에게는 자기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조찬희 씨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늘 많은 것을 배운다”고 말한다. “꾸준히 운동하시고, 겨울에는 항상 스카프나 목도리로 목을 보호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잘 먹고 잘 자는 등 몸 관리에 철저하세요. 그리고 공연 전날에는 말을 많이 하지 말라고 늘 당부하시고요.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람이 되어라. 준비되어 있는 자만이 도전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늘 명심하고 있습니다.” 롤모델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어머니’를 꼽는다.“존경하는 분들이 많지만, 제 인생의 롤모델이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분은 지금의 어머니입니다. 친자식이 아닌 저를 이렇게 만들어주셨으니 저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짐작하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성악가로서 학생을 지도하실 때도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방법을 바꿔서 그 학생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열정적으로 가르치시죠. 엄마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을 아낌없이 칭찬하고 항상 격려해주세요.” 아직은 햇병아리 예술가라며 자신을 낮추는 조찬희 씨. 그는 당분간 국제 콩쿠르에 계속 도전장을 내밀 계획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이탈리아의 라스칼라극장, 영국의 코벤트가든 로얄오페라하우스와 같은 최고의 무대에 서는 게 꿈이다. 세계적인 베이스 성악가가 되어 모두가 인정하는 무대에서 한국 성악가로 서고 싶다는 조찬희 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항상 노래를 생각한다는 그는 이렇게 즐겁게 노래하며 자신의 삶과 꿈을 하나씩 채워나가고 있다. 그의 꿈이 하루 빨리 실현되길 바라며, 아침마다 늘 그를 격려하는 부모님의 말씀을 빌려 응원의 말을 전한다. “멋있게 하고 오세요. 당신이 주인공이니까요.” 사랑한대 2017년 1-2월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