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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4 기획 > 기획 중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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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당가'와 '애국한양찬가'를 아십니까?

뜨거웠던 그 시절, 한양의 소리를 찾아서

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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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wzNM

내용
매년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6월 6일 현충일부터, 6월 10일 민주항쟁 기념일, 그리고 6.25 전쟁일과 같은 날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7년 6월의 대학가는, 민주주의를 향한 젊음의 열기로 한창 뜨거웠다. 학생들은 시위 현장에 나가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연달아 외치기도 했고, 학교별로 만들어진 여러 민중 가요를 다같이 따라 부르기도 했다. 우리 대학 역시 지난 1987년에 결성된 민중가요 기반의 노래 동아리 ‘소리개벽’이 여러 창작곡들을 만들어 교내·외로 전파시켰다. 그렇다면 당시 크게 흥행했던 우리대학의 민중가요에 대한 기록들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아쉽게도 그 기록들이 현재 체계적으로 남아 있지는 않다. 보관하던 자료들이 폐기되거나, 불렸던 노래들이 너무 많아 일일이 정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1980·90년대 가장 유행했던 민중가요를 찾아 그 당시 대학생활을 보냈던 분들의 증언과 인터뷰, 그리고 동아리 책자와 신문 기사들을 통해 그 기록들을 추적해봤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는 시간여행

지난 1987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는 소위 문예 운동의 ‘르네상스’ 시기로 불린다.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듯, 대학가에선 수많은 민중 가요가 만들어졌고, 각 대학 학생회가 ‘학교사랑운동’, ‘새생활문화운동’ 등 여러 이름으로 애교심 고취 및 대학문화 조성에 힘썼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대학에선 지난 1987년 민중가요 동아리 ‘소리개벽’이 결성된 이래, 1992년 ‘애국한양 문학예술 학생연합’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13일엔 ‘통일 노래 한마당’ 행사가 열려, 학생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한양찬가’라는 노래가 큰 호응을 끌기도 했다. 그만큼 당시엔 많은 학생들이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또 당시 교내 모습을 살펴보면, 지난 1980년대엔 현재의 정문이 당시 후문이었다. 그리고 현 정문에서 학생회관으로 올라가는 언덕길을 ‘진사로’(進思路-생각이 나아가는 길)라 불렀는데, 이 ‘진사로’라는 단어는 1980년대 가장 흥행했던 ‘행당가’뿐만 아니라, 위의 ‘한양찬가’에도 나온다. ‘행당가’에선 ‘진사로를 밟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 한양인’ 이라는 가사를, ‘한양찬가’에선 ‘희망찬 진사로를 오르며, 빛나는 내일 다짐하는’ 이라는 가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교가인 듯 교가 아닌 교가 같은 노래

지난 1980년대 당시 ‘행당가’는 가사가 4절까지 있을 정도로 당시 학교를 다녔던 학생이라면 누구나 알던 가장 흥행한 노래였다. 독일의 민요를 개사한 것으로, 정확한 작사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루터스’에서도 응원가로 많이 불렀다. 그 시절 ‘소리개벽’ 초기 멤버로 활동했던 권광섭 동문(신문방송학과 87)은 “당시 행당가를 교가인 줄 잘못 알고 있던 사람도 꽤 많이 있었다”며, “1987년 이후에는 행당가 대신 다른 노래를 많이 불렀다”고 전했다. 또 당시 우리 대학 학생이었던 오성수 교수(행정학과) 역시 “행당가 노래 가사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루터스가 앞장 서서 응원가로도 많이 불렀다”고 말했다.

이처럼 1980년대 시위 현장이나 대학가에선 ‘행당가’가 큰 인기를 누렸다면, 1987년 이후엔 ‘소리개벽’의 윤민석 동문(무역학과 84)이 직접 창작한 ‘전대협진군가’, ‘전대협찬가’가 많이 불렸다. 뿐만 아니라, 1990년대엔 ‘애국한양찬가’,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 ‘오 통일이여’ 등의 노래도 만들어졌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까지 ‘소리개벽’이 만든 해당 노래의 악보와 가사는 1996년에 만들어진 동아리 책자를 통해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행당가’와 관련된 문서 자료는 존재하지 않고 가사만 전해져 내려올 뿐이다. 루터스나 총학생회엔 관련 자료가 존재하지 않고, 백남학술정보관이나 음악대학 자료실 역시 해당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교내 역사관 역시 ‘행당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는 없고, 다만 당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자료만 남아있었다.
 

행당가- 1절 가사

행당언덕 넓은터 남청색 진리아래 모인 우리들
아카시아 생명같이 영원히 뻗어가리 한양대학교
앞으로 나가자 두손을 맞잡고 진리를 외쳐라 한양대학교
한양의 진리가 세계의 진리다 진리를 추구하라 한양대학교

진사로를 밟으며 자유를 사랑하는 우리 한양인
맑은예지 높은이상 겨레의 길잡이다 한양대학교
앞으로 나가자 두손을 맞잡고 자유를 외쳐라 한양대학교
한양의 자유가 세계의 자유다 자유를 수호하라 한양대학교

고통의 암흑시대가 우리의 정의아래 빛을 발하고
민주화의 여명이 조국을 밝혀준다 한양대학교
앞으로 나가자 두손을 맞잡고 정의를 외쳐라 한양대학교
한양의 정의가 세계의 정의다 정의를 포효하라 한양대학교

       
▲ 윤민석 동문(무역학과 84)이 지난 1996년 직접 작사,작곡한 '애국한양찬가' 악보이다. (출처: 소리개벽 동아리)

 
지나간 시절을 잊지 않기를

영국의 정치가 윈스턴 처칠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즉, 아픈 현대사를 겪은 만큼, 앞으로는 절대 30년 전의 6.10 민중 항쟁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으로, 역사관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역사관 1층엔 대학기록실이 마련되어 있어 예전의 기록물을 열람하거나 대여 신청이 가능하고, 2층 전시실에선 한양의 역사와 미래에 관련된 여러 사진들과 영상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비록 30년 전 선배들이 따라 불렀던 옛 노래들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들은 남아 있지 않지만, 현재 남아있는 기록과 우리의 모습을 잘 간직한다면 30년 뒤에는 더 값진 자료가 될 것이다.                  
▲ 지난 1987년 6월 15일 민주화를 외치며 80년대 선배들이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출처: 역사관 홈페이지)

글/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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