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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11 인터뷰 > 동문 중요기사

제목

발레, 그리고 대중화를 꿈꾸다

와이즈발레단 단장 김길용(무용학과 88) 동문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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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jwSM

내용

지난 6월 28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 널찍한 차도를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에서 독특한 버스킹 공연이 펼쳐졌다.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십여 명의 무용수가 파란불이 켜질 때마다 달려 나와 발레를 선보인 것. 뮤지컬 <캣츠>의 노래에 맞춘 공연부터 스윙 댄스까지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자, 지나가던 사람들은 발길을 멈추고 다음 파란불이 켜지길 기다렸다. 이 아름다웠던 공연은 우리대학 김길용 동문(무용학과 88)의 기획으로 진행됐다. 무용수부터 발레단 단장에 이르기까지 반평생을 발레와 함께한 김 동문을 만났다.



발레의 대중화를 위해 힘쓰다
 
김길용 동문은 우리대학 무용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국립발레단에서 솔리스트, 조승미발레단에서 상임 안무가를 지낸 바 있다. 이후 몇 년간 강단에만 서다 와이즈발레단을 창단해 십 년 넘게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비전공자 무용가들로 이뤄진 스완스발레단을 창단했다.

김 동문이 와이즈발레단을 만들 때 세운 원칙은 '초대권을 배포하지 않는 것'이었다. 발레와 같은 클래식 공연은 평론가나 교수 등 예술계 사람을 초청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남는 좌석이 없기 위해서인데, 이를 과감히 포기했다. “객석이 차는 게 겉보기엔 더 좋아요. 하지만 돈을 주고 보는 관객들이 늘려면 초대권을 뿌려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일반 관객에게 초점을 맞추겠다는 과감한 선택이었다. 현재도 정기후원자 등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대 초대권을 만들지 않는다고.
▲김길용 동문(무용학과 88)은 국립발레단, 조승미발레단을 거쳐 와이즈발레단과 스완스발레단의 단장을 지내고 있다. (출처: 와이즈 발레단)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했다. 김 동문은 일반 관객들이 발레를 보러 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와이즈발레단을 처음 만들었을 땐 ‘우리’ 발레단의 인지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우리뿐만 아니라 발레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드는 게 핵심이란 걸 깨달았죠.” 그렇게 기획한 것 중 하나가 앞서 말한 버스킹 공연이었다. 2011년 홍대에서 첫선을 보였을 때 구경한 관객들과 공연한 무용수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처음에 무용수들이 낯설어하긴 했어요. ‘발레는 공연장 무대 위에서 하는 것이지 어떻게 길에서 하냐’고 했죠. 하지만 버스킹 특유의 빠른 피드백을 경험하고 나니까 나중엔 서로 나가겠다고 하더군요(웃음).”
 
공연 레퍼토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준비했다. 일반적으로 선보이는 클래식 발레부터 해석이 있는 발레 시리즈, 모던 발레, 콜라보 발레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기획했다. 콜라보 발레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른 장르의 춤과 함께하는 발레 무대다. 비보이 크루 ‘라스트 포 원’(Last For One), 탭댄스 팀 ‘탭꾼 탭댄스 컴퍼니’ 등 그 분야에서 유명한 팀들과 함께 무대를 꾸렸다.

“어떤 분야든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즐기는 데 한계가 있는 거 같아요. 발레도 다양한 모습이 있지만, 처음 보는 분들께는 ‘그게 그거 같다’는 선입견이 있죠. 중간중간 다른 장르의 춤을 통해 분위기를 환기했습니다.” 발레와 뮤지컬을 합친 발레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Once upon a time in ballet)부터 클래식 발레 <호두까기 인형>를 재해석한 콜라보 발레까지 김 동문이 만든 레퍼토리는 발레가 낯선 이들에게 진정한 발레의 매력을 선사한다.
 
▲ 발레에 뮤지컬을 접목한 '발레컬'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발레>의 한 장면. (출처: 와이즈 발레단)

 조승미 교수와의 값진 인연
 
다양한 시도와 고민 속에 독특한 행보를 보인 김길용 동문. 그가 걸어온 길에는 스승이었던 고(故) 조승미 교수(무용학과)와의 인연이 자리 잡고 있다. 조 교수는 김 동문이 우리대학으로 온 이유이자, 김 동문의 발레 철학을 만들어준 은사다. 김 동문이 기획한 각종 레퍼토리 공연도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았던 조 교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 번은 이런 경험이 있어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바탕으로 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시 제가 멋대로 안무를 수정해서 스승님께 보여드렸죠. 예술가로서 자존심이 무척 구겨지는 일인데, 스승님은 ‘좋아 네가 만든 안무를 쓰자꾸나!’면서 크레딧에도 ‘안무: 조승미, 김길용’을 나란히 적어주셨어요.”

발레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을 때 다시 전념할 수 있게 붙잡은 것도 조 교수다. “예술을 하다 보면 좌절감이 몰려올 때가 있어요. '내가 천재라기보단 그저 발레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싶을 때 매우 허망하죠. 국립발레단에 있을 때였는데 무대를 해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때 스승님을 찾아갔죠.” 조 교수는 김 동문에게 조승미 발레단에 오는 것을 권유했다. 국립발레단 3년 차였을 때였습니다. 다음 해인 1996년에 조승미 발레단이 전문 발레단이 될 때부터 8년간 참여했어요.” 발레 본연의 아름다움과 동시에 선교 발레라는 사명을 띤 조승미 발레단에서 김 동문은 지금의 길을 걸어갈 원동력을 얻었다.
 
“조승미 발레단에서 잊지 못할 무대가 있어요. 저녁 공연이 있던 날이었는데, 스승님께서 3시에 공연을 한 번 더 하자고 하셨어요. 발레 한 번 하면 3kg이 빠질 정도로 힘든데, 두 번 뛰라 하시니 속으로 많이 투덜댔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공연이 장애인분들을 위한 초청 공연이었던 거예요. 평생 못 움직여서 공연에도 도움받고 겨우 오셨다는 분이 있었어요. 커튼콜 올라갈 때 객석을 봤는데 손뼉은 못 치셔도 그 눈빛은 볼 수 있잖아요. 그걸 보고 많이 울었어요. 그땐 왜 울었는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춤을 추는지 느꼈던 순간 같아요.” 단장이 된 현재도 김 동문은 그때처럼 교도소나 장애인 복지 시설을 찾아가 공연을 펼치며 보람을 얻는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해요. 스승님께서 살아계셨으면, 이 공연은 어떻게 하셨을까. 이럴 땐 뭐라 조언하셨을까.” 김 동문의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조승미 교수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발레와 단원을 위해 힘쓸 것
 
앞으로의 김 동문은 발레 단장으로서 발레와 단원을 위해 힘 쓰는 게 목표다. 여태 해왔던 일들을 유지하면서 후배 무용가, 안무가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주고자 한다. 이를 위해 모든 단원에게 급여를 주는 것도 하나의 목표다. “민간발레단은 단원들에게 공연 수당만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요. 단원이 발레에 전념하려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단원의 절반 정도에게만 월급을 주지만, 김 동문은 발레단 수입이 늘 때마다 이를 단원의 월급으로 바꾸고 있다.
 
▲ 지난 1월 21일 스완스 발레단의 창단식에 와이즈 발레단 단원도 함께 참여해 축하하는 자리를 가졌다. 앞줄 왼쪽에서 여섯번째가 김길용 동문. (출처: 와이즈 발레단)

또 최근에는 비전공자 무용가들을 위한 발레단인 ‘스완스 발레단’을 창단했다. “취미로 발레를 배우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아요. 그분들도 무대에 서고 싶으신데, 준비과정이 만만찮아서 엄두를 못 내시죠. 저희는 경험도 많으니까 충분히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창단한 스완스 발레단은 지난 1일 창단공연을 무사히 마친 상태다. “이제는 창작보다는 관리자로서 기획하고 관리하는 데 더 힘쓰려 해요. 젊은 안무가들을 찾아 발굴하고 기회를 주는 게 더 좋은 일인 거 같네요. 저보다 실력 좋은 분들이 많아요(웃음).”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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