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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9 기획 > 기획 중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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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과 인문학의 대가' 김용운 명예교수 별세

고(故) 김용운 교수의 자취를 따라가다

김현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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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oTOTB

내용

고(故) 김용운 명예교수가 지난 5월 30일 93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 교수는 한양대 수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언어학과 인류학 등 인문학 분야에서도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고(故) 김용운 교수를 기리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본다.

김 교수는 도쿄에서 지난 1927년 태어나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에 광복을 맞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학사 학위를 마친 뒤 미국과 캐나다에서 이학 석사와 박사를 밟았다. 그는 박사 과정을 끝내고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에서 교수로 3년간 부임했다. 그 후 한국에 돌아와 한양대 수학과 교수로 오랜 기간 후학을 양성했다.
 
김 교수는 한국 수학계에 큰 기둥이었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여 하는 행사인 ‘세계수학자대회’는 각국의 수학자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1969년에 열린 세계수학자대회에 참가한 한국 수학자는 10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순수 이학을 공부하는 학자가 적었다. 그중 하나가 고(故) 김용운 교수였다. 김 교수는 한양대학교 교수로는 최초로 대한수학회 상을 받았다. 한국수학사학회를 세워 우리나라 수학의 역사를 정립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김 교수가 발간한 <한국 수학사>는 1977년 초판을 시작으로 지금도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고(故) 김용운 명예교수는 뉴 미디어의 트렌드에 맞춰 최근까지도 유튜브로 자신의 강연을 이어갔다. (채널 김용운의 역습 제공)

교육자로서 후학을 기르는 데에도 힘을 쏟아부었다. 학사 졸업 후에는 국내의 고등학교에서 교사를 지내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에는 대학교수로 수학을 가르쳐왔다. 한양대 수학과 교수를 지냈을 뿐만 아니라 한양대 대학원 원장도 역임했다. 한양대에서 정년을 마치고는 일본 고베대학과 도쿄대학 등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다. 김 교수의 수학 교육에 대한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남아있다. ‘웅진씽크빅’이라는 학습지 브랜드는 ‘웅진용운수학’을 전신으로 출발했다. ‘웅진용운수학’은 김용운 교수와 그의 형제가 함께 개발한 학습지다.
 
김 교수가 학자로서 추대받는 이유는 그의 학문 분야가 단순히 수학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언어학과 인류학, 철학 등 인문학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일평생 150여 권에 이르는 저서를 집필하며 강연과 비평을 이어갔다. 인문학과 수학의 연결고리는 물론 현대사회의 구조학적 모습을 수학에 빗대어 설명하며 학문 간 융합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9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해 자신의 지식과 견해를 나눴다.
 
▲ 책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은 고(故) 김용운 명예교수의 마지막 저서다. (맥스미디어 제공)

수학 외에서 한•일관계학으로 특히 명성을 떨쳤다. 이따금 문제가 되는 발언과 사견이 개입된 해석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90년대 일본 버블경제 붕괴 예측 등으로 주목받았다. 김 교수는 폐암으로 투병하는 중에도 저서 집필을 놓지 않았다. 고(故) 김용운 교수는 그의 마지막 책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를 남겨두고 학계의 별로 자리를 떠났다.


글/ 김현섭 기자          swiken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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