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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0 기획 >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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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한국문화 1500년의 문화교류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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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8NT

내용
   
▲ 글_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서울캠퍼스 박물관장 터키 국립이스탄불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중동-이슬람문화권을 연구하는 문화인류학자. 현재 한국이슬람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이슬람>, <80일간의 세계문화기행> 등이 있다.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노마드(nomad, 유목민) 인자와 글로벌 DNA를 갖고 있었다. 동서를 관통하는 실크로드가 열린 이후 한반도는 세상의 첨단과 과학, 기술을 온몸으로 호흡하는 공간이었고, 우리 민족은 나와 다른 생각, 다른 가치를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탁월한 예지력과 역량을 갖고 있었다. 이제는 신라와 관계를 맺었던 세계역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한국역사를 재조명하고 의미있는 재해석을 시도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신라와 아랍-서아시아라는 1만km가 넘는 지리적 공백 때문에 한국학자들 일부가 두 문화권의 접촉사실에 의문을 표시해 왔지만, 세계해상교역을 주름잡던 무슬림들이 이미 8세기 이후 중국 동남부 해안도시에 대규모로 거주하면서 신라시장을 관리하고 공략해 왔다는 사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7명의 아랍학자가 기술한 20여 권의 각종 학술서에서도 신라에 관한 재미있는 기록은 물론, 무슬림들이 신라로 진출해 정착한 사실을 전하고 있다. 

 

한반도로 물품이 몰려오고 인적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문화적 접촉이 잦은 소통 채널은 이미 기원전·후부터 뚫려있는 실크로드라는 문명의 젖줄이었다. 7세기 이전까지는 아직 인도양을 가로지르는 원거리 항해술과 그에 적합한 선박의 건조가 따라주지 못했기 때문에 부분적인 근해 해상 교역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안전한 육상실크로드가 이용되었다. 육상 실크로드는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한 축으로 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중국의 서안(西安)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 수많은 지로와 간선도로가 있어 실핏줄처럼 교역망이 연결되었다. 간선도로를 따라 콘스탄티노플에서 출발한 대상과 교역 물품들은 통상 10개월의 시차를 두고 신라사회까지 전달될 수 있었다. 아시아의 동에서 서까지, 유행의 전파속도가 1년 미만이었다면 당시 신라 상층부는 지구촌과 거의 동시 패션 시대를 살았다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 터키 카파토키아의 본죽 트리. 파란 부적은 악귀로부터 보호하는 이슬람 민간 신앙의 표시이다. 

 

이러한 접촉과 교류는 5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무엇보다 페르시아산 유리, 카펫의 사용, 장신구와 페르시아풍 금속공예와 황금보검, 서역인 토용과 괘릉의 무인석상 등을 들 수 있다. 그 외 서아시아와의 교류를 짐작하게 하는 석조물로는 감은사 부도 사천왕상의 사자두상을 들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인 7세기의 유물인 사자두상은 헤라클레스의 사자두상과 비교될 수 있는데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교류의 결과로 보인다. 또한 경주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 입수쌍조문(立樹雙鳥文) 석조유물과 황룡사 목탑지 사리공에서 발견된 화수대금문금구(花樹對禽文金具)도 실크로드 교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의미 있는 유물이다. 나무를 가운데 두고 좌우에 두 마리의 새를 대칭 시킨 후 둥근 테두리를 연꽃 장식으로 조각한 유물들이다. 이러한 모티프와 조각 기법은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에 속하는 전형적인 양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650년경 이슬람 세력에 의해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하자 왕자를 포함한 많은 정치적 망명자들이 신라에 피신한 사실도 밝혀졌다. 페르시아 왕자 일행이 해로로 신라에 정치적 망명을 해오면서 신라 공주와 결혼하고 신라사회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남긴 <쿠쉬나메>라는 고대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가 발굴되어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현재 8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필사본은 영국 박물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란학자들과 공동연구를 통해 곧 세상에 알려질 예정이다. 500페이지에 달하는 신라관련 내용이 제대로 번역-재해석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한국 고대사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힐 소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이슬람 전후 시기에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관통하는 서아시아와 한반도 간의 교역과 문화교류의 발전은 주로 국제도시 장안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의 간접 접촉이 주를 이룬다. 또한 해로를 통해 신라로 직접 내왕하는 때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처용의 등장이다. 처용은 이슬람권에서 신라로 온 실존적 인물이다. 그 시기는 황소의 난과 연관이 있다. 황소의 난은 유럽에서의 게르만 민족 대이동에 버금가는 엄청난 인구이동의 소용돌이였다. 처용 일행은 중국 동남부 해안에 오래전부터 거주해 왔던 상인-관료출신으로 이 난을 피해 신라로 망명한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실크로드 교역과 문화적 접촉의 종착역은 한반도였다. 조선 초기까지도 한반도는 바깥문명에 열려있었고 외부 문물을 받아들여 자기화하는 비교적 단단한 자기 용광로를 갖고 있었다.

 


문화는 섞일수록 풍성해지고 발전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묵묵히 개척하면서 새로운 파이어니어로서 우뚝 선 한양인들에게 이 책은 우리의 글로벌 정신과 문화민족의 저력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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