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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26 인터뷰 > 동문

제목

신도리코 우석형 회장

“신뢰·배려·기술 중시 문화를 통해 글로벌 초일류 오피스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나아가겠습니다”

HYU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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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uECcB

내용

재계에서 ‘3무無 경영’이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무적자, 무차입, 무어음을 뜻하는 말이다. 신도리코는 많은 경영인이 하고 싶어 하는 ‘3무 경영’을 제대로 실천해온 기업이다. 심지어 우리나라는 물론 모든 기업에 아주 혹독한 시련기였던 IMF 외환 위기 때에도 이 원칙을 지켰다. 이처럼 신도리코가 그 어떤 변화의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54년간 기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건 개성상인의 전통을 이은 원칙주의자 우석형(74·전기공학) 회장의 신념 때문이다.


글 명순영(<매경이코노미> 기자) | 에디터 송유진 | 일러스트레이터 최익견

 

   

 

신도리코는 1960년 창사 이후 54년간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부채비율을 ‘제로(0)’로 유지하는 원칙도 지켜가고 있다. 한 달에 두 차례 현금 결제하는 전통도 유지한다. 대기업들이 조금이라도 현금을 늦게 주기 위해 90일짜리 어음을 주던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이다. 요즘 대기업이 상생경영을 하지 않는다고 비판받지만, 신도리코는 일찌감치 함께 살아가는 법을 실천해왔다.


이렇게 경영학 모범 사례집에 오를 만한 기업을 일군 이는 고 우상기 창업주와 아들 우석형 회장(59)이다. 부자는 54년간 기업을 이어가며 원칙 있게 경영해왔다. 특히 우석형 회장은 복사기에 국한한 사업 영역을 넓혀 신도리코를 비즈니스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그는 1980년 신도리코 기획실장으로 입사했고, 31세의 젊은 나이에 CEO까지 올라섰다. 우 회장이 대표이사에 올라설 때만 해도 많은 재계 관계자는 그저 2세 경영인이 기업을 물려받나 보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부모 세대가 축적한 부만 누리며 경영에 소홀한 2세가 아니었다. 올해로 무려 28년간 CEO로 재임하며 원칙과 유연함을 동시에 발휘했다. 우 회장의 변하지 않는 원칙과 변화에 충실한 경영 전략은 과연 무엇일까.  

 

변하지 않는 제1의 경영 원칙, 신뢰


먼저 신도리코를 탄탄하게 이끌어온 변하지 않는 기본 원칙부터 살펴보자. 우석형 회장이 강조하는 변하지 말아야 할 제1의 원칙은 개성상인의 정신인 ‘신뢰’다. 우 회장은 부친과 22년간 동고동락하며 모든 경영 원칙을 배웠다고 한다. 신도리코는 우상기 창업주가 설립한 신도교역이 모태다. 우상기 창업주가 먹지와 등사기밖에 없던 시절 수입 복사기를 직접 메고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영업을 뛴 일화는 지금까지도 유명하다. 우상기 창업주의 고향은 개성이다. 개성상인이 신뢰를 중시한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로 우석형 회장은 부친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받았다. 그는 또 한양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며 교과서적인 경영관까지 얹었다.


“비즈니스 성공에는 4단계가 있습니다. 상호 이해, 상호 신뢰, 상호 수익 과정을 거쳐 롱런할 수 있는 ‘계속 기업’으로 성장한다는 얘기죠. 여기서 키포인트 역시 신뢰입니다.” 그는 ‘회사가 이익을 내면 주주에게 30퍼센트, 종업원에게 30퍼센트, 사내 유보에 30퍼센트, 사회 환원에 10퍼센트를 내놓아라’는 부친의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신뢰 경영의 정수는 일본리코와의 관계에서 알 수 있다. 신도리코는 1964년 국내 최초 복사기(라카피555)를 생산하고, 1981년엔 역시 국내 최초로 팩시밀리를 생산했다. 그 후 지금까지 국내 복사기 시장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이러한 성과는 창업 동지인 일본리코와의 제휴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일본리코와는 지금까지도 탄탄한 신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 신도리코 우석형(74·전기공학) 회장 

신도리코의 탄탄한 영업망과 기술력 역시 신뢰의 결과물이다. 신도리코는 1996년부터 직접 관리하던 영업조직을 대리점을 통한 간접 경영으로 전환했다. 대리점 개설은 영업사원들이 자원해 ʼ분가分家ʼ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본사는 영업망을 인계하고 운영 자금을 지원하며 이들의 안착을 도왔다. 각 대리점이 채용하는 영업사원 교육도 본사가 직접 챙겼다. 이후 각 대리점 직원들이 경험을 쌓고 새로 대리점을 내는 방식으로 영업망이 확충됐다. 이렇게 구축된 영업망은 다른 경쟁 업체들이 뚫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내에서는 투명 경영으로 직원과의 신뢰를 쌓는다. 사내에는 갤러리와 체육관이 있고 발길 닿는 곳마다 휴게실이 있을 정도로 복지도 괜찮다.


신뢰 관계는 고객, 파트너 또는 내부 직원뿐만 아니라 협력사와의 관계에서도 탄탄하게 유지된다. 3무 경영 중 무어음 경영은 항상 자금에 쪼들리는 협력사를 배려한 조치였다. 또 신도리코 직원들은 협력 업체 직원들과 같이 식사를 할 때 꼭 돈을 내도록 돼 있다. “큰 회사가 작은 회사에 밥을 얻어먹을 수야 없지 않느냐”는 게 우 회장의 생각이기도 하다.

 

기업의 최대 자산은 사람


우 회장이 고집하는 두 번째 원칙은 직원에 대한 ‘배려’다. 우 회장이 평소 가장 강조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사람이다. 그는 기업의 최대 자산은 사람이고 직원은 내부의 고객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직원과 어울리는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우 회장은 해외 출장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점심을 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같이 먹는다.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000명이 넘는 직원들의 이름과 성격, 특기까지 꼼꼼하게 파악한다. 아산과 칭다오 공장을 방문할 때는 직급별로 돌아가며 직원들과 술잔을 기울인다. 덕분에 신도리코는 지금까지 한 번도 노사분규를 겪지 않았다.


직원을 일일이 만나기 힘들 때는 차선책으로 팀을 구성해 간접적으로 면담의 장을 마련하기도 한다. 사원복지회를 통한 면담도 직원과 좀 더 가까워지기 위한 방안이었다. 신입사원을 포함해 부서별 대표 사원으로 조직된 신도리코의 사원복지회는 기업과 사원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다. 대리 이하 사원만의 1년 임기모임으로 간부 사원들은 관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아랫사람의 의견이 여과 없이 우석형 회장에게 보고된다는 게 강점이다. 이 조직은 사원 복지에 대한 개선과 보완 역할을 한다. 사원복지회를 통해 건의된 내용은 100퍼센트 답변을 원칙으로 한다.


우석형 회장이 지켜온 세 번째 원칙은 기술 중시 문화다. 그는 한양대 전기공학과 74학번으로 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제조 업체는 기술력이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믿음도 갖고 있다. 홍보나 광고도 중요하지만 기술과 비교하면 그에게는 부차적인 일이다. 일부러 주가를 끌어올리는 일도 하지 않는다. 200여 명이 넘는 석사급 연구 인력을 보유하고 있고 전 직원의 20퍼센트가 연구 인력이라는 점에서 기술을 중시하는 그의 경영 원칙을 고스란히 말해준다.


시대에 맞는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유연함


그렇다면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바로 사업 모델과 해외 진출이다. 개성상인의 전통 중하나로 꼽히는 게 바로 ‘한 우물 경영’이다. 그러나 한 우물 경영을 잘 생각해야 한다. 한 우물 경영은 단하나의 사업 모델을 고집한다는 것이 아니다. 경영 이외 다른 것에 한눈팔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게 맞다. 우 회장 역시 토지를 사들여 부동산 시세 차익으로 돈을 벌거나 하지 않고 ‘사무의 편리함’이라는 한 가지 목표에 집중했다. 부친이 신도리코를 국내 굴지의 사무 기기 회사로 키웠다면 우 회장은 이를 넘어 세계적인 오피스 솔루션 전문 기업으로 육성한 것이다.


한편 매출액의 70퍼센트 이상이 수출일 정도로 수출 중심의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우 회장이 1980년 입사했을 때 100억여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1조 원 규모로 급성장했는데 수출을 지향한 우 회장의 공인 셈이다. 신도리코는 향후 글로벌 초일류 오피스 솔루션 전문 기업을 목표로 해외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한다. 지난 2010년 국내 복합기 업체로는 처음으로 자체 브랜드 신도 SINDOH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뚫은 데 이어 수출 물량을 점점 늘려가는 중이다. 디자인과 모바일 시대에 맞춘 전략도 내놓았다. 지난 2011년 세계적 디자인 회사인 탠저린의 마틴 다비셔 최고경영자가 방한해 우 회장과 만남을 가졌다.


탠저린은 아이팟, 아이폰 등을 디자인한 애플의 유명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를 배출한 회사다. 다비셔CEO를 비롯한 탠저린 수석 디자이너들은 2008년부터 신도리코와 작업을 함께했고, 지난 2010년 첫 결과물로 ‘투톤 컬러’로 차별화한 레이저 프린터 A400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해 우 회장은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창업 정신을 계승, 끊임없는 혁신 활동을 통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아서다. 1978년 우상기 창업주가 같은 상을 수상한 바 있어 부자父子가 함께 같은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2대에 걸쳐 이 상을 수상한 기업은 삼양그룹과 신도리코 둘뿐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 경영의 정도正道를 걸어왔다는 의미다.


우 회장은 지난 2008년 글로벌 브랜드 ‘SINDOH’를 선보이며, 마지막 철자 H에 Human, High Technology, Harmony라는 회사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경영한다면 2대는 물론 3~4대 이상 이어가는 100년 기업으로 성장하지 않을까 예감해본다.

 

신도리코 우석형(74·전기공학) 회장

1955 출생
1974 한양대 전기공학과
1980 신도리코 입사
1986 신도리코 대표이사 사장
1991 한양대 경영학 박사
2003 신도리코 회장(현)

 

 

위 기사는 한양대학교 대표 매거진 <사랑한대 Vol. 217 / 2014년 3-4월호>에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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