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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4 한양뉴스 > 문화 중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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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재조명합니다

과거와 현재의 다리를 잇는 문화재연구소

오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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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YRcM

내용
불과 몇 년 전, 서울캠퍼스 일대 행당동에서 일제 강점기 1930~40년대 시절 생활쓰레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여러 술병과 술잔들, 나막신, 안경, 펜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또 1970~80년대 ERICA캠퍼스 사동 일대엔 사리포구(현 안산 호수공원 부지)가 있어 어시장이 형성됐고 주민들은 그곳에서 해산물을 즐겼다. 이와 같은 사실은 여러 유형 문화재와 자연유산에 대한 조사 및 연구를 진행하는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덕에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8월 31일 김기룡 조사팀장(문화재연구소)을 만나 연구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타파! 문화재연구소는 어떤 기관?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999년 6월 18일에 개소해 현재 약 20년간 그 명맥을 유지해 오고 있다. 연구소의 업무는 크게 4가지다. 핵심 업무는 단연 고고학적 물질문화를 조사하는 것이다. 그 이외에 문화유산 보존·관리, 해외 유적지 발굴, 일반 시민들을 위한 지역 축제 기획· 운영 등을 도맡아 한다.

김기룡 조사팀장(문화재연구소)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문화재연구소가 아프리카 지역을 발굴했다”며 “지금까지 이란, 말레이시아, 러시아,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고고학 조사들을 진행했고 국가별 공동연구와 학술대회를 통해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유물들만 대략 5만 점. 그중 몇몇 중요 유물들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관된 상태며, 다른 유물들은 교내 자연사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김기룡 조사팀장은 "문화재연구소가 지금까지의 성과에 힘입어 앞으로도 고고학 분야에서 인정받고 성장하길 바란다"며 "연구소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무엇일까. 먼저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주먹도끼’가 있다. 구석기 시대 최고의 발명품이자 교과서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주먹도끼는 찢고, 자르고, 땅을 파는 등 복합적인 기능을 갖춘 하나의 도구다. 이외에도 서울 암사동 신석기 빗살무늬 토기나 삼국시대 기왓장들 역시 연구소가 발굴한 유물이다.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의 모습. 주먹도끼 하나로 동물의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발라내는 등 여러 용도의 사용이 가능해 현대판 '맥가이버 칼'로 불릴만 하다. (출처: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아울러, 매년 5월 초 어린이날 전후로 열리는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는 문화재연구소에서 처음 기획을 맡았다. 당시 동네 주민들과 함께 했던 조그마한 축제는 현재 매해 5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방문할 정도의 대규모 축제로 자리잡았다. 김 조사팀장은 “문화인류학과 학생들 중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축제에 강사로 참여한다”며 “축제 기간 동안 불 피우기나 토기 만들기, 목걸이 만들기 등 선사시대를 체험할 수 있는 부스도 마련한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 열린 제 1회 연천 전곡리 구석기 축제 현장 모습. 올해는 제 25회 축제로 지난 5월 3일부터 5월 7일까지 5일간 개최됐다. (출처: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지 [조사지역 북구 03]의 조사 광경이다. 해당 지역 조사는 지난 1990년대 초반에 이루어졌다.  (출처: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집중탐구! 과거의 캠퍼스 일대는 어떤 곳?

서울캠퍼스가 위치한 행당동(杏堂洞)은 예부터 살구나무와 은행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또 현재는 남아있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 때엔 이곳에 조그만 선술집들과 판자촌이 개울가 주변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고. 김 조사팀장은 “어렸을 때 성수동 근처에서 살았는데, 당시엔 현 무학여고가 있는 쪽에 판잣집이 많아 지금과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 후 점차 캠퍼스가 발전하면서 몇 년 전엔 한양대역 1번 출구 쪽에 ‘서울숲 더 샾’이라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했다. 참고로 현행법상 주택 건축을 비롯한 개발사업은 그에 앞서 매장 문화재 유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발굴 조사를 선행해야 한다. 그렇게 지난 2008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선 그 일대가 일제 강점기 시대 ‘생활 쓰레기장’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사용했던 ‘정종 잔’과 ‘정종 병’, ‘나막신’, ‘도자기’, ‘숟가락’등이 무더기로 나왔다. 현재 위 물품들은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Ⅱ 특별전 ‘쓰레기X사용설명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지난 2008년에 발굴된 '행당동 주개장 유적 공구류'의 모습 (출처: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지난 2008년에 발굴된 '행당동 주개장 유적 출토 신발류'의 모습 (출처: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

ERICA캠퍼스는 1970년대 중반 반월·시화 공단이 조성되면서 국가 산업 발전을 위해 조성됐다. 당시 안산 호수 공원 앞쪽엔 사리포구(浦口)가 있었고, 캠퍼스가 위치한 사동엔 분대(粉垈) 마을이라는 전통 마을이 있었다. ‘분대’라는 명칭은 골짜기 전체가 흙이 부드럽고 고와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기룡 조사팀장(문화재연구소)은 “학부생 시절 고고학 실습을 위해 분대 마을을 발굴 조사했던 기억이 난다”며 “당시 마을엔 2채 정도 집이 남아있었다”고 회상했다.

또한, 안산 지역은 예로부터 ‘성황굿’이 크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해안가 특성상 ‘풍어제(豊漁祭)’가 많이 열렸고, 과거 안산 지역 바다에서 억울하게 죽은 영혼을 성불(成佛)하고 천도로 인도하기 위해 별신굿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때문인지 현재도 안산역 주변엔 ‘점집’ 등이 많고, 지역 전통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안산 성황굿 예술제가 열리기도 한다.   
▲사리포구는 6.25 전쟁 이후 둑을 막아 난민들이 중심이 되어 어업에 종사하며 만들어진 곳으로, 과거 안산 지역에서 규모가 큰 포구 중 하나였다. (출처: 안산시사. 2011년 편찬)

 
지난날의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국내 고고학 조사만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만큼 해외 조사는 부족한 실정. 하지만, 한양대학교 문화재연구소는 대학 내 자체적으로 ‘아프리카’나 ‘이란’지역 발굴에까지 참여했고, 그만큼 고고학 연구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또 내부적으로는 그동안 국내 문화유산과 관련한 수많은 연구 용역들을 진행했고, 고고학에 관심 있는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왔다.

그렇지만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 역시 만만치 않다. 큰 사업부지 발굴조사를 하는 데 있어 사업자가 비용을 내는 경우가 많고, 만약 해당 지역에서 문화재가 발굴되면 사업에 차질이 생기거나 그 주변 지역 사람들이 금전적인 피해를 보기도 한다. 실제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의 경우, 농민들이 트랙터로 밭을 가는 모습을 보고 이를 말리다가 다툼이 생기기도 했다. 김기룡 조사팀장(문화재연구소)은 “다행히 그 후 경기도에서 박물관을 짓고, 축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며 인식이 좋아진 측면이 있지만, 앞으로도 문화재 발굴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인식을 좋게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서 발굴 조사를 진행한 모습. 김기룡 조사팀장(문화재연구소)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 네트워크를 통해 연구원들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글/ 오상훈 기자           ilgok3@hanyang.ac.kr
사진/ 김윤수 기자       rladbstn625@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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