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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22 인터뷰 > 교수

제목

편견없이 세상 보는 이슬람 전문가 이희수 교수

"발상의 전환 통해 새로운 세상 개척하는 도전정신 기를 수 있길"

인터넷 한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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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tCsB

내용
이슬람 문화권은 지구촌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를 포함해 우리 에너지 자원의 90%를 이슬람 문화권에 의존하고 있다. 유엔에 가입한 이슬람 국가만 57개국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 해외 건설 수주 1위 지역이고, 최근에는 한류 열풍이 불면서 ‘겨울 연가’, ‘대장금’이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아는 부분은 많지 않다. 미국에서 9·11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우리는 외신보도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단지 한 명의 한국 전문가만이 신문과 방송에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희수(국문대·문화인류) 교수. 대학시절 이슬람에 대한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 국내에서 손꼽히는 이슬람 전문가가 된 이 교수를 만났다.

이슬람 연구 30년, 이슬람 전문가로 거듭나다.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전화를 걸었을 때, 이 교수는 공항에 있었다. 다행히 출국장이 아닌 입국장에서 전화를 받은 덕분에 인터뷰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막 귀국한 이 교수를 서울캠퍼스 박물관에서 만났다. 출장은 역시 이슬람과 관련된 것이었다. 출장 장소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타슈켄트가 07년 이슬람 문화 수도로 결정되면서 열린 이슬람 세계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것이다.

“이슬람 세계를 이끌어 가는 영성과 지성의 5개 단체가 있습니다. 통칭해서 ‘이슬람 BIG 5’라고 부르는 데요. 이슬람 종교·학술 지도자가 주축이 된 그 5개 단체가 모두 모였어요. 회의 중간에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와 관련해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하고, 한국 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정부 대표자가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우리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국제 사회의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런 중요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슬람 문화를 대표하는 모든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어요.”

최근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와 관련해 이 교수의 의견을 물어오는 언론 매체가 증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교수는 국내에서 손에 꼽을 만한 이슬람 전문가다. 이슬람 문화를 접하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올해로 32년째라고 말하는 이 교수. 그가 이슬람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던 지난 7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보니 그 곳에 이슬람이 있었다.

“동기생들보다 3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유신 체제 아래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정치적·경제적으로 울분을 쏟아내고 있을 시기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내 인생이 이류인생밖에 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3년 늦었잖아요. 그래서 대학 1학년 때부터 고민했습니다. 남들이 안 하는 것, 남들이 미워하고 손대지 않는 분야를 하자고 결심했죠. 그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봤더니 중동이 보였어요.”

오일 쇼크 직후였다. 이슬람은 사람들에게 미개하고 야만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편견 없이 중동과 이슬람을 바라봤다. 미국과 이스라엘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그들의 세계관을 통해 이슬람 문화를 공부했다. 그렇게 대학시절을 보냈다. 우수한 성적으로 학사와 석사과정을 마친 이 교수는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사건을 맞이했다.

“하루는 신문을 보는데 터키 국비 유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는 거예요. 82년에 터키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해 양국 사회문화 교류 협정을 맺은 다음 해입니다. 보는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왕복여비와 등록금, 용돈까지 주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죠. 시험을 치는 날, 아침 일찍 시험 장소에 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안 와요. 시험 시간이 되니까 당시 문교부(교육부) 유학과장이 들어와서는 ‘이 정도 성적이면 미국 어느 대학이라도 갈 수 있는데 왜 터키를 가려 하느냐’고 5분을 넘게 설득을 했어요. 결국 혼자 시험 치러서 혼자 합격했습니다.”(웃음)

그렇게 해서 이 교수는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스탄불 대학은 1453년 설립된 유럽 최고 역사의 대학이다. 500년이 넘는 이스탄불 대학의 첫 한국인 유학생이 바로 이 교수다. 그는 이스탄불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을 하고 싶었지만 한국 대학은 이 교수를 받아줄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동·이슬람학과가 개설된 학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 전공으로는 한국에 가서 강의 하나 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어요. 귀국을 못하고 있으니까 지도교수가 왜 그러고 있냐고 묻더라구요. 제 사정을 알게 된 이스탄불 대학 총장님도 이해를 못하시는 거예요. 정부 장학생으로 온 사람이 갈 데가 없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현지 대학 교수 임용을 제안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또한 쉽지는 않았다. 외국인에 젊기까지 한 이 교수가 임용되는 것을 반대하는 교수들이 있었다. 이 교수는 인사청문회도 하고 공개 강의도 했다.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었다. 무기명 투표까지 가서 찬성 9, 반대 6으로 이스탄불 대학 첫 동양인 정식 교수가 됐다. 그렇게 이스탄불에서 첫 강단에 섰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현장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2년을 보냈다. 연구와 강의에 즐거운 시간이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커져만 갔다.

“교수는 레몬이 되어야 한다??”

“터키에서의 생활은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많은 것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터키 사람들은 저를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주었어요. 외국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친구로 생각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까지 지우지는 못했어요. 특히 부모님께서 보고 싶다고 무조건 귀국하라고 하시는데, 버틸 수가 있어야죠. 그래서 8년간의 터키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지난 90년, 귀국을 하면서 이 교수는 더 이상 교수가 아니었다. 다시 처음부터, 밑바닥부터 밟고 올라가야 했다. 강의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전국 대학을 돌아다녔다. 그렇게 5년이 흐른 95년 3월 본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정식 임용됐다. 터키 유학을 떠난 지 13년만이다.

“터키에서 한국으로 떠나기 전날, 지도교수가 절 불러놓고 이런 말을 했어요. 교수는 레몬이 돼야 한다. 무슨 말인가 싶어서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레몬의 진가는 즙에 있다. 그런데 레몬의 즙은 남들에 의해서 짜지는 것이고, 얼마나 철저히 짜지는 가에 따라 레몬만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따라서 교수는 레몬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이 말이 저에게 좌우명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전 레몬과 같은 교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어요.”

강의 첫 시간, 이 교수는 항상 레몬 즙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그리고 학생들이 자신이 가진 즙을 최대한 많이 짜내고 활용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가져 갈 수 있도록 열정적인 강의를 한다. 이 교수는 강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소중히 생각하고 있었다. 귀하게 얻은 강의 시간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한다고 말하는 그의 눈가에 살며시 눈물이 맺혔다. 열정을 가지고 수업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과 진정성을 가지고 소통한다는 이 교수. 그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기르라고 조언했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라”

“발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틈새경쟁이라는 말입니다. 틈새경쟁이라는 것은 기존에 짜여 있는 틀에서 빈틈이나 허점을 파고들겠다는 뜻이잖아요. 하지만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보세요. 고개를 돌려 다른 방향을 바라보면 아직도 진공 상태로 남아있는 미지의 세계가 많이 있습니다. 꼭 이슬람이 아니더라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중앙아시아 등 많아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법대가 그렇게 많고, 판·검사가 그렇게 많은데, 아직 이슬람법을 전공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현실입니다.”

그의 말처럼 아직도 개척할 수 있는 그리고 개척해야 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특히 이슬람에 대한 관심은 국내에서 매우 커지고 있다. 외교부는 늘어나는 이슬람 문화권 노동자들을 위해 이슬람 문화를 전공한 사람을 특채로 선발하고 있다. 한 대기업의 경제연구원은 이슬람 문화를 전공한 박사급 연구원을 수시로 선발하고 있는데 지원자가 없는 실정이다. 이슬람 문화 연구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지만 공급은 이에 미치지 못함을 증명하고 있는 일들이다. 이를 위해 이 교수는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

“안산 지역은 이슬람 문화권 외국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을 이용해 안산캠퍼스 내에 아시아 최고 수준의 중동이슬람연구센터를 만들 생각입니다. 이미 해외지역연구소가 설립됐고 그 안에 중동이슬람연구센터를 연구의 메카로 만들려고 합니다. 현재 사업 진행을 위해 박사급 연구원 10명이 한 달 넘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넓게는 전 세계에 있는 다양한 지역·문화에 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우리의 방법론과 우리의 인식을 바탕으로 가공해서 우리나라 국가 정책에 투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런 목표를 가지고 연구할 생각입니다.”

30년을 넘게 이슬람 문화를 연구했고, 터키를 방문한 횟수만 100번이 넘는다는 이 교수. 하지만 그는 아직도 공부할 이슬람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뒤를 잇는 제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꼭 이슬람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할 수 있는 도전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라면 이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가 보자.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 장기진 취재팀장 jyklover@hanyang.ac.kr
사진 : 김기현 사진기자 azure82@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 교수는 한국외대에서 터키어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 중동지역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83년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스탄불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동양인 최초로 이스탄불 마라마라 대학에서 2년간 강의했다. 귀국 후 지난 95년 본교 교수로 임용됐다. 저서로는 ‘이슬람 문화’, ‘이슬람 : 이슬람 문명 올바른 이해하기’ 등이 있다. 현재 본교 국제문화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본교 문화재연구소장을 비롯해 이슬람문화연구소장, 한국이슬람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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