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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5 인터뷰 > 동문

제목

꿈이 있으니 길이 있고, 그렇기에 행복하다

팝페라 가수 테너 김재빈 동문(성악과 09)

이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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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uFbU

내용
 
막연하게 살기도 벅찬 요즘이다. 누구는 크게 꿈을 꾸라며 자꾸만 채찍질한다. 하지만 어떡해야 이룰 수 있을까, 아니면 그런 고민조차 들지 않아 절망하는 청춘들이다. 스스로 말하길 ‘무모하게 살아왔다’던 김재빈 동문(성악과 09)은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 갔다. 특유의 무모함은 무대를 펼치며 꿈도 펼치는 그를 만들었다. 팝페라 가수 테너 김재빈 동문을 만났다.
 
▲에클레시아(Ekklesia)의 리더이자 팝페라 테너 가수, 김재빈 동문(성악과 09)이다. (출처 김재빈 동문)

무작정 찾아다닌 공연 기회
 
김재빈 동문은 주로 에클레시아(Ekklesia)라는 그룹으로 활동 중이다. 에클레시아는 김 동문이 졸업하면서 만든 그룹으로 이름은 그리스어로 ‘부르다’(to call)라는 뜻을 갖고있다. “관객들이 '우릴 불렀다'라는 뜻을 주로 쓰고 있어요. 종교적으로는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라는 뜻도 있죠. 팀 이름을 짓고자 하던 중에 친누나가 툭 던진 단어가 그룹의 정체성이 됐어요. 다른 이들에게 물었을 때 ‘꽃 이름 같다 예쁘다’는 얘기도 있어서 주저할 이유가 없었죠.”
 
시작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학창시절 유엔젤보이스(UangelVoice)라는 팝페라 그룹에서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나름 이름을 알린 바 있다. 그럼에도 막상 함께한 단원 몇 명과 함께 에클레시아를 결성했을 때 맞닥뜨린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이름을 알려야 섭외가 들어오는데 공연이 없으니, 그럴 기회도 부족했다. 무명의 악순환이었다.
 
김 동문은 에클레시아 결성 초기를 떠올리면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나날이었다. “무작정 공연장소를 찾아다니며 ‘우리를 무대에 세워달라. 페이는 받지 않겠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유엔젤보이스 시절 알게된 팬분들을 통해 공연 섭외도 조금씩 받을 수 있었고요. 그렇게 반년은 거의 무보수였고 , 2년이 지나니까 서서히 페이도 받았던 거 같아요.”

무작정 했던 보험설계사도 또 다른 기회로
 
김 동문은 예술가로는 특이하게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력이 눈에 띈다. 이에 김 동문은 “얻은 것도 많은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룹 리더로서, 그룹 이름의 앨범이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어요. 재정적으로 불안한 상황에서 팀원들에게 돈을 걷는 것도 미안한 상황이었죠. 한 4개월 공연과 병행하면서 처음 목이 쉬는 경험도 하며 결국 그만뒀어요. 고객들께도 죄송했지만 오히려 ‘너가 음악에 전념하길 바란다’고 응원해주셨죠. 그렇게 정리하고 나온 보험회사가 팀에게도 또다른 기회가 됐어요.”
▲보험회사와의 인연은 일반인CF에도 나가는 기회도 안기는 등 김재빈 동문에게 다양한 경험을 선사했다. (출처: 김재빈 동문)
 
보험회사에선 보험설계사를 교육할 때 설계사와 고객 사이의 여러 감동 이야기를 들려준다. 설계사들의 심리적인 면을 보강하기 위해서다. 평생 음악만 하다 접한 낯선 이야기는 김 동문에게 새로운 자극이었다.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획한 공연은 다른 보험회사와 인연을 맺어줬다. “노래 사이사이에 메시지를 얹어요. 가령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위해 ‘등산을 하는데, 너무 힘들어 지름길을 찾았지만 결국 포기하지 않는 길이 지름길이더라’는 말을 하죠. 편법은 없다. 그러고서 ‘포기하지 말라는 의미로 이 노래를 들려주겠다’하는 거예요." 이 공연은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아 보험회사와 장기적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약간의 여유가 생겼고 김 동문과 그룹 에클레시아에 또 다른 원동력이 됐다. 단복도 맞추고, 팬들을 위한 공연도 기획하고. 이렇게 쌓인 프로필은 에클레시아를 증명하는 이력이 돼 더 많은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결국 포기하지 않고 가야겠구나, 앞으로도 포기 않을 이유가 됐죠.” 지금 에클레시아는 자유롭지만, 서로가 필요할 때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함께한다.
 
▲지난 2017년 에클레시아 팬들과 만난 자리. "이제는 혼자가는 길이 아녜요." (출처: 김재빈 동문)

은사님을 만난 값진 경험
 
에클레시아 결성 초기도 힘들었지만, 한양대를 오기까지도 김 동문에게 있어 잊지 못할 시기다. 지방의 한 대학 성악과에 진학했던 김 동문에게 우연히 같은 부대를 간 동기가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무작정 상경하자던 그의 설득에 넘어갔다. “큰 물로 가자던 그 말이 그땐 그렇게나 달콤했죠.(웃음) 군대서 받은 돈을 모아 휴가 때마다 서울로 가서 박흥우 선생님께 레슨을 받았어요.”
 
이제는 1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김 동문에게 그의 이름 석 자는 잊지 못할 은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레슨비도 간신히 내던 그를 박대하지 않고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제대한 후에는 아예 ‘너 형편 어려우면 그냥 (돈 없어도) 가르쳐주겠다. 와라’ 하셨어요. 정말 큰 은혜였죠.” 박 선생님 밑에서 열성을 다하는 한편, 생활비를 구하고자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25살이 돼서야 김 동문은 한양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군대 전역 후 2년만이다. “식당, 카페, 배달, 용역 등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어요. 그렇게 들어간 학교에서 곽신형 교수님을 만났죠.”
 
한양대 명예교수인 곽신형 교수(성악과)를 사사하게 됐다. 가정형편을 알기에 많이 챙기고, 더욱 보듬어 주던 곽 교수 덕에 김 동문은 위로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3학년이 될 무렵 곽 교수가 팝페라 그룹 유엔젤보이스 입단을 추천하며 김 동문의 팝페라 입문이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팝페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저 역시 ‘왜 저를?’하는 마음도 있었죠. 그런 계속 설득하셨어요. 경험이 될 거다. 그리고 교수님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입단을 준비했죠.”
 
유엔젤보이스와 남은 학부시절을 함께했다. 성악만 해온 김 동문에게 팝페라는 조금 생경했다. “마이크를 쓰지 않다가 쓰려니 무척 낯설었어요.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 지금은 익숙해졌죠. 경험이 쌓이면서 팝페라라는 장르가 익숙해졌던 거 같아요.” 당시를 회상하면 “좀 많이 무모했었다”며 웃는 김 동문이다. 하지만 그 무모함은 결국 에클레시아와 지금의 김 동문을 만들었다.
 
무모하게, 하지만 주저않고
 
지하철에서 선보인 공연 무대는 ‘왜 음악을 하는가’에 대한 답변도 더해줬다. 공연 시장이 침체기이던 2014년 중순, 에클레시아는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에서 제공하는 공연무대를 지원받아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그렇게 공연을 하던 어느 날 한 모녀가 유독 눈에 밟혔다. “아이는 공연 내내 열중하고 어머니는 왜인지 핸드폰을 틈틈이 보곤 했죠. 그렇게 1시간 공연을 다 본 모녀는 떠났어요. 그런데 어머님께서 케이크과 커피를 사들고 오신 거예요. 사진을 요청하면서 말씀하셨죠. ‘원래 음악을 안 듣는 아인데 이 무대는 계속 보고 싶어해서 과외도 미루고 보게 해줬다. 너무 고마운데 현금이 없어 이렇게나마 보답하고 싶다.’ 그때 행복해하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떠올라요. 내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서울메트로(현 서울교통공사)의 기획으로 열린 무대에서 만난 모녀는 김재빈 동문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안겼다. (출처: 김재빈 동문)

역경이 있었지만, 꾸준한 노력들은 어느샌가 보답으로 돌아왔다. 어려움에도 당당했다. “학창시절 생계 관련 장학금 덕에 부담을 덜었어요. 낼 서류도 많았지만, 부끄럽지 않았죠. 등록금 내준다는대. (웃음)” 그는 즐거우면 무조건 한다. “바보였지만, 거절이 두렵지 않아 문부터 두드리고 보는 바보 였어요.” 김 동문의 삶의 궤적은 그렇게 두드리며 만들어졌다. “해보고 나니까 ‘되네?’ 했던 거 같아요. 보험회사와도 콜라보가 됐잖아요? 앞으로도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공연을 기획해가는 게 꿈이에요.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물론 공연과 음반, 사회공헌도 함께해야죠.” 꿈이 있었기에 힘이 든 것도 잊고 살아왔고, 지금도 꿈이 있어 행복하다는 김 동문. 행복은 길이 있기에 있다는 그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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