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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 29

[오피니언][담장 없는 에세이 Ⅱ] 먹기 대회 주의보

고창수박축제에 갔다. 축제장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오후 6시부터 수박 빨리 먹기 대회를 실시합니다.” 아내가 나지막이 말했다. “나가지 마아~.” 아내가 먹기 대회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먹는 것에 대해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것이 있어서다. 몇 년 전 어느 백화점에 갔을 때,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아내가 약을 먹다가 목에 걸려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어서 아내는 일어서서 안절부절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아내의 등을 세게 쳐줘서 약이 튀어나왔다. 화장실 다녀오느라 영문을 모르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나 죽을 뻔 했어.” 어느덧 수박 빨리 먹기 대회가 시작됐다. 1차 대회에서 여섯 명의 출연자 모두 열심히 참여했다. 그런데 몇 명이 목이 막히는지 먹는 속도가 줄어들었다. 그중 한 명은 몸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안절부절 못하고 정신이 없는 표정으로 힘들어했다. 그때였다. 아내가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빨리 나가서 저 분 등 두드려 줘요.” 나는 곧바로 달려 나갔고, 그분의 등을 손바닥으로 세게 대여섯 번 쳤다. 밥 한 공기 정도의 씹다 만 수박이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분은 여전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는지 고맙다는 말을 할 경황도 없이 의자에 앉아서 연신 심호흡을 했다. 수박 먹기 대회는 그래도 계속 진행됐다. 곧바로 2차 대회가 시작됐다. 응급처치를 해준 일로 사회자는 나를 ‘응급처치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2차 대회 우선 선발자 자격을 주었다. 나는 아내에게 “그냥 천천히 맛있게만 먹고 들어올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말했고, 아내의 만류에도 “조심해서 할게”라고 안심시키고 출전했다. 대회용 수박 조각이 내 앞으로 왔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작아 보이는 것을 집어 들었다.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열심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시작 휘슬이 울렸다. 그런데 불과 10초나 지났을까. 목이 꽉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아앗, 나도. 나는 더 이상 먹지 않고 입 안에 있는 수박만 으깨어 수박 국물을 바닥으로 흘렸다. 막힌 목이 겨우 뚫리고 좀 살 것 같았다. 나는 먹는 속도를 늦추고 국물은 바닥으로 흘리는 새로운 작전을 구사했고,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사회자는 나를 현재 가장 앞서고 있는 출연자 두 명 중 한 명으로 지목했다. 그러나 결과는 2등. 나는 우승자에게만 주어지는 ‘수박 한 통’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수박 빨리 먹기 대회에서 1등을 하려면 맛있는 수박 국물을 대부분 바닥으로 흘려보내야 하기 때문에 수박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는 것과 먹기 대회 참여는 참으로 위험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랑한대 2018년 09-10월호 이북 보기

2018-09 29

[오피니언][담장 없는 에세이 I] 2018 여름 올레캠프를 떠올리며

‘사랑한대’는 한양대학교 입학처 소속의 재학생 홍보대사입니다. ‘사랑한대’라는 이름은 한양대학교의 건학 이념인 ‘사랑의 실천’에서 ‘사랑’, 한양대학교를 줄인 ‘한대’를 붙여 만들었습니다. 사랑한대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큰 목표를 뿌리로 삼고 두 가지 세부 목표를 정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재학생의 애교심과 소속감을 고취시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예비 한양인을 위해 학교를 알리고 올바른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올여름 사랑한대는 두 번째 목표를 위해 2018 여름 올레캠프를 진행했습니다. 글. 이석준(정책학 16) ▲ 올레캠프 후 사랑한대 학생들과 올레캠프 스태프가 함께 모여 찰칵! 여섯 번의 회의와 두 번의 리허설 올레캠프는 사랑한대가 한양대학교 안에서 진행하는 단기캠프입니다. 고등학생 남녀 100명에게 선착순으로 참가 신청을 받았는데, 사랑한대 대표 캠프답게 20시간 만에 자리가 채워졌습니다. 올레캠프는 하루라는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되지만 알차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저희가 오래전부터 준비했습니다. 오전은 학교 소개와 입학 설명회, 캠퍼스 투어로 학교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으로 구성했고, 오후는 한양 골든벨, 멘토링, 학과 빙고(Bingo), 동아리 공연, 레크리에이션을 준비해 한양대학교와 좀 더 친해질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했습니다. 올레캠프를 진행하기 전, 많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여섯 번의 회의와 두 번의 리허설을 진행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걱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날씨였습니다.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한 바퀴 돌아보는 캠퍼스 투어를 준비했는데, 기록적인 폭염으로 학생들이 힘들어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중간중간 실내에서 땀을 식힐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고, 그곳에서 팀 게임을 진행해 불쾌하지 않은 캠퍼스 투어가 되도록 노력했습니다. ‘만약 땀을 식힐 수 있는 공간이 없었더라면 일사병과 같은 큰일이 발생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내 공간을 마련한 것은 38도가 넘는 날씨에 적절한 준비였습니다. ▲ 학교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 ▲ 학과 빙고를 진행한 뒤 캠프 참가 학생이 과잠을 입고 기념 촬영을 했다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춘 다양한 프로그램 올레캠프 당일,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시간을 맞추지 못한 학생들이 많았고, 개인행동을 하는 학생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습니다. 게다가 준비한 프로그램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결국 오후 프로그램이었던 ‘한양 골든벨’을 단축해서 진행해야 했습니다. 반면 새로운 프로그램이라 걱정이 앞섰던 ‘학과 빙고’는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재미있게 학과를 소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통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입니다. 과잠(학과 점퍼)이 대학생의 상징과 같은 옷이고, 학교의 마크가 달려 있기 때문에 고등학생 때 가지고 싶어 했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과잠에 대한 동경을 자극하며 학과 소개를 하면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습니다. 16개의 학과를 소개하기로 결정했고, 16개의 과잠을 지인들에게서 빌렸습니다. ‘학과 빙고’ 프로그램은 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학과의 과잠일지 맞추는 게임으로 진행했고, 정답이 공개될 때마다 학과에 대한 소개가 이뤄졌습니다. 조마다 빙고 종이를 제공해 답을 맞춘 조는 빙고 칸을 채웠고, 가장 많은 빙고를 완성한 조에게 한양대학교 기념품을 선물로 건넸습니다. 또 ‘학과 빙고’ 게임이 끝난 뒤 200명 모두 원하는 학과의 과잠을 입고 포토월에서 사진을 찍는 시간을 가졌는데, 고등학생들이 해맑게 웃으며 무척 좋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진행 방식을 바꿔 강의실을 빌린 뒤 원하는 멘토링을 들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멘토링은 정시, 수시와 같은 입학 전형을 대비하는 법부터 생활기록부 관리법, 수험생활 백서, 멘탈 관리법까지 준비했습니다. 고교 시절의 구체적 경험을 토대로 멘토링을 준비했기 때문인지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많은 공감을 표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정보를 얻기 위해 집중하는 모습은 제게 긍정적인 자극이 됐습니다. ▲ 오후에 진행한 학과 빙고 프로그램 모두의 힘으로 완성한 캠프 올레캠프의 마지막 순서는 올레캠프 영상 감상과 기념사진 촬영이었습니다. 하루라는 짧은 시간을 함께하며 이제 막 친해지려는 찰나에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와 모두가 아쉬워했습니다. 특히 이번 올레캠프는 더운 날씨에 같이 고생하며 유독 정이 많이 쌓였던 것 같습니다. 애지문까지 배웅을 나가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고 연락처를 교환했습니다. 학생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보람을 느끼게 되더군요. 그만큼 올레캠프가 좋았다는 뜻일 테니까요. 지난 7월을 돌아보면, 많은 분들이 떠오릅니다. 최악의 폭염 속에서 수없이 많은 땀을 흘리며 도움을 준 올레캠프 스태프 친구들, 매번 ‘사랑한대’를 챙겨주시며 뒤에서 든든히 지원해주시는 한양대학교 입학처와 이미연 선생님 그리고 바쁜 일정을 쪼개 아름답고 멋진 무대를 보여준 동아리 ‘소리울림’과 ‘쇼다운’까지. 그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올레캠프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감사하다는 짧은 문장에 모든 진심을 담을 수는 없겠지만, 올레캠프에 도움을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 올레캠프 참석자들 단체 사진 사랑한대 2018년 09-10월호 이북 보기

2018-09 29

[오피니언][건강 인사이트] 수면장애 극복하고 꿀잠을 맞이하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을 청한다’고 말한다. 많은 불면증 환자들은 잠을 자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잠은 쫓아가면 갈수록 달아나는 법! 왜 그럴까? 잠은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노성원(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병 수면 부족은 우리의 건강을 위협한다. 면역력을 떨어뜨려 감염성 질환이나 암에 걸릴 위험을 높이고,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부위에 손상을 줘 기억력을 떨어뜨리고 치매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복용하는 수면제 중에는 기억력을 떨어뜨리는 약도 있다. 인구의 3분의 1이 과거에 불면증을 겪었거나 현재 겪고 있을 정도로 불면증은 수면장애 중 가장 흔한 질환이다. 불면증 환자의 10% 정도가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십 년까지 만성불면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불면증이란 잠들기 힘들거나, 잠은 들지만 자주 깨거나, 새벽에 너무 일찍 잠에서 깨어 수면 부족 상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해 낮 동안 피로감, 졸음, 의욕 상실 등의 결과를 초래하는 병이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불면증을 불면장애라고 하는데, 이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 3개월 이상 불면증이 지속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것을 말하며, 이때는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하다. ‘수면 무호흡증’도 수면장애의 하나다. 대개 숨길의 구조와 코막힘이 원인인데, 턱이 짧고 들어가 있거나, 목이 굵거나 짧고, 콧대가 휜 경우 생길 가능성이 높다. 중년 이상의 남성, 비만, 심장 질환 등이 있는 경우 위험성이 높다. 밤에 코를 심하게 골고, 숨을 쉬다가 멈추고, 코로 숨을 쉬지 못해 입으로 호흡하는 경우가 많아 아침에 일어나면 입이 말라 있다. 수면 무호흡증을 개선하기 위해 비염이 있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 비수술적으로는 양압기 치료가 효과적이다. ‘하지불안증후군’도 수면을 방해하는 병이다. 자려고 누우면 종아리와 허벅지 부분에 갑갑한 느낌이 들고 다리를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잠들기가 힘들다. 종아리나 허벅지에 저린 느낌이 들 때 주무르거나 쭉 뻗으면 좀 나아진다. 걸으면 다리 불편감도 줄어들고 답답한 마음도 나아지기 때문에 자려다 말고 일어나서 걸어 다니기도 한다. 철분이 부족해서 하지불안증후군이 오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혈액 검사 후 부족한 철분을 보충하는 치료가 도움이 된다. 그 밖에 우울증, 불안장애가 있는 경우에 불면증이 흔히 동반된다. 이 경우 단순히 불면증만 치료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고, 기저 질환인 우울증이나 불안장애를 해결해야 한다. 꿀잠 드는 꿀팁 불면증이 생기면 흔히 약국에서 수면유도제(주로 감기약 성분인 항히스타민제)를 구입하거나, 병원에서 수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게 된다. 하지만 약물 치료만큼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비약물 치료에 대해 잘 알고 스스로 적용한다면 수면제 복용을 줄이고 불면증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면위생’이라는 생활 수칙이 그중 하나다. 불면증을 겪고 있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긴 생활 습관과 행동 방식을 바꾸는 것이 불면증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아래에 나오는 열네 가지 수면위생을 잘 지켜보자. ① 취침과 기상시간을 규칙적으로 지킨다. ② 배가 고프면 자기 전에 간식을 가볍게 먹는다. 단, 침대에서는 먹지 말고 과식하지 않는다. ③ 규칙적으로 운동한다. 단, 잠자기 직전이나 침대에서는 운동하지 않는다. ④ 잠자기 1시간 전부터는 편히 쉰다. ⑤ 잠자리에서 걱정거리가 있다면 종이에 써놓고 아침에 본다. ⑥ 침실을 시원하게, 어둡게, 조용하게 유지한다. ⑦ 낮잠을 자지 않는다. ⑧ 시계를 보지 않는다. 단, 알람이 필요하다면 시계를 서랍에 넣어 놓는다. ⑨ 잠이 오지 않을 때 침대에서 TV를 보지 않는다. ⑩ 오후에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⑪ 잠이 오지 않을 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⑫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지 않는다. ⑬ 잠이 오지 않을 때 침대에서 독서하지 않는다. ⑭ 침대에서 전화 통화를 하지 않는다. 잠을 자려고 지나치게 노력하면, 오히려 잠이 들지 않는다. 잠을 못 자면 어떻게 하나 불안해지기도 한다. 잠은 쫓아가면 갈수록 오히려 도망가게 된다. 잠이 나를 찾아오도록 기다려야 잠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불면증 환자들에게 가능한 오랫동안 깨어 있도록 시키면 불안 증상이 줄어들면서 오히려 쉽게 잠이 든다. 침대에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간들이 많아지면 우리 뇌는 ‘아, 이곳이 자는 곳이 아니라 잠을 뒤척이는 곳이구나’라고 학습하게 되고, 이렇게 되면 졸려서 자려고 참대에 누웠다가도 잠이 달아나게 된다. 그래서 잠자리에 누워 15분 정도가 지나도 잠이 오지 않으면 너무 애쓰지 말고 그냥 잠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겨 본다.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잠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다. 이때 잠자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복식호흡, 명상 등과 같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단, 거실 소파에 편하게 기대어 있다가 잠드는 것은 좋지 않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것은 잠잘 수 있는 상태가 된 후 다시 잠자리로 되돌아가기 위해서다. 이렇게 잠이라는 것은 강제로 자려고 한다고 해서 오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잠이 들도록 해야 한다. 다시 기억하자! 잠은 청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 사랑한대 2018년 09-10월호 이북 보기

2018-07 31

[오피니언][건강 인사이트] 송골송골 땀 건강학

땀이 나는 원리는 뭘까? 땀은 전해질 농도가 낮은 물을 밖으로 내보내 몸의 표면에서 증발시킴으로써 체온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운동을 함으로써 혹은 다른 활동으로 인해 체내에서 발생한 열이 이 땀의 증발로 조절이 된다. 땀을 적당히 흘리면 고온 환경에서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으며 달리기나 운동 중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글. 박훈기(한양대학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땀으로 확인하는 건강 이상 신호 식은땀은 덥지도 않은데 땀이 나는 것을 말한다. 결핵과 같은 균의 감염, 드물게는 암 등으로 인해 생길 수도 있다. 더위를 못 참고 땀이 많이 난다면 몸 안에서 에너지 발생이 많아진 것일 수 있다. 이때 갑상선 기능이 올라간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땀이 너무 많이 날 때 질환으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은 갑상선 기능항진증, 갈색 세포종(아주 드문 질환으로 혈압도 함께 오른다), 폐경기(일시적으로 땀이 많아지는 경우로, 얼굴이 달아오르는 증상이 함께 온다) 등이 있다. 식은땀이나 땀이 너무 많아진 경우에는 우선 의사의 진찰을 받아서 다른 병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운동을 평소에 많이 하던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거나, 더운 곳에서 6주 이상 살다온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는 것은 생리적으로 몸이 환경에 적응을 하는 데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드물게 땀이 얼굴 한쪽에만 나기도 하는데, 이는 선천적인 이상으로 건강에는 큰 지장이 없다. 반면 땀이 줄어든 경우에는 거꾸로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생각할 수 있다. 이때는 추위를 잘 타게 된다. 맵거나 자극적인 음식에 의해 땀을 많이 흘리는 경우, 긴장, 통증, 공포, 분노 등에 의해서 땀이 많이 나는 경우는 생리적인 현상으로 평소보다 도가 지나칠 경우에만 의사의 진찰을 받으면 된다. 여름철 수분 섭취와 땀 관리 수칙 땀을 많이 흘린 후 수분 섭취는 어떻게 해야 할까? 땀을 흘린 만큼 물로 보충하고, 땀을 많이 흘릴 것이 예상되면 미리 수분을 섭취해 둔다. 땀 흘릴 때 마시는 물은 약간 차가운 물이 좋고 얼음은 피한다. 이때 마시는 물은 갈증 해소 정도로는 부족하다. 소변의 색깔이 엷어질 때까지 충분히 마셔야 한다. 더운 데서 활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소변 색이 엷은 노란색이 될 때까지 수분을 충분히 보충해줘야 한다. 대개 더운 환경에서는 일부러 틈나는 대로 물을 마셔야 탈수를 예방할 수 있다. 소금물을 마시는 것은 좋지 않다. 오히려 갈증을 심하게 만든다. 또 혈압을 올릴 수 있어 좋지 않으며, 속이 메스꺼운 원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몸에서 빠져나간 양보다 많아지면 오히려 나트륨 농도가 너무 올라 문제가 되기도 한다. 땀을 많이 흘린 후 어지럽거나 열이 나면 즉시 서늘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물을 보충한다. 혹시라도 땀이 많아지고 더위를 잘 타는 체질이 새로 생겼다면 의사의 상담을 받는다. 땀에 관한 잘못된 상식 땀을 빼고 나면 열병이 좋아진다? 식은땀이 없어지고 정상적인 온도의 땀이 나서 오한이 없어짐을 의미하므로 직접적인 병의 경과를 반영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열감기 때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낸다고 병이 호전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확실하게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좋아진다고 봐야 한다. 운동 중에 땀을 흘리더라도 물을 마시면 안 된다? 아니다. 반드시 마셔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몸무게 감소분만큼 30분~1시간 간격으로 보충해줘야 한다. 1시간 이상 운동을 하는 경우 물뿐만 아니라 전해질도 보충해야 한다. 땀의 양이 시간당 1리터를 넘으면 전해질의 양도 함께 감소하므로 스포츠 드링크를 함께 마시는 것이 좋다. 우선 운동 2시간 전에 500cc 정도의 물을 마시고 30분 전에 물 한두 컵을 다시 마신다. 그 후로는 1시간 간격 혹은 30분 간격으로 물을 300cc 정도 보충하고 1시간 간격으로는 스포츠 음료를 함께 마신다. 헬스장이나 사우나장에서 땀복을 입고 땀을 내는 것은 건강에 좋다? 아주 안 좋다. 땀으로 줄어든 몸무게는 물을 마시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온다. 특히 전해질의 보충 없이 물만 먹으면 저나트륨혈증이 되어 위험에 빠지게 된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수분 보충을 안 하면 탈수로 인한 저혈압이 생긴다. 배출된 땀이 증발하는 것을 땀복으로 인위적으로 막을 경우 심하면 열사병까지 걸릴 수 있다. 절대로 몸을 감싸고 운동을 하거나 고온 환경을 찾으면 안 된다. 사랑한대 2018년 07-08월호 이북 보기

2018-05 31

[오피니언][담장 없는 에세이] “중국에서 날아와 한양에서 방송인의 꿈 키워요”

우리나라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방송인의 꿈을 키운 중국 소녀가 한양으로 왔습니다. 한양의 친구, 선배들과 함께 씩씩하게 꿈길을 걷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글. 왕연(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과정 17) 예능 프로그램으로 만난 한국 그리고 한양 안녕하십니까? 한양대학교 석사과정 17학번으로 입학한 ‘미래의 방송인’ 왕연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은 모두 입시 공부에 열심일 때 저는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중국의 미디어 산업은 아직 콘텐츠가 부족한 편이라 한국에서 프로그램을 수입하고 있어요.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리얼리티 버라이어티쇼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한국 예능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유형의 쇼를 접한 저는 재미있는 버라이어티쇼를 제작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온 저는 드디어 작년, 미디어 분야에서 좋은 학교로 손꼽히는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교수님의 칭찬은 동기와 선배들 덕분 입학 전 대학원 생활에 대한 상상을 많이 해봤습니다. 미디어 전공이라 방송 프로그램을 같이 제작하는 것이 주된 학습 내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대학원생은 연구 논문을 쓰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석사 1기 첫 수업인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끝난 후 정신없이 보낸 일주일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데니스 맥퀘일이 쓴 <매스커뮤니케이션 이론>이라는 책은 미디어 분야 전공자라면 꼭 읽어야 하는 책으로 내용이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주일 동안 두 장을 읽고 20페이지 이상의 요약본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수업 내용을 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제겐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연구 논문을 쓰려면 사회과학 연구방법이나 통계방법 같은 것도 공부해야 합니다.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가 몰려왔고 심지어 공부를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의 선배들과 동기들이 저를 많이 도와주어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1학기를 힘들게 마친 후에는 동기의 조언을 듣고 박사 선배님들이 여름 동안 진행하는 세미나에 참가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연구방법에 대한 책과 선배가 가져온 자료를 보고 퀴즈도 풀면서 다양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2학기부터는 선배들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논문 발제를 하거나 논문계획서를 썼습니다. 그 덕분에 학기 말에는 교수님으로부터 외국 학생이 논문을 잘 쓴다는 칭찬도 들었습니다. 그때의 뿌듯한 마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모두 한양대의 건학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몸소 체험하고 힘써 실천하는 선배들 덕분입니다. 나만의 무기 가진 미디어 강자가 될 때까지 1년 동안 전공 공부를 하면서 한국 방송 산업의 강점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바로 시스템의 중요성과 콘텐츠의 생명력입니다. 콘텐츠는 한 쇼의 핵심이고 미디어 산업의 중요한 경쟁력인데, 중국에서는 한국의 콘텐츠를 따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점이 실망스러웠던 저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꼭 성실한 방송인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뉴스를 하면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보도하고,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면 남의 것을 모방하지 않고 특별한 콘텐츠를 선보일 겁니다. 봄이 시작된 지난 3월은 제가 태어난 달이기도 합니다. 뜻깊은 이 시기에 저는 또 한 번 중요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바로 석사에서 석박사통합과정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선택을 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박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할 수 있을지 불안했고, 외국 학생이라 겪을 수 있는 어려움도 고민 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한양대에 대한 깊은 마음과 저 자신에 대한 큰 기대 때문입니다. 친절한 교수님과 선배들, 많이 배우게 해준 수업, 풍부하고 다채로운 학교 활동 등 한양대의 매력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습니다. 또한 제가 꿈꾸는 훌륭한 방송인이 되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중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칼을 제대로 차지 않았는데, 벌써 강호이다.’ 자신만의 무기를 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경기장에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중국 고대의 검객처럼 끊임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 끝까지 승리하기 위해, 지금부터 저만의 날카로운 검을 가질 수 있도록 계속해서 노력하겠습니다. 사랑한대 2018년 05-06월호 이북 보기

2018-05 31

[오피니언][건강인사이트] 환절기 기온차에 의한 호흡기 질환

우리 몸의 여러 기관 중 호흡기는 대기에 직접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일교차가 심한 환절기에는 호흡기 질환이 증가해 기침, 가래로 고생하기 쉽다. 글. 김태형(한양대학교구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 대표적인 호흡기 질환과 ‘감기’라는 이름의 불치병 대표적인 호흡기 질환으로는 감기와 독감, 폐렴과 같은 감염 질환, 만성 기관지염과 폐기종으로 더 많이 알려진 만성 폐쇄성 폐질환(COPD)과 기관지 천식 등의 기도 질환 등이 있다. 불행히도 대부분의 호흡기 질환은 단편적인 증상만으로 진단하기 어렵다. 기침, 가래, 호흡 곤란, 객혈, 가슴 통증 등이 대표적인 증상들이지만, 이는 감기에서부터 폐암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병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증상의 유무보다 그러한 증상이 언제 생겼는지, 얼마나 심한지, 선행 질환이나 동반 질환이 있는지, 악화 요인이 있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진단과 치료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된다. 환절기 호흡기 질환 중 대표적인 질환은 역시 ‘감기’라고 불리는 상기도 감염이다. 상기도 감염은 염증의 위치에 따라 비염, 부비동염, 인후염, 후두염 등으로 분류되지만 이 질환들이 같이 섞여 있는 경우도 많다. 병변이 조금 아래로 내려가서 후두를 지나면 급성 기관지염이 발생한다. 감기의 원인은 90% 이상이 바이러스 감염이며, 환절기에는 급격한 기후의 변화로 심한 일교차 및 낮은 습도로 인해 콧속의 점막이 마르면서 바이러스가 잘 침투할 수 있게 되어 감기의 발생이 더욱 쉬워진다. 감기는 콧물, 기침, 발열, 온몸의 통증(흔히 몸살로 여겨지는) 등 다양한 증상이 함께 또는 따로 발생하며,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다. 대부분 1주 이내에 자연 치유가 되지만, 일부는 부비동염(축농증), 중이염, 기관지염이나 폐렴 등의 합병증을 나타내기도 한다. 급성 기관지염 및 폐렴 기침이 2주 이상 지속되는 경우 혹은 누런 가래가 점점 심해지는 경우 흔히 급성 기관지염을 의심할 수 있는데, 증상만으로는 올바른 진단이 힘들기 때문에 반드시 병원을 찾아서 상담해야 한다. 흉부 진찰 후 흉부 단순 촬영 등의 검사가 필요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급성 기관지염의 원인도 바이러스성이므로 항생제의 투여가 불필요하다. 하지만 발열이 지속되는 경우, 누런 가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거나 혹은 피가래가 발생하는 경우, 흉부 단순 촬영에서 염증으로 의심되는 소견이 확연한 경우 등에는 세균성 원인의 폐렴으로 항생제 투여가 시급할 수 있다. 만성 폐쇄성 폐질환? 천식? 만성 기도 질환을 가진 경우 기온, 기압, 습도 등 기후 변화 시 기도 수축과 함께 기존의 기도 염증이 악화될 수 있다. 따라서 아침과 저녁의 찬 공기, 운동에 따른 온도 및 습도의 변화 그리고 담배 연기 및 오염된 공기에 의해 호흡 곤란이 악화되고 감기가 들면 매우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흔히 악화되는 질환으로는 기관지 천식과 만성 폐쇄성 폐질환(이하 COPD)가 있다. 천식은 비교적 잘 알려진 질환이지만, COPD는 대중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오랜 흡연의 결과로 기관지가 좁아지고 폐포의 탄력이 떨어져서 생기는 매우 흔한 노인성 질환이다. 이전에는 나이가 들면 당연히 생기는 현상으로 치부되어 관심이 적었던 질환이며, 흔히 ‘해소천식’이라 불리기도 했다. 기관지 천식의 악화는 단순한 기후 변화 외에도 지나친 흥분이나 스트레스, 자극적인 냄새, 운동 등에 의해서도 유발될 수 있고, 감기뿐만 아니라 감기의 치료를 위해 투여된 소염제나 항생제에 대한 과민 반응에 의해서도 악화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환절기 호흡기 질환 대비 건강 수칙 ① 금연은 필수. 흡연이 직접적인 감기, 기관지염 및 폐렴 등 감염성 질환의 원인은 아니지만, 흡연으로 인해 만성 기도 부종과 염증이 동반된 경우에는 바이러스 및 세균의 침투가 쉬워진다. 흡연은 COPD의 직접적 원인이며, 천식 및 COPD의 악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으므로 호흡기 질환의 예방 및 대비에 있어서 금연은 꼭 필요하다. ② 평소 음식을 골고루 먹고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휴식, 채소와 과일을 통한 비타민C의 섭취를 통해 신체의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③ 평소 실내 환기를 적절히 시키며, 실내 온도와 습도는 20℃ 및 50~60% 로 유지한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창문을 닫아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집먼지 진드기가 실내에 머물게 해 감기 및 알레르기 등을 유발할 수 있다. 수시로 창문을 활짝 열고 환기를 시켜 집 안의 먼지를 털어내고, 특히 소파나 카펫, 이불 등은 자주 털어줘 먼지가 쌓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진공청소기나 스팀청소기, 물걸레 등을 활용해 청결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④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만성 질환 환자는 독감과 폐렴구균 예방접종을 꼭 받는다. 폐렴구균백신은 65세 이상 노인에서는 한 번 접종으로 평생 면역력이 생기지만, 65세 미만의 경우 5년마다 한 번씩 접종해야 한다. ⑤ 심폐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등산, 자전거 타기, 조깅 등의 운동은 천식 환자의 경우 특히 기온이 낮은 새벽시간에는 기관지 수축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하루 중 기온이 높고, 바람이 적은 낮에 가벼운 활동이나 산책을 한다. 사랑한대 2018년 05-06월호 이북 보기

2018-03 15

[오피니언][짧은글긴이야기] 교향악과 함께한 어느 멋진 저녁

찬바람에 움츠린 어깨 위로 코트 깃을 잔뜩 세우고 가서 듣는 것이 브람스의 제맛이라고 혹자는 말한다. 한양대 부임 후 처음으로 지난해 11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2017 대학오케스트라축제 한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주회에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산업융합학부 현지희 부장님을 비롯한 낯익은 얼굴들을 콘서트홀 로비에서 만날 수 있었다. 예술의전당은 한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바그너와 말러, 브람스를 맞을 준비를 하며 오랜만에 넉넉하고 풍성한 시간을 연출하고 있었다. 글. 홍종욱 교수(대학원 바이오나노학과) 웅장함으로 시작해 편안함으로 끝난 첫 곡 연주자 대기실의 문이 열리고 잔잔한 박수 속에 입장하는 한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한양필하모닉) 단원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약간은 긴장한 듯한 악장의 입장, 그리고 마에스트로 최희준 교수의 등장. 다소 지쳐보였지만 예견된 자신감을 보이는 지휘자의 미소에서 연주회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오케스트라의 첫 번째 연주곡은 우리 귀에도 익숙한 바그너의 오페라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어’ 전주곡이었다. 웅장한 관현악의 서주를 시작으로 중반부에서는 날카롭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선명한 바이올린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첫 곡 연주 중반 이후의 안정감은 마치 어느 겨울 저녁 따뜻한 벽난로 앞에서 오랜 친구와 차를 마시는 것과 같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10분이 넘는 첫 곡을 감상하며 지휘자는 악단원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니 스승은 제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시종일관 확인할 수 있었다. ‘같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데도 곡의 전반부, 중반부, 후반부의 느낌이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가운데, 어쩌면 빙판 위를 걷는 것과 같이 긴장된 마음으로 시작한 첫 곡이 끝났다. 이어 콘서트홀을 찾은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섬뜩함과 애절함, 슬픔이 교차하는 연주 두 번째 곡을 연주하기 위해 일부 단원들이 교체됐다. 이어진 오케스트라 튜닝. 연주회 시작 전의 튜닝과는 달리 확연하게 긴장이 풀린 단원들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협연자인 바리톤 정록기 교수가 자리할 때까지 기다리는 지휘자의 모습에서 연주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한양필하모닉의 단원들뿐만 아니라 그날 공연을 즐긴 많은 학생들도 지휘자의 이런 마음을 읽었을 것이다.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는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인 다섯 노래의 연가곡이다. 곡 전체는 ‘끔찍하게도 슬픈’ 정서를 담고 있다. 말러 자신이 첫째 아이 안나 마리아를 잃은 것이 공교롭게도 이 곡의 초연 다음 해였다. 그래서인지 제1곡은 섬뜩하리만큼 처량한 오보에, 아름답게 깔리는 바이올린 음에 이어 심연을 헤매는 듯한 음색으로 바리톤이 노래했다. 이어 제2곡이 더욱 슬픈 감성으로 끝난다. 그리고 첼로의 리듬에 맞춘 관악의 하모니, 그 뒤를 이은 잉글리시 호른 등으로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애절함을 바리톤과 함께 잘 연주한 제3곡. 다시 희망을 찾으려는 듯한 밝은 오케스트라의 표정에서 따뜻한 하모니로 제4곡이 연주되고, 이어진 제5곡에서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듯한 오케스트레이션에서, 관도 현도 다 풀려 이제는 오케스트라의 본 실력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피콜로(플루트족의 목관악기)가 약간 두드러지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호른의 리드와 함께 관현의 피아니시모 부분에서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둔탁함도 느껴졌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으로 “브라비!” 휴식 후에 이어진 제2부에서는 어릴 때 참 많이 들었던 브람스 1번을 기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충분히 박자를 지키고 마치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됐다. 조금 과장하자면 약간은 늘어진 테이프를 듣는 것이 연상되기도 했다. 지휘자의 지휘가 그대로 투영되는 악단이라는 인상과 함께 1악장을 마쳤다. 2악장은 매우 서정적이며 절제된 관악 파트와 보잉(bowing)조차 다른 현악 파트의 모습에서, 제1부와는 확연히 다른 오케스트라를 발견했다. 익숙한 선율의 3악장, 보면대 없이 선 지휘자는 더욱 자유로워 보였다. 이어, 말 그대로 매서운 칼바람의 추운 날에 더욱 잘 어울릴 것 같은 마지막 악장. 도입부 이후의 스타카토를 지나 이어지는 우수(憂愁)의 연주. 아름다운 두 대의 호른과 그 뒤를 따르는 두 대의 플루트, 그리고 함께 호흡하는 오케스트라, 다시 호른. 마치 차곡차곡 겹쳐진 산들을 비행하며 고요한 아침 안개에 둘러싸인 산맥을 지나 갑자기 확 트인 벌판으로 나와 행진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관악기가 약간 야성적으로 들리기도 했지만, 피날레 후의 브라비(Bravi, 공연의 주체가 남녀 혼성이거나 단체일 경우에 보내는 찬사)! 그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땀에 젖은 지휘자의 목덜미를 그제야 확인할 수 있었다. 호사스런 저녁을 또 다시 기대하며 앙코르는 잘 알려진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의 전주곡이었다. 경쾌한 시작과 함께 무엇보다 관악기의 하모니가 돋보이는 이 작품의 특성을 잘 살린 연주였다. 곡 중간의 서정적인 부분에서는 특히 오케스트라의 관악기와 현악기의 조화를 맛볼 수 있었다. 악단의 정중앙에 위치한 팀파니스트의 모습이 돋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이어진 두 번째 앙코르는 김연준 설립자께서 작사·작곡한 교가였다. 특히 행진곡 풍으로 편곡한 경쾌한 느낌의 연주에 이어, 곡의 끝부분 “~삼천리 강산에 빛~을 더~하리”에서는 하나 된 한양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주는 대화이며, 음악은 언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나는 한양필하모닉이 매우 자랑스럽다.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탄탄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학구적인 지휘자에 의해 단련돼 기본에 충실한 모습, 그리고 지휘자와 단원들 각각이 마치 하나하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듯한 일체감이 큰 장점이었다. 언젠가 더욱 다듬어진 한양필하모닉의 연주를 경험할 수 있는 또 다른 호사스러운 날이 있기를 기원해본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3 14

[오피니언][타임머신] 소설이 만들어진 자리

인문대로 향하는 138개의 계단 중 마지막 네 개의 계단을 남겨두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면 좁은 샛길이 나온다. 중앙도서관 쪽으로 난 좁은 흙길이다. 습관처럼 인문대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섰다가 중앙도서관에 가야 할일이 뒤늦게 생각나거나 제2공학관에 수업이 있는 걸 깨닫고 난감해질 때 계단을 다 올라서지 않아도 지름길로빠질 수 있는 셈이다. 그래봤자 거의 다 올라온 셈이어서 굳이 그 길로 다니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편혜영(소설가·명지대 문예창작학과 교수/국어국문학과 졸업) 사방이 고요한 좁은 흙길 길에는 드문드문 긴 나무의자 세 개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머문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의자로, 나뭇결이 갈라져 잔가지가 도드라진 탓에 함부로 만지면 가시가 박히기 십상이고,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앉았다 일어서면 페인트 부스러기가 잔뜩 묻어나곤 했다. 볕이 좋은 날이면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누군가와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대개는 혼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냈다. 춥지 않은 바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불고 발끝이 바닥에 닿을 때면 가볍게 흙먼지가 일었다가 금세 가라앉고 수업이 시작되어 모두 교실로 몰려갔는지 사방이 고요한 속에 홀로 있으면 당연히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고, 생각이 고이면 언제나 그렇듯 소설이 쓰고 싶어졌다. 간혹 인문대에서 사범대, 중앙도서관으로 이어지는 큰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소란스러워졌지만 그 길의 소음은 금세 고요 속으로 스며들어버렸다. 학교 내에서 그렇게 묵묵한 곳은 드물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었다. 연신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지만, 조용하고 고요한 소란스러움이었다. 딱딱한 나무판에 등을 기대고 앉아 소설을 쓰다가 마음 내키면 쓰고 있는 소설을 읽거나 쓰다만 소설의 뒷부분을 조금씩 이어 써나갔다. 그곳에 앉아 있다고 해서 놀랄 만큼 일이 잘되거나 수월히 써지는 법은 결코 없었다. 그럼에도 소설이라는 것은 세상과 그다지 멀지 않은 자리에서 세상으로부터 멀어진 기분이 들어야 겨우 조금 쓸 수 있다는 걸 실감했다. 언제나 여전한 인문대 복사실 운 나쁘게도 의자는 셋뿐이어서 누군가 차지하고 있을 때가 더 많았다. 그런 날이면 주저하지 않고 인문대로 갔다. 인문대 지하 계단을 내려서면 가장 먼저 복사실이 보였다. 그곳은 언제나 문이 열려 있고 무료한 표정의 아저씨가 턱을 괴고 앉아 어두운 계단참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사실 복사실 아저씨는 계단참에 무료한 시선을 둘 때보다 복사기 앞에 서 있거나 제본기 앞에서 분주히 손을 놀리고 있을 때가 많았다. 아저씨의 얼굴은 자주 보고 몰래 훔쳐보기도 했지만 잘 기억할 수 없었는데, 그건 아저씨가 얼굴 정면을 내보일 때보다 일정한 속도로 뿜어내는 복사기의 빛 속에서 살짝 얼굴을 드러냈다가 감추는 때가 많아서였다. 누군가 인문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꼽으라면(그러나 아무도 이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는 주저 없이 복사실이라고 할 작정이었다. 좋아하는 장소라고 해서 특별한 용무 없이 복사실 앞을 서성이거나 무턱대고 들어가서 구경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주로 복사실 앞 휴게실에 앉아 그곳을 조금씩 훔쳐보는 쪽을 택했다. 휴게실은 오래된 기원을 연상시키는 소파와 테이블이 늘어서 있었는데, 언제나 시끄러웠다. 수업이 없고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한 인문대 학생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 거기였다. 지하에는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의 연습실이 있어서 목청 높인 연습생의 소리도 들려왔다. 휴게실 안쪽에는 인문대 도서관이 있었다. 지하여서 습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는데, 몇몇 선배들은 제집처럼 종이 파일로 벽을 쌓아놓고 고개를 수그리고 책을 들여다보았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 더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한기 도는 불안한 도서관보다 복사기 빛이 늘 은은히 끊이지 않는 복사실을 보고 있는 게 더 마음 편했다. 나는 휴게실에 앉아 자주 복사실을 힐끔거렸다. 정확히 말하면 복사실을 들여다보기 위해 휴게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복사실 아저씨가 쉬는 시간에, 문을 닫는 점심시간에 어디에서 머물지, 어떤 식사를 할지, 무슨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지, 자신이 복사하는 학술서나 원서를 간혹 읽기도 할지, 똑같은 내용의 문장들을 계속 들여다보면 어떤 기분이 들지, 궁금했지만 그보다는 경외심이 더 컸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누군가는 주어진 일을 하고 언제나 꾸준하고 세상과 관계없이 뭔가를 만들어내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 물건으로 만들어 내놓는다는 게 경이로웠다. 복사실 아저씨는 말하자면 언제나 그곳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담하고 흐트러져 보이지만 질서정연하게 물건이 배치되고 종이와 글자와 문장이 마구 쌓인 그곳에. 성장한다는 것은, 사회인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아저씨처럼 정착할 공간이 생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소설을 쓴다는 것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다행히 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여덟 권의 책을 출간했다. 그러는 동안 깨달은 것은 소설을 쓰는 일은 무척이나 숙련도가 낮다는 것이다. 새로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인물은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매번 처음인 듯 서툴기만 하다. 그렇게 겨우 소설을 완성하고 나서는 소설을 쓰는 일이 매번 같은 강도의 노동을 되풀이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소설을 쓴다는 것이 인적 드문 샛길의 의자와 같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세상 속에서 고요하게 자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무엇이든 쓸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복사하는 일과도 같은지 모른다. 세상이라는 책과 인간이라는 자료집을 들고 그것에 얼마간 빛을 쪼여 베껴내는 일 말이다. 물론 복사한다고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렇다. 복사광을 쬔다고 한 편의 소설이 순식간에 완성될 리도 없다. 말하자면 이것은 고요와 항상성에 대한 비유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것이 달라진다.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모양이나 용도가 이전과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변함없이 시간이 그렇게 만든다. 그럼에도 어떤 것은 그대로 남는다. 변하지 않는 것, 고요한 것을 바라보면 마치 삶을 대할 때 그런 것처럼 뭉클해진다. 지금은 사라진 의자와 지금도 여전한 복사실이 내게는 그렇다. 사랑한대 2018년 01-02월호 이북 보기

2018-01 15

[오피니언][오피니언]당신은 왜 대학을 원했나요

“왜 사는가?” 쉬운 단어들로 이뤄진 짧은 문장에 그 누구도 쉽사리 답하지 못한다. 별다른 이유가 없어서 일 수도 있고, 간단히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좁혀보자. 이 글을 읽는 사람이라면 거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대학에 가고 싶거나, 대학을 다니고 있거나, 대학을 졸업했거나. 대학 입시의 마무리 단계인 정시발표 즈음해서 던져본다. 당신은 왜 대학에 왔나요, 혹은 오고 싶나요. 커다란 사회로 전입, 그리고 재전입 준비 대학 견학 등을 통해 처음 대학교를 방문한 이들이 공통으로 놀라는 요소가 있다. 크고 넓다. 그전까지 본 학교는 기껏해야 건물 한두 채와 운동장 정도로 이뤄져 있었는데 대학은 무척 넓고 건물도 많다. 그 규모는 처음 와본 이의 마음을 압도한다. 나중에는 너무 커서 이동할 때 마다 불평하는 요소가 되지만. 큰 대학에는 사람도 많다. 대략 서울캠퍼스와 ERICA캠퍼스에 각각 만 오천 명 가까이 되는 학생이 등록한 상태다. 매년 졸업하는 만큼 새로운 신입생이 들어오고, 군대로 떠나는 만큼 전역해서 복학한다. 교직원을 넣지 않아도 무지막지한 수다.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다. 그렇기에 대학은 여지껏 겪지못한 크기의 집단에서 살아가는 체험현장이다. 일찌감치 사회 생활을 해보고 들어온 이도 있지만,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의 아르바이트, 혹은 수험 생활의 연장을 겪고 새 출발을 대학에 맞이한다. 좋은 일이다. 대학의 사회적 위치는 아직 어정쩡한 학생들에게 좋은 공간이 된다. ▲동아리에 가입이 부담스러울 땐 단기활동에 참가할 수도 있다. 특히 여름 겨울 방학시즌에는 다양한 봉사 프로그램이 열린다. 대학은 일반 기업과는 다르다. 회사가 사람을 구하는 이유는 노동력 때문이다. 회사가 원하는 건 사람 이전에 능력이기에 적합한 능력이 없으면 뽑지 않고, 뽑더라도 나중에 이별을 고한다. 맘편한 공동체는 아닌 것이다. 대학의 본질이 공동체는 아니다. 그렇지만 대학을 다니며 얻는 공동체 생활은 분명 색다르다. 기본적인 학과생활, 혹은 같은 관심사를 찾아 들어간 동아리, 중장기적인 프로젝트에서 만난 사람들. 이들과 한 배를 타면서 얻는 희로애락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능력에 냉정한 회사와는 달리 1년 먼저 겪은 선배의 도움과 동기들의 위로는 분명 든든한 안전망이다. 동아리는 종류도 많다. 중앙동아리, 과 동아리 할 것 없이 밴드, 극회, 춤 등의 예술 분야 동아리부터 탁구, 축구 등의 스포츠 동아리와 자신의 배움을 보강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합한 학술동아리까지. 엄청난 실력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대개 당신을 환영하고, 먼저 터득한 내용들을 당신에게 전수해줄 것이다. 그들과 함께하며 정드는 체험은 어정쩡했던 대학생활이 성숙해지는 과정과 함께한다. 다른 곳에서 배울 수 없는 배움천지 대학의 꽃은 공부다. 고등학교 때처럼 시험에 나올 문제만 푸는 공부가 아니다. 전공별로 실습도 해보고 컴퓨터도 돌려보고 자료도 찾아보는 것도 공부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에 비해 수업시간은 적다. 대신에 그 시간 동안 교수님이 제시하는 방향을 잡고 고민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일생 동안 전공분야를 파온 이들로부터 얻는 영감은 그 분야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는 큰 동력이 된다. 간혹 전공 수업이 맞지 않아 고민인 이들도 있다. 교양 수업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리고 교양 수업에서 접한 내용은 한 사람의 미래를 바꾸기도 한다. 수업에서 접한 셰익스피어에 이끌려 영문학자의 길을 택한 공대생, 학점 때문에 들은 법학 교양에서 비롯돼 변호사를 꿈꾼 상경대생은 아주 낯선 얘기가 아니다. 다중전공이나 복수전공의 기회도 있다. 본인의 전공을 놓지 않으며 다른 전공을 수강함으로써 자신의 전공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을 보강한 사람도 많다. ▲교내 곳곳에 위치한 도서관 및 열람실을 이용하거나, 개방된 공간에서 배움을 이어갈 수 있다. 때론 연구의 기회가 주어진다. 많은 대학 내 연구실에서는 학부연구생이란 이름으로 학부생을 연구원으로 뽑는다. 배움이 짧은 탓에 능동적으로 연구를 수행하긴 어렵지만, 그 안에서 부딪히며 얻은 연구경험은 후에 대학원을 가지 않더라도 유용하다. 혹은 학부생끼리 함께 고민하며 참여한 학술대회 경험은 스스로의 지식을 늘릴 뿐 아니라, 자신의 진로를 고민하는 데도 방향을 잡아준다. 이 또한 같은 전공으로 만난 이들과 함께 있기에 할 수 있는 경험이다. 당신만의 이유 찾을 수 있길 필자의 경우, 전공수업은 방황 중이며 여전히 진로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뉴스H'의 기자로 활동하게 되며 끊임없이 훈련 받았고 지금도 그렇다. 대학 내의 여러 단체들은 외부의 비슷한 단체보다 교육성이 강하다. 앞서 말했듯 회사는 대체로 일 못하는 이를 그냥 두지 않는다. 어지간한 잠재력이 아닌 한 그의 미래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그렇지만 대학은 들어온 이를 가차없이 내보내지 않는다. 보다 큰 사회로 나갈 수 있는 발판을 찾을 수 있는 기회다. 이 대학 사회 내에서, 당신도 무언가 크게 얻어갈 수 있길 바라며, 그게 '대학에 온 이유'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

2017-12 19

[오피니언][짧은 글 긴 이야기] 한양대에서 출발한 학문적 여정

1997년 봄이 오기 직전 매섭게 차가운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나는 경기도 용인의 놀이공원으로 가는 차에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다른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놀이공원에 가는 줄만 알았다. 글. 강성훈 교수(정책과학대학 정책학과) / 그림. 안우정 20여 년 만에 다시 선 교정 용인에 도착했을 때 차는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은 듯 이상한 시골길로 향했다. 저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간판에는 기숙학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부모님은 당시 내가 합격한 대학교에 진학하는 대신 1년 더 공부하길 원하셨다. 나는 부모님의 기대대로 순순히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그때 부모님은 나에게 긴 편지와 함께 “넌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시고 떠났다. 처음에는 그 말이 진부하게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큰 동기부여가 됐다. 이후 1년 동안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1998년 초 어느 눈 내리는 추운 겨울날, 나는 한양대 운동장 한편에서 합격자 명단에 적혀 있는 내 이름을 보면서 인생의 첫 번째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했다고 생각했다.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펄쩍펄쩍 뛰며 좋아하셨던 부모님과 할머니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한양인(경제금융학부 98)이 됐다. 2017년 9월 가을이 시작될 무렵, 나는 학생이 아닌 교수로 다시 한양대에 들어섰다. 한양인으로서 첫발을 내딛은 지 거의 20년 만이다. 처음 교단에 섰을 때 느낌이 묘했다. 어린 학생들 틈 속에서 내가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질문과 토론에 적극적인 학생들 세월이 지났어도 한양대의 언덕이 어디 가질 않듯 새내기는 새내기고 고학년은 고학년이었다. 새내기와 고학년의 큰 차이는 취업에 대한 무게일 것이다. 그 무게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요즘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자세가 남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질문에 적극적으로 답하거나 토론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수업 시간에 자신 있게 의견을 내고, 복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질문과 토론이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내용을 수업 시간에 질문하거나 토론할 때 내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보다 어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르는 것에 대해 질문하는 용기를 가지게 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내 의견을 다른 사람과 자신 있게 나눌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무척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자신 있게 질문하고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되면서 수업을 준비하는 나의 자세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학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한 수업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얼마 전 수업 시간에 간단한 경매 게임을 한 적이 있다. 이 게임은 승자의 불행(또는 승자의 저주)에 관한 게임이었다. 나에게는 첫 시도였는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줘서 무척 고마웠다. 누군가의 진로를 바꾸는 수업 수업은 한 학생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한 수업을 듣고 진로를 결정했다. 석사학위 지도교수인 경제금융학부 홍종호 교수님의 학부 수업을 들으며 경제학에 흥미를 가지게 됐고, 이것이 유학을 결정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 수업을 통해 내가 경제학에 흥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소 어려울 수 있었던 경제학 개념을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와 연결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큰 매력을 느낀 것이다. 홍종호 교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내 수업에서 경제학 개념을 현실적인 이슈와 문제를 활용해 설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학생들이 살아가면서 세상을 이해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데 수업 시간에 배운 경제학 개념이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연구는 교수 생활의 엔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수업이라는 또 다른 엔진과 연결돼 있다. 수많은 새로운 연구가 매년 수행되고 있고 우리의 지식은 쌓여간다. 만약 연구가 멈춘다면 수업 내용은 과거에만 머물게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 중 하나는 그들의 연구가 매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수업과 외부 활동으로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지만 한 해에도 여러 편의 연구가 끊임없이 SSCI급 저널에 게재된다. 교수들의 연구 성과가 수업의 질을 향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양대에서 출발한 나의 학문적 여정은 이제 새로운 장을 맞이했다. 모든 것이 감사하고 새롭고 설렌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수업과 연구라는 두 엔진을 열심히 가동해서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신 훌륭한 교수님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특히 석사학위 지도교수이신 홍종호 교수님과 박사학위 지도교수이신 마크 스키드모어(Mark Skidmore) 교수님이 보여주신 사랑이 내 제자들에게도 잘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

2017-12 19

[오피니언][타임머신]두고두고 좋은 인연, 한양대와 바둑

나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 바둑 전문선수인 프로기사(棋士)였다. 고등학생 때 프로로 데뷔한 후 한양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했다. 당시 프로기사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진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나 바둑계에서 꽤 인기가 있었다. 신문이나 방송 등 매스컴에 내가 둔 시합과 함께 자주 이름이 올랐다. 정수현(명지대 바둑학과 교수·영어영문학과 76) ▲ 정수현 교수가 바둑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바둑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대부분의 대학생 스포츠 선수들이 그렇듯이 기사 생활과 대학 생활을 양립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바둑 시합과 학교 수업이 겹칠 때 출석 문제가 골칫거리였다. 전공과목으로 ‘햄릿’을 가르치던 노교수님이 계셨는데, 학생들에게 일일이 출석표를 나눠주며 직접 이름과 학번을 써내도록 했다. 시합 시 출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한 가지 묘수를 생각해냈다. 바둑 시합이 오전에 열리니 오후에 배정된 교과목을 신청하기로 한 것이다. 즉 오전에 시합을 마치고 얼른 학교에 가 수업에 참석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런데 이 방법도 문제가 있었다. 그 무렵에는 한 판의 시합을 하는 데 각자 2~3시간씩 주어졌기 때문에 이 시간을 다 쓰면 오후 3~4시에 끝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바둑을 최대한 빨리 두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할당된 시간을 최대한 줄여 가급적 점심 무렵에 끝내려고 애썼다. 이로 인해 나는 속기파(速棋派) 기사로 변하게 됐다. 원래는 수읽기를 많이 하는 타입이었는데, 바둑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감각적으로 두는 속기파가 된 것이다. 그 덕분이었을까. 나는 방송에서 개최하는 속기 시합에 강해졌다. KBS바둑왕전과 SBS바둑최강전에서 고수들을 꺾고 결승까지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아쉽게도 최고수 이창호 9단을 만나 두 번 다 준우승에 그쳤지만, 출석을 위한 빨리빨리 전략이 속기 훈련이라는 색다른 이점을 준 것이다. 진짜 ‘바둑학 교수’가 되기까지 나의 대학 생활은 상당히 바쁜 편이었다. 당시 학생이었지만 나는 새롭고 창의적인 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편이었다. 한국기원에서는 바둑시합 외에도 초보자나 아마추어를 위해 바둑강좌 코스를 만들어 직접 가르쳤다. 또한 월간 바둑지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성신여대 등 다른 대학교에 가서 바둑을 가르치기도 했다. 새벽에는 영어학원에 다녔다.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해서인지 수업 시간에 가끔 졸았다. 한번은 맨 뒷줄에 앉아서 꿈나라를 헤매고 있는데, 분위기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부스스 눈을 떴더니 학생들이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달콤하게 낮잠을 자다가 교수님이 문장을 읽어보라고 호명하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도 나는 리포트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한번은 짝사랑의 비애를 담은 영어 에세이를 써서 A+를 받았다. 다른 과목에서도 리포트 점수는 높았다. 돌이켜보면 나의 대학 생활에서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것은 리포트 쓰기였던 것 같다. 리포트 작성은 글쓰기뿐만 아니라 생각하는 훈련에도 도움이 됐다. 졸업 후 나는 대학에서의 경험을 살려 바둑 관련 서적을 30여 권 저술했다. 그중에는 <바둑 읽는 CEO>, <고수경영>과 같이 바둑의 지혜를 다룬 에세이도 있다. 이런 책을 많이 쓴 덕분에 나는 바둑 기자들로부터 ‘바둑학 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20년 전에 명지대학교에 사상 처음으로 바둑학과가 생겼을 때 진짜 교수로 부임했다. ▲ 총동문바둑대회 현장 모두가 부러워하는 한양기우회 나의 대학 생활에서 특별히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하나 있다. 대학에 다닐 때 만들었던 ‘한양기우회’라는 동아리 모임이다. 이 동아리의 회원들이 졸업 후 한양(OB)기우회를 만들었다. OB기우회는 대학의 바둑동아리에 장학금을 주고 행사도 후원한다. 이 기우회는 지금까지 35년 이상 이어지고 있다. 수년 전 서울대를 비롯한 다른 대학교 바둑 동호인들이 한양대 기우회를 부러워해 벤치마킹했다. 한양기우회의 탄생은 내 생각에서 비롯됐다. 1980년께 학교에 다닐 때 나는 한양대에 기우회가 없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다. 그래서 교내에 기우회를 하나 만들었으면 했다. 그러던 차에 같은 영어영문학과 2년 후배인 이일환 동문과 우연히 바둑 얘기를 하게 됐다. 당시 전체 학생회 간부였던 이일환 동문은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훗날 고위 공무원으로 활약했다. 내가 기우회를 만들면 어떻겠냐고 하자 그는 즉시 찬성했다. 그리고는 기우회 소집 안내문을 만들어 벽보판에 붙였다. 기우회 창립을 위한 대망의 발기모임이 교내 노천극장에서 열렸다. 몇 명이나 올지 가슴을 졸였는데, 예상 외로 많은 인원이 참석했다. 그때 멋진 비전을 선언하며 한양대 기우회를 발족시켰다. 바둑계 사람들에 의하면 한양기우회는 특별한 점이 있다고 한다. 회원들 간에 우애가 깊고 분위기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회원들은 대학연맹전 출전 같은 문제에서는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지만, 식사 때는 서로 식대를 내려고 한단다. 유머 있는 해설로 유명한 ‘바둑계의 김구라’ 김성룡 9단도 한양기우회를 좋아한다. 이 기우회에서 만나 부부가 된 커플도 몇 쌍 있다. 한양기우회의 이런 인간적인 분위기에는 역대 회장들이 많은 기여를 했다. 강병두, 이원옥, 한태완 동문 등 여러 회장들이 애정을 갖고 기우회를 이끌었다. 여성 회장이었던 원영숙 동문은 기우회에서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해 바둑계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는 박승자 회장이 맡아 한양동문 바둑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주관한다. 기우회에서는 바둑 모임뿐만 아니라 체육 행사와 엠티(MT) 같은 프로그램도 개최한다. 근래에는 한양대 총동문회와 협력해 동문 바둑대회를 여러 차례 개최해오고 있다. 한양대의 색다른 자랑거리인 한양기우회가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사랑한대 2017년 11-12월호 이북 보기

2017-11 20

[오피니언]마케팅 단어에 혹하지 말라, 그건 젊음이 아니다

세대에 대한 정의. 베이비붐세대, 386 혹은 486세대, X세대. 비슷한 세대로 비슷한 정치적/사회적 상황을 접한 이들을 키워드로 묶는 시도는 과거부터 있어왔다. 주로 한 분야의 전문가나 유명한 평론가가 이를 언급하면 언론에서 이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단어들은 퍼졌다. 그 과정에서 단어는 힘을 얻어 고유명사에서 일반명사가 되거나 반대로 힘을 잃고 스스로가 아는 이들만 아는 특정 시대의 은어가 되곤 한다. 최근 급작스레 나타나 긍정과 부정 양 방향으로 뜨거운 단어가 있다. '영포티(Young+Forty)', 어린 40대란 뜻이다. 40대에 대한 자발적인 긍정이 담겨있던 명명법은 스스로를 누가 띄워주기를 원하던 또다른 40대들에 의해 엄청난 사용빈도를 보이고 있다. 신조어에도 인용지수(IF)가 있었다면 아마 올해의 인용지수 1위를 기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그 이용량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영포티란 단어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과감하게 드러내고자 한다. 자기 자랑에 불과한데? 사실 영포티는 시작부터 불안정한 단어였다. 과거 IMF 직후 모 은행의 “부자되세요~”만큼이나 마케팅적인 요소로 가득하다. 언론에 처음 영포티를 등장시킨 기사는 작년 초 한국일보에 게재된 <한국사회 변화의 열쇠 ‘영포티(Young Forty)’>라는 기사다. 여기서 기자는 김용섭 소장(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을 만나 “그 나이가 되면 당연히 해야 하는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이어받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낸 첫 중년 세대”라는 해석과 함께 현 40대가 영포티라고 명명했다. 기사를 쓴 기자 본인과 김 소장이 40대라는 점은 그냥 웃고 넘어가자.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 그들이 이전까지의 40대와 자칭 ‘영포티’를 분류하는 기준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음의 여섯 가지가 ‘영포티의 특징’이다. ① 내 집 마련에 집착하지 않는다. ② 보수냐 진보냐의 이념보다 합리와 상식을 우선시한다. ③ 결혼, 출산에 대한 관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④ 현재에 충실하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거나 희생하지 않으며, 일보다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원한다. ⑤ 형식과 허울, 체면치레 같은 허식을 내려놓는다. ⑥ 트렌드에 민감하다. 왕성한 소비자이자 새로운 것에 대한 수용 능력이 높다. 특징일지 바람일지 모르겠다. 특히 6번의 경우, 꽤 씁쓸한 구석이 있다. 왕성한 소비자는 거저 생겨나지 않는다. 소비를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물론 돈이 있어도 소비를 자제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돈이 없어서 왕성한 소비를 하지 못한다.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비단 소비뿐만 아니다. 형식과 허울, 체면치레 같은 허식은 그 사람의 삶에서 배운 결과이기도 하다. 한평생 권위주의 속에서 살아온 이들에게 갑자기 ‘권위는 허상일 뿐이다’라고 말하면 선뜻 받아들이겠는가? 일보다는 가족을 택하는 것 또한 야근에 찌든 이들에게는 선택의 영역이 아니다. 결국 영포티의 특징이라 소개한 내용은 곧 ‘나는 이런 것을 누리고 있어’라는 자기 자랑 서사에 지나지 않는다. 세대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그거 안어울려요” 더 큰 논란은 이 자가자랑 서사에 ‘아재’들이 몰입하면서 생겼다. 애초 시작부터 마케팅 혹은 자기 과시용 소지가 다분했던 영포티는 ‘나도 영포티야!’라 말하는 자신감 넘치는 이들 덕에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어리고 싶은 욕망이야 이해가 간다. '늙지 않으려는 욕구'는 지극히 보편적이다. 필자 주변에 흔한 20대들도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 부러움을 느낀다. 20대 후반은 20대 초반에게, 20대 초반은 10대에게.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을 부러워했으니 이는 모든 인간의 후회가 담긴 바람일 게다. 그럼에도 자칭 영포티는 전혀 공감을 얻지 못하는 세대로 남아있다. 20대, 30대에게 영포티라는 말은 그저 웃어넘기기엔 조금 불편하다. 우리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N포세대라는 말을 들어왔다. 연애, 결혼, 출산 세가지를 포기하면 삼포세대, 취업과 내 집 마련까지 포함하면 오포세대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는 표현이다. 비교해보면 재밌다. 영포티와 N포세대 모두 내 집 마련을 포기했지만, 그 설명은 다르다. 영포티에 한정해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제태크 수단이 아니’기에 포기한 행위다. N포세대에게 내 집 마련은 ‘불가능해서 포기해야 하는’ 행위다. 요즘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나 할까. ▲'영포티(Young Forty)'. 관념 저항 의지로 가득찬 시대 정신같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실상은 세대를 다 아우르지 못하는 형용 모순의 언어일 뿐이다. 결국은 최근 활발한 꼰대 담론으로 회귀한다. 나는 될 대로 하겠다. 나 정도면 괜찮은, 젊은이 아니냐. 물론 그 와중에도 나이차로 발생한 권력 구도는 유지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일까, 영포티에 대한 불만은 젊은 이성에게 들이대는 40대에 대한 불만과도 겹쳐진다. “나도 어린데 왜 안만나줘, 나 돈 많아”도 영포티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행태다. 앞서의 반복이지만 영포티라는 정체성에는 ‘안정적이고 적당히 건강을 챙길 수 있는 사무직’이란 의미도 내포돼 있다. 20대와 30대 때 젊음을 혹사한 적 없는 이들. 그래서 오늘도 근근히 살아가는 40대 비정규직에게, 영포티는 더 잔인하다. 여성이 배제되어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나이든 남성과 젊은 여성과의 사랑 내러티브가 그 일환이다. 중년 남성의 '젊은 삶'을 위해 여성이 대상화 되는 셈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과로사 인구가 제일 많고 퇴직을 걱정하기 시작하는 것이 대한민국 40대의 현실이다. 물리적으로도 젊음과는 거리가 먼 이들을 급작스레 호명한 것은 인구 분포와 사회 경제적 주권 계층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한때 '신세대'라는 별칭을 부여받으며 급격히 민주화된 사회 속에서 번영을 누려왔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비추어 봤을 때 '영포티'를 진심으로 내재할만한 40대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평범한 마케팅이고 일상적인 프레이밍이다. 정말 젊은 합리를 지니고 있다면 여기에 호도되어서는 곤란하다. 자칭 영포티에겐 조소를, 명칭조차 없는 이들에겐 위로를. 글/ 이상호 기자 ta4ts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