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336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03-11 01

[교수]`네 바퀴로 말하는 성공시대`-공과대학 기계공학부 선우명호 교수

지난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량은 3백 14만 8천대로 세계 총생산량의 5.3퍼센트를 차지하며 세계 6위에 올랐다. 물론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한 국가는 미국으로 세계 총생산량의 20.7퍼센트에 달하는 1천 2백 24만 4천대를 생산했고 뒤를 이어 일본과 독일, 프랑스의 순이었다. 그러나 향후 자동차 산업을 좌우할 기준은 '얼마나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동차를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있다는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서울캠퍼스 기계공학부 선우명호 교수가 "자동차 산업은 더 이상 굴뚝 요란한 판금과 기계의 아날로그 산업이 아니라 첨단 전자기술로 무장한 디지털 업종으로 분류되는 것이 옳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동차는 아날로그 아닌 디지털 산업 선우명호 교수는 국내 자동차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1979년 본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석사학위를 마치고 세계 굴지의 전자회사인 필립스에 잠시 몸을 담는다. 그러다가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 업체인 GM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본교로 부임하기 전까지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선진의 자동차 기술을 접했다. 그러나 전기공학을 전공한 선우 교수가 자동차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GM에 앞서 한참이나 오래된 일이다. "제가 원래 차를 굉장히 좋아했어요. 미국에서 처음으로 가진 차가 1970년형 포드인데 8기통에 배기량 6천 2백cc 짜리 차였어요. 그런데 계속 차를 가지고 놀다보니까 차가 너무 좋아진 거에요. 필립스에 있다가 GM으로 옮긴 후 회사측에서 장학금을 줘서 박사과정을 밟았는데 결국 학위논문도 자동차에 관한 것으로 썼죠. 전기공학를 전공했던 경력은 오히려 자동차 연구에 수행하는데 큰 경쟁력이 됐죠. 하나만 가지고 먹고 살던 시대는 이제 지났잖아요." 선우 교수는 자신이 GM 연구원 생활을 청산하고 본교로 부임한 이래 한국 최고의 자동차 권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간의 학제간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는 자동차 연구에 있어서 서울대나 카이스트, 포항공대의 교수들보다도 자신이 월등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도 전자기술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우월하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기계적·물리적 산업이 아니라 첨단의 전자기술에 의해 좌우되는 것임을 굳게 믿고 있는 까닭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자동차들은 적게는 30여개, 많게는 약 70여개의 컴퓨터 장치가 탑재되는 전자산업의 산물이다. 엔진은 물론 트랜스미션과 현가장치, 제동장치 심지어 타이어에도 첨단의 전자기술은 빠지지 않는다. 한국 자동차 연구의 전위에 서다 선우 교수가 이끌고 있는 자동차전자제어연구소(Automotive Control and Electronics Laboratory, 이하 ACE 랩)는 자동차 파워트레인, 샤시, 그리고 차체와 관련한 각종 전자 제어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다. 선우 교수는 연구소의 영문 이니셜이 되는 ACE의 의미가 우리의 자동차 전자 제어 기술에 대한 연구가 세계의 으뜸을 지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는다. ACE 랩이 세계의 으뜸이 되었는가는 아직 검증되지 않지만 적어도 국내에 있어서는 최고를 자부하는 연구기관으로 평가받는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ACE 랩은 지난 2000년, 세계 최대의 통신 및 자동차 반도체 회사인 모토로라와 2010년까지 10년간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과의 배기환경연구센터(Center for Environmental Research and Technology)와도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001년 6월에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케피코와 함께 공동연구컨소시엄을 구축했고 지난해 6월에는 과학기술부로부터 5년간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되는 행운을 안기도 했다. 연구비 수주액도 연평균 10억원에 달해 개인 교수 연구실로는 전국 최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자동차 전자제어기술과 관련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산업자원부 지정 교육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전기, 전자, 통신에 관한 고급 기술인력이 자동차 회사보다는 대개 전자회사나 통신회사에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자동차 업계에서 고급 인력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우리나라에 자동차 기술인력을 교육하는 곳은 많지만 연구 개발 인력들을 양성하는 곳은 무척 드뭅니다. 때문에 산자부의 지정을 받아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일주일 과정에 수강료는 50만원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수요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죠. 처음 예상은 연인원 2백명이었지만 시작한지 5개월만에 이미 1백 50명을 넘어섰어요." 이 같이 연구실의 명성이 자자하다 보니, ACE 랩으로 대학원 진학을 꿈꾸는 학부생의 수요도 적지 않고, 당연히 경쟁도 치열하다. 때문에 ACE 랩은 방학 때 6명에서 10명까지 학부생을 대상으로 인턴제를 시행하는 전무후무한 '입실 시험'을 치르고 있기도 하다. ACE 랩 출신의 학생들이 대외적으로 최고의 인재로 호평받는 것도 물론이다. 선우 교수는 학생들이 학위를 마치기 전인데도 '달라는' 곳이 많아 시달린다는 '유쾌한 불평'을 털어놓는다. 한국 자동차 산업 '승산은 있다' 선우 교수는 현재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미래형 자동차 개발 사업의 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자동차 생산에 있어 우리나라의 기계, 금속기술은 선진국에 매우 근접한 것이 사실이지만 차세대 자동차의 핵심기술인 전기·전자 분야의 국산화는 40퍼센트로 절반을 밑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실에서 차세대 지능형 자동차 생산에 있어서는 선진국에 뒤지지 않겠다는 정부의 야심찬 기획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대부분의 자동차 기술 연구는 회사가 써먹지 않는 기술을 개발해서 연구 개발에서 사장되는 예가 많았습니다. 한 마디로 연구비만 들고 개발된 내용이 실용화로 이어지지 않는 비효율적 연구가 이뤄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업에는 자동차 회사와 부품업체 관계자들을 직접 참여시켜 그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고 있습니다." 선우 교수는 앞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자동차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현재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은 국가에서 다년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산학연이 협력해 업계의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있기에 우리나라도 이런 체제로 가지 않을 경우 기술 경쟁에서 뒤떨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동차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반도체 산업이 세계적 수준으로 육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현재 자동차를 250만대 규모로 생산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 4개국이 있습니다. 브라질, 스페인, 멕시코 그리고 우리나라죠. 이 네 국가 중에서 자기의 자체 브랜드를 가지고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국까지 포함해 다섯 개 국가 중 반도체 산업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동차 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될 것입니다." 학력 및 약력 선우명호 교수는 1979년 한양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후 1983년과 1990년 텍사스주립대와 오클랜드대에서 각각 공학석사 및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필립스, GM 연구소를 거쳐 지난 1993년 본교에 부임했고 전공은 시스템 모델링 및 전자제어시스템 설계로 알려져 있다. 한국자동차공학회, 대한기계학회, IEEE, 대한전기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논문으로 국내 44편 국외 16편이 있다. 사진 : 박용일 학생기자 jajunation@ihanyang.ac.kr

2003-10 22

[교수]`고용될 것이냐, 고용할 것이냐`-경영대학 경영학부 한정화 교수

지난 8월, 중소기업청은 올해 들어 대학 안에서 동아리활동 등을 통해 창업 절차를 밟기 시작한 예비 창업 대학생이 2만 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말 1만 2천명보다 67퍼센트나 늘어난 수치다. 극심한 취업난이 대학생들로 하여금 창업으로 눈을 돌리게 했다는 진단이다. 이 같은 벤처 붐은 지난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로 실업난을 겪으며 경제가 침체되면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이 대안으로 급부상했던 탓이다. 지난 90년대 이스라엘과 대만은 IT를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이루며 창업이 활성화됐다. 이는 당시 경제위기를 겪던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한국 벤처 기업의 태동부터 함께 했던 한정화(경영대·경영학부) 교수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자 정부가 주도적으로 추진했던 육성 정책이 과도한 거품을 발생시켰고, 이는 준비 없는 창업을 불러일으켰다'라고 지적한다. 경영 마인드도 없이 기술 하나만 믿고 사업에 뛰어드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다. 준비된 자만이 성공을 얻는다 "우리나라의 창업은 초기에 전문인력과 고학력이 많이 참여한 특징을 가집니다. 특히 대학 연구소의 엔지니어가 많이 참여했죠. 실제 석사 이상이 창업자의 35퍼센트, 박사는 10퍼센트정도로 고학력의 기술 인력이 IMF 이후 대거 창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청년 창업도 활발하게 진행됐습니다. 과거에는 3, 40대 후반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외국의 경우와 같이 20대 후반의 학생 창업이 활발합니다. 더불어 과거 생계형 창업을 넘어 첨단 산업에 도전하는 여성들의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업 붐이 일던 초기, 'lab venture'라고 불리는 교수·연구원들의 창업을 지원한 결과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벤처 창업의 최우선 성공 요소는 물론 기술이지만, 대부분의 창업자가 기술만 있고 기업가적 역량을 키우지 못했던 탓이다. 더불어 거품시기에 자금이 과잉 공급됐고, 이로 인해 과다 경쟁이 벌어져 국내시장은 수요 한계의 장벽에 부닥쳤다. 또한 정부 주도적 벤처 지원이 역기능을 우발하면서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일어난 것이 지난 몇 년간 벤처 업계에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창업 앞서, 체계적 교육 절실해 그러나 아직까지도 벤처나 창업에 대한 교육은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지난 98년 이후 활성화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체계적이고 전문화된 인력이 미흡하고 대학에도 이를 위한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대학 중 경영학 커리큘럼 안에 창업론이 포함되어 있는 곳도 손에 꼽을 정도. 수요 측면에서도 학생들이 자격증, 어학시험, 고시 등에 몰두하고 있고, 창업이나 벤처는 힘들고 어려워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벌써 몇 년째 성장과 고용이 불일치하고 있습니다. 고용창출이 안 된다는 것이죠. 또한 중도퇴직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히 자기고용(self-employment), 즉, 창업의 기회를 늘릴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벤처 창업이 성공하려면 교육의 힘이 필요합니다. 대학·대학원에서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시절부터 비즈니스 마인드와 경영·경제적 사고를 길러주어야 하는 것이죠. '고용되느냐 스스로 고용하느냐'에 대한 선택은 그리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가로서 역량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교육이 절실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업 실패가 '인생 실패'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창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위험을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하기 때문이다. 친인척과 친구로부터 돈을 빌려 부채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면, 이는 재기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우리나라는 실패에 대한 관용의 수위가 그다지 높지 않다. 따라서 부채가 아닌 지분을 활용한 벤처 창업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한 교수는 최근 '창업 자본 조달이 위축되어 위험부담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를 표하는 한편, 해외시장을 적극 공략하라고 주문한다. 최근 정부가 내놓는 지원책도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해외 진출 지원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청년실업, 중국을 뚫어라 "최근의 청년실업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중소기업은 30만 명의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반해 청년실업은 40만 명에 육박합니다. 이는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인력의 공급이 적다는 뜻이죠. 또한 중소-대기업간의 임금 격차가 과거엔 80퍼센트에 달했지만 최근엔 50퍼센트 미만으로 떨어지며 중소기업 기피 현상이 가중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졸자가 과잉 양산되면서 기대치가 높아진 탓이죠." 얼마 전까지 실업난이 발생하면 각종 매스컴에서는 창업을 해결책으로 꼽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준비된 창업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회의 실패자를 양산할 우려도 있다. 특히 실패에 대한 관용 정도가 낮은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이는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따라서 창업에 대한 사전 교육이 선행되고 이를 통해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교수는 이에 대해 창업을 꿈꾸는 사람이면 누구나 'skill building'을 해야한다고 충고한다. 또한 역량 분석을 통해 국내가 아닌 해외로 진출하라고 당부한다. 한 교수가 특히 권유하는 곳은 바로 중국이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창출한 일자리가 200만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의 청년 실업을 해결하고도 남을 규모입니다. 저는 중국시장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중국 비즈니스 전문가를 양성할 것을 제안합니다. 1년 간의 연수기간 동안 중국어를 집중적으로 익히고, 사전 교육 지원을 통해 법률·무역·문화 등에 대한 지식을 습득케 해, 1년에 1천명씩 전문가를 양산한다면, 미래 사회에서 10년 내 중요한 고용창출 효과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합니다. 창업보육센터에서 얼마전 개소한 한양·상하이 IT비즈니스 센터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사업입니다. 기회는 언제나 생기게 마련이고, 이는 준비한 사람의 몫이 되는데 지금은 중국이 그 기회인 것이죠." 혁신적 기술, 아이디어, 팀워크의 조화 필요 사업이란 남보다 변화의 흐름을 먼저 내다볼 수 있어야 성공한다고 한다. 즉 기회의 창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어떤 문제라도 관심을 갖고 매진하다 보면 창의적 발상은 자연스럽게 생산되고, 거기에서부터 창업도 시작된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모두 창업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한 교수는 막연한 상상을 상품성 있는 아이디어로 개발하는 능력이 바로 성공의 열쇠라고 강조한다. "혁신적 차별화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상상력과 창의력을 개발하고, 기업가적 마인드를 갖춰 위험을 사전에 준비하는 의지력도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는 리더십과 매니지먼트를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데는 '지식+체험'의 시너지 효과가 중요합니다. 두 가지가 따로 움직여서는 절대 안 됩니다. 기술적 전문성에 팀워크과 역량이 조화를 이루어야 성공적인 창업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학력 및 약력 한정화 교수는 지난 1977년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과 1988년 Univ.of Georgia에서 각각 경영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략 경영과 창업 및 중소기업, 기업윤리를 주 연구 분야로 하고 있다. 한국경영학회, 한국인사조직학회, 한국중소기업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벤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본교에서는 창업보육센터 소장을 비롯해 기술이전센터 소장, BK21 인문사회분야 사업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17편, 국외 3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벤처창업과 경영전략』 등 7권의 저서가 있다.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10 22

[학생]`대륙의 미녀기사` 한양어학원서 만난 프로 초단 마오자쥔

지난 달 바둑계의 미녀기사로 유명한 프로 초단 마오자쥔(毛佳君)이 한국에 왔다. 마오자쥔은 바둑실력 뿐 아니라 중국 CCTV-5의 바둑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인기를 한 몸에 받아온 바둑계의 스타.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인터넷 포털에는 팬까페가 개설되는 등 국경을 넘은 인기몰이도 대단하다. 그녀는 1년 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어를 배우고, 세계 최강인 한국의 바둑을 배우겠다는 계획이다. 위클리한양이 국제어학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마오자쥔을 만나보았다. - 한국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 한국은 바둑의 최강국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바둑을 공부하고 싶었다. 텔레비전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접한 한국의 문화도 한국행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또한 중국에 있을 때 바둑을 두면서 한국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친구들이 중국어를 배우는 것을 보고 나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중국에서부터 잘 알고 지내던 권갑룡 6단 선생님께 부탁을 드려서 한국에 오게됐다. - 평소에는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궁금하다. 오전에는 한국어학당에서 공부를 한다. 수업 마친 후에는 권갑룡 선생님의 기원에서 바둑을 둔다. 혼자 둘 때도 있고 기원에 있는 한국이나 대만 분들과 두기도 한다. 바둑을 두지 않을 때는 한국 친구들과 한국어 공부를 하는데, 술어 부분이 너무 어렵다. 닭갈비 등 한국음식을 좋아해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기도 한다. 언어문제에 관해서는 나와 동갑내기인 권갑룡 선생님의 따님이 중국어를 잘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 고전적인 외모와 바둑이 잘 어울리는데 바둑은 언제 시작했나? 아버지께서 바둑 아마추어 기사이시다.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렸을 때는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개구장이였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집중력을 키우고, 조신한 몸가짐을 가지라고 바둑을 가르쳐주셨다. 2000년에 프로기사가 데뷔해 활동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 중국에서 바둑계의 스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데? 중국에 있을 때 CCTV에서 바둑강좌 프로그램 진행을 맡았었다. 그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셨다. 방송 출연 제의도 있지만 바둑에 관련된 프로그램만 나가고 있다. 부족한 점이 많은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한국에 와서도 많은 분들이 환영해주시고 도와주셔서 크게 도움 받고 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우선은 1년간 한국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지금은 언어 공부에 주력하고 있다. 경과를 보아 유학 기간을 연장할 수도 있고, 한국에서 활동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서 고민이다. 언어 문제가 해결된 후,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다. 사진 : 변대섭 학생기자 tovegout@ihanyang.ac.kr

2003-10 15

[교수]`우리 춤 빛깔 찾기` 세계무용축제서 만난 무용과 김운미 교수

지난 8일부터 29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제6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 예술인의 투혼이 다시 한번 빛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바로 김운미(체대·무용과) 교수. '죽는 순간까지 무대에서 내려서지 않겠다'던 그녀는 이번 행사에서 '우리 춤 빛깔 찾기'라는 공연의 안무를 맡아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올해에 8회 째에 접어든 '우리 춤 빛깔 찾기'는 역량 있는 중견 안무가들의 창작 무대로 우리 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동시에 세계무대 진출을 도모하기 위해 1996년부터 추진된 프로그램. 위클리한양은 김 교수를 만나 춤에 대한 그녀의 식지 않는 열정을 다시 한번 들어 보았다. - '우리 춤 빛깔 찾기'의 의미는? 서양춤은 형(形)의 예술로서 보여지는 형태를 강조하여 일정한 틀이 마련되고 그에 따른 기교가 발달되는 등 무용수의 감성보다는 관객의 호응이 우선되지만, 우리 춤은 가악(嘉樂)에 맞추어 느끼는 대로 숨을 고르면서 그 리듬을 몸으로 형상화한 심(心)의 예술이기 때문에 무용수의 감성이 자연스럽게 관객의 호응을 이끈다고 생각한다. 우리 춤의 빛깔을 찾는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우리 춤의 본질을 찾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의 장르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는데, 어느 장르에서든 무용에서의 창작은 발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래의 빛깔을 탈색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우리 춤의 빛깔을 찾기 위한 생각을 담았다. - 이번에 공연하는 '비단부채-함Ⅲ'의 내용과 주제를 소개해 달라. 이번에 발표하는 '비단부채-함Ⅲ'는 혼례식 전날에 느끼는 댕기 처녀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소재로, 혼례식을 거행하는 동안에 벌어지는 신부의 심리 변화, 혼례식 이후 신방에서 신랑과 하룻밤을 보낸 다음날에 쪽진 머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신부의 내면을 다룬 작품이다. 특히 이 사흘 동안에 한국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상념을 전통적인 혼례식의 진행 과정에서 볼 수 있는 여성들의 의복 변화와 관련시켜 우리 춤의 멋과 흥을 함축한 현대적 춤사위로 형상화하려 했다. - 이번 공연의 제목에서 '비단부채'가 지닌 의미는? 공연의 큰 흐름을 차지하는 혼례의 과정에서 집안의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남성은 대나무 부챗살로 상징화하고 그에 대응되는 여성은 화려함과 고귀함의 표상인 붉은 비단으로 상징화했다. 그리고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음양의 조화를 부챗살에 비단이 덧대어지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묘사하려 한 것이다. - '비단부채 함Ⅲ'은 이전의 작품 '함'과 '함Ⅱ'의 연작인가? 우리 무용단은 한국 여성들이 살아온 삶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우리의 춤사위로 풀어냄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바람직한 가치관을 모색하고자 꾸준하게 힘써왔다. 그러한 모색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평범한 한국 여성의 삶을 '결혼' 제도의 변화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비단부채-함Ⅲ' 역시 이미 지난 2000년과 2002년에 무대에 올랐던 '함'(2000년), '함Ⅱ'(2002년)의 연작이 맞다. 시대적 변화에 따른 여성들의 의식 변화를 중심 주제로 삼아 그것을 우리 얼이 깃들인 역동적인 몸짓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한 결과들이다. - 김운미 무용단에는 유독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은데. 나 자신이 여성이어서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자신 있기 때문이다. 내 공연의 큰 줄기는 '여자 이야기'와 '한국의 근대 역사'이다. 실제로 1990년대에 시대적 변화에 따른 한국 여성들의 다양한 삶의 형태를 춤으로 형상화한 바 있다. 즉 남아 선호 사상의 굴레 속에서 피폐한 삶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나약한 여성의 삶('누구라도 그러하듯이', 1993년)을 비롯하여, 남성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어낸 강인한 여성인 평강 공주의 삶('온달 97', 1997년),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통치 하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구국 운동을 펼쳤던 여성 독립 운동가들의 삶('1919', 1999년) 등이 그것이다. 물론 과거에 비해 현대 여성의 삶은 많은 변화가 있다. 그 변화의 모습을 담는 것 역시 내 공연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hanmail.net

2003-10 08

[동문]"모든 프로그램의 주제와 소재는 사람입니다."

9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정은임의 영화음악 듣니?'라는 질문은 친구사이에 동질감을 확인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적어도 그 늦은 시간까지 깨어 있는 친구는 대개 사춘기의 열병을 겪으며 '한 고민하는' 친구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음악이 널려있는 지금도 사람들은 굳이 방송국에 사연과 신청곡을 담은 엽서를 보낸다. 라디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화창한 가을날 오후, MBC 8층 라디오 편성국을 찾았다. 그곳에는 시간이 가도 변하지 않는 친구 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MBC 라디오의 지휘자 홍동식 동문(신방 84년졸)이 있었다. 그를 만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만드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라디오를 좋아한 소년, 라디오 PD가 되다 "어렸을 적 저희 집 안방에 진공관 라디오가 하나 있었거든요. 라디오를 켜면 진공관이 예열되면서 '우웅' 하는 소리가 나는데 그 부드러운 소리를 참 좋아했습니다. 텔레비전이라고 해 봤자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나왔는데 뭐, 그 때는 텔레비전이 너무 비싸서 아주 부잣집이 아니고서는 엄두도 못 낼 물건이었지요. 중·고등학교 때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 듣는 걸 아주 좋아했습니다. 60년대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나오면서 라디오를 가지고 다닐 수 있게 되었지요. 덕분에 마당에서 책을 읽으면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되었고……. 지금처럼 조그마한 건전지가 없어서 라디오 뒤에 벽돌 만한 건전지를 붙여서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썼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홍 동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에게 있어 라디오는 '생활 그 자체'라고 말한다. 학창 시절을 라디오와 함께 보낸 홍 동문은 대학에 들어와 학교 방송국에서 PD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고, 결국 MBC에 입사해서 라디오 PD가 되었다. 그 후 20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홍 동문은 '별이 빛나는 밤에', '김미숙의 음악살롱', '정은임의 영화음악', '김흥국·박미선의 특급작전' 등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들을 담당해 오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의 주제는 '사람' 홍 동문은 20년 동안 제작한 모든 라디오 프로그램의 주제와 소재가 모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라디오라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도구이고, 그렇기에 그것은 매우 매력적인 도구라는 것이다. 입사 초기에 그를 비롯한 두 PD의 손을 거친 '길 따라 물 따라'라는 여행 프로그램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가 가진 프로그램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쉽게 엿볼 수 있다. 스테레오 녹음기도 없던 그 시절에 모노 녹음기 하나 달랑 들고 낙동강 상류인 안동·청송에서부터 전라도 끝자락인 광양·장성까지, 그는 격주간으로 이어진 소리를 찾아가는 대장정을 펼쳤다. 격주마다의 출장을 마다하지 않고 만든 프로그램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홍동식 동문. 그럴 수 있었던 원동력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단지 '총각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며 멋쩍게 웃는다. "'길 따라 물 따라'를 만들면서 최대한 그 지방 사람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물론 관광지나 풍광, 인간문화재 같은 유명하고 특별한 이야기도 담았지요. 하지만 정작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부분은 보통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였지요. 빨래터에서 아낙들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 예를 들자면 '누구 아들은 공부를 잘 해서 좋겠다'든지 '누구네 아빠는 요새도 술이 여전해서 그 집 엄마 고생 깨나 하겠다' 같은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들 말입니다. 다양하지만 결국 어디에나 있는 그런 삶의 진솔한 모습들을 담아내는 것이 제작의 최우선 목표였습니다" 멀티미디어 시대의 라디오 '미래는 있다' 멀티미디어 시대다, 디지털이다 해서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만큼 방송 환경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는 법. 급변하는 방송 환경에서의 라디오의 자리는 과연 어디쯤일까. 홍 동문은 라디오의 미래는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그는 다른 매체와 비교해 가며 라디오가 가진 장점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것이 바로 라디오가 없어질 수 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앞으로 라디오도 디지털화되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대역폭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텔레비전의 HDTV와 같이 라디오의 음질도 혁명적으로 개선될 것이란 얘기죠. 저는 개인적으로는 라디오방송이 앞으로 더욱 전문화·세분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디오는 그런 면에서 변화에 아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미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기존 어떤 미디어에 비하더라도 라디오가 가지는 속보성과 현장성은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라디오는 텔레비전보다 쌍방향 미디어의 총아인 인터넷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요새는 음악 프로그램을 보더라도 DJ가 스튜디오 안에서 실시간으로 청취자들의 의견을 검색하여 프로그램에 반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지요." '열린 생각' 가진 후배 기다린다 예나 지금이나 PD는 많은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직업이다. 개인이 가진 창의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면에서 PD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은 각별하다. 홍 동문 역시 MBC 라디오 PD가 되기 위해 수 백대 일의 경쟁을 거쳐야 했다. 그는 라디오 PD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친절하지만 뼈 있는 조언을 던진다. "다른 모든 일도 그렇지만 이 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자세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어려움과 모자람이 없이 자란 때문인지 무엇에 대한 좋아하고 싫어함이 지나치게 분명한 편입니다. 특히 면접을 들어가 보면 특정 음악 장르에 지나치게 빠져서 그 외의 것들은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취향에 함몰되어 있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송, 특히 라디오 PD라는 일은 사회와 세계의 다양한 면에 대한 종합적인 사고와 지식이 매우 중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일이 방송의 컨텐츠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는 텔레비전보다 PD의 창의력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열린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열린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후배들을 기다립니다" 홍 동문은 바쁘다.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휴대전화는 10분이 멀다하고 울려댄다. "지금 인터뷰하는 중이니까 제가 7분 정도 있다 전화하겠습니다"라고 조용히 이야기할 정도로 그는 1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쓰고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그의 책상으로 가니 컴퓨터에는 결재할 서류들이 올라와 있다. 바쁘게 회의에 들어가는 홍 동문을 붙잡고 마지막으로 사무실 명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한 직원이 웃으며 홍 동문에게 농을 친다. "홍 부장님, 정장 입으신 거 처음 봅니다" 사람 좋은 웃음으로 대답하는 홍 동문,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라디오처럼 그 역시 20대의 젊음과 열정을 따끈하게 간직하고 있는 '캐주얼한' 한양인이었다. 학력 및 약력 1984년 본교 신방과를 졸업하고 MBC 라디오 PD로 입사했다. 20년 동안 MBC 라디오에서 일해 오며 '별이 빛나는 밤에', '김미숙의 음악살롱', '정은임의 영화음악',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과 같은 MBC 라디오의 간판 프로그램을 제작했다. MBC 라디오국 2차장과 1차장을 역임하고, 라디오 1CP(Chip Producer)를 거쳐 지난 해 3월부터 MBC 라디오의 편성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2001년에 민언련 민주시민언론상과 2002년 PD연합회 라디오작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10 08

[교수]`짧은 강의, 긴 추억` 퀸즈랜드 국립대학 자넷 캐네디 교수

본교 최초로 해외 교수 초빙을 통한 전공강의가 진행됐다. 정보통신대학 초청으로 지난달 27일부터 이번 달 6일까지 수업을 진행한 호주 국립 퀸즈랜드 대학의 자넷 캐네디 교수가 바로 그 주인공. '마케팅 원론'을 강의한 이번 수업은 10일에 걸친 단기 집중강좌라는 점과 저녁 늦게 진행된다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입추의 여지없이 큰 호응을 얻었다. 모든 내용이 영어로 진행된 이번 강의는 캠퍼스에 봇물처럼 확산되고 있는 국제화의 열풍에 또 하나의 방점을 찍었다는 평가다. 위클리한양은 자넷 캐네디 교수를 만나 강의 소회와 푸른 눈에 비친 본교 학생들의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 한국에 와서 강의를 하게된 계기가 무엇인가. 이번이 첫 한국 방문이다. 이번 강의가 한국에 오게된 첫 번째 기회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에 있는 대학에 와서 가르치는 것이 무척 흥미로웠고 이전에 퀸즈랜드 국립대학에서 함께 강단에 있었던 이욱 교수와의 관계도 고려해 오게 됐다. - 단기집중강좌 방식으로 운영했다. 강의를 진행한 소감을 말해달라. 내가 강의한 마케팅원론은 총 10개의 집중강좌로 구성되어 있다. 단기간에 원론을 배울 수 있게 구성된 이 과정은 호주에서도 비슷한 강의를 운영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 수업을 듣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은 강의에 대해 매우 흥미를 보였고, 좋은 질문들을 했으며, 강의 중 나와 끊임없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았다. 이번 기획은 한양대학교에 있어 상당히 개혁적인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 프로그램의 일부가 된 것을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 - 학부학생과 대학원생들이 함께 수강했는데, 수준차이로 인한 어려움은 없었는가. 학부생과 대학원생을 한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것은 흔치 않다. 이와 같은 경험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내가 시도했던 방법은 강의 수준을 학부와 대학원의 중간 정도에서 조절한 것이다. 이론보다는 다양한 예를 많이 제시했고 수업 자체가 실용성을 극대화하도록 노력했다. 새로운 사례들과 세계적인 기업 사례, 그리고 한국적 상황에 맞는 사례들을 많이 인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 외국대학들과 본교의 수업 분위기를 비교한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강의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미국, 싱가폴, 호주 등 꽤 많은 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은 싱가폴의 학생들과 비슷한 것 같다. 그들 역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수업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열정에 있어서는 내가 강의하고 있는 퀸즈랜드 국립대학 학생들에게 느꼈던 열정을 보여줬다. 정말 대단하다. - 외국인 교수가 진행한 전공 영어수업이 낯설었다는 반응이다. 학생들의 이해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평가하는가. 매일 밤 강의를 진행하면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몇몇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매우 잘 표현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다. 더욱이 내가 학생들에게 요구했던 것은 학생들끼리 서로의 질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었다. 영어 표현에 매우 능숙한 학생들은 영어로 토론을 진행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은 한국말로 토론을 함으로써 각자 수준에 맞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학생들의 수업 이해도를 알기 위해 수업 중간에 짧은 시험을 진행했다.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 수업과 관련해 가장 인상에 남는 기억이 있는가? 호주와 한국, 미국 문화의 예를 들고 그것을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호주 사람들에 대해 잘못 이해했던 일이 있다. '크로커다일 던디'라는 영화에서 호주 사람들이 해변이나 오지로 나가는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학생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캥거루나 코알라를 예로 설명했다. 그런데 학생들이 내 말을 잘못 이해해 호주 사람들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는다고 오해했다. 이것을 풀기 위해 다시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웃음) 호주사람들은 매우 근면하고 열심히 산다. - 앞으로 본교에 다시 와서 강의할 의향이 있는가. 요청이 있다면 기꺼이 오고 싶다. 이번 강의는 나에게 매우 좋은 경험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초청에 대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2003-10 01

[동문]`인텔의 아성에 던진 도전장` AMD코리아 대표 박용진 동문(전기공학 82년졸)

'640kb이면 모든 사람에게 충분한 메모리 용량이다.' 컴퓨터 황제라고 불리는 빌게이츠가 1981년 공식석상에서 한 말이다. 32비트 최첨단 마이크로프로세서(이하 CPU)와 40GB의 용량을 가진 PC를 사용하고 있는 오늘날에 본다면 이는 분명 실패한 미래예측이다. 현대 과학문명 수준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은 CPU. 그리고 세계 CPU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인텔과 AMD. 지금까지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해야만 했던 AMD가 최근 64비트 CPU를 앞세워 컴퓨터 업계의 지각변동을 선언했다. 인텔의 아성에 도전하는 AMD 코리아 한국대표 박용진(전기공학 82년졸)동문을 만나 그 숨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PC의 진화, 64비트로 승부한다 박 동문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삼성동 AMD 코리아 사무실에서는 세계적인 회사라는 느낌보다 소규모 벤처회사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가 풍겼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자신들의 업무에 분주한 직원들의 모습은 전형적인 벤처회사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기다리던 박용진 대표 역시 직원들과 같은 캐주얼 복장.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에 대해 그는 오늘이 '캐주얼 데이'라고 설명했다. 매주 금요일은 전 직원이 캐주얼 복장을 하고 출근을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규모와 관계없이 우리회사 역시 기본적으로 컴퓨터 즉 IT 관련 업종입니다. 창의성을 중시하기에 회사 분위기는 자유롭습니다. 제가 얼마 전 미국 본사에 갔더니, 그곳은 지나치게 자유로운 분위기가 오히려 문제로 부각되어 넥타이와 와이셔츠 등 복장을 일정수준 규제한다고 하더군요(웃음). 자유로운 분위기에서만 기대될 수 있는 창의성은 IT 업계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AMD 코리아는 지난 25일,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64비트 PC용 CPU 신제품을 선보였다. 4비트로 시작한 CPU의 발달은 컴퓨터 발달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지난 1985년, 개인용 컴퓨터의 32비트 시대가 시작된 이후 약 20여 년 동안 개인용 컴퓨터는 진화하지 못했다. 개인용 64비트 컴퓨팅 시대를 선언한 AMD 코리아 김용진 사장은 64비트가 32비트에 비해 산술적으로 2배만 좋아진 것이 결코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는 64비트 CPU의 개발을 'PC의 혁명'이라 소개하고 나섰다. "이번에 소개된 모델 '64 FX 51'은 일반 CPU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물론 64비트 CPU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올해 초 애플컴퓨터가‘애플 파워 맥 G5'에 채택했고, 인텔도 서버용 64비트칩 이타니엄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우리 제품이 가지는 의미는 첫 번째로 개인용 컴퓨터용 64비트 칩을 개발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32비트 환경에서도 작동한다는 것입니다. 변환기 컴퓨터 유저들에게 이러한 특징은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이러한 성과에 대해 경쟁사인 인텔사는 64비트 CPU에 대해 애써 평가절하를 시도하는 모습이다. 개인용 컴퓨터는 32비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래의 IT기술에서 중요한 점은 '필요에 의한 기술 개발보다 새로운 기술이 수요를 창출해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술력을 가진 AMD의 도전은 인텔의 아성에 위협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인텔' 브랜드 시대의 종언 박 동문은 AMD의 강점을 가격에 대비해 뛰어난 성능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비해 인텔사는 상당부분 브랜드 파워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 이런 박 동문의 분석은 파워유저들에게는 이미 정설로 통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소수의 파워유저들만을 고려해 영업을 할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하기에 박 동문은 앞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이 시작될 것임을 암시한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제품 선택 성향을 '브랜드'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제품의 성능이나 품질에 대한 고려보다 브랜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에 대해 탓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런 성향에서 전적으로 자유롭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단지 브랜드에 의존하지 않을 만큼 성능이나 가격에서 차이를 내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그 선호 브랜드 자체가 바뀔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즉 공격적 마케팅을 통해서 시장 재편은 가능하다는 것이죠." 이런 판단에 따라 AMD의 마케팅 전략은 새로운 변화를 준비 중이다. AMD에 대한 정확한 가치 판단이 선행될 때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나온다는 것이 박 대표의 생각이기에 자사에 대한 가치판단을 앞서 진행 중인 것이다. 그가 가장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부분은 이제 '개인용 컴퓨터라는 품목 자체가 성장기에서 성숙기로 넘어가며 거품이 걷히고 있다'는 사실. 이러한 상황 판단은 박 동문이 구상하고 있는 앞으로의 시장 재편과 맞물려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제가 처음 입사했을 당시, 첫 월급이 20만원이었는데, 그 당시 처음 나온 VTR의 가격이 98만원이었죠. 하지만 요즘 VTR은 아무리 브랜드가 좋고 성능이 좋다고 해도 어떤 소비자도 20만원 이상을 주고 사려하지 않습니다. PC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술은 가격을 하락시킵니다. 경쟁사의 팬티엄에 대한 가격 경쟁력과 샐러론에 대한 성능 경쟁력이 앞으로 우리가 가진 성장 가능성에 대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21세기형 CEO는 '공대 출신 경영인' "제가 하는 일이 팀원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팀원들의 일이 끝나야 모든 일정이 끝나는 고달픈 직책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박용진 대표의 이력은 화려하다. 삼성전자에서 컴퓨터 관련 업무를 시작한 이래 줄곧 컴퓨터 및 정보통신 업계에서 종사했다. 그의 직장들은 업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들이다. 레이켐 코리아, 퀀텀 코리아, 엔비디아 코리아를 거쳐 현재 AMD 코리아에 이르기까지, 컴퓨터 부품업계에 있어서 그가 거친 회사들의 명성은 가히 최고 수준이다. 박 동문은 자신이 이처럼 꾸준한 경력을 쌓아올 수 있었던 요인을 바로 '공학 전공자'라는 배경에 두고 있다. "21세기에는 어느 한 분야만을 가지고는 전체를 조망하는 CEO의 위치에 오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세계 모든 곳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죠. 그런 관점에서 공대생들은 상당히 유리한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다시 경영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긴 했지만 경영이나 기타 학문분야를 공부한 사람들이 공학을 이해하는 수준과, 공학을 한 사람들이 경영을 받아들이는 수준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 전자가 훨씬 훌륭하다는 것이죠." 그는 최근 범사회적으로 만연한 전공 편중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은 공업국가이고 공업이 사회의 원동력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제기되는 '이공계 위기론'이나 미흡한 해결책들은 그를 더욱 씁쓸하게 만드는 듯 했다. 유난히 본교 동문이 많은 분야임을 떠올리며 '스스로가 한양인이라는 사실이 가장 자랑스러울 때가 언제인가'를 묻자 '사회에 나와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라는 답변이 되돌아온다. 후배들에게 '세계를 상대로 세계로 나가라'는 당부를 무엇보다 전하고 싶다는 그의 언어에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작은 칩'이 아니라 사람의 '강인한 의지'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학력 및 약력 박용진 동문은 1975년 전기공학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세계적인 하드디스크 생산업체인 퀀텀 코리아 대표로 자리를 옮겨 뛰어난 비즈니스 역량을 인정받았다.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을 거쳐, 지난 5월 AMD 코리아 대표로 부임했다. 연세대학교 MBA 과정을 수료한 박 동문은 레이켐 코리아, 퀀텀 코리아, 엔디비아 등 컴퓨터 및 정보통신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해오면서 다양한 분야의 업무에서 리더십과 실행력을 두루 갖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 김태호 학생기자 magicguy@ihanyang.ac.kr

2003-10 01

[교수]"인간공학의 무게중심은 공학 아닌 인간에 있다"

세계적인 인간공학자 W. E. 우드슨은 인간공학에 대해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합리화하기 위해 인간의 감각에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인간의 조작을 위한 제어, 인간을 위한 기계의 설계 등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학문'이라 정의한다. 이른바 에르고노믹스(ergonomics)라고도 불리는 인간공학은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를 일체(一體)라고 생각하여 '인간-기계계'라고 하고, 이 계(系) 속에서 인간과 기계와의 조화와 합리성을 발견해 가는 학문인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사회에서 인간공학은 '기술중심주의' 또는 '기계만능주의'에 봉사하는 학문으로 종종 오인되기도 한다. '붕어빵이 붕어보다 빵에 가까운 것'처럼 인간공학 역시 인간보다 공학적 사고에 중심을 둔 학문이라는 오해다. 이 같은 인식에 대해 안산캠퍼스 기계정보경영공학부 김정룡 교수의 생각은 단호하다. 인간공학의 무게중심은 단연 '인간'에 있다는 것이다. 인간공학의 무게중심 '인간이냐, 기술이냐' 근대 이후, 산업계의 가장 큰 관심은 효율성에 기반한 생산의 규모 증식에 있었다. 컨베어벨트를 비롯해 생산라인의 기계화를 범세계적으로 확산시킨 포드주의는 인간을, 생산을 위한 기계적 수단으로 전락시키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는 바로 현대 생산의 기계화, 자동화의 물결이 전락시킨 비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었다. "나는 학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학부를 마치고 기계와 인간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인간공학'이라는 학문을 알게 됐습니다. 내가 학부를 졸업하고 유학을 떠났던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인간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은 단 두 명 밖에 계시지 않았지요. 유학 시절, 나의 주된 관심은 과연 인간을 위한 학문이 무엇인가를 추적하는 작업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인간공학'이 참된 의미를 구현한 학문보다는 상업적인 브랜도로서 보다 넓은 쓰임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휴먼(human)'의 접두어를 붙여 회자되는 수많은 광고 카피나, 기업들의 캐치프레이즈들은 이러한 상황은 잘 반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이 같은 상업적 구호가 횡행하는 까닭이 결국 '인간공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높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인간공학'은 진정한 의미가 홍보되기 전에 이미 상업적인 목적으로 먼저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생활수준이 지금보다 더욱 향상되어 간다면, 사람들은 진정한 인간공학을 원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인간공학'을 필요하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공학자들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바른 학문적 쓰임을 찾아내 많은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공학의 첫 걸음 '사이즈 코리아' 최근 각종 언론지상을 통해 우리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체격에 맞지 않는 책상과 걸상에 불편해 하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10년 전과 지금의 영양상태가 다르고, 당연히 이에 따른 신체발육 정도가 변화하고 있지만, 제품을 설계하는 과정에는 여전히 오래된 자료들만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편을 없애고자, 김 교수는 지난 2001년부터 한국인인체치수조사(Size Korea) 사업을 펼쳐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 동안 우리나라에 한국인의 인체치수를 조사하는 사업이 전무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번 한국인인체치수조사는 이전의 방식과 달리 조사 대상자를 3차원으로 스캐닝 해, 그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합니다. 또한 이번 사업은 이전과는 달리 국제 ISO 기준에 입각해 전개됩니다. 한국인의 인체 치수를 현실에 맞게 표준화하는 이번 사업의 결과는 단지 자료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실제 기업의 생산 현장에서 실용적으로 구현되어 모든 상품의 경쟁력을 새롭게 제고해 나갈 것입니다."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이 지원하는 이번 사업은 2001년부터 2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4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1979년부터 우리나라 국민들의 치수를 알기 위한 '국민표준체위조사사업'이 약 5년에 걸쳐 전개된 바 있지만 그 성과가 실제 생산과정에서 구현되는데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번 사업을 통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한국인의 몸이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지를 알리고 싶습니다. 또한 자료의 표준화와 구체화가 성공한다면 이제 사람들은 옷을 구입하기 위해 굳이 매장에 나가 옷을 입어봐야 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 온라인 상에서도 나의 인체에 정확히 들어맞는 표준치수를 주문할 수 있게 되거든요. 이는 산업이 이전의 소량 주문 생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산방식으로의 전환을 가능케 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의 '사이즈'를 매우 구체적으로 그리고 현실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은 인간공학을 위한 포석과도 같은 작업입니다." 디지털과 인간의 화해 지난 8월, 서울 코엑스 컨벤션센터에서는 김 교수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대한인간공학회와 국제인간공학회의 주최로 제15차 '2003 세계인간공학총회(IEA 2003 Congress)'가 개최됐다. 이는 3년마다 열리는 인간공학관련 최대 국제학술대회로, 아시아에서는 1982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이후 21년 만에 처음으로 있는 일이다. 약 1천 2백여 편의 논문이 발표된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는 '디지털 시대의 인간공학(Ergonomics in Digital Age)'이었다. "인간을 시스템으로 나타낸다면 아날로그 체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우리 생활주변의 많은 것들이 디지털 체계로 바꿔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디지털과 인간의 조화를 위해 인간공학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이번 대회의 주된 관심이었습니다. 아날로그 인간과 디지털 환경의 조화, 이는 혁신을 거듭하는 기술에 인간을 적응시키는 것보다 상대적으로 진화가 더딘 인간을 위해 기술이 어떻게 조응해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작업이지요." 해외 60여개국으로부터 약 8백여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이번 학술대회는 국내에서 열린 학술대회 중 가장 큰 규모였다고. 그러나 이 대회는 단지 학술정보의 교류만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 행사의 책임을 맡은 김 교수는 많은 외국인들이 운집한 이번 대회에서 우리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이색 이벤트들을 준비해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를 비롯해 궁중무와 살풀이, 꽹과리 창작무 등을 선보이며 한국에 대한 정적인 인식을 극복하고 우리의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오프닝 행사에서는 중앙무대에서 매화치는 장면을 중계해 일필휘지(一筆 之)의 신비한 화법을 소개하기도 했죠.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3년 후 개최될 네덜란드 총회의 담당자들이 자신들은 우리만큼의 감동을 유발할 수 없을 것 같아 걱정스럽다며 한국을 떠났습니다.(웃음)" 캠퍼스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에 있다 대내외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김 교수는 현재 안산캠퍼스 학생생활상담실장을 맡고 있다. 학생생활상담실은 어려움이 있거나 도움을 청하고 싶은 학생이면 누구라도 교수 또는 상담전문가와의 대화를 위해 문을 두드릴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김 교수는 상담실장으로 부임한 직후, 안산캠퍼스 숨은 가치들을 학생들과 함께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그러나 '인간을 위한 학문'에 천착하는 김 교수가 정작 찾아낸 것은 무엇일까?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 상담실장 부임 첫 해, '안산캠퍼스의 좋은 점 열 가지 찾기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저 스스로도 매우 놀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본관 뒤에는 항상 백로가 있다', '학교에서는 언제나 바다가 보인다', '대운동장의 밤은 늘 별로 가득 차 있다' 등 행사를 통해 '캠퍼스의 재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학생들은 캠퍼스의 숨은 가치들을 찾아내는 성과를 거뒀죠. 그러나 제가 거둔 성과는 캠퍼스에 숨어있던 무수한 인재들의 재발견이었습니다." 학력 및 약력 김정룡 교수는 1981년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동대학원에서 공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5년,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에서 Human Factor Engineering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5년 공학대학 산업공학과에 부임해, 현재 대한인간공학회 회장, 안산캠퍼스 학생생활상담실장으로 재직 중에 있다. 2000년 인간공학디자인 최우수상 및 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3년 8월에는 세계인간공학회 사무총장으로 IEA 2003 Congress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사진 : 노시태 사진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10 01

[교수]'외국인 교수 제 2호' 디지털경영대 구랑가 고팔다스 교수

국제화는 이제 하나의 추세와 경향을 넘어 하나의 복음처럼 한반도에 퍼지고 있다. 캠퍼스도 예외일 수는 없다. 과거 '위탁 교육' 차원에서 학생들을 외국으로 파견하던 것으로 국제화의 수준을 가늠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외국인 교수가 강단에 서고, 싱가포르 학생과 나란히 앉아 수업을 듣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을 느낄 법도 하다. 이번 학기에 새롭게 부임한 구랑가 고팔다스(디경대·경제학부) 교수를 만나 한양대 국제화, 그 현 주소를 물어 보았다. - 본교의 첫 인상이 어떠했나? 캠퍼스가 굉장히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다. 매우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강의실이나 강의시설, 건물 등이 미국의 캠퍼스를 연상시킨다. 훌륭한 시설이 갖춰진 곳에서 강의를 하게 돼 기쁘다. - 인도 출신으로 호주, 미국 등 영미권 국가에서 학위를 마쳤는데 어떻게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됐나? 작년 8월 한국에 처음 왔다.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난 뒤, 한국의 한 대학에서 외국인 교수를 채용한다는 공고를 보고 오게됐다. 지리상으로도 인도와도 가깝고, 강의 경험을 쌓기 위해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했다. - 이번 학기에 가르치는 과목과 전공 분야는 무엇인가? 전공은 경제학, 무역학이다. 특히 국제무역, 경제성장 및 개발, 경제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English Reading in Economics', 'Principles of Macroeconomics', 'Theory and Application in Economics' 세 과목을 강의한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1학년과 4학년을 가르치고 있다. - 100퍼센트 영어 진행 수업을 학생들이 잘 따라오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의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말해달라. 아직 강의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가장 커다란 문제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다. 이전 대학에서의 강의 경험을 빌어서 말하면, 처음에는 학생들이 얼마나 잘 따라올지 우려를 많이 했다. 그런데 학기가 끝나면서 정말 처음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것이 증명됐다. 모든 학생들이 나의 강의를 충실히 이해했고 잘 따라왔다. 지금 학기를 시작하는 시점에서도 꽤 수줍어하고 조용한 학생들을 보면 약간은 걱정된다. 영어의 문턱을 넘어 수업시간에 더 많이 말하고 참여하도록 유도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학생들이 따라오려고 노력해 안심이다. 사용하는 교재도 영어 원서이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영어 실력이 늘 것이다. - 본교는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비롯해 영어 강의 등 캠퍼스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 중에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본교 캠퍼스의 국제화에 있어서의 걸림돌을 꼽자면. 한양대학교가 국제화, 세계화를 지향하고 여러 정책들을 펼친다는 사실을 안다. 외국인 교수 채용도 그 일환일 것이다. 학생들의 영어 실력도 우수하고 학교 시설 또한 국제적인 수준에 맞게 잘 갖춰져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부족하다고 본다. 대학의 업무에 관한 정보, 공지사항, 행정 업무 문서 등 모든 것이 한국어로만 씌어져 있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나로서는 매일 아침 건네 받는 한 뭉치의 문서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심지어는 강의 출석부도 한국어로만 씌어져 있어 교학과에 직접 학생들의 영어 이름을 물어봐야 했다. 교내 연락처가 적힌 전화번호부나 경제학부에 관한 기본적인 안내책자도 영문판이 없다. 만약 한양대에 지원하고자 하는 외국인 학생이 있다면 이것은 꽤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가장 기본적인 정보부터 캠퍼스 국제화에 걸맞게 세심히 신경써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 외국인 경제학자가 바라보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경제에도 외국인의 직접적인 투자를 끌어오기 위해서 세계화가 더 필요하다. 기본적으로는 세계와 동떨어진 섬이 되지 않기 위해서 아까도 말했듯이 언어의 장벽을 뛰어 넘어야 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외국인의 투자를 제한하고 규제하는 법들을 쇄신, 개선해야 한다고 본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규제를 완화할 때 외국인들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다. - 흔히들 외국생활에서 음식이 가장 적응하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처음에는 약간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인도음식도 한국음식처럼 맵고 강한 맛이 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한국음식에 익숙해졌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친한 이웃이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한국음식을 접할 기회도 있었다. 지금은 김치, 순두부, 볶음밥, 비빔밥, 돈까스 등 대부분의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세미나 등 학술행사에 많이 참석하고 싶다. 10월에 방콕에서 열릴 APEC 세미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또한 한국어를 전혀 못해 외국인 교수를 위한 한국어 과정이 있다면 강의를 마친 뒤에 한국어를 배우고 싶다.

2003-09 29

[교수]한양 이공학의 르네상스 일으키겠다'

한양 이공학의 옛 명성을 부활시키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졌다. 학교 당국은 최근 정부가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김수삼 안산캠퍼스 부총장을 위원장으로 특별위원회를 설립,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이공계 인력의 공직 중용을 필두로 엔지니어의 사회 진출 전망을 전면 확대시키고, 이를 통해 범사회적으로 만연한 '위기론'에 정면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위클리한양은 '이공계공직진출확대방안에따른한양대준비위원회(가)'(이하 이공계공직진출준비위) 위원장 김수삼 부총장을 만나, 위원회의 활동 계획과 전망을 들어보았다. - 편집자주 - 최근 정부가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방안을 발표함에 따라 학교 당국에서도 별도의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적극적인 대안 마련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우선 정부의 이 같은 조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중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대체적으로 이공계 인력들이 국가운영의 주체로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오랜 전통에 기인한 것인지, 엔지니어보다 법학·상경계 중심의 정부 조직이다 보니 국가 경쟁력이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이번 정부의 조치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안다. 정부의 방침은 첫째, 국가공무원 5급 임용고시에서 기술직과 행정직을 철폐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행정직이 약 3백명 정도, 기술직은 분야별로 5명 내지 10명 정도를 뽑아왔다. 예를 들면 토목직·건축직 합쳐서 5명, 기계·화공직 합해서 5명, 이런 식으로 뽑아왔다. 따라서 우수한 사람이 있어도 자리가 없어 갈 수가 없었다. 이 같은 불협화음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국가공무원 5급직 임용시험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선택과목도 예전에는 법학·행정학 중심이었으나 이제는 공학 과목도 추가되었다. 이렇게 공정한 상황에서 경쟁을 한다면 이공계 진출이 늘어날 것은 당연하다. - 이공계공직진출준비위가 준비 중인 구체적인 대책과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정부가 내년 초부터 5급 공무원 특별채용 수를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경우에 주 대상이 될 것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이공계 박사학위 소지자 또는 경력이 뛰어난 사람, 둘 중의 하나로 본다. 전통적으로 정부가 아웃소싱을 해 온 관리들을 보면 대개 해외나 국내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사람을 뽑았다. 따라서 자세한 시행령은 내년 봄에 나오겠지만, 우리 학교가 미리 준비해야 하겠다는 판단을 했다. 고급 이공계열 학위자, 즉 박사학위를 이미 끝냈거나 박사학위를 마칠 시점에 와 있는 학생들 중, 40살 이하의 사람들을 이른바 '리콜'해서 다시 학교로 모셔다가 법, 행정, 정책, 경제, 경영 등 내년의 특채를 위해 미리 재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이 끝나면 총장 명의의 수료증을 수여할 방침이다. 한양대의 이공계 학생들이 국가 공무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특별과정을 이수했다는 증명을 준다는 것이다. 지원자는 정부 특채시 이 같은 경력을 이력서에 넣을 수 있고, 학교는 정부에 편지를 보내려 한다. 이 지원자는 공과대학이나 이과대학을 나왔음에도 공직 등용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과정을 마쳤으니 특별히 배려해 달라. 이렇게 해서 한양의 이공계 인력이 국가의 중추적 리더로서 기여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것이 위원회의 주요 임무다. - 기획한 프로그램들이 예산 문제 등 타 부처와의 협의가 남아있어 아직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프로그램의 시작은 언제쯤으로 예상하고 있으며, 추진 체계는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가? 3천만 원 가량의 예산을 조달해야 하기 때문에 기획처와 협의 중이다. 예산이 확보되면 10월 하순경부터 시작해 겨울방학 직전까지 제 1기를 배출할 계획에 있다. 현재는 약 50명 정도를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제 1기의 교육성과를 보고 내년도 교육계획을 추진하려고 한다. 추진체계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 우선 박사학위를 소지자를 중심으로 하다 보니 일반대학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일반대학원의 문제점은 사회교육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AMP 과정 등 사회교육의 오랜 경험이 있는 경영대학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일반대학원과 공학계열 학과가 교육 대상자를 추천하면 교육 시행은 경영대학원이 주도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 이번 프로그램은 이공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탑다운(Top-Down)' 방식의 프로그램이라는 인상이 든다. 이 같은 조치가 이공계 전반에 팽배한 '위기론'을 불식시키는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가? 아울러 학교 당국이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노리는 부수적인 기대가 있는가? 이번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방안이 나오는 것은 단순히 국가가 이공계를 받아들여서 국가 미래 전략을 수립하자는 것만이 아니다. 그 저변에는 이공계 쪽에 우수한 학생이 오지 않기 때문에, 우수 인력을 이공계에 끌어들이기 위해, 엔지니어의 새로운 미래를 국가 차원에서 보여준 첫 사업일 뿐이다. 이번 위원회의 출범은 이 같은 국가 시스템의 변화에 부응해 우리 학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 것이고, 정부의 변화에 부응할 가장 유리한 지위에 있는 것이 한양대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의 기회다. 한양공대에 오면 고위 공직을 비롯해 새로운 전망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본교를 홍보하는 매우 전략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본다. - 공직 진출을 위한 이공계 커리큘럼의 변화에는 자칫, 공학 분야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공계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는 5급 공무원 진출 외에 보다 다양한 시도와 노력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공계의 공직 진출이 이공계의 교육을 지금보다 혁신적으로 쉽게 만들지는 않는다. 단지 이공계 인력의 능력 발휘를 가로막았던 사회적 전통이나 특정 장애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추가적인 커리큘럼이 구성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본교는 5급 공무원 진출 외에 이공계를 위한 다양한 노력들을 경주하고 있다. 현재 공대 교수들이 모여 '기술판사제' 도입을 대법원에 정식으로 요청해 놓고 있고, 국회 각 정당 대표들에게 이공계 인력을 전국구에 일정 부분 영입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법원 판결 중에 특허 분쟁이라든지 기술적 논쟁이 있는 사례에서 법을 전공한 사람들끼리 판정을 하다보니 우리 기술인들이 보면 잘못된 판정이 대단히 많다. 그래서 한국공학한림원을 주축으로 '기술판사제' 도입을 정식 요청해 놓은 상태다. 아울러 각 정당이 만드는 정책들은 상당 부분 첨단 기술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정치인들이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의제 선정과 선택 시기가 늦어지고, 필요한 재원이 제대로 투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국회에도 전국구를 통한 이공계 전문 인력 등용을 촉구하고 있다. - 현재의 추세라면 이공계의 공직 진출은 가능하지만 반대로 인문사회과학, 법학 및 상경 계통 인력이 공학계에 진출하는 가역반응은 예나 지금이나 불가능하다. 이공계를 위한 특단의 조치들이 예상치 않았던 비공학 계열의 역소외를 가져오지는 않겠는가? 그 반대다. 내가 안산캠퍼스 부총장이니까 안산캠퍼스를 두고 얘기해 보겠다. 안산캠퍼스의 분위기는 디지털경영대학, 국제문화대학, 생활체육대학, 디자인대학이 서로 연합해서 한양대의 전략품목인 기술을 지지하거나 이를 통해 오히려 새로운 분야와 시장을 창출하자는 쪽으로 가고 있다. 안산에 최첨단 기술들이 오니까, 이 기술들을 경영학적으로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인문학적으로 어떻게 이것을 조직해서 국가에 되돌려 줄 것인가, 디자인이 이를 어떻게 지지할 것인가, 생체대가 이를 어떻게 진흥시킬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공학이라는 개념보다는 기술과 인문학과 문화가 어우러져 어떤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있다. 정보화사회는 컨텐츠 경쟁이다. 어떤 컨텐츠를 만들고, 그 컨텐츠를 이용해 어떻게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것인가 하는 싸움인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학연산 인프라는 본교가 전국 최고의 유일무이한 조건에 있다. 따라서 인문학에 계신 분들도 이공계의 지원을 비판하기보다는 함께 시장을 넓히고 공존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 말씀대로라면 이번 이공계 공직 진출 프로그램이 한양공대의 르네상스를 일구고, 나아가 한양대 전체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 기대해도 되는가? 지난 50년 동안 한국사회가 발전해 온 저변에는 한양공대가 있었다. 누가 뭐라 해도 그들의 기여에 찬사를 아낄 수는 없다. 잠시 이공계 위기론이 팽배하면서 우리 일부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옛날의 명성을 되찾으며 일대의 도약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전국 최대의 학연산 인프라를 구축한 안산캠퍼스의 변화가 한양대 전체의 일대 도약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이는 특정 캠퍼스, 특정 학문에 편중된 지협적인 사고가 아니다. 같은 배를 탔는데, 엔진이 잘 나간다고 해서 다른 기능이 죽느냐, 그것이 아니다. 같은 배에 탔으면 함께 빨리 간다는 것, 그런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인터뷰 : 최 홍 편집장 choihong@ihanyang.ac.kr 기록·정리 :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09 29

[학생]`한국 배구의 주포` 국제대회 연패의 주역 체대 신영수 선수

'한국 남자배구의 자존심을 지킨다.'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 남자배구는 금메달을 획득해 한국이 종합 3위를 거두는 데 큰 몫을 했다. 곧이어 열린 아시아남자배구선수권에서도 들리는 승전보. 이 대회에서 한국은 지난해에 이어 2연패의 쾌거를 거뒀다. 이후 아시아챌린지컵에서도 중국을 꺾어 내년 아테네올림픽 티켓 확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이러한 돌풍의 중심에는 신영수라는 배구계의 신세대 스타가 있다. 신영수는 대구유니버시아드 결승에서 10점,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21점을 득점하며 명실공히 한국 남자배구의 주포로 평가받는다. 위클리한양이 국제대회를 마치고 막 귀국한 신영수 선수를 만나보았다. - 이번에 많은 대회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현재 소속되어 있는 곳은 어디인가? 물론 나는 청소년대표나 국가대표이기 이전에 한양대학교 선수다. 이제까지는 21세 이하의 선수들이 활동하는 청소년대표팀에서 소속되어 있었고, 현재는 국가대표선수팀원으로써 여러 국제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 연이은 대회와 시합으로 개인적인 시간이 부족하지 않나? 계속되는 시합으로 인해 따로 체력 관리를 할 시간은 없다. 잘 먹고 푹 쉬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숙소에서 지내는데 외출시 보고하고 나가야 하는 등 자유로운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여자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어 자주 다투는 점이 조금 안타깝다. 그 외에도 입학할 때에는 생활체육강사 자격증과 심판자격증을 따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국가대표 선수와 한양대학교 선수로서의 역할에 따라 짜여진 일정으로 개인적인 시간이 전혀 없다. 캠퍼스에서 수업을 듣고 싶은 바램도 있지만 일정상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 여러 대회에서 활약하며 명실공히 스타반열에 올랐다. 실감하고 있는가?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신진식, 김세진 선수가 불참했고 선수들의 부상이 많아 언론에서도 멤버가 부실하다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운 때일수록 멤버들간의 단결은 더욱 강해진다. 결국 우리는 승리했고 대회 2연패에 성공했다. 내가 큰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우승은 나 혼자만의 성과가 아니다. 시합 때 그냥 열심히 하다보니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내가 21점 득점을 했다고 하는데 솔직히 그것도 오늘 인터뷰하면서 들었다.(웃음) - 주위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아직은 주위에서 얼마나 큰 기대를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곧 있을 전국대학배구연맹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어야한다는 부담감은 있다. 국제대회에서는 잘하고 학교 시합에서는 못하면 면목이 서지 않을 것 같다. - 고등학교 때부터 일찌감치 주목받아 많은 학교에서 입학을 원했던 것으로 안다. 한양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배구부 선배인 이경수 선배를 좋아해서 일찌감치 배구 명문인 한양대학교로 진로를 결정했다. 배구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하면 한양대에 다니느냐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많다. 한양대학교에 온 것을 후회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우선은 곧 있을 대학배구연맹전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졸업 후 실업팀으로 가게 되겠지만 그것에 대한 것은 아직 언급할 단계가 아닌 듯 하다. 지금은 내게 주어진 시합을 잘 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2003-09 22

[교수]한양과 40년 함께한 `한양지킴이`-서울캠퍼스 송영권 관리처장

캠퍼스가 달라지고 있다. 신규 연구단지 착공과 생활관 증축은 물론 강의동과 연구실, 학생 편의시설의 대대적인 개·보수에서 첨단 기자재 확충에 이르기까지, 1년 365일 분주하게 진행되는 캠퍼스의 물적 성장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올해 초, 기획조정처 발전협력팀에서 주관한 동문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학교 교육환경 부문을 가장 인상깊은 변화로 평가했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2039년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한 '인텔리전트 캠퍼스'를 구축하겠다는 학교 당국의 강한 의지가 숨어있다. 이에 위클리한양은 '한양의 살림꾼' 송영권 관리처장을 만나 지난했던 '캠퍼스 변천사', 그 숨은 이야기들을 들어 보았다. - 편집자주 - 1964년도 사학과에 입학한 후, 만 40년간 한양의 부침과 함께 해 온 '산 증인'으로 안다. 1960년대 초반의 본교 캠퍼스에 비교하면 지금의 캠퍼스는 어떠한가? 아울러 최근 캠퍼스 변화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점을 꼽는다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당시 우리 학교를 조그만 '판자 집'이었다고 생각하면 지금은 대형 건물에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학교가 처음 설립될 당시만 하더라도 한양 동산은 바위산에 불과했다. 그 곳에 이 만큼의 녹지대를 형성한 것은 사실상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과 같다. 1939년 개교 이후로 64년이 흘렀다.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우리학교가 얼마나 깨끗해졌는가. 교내 환경이 깨끗해진 것 뿐 아니라 학생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지적인 수준뿐만 아니라 캠퍼스 생활의 질도 향상된 것이다. 64년도에 내가 학교를 다닐 때와 지금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 이른바 낭만과 멋이 생겼다. 개교 후 시설 공사를 수없이 많이 진행해 왔다. 최근에 있었던 가장 인상적인 공사는 뭐니해도 지하철 연결 통로를 공사를 들 수 있다. 이 공사의 효과는 엄청나다. 전철역에서 나오자마자 캠퍼스 본관이 보이는 학교는 전국에서 우리 학교밖에 없다.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수험생들이 애지문을 통해서 물밀듯이 쏟아지고 나가는 모습을 보면 이 작은 출구 하나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새삼 깨닫는다. - 한양 중장기발전계획에는 세계 100대 대학 진입을 목표로 한 '인텔리전트 캠퍼스' 구축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향후 교육환경 개선 사업의 청사진을 듣고 싶다. 종합운동장, 노천극장 및 1, 2 공학관의 강의실 및 생활관 증축 등 특정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분야에 지속적인 투자를 할 생각이다. 안산캠퍼스의 40만평이 넘는 대지에 국책 기관과 테크노파크를 조성하는 것에서부터, 늘어나는 외국인 유학생을 위한 어학원과 기숙사 증축에 이르기까지 현재 진행 중인 공사와 계획들은 그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이번에는 새롭게 국제학부가 신설되어 외국인 25명이 입학할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국제화 시대에 부응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캠퍼스' 구축에 만전을 기할 것이다. 이 같은 노력의 배경에는 학생과 교수들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총장님의 강력한 의지가 있음을 빼놓을 수 없다. 지켜봐 달라. - 연구동 및 강의동 신·증축을 비롯한 규모의 공사들 외에도 학생이나 교수들의 교육·연구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작지만 섬세한 사업과 노력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이다. 책걸상 교체에서부터 화장실에 비누 하나를 비치하는 사업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사업들을 통해 교수와 학생들이 아무런 불편 없이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화장실마다 비누와 휴지를 비치하는 것 하나도, 어찌 보면 작은 일이지만 캠퍼스 전체로는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업도 예산 문제보다 학생들의 수준이 높아졌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화장실에 휴지를 갖다 놓으면 금방 없어지곤 했다. 한양인들의 달라진 주인의식을 높게 평가한다. 한양에는 무궁무진한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발전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 앞서 언급한 지하철 연결 통로 공사와 함께 최근 이슈가 되었던 것으로 목월시비 이전을 들 수 있다. 시비를 옮기는 일에도 학생들이 알지 못하는 숨은 난관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처음 목월시비가 세워진 곳은 자연대 뒤편이었으나 관리가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목월 선생의 후학들이 이를 가슴 아프게 생각했다. 이에 느티나무가 있는 인문대 앞 광장으로 시비를 옮기자는 의견이 나왔다. 인문대 학생들은 좋아했지만 자연대 학생들이 반대했다. 그 공간이 인문대 것만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지금 목월시비가 놓여있는 138계단 중턱이다. 전망도 좋고 목월 선생이 늘 다니던 길이니 의의가 있겠다 싶어 그 곳으로 시비를 이전하게 됐다. 시비를 옮기는 일은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비석 무게만 5톤이어서 5백 톤급 크레인 두 대가 와서 들어야 했다. 마치 항공모함을 옮기는 것과 같았다. 시비 이전에만 9천만 원 정도 들었다. 앞으로 인문대학 치마바위 쪽으로 공원을 확장할 예정이다. - 관리처는 학교 안팎의 수많은 요구와 수요를 해결해야 하는 부서다. 이에 따른 고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당부할 말은 없는가. 각 부처간의 일 뿐만 아니라 주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학교의 발전을 위해서 원했든, 원하지 않든 때로는 악역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관재과장 시절에 오물을 뒤집어썼던 일을 잊을 수 없다. 마장동 학교 부지에 있던 무허가 건물을 철거하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 곳에 거주하던 주민들과 충돌하던 과정에서 한 할머니가 내게 오물을 뿌려, 옷을 벗고 일을 해야만 했다. 나만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비가 많이 왔을 때도 전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관재과, 시설과 직원들은 밤샘 근무를 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교를 위해 헌신하는 관재과, 시설과 직원 모두에게 감사하다. 관리처장 부임 후, 지난 2년 동안 휴일 및 추석에도 학교에 오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다. 내 적성에도 맞는 일이다. 일을 즐겁게 해야지, 억지로 감수하는 고통으로 여기면 안 된다. 월급 받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한다면 여기서 일 하지 못할 것이다. 모두 낙으로 생각한다. 즐겁게 일을 해야 힘이 솟고 피로도 풀린다. 직원들에게도 '즐겁게 일을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자기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즐겁게 일하고 스트레스를 바로 해소하라는 말이다. - 서울캠퍼스 정문 공사에 대해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부 건물주와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이 사적 재산권을 지키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지만, 인재를 양성하는 공공적인 성격을 지니는 학교의 발전에 개인이 협조해주지 않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향후 정문 공사 추진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행당서점 건물을 매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오늘도 그 일 때문에 법원에까지 다녀왔다. 건물주가 33평의 4층 건물 매입에 너무도 터무니없는 30억 원을 요구하고 있어 진척이 되지 않고 있다. 사실 건물 매입 비용으로 수십 억을 들이는 것보다 그 돈으로 학생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그러나 정문은 한양대의 얼굴이기 때문에 반드시 그 건물을 매입해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목표는 흔들림이 없다. 학교 당국의 노력과 함께 학생들의 노력도 필요한 부분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 달라. 쉽지 않지만 학교 당국은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 - 정문 공사 외에 현재 어려움을 겪는 일들은 무엇이며 이에 학생들의 협조가 필요한 부분은 어떠한 것들인가? 어려움 중 하나가 서울캠퍼스 노점상 철거 문제다. 지하철역에서 정문에 이르기까지 불법으로 자리한 노점상들은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학생들의 보행권과 안전 문제를 이유로 반드시 철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전에 총학생회에서 '도시빈민 보호'를 이유로 노점상 철거에 반대한 적이 있다. 학교 당국에서는 난처했다. 관공서와의 협조 속에 노점상은 언젠가는 철거되리라고 본다. 아울러 교내에서 종종 벌어지는 각종 노동단체의 불법 점유나 집회들도 문제다. 학생들은 집회 후에는 깨끗하게 청소를 하는데 비해 외부 집회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외부 집회 후에는 쓰레기 처리에만도 수십 트럭이 소요되고 이에 따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모두 학생들의 등록금이다. 또한 캠퍼스 인근에 위치한 중국음식점들의 배달 행태도 문제다. 교내에 이륜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만에 하나 학생들이 다치게 되면 어떡할 것인가. 상업권 침해라는 일부 목소리가 있지만 나에게 학생들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음식 배달을 위한 이륜차들을 교문에서 일일이 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향후 건물 입구에서 배달을 통제하는 방법을 쓸 계획이다. - 본교에 몸담은 지 40년이 지난 동문 선배로서 개인적인 감회도 적지 않을 것 같다.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한양대는 내 인생의 전부다. 가족들이 서운해할지 몰라도 가정보다 학교에 대한 애착이 솔직히 더 강하다. 최근 박물관 개관을 앞두고 내가 학생 시절 가지고 다녔던 학생증과 배지 등을 기증하기도 했다. 내 인생의 3분의 2를 이곳 한양대에서 보냈다. 한양에 대한 나의 애정에는 과잉이란 있을 수 없다. 후배 한양인들도 어디에 가서든지 긍지를 가지라는 당부를 하고 싶다. 사회 곳곳에 한양의 19만 동문이 없는 곳이 없다. 한양의 자랑은 동문들의 응집력이다. 동문으로서 긍지를 가지고 한양을 사랑하자. 사진 : 노시태 사진기자 nst777@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