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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9 22

[교수]`법률의 목적은 처벌 아닌 예방`-법과대학 법학과 오영근 교수

온라인게임을 즐기던 한 임산부가 있었다. 그가 즐기던 게임은 참여자가 가상공간에서 어떤 인물의 역할을 부여받아 모험을 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이른바 '롤 플레잉 게임'이었다. 게임 특성상 게임 중 갖게 되는 무기, 갑옷, 돈 등의 사이버 아이템은 게이머들 사이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게임 중 가지고 있던 고급 아이템을 다른 이용자들에게 빼앗기고, 그들에게 귓속말과 편지로 조롱받던 임산부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쓰러져 결국 유산했다. 불과 2년 전에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상기 사건은 임산부가 법적 소송에 들어가면서 법조계의 가십으로 세간에 오르내렸다. 그렇다면 과연 사이버공간에서 임산부의 아이템을 뺏어간 그들에게 '영아 살해 혐의'를 지울 수 있는 것일까? 서울캠퍼스 법학과 오영근 교수가 형법을 '법률이기 이전에 해석학의 학문'이라 말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형법은 법률 이전에 '해석학'의 학문 "학문적으로 형법은 범죄가 무엇인지 규정하는 것입니다. 즉 법률 이전에 일종의 해석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형법 제250조에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라는 규정이 있습니다. 이 법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먼저 '살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가령 어떤 사람의 머리를 쳐서 뇌사상태에 빠트린 것을 살인으로 봐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해석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법률의 각 규정이 담고 있는 근본정신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형법입니다." 사회가 다원화될수록 범죄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현실공간뿐만 아니라 가상공간도 새로운 범죄의 장소가 되고 있다. 더 이상 과거의 법적 해석만으로는 모든 범죄들에 대처하기란 불가능하다. 바야흐로 법 해석도 다원화되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렇듯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적 해석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 오 교수의 지론이다. 그는 법 해석의 다원화를 위해 우리나라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현존하는 법 규정을 과감히 줄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행법상 새치기도 경범죄에 포함됩니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의 법은 지나치게 많은 규정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일반인들이 도저히 지킬 수 없는 법, 모든 국민을 범죄인으로 만드는 법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을 '전과자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법은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법은 적용과 집행보다는 '예방'이 더 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법 규정을 줄이고, 합리화를 이루는 것은 다원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 과제입니다." 한국의 법 문화, 이대로는 안 된다 경제 성장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지난 반세기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세계 20위권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 됐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입법, 행정, 사법의 전 분야를 포함하는 법률문화는 세계 1백위 이하의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법률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여전히 '후진국'인 셈이다. 오 교수는 현대 의학이 점차 질병의 치료보다 질병의 예방으로 무게중심을 옮겨가듯이 법학에서도 '예방 법학'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덧붙여 그는 독일의 임대차계약을 설명하면서 유럽 법률문화에 대한 부러움을 표시한다.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는 우리의 임대차 계약과는 달리, 독일의 경우 모든 경우의 수가 고려된 책 한 권 분량의 계약서를 작성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어날 수 있는 분쟁 요인을 사전에 제거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유럽에서는 매달 몇 만원의 법률 보험료만으로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다. 오 교수는 우리나라의 변호사 고용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해마다 더 많은 변호사를 선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률 보험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몇 배 많은 변호사들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사법시험도 지금의 고시제도가 아니라, 운전면허와 같은 '자격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면허가 중요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운전면허가 인간의 생명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실제 검사들이 사형에 구형하는 경우는 1년에 20명도 채 안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한해 수 백 명에 이릅니다. 이런 논리라면 오히려 운전면허시험을 '고시'처럼 엄격히 관리해야 하잖아요?(웃음)" 오 교수는 현재의 법조인 양성제도는 과거 '과거시험'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부연한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과거의 제도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법조인 양성제도 뿐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의 법률 문화가 성숙되지 못하는 것도, 국민들의 정서에 맞지 않는 제도들 때문이라고 그는 단언한다. 지난 여름 '붉은악마'의 대오 속에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던 국민들은 이미 선진의 법률문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다고. '이렇게 훌륭한 국민들인데, 어떤 일이든 안 되겠습니까?'라고 말하며 국민들에 대한 신뢰를 재삼 확인하는 그다. 법률은 피해자 보호에 앞장서야 현재의 주요 관심사는 형법 규정을 정비하는 것이라며 학문적 욕심을 드러내는 오 교수는 최근 한국피해자학회 회장으로 취임해 활동 중이다. 이 학회는 범죄 연구에 있어 가해자 연구에 중점을 두었던 기존 연구들과 달리 피해자에 대한 관심을 갖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졌다. 그리고 나아가 피해자들의 권리를 강화하자는 측면도 포함하고 있다고. 피해자가 재판 과정을 거치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2차, 3차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폭우 속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마치면서 오 교수의 대학 생활을 물었다. 20여 년이 넘는 시간동안 법학을 연구해 온 그이기에 법률에 대한 일반인의 통념처럼 '고시원'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유머와 재치를 쏟아낸 그의 성격을 반영하듯이 오 교수는 미팅도 하고, 가끔 '고고장'도 가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노라 고백한다. 오히려 사회가 존재하는 곳에 법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이 같은 법학을 어떻게 '고립된' 고시원에서 연구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법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은 죽은 법문의 부활을 꿈꾸는 그의 오래된 신념이다. 학력 및 약력 오영근 교수는 1979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동대학원에서 법학석사,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독일 Bonn대학, 1997년과 2001년 독일 Konstanz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펼쳤다. 한국형사법학회 편집위원, 한국형사정책학회 연구이사, 한국피해자학회 부회장, 형사판례연구회 이사, 한국소년법학회 부회장, 서울보호관찰심사회위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전문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고 최근 한국피해자학회 회장에 선임됐다. 저서로 국내 10권, 논문으로 국내 100여편, 국외 5편이 있다. 사진 : 신버들 학생기자 pleureur@ihanyang.ac.kr

2003-09 22

[학생]`젊은 지식인의 힘` 관광학회 논문대상 관광학과 정란수 군

대학원 진학이 취업 재수를 면하기 위한 것으로 종종 폄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이 품은 학문의 뜻과 열정을 성실한 연구로 증명해 낸 학생이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관광학회에서 주최한 제54차 국제학술대회 대학원 논문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정란수(관광학·석사4기) 군이 바로 그 주인공. 관광학을 '자아실현과 자유로운 삶을 위한 최고의 미래 학문'이라고 자부하는 정 군을 만나 수상 소감과 관광학의 매력에 대해 들어보았다. - 박사과정의 학생들도 대거 참여한 대회라 수상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들과 경쟁해서 얻은 결실이라 뿌듯하다. 무엇보다 본교 관광학과를 빛내게 돼서 더욱 기쁘다. 입상한 논문은 '주요 사건 발생에 따른 금강산관광 수요변동 분석'이다. 금강산관광이 1998년 11월에 시작돼 5년 간 사업이 진행되면서 남북정상회담, 서해교전, 민영미씨 억류사건, 금강산관광경비지원 등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이 예약 취소율 및 관광객 증감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는지에 대해 연구했다. - 대상을 수상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논문의 형식을 갖추려고 노력한 것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좋은 논문은 하나의 주제를 끌고 가는데 있어서 연구의 필요성과 목적이 바로 관련 이론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 이론을 토대로 연구방법과 조사의 틀을 짜야한다. 일관성과 체계성이 충실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논문을 쓰라는 의미로 수상이 결정된 것 같다. 시의 적절한 주제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투신자살 이후 금강산 관광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조되면서 심사를 담당한 분들의 관심을 더 끌게 됐다고 생각된다. - 이 논문이 관광학 발전에 어떤 기여를 했다고 보는가? 관광현상에 대해 과학적인 분석방법을 제시하는데 도움이 되고자 본 논문을 쓰게 됐다. 사회학이나 인구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Event History Analysis 및 재무분석의 Event Study에서의 함수 개념을 관광에 맞게 약간 변화시킨 탐색적 해석 방법을 사용했다. 석사과정으로서 이러한 개념을 끌어온다는 것에 대한 한계를 느끼긴 했지만 이러한 여러 분석 방법이 관광학에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시도를 해봤다. 금강산 관광 수요분석에 관한 최초의 논문이라는 점도 큰 의미를 가진다. 향후 관광학의 입장에서 남북관광에 대한 연구를 펼치는 토대를 제공하는 연장선에 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본교 관광학과의 매력을 말한다면? 전국 1백 20여 개의 관광학 계열 학과 중 본교 관광학과는 관광학을 종합적으로 배울 수 있고, 보다 학문적이고 깊이 있는 접근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꼽히고 있다. 내년부터 '관광학부'로 입학 형태가 바뀌면서 본교 관광학과에 지원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 예상된다. 향후 지도교수제, 대학원생과의 연계 등을 통한 전담 지도제가 확립되면 마케팅, 정책, 개발, 호텔, 자원, 레저 등의 관심분야에 맞는 종합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익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비록 논란 속에 있지만 주 5일 근무제의 전국적 시행을 앞두고 관광학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증가하고 있는데. 주 5일 근무제가 시행되면서 2박3일 국민관광 시대가 열리게 됐다. 선진국 진입을 위해서는 성장만을 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을 위하여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휴식과 기분전환, 그리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관광학은 바로 이러한 여가를 중시하는 관광시대를 담당할 수 있는 미래 학문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역사는 필연의 영역에서 자유의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노동이 인간 삶의 필연적 조건이라면 자아실현의 공간은 자유의 영역인 여가와 관광이 아닐까 생각한다. - 논문 대회를 준비하면서 도움을 주신 분이 있다면. 중도에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조교를 맡고 있는 관광학과 이훈 교수님이 계속 다독여주시고 논문을 직접 지도해주셨다. 조교가 개인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치 못한 풍토에서 이 교수님은 조교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은 맡기지 않으셨고 오히려 논문 쓰는 일과 연구하는 일을 독려해주셨다. 덕분에 석사과정에 입학한 1년 동안 학술지 등재 1회를 포함해 모두 3편의 논문 기고 및 논문 대회 3회 수상을 하게 됐다. 석사 과정이 무슨 논문을 쓰냐며 공부나 하라고 하는 것보다는 논문을 쓰면서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풍토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본교에서 이러한 풍토가 정착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 여러 번의 논문상 수상을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본교 관광학과의 논문 수상 실적은 동일 계열 전국 최고 수준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선후배가 모여 논문 공모를 준비하며 함께 공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옮겨보고자 하는 풍토가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속에서 다른 사람과 같이 공부한 사람에 불과하다. 논문을 쓰다보면 수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체계화시킬 수 있는 매력을 느끼게 된다. 아직 부족한 것이 많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지만 그것을 채워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논문을 쓰는 것이 마냥 즐거워진다.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09 15

[교수]"도전하세요. 세상의 절반은 여성들의 몫 아닙니까?"

사상 최대의 취업난, ‘병역필남’의 세상에 가뜩이나 움츠려든 여대생은 두렵기만 하다. 당장 취업을 앞둔 4학년뿐 아니라 이제는 1학년 신입생 때부터 취업 걱정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는 오늘,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이하 커리어개발센터) 장기영 책임연구원은 말한다. ‘걱정하고 고민할 시간에 먼저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의 문을 두드리세요’라고. 지난 7월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커리어개발센터 장기영 책임연구원을 만나 여대생 취업난의 해결책을 들어봤다. -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 아직은 낯설다. 취업센터와는 어떻게 다른가. 커리어개발센터는 여성부가 여학생들의 취업능력 배양을 위해 4억원을 들여 추진한 사업의 하나로 설립돼 지난 7월 8일 문을 열었다. 본 센터는 지난 3월 여성부 공모를 통해 전국에서 5개 대학 중 하나로 최종 선정됐고, 그 중에서도 시설 분야, 프로그램 운영 분야 등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선정 대학들 중 대표 대학으로 지정됐다. 커리어개발센터는 취업센터와 ‘취업’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는 같지만 ‘교육’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 커리어개발센터는 여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을 배양하기 위해 단계적인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 센터의 프로그램을 소개해 달라. 현재 커리어개발센터는 3가지 전략으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바로 특성화?차별화, 전문화, 연계화?통합화다. 일단 이공계 여학생을 위한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별로 특화된 직업개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개인별 성격적 특성과 직업성향을 전문적으로 진단할 수 있도록 여러 심리검사와 수시 면접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심리검사와 수시 면접클리닉은 직업과 관련한 1:1 과외지도나 다름없어 자신이 원하는 취업분야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아울러 교내 외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여학생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반, ‘여성과 직업’, ‘매너와 서비스’ 강좌 등을 통해 여학생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앞으로는 동문 CEO와의 간담회, 정보처리기능사 시험 준비반 등 학생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것들을 기획하고 있다. -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반에 대한 여학생들의 반응은? 9월 7일에 7급 공무원 시험이 있다. 본 센터에서는 지난 3월부터 7급 공무원 시험에 관심 있는 학생들 중 50명을 선발, 준비반을 운영했다. 시험과 관련하여 특강을 마련했고, 동영상 강의와 오디오 강의도 수강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방학 기간에는 모의고사를 통해 집중적으로 시험준비를 하도록 했다. 결과는 이후에 알겠지만 7급 공무원 시험 준비반은 학생들이나 학교측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금은 50명으로 학생 수를 제한했지만 학생들의 요구가 더 많다면 인원수를 늘릴 생각이다. - 수시 면접클리닉은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가? 본교 여학생들 중 3, 4학년 및 2002학년도 졸업생을 상대로 취업전문컨설턴트와 1:1 심층 면접 지도를 한다. 기존 모의면접은 1대 다수와의 면접이었기 때문에 개인별로 특화된 지도를 받지 못했다. 그러나 본 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면접클리닉은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 면접태도 및 인상, 말투 등 세세한 부분까지 교육받을 수 있다. 언제든지 찾아와 접수하면 개인별로 30분 동안 면접 테크닉을 알려준다. 아직 저학년이라면 ‘매너와 서비스’ 등 여성 취업 관련 강좌를 수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여대생 취업에 있어서 특히 유의해야할 점이 있다면? 학점과 영어 점수, 자격증은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그 이상의 자기 계발을 여기서 도와줄 수 있다. 여학생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적극성’이다.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한번 도전해라. 성공적으로 취업을 한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과의 차이는 취업시장에 한 발짝 더 다가섰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도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올 기회조차도 달아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취업을 앞둔 모든 여학생들에게 당부할 말은? 우선 자신이 원하는 분야와 적성에 맞는 분야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단지 혼자서 힘겹게 고민할 것이 아니라 본 센터나 학생생활상담연구소를 찾아 전문가와 상담할 것을 권한다. 걱정하고 고민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먼저 찾아왔으면 좋겠다. 1학년 때부터 진로에 대해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와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커리어개발센터는 학생들에게 유리된 기관이 아니다. 여러분, 바로 당신을 향해 언제나 열려있다.

2003-09 08

[동문]"관광 한국의 새 지평 열어갈 메신저를 자임한다"

한민족에게 가장 친숙한 노래를 들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고 전통 민요 '아리랑'을 꼽는다. 남과 북이 단일 팀을 이뤄 공동 응원을 할 때 같이 부르기도 했던 아리랑은 전 세계에 한국적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상징적인 코드로 작용하기도 한다. 아리랑은 우리에게만 익숙한 음악이 아니다. 배우기도 쉽고 구성진 가락이 매력이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쉽게 따라 부르고 연주하기도 한다. 이렇듯 아리랑이 한국을 알고 있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익숙한 노래라고 한다면, 이들에게 가장 친숙한 방송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하라면 '아리랑 TV'를 꼽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아리랑 TV는 지난 1997년 국내 거주 외국인을 대상으로 케이블 방송 송출을 시작한 이래, 현재 아시아태평양지역을 비롯해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까지 그 영역을 확대해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국제방송교류재단의 기금으로 한국의 역동적인 모습과 고유 문화를 외국인들에게 알리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아리랑 TV가 개국한 지도 이제 7년째. 초기 창립 멤버로서 집보다 방송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아리랑 FM 제작보도팀장 정재신(문화인류 88년 졸) 동문을 만나본다. 방송을 위해 고사한 박사학위 정 동문을 만난 시간은 웬만한 직장인들은 퇴근해서 근처 맥주집에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거나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저녁 8시 경. 바로 하루 전, FM 라디오를 개국하기까지 지난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정 동문을 만났다. 새롭게 꾸려진 8층 라디오 본부에 들어서자 스튜디오에서는 한창 생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자리를 잡기도 전에 방송 장비며 녹음실과 스텝 소개부터 먼저 시작했다. 방송 프로그램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아나운서나 출연진만으로 절대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있어야 그 방송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보다 폭넓은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동문이 방송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95년, 미국에서였다. 1988년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해 곧바로 동 대학원에 진학했고, 서울올림픽 성화봉송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정 동문은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솔직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하자"라는 생각에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을 정리하고 방송 공부를 시작한 것은 유년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 라디오 음악 PD를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때부터 이미 밴드를 구성하고 음악과 함께 했던 그가, 평생 음악과 함께 살고 싶다는 꿈을 비록 조금 늦긴 했지만 반드시 이루고 싶었노라 고백하자 주위의 분위기가 숙연해진다. 아리랑 FM라디오 개국은 이런 의미에서 정 동문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라디오 방송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음악방송을 직접 제작해, 스스로도 즐기고 청취자들도 즐겁게 만들자는 것이다. 라디오 개국의 본래 목적은 한국을 방문한 관광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관광한국의 새 지평 열어갈 '아리랑 FM' "라디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관광정보뿐 아니라 그들이 한국을 여행하는데 실질적으로 필요한 날씨, 교통, 숙박, 음식 등 문화 정보를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국내 방송과 차별을 두기 위해 국내 가요보다는 외국 팝송을 많이 틀기도 하지요. 외국인들이 제주도에 떨어지면 혼자서 여행하기가 여간해서 쉽지가 않은데 라디오 단말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게끔 할 수 있습니다. 아리랑 FM만 있으면 여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루 18시간 동안 방송되는 아리랑 FM라디오는 제주시와 서귀포시에서만 공중파로 들을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애초에 서울시에서도 방송을 하려고 했으나 더 이상 유휴 주파수가 없어 불가능했다며 아쉬움을 토로하는 그다. 현재 아리랑 FM은 제주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인터넷을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www.arirang.co.kr). 정 동문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내년에 지상파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의 주파수를 확보해 전국으로 방송을 확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DMB란 정보를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디지털 방식으로 전송하는 방식인데 개인용 휴대폰이나 PDA, 차량용 단말기를 통해 소리와 동영상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이 외국인 관광객 1천 만 명 시대를 대대적으로 선언함에 따라 그것의 실행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DMB방식이 도입되면 아리랑 FM라디오는 새로운 관광한국의 시대를 열어갈 매우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문화유적을 관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을 것인지, 교통사정은 어떠한지를 알려서 관광에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외국인 방문객들을 위한 배려가 관광의 기본이라고 말하는 정 동문은 한국의 전통음식을 아시아 각 나라들과 비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고 전파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지난 1999년에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던 'Asian Cuisine Tour' 프로그램이 대표적인 예다.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만큼 유럽이나 아메리카에 아시아적 가치를 담은 문화를 소개하자는 발상에서 기획된 이 프로그램은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몇 년 전부터 동남아시아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이 국내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아리랑 TV 위성을 통해 소개하면서 시작됐다는 사실 또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유익한 중독' 방송은 생산적인 마약 "제가 하는 일이 팀원들보다 먼저 출근해서 팀원들의 일이 끝나야 모든 일정이 끝나는 고달픈 직책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좋은 반응을 얻을 때의 쾌락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모를 것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마약이지요. 제가 하고 싶어서 즐기고 중독되는 마약 말입니다." 스스로도 즐겁고, 상대방도 즐거운 생산적인 마약이 방송이라고 말하는 정 동문은 후배들에게 시간이 늦어지더라도 자신이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기를 당부한다. '당장 할 수 없다'라는 두려움 때문에 시작도 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것이 인생에 있어 훨씬 더 큰 손실이라는 것이다. 비록 먼 길을 돌아서 왔지만 이제야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산다는 만족감에 하루의 피로를 잊는다는 정 동문. 그와 함께 즐거운 일상을 향한 자신감의 볼륨을 조금만 더 높여보자. 학력 및 약력 정재신 동문은 1988년 본교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 진학해 1993년 '서울올림픽 성화봉송단 연구'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뉴욕공과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기법(Communication Arts)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이듬해까지 미국 캔사스에 위치한 LKBY TV 방송국 카메라 AD, KTCC 방송국 DJ, 뉴욕의 LI NEWS TONIGHT 방송국 카메라 AD 등으로 재직했다. 1996년 10월, 아리랑 TV 창립멤버로 입국해 제작국 보도팀 뉴스 프로듀서, 편성팀 프로듀서를 거쳐 현재 아리랑 FM 제작보도팀장을 맡고 있다.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09 08

[교수]`무대에 선 슈바이처` 연극 `물질적 남자`의 소아과 이항 교수

두 가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가지 분야에서 성공하기도 힘든 세상에서 이런 사람들은 가끔 평범한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러나 소아혈액 종약학의 권위자이면서 연극계의 원로로 인정받는 이 항 교수(의대 소아과)는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순수함으로 가득한 미소를 안겨줬다. 연극 "물질적 남자"의 공연을 하루 앞두고 밤늦도록 연습을 계속하고 있는 그를 만나보았다. - 연극에 대한 인연이 오래 된 것으로 아는데.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국립 극장 등에서 많은 연극을 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연극은 나에게 예술이기보다는 하나의 단순한 경험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 경험이 반복될수록 나는 그것에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중학교에 입학했고, 연극반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엑스트라로 첫 무대에 오르고,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 1년에 한 번 정도 공연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주연은 아니었지만 비중 있는 역할을 맞았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극에 천재적이었던 선배가 사고로 죽고, 그 가족들이 그를 기리는 상(건기상)을 만들면서 연기 부문의 금상을 수상하게 되고, 그 후부터는 주역을 많이 했다. 의대에 진학한 후, 본과 1학년 때 선배들과 연극반을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공연을 해 나갔다. - 본격적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언제부터인가? 1984년에 의극회(의사연극회)를 결성하고 첫 작품으로 'Old Boys'라는 작품을 공연한다. 나의 연극 인생은 40대였던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1991년에 고등학교 연극반 선후배들과 함께 '화동연우회'를 결성하면서 좀 더 본격적인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이 모임에서는 주로 사회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시사성 있는 작품을 많이 공연했다. 이 중 제이슨 밀러의 작품인 챔피언의 시절'은 미국 사회의 부패를 그린 작품으로 나는 이 연극에서 총 제작을 맡기도 했다. 저변 확대를 위해 가족 연극을 하기도 했고, 어쨌든 주로 기획과 연출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이번 작품 '물질적 남자'와 배역에 대해 소개해 달라. '물질적 남자'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시인 황지우 선생의 내용에 연출가인 윤정섭 교수의 스타일이 더해져 깊이가 있으면서도 환타지적인 요소가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작품에서 내가 맞은 역할은 시공간을 넘나들면서 백화점 지하에 매몰된 남자를 하늘로 이끄는 '노인'이다. 처음에는 내 역할에 젊은 배우를 기용해서 공연 연습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작가와 연출가가 나에게 꼭 맞는 역이 있다는 말을 했다. 전문배우가 아니라는 두려움에 망설이다가 연극의 성공을 비는 고사에 갔었는데, 그 제문에 내 이름이 이미 올라가 있더라. 그리고 연습을 시작했다. 서울 토박이인 나에게는 전라도 사투리의 자유로운 구사를 위해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 이번 작품에 굳이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이번 연극을 선택한 이유는 작가와 연출가의 칭찬 섞인 설득도 있었지만, 그 내용이 특히 끌렸다. 삼풍백화점 원혼들에 관한 이야기가 내가 지금껏 고치지 못하고 하늘로 떠나보낸 어린이 환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의미하는 '붕괴'가 사회 전반, 의료 제도의 붕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 공연은 나의 환자였던 아이들과 붕괴 사고로 죽은 원혼들과, 관객을 비롯한 살아있는 사람들 즉 모두를 위한 제사인 것이다. 나는 이번 역할을 의사와 동일시한다. 매몰된 남자를 깨닫게 하고 하늘로 이끄는 동양철학이 반영된 역할인 것이다. 이러한 의미가 이 작품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작품성 높은 작품에 참여해 정말 기쁘다. - 의사이면서 동시에 연극인의 삶을 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나에게 연극은 취미이다. 나는 연극이 사랑을 받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반면 의사는 사랑을 주어야 하는 사람이다. 의사로써의 나에게는 에너지의 원천이 바로 연극인 것이다. 나는 연극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연극 때문에 내 직업에 소홀하다는 말을 듣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나는 전문 연극인은 아니다. 나는 매니아적인 면이 강한 프로 관객이다. 고대의 제사장이 제사와 치유와 행위를 동시에 수행했듯 나는 의술과 연극을 떨어져서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인 내게는 연극이 꼭 필요하다. 내 환자들은 소아암 백혈병에 걸린 아이들이다. 과거에는 진단을 받은 아이들 중, 절반 정도가 돈이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던 중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작할 때 많은 참여를 할 수 있었고, 그것을 통해 내 환자들을 많이 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죽는 아이들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마치 내 앞에서 죽는 아이들의 혼이 모두 나를 지나가는 것 같다. 그것이 이번 연극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현재는 의사로서의 마무리에 집중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연극인으로서의 생활을 고민 중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문화 활동이 매우 중요하므로 좋은 연극이 많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기여할 수 있다면 어떠한 역할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현재 다양한 연극에서 자문 등의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은퇴 후에 아동극에 관여하게 될 듯 하다. 기회만 된다면 연극 어느 분야에서라도 함께 하고 싶다. 연극과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좋아.' 사진 : 노시태 학생기자 nst777@ihanyang.ac.kr

2003-09 01

[교수]`에밀레종의 비밀찾기` `천년의 소리` 극작한 국문과 박상천 교수

엄마를 찾는 아이의 슬픈 목소리, 에밀레. 신라 혜공왕은 어지러운 나라를 구하기 위한 신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나 계속 실패만 거듭한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꿈속에서 비책을 듣고 때묻지 않은 어린 아이를 쇳물 속에 넣는다. 천상의 소리를 가진 에밀레종은 이렇게 탄생된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물론이거니와 삼국유사에도 정작 이와 같은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뭇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는 에밀레 설화. 정말 에밀레종에는 어린아이의 영혼이 녹아 숨쉬고 있는 것일까? 2003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주제 행사 중 하나인 '에밀레-천년의 소리' 극작을 맡은 박상천(국제문화대·국문) 교수를 만나 그 답을 물어보았다. -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어떤 행사인가? 여러 나라의 공연 예술을 보고 즐기면서 세계 문화를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축제다. 전통문화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경주에서 열리는 행사이기에 더 뜻깊다. 백제의 도읍이었던 부여나 공주에 비해 경주에는 고도의 문화유산이 잘 보존돼 있다. 또한 고구려의 도읍지에는 갈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세계문화엑스포가 경주에서 열리는 이유는 여기 있다. 문화유적이 많은 신라의 도읍지 경주에서 그 옛날에 번창하던 문화의 기운을 느껴보자는 것이다. - 기존의 연극과 이번 행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이를 비롯한 일반관람객들도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극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전문적인 공연보다는 여러 사람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여기에는 연출가의 역할이 컸다. 실제로 공연을 보고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소리, 정가 등 한국전통음악과 현대음악에 어루러진 무대. 그 위에 벌어지는 택견과 선무도의 화려한 군무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공연 후에 쏟아지는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 주로 시를 써왔다고 들었다. 시를 쓰는 것과 극본을 쓰는 것은 무척 다를 것 같은데. 그렇다. 글을 쓴다는 사실은 같지만, 시를 쓰다가 극본을 쓰려니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느꼈던 적이 있다. 대사 처리나 장면 전환을 고려할 때 종종 난감했다. 노래처럼 할 수 있는 대사를 쓰기 위해 고심했다. 그래서 합창 형식으로 대사를 꾸미기도 했다. 지난 8개월 동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몇 번씩 다시 읽으면서 극본 쓰기에 열중했다. 역사적 사실은 연기자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해설자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다. - 에밀레종에 얽힌 설화를 다루게 된 동기가 있는가? 예전부터 그 설화에 등장하는 어린 아이의 사실성에 의문을 가져왔다. 신라 경덕왕 때 하늘에 해가 두 개 나타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월명사가 도솔가를 지어 부르자 해가 사라졌다. 월명사의 공을 기려 왕이 차와 염주를 상으로 내리니 동자가 그 것을 받아 들고는 탑 속으로 숨어 들어갔단다. 에밀레종에 녹아있다는 어린아이도 동자의 형상을 한 미륵이 아닐까? 여기서부터는 내 상상이다. 상상을 통해서라도 에밀레종에 숨쉬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다. - '에밀레-천년의 소리'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가?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부터 경덕왕, 혜공왕에 이르기까지 신라는 혼란의 도가니였다. 그 사이 무려 일곱 차례에 걸쳐 반란이 일어났다. 어지러웠던 이 때를 '에밀레-천년의 소리'의 배경으로 삼았다. 깊어지는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거듭되는 모반과 신라가요를 통해 전해지는 설화가 더해져 이야기가 전개된다. 천마의 꿈을 신라, 천년의 소리에 실어보고자 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9 01

[학생]"선생님이 아닌 형, 오빠로 불리는 게 더 좋아요"

'제게는 또 다른 삶의 에너지 충전소입니다.' 서울의 하늘 밑 그 첫 동네, 서울 종로구 창신 2동. 서울 시내와는 사뭇 다른 거리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야 하는 높다란 언덕길에 오밀조밀 붙어있는 구멍가게, 지하실에서 들려오는 미싱소리, 좁은 골목길을 곡예처럼 누비는 오토바이의 굉음, 공부방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골목 전체가 시끌벅적하지만 이곳에서는 또 다른 꿈이 커가고 있다. 매주 월요일 오후, 오현택(공대·전전컴4) 군은 창신 2동의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청암사회교육원을 찾는다. 청암사회교육원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부모의 교육에서 방치돼 있는 초·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암공부방을 운영한다. 오 군은 순수하게 대학생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청암공부방의 한 일원이다. "가장 힘든 거요? 한여름에 삐질삐질 땀 흘리면서 저 높다란 언덕을 오르는 일이 가장 힘들죠." '가장 힘들다'는 언덕을 함께 오르면서 왜 많고 많은 사회봉사 중에서 공부방을 택했냐고 물었더니 야학을 해보고 싶었던 마음이 남아있기 때문이란다. "지난 겨울방학 때 친구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학창시절 선생님을 하겠다는 꿈과 야학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바쁘지만 쉽게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학생들을 가르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찾은 청암공부방을 찾은 오 군이지만, 학생들의 따뜻한 환영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현관에서부터 처음 보는 선생님에게 '누구니'라고 묻는다. 문제를 풀다가 틀려도 무조건 '선생님 탓'이다. "선생님, 공부하기 싫어요. 오늘은 공부하지 말고 피씨방 가요. 선생님 때문이잖아요"라고 허공에 빈 주먹질을 해댄다. 이옥현 청암사회교육원 사무국장에 따르면 이곳에 오는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저소득층 맞벌이 부부란다. 이 국장은 "부모의 보살핌과는 전혀 동떨어져 비디오방, 오락실 등 퇴폐문화에 방치된 채 자라서 아이들은 정에 몹시 굶주려 있는 실정이다"고 말했다. 오 군은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특히 정말 버릇없이 구는 한 아이가 있어요. 선생님이든 누구든 간에 말도 심하게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때리죠. 가끔은 정말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보통 아이들과는 다르게 커야만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이제는 선생님이 아니라 함께 뒹굴며 놀아주는 형, 오빠로 다가간다는 오 군. 비록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사람을 경계하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이 쌓아놓은 마음의 담장을 허무는 것은 더 많은 두드림에 있음을 오 군은 알고 있다. 풍선을 터뜨리며 아이들에게 먼저 장난을 치기 시작하는 오 군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비친다. "영어 단어 하나, 수학 문제 하나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저는 이곳에 휴식을 취하러 와요. 봉사한다는 생각보다 오히려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가죠. 함께 지내는 동안 저는 아이들에게서 순수의 에너지를 얻고 또 아이들은 제게서 다른 무언가를 얻어가겠죠." 오 군과 함께 힘겨운 언덕길을 오르며 참된 사랑은 기쁨과 충만보다 때로는 끊임없는 고통과 인내를 통해 얻어지는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2003-08 22

[교수]`행복한 데시벨을 울려라`-공과대학 건축공학부 전진용 교수

도심과 전원을 막론하고 일상의 소음에 노출된 현대인들은 언제부터인가 조용한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에도 문제는 있다. 조용하다고 해서 아무런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곳이라면 과연 그 곳에서의 삶은 행복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을 가장 행복하게 할 '정적'과 '소음'은 어떤 정도여야 하는가? 국내 음향건축의 개척자로 불리는 건축학부 전진용 교수가 말하는 인간을 행복하게 할 데시벨(dB)은 과연 얼마일까? 인간을 행복하게 할 '데시벨'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우리나라 국민들도 점점 삶의 질에 대한 적극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소음을 공해로 인식하고 인근 공사장의 사업자에게 피해 보상을 요구한다거나, 아파트 입주자가 방음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건축주를 고소했다는 가십을 언론지상에서 종종 발견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선천적 욕구와 더불어 미디어의 발달과 해외 견문의 기회를 통해 유럽 혹은 북미 선진국의 모습을 접하며 생기는 상대적인 후천적 욕구도 한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의 현실은 아직 시민들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듯 하다. "우리나라는 아직 소음에 대한 법규가 미비합니다. 미국의 예만 보더라도 층간소음을 비롯한 여러 가지 규정이 이미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와 관련된 제반 법규도 없는 상태이고 80년대 이용하던 건축 기술을 아직도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내년부터는 아파트 층간소음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마 이것을 시작으로 많은 것이 바뀌리라고 생각합니다." 주거환경에 있어서 소음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가능하게 된 것은 단연 '감성공학'의 발달에 힘입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감성공학(Sensibility Ergonomics)은 현재까지 인간이 각종 제품이나 주변 환경에 대해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인 감각 및 정보에 대해 가지게 되는 복합적인 감정을 계량적으로 측정, 분석하는 학문이다. 전 교수는 이 같은 감성공학의 발달로 행복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도 그 만큼 섬세해질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소음에 대한 만족도 레벨을 측정하여 감성적인 한계치를 연구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사람은 신체적 특성상 8자 걸음으로 걷기 때문에 발뒤꿈치가 먼저 바닥에 닿게 되거든요. 이것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음에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이들을 대부분 자유롭게 하기 때문에 어린 아이들이 만드는 소음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생활소음에서 허용한도를 넘어서지 않는 범위를 찾아내 인간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음악과 도예의 만남, 밀알 음악당 전 교수가 털어놓는 건축음향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전 교수가 설계를 맡아 명성을 얻은 서울 강남의 밀알 음악당은 원래 일본 아사이신문사에 있는 콘서트홀을 기본 모델로 한 것이다. 원래는 폭 16미터, 길이 25미터, 천장 높이 12미터에 사이드발코니가 있는 홀로 설계됐지만 시공 중 단단한 암반을 만나 불가피하게 설계 변경을 하게 됐다고. 그 결과 천장은 8.5미터로 낮아졌으며, 발코니 층은 없어졌다. 좌·우 측면에 있어야할 발코니 층이 없어지게 됨으로서 음악당은 음향적 공간감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이때 전 교수는 위기를 극복할 답을 '도자기'에서 찾았다. "세라믹 확산체가 그 해답이었습니다. 국제표준화기구(ISO)의 연구위원으로 확산계수의 측정방법 개발에 참여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ISO의 워킹그룹은 전 세계 음향학자들의 모임이며 재료 및 확산체의 형상개발이 모임의 목적인데 이 과학적 방법의 개발이 없었더라면 확산체를 설계해도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세라믹은 음향의 난반사(확산반사)에 가장 좋은 효과를 내는 이상적 소재이다. 하지만 도자기가 지니고 있는 조형의 어려움이 그 동안 세라믹을 음악당의 설계에 사용할 수 없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전 교수는 세라믹 조형을 위한 전문가를 백방으로 수소문했고 결국 중국의 도예가 주낙경씨가 이 일을 맡았다. "솔직히 주낙경(朱樂耕)씨가 더 고생했죠. 처음에는 면이 안으로 오목하게 들어간 것으로 계획되었으나 오목한 면은 소리를 멀리 반사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향재료로는 적합하지 못했습니다. 볼록한 형태가 되어야 했던 거죠. 실패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것이라 더 애착이 갑니다. 밀알 음악당은 이 측정방법의 개발 이후 인위적인 확산체를 세계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세웠습니다." 비록 성공적으로 밀알 음악당을 건축했음에도 불구하고 전 교수는 우리나라에 아직 우리의 소리인 국악을 연주할 수 있는 전문 음악당이 음향설계를 통해 건립되지 않았다는데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는 이 사실에 대해 음향 환경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또한 우리나라 국민으로서도 부끄럽다는 고백을 감추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밀알 음악당과 같은 멋진 콘서트 홀을 설계할 수 있게된 계기일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소리인 국악을 연주하기에 적합한 음악당을 설계할 것입니다. 국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감상하러 오는 사람들이나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국악전용 콘서트 홀을 언젠가는 꼭 만들 것입니다. 아직도 전통음악이 어떤 환경에서 연주되어야 최선인지도 밝히지 못했습니다. 일단 국악이 연주되기에 가장 적합한 조건을 찾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인간을 위한 건축 전 교수는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그대로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따라서 건축을 하는 사람들 역시 누구나 그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이는 각자의 건축물을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자신만의 건축 철학이란 무엇일까? "인간을 위한, 인간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제 꿈입니다. 외국에서는 인간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게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고 있는 실정인데, 우리나라는 아직 그런 부분이 부족한 것이 아쉽습니다. 어쩌면 이런 우리나라의 현실이 저를 더욱 분발하게 하는 이유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인도의 보도블럭 높이가 맞지 않아도 그냥 지나치지만 서양의 경우는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혹시 보행자가 보도 블록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런 조그만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란 것도 사실이거든요." 대학을 졸업한 뒤 대림건설에서 방음벽 전문가로 7년여의 직장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던 전 교수는 오늘날 자신의 건축 철학을 잉태시킨 스승으로 자신의 지도교수를 꼽는다. 삶 속에 남을 위한 배려와 희생 정신이 꼼꼼히 배어나던 당시 스승의 모습이 석사과정을 마친 후 호주에서의 편안한 이민생활을 꿈꾸던 자신을 학문의 길로 인도하게 했다고. "그 교수님은 항상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격을 소유하신 분이었는데 그 분과 같이 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석사과정을 마친 이후로도 계속 학업에 열중하게 됐죠. 솔직히 말해서 꼭 음향환경에 대해서 계속 공부하겠다는 계획은 없었습니다. 항상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현실에 충실하니까 길이 열리더군요." 학력 및 약력 전진용 교수는 1982년 공과대학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University of Sydney에서 석 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음향학회와 미국 INCE(Institute of Noise Control Engineer) 정회원으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G7과제 감성공학(생활소음에 대한 감성적 평가모델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다. 최근 서울 강남에 위치한 밀알 음악당 음향설계를 성공적으로 이뤄내 세계 학회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8 22

[교수]`취업복덕방을 가다` 안산 취업센터 채수석 팀장

'취업대란'이나 '단군이래 최대의 불황'이니 하는 말들은 이제 경기를 나타내는 상투어가 되어 버렸다. 밝지 않은 경제상황과 어려운 취업여건이 연일 일간지 사회면을 장식하는 오늘, 반드시 해법은 있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그가 바로 안산캠퍼스 채수석 취업지원팀장. 대학이 '예비 사회인 양성소'가 아닌 '예비 실업자 양성소'라는 불명예를 떨쳐버리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채 팀장을 만나 어려운 시대 불황의 파도를 해쳐나갈 수 '취업의 해법'을 들어 보았다. - 안산 취업센터의 활동을 소개한다면? 안산 취업센터의 활동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취업교육·취업홍보·취업활성화가 그것이다. 일단 취업교육을 위해 취업특강과 취업 인턴십, 넷토익 등의 프로그램을 개설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자기 관리를 통해 조기에 진로를 결정하고 설계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개설되었다. 또한 학생들의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컨설팅하고 취업서류 준비를 돕는 '취업의 창'과 여름방학 중 운영되는 실전취업강좌, '취업스쿨' 등은 적극적으로 취업을 돕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덧붙여 학생과 기업을 실질적으로 이어주는 취업홍보활동도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 중 하나이다. 이를 위해서 정기적으로 기업과 인재를 이어주는 '한양채용박람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학생들에게도 채용정보와 기업정보를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적극적인 홍보방안으로 캠퍼스 이미지 개선을 위해 기업체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한 웹진 발송과 취업동아리 지원도 진행 중이다. - 많은 활동 중에서 취업센터가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취업센터가 진행하는 사업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업을 꼽는다면 매년 상반기에 개최하는 '이력서· 자기소개서 경진대회'와 '한양채용박람회'를 들 수 있다. 5월에 열리는 '이력서·자기소개서 경진대회'는 학생들의 취업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마련되었다. 10월에 열리며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는 '한양채용박람회'는 취업센터에서 직접 기업체를 섭외해서 개최하는 안산캠퍼스 학생들만을 위한 행사이다. 여기서 본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면접 채용도 이루어진다. 취업 환경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기업·우량중소기업·벤처기업을 망라한 60여 개 기업들이 참여하는 큰 행사이다. 안산·시화공단을 비롯하여 안양과 수원권역에는 약 일만여 개 정도의 기업체가 있다. 이 중에서 일단 일차적인 목표로 삼고있는 우량 기업은 약 5백여 개 정도이다. 한 해 실제 구직 희망 학생이 약 1천여 명 정도인 것을 감안한다면 취업 여건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 취업센터 업무를 보면서 어려운 점은? 아직은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분교'라는 이름이 주는 핸디캡도 존재한다. 이것은 아직까지도 '한양대학교' 라고 하면 서울캠퍼스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에서 알 수 있다. 하지만 해가 다르게 안산캠퍼스의 지명도와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 7년 째 취업센터 업무를 보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취업센터의 모습은 '복덕방'과 같은 곳이다. 좋은 학생들을 잘 홍보해서 기업체에 소개하고 구직활동을 돕는 것이 취업센터가 할 일이다. 이런 점에서 아쉬운 부분은 저학년 때부터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취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학생들이 적다는 것이다. 일단 취업에 필요한 요건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적극성'이다. 때로는 능력은 있는데 적극성이 부족해 입사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 취업관련 교과목도 개설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존에 진행했던 취업 특강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 정규 커리큘럼에 '여성과 취업', '비즈니스 매너' 두 강좌를 개설했다. 특히 '비즈니스 매너'에서 일정 학점 이상을 취득한 경우 총장 명의의 수료증을 발급하고 있다. 이 과목을 수료한 학생이 기업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매너 교육을 통한 '예절을 갖춘 인재'임을 학교가 증명하는 것이다. -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가장 부탁하고 싶은 점은 '취업센터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와서, 직원들을 귀찮게 하라'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적극성'은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취업의 문을 여는 가장 힘센 무기이다. 다음으로 항상 취업정보를 민감하게 수집하고 발빠르게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무리 좁은 취업문이지만 분명 '틈새'는 있게 마련이다. 우리 취업센터에서는 이미 취업에 성공한 약 1만 2천명 정도의 자료를 DB화하여 구축해놓고 있다. 해당 기업에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을 이미 취업에 성공한 선배들과 1대1 방식으로 연결해 줄 수 있는 인프라 또한 구축해 놓고 있다. 250여 개 기업의 면접에 대한 심층적인 자료를 수집하여 만든 자료집도 구비하고 있다. 필요한 학생들이 언제나 활용할 수 있도록 취업센터를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 취업을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적극성'이라는 사실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8 15

[학생]`열다섯살 새내기` 수시 최연소 합격자 언어문학부 강예원양

지난 2일 발표된 수시 1학기 전형 결과 542명의 새로운 젊은 사자가 탄생했다. 이들 중에는 두 쌍의 쌍둥이 형제들과 만 44세의 벤처 사업가 등 화제를 불러일으킨 인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장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합격자는 바로 강예원 양. 만 15세의 나이로 언어문학부에 합격한 강 양을 만난 것은 우연히도 그녀의 열 다섯 번째 생일날이었다. 2004학년도 수시 1학기 전형에서 '최연소' 합격의 영예를 안은 강 양을 만나 소감과 포부를 들어보았다. - 최연소 합격을 축하한다. 합격을 예상했는가? 이상하게도 시험을 치르는 날에 기분이 좋았다. 전공적성검사에서도 긴장감은 없었고 심층면접 당일에도 대기실에서 웃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나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합격은 심층면접을 무사히 치른 후 발표 전날부터 자신이 생겨 예상하고 있었다. - 본교에 지원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보다 공부뿐만 아니라 인성 위주의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좋았다. 사회봉사를 가장 활발하게 지원하고 활동하는 대학으로 알고 있다. 또한 지원자의 입장에서 항상 뛰어난 실력을 가졌으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 오늘 직접 와보니 캠퍼스도 예뻐서 합격한 것이 더욱 기쁘다.(웃음) - 세계화 전형으로 합격했는데 어떤 분야의 특기자로 지원했는가? 중국어 분야로 지원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가족이 중국에서 생활했었고 그를 통해 중국어와 친해졌다. 이후 중국어가 재미있었고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 꾸준히 공부해왔다. 지원한 동기 역시 나의 가장 큰 장점을 더 키워나가고 싶어서였다. 아직 회화 실력이 부족해 걱정이지만 열심히 노력하겠다. - 만 15세인데 정규 교육과정을 어떻게 마쳤나?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로 통과했다. 어렸을 때 중국에서 돌아온 후 아버지가 나에게 학교를 다니며 공부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선택권을 주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남들처럼 중·고등학교를 마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운 것 같다. - 남들과 다른 길을 걸어왔기에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주위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 물론 힘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 때문에 참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아마 이번 입시에 실패했더라도 또 도전했을 것이다.(웃음) 더불어 결정의 순간에 늘 조언해 주시고 힘든 시기에 힘이 되어주신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합격 이후 입학 전까지 특별히 준비하거나 활동하는 것이 있다면? 현재로선 따로 시작하거나 준비하는 일은 없다. 평소에 준비해오던 중국어 능력 평가시험(HSK)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2년째 '나눔의 모임'이란 단체에서 해오던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보육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일상처럼 느껴지는 보람된 일이다. - 이제 04학번이 될텐데 자신만의 대학생활 계획이 있다면? 우선 중국어로 꾸미는 원어연극에 참여해 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어와 연극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니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세계일주를 해보고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한비야 씨를 좋아하고 존경하는데 나 역시 그 분처럼 자유롭게 세계의 구석구석을 다녀보고 싶다. 물론 한양대에 들어온 만큼 사회봉사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할 것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8 08

[교수]`두드리면 열린다` 서울 취업센터 최기원 팀장

최근 주요 일간지에서 고학력 취업대란에 관한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고 있다. 기업의 채용규모가 점점 줄어드는 반면 구직자들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는 현실이다. 정부가 궁여지책으로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는 등 일자리 창출에 힘을 기울이고 있지만 고용환경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분위기다. '졸업이 곧 실직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는 상황에서 최기원(학생처·취업센터) 팀장을 만나 열악한 취업환경을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들어보았다. - 사상최악의 취업환경이란 말이 많다. 실제로 어떠한가. 일반적으로는 사상 최악이라고 표현하며 많이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채용이 시작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크게 피부로 느끼는 것은 적다. 그러나 하반기 채용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어두운 예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본교는 공대를 위시로 한 우수한 인력이 많고 기업에서 끊임없이 학생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그나마 영향을 덜 받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여학생과 인문사회계열 학생의 경우 추천서를 많이 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시나 상시채용이 아닌 인터넷 채용에 응시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 - 취업센터가 문을 연지 5년째다. 그동안의 활동을 소개한다면. 처음에는 여러 취업특강 등 정보제공 위주의 활동을 했지만 최근에는 기업을 대상으로 본교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센터를 일종의 마케팅 부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업 인사팀과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며 '한양대가 추천하는 학생들은 이직률이 적고, 일도 잘 한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또한 채용을 의뢰하는 기업에 장소를 무료로 제공하는 등 최대한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다른 대학의 경우 사용료를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려대, 이화여대, 성균관대와 연합해 기업초청 세미나를 하고 몇 개 대학과 사이트를 공유해서 인터넷 공동 취업박람회를 가지기도 했다. - 본교 취업센터만의 장점이 있다면? 타 대학과 달리 업무가 분권화 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볼 수 있겠다. 타대는 취업교과목 운영, 행사 등 대부분 업무를 일괄처리하고 있지만 우리는 기업과의 유대 관계에 집중하는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여학생 관련 취업 업무의 일정 부분은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가 맡고 있다. 취업관련 교과목 개설은 각 단대별로 운영되고 있다. 이렇듯 우리학교는 취업에 관해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이 미흡하지만 마케팅이라는 한 분야를 특화시킬 수 있다는 장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 학생들이 취업센터 활동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학생들이 실제로 느끼는 커리큘럼 개발이나 면접 잘 보는 요령 등의 강연을 하는 것보다 기업 인사팀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며 한양대의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분권화된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한계가 많기 때문에 향후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와 학생생활상담연구소와 연계해 공동 협의회를 구성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다. - 취업 업무를 보며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일반적으로 학점과 영어점수를 일정 정도 갖추고 난 뒤에 취업센터를 찾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 집착해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D약품의 경우 대기업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조건을 제시하고 학생들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지원자가 없어서 채용을 못한 적이 있다. 이렇게 되다보니 비슷한 수준의 기업들이 추천서를 보내지 않으려 할 뿐더러 거꾸로 학생들도 그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특히 유의해야 하는 부분은? 학생들이 학점과 영어점수에 너무 신경을 쓰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면접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면접은 합격과 불합격을 가르는 중요한 과정이다. 요즘은 특히 인성을 많이 중요시하기 때문에 더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면접과 동시에 이력서 작성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한다.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서 면접관이 관심을 가지고 볼 만큼 인상 깊은 이력서를 작성해야 한다. 취업하려는 회사에서 펼칠 수 있는 자신만의 비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취업센터에서 일단 추천서를 받은 후 면접과 이력서에 열중하는 것이 가장 좋은 환경에서 취업할 수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 학생들에게 당부할 말이 있다면. 앞으로 고학력 실업자들의 취업이 점점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가 취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취업센터 홈페이지에는 취업에 관한 갖가지 정보가 많다. 게시판에서 자주하는 질문(Q&A)을 참고한 후에 취업에 관한 궁금증을 물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인터넷포털 사이트와 연계해 취업과 관련된 자격증이 어떤 것이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축 중이다. 또한 인터넷으로 토익실력을 쌓고 모의시험도 볼 수 있는 넷토익(net-toeic) 서비스도 준비 중에 있다. 취업센터의 문은 늘 열려있다.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8 01

[교수]`몸은 하나, 마음은 둘` 샴쌍둥이 수술의 대가 소아외과 정풍만 교수

최근 싱가포르 래플즈 의료원에서 분리수술에 성공한 사랑이와 지혜에게 세간의 따뜻한 애정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성공의 이면에는 실패의 아픔도 있는 법. 이란의 샴쌍둥이 비자니 자매가 분리수술 실패로 사망했다는 최근의 보도에 많은 이들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각각 기자와 변호사로서의 독립된 삶을 간절히 바래왔기에 전문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술을 감행했던 두 자매. 지난 1990년 국내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해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소아외과 정풍만 교수를 만나 샴쌍둥이의 애환을 들어 보았다. - 최근 사랑과 지혜 자매가 화제다. 분리수술에 있어서 국내의 수준은 어떠한가? 사실 샴쌍둥이 분리수술 능력을 포함해 우리나라 임상의학은 상당한 수준이다. 또한 수술비도 싱가포르에 견주어도 비싼 편이 아니다. 그들의 부모가 싱가포르를 택한 데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우리 의료원만 해도 4건, 다른 대학병원에서 3건을 성공한 바 있으며 그들의 상태는 결코 심각한 경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 했어도 어렵지 않은 수술이었다. - 국내 최초로 샴쌍둥이 분리 수술을 성공한 바 있는데. 가슴에서 배꼽까지 약 15센티미터 가량 붙은 일란성 남자 쌍둥이였다. 생후 57일째였는데 심막이 붙은 상태로, 횡경막과 간이 1개였다. 당시에는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관한 기록이 흔치 않아 수술 준비에 자료를 찾기가 힘들었다. 다행히 성공적으로 수술이 끝나 두 명 모두 건강한 상태로 잘 지내고 있다. 얼마 전, 한 방송사의 주선으로 내게 찾아오기도 했다. - 우리나라 샴쌍둥이 출산 비율은 어느 정도인가? 정확한 비율은 알 수 없다. 선진국의 경우 산모가 임신을 해 병원에 가면 그 순간부터 출산까지 기록이 되고, 사산까지도 기록돼 통계자료로 남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확한 기록이 보존되는 체계가 아니다. 또 많은 산모들이 초음파 검진을 통해 태아가 기형임을 알면 인공유산을 시켜버리는데 이 때문에 소아외과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출산을 했을 경우에도 남의 시선을 두려워해 알리지 않는게 현실이다. - 샴쌍둥이 당사자들과 부모에겐 언론의 집중이 결코 달갑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이다. 우리 사회는 아직도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남들에게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방송에서 샴쌍둥이 분리수술을 받은 몇몇 아이들의 사진과 실명을 노출시킨 것은 참으로 지탄받아야 할 일이다. 샴쌍둥이들을 무조건 화제 삼아 그들의 사적인 정보를 떠벌리는 언론에 참으로 실망했다. - 샴쌍둥이와 같은 선천성 장애인들에 대한 정부 보조 수준은 어떤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사랑이와 지혜 자매를 위한 성금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시적인 성금 운동보다는 정부의 제도적인 정책 마련이 더욱 절실하다. 언론의 부추김으로 급조되는 성금보다는 정부가 그들의 출산부터 수술까지 지속적으로 보조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 보조 수준은 겨우 중간 수준이다. 장애아들에 대한 정부의 경제적인 보조가 생기면 좀 더 빨리 치료받아 완치 가능한 아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 소아외과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소아외과는 일반외과에서 시작됐으며 세계적으로 약 50년 전부터 독립적인 학문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일반외과에서 치료하다가 70년대 중반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돼 오늘에 이른다. 소아외과는 대부분 선천성 질환을 대상으로 하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서혜부탈장을 비롯해 항문폐색, 거대결장, 소아 악성종양과 외부 상처 등을 치료한다. 기형은 예측불허이며, 케이스가 너무나 다양하다. 따라서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해야하고 수술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은 방법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또 일반적으로 '외과'하면 찢고 잘라내는 파괴적인 의료행위를 떠올리지만, 소아외과는 기형을 고치고 결손 부위를 만들어주는 창조적 행위이기에 선택하게 됐다. - 어린 아이들을 수술하다보니 아픈 경험도 많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은 너무나 깨끗하다. 좋으면 좋다, 아프면 아프다 솔직히 말하고 가식이 없다. 그런 아이들이 기형으로 고통받는 것을 직접 대할 때에는 어서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러나 다운증후군 등 유전적 기형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런 아이를 키우다가 너무 힘이 들어서인지 간혹 인공유산을 시키지 않았음을 후회하는 부모를 목격할 때 너무나 안타깝다.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1977년부터 지금까지 약 1만 9백여 명의 선천성 소아질환자들을 치료해왔다. 이렇게 많은 케이스를 대하다 보니 자연히 경험과 그에 따른 노하우가 축적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산 경험들을 후배들에게 전해 주어 더 활발하고 완벽한 치료법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또 여건이 마련되는 대로 기형아에 대한 사회적, 국가적 경제 보조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사회운동을 적극 펼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