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336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03-07 29

[동문]"산업재해 사라지는 마지막 그 날까지"

'근골격계질환'을 아십니까? 근골격계 질환은 단순반복작업이나 무리한 작업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체적 질환을 통칭하는 말이다. 이 질환은 지난 1995년 한국통신 114 안내원들이 근골격계질환의 일종인 경견완장애로 산재인정을 받으면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동안 '근골격계질환'은 내가 남들보다 몸이 약해서 생기는 '당연한 병'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97년 IMF 한파는 '생산성 향상'이라는 미명 아래 산업인력의 더욱 높은 노동강도를 강요했고, 노동자들은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IMF 시절이 끝났다고 회자되는 2003년 오늘, 이 땅의 산업역군들은 '근골격계질환'이라는 IMF 후유증을 온 몸으로 앓고 있는 셈이다. 최근에서야 사회적 이슈가 된 근골격계질환을 일찍부터 주목하고 대책 마련에 앞장섰던 이가 있다. 원진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인 임상혁 동문(의학 91년졸)이 바로 그 주인공. 근골격계질환을 비롯한 각종 산재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임상혁 소장. 두 개의 전문의 자격증과 공학박사 학위를 지닌 그이지만 풍족한 삶을 마다하고, 노동자와 함께 하는 힘겨운 여정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노동자가 주인되는 원진녹색병원 그가 근무하고 있는 노동환경건강연구소는 원진녹색병원 부설 연구소이다. 1999년 원진녹색병원의 탄생과 함께 한 임 동문은 자신의 근무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는 병원에 대해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어진 병원"이라는 것과 병원의 탄생이 "보건운동 역사 속에서 큰 획을 그은 사건"이라는 것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원진녹색병원은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생명을 담보로 만들어진 병원입니다. 86년 시작되어 92년 후반까지 이어진 세 차례의 투쟁과 병원설립을 위한 투쟁까지 10년여 투쟁의 결과물인 거죠. 노동자 5백여명에 대한 보상금으로 원진녹색병원은 설립됐고, 노동자가 주인인 최초의 병원입니다." 이러한 배경은 자연스럽게 병원의 주인이 노동자라는 것, 그리고 노동자를 위한 병원이라는 의미를 갖게 했다. 실제로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건강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녹색병원은 대다수 병원들이 파업했던 의료분쟁 속에서 의료계의 정상진료를 실시해 자신들의 말이 공허하지 않음을 증명했다. 또한 지금도 단식투쟁이나 힘겨운 노동자들의 투쟁이 진행되는 곳에서 마다 의료봉사를 나온 그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연구와 진료는 의료원 아닌 현장에서 임 동문은 2년 전 연구소 내에 근골격계질환센터를 만들었다. IMF 이후 요구되는 노동량과 노동강도를 생각한다면 근골격계질환문제가 당연히 문제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센터가 노동자들을 자극해서일까, 아님 노동자들이 센터의 도움을 받아서일까. 최근 각 사업장에서는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노동자들의 집단요양 신청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있다. 2001년 울산 현대정공의 근골격계질환 노동자 71명이 집단으로 산재요양 신청 후 지금까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산재를 인정받은 곳은 대우조선을 포함한 20여 곳. 이러한 사업장의 일선에는 언제나 임상혁 동문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연구는 결코 연구소에 앉아서 진행되지 않는다. 그가 연구하는 곳은 부당한 노동환경을 가진 사업장이고, 그의 연구대상은 현장의 노동자들이다. 아직까지도 직업병은 사용자측이 쉽게 인정하지 않는 산재이다. 때문에 문제가 생긴 현장에서 자료를 모으고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그의 몫이다. '더딘 죽음'을 방치하지 말라 그는 노동자의 건강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노동자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이라 말한다. 지금까지 노동자와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까지도 자신들의 건강문제에 적극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하는 말이다.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지금까지 노동운동에 있어서도 제대로 취급되지 못했습니다. 최근에서야 이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 운동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도 미비한 실정입니다. 다치고 죽어야만 산재가 아닙니다. 서서히 몸이 죽어가는 환경을 알고도 방치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입니다." 그는 '노동환경의 문제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노동자들이고 해결방안을 알고 있는 것도 그들'이라고 말한다. 즉 노동자가 주체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과거 노동자의 건강문제는 외부에서 전문가들이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에 앞장서는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고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 임 동문의 확고한 신념이다. 산재는 '노사' 아닌 '노사정'의 문제 임 소장은 산재문제를 노사문제로 한정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산재 발생을 최소화하는 작업환경을 법적으로 규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사후 보상에 있어서도 산재보험을 통해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국내의 노동 환경은 산재가 아직도 '노사갈등 차원의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임 동문은 국가의 법적 조치와 함께, 사업주의 도덕성을 강조한다. '아무리 사회 안전망을 만든다고 할지라도 사업주의 의지가 없으면 산재가 줄어들 수 있는 환경은 어렵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런 이유로 그는 회사측의 배려와 함께 노동자나 노조가 참여하는 시스템을 강조한다. 산재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는 것에 중점을 둬야지 산재에 따른 보상은 미봉책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국가의 제도와 사측의 성의,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3박자를 이룰 때 비로소 산재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선진국의 많은 사례들이 잘 뒷받침하고 있다. 기술인 아닌 의료인이 되라 원진레이온 투쟁에 영향을 받아 노동자와 함께 하는 길을 선택한지 이제 10여 년. 동료의사들이 의료계에서 안정된 자리를 잡아나갈 나이에 그는 노동계의 거친 현장에 자리를 잡았다. 돈과 명예에 대한 꿈을 접고,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살아온 삶이 이루어낸 성과라면 성과다. 그런 그가 후배들을 위해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첫 번째 강조하고 싶은 것은 주체적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별다른 목표 없이 사람들 속에 묻혀 살지 말고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삶의 주인이 되라는 말이죠. 두 번째는 의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인데, 기술인이 아닌 의료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돈과 명예를 위한 기술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도면 충분합니다. 앞으로 졸업할 후배들은 물질과 명예를 추구하는 기술인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의료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는 앞으로의 소망에 대해 '지금의 연구소를 산재와 관련한 최고의 연구기관으로 만드는 것'이라 고백한다. 노동계에서는 최고로 인정을 받지만 전반적인 사회와 의료계에서는 아직까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임 동문의 불만이다. 모든 준비는 갖추어져 있는데, 함께 만들어갈 후배들이 부족하다며 임 동문은 허허로운 웃음을 짓는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의과대학 정원 축소 방침을 상기하며 '후배가 부족하다'는 그의 말이 소태처럼 씁쓸하게만 들린다. 학력 및 약력 임상혁 동문은 1991년 본교 의학과를 졸업했다. 한일병원에서 1994년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획득했고, 1999년 산업의학 전문의가 되었다. 올해 홍익대학교에서 인간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임 동문은 1999년 원진녹색병원 개원과 함께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으로 활동을 시작해 현재 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다. 임 동문은 노동건강연대 대표, 산재보험 공동대책위 위원과 같은 시민단체 활동에서부터 노동부 산하 직업병 심의위원회 위원과 산재보험 심사위원회 위원직까지 산업재해와 관련된 다수의 활동들에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7 29

[학생]세계가 주목한 `왼발` 유럽진출 추진하는 체대 김동현 선수

'그림 같은 왼발 슛! 골인!' 신장 1미터 85센티미터, 체중 80킬로그램의 육중한 체격을 가졌지만, 100미터를 12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로 날쌔게 축구장을 누비며 돌풍을 몰고 온 선수가 있다. 작년 아시안게임대표팀과 청소년대표팀의 수재민 돕기 자선경기에서 멋진 왼발 터닝슛을 날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김동현(체대·체육1) 선수가 바로 그 주인공. 올림픽대표로서 노련한 몸놀림과 강인한 체력으로 축구공과 함께 뛰어왔던 김 선수의 유럽 진출이 눈앞에 다가왔다. 실력 향상을 위해서라면 어디든지 갈 준비가 되어있다며 축구를 향한 열정을 불태우는 김동현 선수를 만나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송종국이 뛰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 입단을 희망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지금은 학교측으로부터 이적동의서를 받았을 뿐이다. 이적동의서를 받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를 보고 '김동현 페예노르트 간다'고 보도한 것 같다. 어떤 식으로 어떻게 활동할 것인가에 대한 긍정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실력 향상을 위해 배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갈 것이며, 그 곳이 축구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유럽이 되었으면 한다. - 축구장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자신의 가장 멋진 기술은 무엇인가? 왼발 슛을 멋지게 날릴 수 있다. 다른 선수들은 내가 왼발 슛을 쏠 때, 그 거리와 각도에서 슈팅이 가능하냐며 의아해한다. 작년 9월 아시안게임대표팀과의 수재민 돕기 자선경기에서 왼발 터닝슛으로 결승골을 뽑아 청소년 대표팀을 승리로 이끌었던 적이 있다. 그 때부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소위 '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 같다. - 언제 축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는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축구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책상에 앉아있기 보다는 밖에 나가 뛰어 노는 것을 좋아했다. 체격도 좋아서 초등학교 6학년 때 키가 165센티미터나 됐다. 체격이 좋고 운동 잘하는 내게 담임 선생님은 축구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말씀하셨다. 축구 선수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냥 뛰는 것보다는 공을 가지고 뛰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축구를 시작했다. 워낙에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축구 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도 다른 운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 지금은 올림픽대표가 됐지만, 과거 힘든 시간도 없지 않았을 텐데. 고등학교 1학년 때 경기 중 다리 부상을 입어 무척 힘들었다. 축구 밖에 없던 내게 선수 생활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단은 나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다시 축구를 하기 위해 열심히 재활 치료를 받았고, 6개월만에 축구장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축구공과 함께 열심히 뛴 끝에 작년 7월에 청소년국가대표에, 올해에는 올림픽대표로 선발됐다. - 향후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우선 오는 11월에 있을 세계 청소년 대회에서 멋진 성과를 거두고 싶다. 세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낸 선수의 군 복무 문제가 해결된 선례가 있다. 이번 대회를 통해 군 문제도 해결하고 싶다. 어디에서든지 살아남을 수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요즘에는 영어 과외도 받고 있다. 영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경기를 하기 위해 외국에 나갔을 때 편리한 점이 많다. 학교 다닐 때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서른 다섯 살까지만 원 없이 축구를 할 생각이다. 그 이후에는 공부를 더 해서 체육학과 교수가 되고 싶다. 축구 상품 마케팅과 같이 축구에 관련된 사업을 하고 싶기도 하다. 꼭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지금은 단지 축구에 집중할 뿐이다.

2003-07 22

[학생]"개인 우승보다 체조부의 단체우승이 더욱 기뻤습니다"

무더운 날씨 속에 찾은 체조부 연습실.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 마리 새처럼 링을 부여잡고 공중을 가르는 친구가 있다. 지난 6월 28일, 제30회 문화관광부장관기 겸 전국대학일반선수권대회에서 단체종합, 개인종합, 링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해 3관왕의 영예를 안은 체대 신섭 선수. 운이 좋았다며 연신 수줍은 미소를 짓는 그는 '내겐 너무도 가벼운 남자'다. 명실공히 한국체조의 새로운 유망주로 떠오른 그를 위클리한양이 만나보았다. - 큰 규모의 전국대회에서 3관왕에 올랐다. 칭찬은 많이 받았나? 원래 감독 선생님이나 코치선생님은 칭찬을 잘 안 해주신다. 좋으셔도 좋은 티를 우리 앞에서 드러내지 않으시고 미소만 지으셨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많이 기뻐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머니께서 많이 칭찬해주셨고, 특히 고등학교 은사님께서 매우 기뻐하셨다. 함께 체조부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은 내가 운이 좋아 3관왕에 오른 것이라며 축하 반, 놀림 반의 말들을 한다.(웃음) - 링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는데, 체조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종목은? 사실, 내가 가장 애착을 갖는 종목은 철봉이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 친구들이 비웃을 텐데, 이상하게도 철봉을 할 땐 운이 따르지 않는 것 같다. 연습할 때는 잘 되다가도 막상 경기에 나가면 시합운이 따르질 않아서 매번 안타깝다. 반면 링은 연습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는 종목이라서 주 종목이 된 느낌이다. - 체조부가 단체우승 2연패의 쾌거를 안았다. 분위기는 어떤가? 전체 열 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다보니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는 전적으로 정인근 감독님과 임재영 코치 선생님 덕분이다. 두 분께서는 늘 선수에게 의견을 물으신다. 일방적인 지도가 아닌 학생과의 활발한 의견 교류로 프로그램을 짜다보니 팀의 결과가 더욱 좋은 것 같다. 최근 가장 기뻤던 일은 2연패 달성 기념 상금으로 기숙사에 에어컨을 설치한 일이다. 그 동안 선풍기 한 대로 한 방에 여섯 명씩 살고 있었는데 이제 정말 살 것 같다.(웃음) - 체조가 다른 운동보다도 오히려 부상이 많을 수 있다고 들었다. 질문처럼 체조는 부상 위험이 결코 낮지 않은 운동이다. 모교 강원체고 체조부는 내가 재학 중이던 시절 모든 대회의 우승을 휩쓰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허리를 크게 다쳐 내가 학교의 기록에 오점을 남긴 아픔이 있다.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종목에서도 부상이 회복되질 않아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런 나 때문에 학교의 성적도 떨어지게 됐다. 전국체전이라는 큰 규모의 대회에서 학교에 기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있기도 했다. 지금이야 시간이 흘러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부상과 심리적 부담으로 너무 힘들었다. - 운동을 하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인근 감독님과 임재영 코치 선생님을 가장 존경한다. 정 감독님은 지도자로서 정말 존경하는 분이다. 운동을 잘 하는 사람이 꼭 잘 가르친다는 법은 없다. 공부도 자신은 잘 하지만 남에게는 잘 못 가르치는 사람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정 감독님은 학생의 부족한 점을 잘 파악하고 분석해 보완해주신다. 바로 이 점이 지도자로서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덕목일 것이다. 임 코치 선생님은 우리들을 많이 배려해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신다. 운동 지도자로서 매번 학생의 뜻을 존중해 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 후배 고준웅 선수가 앞서 본보에서 보도된 바 있는데. 알고 있다. 직접 기사를 보기도 했다. 준웅이는 진정한 노력파다. 불리한 조건들을 뛰어넘기 위해서 늘 열심히 연습한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성실한 자세로 연습에 임하는 준웅이를 보면 후배이지만 내가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낀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8월 5일부터 KBS배 전국체조선수권대회가 시작된다. 유니버시아드 선발전에서는 떨어졌지만 KBS배 대회에서는 꼭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매일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우리 팀은 동료 간에 은근한 경쟁의 분위기가 잘 조성됐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낸다. 무더운 여름이지만,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로 대회를 차근차근 준비할 계획이다.

2003-07 15

[동문]"국제 협력과 분단 극복에 관광은 최고의 효자손"

얼마 전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종영된 드라마 '올인'의 마지막 무대는 제주도였다. 특히 드라마의 후반부는 서귀포의 관광 미항 개발권을 둘러싼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했다. 이 드라마는 이른바 한류 열풍을 타고 동남 아시아로 진출하면서 제주도는 젊은이들의 꿈과 낭만이 넘치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다시 한번 거듭나게 됐다. 그러나 정작 드라마의 소재로 등장한 서귀포 관광 미항 개발사업이 실제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3년 간 한반도를 동북아의 경제 허브로 건설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제주국제자유도시 사업은, 드라마에서와 같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한 정책 연구를 통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동북아 '허브' 중심에 관광이 흐른다 박기홍(관광 87년졸) 동문은 이러한 서귀포 관광 미항 사업을 떠올리면 누구보다도 흐뭇해 하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이 사업은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관광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박 동문이 연구책임을 맡아 완성된 프로젝트 보고서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 박 동문이 몸담고 있는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은 지난해 말 문화관광부 산하의 양대 싱크탱크로 일컬어지던 한국관광연구원과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이 통합돼서 설립됐다. 이 통합은 양 분야에 대한 연구를 보다 협력적이고 포괄적으로 함으로써 다가오는 문화와 관광의 세기를 내실 있고 체계적으로 준비하겠다는 정부차원의 관광전을 함축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화와 관광의 세기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는 연구자의 모습은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며 관광정책실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관광을 연구하는 사람은 산업적 특성상 활기차고 밝을 것이라는 짐작과는 달리 박 동문의 첫 인상은 부드러우면서도 진지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압도된 듯 '관광'하면 떠오르는 신나고 활기찬 이야기는 잠시 미루고 박 동문과의 대화는 동북아 경제 허브 건설에 있어 관광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로 시작됐다. "정부에서 추진 중인 동북아 경제 허브 건설 계획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 살려 문화 교류를 통한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서로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흐름의 중심에 있겠다는 의도로 분석할 수 있습니다. 관광은 경제적 파급뿐 아니라 문화체험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접촉을 통한 상호 이해 증진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하는 등 비경제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금강산 관광에서도 보듯 순수 민간교류를 통해 남북의 분단을 해소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지요." 한반도가 동북아 허브로 자리잡는데 아직까지는 관광이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지는 않지만 점점 그 비중이 커져가고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박 동문은 허브, 즉 중심이라는 개념은 일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고 피력한다. 자본과 노동력에서 앞선 일본, 중국과 일대 일로 경쟁해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으므로 흐름의 중심에서 부가가치를 얻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존심과 생활고를 잊게 한 관광의 매력 박 동문의 관심은 처음부터 관광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83년에 부친의 권유로 관광학과 인연을 맺게 된 박 동문이 애초에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경영학이었다. 당시 관광학과는 설립된 지 3년 밖에 되지 않는 신생학과였기 때문에 앞에서 끌어줄 선배 한 명 제대로 있지 않았던 시기. 게다가 전망이 밝다라는 장미빛 미래만 난무할 뿐, 그에 상응하는 사회 진출도 여행사나 호텔 등 극히 협소한 상황이었다. 박 동문은 당시 관광학에 대한 국내의 학문적 역량이 충분치 않았기에 자신의 학문적 갈증은 점점 커질 수 밖에 없었노라 회고한다. "일단 공부해 보고 다른 길을 모색하겠다는 생각으로 일 년을 보내고 얻은 결론은 '흐트러짐 속에서 다양함과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철학적 개념으로서의 관광과 여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게 됐지요. 결국은 다시 한 번 더 선택했다는 생각에 '여기서 끝을 보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석사과정과 군복무를 끝내고 가정까지 꾸리게 된 박 동문이 가장 먼저 사회에 첫발을 디딘 것은 한국관광연구원의 모태가 되는 교통개발연구원 관광연구센터의 아르바이트직이었다. 당시 월급은 20만원. 가정을 꾸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특급 호텔에 취직해서 안정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으나 학문 쪽으로 잠재력을 키운다는 고집으로 아르바이트에서 계약직 연구원을 거쳐 그 해 10월에 정규직 공채에 합격하게 된다. 스스로 '노는 것'의 이면에 함축된 철학적 함의를 학문적으로 구현해보고자 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놀면서 학문하고, 일하면서 논다? 비록 속된 말이지만 '놀아 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관광행위를 놀이의 관점에서 볼 때 그것은 의식주와 함께 인간 행복을 위한 필수조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분야를 끈덕지게 연구해 온 박 동문에게 '논다'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에게 있어 논다는 것은 관광을 하건 야유회를 하건 각자가 해야할 일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조정해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노는 기질'은 타인에게는 행복을 줄 수 있지만 스스로에게는 오히려 업무로 다가올 수 있다. 정책에 대한 검토를 할 때 관광지를 직접 방문하지만 그것에 완전히 젖어서 놀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학이 매력적인 이유는 일과 관광이 하나의 묶음으로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이라는 것이 박 동문의 설명이다. "연구를 하면서 관광 대상지를 직접 방문하고 평가를 하는 등 자신의 업무를 즐기면서도 역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야가 관광이라고 생각합니다. 국내 관광산업이 범위도 과거의 여행사나 호텔에 편중된 것을 탈피해 관광지 개발이나 리조트, 컨벤션 산업 등으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지요. 학문적으로는 여전히 채워나갈 여백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큽니다. 이런 의미에서 관광은 창의적이고 개방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잘 들어맞는 분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책연구실장을 맡은 지 이제 4개월 째 접어드는 박 동문에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업무를 총괄하고 조정하는 일에 주력하다 보니 연구에 투입하는 시간이 줄었다는 것이다. 석사학위를 가지고도 기꺼이 아르바이트생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연구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에게 있어 관광에 대한 탐구는 그 자체가 하나의 '즐거운 여행'처럼만 보인다. 학력 및 약력 박기홍 동문은 1987년 본교 관광학과를 졸업해 1989년과 1997년 동 대학원에서 각각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 한국관광연구원의 모태인 교통개발연구원 관광연구센터 연구원 공채로 합격한 박 동문은 APEC 연구컨소시엄 운영위원, 감사원 월드컵 국책감사단 위촉감사관, 한국관광연구원 정책기획 팀장 등을 거쳐 현재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 관광정책연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관광학회와 그 산하에 있는 관광자원개발학회 이사를 겸하고 있는 박 동문은 1994년부터 본교에서 국제관광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상훈으로 한국 관광 발전에 공헌한 점을 인정받아 문화관광부장관으로부터 두 차례의 표창 및 월드컵 기장을 받은 바 있다 사진 :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2003-07 15

[학생]`우리의 소리 찾는다` 동아국악콩쿠르 휩쓴 한양의 국악트리오

지난 6월 25일 제19회 동아국악콩쿠르가 막을 내렸다. 동아일보사 주최로 23부터 25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이번 대회에서 이명훈(음대·국악4) 군이 대금 부분 대상을 차지한 것을 비롯, 정종임(음대·국악4) 군이 피리 부분 동상을, 정현화(음대·국악2) 양이 해금 부분 대상을 각각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위클리한양에서는 수상의 기쁨과 함께 찾아온 여름 방학에 가슴 벅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한양의 국악트리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수상을 축하한다. 국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이명훈(이하 명훈) : 아버지는 국악(대금)을 하셨고 고모는 가야금을 연주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 사촌 누나가 가야금을 연주했다. 호기심반, 부러움 반으로 누나를 따라 국악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부터 대금 연주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 같다. 노력도 했지만,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다고 생각한다.(웃음) 정현화(이하 현화) : 초등학교 때 이모로부터 해금을 배웠다. 취미로 배우던 것에 재미를 느껴 국악 중학교에 입학, 국악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길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미리부터 내가 갈 길은 이 길 뿐이라고 생각했다. 정종임(이하 종임): 피리와의 인연은 조금 늦게 찾아왔다.고등학교 1학년 때 예고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는 형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를 해보았는데 피리 연주가 가장 적성에 맞았다. - 수상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명훈 : 동아콩쿠르 입상은 누구나 탐낸다. 남자의 경우 대상 수상시 군 면제를 받게 된다. 그것을 제외한다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작년에 같은 과 친구가 이 대회에서 상을 탔다. 그 때 너무 부러워했었는데 내가 상을 타게 되어 너무 기쁘다. 2년 동안 준비한 보람이 있다. 현화 : 명훈 오빠와 같이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기쁘다. 고교 재학시절에 한양 음악콩쿠르에서 수상했을 때 만큼이나 기쁘다. 종임 :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나의 마음가짐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컸기 때문일까. 조금만 더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년에 한 번 더 도전해서 꼭 대상을 타 볼 생각이다.(웃음) - 전공의 매력은 무엇인가? 명훈 : 좀 쑥스럽지만, 가끔 산에 가서 연습을 할 때가 있다. 산에서 대금을 연주하고 있으면 자연과 함께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 점이 정말 매력적이다. 현화 : 국악을 하는 게 좋다. 다른 장르와 마찬가지로 음악을 통해 나의 감정을 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또 이런 감정들을 공연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가끔 연주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다. 종임 : 연주를 하다보면 평소에는 못 느꼈던 것을 느끼게 된다. 고3 때,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서 피리 선율에 취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의 그 느낌이 좋아서 지금까지도 연주하고 있다. 마음 속 감정들을 악기로 표출했을 때의 느낌, 또 그것을 함께 느껴주는 사람이 있을 때, 그 느낌이란 정말 값진 것이다. - 특별히 기억에 남는 스승이 있다면? 명훈 : 전주에 계시는 조재수 선생님이 계시다. 그 분을 만난 건 고교 2학년 때였다. 자신의 것을 가르쳐 주면서도 '나만의 음악을 만들도록' 지도해 주셨던 분이라 기억에 남는다. 현화 : 현재 가르쳐 주고 계신 국립국악원의 유은정 선생님이 계시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은 장점대로 살려주시고, 단점은 스스로 고치도록 도와 주신다. 내 나름의 음악색깔을 갖게 해 주신 분이시기도 하다. 종임 : 국립국악원의 나영선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피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그 분께 배워 왔다. 이번 본선에서의 곡도 선생님께 받은 것이다.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치신 분이시다. - 자신 있거나, 즐겨 연주하는 곡이 있다면? 명훈 : 정악(궁중음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써 민속악인 산조를 즐긴다. 현재 제일 자신 있는 곡은 이번 대회에서 연주했던 '서용석류 대금 산조'이다. 현화 : 자신 있는 곡을 꼽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산조, 정악 등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한 장르를 즐긴다. 종임 : '서용석류 피리 산조'에 자신 있다. 서용석님은 민속음악에 큰 획을 그으신 분이시다. 현재 국악계에 있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서용석류의 산조를 배우고 있다. 즐겨 연주하다보니 자신감도 붙는 것 같다. - 방학에 특별한 계획이 있는가? 그 밖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명훈 : 우리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국악 악기에 대해 잘 모른다. 요즘에도 신곡이 나오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의 꿈은 크다. 크로스오버나 퓨전음악과 같이 국악과 대중음악을 조화시킨 음악을 만들고 싶다. 이런 꿈을 갖게 된 데는 서태지의 '하여가'의 영향이 컸다. 앞으로의 계획은 연주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작곡공부를 하는 것이다. 이번 방학에는 컴퓨터 음악을 공부할 생각이다. 공부를 하려고 하니 할 일이 너무 많다.(웃음) 현화 : 이번 방학 때는 해금 뿐 아니라 다른 악기도 배워보고 싶다. 또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생기면 다 해보고 싶다. 현재 갖고 있는 꿈은 전공을 살려 음악적으로 존경받는 선생님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너무 좋았다. 앞으로도 이대로만 갔으면 좋겠다.(웃음) 종임 : 사실 이번 콩쿠르에서 동상에 그쳐 매우 아쉽다. 올 10월에 국립음악원 대회가 있는데 이번 방학은 대회 준비로 바쁠 것 같다. 이번에는 1등을 목표로 할 것이다.(웃음)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면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하고 싶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요즘 국악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방송이나 기타 매체를 통해 보여지는 것만이 국악의 전부는 아니다. 의외로 국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국악 또한 얼마든지 대중적일 수 있다. 혹시라도 학생들이 국악에 대해 오래된 것, 낡은 것, 재미없는 것이라는 인식들을 갖고 있다면 그런 고정 관념을 빨리 극복했으면 한다. 사진: 신버들 학생기자 pleureur@ihanyang.ac.kr

2003-07 08

[교수]"인류의 문명사를 구분짓는 기준은 바로 소재다"

새로운 사회의 출현을 가능케 한 것은 당대를 관통했던 지배적인 사상이나 철학 또는 이에 기반한 혁명적 사건이 아니다. 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와 철기 그리고 인간을 철의 중압감으로부터 해방시킨 '플라스틱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명사를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소재'에 있었다. 특히 최근에 급속히 진행 중인 첨단산업의 발달과 산업 집적화를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다시 인류 문명사를 다시 쓸 신소재의 출현을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과연 차세대를 지배할 소재는 무엇이 될까? 서울캠퍼스 신소재공학부 이창희 교수에게 두서없는 질문을 던졌다. 21세기는 퓨전의 시대 "그것은 한 마디로 '퓨전 소재'가 될 것이라 답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골에 가면 토담이 있죠. 흙으로 된 담이 있는데 그게 흙이 100퍼센트가 아닙니다. 밀짚이 들어가 있죠. 그래서 흙만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비바람에 오래 견디지 않습니까? 이처럼 이제는 청동기다, 철기다 이런 식의 시대구분은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의 순수 소재가 동시대의 산업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거죠. 지난 수 년간 IT나 NT 등이 각광을 받았지만 최근에는 학제간 연구를 통한 퓨전 테크놀러지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소재공학은 원료 자원으로부터 산업에 적용할 소재를 발굴하거나 아예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응용학문이다. 이는 다시 개발된 소재를 실생활에 유용한 형태로 가공하거나 새로운 공정기술을 개발하는 가공분야 및 소재특성을 강화하는 특성개선 분야로 세분할 수도 있다. 구체적인 응용분야로는 철강, 세라믹 및 반도체소재 산업분야, 자동차, 조선 및 우주·항공 산업분야, 에너지·환경, 전·자기 산업분야 및 바이오 산업 등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사람의 활동이 이루어지는 어느 곳에나 응용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소재공학이란 일반 소재공학 또는 재료공학과 어떻게 다른 것인가? "신소재공학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구소재가 있어야 있는 성립되는 거죠. 그렇다고 구소재와 신소재를 구분하는 경계가 딱히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일단 소재 또는 재료는 크게 구조재료와 기능재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구조재료는 SOC라든가, 건축, 교량, 자동차, 우주항공 등 어떤 설비의 구조에 필요한 것들이고, 기능재료는 어떤 별도의 기능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료입니다. 신소재는 이러한 여러가지 기능을 가지는 구조재료와 기능재료를 다시 특수한 기능과 특성을 가지도록 새로운 것을 첨가해 개발해 낸 소재를 말합니다." 금속공학을 전공해 지난 1995년 본교에 부임한 이 교수의 주 전공분야는 금속가공이다. 이를테면 수 년 만에 부식되는 철강소재의 내구성을 극대화시킨다든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금속에 기능성 코팅을 한다든지 등 이른바 하이브리드화를 통한 신소재 개발이 그의 주된 연구 분야다. 연구의 응용력이 뛰어난 만큼 그는 현재 과학기술부가 주관하는 21세기 프론티어 연구사업과 산업자원부가 발주한 차세대 신기술 개발 사업의 국책과제를 맡는 등 그야말로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 중이다. 재료공학 부문 국내 최고의 위상 자랑해 서울캠퍼스 신소재공학부는 지난 2001년 대교협 학문분야 전국 '최우수' 평가를 받았던 관록이 입증하듯 소재공학에 있어 전국 최고의 위상을 자부하고 있다. 당시 한양대가 포항공대와 고려대를 제치고 전국 최우수 평가를 받았던 사실은 관련 학계에서도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이 같은 결과는 일찍부터 예상되었던 것이라며 태연한 표정이다. 평가 당시 서울캠퍼스 신소재공학부 대학원 전임교수들의 연평균 논문 수는 11.71점, 그 중에서도 SCI급이 3.74점을 기록하고 있었으며 1인당 연구비 수탁 실적 역시 연평균 1억 3천만원으로 전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현재 저의 연구실만 해도 연구비 수탁 규모가 연평균 3억 내지 4억 정도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6월부터는 포스코 지정 연구실로 선정되어 향후 4년간 매년 약 1억에서 1억 5천만원 가량을 지원 받게 됩니다. 연구에 참가하는 대학원 학생들도 포스코로부터 직접 장학금을 받습니다. 논문에 있어서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신소재공학부 교수님들이 본교 전체 SCI급 논문 발표 실적에서 최소 20퍼센트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훌륭한 스승 밑에 어줍잖은 제자가 있을 리 없다. 신소재공학부의 모든 학생들은 3학년이 되면 이 교수로부터 '면벽수도'에 대한 지침을 전수 받는다. 3학년은 학업 후 자신의 진로와 인생에 대해 가장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 이 교수의 생각이다. "저는 3학년 여름방학에 앞서 학생들에게 '면벽'의 필요성을 늘 얘기합니다. 3학년은 전공의 중심부에 들어왔고, 대부분 학생들이 군에 다녀와 복학을 하고도 한 학기가 지난 다음이므로 진로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입니다. 각자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산으로 홀로 들어가 반드시 1박을 하며 생각하라는 겁니다. 4학년 여름방학에 결정하는 사람은 3학년 여름방학에 결정하는 사람보다 분명히 그만큼 뒤지게 돼 있습니다. 바다는 권하지 않아요. 그곳은 잡념이 많으니까." 대학은 직업훈련원이 아니다 교육시장이 무한 경쟁에 돌입하면서 많은 대학들은 이른바 사회와 기업이 선호하는 '맞춤형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나섰다. '해당 전공을 마치고도 회사에 입사했지만, 정작 아무 일도 할 줄 모른다'는 기업들의 '불만'은 최근 각종 언론을 타고 회자되기도 했다. 우수한 학점보다 진지한 성찰을 강조하는 이 교수는 기업들의 이 같은 '훈계'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나선다. "기업들 불만 많죠. 대졸자 뽑아 놓았어도 2-3년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대학은 직업훈련원이 아닙니다. 기초학문과 관련한 지식 습득은 대학생활에 있어서 30퍼센트, 나머지 70퍼센트는 인간 관계와 사회화의 과정입니다. 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취직하면 엔지니어 외의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10퍼센트도 되지 않아요. 공학을 하는 사람은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과 5분 이상 대화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하물며 인문사회 학도들과 대화가 되겠습니까? 대학은 이런 대화와 교류의 장이어야 합니다. 공부를 얼마나 잘 하느냐 이전에 공부를 왜 하느냐에 대해 스스로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진부한 담론이지만 여전히 사회에 만연해 있는 이공계 위기론에 대해서도 이 교수의 생각은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르다. IMF를 맞아 국내 대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엔지니어링 회사들에서 시작됐고 당시 중고교생들이 보기에 엔지니어로 근무하던 자신의 아버지와 삼촌이 제일 먼저 직장을 잃는 것을 보고 이공학에 대한 회의감을 가졌던 것은 당연하지만, 국내 이공계열의 인력 수급 시장은 언젠가는 반드시 한번 이루어져야 할 구조조정의 대상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공계 위기론은 어찌보면 필연적인 결과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공과대학이 너무 많아요. 엔지니어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다는 거죠. 이 기회에 불필요한 인력 수급 시장이 한번 재편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공학 교육기관을 마친 한양대 학생이면 오히려 더 큰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기업체들이 한양대생을 선호한다는 말에도 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이 말은 시키면 시킨대로 잘 한다는 것 아닙니까? 한양인은 사회 어디에서도 '예스'와 '노'를 구분할 자격이 있는 보증된 인재들입니다." 학력 및 약력 이창희 교수는 1982년 본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1985년 Univ. of Tennesse에서 석사학위를, 이후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4년까지 산업과학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을 역임했다. 이후 포항제철기술연구소 책임연구원을 거쳐 1995년부터 본교 신소재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한금속학회 및 대한용접학회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표면공학회, 미국용접학회, 미국재료금속학회 등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89년에는 미국용접학회 논문상(W.F. Savage Award)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7 08

[교수]`전쟁에 대한 추억` 성장소설 탈고한 현길언 교수

현길언(국제문화대·국어국문) 교수가 유년 시절에 체험한 전쟁 이야기를 바탕으로 3부작 성장소설을 탈고했다. 1권 '전쟁놀이'와 2권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 3권 '못자국'을 통해 현 교수는 일제시대부터 '제주 4·3사건'에 이르기까지 주인공 '세철'의 눈을 빌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새롭게 조망하고 나선다. '전쟁은 불행이지만, 현실 속에 존재했던 엄연한 역사'라 말하는 현 교수를 만나 집필의 배경과 소회를 들어보았다. - 2년에 걸쳐 준비해 온 소설을 탈고했다. 소감이 어떤가.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다. 모두가 어린 시절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에서만큼은 우리 어린이들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나의 체험을 바탕으로 초등학생들의 삶을 중심으로 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초등학생의 삶을 성장소설로 한 작품은 국내에서 최초로 시도된 것으로 안다. 그런 만큼 주변의 관심과 격려가 많아 기뻤고, 아동문학에 대한 관심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 동화 같은 성장소설이지만 소설에서는 전쟁이 배경이다. 인간이면 누구나 전쟁을 싫어한다. 전쟁은 불행을 가져오지만, 전쟁은 역사 속에 언제나 존재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은 전쟁의 피상적 의미일 뿐,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세대들에게는 전쟁이란 단지 영화에서는 볼 수 있음직한 이야기 거리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와 어린이들은 이전의 세대들이 이룩해 놓은 경제적 풍요와 평온 속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지내왔다. 이러한 세대들에게 소설 속의 '세철'을 통해 소설이란 작가의 체험이 재구성되는 것이다. 작가가 겪은 체험은 모두 작품의 영역에 속한다. 나는 전쟁을 체험한 세대이다. 이번 소설은 내가 겪은 전쟁 체험을 바탕에 두고 썼다. 소설 속의 '세철'은 어린 나이 지만 많은 일을 겪은 아이이다. '일제식민지'와 '제주 4·3사건', 동족간의 전쟁 '6·25전쟁' 등 민족의 아픔을 모두 겪은 아이다. 이것은 나와 비슷한 세대에서는 다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다. 이러한 아픔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훌륭한 교훈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 작품을 통해 어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이란 남녀노소를 구분해 읽는 것이 아니다. 나의 책 역시 누구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현실세계를 형상화한 소설 속의 진실을 독자들이 알아주고, 많은 독자들이 나의 진실을 이해를 하고, 공감하길 바란다. 인간은 진실을 알수록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해들은 인간들을 행복하게 하고, 삶의 여유를 갖게 한다. 소설의 진실은 현실에서 느끼기 어려운 진실을 느낄 수 있게 함으로써, 이를 통해 세상살이의 과정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소설 속의 진실은 모든 인간의 참모습을 이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러한 이해들이 결국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하는 능력인 것이다. 이러한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소설에 관심을 갖고 많이 읽어야 한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 진실을 찾아가며 책을 읽어야 한다. - 교수님의 소설에는 고향인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것이 많다. 고향은 인간에게 있어 탯줄과 같은 의미이다. 탯줄을 통해 뱃속의 연약한 태아는 자양분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 있다. 이처럼 힘없고 연약한 어린 시절을 고향이라는 따뜻한 공간을 통해 보호받고 자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제주도에서 태어나 대학교까지 고향에서 마쳤다. 이러한 나의 성장배경은 내가 제주를 좋아하고, 나의 소설에도 배경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고향이라는 향토적 삶의 세계를 소재를 통해, 역사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묻혀지는 개인의 진실을 알리고 싶다. 제주라는 소제가 이러한 의도와도 잘 맞는 거 같다 - 강의와 소설 집필을 병행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2년 동안 집필을 하면서 강의와 창작을 함께 하는 일은 분명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 본교에서 강의하고 있는 과목의 대부분이 문학과 소설에 관련된 강의이다. 강의를 준비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이 오히려 소설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고, 또한 소설을 쓰는 것 역시 강의를 준비하는 것과 관련되는 것이라 지나고 보니 서로에게 오히려 도움이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집필 계획이 있다면. 곧 '섬'을 주제로 한 '누구나 그 섬에 갈 수 없을까'를 출판할 예정이다. 인간에게 고립과 성찰의 상징성을 부여하는 '섬'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운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또 2005년 정년 퇴임에 맞춰 6권 정도의 대하소설 '한라산' 집필도 끝내려고 한다.

2003-07 01

[교수]"지식사회의 키워드는 창의력"-사범대학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

세계에서 '가방끈'이 가장 긴 나라.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기관 진학률은 87.5퍼센트. 국민 10사람 중 9사람이 대학에 진학하는, 세계에서도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높은 '학구열'이다. 이와 함께 국내 사교육 시장의 규모가 적게는 30조원에서 많게는 55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한 일간지의 최근 보도도 주목을 끈다. 이처럼 높은 교육열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높은 사교육비, 실종된 전인교육과 청년 실업의 문제는 물론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있어서 '교육'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가 된지 오래다. 이 같은 교육문제에 대한 특단의 돌파구는 없을까? 높은 교육열을 국가적 에너지로 전환하는 방법은 과연 없는 것일까? '암기식', '주입식' 교육은 이제 그만 "이 시점에서 우리는 미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먹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지요. 앞으로 5년 이내에 대부분의 산업이 중국을 비롯한 후발 산업국가에 의해 추월 당할 것이라는 현직 기업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심각해집니다. 늦기 전에 '생존을 위한 돌파구'를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울캠퍼스 사범대학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교육정책을 전공하고 있는 학자다. 교육부가 입안하고 시행하는 교육정책에 대한 연구와 자문은 그의 주된 업무 중 하나다. 지난 문민정부 시절, 정 교수는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을 지냈고, 국민의 정부에서는 새교육공동체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일했다. 또한 각종 언론을 통해 정부의 교육정책과 진행 방향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는 이른바 '활동파' 교육 전문가이기도 하다. 이런 정 교수가 갑자기 우리나라의 앞날이 걱정스럽다는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우리나라는전자, 조선, 반도체, 자동차 등 수출 위주의 2차 생산산업에 주력해 왔습니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있습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밀려오는 후발 국가들을 상대로 2차 산업 위주의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인재를 바탕으로 지식, 서비스 산업 위주로 우리의 체질을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교육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숨어 있습니다." 정 교수는 '교육'이 돌파구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다양한 능력과 창의적인 사고로 무장한 인재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정책이야말로 국가 생존의 유일한 수단이자 무기라는 것. 정 교수는 획일화된 암기식,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교육정책을 정부에서 입안하고, 의지를 가지고 이를 추진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암기식, 주입식 교육이 효과적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순히 읽고 쓰는 것, 성실하다는 것만으로는 치열한 국가 간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교육은 인재를 기르는 일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인재, 참신한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는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인재들을 길러내는 교육정책이 절실한 때입니다." 신지식인 육성의 가능성 '자립형 사립고' 정 교수는 이런 관점에서 현재 많은 논란이 되고 있는 자립형 사립고 설립을 적극 찬성하고 나섰다. 즉 수출을 통한 국가 발전은 한계에 달했으며 이제는 국가 경쟁력 제고의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것. 그 방법의 하나로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인재 양성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문제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푸는 것보다 사물을 체계적이고 분석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자립형 사립고와 같은 인재 양성 풀을 만들어 적극 활용해야 합니다. 단순한 컵 하나를 만들어 내는데도 무수히 많은 아이디어와 다양한 사고 과정이 필요한데 하물며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어서 똑같은 생각과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이 의미가 있겠습니까?" 정 교수는 '자립형 사립고' 설립으로 인한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우려하는 일부의 목소리에 대해 '현재의 교육정책 하에서도 같은 문제는 늘 지속되어 왔다'고 반론한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 없이 자신의 능력에 따라 원하는 학교에 가서 교육을 받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서울만 해도 이른바 명문대학 진학률에 있어서 강남과 강북이 네 배 이상 차이가 나는 현실에서, 새로운 제도를 도입함으로서 생기는 불균형 문제를 논한다는 것은 설득력이 낮다는 주장이다. "물론 자립형 사립고의 도입이 교육의 불균형 문제, 계층 간의 위화감 조성 등의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도의 일면만 보는 것입니다. 영국의 이튼스쿨처럼 자립형 사립고의 입학 인원 중 약 30퍼센트의 학생을 장학생으로 선발하도록 한다면 가난한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입학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학생을 선발하는 전형 방법이 지금과 같이 누가 얼마나 많이 외우고 문제를 빠르게 푸느냐에 집중하는 시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생각과 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전형 방법을 도입해 학생들을 선발한다면 일부에서 우려하는 폐단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렵게' 하라 인터뷰 도중 정 교수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하나 꺼냈다. 얼마전 모 대기업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간부가 이런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일류 기업들은 핵심 분야의 최고 자리에는 우리나라에서 공부하고 대학을 나온 사람들을 안 쓴다는 것. 이유는 국내 대학 졸업자들이 실력과 '직업 윤리'라는 면에 있어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학이라는 곳은 입학한 사람의 약 40퍼센트가 중도에 탈락할 정도로 치열합니다.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밀려납니다. 이에 비해 우리의 대학은 들어가기까지는 무척 힘들지만 일단 들어가면 졸업은 쉽게 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스템으로는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고 졸업한 사람들과 경쟁이 되질 않습니다. 이제 모든 기업은 세계를 향해 뛰고 있고 이에 맞는 세계적 마인드와 준비를 갖춘 인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안이하게 생각할 때가 아닌 것이지요." 정 교수는 우리 대학생들이 보다 치열하게 학업에 전념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지금처럼 쉽게 학점을 따고 졸업할 수 있는 풍토를 과감히 떨쳐내고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밀려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리더, 지식·정보 기반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 오늘을 이끌어갈 인재 배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모두가 승리하는 교육을 위하여 현재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교육문제의 가장 큰 피해자는 누가 무어라 해도 바로 학생들이다. 정 교수 역시,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상처를 받아온 학생들은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고백한다. 자신들의 능력에 대해 학생들이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하는 까닭 역시 잘못된 교육 구조에 있다는 것. 이처럼 잘못된 교육 구조 하에서 성장한 학생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이 땅의 교육자들이 수행해야 할 첫 번째 과제라 역설하는 그다. "많은 학생들이 패배의식에 젖어 살고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과 비교했을 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을 보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여러분은 우수하고 뛰어나다는 것을 검증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간의 잘못된 교육 구조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 패배자라는 의식을 심어준 것입니다. 제가 할 일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상처입고 자책감에 젖어있는 마음을 다독여주고 당당한 승리자로서의 역할을 갖도록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이 땅의 '교육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력 및 약력 정진곤 교수는 1976년 서울대에서 문학사를, 1978년 동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1986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정책과 교육철학을 주 연구 분야로 두고 있는 정 교수는 대통령자문기구인 교육개혁위원회와 새교육공동체위원회에서 각각 전문위원과 상임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 학생생활상담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한국교육학회, 교육철학연구회, 미국교육철학회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국내 46편, 국외 1편이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7 01

[동문]`가짜 같은 진짜 연기` `진동거울` 연출자 이정은 동문

'자꾸 나잇살만 늘어간다' 사람 좋게 허허 웃는 이정은 동문(연영 92년졸)은 사람을 아주 편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를 가졌다. 그는 이번에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진동거울'을 연출한 젊은 연극인이다. 점심을 걸러 출출한 본 기자가 '짜장면 사 주세요' 넉살을 부려도 '그건 너무 약하니까 좀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응수하는 선배의 내공이 심상치 않다. 실랑이 끝에 결국 '짜장면'으로 합의를 보고 대학로에 자리한 허름한 중국집 휘장을 밀치고 들어섰다.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장마의 초입, 나름대로 운치 있는 대학로에서 짜장면 두 그릇을 놓고 두 시간 동안 '면발이 불어터지도록' 연극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나누어 보았다. - 이번 작품의 기획 의도는? 그 동안 연극판을 바쁘게 뛰어다녔다. '뜨는' 연극도 많이 했다. 그런 연극들은 초점이 '사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객에게 보여줄 모습'에 있었다. 그래서 문득 의문이 생겼다. '이게 과연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일까?'하고. 처음에는 좋은 작품도 점점 횟수를 거듭할수록 왜곡되어갔다. '웃음'이라는 것도 우리가 살면서 하게되는 '아주 작은 실수'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지 결코 '강요된'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결국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면서 서서히 '나이가 들어감'을 느끼고 고민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가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없을 거라는 위기감도 들었다. 그래서 뜻을 같이 하는 배우들과 함께 사무실을 열었고 3년 동안 연극도 하지 않고 한 반년 배달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해 가면서 '진실한 연기는 무엇일까'에 대해서 열심히 고민도 했고,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을 되살리는 진지한 연습'도 했다. 그리고 그것을 마음이 맞는 배우들과 같이 해 보고 싶었다. 결국 배우 네 명이 종자돈을 모아서 일을 벌리고야 말았다. 그것이 이번 연극을 하게 된 계기이자 의도이기도 하다. '진동거울'은 '진짜 연기'를 찾아 나선 젊은 배우들의 실험적 시도다. -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연기'란? 내 연기에 대한 관점은 항상 '사는 일'에 있다. 나는 배우들이 만들어 내는 삶이 아닌 '세상에 널려있는 사람들의 삶'에 더 관심이 있다. 내가 무대에서 하고있건 안 하고 있건 항상 나의 관심은 그 쪽에 있다. 내 생각에 '진정한 연기'는 그것이 단순히 연기가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생활'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배우들은 가짜를 만들어내는 데 매우 능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심이 아닌 가짜 눈물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관객은 잘 몰라도 우리는 보면 딱 알 수 있다. '저거 지금 거짓말하고 있네' 하고 말이다. 나는 연극을 만들 때에도 '이거 연극이다'하고 생각하고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연극을 개연성이 있는 '거짓말'이라고 인정해 버린다면, 배우는 결국 '나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계속 '나는 참말을 해야지'하고 연극을 해야 한다. 그래서 배우에게 '연기를 잘 한다'라고 하는 것은 욕이다. '그것 참 연기 같지 않고 자연스럽다'라고 이야기를 듣는 것이 배우에게는 최고의 찬사이다. 사실 이번 연극을 기획하면서 상업 기획자를 만나본 적도 있다. 그 기획자가 작품의 반 정도를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연극을 만들자는 조건을 걸었다. 그것이 뭐 일종의 유혹일 수도 있었다. 작품 스타일이 연출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데 거기에 기획 쪽에서 개입하면 아무래도 작품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아주 친한 그 기획자의 제안을 거절했고, 결국은 우리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결과적으로 한 50퍼센트 정도는 성공한 것 같다. - 그럼 나머지 챙기지 못한 나머지 50퍼센트는? 아직 '진짜'는 아니라는 거다. 다큐멘터리를 보면, 내가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은데 휴먼 다큐멘터리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감정은 우리보다 더 슬퍼하면서도 진짜고, 덜 슬퍼하면서도 진짜다. 감정의 수위라는 것도 결국 정말 그 삶을 살아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이 점에서 배우가 유연하게 상상해야 한다. 역을 맡은 배우는 그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게 마련이다. 무대에서 '그 사람인 척하고 연기하는 것'과 '정말 그 사람이 되어서 살아보는 것' 그런 면에서 아직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조간 신문을 보는 것도, 직장에서 잘린 사람이 신문을 보는 것과 아침에 배달을 하는 사람이 보는 신문은 그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배우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걸 믿고 가야한다. 개인적으로 한 3년 연극을 쉬면서 연극에 대한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을 '내 삶이 틀어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변하는 상황에 따라서 원하는 것도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는 존재, 난 그것이 연극에서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그런 '인물'에 대한 고민이 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 연극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먼저 제작비를 구하는 문제가 제일 힘들었다. 아주 좋은 후배(배우 신하균)가 있는데, 제작비가 필요하다고 그냥 들입다 전화를 걸었다. 나는 보통 제작비를 융통하는 데에는 아주 막무가내다.(웃음) 그 친구가 아주 선선히 제작비를 이자도 안 받고 빌려 주었고, 배우들이 다달이 얼마씩 돈을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것이 제일 힘들었고 다음으로 배우들이 연출보다 먼저 연기를 포기해 버릴 때도 참 힘들었다. '나는 이게 안되는 놈이야, 나는 그걸 할 수 없어'라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그것을 풀어주는 게 참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 배우의 몸이 아니니까. 공연이 한 달을 넘어가면서 배우들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습관이 나올 때도 참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배우들이 무대에 많이 서봐서 '내가 이렇게 하면 관객들이 좋아하는구나'라는 걸 잘 알고들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연기가 아니라 보는 사람을 자꾸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깨는게 참 힘들었다. - 이번이 두 번째 연출이다. 연출이 연기에 비해 더 힘든 점이 있다면? 연출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배우들의 심리를 긁어서 원하는 연기를 얻어내야 하고, 어떨 때에는 배우의 잘못을 명확하게 지적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주변이 좀 산만한 편이라서(웃음) 꼭 한 박자 늦게 지적을 하는 편이다. 그래서 제대로 '말빨'이 안 먹힐 때도 있었다. 연출자는 배우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집중적으로 관찰하고 동작 하나하나를 지적해야 하는데 나는 아직 그게 부족한 것 같다. 나는 이번 작품에서 구태여 내가 '연출'이 되어서 주도적으로 배우들을 이끌어 나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들과 함께 재미있는 작업을 했을 뿐이다. - 그 동안 맡았던 배역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라이어'라는 공연을 하면서 맡았던 '메리'라는 배역이다. 처음에는 배운대로 연기하기에 급급했는데, 나중에는 역할을 하면서 내가 '메리'라는 여자를 조금은 이해하면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라이어'를 하면서 지금 '눈위에나' 극단을 같이 만든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도 있었다. 취재후기 짧은 시간이나마 이정은 동문은 가슴 속에 있는 이야기를 진지하게, 또 재미있게 풀어냈다. 비록 많은 작품을 하지는 못하더라도 평생 연극을 생각하고, 연극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 연극 '진동거울'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지만 굳이 여기서 시시콜콜한 내용은 싣지 않으려 한다. 연극을 보기 전에 먼저 내용을 알아버리는 것은 관객의 재미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진동거울'은 무겁지만 가볍고, 진지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유머도 있다. 판단은 전적으로 연극을 보게 될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몫. 기말고사를 마친 일상의 여백은 대학로 소극장을 찾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연극 한 편으로 채워보시라. 연극 '진동거울'은 대학로 혜화로터리 근처에 있는 '동숭무대 소극장'에서 7월 6일까지 공연한다. (문의 : 극단 '눈위에나' http://ionthesnow.oh.bz, 741-6342)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6 22

[동문]방송미술의 숨은 노다지를 캔다

용의 눈물,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무인시대까지. 과거 조선사에 한정되었던 사극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받는 KBS 사극의 계보이다. 드라마에도 공영성이 구현될 수 있음을 입증한 이 작품들은 시청자들의 사랑뿐 아니라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한 역사재현이라는 점에서 학계와 방송계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런 KBS 사극을 한번이라도 본 시청자들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사항이 있다. 그것은 삼국시대 비녀에서부터 고려시대 갑옷, 조선시대 왕관, 식민지시대 저잣거리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누가, 어떻게 만드는가 하는 것. 하지만 사정을 알고 나면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KBS 모든 프로그램의 방송미술은 KBS 아트비젼에서 전담하기 때문이다. 이 곳 상임이사로 재직하고 있는 김선옥 동문(신방 72년졸)을 만나, 오늘날 방송미술의 새로운 전망과 비젼을 들어보았다. 전문성은 필요조건 아닌 '필수조건' KBS 아트비젼(이하 아트비젼)은 지난 91년 창립돼 KBS 제작 프로그램에 대한 방송미술을 전담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방송미술 하면 사극을 떠올리지만, 이러한 통념은 절반의 정답이다. 방송미술 중 가장 어렵고, 많은 준비와 노력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맞지만 오락프로그램 진행자의 옷과 세세한 장신구까지도 신경 쓴다는 부분에 이르면 틀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잘 느끼지 못하는 세세한 부분에서부터 정보가 부족한 시대극까지 재현해야 하는 방송미술. 김 동문은 그렇기에 방송미술에 있어 전문성은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닌 필수조건이라고 강조한다. "방송미술은 상당히 어려운 분야입니다. 기본적으로 남들이 쉽게 지나치는 부분까지도 꼼꼼하게 살펴야 하기 때문이죠. 특히 사극이나 시대극에서 있어서는 전문성이 더욱 강조됩니다. 고려시대 장수가 입었던 갑옷의 모양도 알아내야 하고, 60년대 유행했던 넥타이가 폭이 넓은지, 좁은지 어떤 색깔이었는지도 알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희들은 특성에 맞는 전문가들을 보유하고, 때에 따라서는 학계나 문화계의 전문가들을 통해 고증을 받습니다. 민감한 시청자들은 미세한 실수도 놓치지 않습니다(웃음)." 아트비젼은 이러한 전문성 확보를 위해 선발에서부터 엄격하게 전문가적 재능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들은 뽑힌 후에도 수많은 제작경험과 재교육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씩 수준을 높여 간다. 이러한 전문가 집단들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60, 70년대 종로거리와 왕조시대의 궁궐과 저잣거리가 우리 앞에 복원된다. 서사는 기본, 미술은 방송의 '양념' 실제로 방송미술의 예산은 사극과 시대극을 제외하고도 프로그램 전체예산의 70-80 퍼센트 수준에 이른다. 출연자 비용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수준. 이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방송계에서는 서사보다 외부적인 요소에 너무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하는 우려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 동문은 서사를 음식에, 방송미술을 양념에 비유해 말한다. 김 동문은 양념 값이 비싸지는 이유를 디지털 방송시대의 도래에서 찾는다. "드라마를 비롯한 모든 프로그램에 있어서 서사는 중요합니다. 하지만 서사를 음식이라고 했을 때, 이 음식의 맛을 내는 양념이 방송미술입니다. 다시 말해 단순한 서사에 리얼리즘을 부여하는 것이 방송미술이라는 거죠. 최근에는 방송이 디지털화되고 있습니다. 화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방송의 디지털화는 기존에 무심코 넘어갈 수 있는 부분까지도 느낄 수 있게 만들었죠. 심지어는 출연자의 땀구멍까지도 보이니까요. 이러한 변화는 작은 소품, 악세사리 하나까지도 가볍게 여길 수 없는 방송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대규모 지방세트 새로운 문화상품으로 부상 지금까지 마련된 대규모 세트만 해도 문경, 제천, 안동 세 곳. 현재 건설 중인 부안세트까지 합치면 총 네 곳이 있다. '용의 눈물' 세트로 유명한 문경은 역사적으로 왕건과 특별한 관계가 없지만 현재 문경시 관광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지방자치단체들도 앞다투어 대규모 세트 유치를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사극에서 사용되는 세트말고도 수원에는 60년대 거리를 재현해 놓은 세트, 삼척에는 동굴탐험이라는 컨셉으로 세계의 동굴 모습과 그 안에 살고있는 동식물을 재현해 놓은 세트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관광이라는 것이 자연적이고 역사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죠. 하지만 저희 세트 효과를 본 후 지자체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저희 회사는 지자체와 연계해서 지역적 특성에 맞는 세트를 짓고 이를 통해 지자체와 회사가 함께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아트비젼은 세트사업과 별도로 사극 소품들의 대여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의상, 장신구, 소품 등만 약 3만 여점. 아트비젼은 이것들에 대한 디지털 관리시스템을 구축 중에 있다. 제작도 중요하지만 관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졌기 때문이다. 1-2년 내에 완성될 이번 디지털 자료화는 사극뿐 아니라 TV 광고와 영화촬영과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복고풍과 사극 소품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획기적 계기가 될 전망이다. '윈-윈' 전략으로 시장 뚫을 터 "우리 회사에 할 일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세트나 소도구만 담당하는 작은 회사였지만 기술의 발전과 문화수준의 향상으로 경매, 간접광고, 캐릭터사업 등 다양한 문화산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KBS라는 큰 회사가 다하느냐라는 비판을 하고 작은 회사들이 공동사업에 난색을 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저희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작은 회사들과 협조를 통해 시장 규모 자체를 확장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KBS 라디오국에서 2개월 모자란 30년을 보낸 김 동문은 요즘 새로운 분야에서 일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다고 한다. 흡사 새로 입사한 느낌이라고 설명하는 김선옥 동문. 하지만 방송미술이라는 분야가 생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설명한다. "제가 KBS 라디오에서 오랜 시간 일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는 라디오 제작 분야를 거쳐 경영직인 국장과 7개 채널의 경영을 총 책임지는 라디오 본부장을 5년 동안 했습니다. 단지 분야만 다를 뿐 전체를 보고 경영을 한다는 것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쉰 줄을 훌쩍 넘긴 나이에 새로운 일을 도전하는 김 동문에게 연륜에서 나오는 노련함은 그다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보다는 젊은이들의 의욕과 패기를 느꼈다고나 할까. 그의 그런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설명해야 할지 어려웠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그런 정열적인 모습이 아트비젼 제 2의 도약에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학력 및 약력 김선옥 동문은 1972년 본교 신문학과를 졸업, 1973년 동양방송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한국방송공사 라디오국으로 옮긴 김 동문은 라디오 3국 국장, 1국 국장 등을 거쳐 2000년부터 라디오 제작센터 센터장을 역임했다. 올해 5월, KBS 아트비젼으로 옮긴 김 동문은 현재 상임이사로 활동 중이다. 프로듀서 당시 약 6백 여편에 이르는 드라마 및 다큐멘터리를 연출, 한국방송대상 라디오 연출상, ABU 라디오 대상, 한국프로듀서상 등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다. 현재 한국 펜클럽 협회와 한국 시인협회 회원이기도 한 김 동문은 자작 시선집『오후 4시의 빗방울』을 출간하기도 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6 22

[교수]옷은 날개 아닌 제 2의 피부-생활과학부 서미아 교수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선수들은 한일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두 겹으로 된 유니폼을 입었다. 나이키가 제작한 이 유니폼은 1998년 프랑스대회 때의 한 겹 유니폼(240그램)보다 40-50그램이나 가벼운 것이었다. 헐렁한 겉감은 선수들이 격렬하게 뛰는 동작에 따라 펄럭이며 안감과 피부 위로 풀무처럼 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면 안감에 배어 있는 땀은 겉감이 잔뜩 불어넣은 공기를 타고 목과 겨드랑이 쪽으로 빠져나갔다. 안감은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에 불과한 극세사로 제작된 것이었다. 그들의 유니폼은 기능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대 의류과학의 결정체였다. 옷은 날개 아닌 '제2의 피부' "옷이 그 사람의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날개'와도 같다는 통념은 이미 오래된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옷의 기능성에 관한 겁니다. 특정의 업무와 활동을 위해서 별도로 고안되는 특수 작업복에 관한 거지요. 거기에는 패턴뿐만 아니라 디자인에 관한 연구가 모두 유기적으로 포함됩니다. 최근에는 특히 소재에 관한 관심이 더욱 중요해졌어요. 멋도 좋고, 모양도 좋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옷은 입어서 편안해야 한다는 거죠." 서울캠퍼스 생활과학부 서미아 교수는 의복구성학과 서양복식사를 전공한 의류학자다. 의류학하면 대개가 '앙드레 김'을 떠올리며 디자이너를 생각하기 쉽지만, 현대 산업사회에서 의복에 대한 수요와 요구를 디자이너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장 노동자의 작업복에서부터 스포츠 선수들의 유니폼에 이르기까지 의복은 이제 단순한 '가리기'와 보여주기'를 뛰어넘어 극도의 '효율성'을 요구받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이 됐다. 옷은 '제2의 피부와도 같은 것'이라 단언하는 서 교수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제는 옷이 아무리 멋있다 해도 편안하지 않으면 잘 입지 않습니다. 내가 '없어서 못 입는게 아니라 편해서 이것을 입는다'하는 거죠. 물론 소비자가 옷을 처음 봤을 때 무엇이 제일 끌리는가 하면 색깔입니다. 그리고 디자인이죠. 그러나 결정적으로 소비자들은 옷을 입어보고 자신의 몸에 딱 맞아야 구매를 결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체형이나 지수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필요한 까닭이죠." 서 교수의 말처럼 그녀가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소비자의 체형과 특수 업무에 종사하는 인력을 위한 기능성 의복에 관한 연구다. 현대 의류산업이 맞춤복보다는 기성복의 대량 생산 추세로 나아감에 따라 대중의 '사이즈'를 파악하는 것은 산업의 흥망을 좌우하는 필수 요건이 되었고,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산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은 이제 아무 옷이나 입고 근무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우리나라 의류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재고 문제입니다. 정상적으로 팔리는 것이 그 시즌에 생산된 물량의 30퍼센트에 지나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의복의 판매가가 원가의 4배에 달하는 이유도 바로 재고에 대한 보상을 사전에 계산한 까닭입니다. 그런데 재고의 원인 중의 하나가 본인의 체형과 안 맞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리고 산업현장에서의 기능복에 대한 연구도 상당 수준 진전이 있지만 문제는 경영자의 판단입니다. 실용화에 있어서 소위 '코스트'가 안 맞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굶고 살래? 벗고 살래?' 현재 서울캠퍼스 생활과학부는 의류학과 식품영양학 그리고 실내환경디자인 등 3가지의 세부 전공으로 나뉜다. 최근 인테리어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증가하면서 실내환경디자인을 택하는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증가했지만, 지금도 의류학 전공은 이른바 사람이 '없어서' 취업을 못 시키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서 교수가 소개하는 생활과학부에 전해오는 오래된 농담 하나. "식품영양학 전공자들이 '안 먹고 살 수 있냐'고 우길 때마다 이쪽에서는 '발가벗고 살래?'라고 응수하지요. 모두 실용적인 학문으로 사회적 수요가 넉넉한, 즐거운 농담입니다." 현재 의류학 전공의 정원은 40명. 과거 30명에서 10명이 늘어난 규모다. 지금은 다중전공자도 많고 남학생들도 적지 않아 그 인기를 쉽게 짐작케 한다. 특히 졸업을 앞둔 의류학 전공자들이 가을마다 선보이는 '졸업작품전'은 이미 캠퍼스의 유명한 '볼거리'로 명성이 나 있다. 유명 패션쇼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무대와 행사의 규모, 모델, 그리고 작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한양의 졸업작품전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결코 아마추어답지 않다는 평가다. "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는 것은 기성복 생산을 위한 것들이지만 학부 강의 중에 '창작 의상'이 있어요. 졸업작품을 하기 위한 기초 디자인을 하는 과정인데 학생들이 상상 속에서 그렸던 옷들을 패션 일러스트레이션을 통해 그림으로 구현하고, 다시 패턴을 뜨고 해서 실제 제작을 하게 됩니다. 옷을 실제로 제작해보지 않으면 그림하고 옷이 동떨어져요. 옛날에는 디자이너를 뽑을 때 미대생들을 많이 뽑기도 했어요. 색감이 좋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옷의 정식 제작 과정을 다 아는 사람을 뽑지요. 졸업작품전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쯤 되면 업계에서도 '실전' 경험이 풍부한 한양의 의류학도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사실 국내 최초로 의류학과를 설립하며 의류업계를 주도해 나갔던 것은 E대학을 비롯한 몇몇 학교였지만, 현재 국내 업계의 지형도는 새롭게 쓰여지는 형국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여성만 있는 교육 환경에서 배출된 인력들은 나름의 섬세함이 있지만, 반대로 거칠고 힘든 현장의 업무에 소극적일 때가 많아 어려움이 없지 않다고 토로한다. 의류회사 역시 여타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거칠고 힘든 현장의 '밑바닥'부터 경험해야 하지만 지나치게 섬세한 인력들은 이러한 직무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할 때가 간혹 있다는 것. 따라서 쉽고 어려움을 가리지 않는 본교 학생들의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태도가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제2의 아르마니, 제3의 고티에를 기른다 서 교수는 현재 한국복식문화학회 회장직을 맡아 우리 복식의 세계화를 위해서도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창립으로부터 10여년의 역사를 지닌 복식문화학회는 우리 의복문화의 세계화와 함께 국내 의류 산업의 진흥을 위한 광범위한 연구와 기획들을 진행 중이다. 사실, 해외에 알려진 우리 복식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높지 않은 수준. 해외 유수의 박물관에 전시된 한국의 복식 전통은 의외로 고증을 전혀 거치지 않은 상태일 때가 많고, 어떤 경로로 그 곳에 전시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해외 박물관들을 둘러보면 우리의 복식 전시가 전혀 고증이 되지 않은 채로, 매우 초라한 모습일 때가 많습니다. 소재도 고증이 되어 있지 않고, 장신구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지요. 그래서 학회는 올바른 고증을 통한 우리 복식의 기증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올해 초에도 하와이 이민 100주년 행사의 일환으로 현지에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지요. 또 현지 박물관에는 우리나라의 남녀 혼례복과 함께 과거 영부인이 입던 한복을 기증하기도 했어요. 올해 안에 뉴욕에서 '한국의 미'를 주제로 국제의상전시회를 다시 개최할 예정에 있기도 해요." 서 교수는 복식문화학회가 우리의 전통 의상에 대한 세계적 인식을 넓히는 사업뿐만 아니라 현대 의류산업의 선두주자로서 한국 의류학의 수준을 다시금 끌어올리는 역할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라 당부한다. 특히 저임금을 무기로 단가를 낮춰 중국이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그녀가 말하는 현대 의류산업의 키워드는 바로 '브랜드'. 유명 디자이너를 육성해서 브랜드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느냐의 여부가 향후 의류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라는 게 그녀의 설명이다. , "유명 디자이너를 육성해서 브랜드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길 밖에 없어요. 그래서 교수들은 학생들이 지닌 소질과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최대한 격려해야 합니다. 2학년 지도교수를 맡고 있을 때, 한 학생이 휴학을 해야겠다고 상담을 해 온 적이 있어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 보니 자신은 애초부터 소질이 없다는 거에요. 앞으로 1년만 최선을 다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다시 얘기하자 하면서 다독거려 보냈죠. 나중에 졸업할 때, 그 학생이 총장상을 받았어요. 제2의 아르마니, 제3의 고티에가 이곳에서 나올 수 있어요." 학력 및 약력 한국생활과학연구소장 서미아 교수는 1970년 이화여대에서 이학사를, 1973년 동대학원에서 이학석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1988년 중앙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복구성학과 서양복식사를 주 연구분야로 두고 있는 서 교수는 한국의류학회 및 복식학회 편집위원, 이사, 부회장을 거쳐 지난 4월부터 복식문화학회장으로 재직 중이다. 국내 50여편, 국외 3편의 논문이 있으며 대한가정학회, 아시아 복식학회 회원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6 22

[교수]`불확실성의 매력` 직무경진대회 수상자 공학대 구자윤 교수

한양대 전자컴퓨터 공학부 교수, 전기재료 및 부품 연구 센터(EM&C) 소장, LG산전 사외이사, RRC(지역협력 연구센터) 소장 협의회 회장. 등등... 그의 이름 석자 앞에 붙는 수식어만 해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교내 활동 뿐아니라 활발한 교외 활동으로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구자윤(공대·전컴) 교수가 '하이브리드형 고주파 부분 방정 검출 센서' 기술 개발로 2003년 직무경진발명대회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이 기술은 종래 기술들의 장점만을 살려 새로이 창출된 기술로서 측정감도, 주변노이즈 제거효과, 신호대 잡음비 및 장치의 안정성 유지 특성 등이 뛰어나 전력설비 전령상태를 진단하는 장비 등에 적용 시 사업화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위클리 한양은 구 교수를 만나 수상소감과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바쁜 생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상을 축하한다. 이번에 개발한 '하이브리드형 고주파 부분 방정 검출 센서' 는 무엇인가? - 현재 가정이나 사무실 등으로 들어오는 전기는 발전소에서부터 많은 기계를 거쳐오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의 심장에 비유되는 '변압기', 판막에 해당하는 '차단기', 혈관에 비유되는 '전력케이블'이다. 사람은 신체에 이상이 오면 의사를 찾아가 진단을 받지만 기계는 그럴 수 없다. 이번에 개발한 '하이브리드형 고주파 부분 방정 검출 센서'는 변압기, 차단기, 케이블과 같은 송변전 설비에 자체 결함에 의한 절연열화와 관련된 이상 징후를 나타내는 신호를 포착하는 센서이다. 대상을 못 탄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은 없나? 그 밖에 수상과 관련해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모든 일이 끝날 때면 아쉬움이 남으나, 다년간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한 국내의 재벌기업들과 경쟁을 한 것이라서 대상을 못 받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기업이 대상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연구하면서 어렵거나 힘든 점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의 관련 분야는 선진국에 비해 약25년 정도 뒤져있는 여건 속에서 연구기반과 자금이 열악한 대학에서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도 도전하지 않은 것을 혼자 해결해 나가다 보니 모르는 것이 있어도 누구한테 물어 볼 수도 없는 것이 더욱 힘든 것이다. 또한 경험이 축적된 선진기업을 노출을 꺼리고 접근을 허락지 않지만 하나, 둘 실타래를 풀어 갈 때 마다 희열과 기쁨을 느낀다. EM&C 소장, LG산전 사외이사 등 수행하는 업무가 많다. 평소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나? - 특별한 것은 없다. 시간이 없으면 잠을 줄이는 수 밖에 없다. 보통 하루에 6시간씩은 자려고 한다. 하지만 바쁠때는 지키지 못하게 된다. 부족 분은 점심시간과 같은 때 틈틈이 잔다. 한 달에 3.4일은 푹 자는 것 같다. 대학이란 학생은 물론 교수들에게도 자기 스스로가 해결해 나가도록 하는 시스템이므로 스스로 절제하고 행동해야 한다. 바쁠수록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새벽에 헬스장에 나가도록 한다. 몸담고 있는 전공에 매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한 '불확실성'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종종 '물리적인 생각이 실질적으로 가능한가?'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머릿속의 개념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떠도는 생각들이 하나로 응집되어 제품화 될 때에 느껴지는 그 기쁨은 정말 크다. 생활 신조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놀자"다. 락 음악을 즐겨들으며 김종서, 녹색지대, 김현식을 좋아한다. 가끔 등산도 즐긴다. 요즘 학생들은 취업걱정 때문인지 학점 관리하느라 정말 '제대로' 놀지 못하는 것 같다. 대학교 시절에는 문화적 감성을 많이 키워야 하며 그 부산물은 본인의 인생의 일부분이 되어 미래의 역량을 좌우하게 된다' 가끔 학부시절에 연극을 하러 돌아다니던 때가 생각나기도 한다.(웃음)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모든 학문에 있어 기초를 튼튼했으면 한다. 공대생의 기초는 수학과 물리, 그리고 언어다. 응용에만 매달리지 말고, 기초 학문을 연마하여 그것의 바탕이 되는 기본을 다져야 할 것이다. 특별히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는 국내기술이 해외진출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건 인생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라는 것이다. 하나하나 밟아가야 한다. 인생역전은 또 다른 불행한 인생을 열어주기 때문에 그 것에 집착하고 매달리다 보면 삶 자체가 초라한 모습이 되어간다. 일반적인 우리의 삶이란 한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있고, 또 그 다음이 있게 마련. 점프해서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