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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 15

[동문]평상 바쳐 국내 최대 식물원 건립한 학택식물원 원장 이택주 동문

매년 5월 14일.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하거나 사랑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리기 위해 가슴 뜨거운 청춘들은 꽃집으로 향한다. 사랑과 욕망, 열정, 기쁨 그리고 아름다움과 절정이라는 꽃말로 포장된 장미를 연인에게 안겨주기 위해서다. 장미꽃을 선물한다는 뜻에서 '로즈데이(rose day)'라고 붙여진 이 날에 애인이 없는 사람들은 카레라이스를 먹으며 내년을 기약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로즈데이가 왜 어떤 유래로 생긴 지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와 더불어 사랑의 전도사로 대표되는 장미가 종묘 값과는 별도로 한 뿌리 당 1천원이 넘는 로열티를 주고 수입되는 현실을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국내에서 거래되는 장미는 현재 50여 종으로 전량 외국의 육종회사가 개발한 것들이다. 연간 판매고가 100억원을 넘어섰다는 통계도 있다. 식물 종자는 더 이상 생명자원을 이유로 단순히 보존되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확보를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만 하는 하나의 '상품'인 것이다. 식물 유전자 사관학교, 한택식물원 종자를 둘러싼 소리 없는 전쟁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20년이 넘는 세월을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야생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 야생식물의 보금자리이자 세계적인 규모의 식물원을 맨손으로 일군 이택주(토목 64년졸) 동문. 좁다란 시골길을 따라 도착한 한택식물원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 것은 이 동문이 아닌 비봉산 자락에 안긴 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였다. "우리나라 자생식물은 수억 년 동안의 지구 변천을 겪으며 고유한 유전자를 자지고 있습니다. 그 것을 이용해 무엇을 만들어 갈지 아무도 모를 만큼 유전자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확보를 위해 전 세계가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죠. 종자는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개체를 땅에 키우면서 보존하는 것입니다." 이 동문은 우리나라가 우수한 종을 많이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자전쟁에서 뒤쳐지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미스킴 라일락'을 이야기한다. 국제 라일락 시장에서 가장 비싸게 팔리고 있는 '미스킴 라일락'의 조상은 한국에만 서식하던 물푸레나무과 꽃나무였다. 1947년 한 미국인이 북한산 백운대 부근 정향나무에서 씨 12개를 받아가 이 중 한 개체에서 얻은 품종이 바로 미스킴 라일락. 전 세계 꽃 시장의 40퍼센트를 점유할 정도로 엄청난 매매 규모를 자랑하는 이 종을 우리는 그 기원도 모른 채 역수입했다는 것이 이 동문의 설명이다. 한택식물원은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식물유전자 보존을 위한 효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생식물과 이 동문의 기이한 인연은 그의 나이 40대 초반 무렵에 시작됐다. 가수 남진 씨의 '저 푸른 초원 위에'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만치 전원생활에 대한 매력이 넓게 퍼졌던 70년 대 초, 이 동문은 돈을 많이 벌어 고향에서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유년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낙향했다. 그가 처음 시작한 것은 낙농사업. 그러나 제 1차 소파동으로 인해 손해만 잔뜩 보고 낙농의 꿈을 접어야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조경수를 심는 것. 기왕이면 좋은 나무를 심자는 생각에 유럽의 식물원을 둘러보던 그는 지구상에서 식물원이 없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환경보호는 식물보호에서 시작돼야 "우리는 기초과학 중의 기초과학인 식물학을 접어두고 중화학 공업 등 돈 되는 것에만 골몰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도 기초과학을 중요시해서 식물원을 건립했지요. 외국의 퍼스트 레이디가 오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식물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도 제대로 된 식물원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럼 내가 한 번 해보자'하고 시작한 것이 이 어려운 작업의 시초가 됐지요." 이 동문이 힘주어 표현한 '어려운 작업'이라는 말에는 지난 20여 년 간의 고단한 역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동안 이 곳에 투자된 자금만도 1백 억이 훌쩍 넘었다고. 대대로 물려받은 선산이라 부지 비용이 들어가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 비용은 순수하게 자비로 충당된 것. 자금 사정이 어려워 고민하며 지샌 밤은 자생식물을 공부하면서 보낸 시간이기도 했다. 식물 관련 책을 끌어안고 공부할수록 식물원에 대한 애착은 더 커졌고 중도에 포기하면 아무도 이 작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명의식도 높아갔다. 그러나 정작 이 동문을 힘들게 했던 것은 재정적인 압박보다는 식물원에 대한 우리사회의 철저한 무관심과 무지였다. "1992년 리우 회담 결과로 생물다양성 협약이 체결돼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한 실천들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요. 한국도 그 협약에 따라 환경부에서 자연보존법을 제정했습니다. 지난 2001년에는 '자생지와 희귀식물 보전지구'로 지정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정작 필요한 지원은 거의 없었어요. '무슨 쓸 데 없는 짓이냐'는 반응이었죠. 단순히 유리 온실을 지어서 그곳에 관목식물이나 들이는 것이 식물원의 전부로 생각되는 현실입니다. 불고기 집이 커다란 정원을 뜻하는 '가든'으로 둔갑하기도 하지요.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조경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환경이 성장의 논리를 극복해 가는 지금, 환경운동의 첫걸음도 식물로부터 시작돼야한다는 것이 이 동문의 소신이다. 잔디를 심으면 지렁이나 땅강아지가 생기고, 잔디를 갉아먹는 벌레가 생기고, 또 그것을 잡아먹는 새가 날아온다는 것이다. 쓰레기 폐기물 등 결과적인 것만 보지말고 환경을 살릴 수 있는 기본부터 정확하게 짚고 넘어가자는 것. 이와 함께 식물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도 땅을 일궈 식물을 키워봐야 한다는 것이 이 동문의 생각이다. 이렇듯 식물에 대한 이 동문의 애착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세계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자연 계곡을 따라 조성된 이 공원은 자연생태 조건과 동일하게 꾸미느라 8년이라는 긴 세월을 공들인 곳이다. 깽깽이풀과 복수초, 노루귀, 하늘매발톱, 금낭화 등 봄꽃이 지고 나면 여름꽃이 피고, 다시 그 자리에 가을꽃이 피는 자연의 순환과정을 따른 곳으로 겨울을 제외하면 1년 내내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원은 '나의 것' 아닌 '모두의 것' 전국의 섬과 산, 들판을 누비며 이름도 잘 모르는 자생식물을 일일이 책을 통해 확인하고, 채집하며 옮겨심기 시작한지 어언 24년. 이 동문은 한택식물원이 30만평 넓이에 토종 수목류와 자생화 2천 4백 여종을 비롯해 외국종 6천여 종이 자라고 있는 세계적인 식물원임을 자부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식물연구소와 생태학습원을 설립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 이 동문이 식물원을 공익법인으로 등록한 것도 식물원은 결코 개인 소유가 아닌 모든 사람들의 공유물이라는 그의 고집 때문이다. "성공이라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합니다. 제 나이가 되면 젊었을 때 화려했던 사람들이 대부분 은퇴를 하지요. 하지만 저는 지금에 와서 꽃이 펴서 죽을 때까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동문을 뿌리 하나에 대를 4번 갈고 마지막 죽으면서 백 년에 한 번 처음 꽃을 피우는 대나무꽃에 빗댄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중간에 포기 안 한 게 천만 다행이다"라고 너털웃음을 짓는 이 동문에게서 식물원 입구에 자리잡은 키 큰 낙락장송의 기상을 엿보았다. 학력 및 약력 이택주 동문은 1964년 토목과를 졸업하고 1970년부터 1978년까지 동국대에서 도시행정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1968년 신한기술원에 입사한 이 동문은 사단법인 이수토지구획 정리조합 업무부장과 사업소장, 학림건설 상임고문을 역임하고 1979년 고향인 용인시에서 한택식물원을 건립했다. 현재 사단법인 자생식물단체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 동문은 한국식물원협회 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하기도 했다. 주요 상훈으로 1995년 환경보전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1998년 '야생화농의 소득증대를 위한 우리 꽃 박람회' 농림부 장관상, 1999년 '소득증대를 위한 우리 꽃 박람회' 환경부 장관상, 2001년 경기도지사가 수여하는 농어민 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15

[교수]`마케팅은 성장 아닌 생존전략`-경영학과 예종석 교수

1923년부터 내려온 미국 내 25개의 선도 브랜드 중 20개 브랜드가 6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통계 결과가 있다. 아이보리, 코카콜라, 맥도널드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브랜드들이 확고부동한 지위를 지켜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무엇보다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 있다. 이같이 기업 경쟁력 유지의 핵심이 되는 마케팅은 그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근래 우리나라의 기업들 역시 마케팅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지만, 아직 선진 기업들에 비하면 그 실행 능력에서 많은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차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학자가 있다. 그는 나아가 '국가마케팅을 통해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임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경영대 경영학과 예종석 교수의 말이다. 마케팅의 실용성과 합리성에 주목하라 마케팅 개념이 처음 경제사회에 도입된 것은 생산과 소비를 연결시켜주는 교환시장이 형성되면서부터다. 이후 기업 경영의 관점은 과거의 공장·제품 중심에서 시장 중심, 고객중심으로 변화해 왔다. 뿐만 아니라 갈수록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마케팅에서 개인별 대응 차원의 마케팅으로, 더 나아가 정보 시스템을 이용한 개별 고객과의 신속한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실현시키는 방식으로 그 방점이 옮겨지고 있다. 마케팅 전략의 이 같은 변화 추세를 놓고 예 교수는 마케팅이 지닌 실용성과 개방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말한다. "마케팅은 매우 실용적이고 개방적인 학문입니다. 물론 이론적 근거는 다른 인근 순수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져다 쓰지만, 그것들을 실제 경제상황이나 기업에 맞게 분석하고 사용하는 것은 마케팅의 몫입니다. 실질적으로 마케팅은 기업과 시장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 즉 매개체 역할을 하는 것이죠. 기업에게는 시장기회를, 소비자에게는 욕구충족을 제공함으로써 마케팅의 역할은 대단히 명확하고 중요해집니다. 또한 그 중요성은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욱 커지는 것이죠." 예 교수의 본래 전공은 경제학이다. 경제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마케팅 과목을 수강한 것이 전공을 바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정(假定)'의 학문이라는 경제학에서는 알 수 없었던 현실성과 실용성을 마케팅이란 학문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예 교수는 그의 주전공인 '소비자행동 이론'에 있어서도 경제학에서는 유틸리티(효용) 이론을 설명하는데 비해 마케팅에서는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배경을 가지고 분석함으로써 더욱 합리적으로 접근된다고 설명한다. 경제난 속 마케팅 축소는 '자살행위' "현재 국내 기업들의 마케팅에 대해 '관심'은 매우 높지만 '실제'는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전문적인 마케팅 인력이 부족하고, 마케팅 직급 역시 기타 부서에 비해 아직도 낮은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이 있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마케팅 담당 임원도 부족한 실정이죠. 이런 면에서 마케팅의 중요성을 제대로 못 깨우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이겨내기 위해선 전문적 마케팅 인력 양성이 매우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는 경영대학 안에 마케팅 학과가 따로 있죠. 우리도 마케팅 과목 몇 개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더욱 세분화시켜 발전해야 할 것입니다." IMF이후 최악의 경제난이라는 요즘, 경기 불황에 따른 어려움은 다른 어떤 경제주체보다 기업들이 먼저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취하는 대응 전략은 대부분 비용과 인원 절감으로 나가기 쉽다. 그 중에서도 마케팅 관련 부분은 기업들이 가장 쉽게 구조조정의 칼을 댈 수 있는 부분. 그러나 예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자살행위'라고 단언한다. 마케팅 없이는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은 궁극적으로 기업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우리 경제가 어려움은 수출이 안 되는데 있고, 수출이 잘 되더라도 흑자폭이 작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기업의 수출품의 부가가치가 적기 때문이죠. 이를 바로 잡으려면 일류 브랜드를 만들고 브랜드 자산 가치를 극대화하는 경영을 해야 합니다. 또한 정부의 국가마케팅 전략도 필요합니다. 국가 이미지를 상승시킴으로써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에게 더 큰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경영'의 전략적 자원 '겸손함' 예 교수는 자신의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선호도가 결코 높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출석 규정도 까다롭고 과제와 발표도 타 수업에 비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또한 학점 역시 후한 편은 아니라고. 충실한 강의일수록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말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예 교수는 졸업생들이 찾아와 '정작 수업을 들을 때는 힘들었지만 사회생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귀띔한다. 하지만 아직 본교의 학생들에게 아쉬운 점은 바로 '겸손'이라는 덕목이라고 덧붙인다. "세상을 살아가는 제일 좋은 전략은 겸손함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함은 노자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지요. 더불어 기본적인 예의도 지켰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경영대 앞에 서 있으면 수많은 교수님들이 지나가시는데, 학생들이 그걸 보면서 담배를 피며 인사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부모님들을 무시하는 것과 같은 행동이에요. 학교라는 공간은 제일 관대한 곳입니다. 사회에 나가면 야단치는 사람이 없죠. 다만 외면하고 낙오시킬 뿐입니다. 겸손함이란 자신의 잠재적 브랜드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인생 경영의 중요한 전략입니다." 학력 및 약력 예종석 교수는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경제학 학사학위를, 이후 인디애나대에서 경제학 및 경영학 석사,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6년 경영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현재 마케팅학회 편집위원장, 한국경영연구원(KMDI) 연구위원, 한국소비자학회 고문을 맡고 있으며, 제일모직과 두산그룹의 사외이사직도 겸임하고 있다. 한편 본교 경영연구소 소장과 경영대학원 마케팅 주임교수직을 맡아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국내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 2000년 창립된 아름다운재단의 정책자문단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1% 나눔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15

[학생]`평행봉에서 이룬 꿈` 종별체조선수권 3관왕 체대 고준웅 선수

지난 2일 제주 한라체육관. 본교 고준웅(체대·체육2) 선수가 평행봉에서 E난도 기술을 구사하며 공중에 몸을 띄운 순간 대회장은 일순 침묵이 흘렀다. 아찔한 순간이 지나고 고 선수가 한 마리 새처럼 착지를 마치자 쥐 죽은 듯이 조용했던 대회장은 비로소 갈채와 환호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환한 웃음으로 관중에게 답례하는 고준웅 선수. 그는 2003 종별체조선수권대회에서 링과 평행봉 부문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영광을 안았다. 한편 고 선수의 활약에 힘입어 본교 체조부는 단체전 우승을 하는 쾌거를 함께 안기도 했다. 위클리한양은 링, 평행봉, 단체 우승의 3관왕을 차지한 체조 유망주 고준웅 선수와 매트 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링과 평행봉에서 금메달을 땄는데, 자랑할 수 있는 기술은 무엇인가? 링에서는 링을 잡고 몸을 숙이면서 버티는 자세인 E난도 '수왈로' 동작을 들 수 있다. 공중에서 완벽하게 두 바퀴를 돌고 다시 봉을 잡는 E난도 '샤링모리스' 는 평행봉에서 보인 기술이다. 팔에 힘을 기르기 위해서 모래주머니를 단 벨트를 맨 채로 링을 잡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연습을 계속 했다. - 이번 대회 중에 가장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대회 중에는 그다지 어려웠던 적이 없다. 대회 준비 과정이 더 힘들었다. 체조 경기는 마루, 뜀틀, 평행봉, 링, 도마, 안마의 여섯 가지 종목으로 이루어진다. 한 종목 당 열 한 개에서 열 두개 정도의 동작이 들어간다. 여러 동작을 연결해서 반복 연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한 종목을 네 번씩만 연습해도 여섯 종목을 모두 하면 스물 네 번이다. 이렇게 하는데 세 시간 정도가 걸렸다. 오전 오후로 나눠서 하루에 사십 번 씩 여섯 시간 정도를 훈련했다. - 보통 체조는 초등학교 때 시작한다고 하는데. 입문의 배경이 궁금하다. 한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다. 수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재주넘기를 잘 해서 선생님들의 눈에 띄었다.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체조로 유명한 수원 영화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때는 체조가 뭔지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체조를 시작한 게 정말 잘한 일 같다. 대학에 가는 것이 내 어릴 적 꿈이었다. 시골에서 대학가는 게 그만큼 힘들었기 때문이다. 체조해서 대학에 왔으니 체조가 내 꿈을 이뤄준 셈이다. - 체중 조절을 위해 점심을 굶는 여중생 체조선수를 본 적이 있다. 체조선수가 된다는 것이 그만큼 힘든 일인 것 같다. 체조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고등학교 때가 제일 힘들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못 먹고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같은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 연습해야만 했다. 빵이 너무 먹고 싶어서 코치 선생님 몰래 매점에 가서 빵을 입에 물고 오다가 걸린 적도 있다. 그 때 코치 선생님이 내 머리를 빡빡 밀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뜀틀 연습을 하다가 왼쪽 팔을 다친 적이 있다. 다친 곳에 핀도 박고 세 번이나 꿰맸다. 체조선수를 할 수 없을 거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많이 힘들었다. 역기 운동을 해서 지금은 다쳤던 팔에 근육이 많이 붙었다. 아직도 팔이 잘 구부러지지는 않지만 체조하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 얼마 전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은가? 이번에는 선발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태릉선수촌에서 1년 동안 생활한 경험이 있다. 내가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딴 류옥렬 선수다. 당시 체조 부문에서의 동메달은 정말 갚진 결과였다. 앞으로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따고 싶다. - 향후 계획이 있다면. 가까이는 1달 앞으로 다가온 유니버시아드대회 선발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대학을 졸업한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계속 하고 싶다. 어떤 공부를 할지는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 후에는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거나 체육 교사가 되고 싶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08

[동문]주택문제, 성장과 안정의 접점 찾는 건교부 도시건축심의관 서종대 동문

지난 1일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주거권과 재개발 명분을 놓고 오랜 갈등을 끝내고 마지막 14가구가 철거되면서 달동네 난곡은 서울시민의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재개발과 주거권, 그린벨트와 재산권 등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갈등의 요인을 내포하고 있다. 환경보존이나 공공개발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한다고 해서 주거권과 재산권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가 부정되거나 침해되어도 안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재개발과 지역개발계획에 대한 주무부처는 건설교통부. 이 곳에서 미래를 생각하는 도시 계획과 현실적 해결책의 접점을 찾아가는 도시건축심의관 서종대 동문(경제 83졸)을 만났다. 난개발 해결, 제도보다 시행이 중요해 산업기반 및 인구가 수도권으로 집중되면서 발생한 난개발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부상한지 오래다. 경기도 지역, 서울의 외곽에서 쉽게 목격되는 난개발의 폐해는 대부분 대단위 주거지역은 형성되었음에도 그에 따른 생활의 기본적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못한 데서 야기된다. 무분별한 대도시 위주의 산업개발과 수도권 팽창이 부른 산업화의 생채기이다. 서 동문은 이러한 난개발 문제가 올해부터 시행되는 '국토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의해 일정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 법은 지금까지 무분별하게 진행된 국토 개발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한 법률입니다. 과거에는 수요가 생긴 다음에 기본 시설이 따라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 농지 한가운데 덩그렇게 놓인 아파트들이 생겼죠. 하지만 계획도시에 들어가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수요가 어느 정도 발생할 지역을 사전에 선정, 개발함으로써 사람들이 충분히 살만한 여건을 만들어준 다음 입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법의 기본 취지입니다." 법의 취지가 좋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을 수는 없는 법. 서 동문은 이러한 명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제도를 만드는 것보다 올바르게 시행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제도를 만듦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 어려움에 대해 제도를 보완해 나가는 사후 행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 동문은 바로 이러한 사후 적용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 말한다. 성장과 안정, 두 마리 토끼 잡는다 "재건축 문제, 그린벨트와 주택보급 계획 등은 내수산업의 성장이나 안정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주택정책과 같은 경우,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의 중간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정정책과 상당히 유사하죠. 성장 위주로 많은 주택을 보급하면, 건설업이 살아나고 투기심리는 안정되지만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안정 위주로 수요에 따른 공급만을 고려하면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시책이든 두 가지를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서 동문은 재건축 문제와 그린벨트 문제에 있어서 개인권을 상당히 중요시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무조건적인 정부 중심의 사고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린벨트의 경우, 개인권에 대한 고려나 확실한 조사 없이 무분별하게 지정되어온 경향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잘못된 정책에 의한 피해는 구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서 동문의 입장. 올해까지 진행되는 그린벨트 재조정 계획은 그런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다. 풀 곳은 확실히 풀어주고 지킬 곳은 강하게 지킨다는 것이다. 경제관계부처 최연소 국장 지난 3월, 참여정부의 각 부처는 대대적인 인사이동을 단행했다. 그 핵심은 능력 위주의 인사이동이었고 이른바 '사람에 맞추는 자리가 아니라 자리에 맞는 사람을 쓰겠다'는 신 정부의 인사 원칙이 반영된 것이었다. 3월에 있었던 인사를 통해 도시건축심의관에 발탁된 서 동문은 경제부처 '최연소 국장'이란 칭호를 함께 받았다. 다소 빠른 승진이 아니냐는 말에 손사래를 치는 서 동문은 무엇이 성공인지 모르지만, 성공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직업과 지위라는 것은 인생의 전 과정 속에서, 자기가 필요한 자리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자리에 조금 빨리 온 것은 이 자리에서 저의 어떤 부분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저의 능력이 탁월해서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연연해서 말을 하지만, 그것은 표현의 수단이 없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관점에서 직장과 지위라는 것은 사회에 얼마나 도움되는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일을 하면서 내 맘이 편안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판단 기준입니다." 공직은 '사랑의 실천' 구현할 최고의 공간 서종대 동문은 건설교통부의 토지, 주택, 기획예산 담당을 거쳐 청와대 SOC 기획단, 경제수석실 등 전체적인 업무를 조율, 기획하는 일을 해왔다.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살만한 곳에서 일해온 그 이지만, 서 동문에게는 오히려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자신의 주 전공분야인 주택과 토지이용에 대한 실무 경험을 충분히 쌓을 수 없었다는 것.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그가 품은 자신의 분야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저는 솔직히 어떤 자리에 오르고 싶다거나 모든 일을 관장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건 청와대에서 많이 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제가 담당하고 있는 주택과 토지이용에 있어서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이제 주택보급률이 100퍼센트를 넘었다고 하는데, 선진국에서 사용하는 인구 1000명당 주택수로 한다면 가야 할 길은 멀었습니다. 1가구 1주택의 명제에서 벗어나 집이 필요한 이들에게 모두 집을 공급할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품은 직업 철학을 모교의 건학이념에서 찾는다. 그 역시 재학생 때는 건학이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재학시절 무의식중에 들어왔던 사랑의 실천, 성실, 겸손과 같은 단어들이 지금 그에게 큰 힘이 되고 있노라고 고백한다. "모교의 건학이념은 정말 어느 곳에 내놓아도 주목받을 마음가짐입니다. 단순히 학교에 필요한 정신이라기보다 사회 속에서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 자산이 된다는 거죠. 저는 많은 후배들이 공직에 진출했으면 합니다. 본교의 건학이념을 가장 잘 실천할 수 있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어떤 특정인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닌, 공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후배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학력 및 약력 서종대 동문은 1981년 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2년 뒤인 1983년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서 동문은 이후 1991년, 영국 버밍험대에서 경제개발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건설교통부에서 토지정책, 주택정책, 기획예산을 담당한 서 동문은 1995년부터 청와대 SOC 기획단, 경제수석실 과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필리핀대사관 1등 서기관을 역임한 후 건설교통부로 돌아와 주택관리, 주택정책, 예산, 총무과장 등을 거쳐 지난 3월부터 건설교통부 도시건축심의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08

[교수]오선에서 잃어버린 음악의 원류 찾는 음악대학 관현악과 강해근 교수

'메트로놈'이란 작고도 앙증맞은 기구가 있다. 시계추의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약 15센티미터의 흔들이 아래쪽 끝에 추가 달려 있고, 진동 주기는 위쪽에 있는 추를 오르내려 조정하며 태엽장치로 흔들이를 진동시킨다. 흔들이는 똑딱거리는 소리를 내고, 벨을 울려 박자를 알린다. 베토벤이 귀가 멀자 그의 주치의이자 친구인 멜젤(Melzel Metronom)이 베토벤을 위해 발명했다는 기구다. 주로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들이 박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용하는 메트로놈은 '흥에 겨워' 악보의 박자를 쉬 놓치고 마는 초보 연주자들에게 '재현'의 기준을 새삼스레 일깨워주는 기구다. 이러한 메트로놈처럼 현대음악의 낭만성에 빠져 있는 대중들에게 '오선의 룰'을 다시금 환기시키고 나선 음악가가 있다. 음악연구소 소장으로 최근 '정격연주회'를 주최하며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 시작한 음악대학 관현악과 강해근 교수. 그는 '달콤하기만 한 요즘 연주에 질렸다면, 옛 음악이 들려주는 예스러움의 소박함에 귀를 기울여 보라' 말한다. 바흐는 바흐답게, 당대의 '정신'을 연주하라 "아직 우리나라에서 정격연주의 역사는 극히 짧다고 말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정격 연주회는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우리 국내 청중들의 반응은 물론이고 연주회를 위해 내한한 국외 연주자들의 반응이 더욱 좋았습니다. 내가 기획한 일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더없이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정격연주란 작곡 당대의 악기와 연주방식으로 해체·복원하는 연주방식이다. 외국에서 정격연주의 역사는 이미 1세기를 넘어다보고 있고, 음반 쪽에서도 이미 큰 흐름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당대의 정신을 복원된 연주를 통해 엿보겠다는 것이다. 후기낭만주의 이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당대'의 음악을 원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대중들은 동시대의 음악을 포기하고, 오래된 고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강 교수는 이를 두고 20세기 '음악사의 비극'이라 말한다. 과거의 시대정신이 숨쉬는 고전을 오늘의 낭만으로 재현하려다 보니, 본래의 빛을 바래기 시작했다는 것. 이른바 '바흐는 바흐답게 연주하라'는 강 교수의 주문은 정격연주의 근본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우리는 '옛날' 음악만을 하고 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지요. 그런데 '옛 음악'을 들을 때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습니다. 첫째는 옛 음악을 주관적 해석을 통해 현대에 다시 들려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연주 방식에 있어서 주류를 차지합니다. 둘째는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당대의 모든 상황을 당시의 시각으로 보고 복원해 내는 입장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격연주이지요." '음악회'는 없고 '이벤트'만 있다. 한세대 유영재 교수는 작금의 국내 음악계가 처한 상황에 대해 극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나라에는 음악회는 존재하지 않고 이벤트만이 있을 뿐이다. 고전음악이라는 단어 자체가 대중음악과 상반된 개념으로 쓰이면서도 고전음악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중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이다' 한 교수의 지적과 같이 지금도 대중적 취향을 좇기에 급급한 국내 음악계에 있어 정격연주에 대한 관심과 역사는 그다지 오랜 세월을 거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격연주를 주창하는 음악가들은 정작 서두르는 기색도 없다. 정격연주에는 단순히 음악적 기술이 아닌 '지식'의 문제가 내재되어 있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 정격연주를 그대로 도입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덜 된 느낌이 있습니다. 정격연주에 대한 관심이 이미 범사회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했고, 자연발생적인 애호가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육계에서 정격연주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해외 유수의 음악교육기관들은 정격연주를 이미 하나의 커리큘럼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국내의 상황은 아직 그렇지 못하죠. 정격연주에는 먼저 '지식의 문제'가 놓여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당대의 룰과 관행, 상황 등 단순히 음악적인 지식이 아니라, 시대를 오르내리는 음악사적 식견이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정격연주가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 지금에야 부활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강 교수는 정격연주에 대한 관심이 늦게 시작된 데에는 고증에 필요한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고, 현대음악이 사람들의 기대를 과연 충족시켜 주는지를 먼저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대다수의 연주가들은 옛 음악만을 연주하면서도 당대의 시대정신을 반영치 못했고 그만큼 청중에게 위안을 주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강 교수는 최근 정격연주에 대한 국내외의 높은 관심을 두고 음악사에 있어 가히 100년만의 성과라 얘기하기도 한다. 기술에 앞서 '음악적 소양'이 중요해 바흐의 마테수난곡을 가장 좋아한다는 강 교수는 첼리스트다. 모두가 얘기하듯이 첼로는 바이올린 등 다른 현악기에 비해 인성(人聲)에 매우 가까운 음역을 지니고 있다. 쉽게 말해서 표현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또한 강 교수는 첼로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으로 중후한 음색을 꼽는다. 대학시절 첼로를 공부하다가 어느 순간, 연주자로서의 삶보다 교육자로서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강 교수. 그래서 현대 유명 연주가들을 양성하는 미국이 아니라, 고전의 고향인 독일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음악을 공부했다는 그는 훌륭한 연주가의 조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음악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물론 악기를 다루는 기술적 부분입니다. 이른바 '탄탄한 기본기'가 매우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술은 오선상의 메시지를 재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 기술을 통해 정작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연주자 내부의 문제입니다. 자신의 교양과 음악적 소양, 품성 등이 결국 훌륭한 연주의 바탕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청중들도 이젠 음악을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들으며 카라얀의 인상적인 지휘를 떠올리지 말고, 소리의 이면에 있는 바흐를 찾아보세요." 학력 및 약력 강해근 교수는 1947년 전라북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일찍부터 개화된 내력이 있어 어릴 적부터 집 다락에 있던 오래된 악기들을 꺼내 놀았던 기억으로 자신의 유년시절을 소개한다. 이후 학교에 있던 풍금을 쳐 본 기억이 유년시절 악기와 가진 인연의 전부라고. 전주에서 인문계 고교에 진학한 후 음악부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여기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됐다는 소박한 고백도 숨기지 않는다. 1973년 서울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1977년 독일 뮌헨루드비히막시밀리안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R. Strauss음악원을 거쳐 현재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음악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08

[교수]"삼신할머니가 영어로 뭐야? 네이버 검색창에 치지마"

서정수(인문대·국어국문) 명예교수가 자신의 퇴직금을 털어 '한국언어문화사전' 영문판을 출간해 화제다. 이 사전은 일반 한영사전 기능 외에 역사·지리·종교·사상 등 36개 분야에 걸쳐 한국 문화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기존 한영사전에는 우리 문화에 대한 내용이 빈약했을 뿐 아니라, 영어 표현에 맞지 않는 용례가 많아 영어식 표현을 쓰기 위해 영한 사전을 다시 들춰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위클리 한양은 한국 최초의 영문판 언어문화사전을 편찬한 서 교수를 만나 출간 배경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들어보았다. - 평소에 보던 사전보다 굉장히 두껍다. 한국언어문화사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단 크기 때문만은 아닐 것 같은데. 우선 일반 한영사전과 달리 8백여 장의 사진과 함께 김치, 떡, 전통 놀이, 사계절 풍습 등 전통적 생활 문화어에 대해 자세히 배울 수 있다. 사진을 직접 찍지는 못했지만,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대학교 박물관 등을 돌았다. 사진을 통해 우리의 언어와 문화를 쉽게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이 사전을 통해 최신의 영어용례를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전까지는 쉬운 영어로 우리 언어와 문화를 풀이하는 서적이 없었다. - 이번 사전은 우리말과 영어의 미묘한 문법적 차이도 풀이했다고 하는데. 우리가 정관사와 부정관사를 제대로 구분 못하듯 외국인들은 '-는', '-이', '-가'같은 조사를 어려워한다. 예를 들어 '나 고기는 안 먹어'라는 문장에는 '고기는 안 먹지만 다른 건 먹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는'이라는 조사 한 글자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외국 사람은 이러한 미묘한 차이를 모른다. 이런 조사와 어미의 의미와 쓰임을 상세하게 풀이한 것도 다른 사전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 퇴직금을 털어 이번 사전을 출판했다고 들었다. 사전 출간의 배경이 궁금하다. 한국어를 외국인에게 가르친 경험이 있다. 우리 문화에 대한 풀이가 되어 있는 서적이 거의 없어서 한국 전통 음식이나, 놀이 문화를 설명하는 데 힘이 들었다. 그 때 우리 문화를 외국어로 소개하는 서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이번에 편찬된 사전을 통해 외국인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를 잘 모르는 교포 2·3세도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을 계획중인 학생이나 해외에서 근무할 외교관에게도 이 사전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로도 번역을 해서 우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 한글을 영어로 표현하다보니 더 힘이 들었을 것 같다. 편찬과정에서의 에피소드는 없는가? '물가에서 놀지 마라'를 영어로 옮기면서 있었던 일이다. 나는 그 문장을 'Don't play at the water side'로 번역했다. 그런데 영어 교정을 봐줬던 원어민은 내 번역은 콩글리시라며 'Don't play by the water'라고 쓰는 것이 더 일반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at'에는 물 속에서 논다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면서. 그런데 '물가에서 놀지 마라'에는 '물 속에서 놀지 말라'는 속뜻이 있다. 결국 사전에는 'Don't play at the water side'를 실었다. (웃음) 이처럼 영어로 알맞은 표현으로 고쳐오면 한국어 본래의 의미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점이 가장 힘들었다. - 사전 편찬 후 아쉬운 점이 있다면? 분량이 많아서 들고 다니기가 불편한 것이 단점이다. 나중에 좀 더 작은 크기로 만들어서 간편하게 들고 다니면서 쉽게 쓸 수 있도록 하겠다. - 6년 동안 사전 편찬에 매달렸는데, 한글문화의 세계화를 위한 향후 계획이 있다면? 한글로 키보드 상에서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적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영어를 한국어식 발음으로 적어서 정확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five'는 '파이브'도 '바이브'도 아니다. 현 한글을 바탕으로 국제음성기호(IPA)와 같은 한글 음성기호를 만들고자 한다. 영어 단어를 놓고 기능키 하나만 누르면 그 단어의 발음 기호가 표시되는 CD-ROM이 만들어지면 'f'나 'v'와 같이 한글에 없는 영어 발음을 정확하게 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01

[교수]난치병 치료의 '희망'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김철근 교수

올해 초,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는 인간복제회사 클로네이드사의 인간복제 성공 발표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이 사건은 인간복제가 가능한가라는 과학적 논의에서부터 윤리적 타당성과 같은 본질적인 논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다. 결국 이 사건은 클로네이드사가 인간복제에 대해 실질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과학과 윤리 사이에 내재한 잠재적 갈등들을 범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당시 인간복제를 둘러싸고 과학자들과 윤리론자들 사이에 전개됐던 논쟁의 중심은 바로 '배아줄기세포'에 관한 것이었다. 생명윤리 VS 과학발전, 그 접점을 찾아라 '줄기세포'란 신체 내에 있는 모든 조직을 만들어 내는 기본적인 구성요소로 뼈, 뇌, 근육, 피부 등 모든 신체기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만능세포다. 수정란 분열 초기의 만능 줄기세포는 수정란이 2개로 분열되어 탄생한 일란성 쌍생아처럼 세포 하나 하나가 곧 한 명의 태아가 될 수도 있어 이를 연구용으로 사용할 경우 엄청난 윤리 논쟁을 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서울캠퍼스 자연과학대학 김철근(생명공학전공) 교수의 생각은 분명하다. 생명 윤리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인류 번영을 위한 연구를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인 제가 윤리 문제에 대해 깊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세포하나 하나가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체세포 복제가 가능한 시대에 어떤 세포든지 하나만 가지면 하나의 생명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결국 현재의 논의처럼 인간이 어디서부터인가라는 식으로 논의가 된다면 그 어떤 연구도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즉 연구의 원천적인 제한보다는 엄격한 통제를 통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거죠. 혹자는 생명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죽어가는 생명들을 방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는 이러한 생각에서 국내 줄기세포 연구자들과 의사들을 중심으로 2001년 대한 줄기세포연구회를 창립하고 보건복지부에 줄기세포주 은행을 제안했다. 은행을 통해 과학 발전을 위한 목적으로만 인간배아세포를 제한적으로 제공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이 사업은 이해 관계에 놓인 각계 단체들과 기존 줄기세포주를 보유한 연구소들의 반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 윤리와 과학 발전, 이 두 가치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이 좌초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배아줄기세포, 난치병 치료 위한 새로운 '희망'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인류에게 극복해야할 질병이 많이 있다. 그 중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이 신경계통 질병에 대해서는 신이 과학의 발전을 비웃기라도 하듯 치료법에 대한 연구는 갈길이 멀기만 하다. 하지만 김 교수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이러한 신경계통 난치병 치료에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신경들은 한번 손상을 받으면 재생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뇌신경이나 척수신경과 같은 경우, 한번 손상을 받으면 복구가 안 된다는 거죠. 하지만 다양한 실험 결과, 배아줄기세포를 자극해 신경계통으로 분화시켜 넣어주었더니 기존 신경세포들과 연결이 돼서 작동이 됐다는 겁니다. 즉 배아줄기세포를 계속 보관할 수 있고 원하는 쪽으로 분화시킬 수 있다면, 이러한 질병들은 완치될 수 있습니다. 이 분야의 특성상 한 두 해에 되지는 않겠지만, 10년 정도 후에는 가시적인 치료로 연결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그의 말대로 신경계통 난치병 치료에 돌파구가 될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늦어졌던 이유는 추출과 보관상의 어려움 때문. 쥐의 배아줄기세포는 1981년경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인간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는 1998년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같은 후발주자들에게 늦게 시작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또다른 기회. 김 교수는 국내 불임관련 의학기술이 증명하듯 줄기세포 연구도 세계 수준에 비해 크게 뒤 처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 생명공학 붐이 2기입니다. 1980년대가 1기였죠. 당시에는 주로 제약회사들이 투자를 했었는데,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것은 당연합니다. 보통 10년에서 20년 정도 연구를 해야 하는 분야에 5년 정도 투자했다가 성과가 없어 사업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금은 기업들의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적극적인 투자와 인력 양성을 해 나가야 합니다. 비록 자본의 규모가 작아 문제가 있지만 적극적인 노력과 외국과의 협력체제를 강화한다면 다른 학문분야에 비해 전망이 매우 밝습니다" 생명공학시대 '100분의 1'을 잡아라 흔히 생명공학은 일반 과학 분야 중에서도 연구가 극히 까다로운 분야로 간주되곤 한다. 이는 학문상의 어려움 때문이라기보다 가시적인 성과가 쉽게 나오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 쉽지 않은 분야의 선택, 그 가운데에서도 생물의 기본 단위인 세포에 대해 연구하는 김철근 교수는 자신이 생명공학을 시작한 이유에 대해 '촌놈이었기 때문'이라 크게 웃으며 답한다.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십니다. 저 역시 유년을 시골에서 살면서 자연과 생물을 보고 자랐습니다. 어렸을 적, 개구리가 궁금하면 근처에 버려져 있는 유리병을 깨서 해부해 보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물, 그 중에서도 생물의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물을 때면 의례히 과학자, 생물학자로 썼습니다. 저는 생명공학을 하면서 공부해서 취업을 하겠다, 또는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보다 밥이야 굶겠느냐라는 식으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지금은 정보화시대라고 하지만 미래는 생명공학시대가 될 것이라 자신있게 말한다. 물론 생명공학이라는 분야가 장기적인 훈련을 받은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지만 미래를 뒤바꿀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공학을 하는 저 역시 이 분야가 다른 분야에 비해 연구에 필요한 자본 규모가 크고 연구분야에서 성공할 확률이 적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100개의 프로젝트 중에서 99개의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단 하나의 프로젝트만이 성공한다고 해도 99개를 만회하고도 남습니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높은 학문이죠. 생명공학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줄기세포연구, '한양네트워크'를 꿈꾼다 "저는 임상의사도 아니고, 의학자도 아닙니다. 저는 생명과학자이기 때문에 왜 줄기세포가 전능성을 가지고 분화를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지 분화를 억제하고 촉진시킬 수 있는지를 연구해 보고 싶습니다. 그 다음 문제는 다른 훌륭한 의학자나 임상학자분 들에게 맡기고 싶습니다" 김 교수는 자신이 생명공학자임을 강조한다.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분명하게 선을 긋는 그는 줄기세포 연구에 있어 본교의 인프라를 국내 최고 수준이라 평가한다. 의과대학에서는 줄기세포 관련 임상관련 학자들이 많고, 공대 역시 세포자극과 같은 공학적 연구인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가 꿈꾸는 '한양 네트워크'에서 생명공학의 미래를 보았다면 이는 단지 막연한 희망일까? "본교는 의대에 세포치료 및 조직치료 연구단이 있고 저희 생명공학 쪽에서는 이 분야와 관련해 BK21 연구단 사업을 3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통합 네트워크를 이뤄본 적은 없습니다. 분명 연계성이 깊은 학문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국내에 차병원이 연계적인 연구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만큼 우수한 공학인력까지 있는 곳은 없습니다. 기본적인 연구를 제외한다면, 이 훌륭한 인프라를 하나로 묶을 수 있는 기구를 조직해 보고 싶습니다." 학력 및 약력 김철근 교수는 1981년 본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서울대학교에서 세포생물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워싱톤주립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1990년 코넬대 의과대학원에서 분자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 미국 후레드허친슨암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수를 하며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국내외에 약 5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종양 억제 유전자의 프라이머쌍을 포함하는 암 진단용 벡터' 등 5건의 특허를 가지고 있다. 작년까지 '기간세포와 초기 발생분화' BK21 사업단을 주도했고 현재 한국분자생물학회 학술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5 01

[교수]원가 `다운`해상도 `업` 특허기술상 수상한 권오경 교수

'세상 참 좋아졌네. 핸드폰으로 맘껏 영화 보자' 권오경(공대·전전컴) 교수가 '고해상도 액정표시장치' 기술 개발로 중앙일보와 특허청이 공동 주관한 2003년 1분기 특허기술상 '지석영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초로 개발된 이 장치는 단가 절감, 고해상도 구현, 소비전력 감소를 이끌어 낼 액정 분야의 차세대 기술. 10년 전 초보적 연구 단계에 있던 우리나라의 액정 기술은 놀랄만한 성장을 거듭, 현재 그 생산량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위클리한양은 권 교수를 만나 수상 배경과 신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 특허기술상 수상을 축하한다. 수상 소감은? 별 거 없다. 다른 사람들이 기술이 좋다고 하니까 더 열심히 하라고 상을 줬다고 생각한다. - 새롭게 개발된 액정기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이번에 개발한 액정표시장치는 기존의 것에서 원가를 줄이고 해상도를 높인 장치이다. 액정표시장치는 가장 많이 활용되는 평면표시장치로써 우리가 자주 쓰는 노트북, 모니터 등에 사용된다. 이번 발명은 화소구조에 대한 특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보다 높은 고해상도의 장치를 개발하고자 했다. 데이터 라인 공유 화소 구조를 이용한 구동 방식을 이 장치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두 화소가 하나의 데이터 라인을 공유함으로써 데이터 드라이버의 개수가 감소되는 원리다. 쉽게 말해서 4천8백개의 데이터 라인 중 2천4백개만을 가지고 똑같은 성능을 가진 화소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 새로 개발된 장치는 핸드폰 크기 축소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라는데. 화면은 계속해서 커지는 추세에 있으므로 핸드폰 크기가 작아지는 대신 넓어진 공간을 활용해 더 좋은 해상도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지금 핸드폰 화면의 4분의 1정도 되는 크기에 같은 해상도의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이 기술이 핸드폰에 장착되면 영화도 고해상도로 맘껏 볼 수 있다. 비단 핸드폰 뿐 아니라 PDA, LCD 모니터, 텔레비전, 디지털 카메라 등에 이 기술이 응용될 수 있다. - 종래의 액정표시장치에 비해 이번에 개발된 신기술의 파급효과는 무엇인가? 우선 데이터 드라이버 수 감소로 모듈의 단가가 감소된다. 이번 발명품을 이용하면 약 1조원의 데이터 드라이버 가격을 절감할 수 있다. 또한 이 기술을 적용해 초고해상도 구현이 가능해지고 소비전력이 감소되어 한 번 충전해서 쓸 수 있는 휴대용 기기의 배터리 사용 시간이 증가된다. - 이번 신기술이 지닌 산업적 함의는 무엇인가? 상품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려면 성능이 좋으면서 가격은 저렴해야한다. 그래서 반도체 설계를 하는 사람으로서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다. 반도체 칩 가격을 낮춰야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단가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수를 줄이고자 했다. 전자 산업은 1950년대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래로 매 2년마다 단가가 절반으로 떨어졌고 성능은 매 3년마다 두 배로 좋아졌다. 그래서 가끔 기계공학 하는 친구들에게 '자동차는 매년 가격이 상승하는데, 우리는 DRAM만 보더라도 매년 가격이 떨어지지 않느냐'며 농담을 한다. - 새로운 액정표시장치 개발을 위해 함께 힘쓴 사람이 있다면. 우리 학생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대신 학생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가장 좋은 시설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학생들이 연구에 더 활발히 임했으면 좋겠다. 스스로가 공부하는 동기를 가지고 열심히 하면 더 훌륭한 작업 여건이 마련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관련 분야의 전망을 위해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 한국에는 두세 가지 분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두 분야를 다루고 있다. 또한 학교는 산업계와 같이 계속 일을 해나가야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공학 분야는 산업계가 앞서가기 때문에 산업계를 배제하고 학교에 앉아서 일을 해봐야 처질 수밖에 없다. 또한 원전 특허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의 기업들은 무형 재산에 대해서는 인정을 잘 안 한다. 하지만 특허권의 로열티는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며 생산을 많이 해봐야 노동력만 제공하고 공장만 짓는 것일 뿐, 돈 버는 사람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29

[교수]`안전문제는 기술의 이면에 있다`-시스템응용공학부 이재기 교수

1911년 마리 퀴리가 라듐을 발견해 노벨상을 받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1934년 알프스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연구 도중 피폭된 방사선으로 인한 백혈병으로 그녀가 고통스러운 말년을 보냈다는 비화는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현대 과학의 개가라 할 수 있는 원자력은 인류 문명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지만 한편으로는 그 위험성으로 인해 야누스의 얼굴에 쉽게 비유되기도 한다. 그러나 원자력과 관련한 연구가들이 입을 모아 주장하는 것은 방사능의 효용과 안전 문제에 앞서 범사회적으로 만연한 원자력에 대한 '몰이해'의 위험성이다. '방사선 안전'을 연구하는 서울캠퍼스 시스템응용공학부 이재기 교수는 원자력에 대한 논의가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쉽게 선정적으로 변질되는 현실을 누구보다 우려하는 학자다. 방사선 문제는 '기술'만으로 해결될 수 없어 "원자력이나 방사선은 문명의 이기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물론 부작용도 있습니다. 저의 주된 학문적 관심은 바로 이러한 방사선의 안전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현재 원자력 관련 시설의 안전도는 높은 수준이 아니라 완벽한 수준에 있습니다. 그러나 관련된 사회적 논의들은 원자력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논의가 비단 기술적인 측면에서 모두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은 분명합니다." 이 교수는 지난 1993년 본교에 부임하기 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는 대학에 오기 이전부터 방사선 피폭시 생물학적 영향은 물론 원자력 시설에 대한 사회적 수용 문제에 이르기까지 기술과 비기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다양한 연구의 관심을 표출해 왔다. 과학기술부 개발사업 과제의 하나로 그가 현재 진행 중인 '방사선 방호를 위한 표준 한국인 모델 설정' 연구 역시 그의 오랜 관심이 축적된 사업이다. "과기부 원자력 중장기 연구 개발사업 과제 중의 하나인데 전체 사업은 1년에 총 1400억 정도가 투자되는 대규모 사업이죠. 제가 진행하고 있는 것은 '방사선 방호를 위한 표준 한국인 모델 설정'이라는 과제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방사선에 노출되는 정도는 신체, 생물학적 조건에 따라 다른데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지표들이 서양인을 모델로 설정된 기준들이었죠. 제가 진행하는 과제는 한국인을 모델로 우리 국민의 표준형을 찾는 연구입니다." 이와 함께 이 교수는 현재 '우리 국민의 방사선 피폭 실태조사' 사업에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방사선 피폭이란 원자력과 관련된 직업에서 복무하면서 노출되는 직업상 피폭, 자연방사선 피폭, 병원 등 방사선 서비스 이용시 노출되는 피폭 등 다양하게 분류될 수 있다. 특히 자연 방사선의 주요 요소인 '라돈'은 공기 중에 포함된 것으로 지역에 따라 그 차이가 매우 크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연방사선인 '라돈' 피폭이 직업상의 피폭보다 심각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많은 이들은 알지 못한다. 이 교수의 계획은 이러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 국민의 '방사선 피폭 백서'를 발간하는데 있다. 아쉬운 것은 방사선 안전 분야에 있어 국내의 인력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것. "우리나라의 방사선 안전도는 선진국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련 인력 구조가 매우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방사선 안전을 위한 인력적, 제도적 인프라가 시급한 실정이지요. 특히 인력의 전문성을 보완하는 것은 매우 당면한 과제입니다. 현재는 이런 분야를 다루는 교육기관도 많지 않아요. 수요가 많으면 직업으로서 보장되고, 결과적으로 인력의 전문성도 높아지겠지만 지금까지는 다소 소외된 분야라고 할 수 있지요." 사회적 갈등 해소 위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방사선 안전에 대한 기술적 연구와 더불어 이 교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바로 원자력 시설 수용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의 문제다. 흔히 '님비(Nimby)' 현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는 방사능 시설 유치 문제는 비단 기술적인 해법만이 사태의 해결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선정적으로 치닫는 논의들을 다시금 차분하게 바라보는 것. 이 교수는 원자력 시설과 관련한 사회적 갈등의 핵심은 '지식'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하고 나선다. "우리 한양대 병원에서만 연간 약 40만명의 환자들이 X-ray를 촬영합니다. 이 방사선량을 다 합치면 우리나라 직무상 피폭량의 3배에 달하지요. 유엔의 통계를 보아도 자연방사선 피폭이 85%, 나머지 14%는 의료 방사선에 해당하고 직무상 피폭은 1% 정도에 불과합니다. 인근의 방사능 시설로 인해 주민이 피폭되는 양은 자연방사선에 노출되는 수준보다 결코 높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방사선 시설의 위험에 관한 논의들은 턱없이 과장되어 있으며 이러한 인식을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매우 시급한 과제입니다." 현재 정부는 핵폐기물 처리장을 위한 부지 선정 문제를 놓고 해당 지역 주민들과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 후보지로 상정된 울진과 고창 주민들의 반발은 정부의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 교수는 이러한 문제들에 있어 기술적 안전을 보장한 정부의 입장이나,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주민들의 입장, 어디에도 일방적인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원자력에 대한 주민들의 몰이해만큼이나, 엔지니어들이 쉽게 인식하지 못하는 주민들의 '심리적 요인'들. "냉정하게 말해서 '안전' 문제로 인한 지역 주민의 피해가능성은 사실 없습니다. 그래도 대중적인 인식은 '원자력은 위험하다'는 것이지요. 특정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이 들어서면 그 지역이 기술적으로 위험하지 않다고 해도 원자력 시설이 없는 다른 지역도 많은데 누가 그곳에서 살고자 하겠습니까? 또한 이를테면 고창은 수박이 유명한데 누가 폐기물 처리장이 있는 지역의 농산물을 소비하려 하겠습니까? 원자력 시설의 님비 현상을 들여다보면 '안전' 자체에 대한 문제보다 이렇게 심리적인 피해에 관련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이 교수는 이러한 난제을 극복하기 위해서 정부나, 시설의 사업 주체 그리고 주민들 모두 자기 함정에 빠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른바 이해 당사자들간에 '리스크 커뮤니케이션(risk communication)'이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술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에도 전문적으로 대응하는 전문성이 강화되어야 하고,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슴으로 전달되는 대안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에너지원 다원화는 국가안보 차원의 문제 원자력과 관련해 일반인들에게 잘못 알려진 또 하나의 사실은 '원자력은 저렴하다'는 오래된 통념이다. 실제 원자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우수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 확대와 더불어 안전계통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고 현재는 석탄과 거의 유사한 가격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막대한 심리적 '리스크'를 지닌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나라는 현재 에너지 자원의 98%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국가의 생명선과도 같은 에너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 안보차원의 문제가 발생합니다. 에너지를 특정 자원에 의존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원자력을 제외한 다른 에너지원들은 비축량이 겨우 4,50일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무조건 수입해서 비축해 놓는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원자력은 발전소에 한번 들어가면 3-4년을 탑니다. 원자력의 중요성은 국가의 안보차원에서 접근되고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국가안보와 관련한 에너지원의 사회적 수용 문제를 연구하는 이 교수지만 정작 그가 방사선 안전 쪽으로 학문의 길을 선택한 데에는 결코 웃지 못할 사연이 있다. 대학 시절, 삼선개헌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했던 '시위경력'이 그의 활동을 제약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낳은 것. 원자력연구소에 취직한 후에도 이 교수는 이른바 '시큐리티(security)'가 요구되는 분야의 일은 맡지 못하고 결국 '방사전 안전' 분야를 선택해야만 했다고. "지금 들으면 모두가 웃을 얘기지만 당시에는 그랬어요.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잘 된 일이었다 생각합니다." 결코 유쾌하지 않을 기억을 더듬으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그다. 지하에 자리한 그의 작은 연구실을 나서며 정작 사회에 위험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학력 및 약력 이재기 교수는 1972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1977년 동대학원 핵공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5년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5년부터 1993년까지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책임연구원 및 방사선관리실장을 두루 역임했다. 주 연구분야는 방사선 방호, 보건물리, 방사선계측 및 방사선 차폐 부문으로 1997년 방사선방어학회장 우수논문상을 비롯해, 1999년에는 방사선 방호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29

[학생]너 허재? 나 양동근 대학농구 3관왕 체대 양동근 선수

지난 11일 '2003 MBC배 대학농구대회' 결승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TV를 통해 본교 농구팀을 응원하던 학생들은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본교가 연세대를 맞아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2점 차로 아쉽게 우승을 놓치고 말았던 것.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본교는 우승만큼 값진 3관왕의 주인공을 배출했다. 결승에서 31득점을 올리는 등 뛰어난 돌파와 현란한 드라이브인을 펼치며 득점, 수비, 어시스트 부문의 3관왕을 휩쓴 양동근(체대·체육4) 선수. 주장으로서 졸업 전에 본교 농구팀을 대학 농구의 정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다부진 결의를 가진 양 군을 농구 코트에서 만났다. - 3관왕을 축하한다. 소감은 어떤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수비는 늘 자신 있었고 어시스트는 경기 중에 속공이 많이 나온 덕분이다. 득점 또한 타 대학팀보다 상대적으로 경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유리했던 것 같다. 앞으로 운동하면서 평생 동안 득점상은 못 받을 것 같다. - 주장으로서 이번 준우승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정말 아쉽다. 경기 종료를 5초 남긴 상태에서 공격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전이 엇갈려서 공격 한 번 못해보고 오히려 1점을 내 주고 말았다. 입학하고 준우승까지 올라온 것은 처음이다. 만년 3위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 탤런트 양동근 씨와 동명이인인데. 그래서 별명으로 '구리구리'라 불리기도 한다. 진짜 별명은 '양댕이'다. 이름 때문에 생긴 별명 같다. 대학농구가 90년대 중반처럼 인기가 있었다면 탤런트 양동근 씨보다 먼저 뜰 수 있었는데 아쉽다.(웃음) - 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많았지만 그냥 농구가 좋아서 시작했다. 그 당시 키가 135센티미터 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도 키가 183센티미터로 본교 농구팀 중에 제일 작다. - 자신의 장단점을 뭐라고 생각하나? 수 비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고집과 오기의 농구를 한다고나 할까. 중학교 때는 경기에 한 번도 못나가다가 고등학교 때 근성을 인정받았다. 감독님께 상대방 선수를 지목하며 '저 선수는 확실히 수비하겠다'라는 자신감을 보이면 출장 예정이 없어도 곧바로 코트에 나가기도 했다. 단점이 있다면 경기할 때 슛을 너무 쏘지 않고 공격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 선수와 학생 생활 병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중간고사 기간이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시험은 꼭 봐야 학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학기초에는 교수님 얼굴을 익히기 위해 수업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솔직히 수업 시간에 알아듣는 말이 거의 없는 것이 아쉽다. -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가고 싶은 팀은 특별히 없다. 다만 입단해서 바로 뛸 수 있는 팀으로 가고싶다. 드래프트에서 상위 3순위 내에 뽑히는 것이 목표다. 특별히 존경하는 선수는 없지만 허재 선수가 은퇴하기 전에 상대 팀 멤버로서 경기를 해 보고 싶다. 그리고 졸업하기 전에 팀을 우승으로 이끄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열심히 하겠다. 선수생활을 마감한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22

[교수]대학종합평가 특집 대담 3 : 이건상 교수

최근 수년 간 안산캠퍼스가 보여준 급격한 도약은 이미 국내 대학계에 심심찮게 오르내리는 화제가 됐다. 마치 '한강의 기적'과도 같이 개교 20여 년 만에 이뤄낸 지금의 지위와 위상은 타 대학들에게 있어 가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도 같은 것이었다. 특히 지난 몇 년 간 대교협 평가에서 안산캠퍼스가 보여준 발군의 성과들은 그간의 성장과 발전을 대내외적으로 공고히 하는 '인증서'와도 같은 것이었다. 위클리한양은 대학종합평가 특집 대담 그 세 번째 순서로 안산캠퍼스 대학종합평가 연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건상 교수를 만나 '안산의 기적' 그 비결을 물어보았다. - 안산캠퍼스는 전기전자와 재료공학, 컴퓨터공학 그리고 디자인 등 지난 수 년간 대교협 학문분야평가에서 국내 유수의 명문대학이 갖지 못한 성과를 거두며 일대 파란을 일으킨바 있습니다. 종합평가위원장으로서 안산캠퍼스의 급격한 성장 배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십니까? 그 동안 대교협으로부터 학문분야 평가를 받은 안산캠퍼스의 각 전공이나 학과들은 서울에 있는 유수 대학들보다도 훨씬 나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건축, 전기전자, 재료, 디자인, 토목 등은 모두 전국에서 5위 이내에 드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개교 23년에 불과한 우리 캠퍼스가 이러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안산캠퍼스 발전을 위한 학교 당국의 의욕적이고 공격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젊고 능력 있는 교수진과 우수한 자질의 학생들을 확보하고 또한 이들이 교육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우수한 교육 및 연구 환경을 조성해주는 행정력이 뒷받침을 해주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 1995년 이후 10년만에 진행되는 내년의 종합평가 결과는 급성장한 안산캠퍼스의 위상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평가 연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내년 평가의 중요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이미 1주기 종합평가에서 우리 안산캠퍼스는 최우수대학으로 평가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 2주기 평가에서도 이 명성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하리라 봅니다. 그러나 대교협의 종합평가는 단순히 평가 자체나 그 결과에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평가를 준비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그동안 부족했던 점들을 보충하고 미래의 발전 계획을 더욱 확고하게 마련하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평가를 통해 우리 안산캠퍼스가 한 단계 더 차원 높은 도약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 현재 종합평가에 대한 안산캠퍼스 평가 연구위원회의 구체적인 준비 상황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특히 역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우리 안산캠퍼스에서는 대학종합평가를 대비하여 이미 2001년 11월에 예비평가위원회를 구성, 미리 기초 평가를 마쳤고 2002년 9월부터는 20여명의 교수와 직원들로 종합평가연구위원회를 구성하여 평가 준비를 착실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종합평가는 학교 전반에 관한 평가이기 때문에 자료를 준비하는 데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일들도 중요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안산캠퍼스의 발전 전략과 특성화 전략을 마련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는 이 점을 이번 평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안산캠퍼스는 지역의 산업적 기반을 고려한 차별화 전략에 심혈을 기울여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년의 평가는 '지금까지 수행해 온 특화전략의 성공여부를 검증하는 기회'라는 관측들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그 동안의 발전에서 보아왔듯이 우리 안산캠퍼스는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캠퍼스입니다. 이제 우리 안산캠퍼스는 발전을 위한 인프라는 잘 구축된 상태라 생각합니다. 특히 안산, 시화의 대규모 공단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캠퍼스의 지리적 위치는 안산캠퍼스의 교육과 연구의 방향을 잘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현재 안산캠퍼스는 약 60개 정도의 벤처 기업을 육성하고 있고, 연간 120억 규모의 외부 수탁 과제를 수주하고 있는 산학 협동의 모범대학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조건들을 잘 활용하여 교육과 연구의 실용학풍화를 가속화하고 과감한 학제간 교류를 추진할 것입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교육과 학문의 영역을 개척하는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안산캠퍼스 발전의 새로운 방향이 아닌가 합니다. - 종합평가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일반 학생들의 협조가 절실하다는 것이 평가 관계자들의 일관된 당부입니다. 평가를 대비해 학생들에게 특히 주문하시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발전이 학교 당국의 투자, 지역적 여건 등 외부에서 주어지는 힘에 의존한 바가 많다면 이제부터의 발전은 내부적인 개혁과 구성원들의 합심에 그 성패가 달려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발전의 목표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함께 힘을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학생들의 학교 사랑의 마음은 안산캠퍼스를 발전시키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되리라 봅니다. 평가 기간 동안 설문조사 등을 통해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학생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학교 발전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출하는 일도 필요하리라 봅니다. 많이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 시장 개방 등 대학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모든 대학들이 그야말로 경쟁력 확보에 고심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년의 평가를 뛰어넘어 향후 안산캠퍼스의 장기적인 성장 전략과 비전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현재 지방에 소재하고 있는 대학들은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는 이러한 현상들을 그저 안일하게 보아 넘겨서는 안되리라 봅니다. 이제 우리 안산캠퍼스는 새로운 변화의 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울캠퍼스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은 안산캠퍼스 그리고 한양대학교의 도약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아시다시피 우리 한양대학교는 서울과 안산 양 캠퍼스의 편제가 중복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우리 한양의 도약을 가로막는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안산캠퍼스의 특성화는 캠퍼스 발전 뿐 아니라 한양대학교의 발전을 위한 필수 요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서울캠퍼스와 차별화되어 있는 대학이나 학부의 특성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아직 미진한 분야의 경우 특성화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 안산캠퍼스는 첨단의 학문과 학제간 복합 학문으로 특성화된, 그야말로 색깔 있는 캠퍼스로 거듭날 것입니다.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4 22

[동문]우리의 표준을 세계의 기준으로 만드는 품질경영사무국장 송원섭 동문

지난 시절, '한국공업규격'을 뜻하는 'KS(Korea industrial Standard)' 마크는 상품의 우수한 품질을 함축하는 하나의 보통명사였다. 기업들은 자사의 제품이 KS 인증을 받았다는 것을 부각시켰고, 이는 제품의 소비자 신뢰도로 직결되었다. 소비자들은 KS라는 마크를 믿고 제품을 구입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각종 공산품 광고에 KS 인증을 단골메뉴로 등장시켰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위에서 KS 인증을 내세우는 제품광고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KS의 공신력이 없어졌기 때문일까? 대답은 'NO'다. 이는 과거 회사에서 KS 인증이 달성해야 되는 목표였다면, 이제는 제품을 생산해 팔기 위한 마지노선으로 변화한 결과라 할 수 있다. KS 인증기관이자 ISO, JIS(일본공업규격)와 같은 산업표준화 및 품질경영 등 제반 관리 기술의 보급 촉진을 목표로 1962년 설립된 한국표준협회. 이곳에서 품질을 통한 고객만족 실현을 목표로 품질경영 계획과 확산 보급을 이끌고 있는 품질경영추진사무국장 송원섭 동문(공업경영 74졸)을 만났다. 표준을 선점해야 세계를 리드한다 포디즘이 지배하던 산업사회 초기, 각 기업들은 대량생산을 위해 너도나도 부품의 표준화를 실시했다. 이러한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똑같은 모양과 똑같은 품질의 제품들은 연일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표준으로 인정을 받았다는 것은 그 제품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적절한 상징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산업구조는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소량생산 체제 속에서 표준화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일까? 송 동문은 오히려 미래사회에서 현재보다 표준의 의미가 더욱 커질 것이라 전망한다. "현대 산업사회에서 표준을 선점하는 것은 세계 산업의 리딩 그룹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후발주자를 맞추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또한 지구촌 사회에서는 호환성이 필수입니다. 모든 제품을 하나의 회사에서 생산해 조립했던 과거와는 달리 대부분의 부품은 아웃소싱으로 제조됩니다. 이런 이유로 다품종 소량화 시대에도 표준화는 중요한 것입니다. 만들면 팔리던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송 동문이 근무하는 부서는 품질경영추진사무국. 그는 품질이라고 하면 공장에 의해서 제조된 물품만이 떠올리는 것은 근대적이지 못한 생각이라고 일축한다. 국제표준화기구에서 시행하는 ISO 9000시리즈에서는 품질이라는 단어를 단순 상품만이 아닌 서비스, 교육, 행정을 포함해 모든 분야에 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라고 정의한다. 즉 현대사회에서 품질은 해당 상품 또는 서비스가 갖춰야 할 고유한 특성들의 집합을 얼마나 잘 충족시키고 있느냐 하는 정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품질경영이라는 말이 제품이라는 산업적 결과물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표준은 최고가 아닌 최저, 표준 이후 발전 담보돼야 세계무역규모 10위권, 1인당 국민총생산 만 달러 시대를 맞고 있는 오늘, 우리의 표준화 수준에 관한 문제는 꼭 짚고 넘어가야 되는 항목이다. 송 동문의 말처럼 표준의 선점이 세계화의 척도라고 본다면 우리의 분야별 표준화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 하는 것은 곧 미래 사회에서의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ISO 9000 시리즈, KS 인증 심사원, 영국 표준협회 심사원 그리고 일본공업규격 심사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송 동문은 우리의 전망이 그다지 밝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조선공업 같은 경우, 탑 클래스 수준이고 반도체 특히 핸드폰 같은 경우는 세계 3위권이라는 것이 사실입니다. 특별한 분야에서는 그렇고 일반 무역규모에서도 세계 10위권이 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가공무역에 의존하는 무역구조인 점을 감안한다면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의 예를 들어보죠. 자동차의 경우, 앞으로 5년 후에는 세계 6위권 안으로 들어야 세계시장에서 생존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5년 전에는 10위권 안에 들자는 것이 업계나 저희 협회의 목표였습니다. 시장 생존구조가 변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베스트만이 살아남는 구조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송 동문이 생각하는 세계화 전략은 간단하다. 모든 분야가 국제적인 표준 이상으로 잘 돼 있어야 한다는 것. 그는 표준이라는 것이 최상이 아니라 최하를 의미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세계 속에서 통용되고 가치를 지니기 위한 마지노선인 것이다. 이런 그의 생각을 바탕으로 유추해 본다면 세계 표준화 기구의 인증이라는 제도 자체보다는 그 후 그것을 통해 어떻게 발전시키고 유지시켜 나가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것은 자명하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서로 순위를 메기고 다투지만 어떤 대학도 세계 100위안에 들지 못합니다. 이것은 교육이라는 부분은 교육적 세계화 표준에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막연한 이미지나 하나의 요소가 아니라 전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제대로 조화를 이룰 때 질은 높아질 수 있습니다. 본교도 행정에 있어서 ISO 9001에 인증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순히 이것만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교수님들의 연구, 학생들의 학구열과 같은 대학의 구체적인 요소들이 이 모두 복합적으로 발전할 때 우리가 목표로 하는 세계 100위권 대학 진입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표준'이 그들의 '기준' 돼야 최근 대기업들은 경영의 목표를 말할 때 흔히 '고객감동'을 말한다. 이제 모든 분야에 있어서 고객만족의 시대를 넘어 고객감동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간은 동물과 달라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사고와 느낌의 기대치가 달라져 왔다. 과거에는 떨리는 자동차도 다리의 고통을 덜어주었기에 만족할 수 있었다면 오늘날 자동차는 승차감과 안전도는 물론 미관과 디자인의 만족도도 높아야 한다. 또한 음식 역시 과거에는 소화기관의 포만감을 위한 것이었다면, 현대에는 혀뿐만 아니라 눈을 만족시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만족을 넘어 감동에 이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증명하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소득수준이 만 불이라고 합니다. 7년 전에 만 불이 되었다가 IMF위기를 겪으며, 이제 겨우 다시 만 불이 됐습니다. 일본이나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만 불이 되고 5년 만에 2만 불이 되었습니다. 2만 불 이상이 되어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경기가 안 좋다고 3퍼센트, 5퍼센트를 얘기하는데 이 수준이라면 2만 불이 되기 위해서는 10년이 걸립니다. 교육과 같은 비산업분야는 더욱 심각한 수준입니다. 결코 자기 만족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아직 멀었습니다." 송 동문은 자신의 바람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득, 문화수준, 서비스, 제품 등 모든 분야에서 월드 베스트에 오르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한 개인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의 실력을 키워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품질과 표준을 확산시키는 것만이 월드 클래스가 되는 길이라고 말하는 송원섭 동문. 이 세대를 위해서라면 산업 발달만으로도 족하지만, 우리 후세들에게 '살만한'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우리의 표준을 세계의 기준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그의 당부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학력 및 약력 송원섭 동문은 1974년 공업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연세대에서 공업경영학 석사학위를, 1997년 전북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3년 부천대학을 시작으로 전주대와 연세대에서 강단에 서기도 했고, 1987년부터 한국표준협회 업무를 시작해 연수원장과 ISO 시스템 인증원 원장을 두루 역임했다. 현재 국가공인 품질심사관련 7개의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약 20여 기업 및 단체에 경영진단, 지도, 심사 및 교육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표준협회장상과 산업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