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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 01

[교수]'건축학부는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동적 공동체'

1931년 뉴욕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381m)이 등장한 이후 고층건물들의 높이 경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2003년 현재, 세계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타워(452m)의 지위도 조만간 완공될 상하이 세계금융센터빌딩(459m), 타이베이금융센터(508m)에게 내주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2005년 부산에 완공될 제2롯데월드(464.5m)를 앞세워 이러한 높이 경쟁에 편승했다. 이렇듯 초고층 빌딩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장악하게 된 이면에는 무엇보다 공학적인 공헌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공학 분야의 지원 중에서도 '고강도 콘크리트의 등장'이 없었다면 초고층 빌딩은 애지당초 불가능한 '공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콘크리트 연구의 '브레인'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낯선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사방의 벽을 가득 메운 메모들과 신문 스크랩, 여기저기 쌓여 있는 책과 서류들. 마치 마감이 임박한 신문사를 연상케 한다. 태초에 혼돈 속에서 우주가 탄생된 것을 기억하는 순간 연구실의 혼돈 속에서 동적 에너지를 느낀 것은 착각이었을까? 그 착각의 중심에는 방금 두꺼운 책과 설계도면들을 가득 안고 계단을 뛰어 올라온 신성우 교수가 있었다. 그의 주요 연구 분야는 '고강도 콘크리트 연구'. 현재 '혁신적 콘크리트 기술 연구소'를 운영하는 신 교수에게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현재 건설되는 모든 구조물의 자재에 80퍼센트를 차지하는 것이 콘크리트입니다. 제가 하고 있는 혁신적 콘크리트 연구는 콘크리트의 성능을 3배에서 10배로 올려 구조물의 내구성과 수명을 증대시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우리나라의 구조물 수명은 평균 17년으로 아시아 평균 구조물 수명의 1/2에서 1/3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혁신적 콘크리트 연구를 통해 5년 안에 아시아에서 2, 3배의 경쟁력을 가지는 것이 지금 연구의 목표입니다." 콘크리트 분야에서 신 교수는 세계가 인정한 최고 수준의 학자다. 프랑스와 인도 정부가 초청하는 '콘크리트 세계 10인의 학자'로 선정되기도 했고 미국콘크리트학회(ACI)가 수여한 구조분야 최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월드컵조직위원회 시설전문위원으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를 수식하는 수많은 직책들과 공로들에 대한 소개를 묻자 신 교수는 설레설레 고개를 젓는다. '콘크리트 학자가 아니라 안산캠퍼스 건축학부 교수로서의 내가 중요하다'라는 것이 그의 지론인 까닭이다. 나의 사랑, 나의 건축학부 건축학부 교수임을 먼저 앞세우는 신 교수의 내력에는 건축학부의 설립에서부터 16년 간을 동고동락해온 그의 깊은 애정이 담겨있다. 안산캠퍼스 건축학부는 과사무실 대신 건축행정지원실의 사이버시스템을 통해 학부의 모든 업무가 처리된다. 컴퓨터 한 대와 조교 한 명에 의해 운영되었던 기존의 과사무실 운영체제에 대해 '비합리적이다' 생각한 신 교수의 디지털 전략 때문이다. 이외에도 완벽하게 단장된 홈페이지를 비롯해 '초대형 구조실험동' 건립 등 건축학부의 역사 구석구석마다 신 교수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이러한 그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 것일까? 건축학부는 2000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주관한 대학 건축학과 평가부문에서 '전국 최우수'의 평가를 받았다. "건축학부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하지만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안위가 아닌 건축학부를 위해 함께 해 주신 교수님들과 현장에서 달려와 주신 훌륭한 강사님들, 그리고 너무도 현명한 제자들. 이 모든 구성원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고, 매 학기가 시작되는 첫 주에는 모두 모여 새 학기에 대한 계획을 세웁니다. 획일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살아 남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동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건축학부인데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요?" 하지만 신 교수는 대교협 평가에 안주해서는 결코 미래가 없다고 강조한다. 평가 이후 그것을 유지하는 사후 과정, 즉 'And then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And then 프로그램'의 하나로 건축학부는 이미 성공적으로 끝난 '고등학생 건축 올림피아드'를 개최해 전국에 안산캠퍼스 건축학부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평가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것이라고 신 교수는 덧붙인다. 그의 바램대로 건축학부는 현재 싱가폴 건축대학과 공동강의 시스템을 구축, 한양의 국제화를 위한 선두 주자임을 자임하고 있다. 한양 국제화의 첨병을 자임한다 "싱가폴 건축대학과 우리학교의 공동강의 시스템은 이전에 실행되었던 국제화 프로그램이나 교환학생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과거 교수와 학생이 외국 학교에 가서 그 나라의 문화와 그 학교의 교육을 배워왔던 것은 위탁교육입니다. 그 안에서는 우리의 주체성을 찾아볼 수는 없었죠. 공동강의 시스템은 싱가폴과 함께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배우고, 교수와 학생을 상호 교류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성도, 싱가폴의 주체성도 모두 지닌 새로운 형태의 교육방식이 창조되는 것입니다." 싱가폴 대학과 본교와의 '공동강의 시스템'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것이다. 싱가폴을 기반으로 세계로 도약하겠다는 신 교수의 의지가 성사되기 위해 이번 '공동강의 시스템'의 성공은 무척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국제화 프로그램의 성사과정에서 신 교수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왜 많은 나라들 중, 하필이면 싱가폴이냐는 것이었다. 이에 신 교수는 '어떻게 싱가폴을 고르지 않을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우리는 그렇게 돈이 많은 나라도,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높은 서열을 지닌 나라도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목소리를 충분히 낼 수 있겠습니까? 싱가폴은 한때 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유럽문화를 흡수했고,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합니다. 또한 싱가폴은 아시아의 정보 중심지로 각광받고 있기도 합니다. 싱가폴에서는 영어를 통해 미국을, 문화를 통해 유럽을, 정보 활용을 통해 아시아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싱가폴 대학의 국제화 프로그램은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 나 있습니다." 신 교수는 이미 싱가폴을 기점으로 세계 여러 나라들과 다자간 공동강의 프로그램을 계획중이다. 이 과정에서 그가 중요시하는 것은 한양대만의 독특한 국제화 프로그램 전략이다. 한양대만의 국제화 프로그램을 가지고 협력 교육프로그램을 구축시켜야 한양대의 정신이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또한 신 교수는 어느 나라와의 공동강의 프로그램 과정에서도 한양인이 두각을 보이기를 희망한단다. 세계 대학 서열 100위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 어느 곳에 떨어뜨려 놓아도 자생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그야말로 '경쟁력 있는' 학생을 길러내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신 교수는 세계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평양 캠퍼스'를 추진하고 있다. 점차 밀려오는 외국 대학들과의 경쟁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그의 희망과 확신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신 교수의 확신에 찬 언어가 희망의 좁은 경계를 뛰어넘는다. '휴전선 이남은 서울대학에 주십시오. 이북은 김일성대학에 주십시오. 그러나 통일 후 한반도에는 한양대학입니다' 학력 및 약력 신성우 교수는 1977년 본교 건축과를 졸업하고, 워싱턴대학에서(Washington University) 구조공학과 석사와 건설경영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1986년 일리노이주립대에서(University of Illinois, Chicago)에서 구조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 초고층 건축 포럼' 의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민영·공영 기업에서 연구원과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국콘크리트학회(ACI) 구조분야 최우수 논문상과 한국콘크리트학회(KCI) 논문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에는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대표저서로 『최신콘크리트 공학』, 『고강도-고성능 콘크리트 제조, 시공 및 설계』, 『The Design of Building Structure』, 『철근콘크리트 구조』등이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ayang.ac.kr

2003-01 22

[동문]`검사의 임무는 처벌 아닌 사회방위`

'어 퓨 굿 맨'이나 '타임 투 킬'과 같은 법정영화 속에서 변호사는 선악 구도 속 피의자를 감싸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에 반해 검사는 피의자를 기소하고, 판사에게 높은 형량을 요구하는 악역으로 묘사되기 일쑤다. 이러한 영화의 관습적인 반복은 검사라는 직업을 '딱딱하다' 또는 '비인간적'이다라는 식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사실, 따뜻한 미소로 기소장을 읽으며 형량을 구형하는 검사란 상상하기 어려운 것 아닌가? 서울지검 동부지청 차장검사로 재직 중인 이동기(법학 78년졸) 동문을 만나며 그 '딱딱함'이 사회를 지키는 힘이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이 동문은 현재 동부지청 차장검사(사시 20회)로 재직 중이다. 오전 11시.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다른 검사들과 사건을 배분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난 후,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시작하는 것에 미안해하며 웃는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은 '검사를 왜 선택하게 되었냐'는 것. 다소 틀에 박힌 질문으로 시작했지만 말문을 여는 이 동문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졌다. "저는 검사라는 직업을 예술가에 비유하고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악을 검사가 전부 척결하지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대해 어떻게 처벌하고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검사의 밑그림이 필요한 것입니다. 판사는 이것을 가지고 이 밑그림이 잘 되었는지 평가하고 감정하는 위치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감정과 평가라는 작업보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검사의 임무는 기소가 아닌 '사회방위' 검사들도 연륜이 쌓임에 따라 공안사건, 민사사건, 형사사건 등 자신들의 전문분야를 형성한다. 이 동문은 1978년 사범시험에 합격한 후 지난 20여 년 동안 다양한 사건들을 거쳐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만들어 왔다. 그의 전문분야는 기획과 연구파트. 이 동문은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법무부 송무국장, 사법연수원 교수 그리고 국가정보원 법률보좌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획, 연구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다. 기획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에 이 동문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묻는 질문에 다른 검사들처럼 굵직한 정치 사건이나 사회적 이슈가 있었던 사건들이 많지 않다며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이력 속에는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도 더러 발견된다. 이 동문은 지난 1991년 낙동강 폐수방류사건 당시에는 부산지검 고등검찰관으로 해당 기업 수사에 앞장섰고, 서해 페리호 사건, 가짜 고서화 사건 등을 성공적으로 해결해 국민들로부터 많은 호응과 격려를 받기도 했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굵직한 사건들도 있었건만 정작 이 동문은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2000년 창원지검 차장검사 시절의 사건을 꼽았다. 피의자는 당시 대학교 1학년 학생으로 혐의는 '강간미수치상'이었다. "실제로 이 죄목은 최소 5년에서 7년이 나올 수 있는 죄목입니다. 하지만 피의자의 가정 환경과 범행 동기가 계획적이지 않고 우발적이었다는 점 등 여러 가지 사항들을 감안해 담당 검사와 상의, 그 학생을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피의자에게 재범의 소지가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죠. 물론 사실 여부가 분명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냉정하게 피의자를 기소하면 그것으로 검사의 임무는 끝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검사는 사회를 방위한다는 위치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기소를 한다면 그 학생 한 명의 인생이 아니라 한 평생 그 학생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그 부모들의 인생까지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고보다 최선을 다하는 삶으로 이 동문은 지난해 12월 30일, 대통령이 수여하는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이는 정부의 장·차관등 정무직을 제외한 정규 공무원으로는 최고 권위의 훈장이다. 사법시험 동기 중에서도 가장 먼저 수훈했다는 부수적인 영예와 외부의 높은 평가는 이 동문에게 있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는 "저는 제 개인의 능력으로 그 상을 수상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단지 명의만 제 앞으로 되어 있을 뿐 그 상은 저의 대학 법조계 동문들과 사법 연수원 동기들이 모두 함께 수훈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며 축하의 말에 손사래를 친다. 이 동문은 검사로서의 지금까지의 삶이 무엇인가를 바라고, 이루기 위해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 고백한다.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대해 최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저는 사법연수원 교수 시절에도 학생들에게 항상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흘러간 시간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현재 이 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말이죠. 이것은 저의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저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꼭 해보고 싶은 지위라든지 일이라는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한양인에게 고함, '도전하라!' 이 동문은 1975년 손용근 동문이 본교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3년 후인 197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때문에 그의 주변에는 선배들이 많지 않았다. 2년여에 걸친 연수기간 동안 힘겨운 순간에 부딪힐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선배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이런 여건 속에서 동문회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법조계에 한양 동문의 수가 줄어든 것을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동문은 과거 90년대 초반, 300명씩을 선발했던 당시에도 25명에서 30명에 달하는 합격자를 배출했는데, 선발인원이 늘어난 것에 비해 합격자 수는 그만큼 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동문은 법조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재삼 당부를 잊지 않았다. "저희 모교가 짧은 시간 내에 많은 법조인을 배출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체 법조인 수를 생각해 본다면 저희는 결코 많은 수가 아닙니다. 후배 분들이 항상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자기가 남보다 똑똑하다 혹은 무엇인가 낫다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2배의 노력을 해야 남만큼 될 수 있습니다. 아니 2배 이상해야 남만큼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배들은 그렇게 해왔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동기 동문 인터뷰 영상 보기 학력 및 약력 1956년 전북 정읍 출생. 1974년 법학과에 입학해 1978년 제2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83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부산지검 고등검찰관, 전주지검 정읍지청장, 군산지청 부장검사, 법무연수원 기획과장,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검찰청 형사5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1982년, 본교 법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1990년 다시 박사과정을 수료한 '학구파' 검사로 통한다. 1992년 업무유공 법무장관 표창을 받았고, 지난해 12월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1 22

[교수]"연구의 키워드는 일관성과 지속성 그리고 경쟁"

최근 건설교통부는 2004년부터 신축아파트 층간소음 기준을 법제화하여 규제에 들어갈 것이라 발표했다. 이러한 정부의 조치는 '소음공해'를 단순히 환경운동의 측면에서가 아닌 범사회적 문제로 확대해 가는 단계들 중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제도적으로 규제되어 왔지만 주거 환경에 있어서 소음에 대한 법적 규제를 시도하고 나온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소음을 기타 화학적 공해만큼이나 인간에게 유해한, 일상적인 요소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소음이 공해로 인식되기 오래 전부터 '세상'을 진단하는 수단으로서 '소음'을 탐구한 학자가 있다. 현재 소음진동제어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기계공학과 오재응 교수다. 소음 없는 세상을 탐구한다 소음과 진동에 대한 오 교수의 연구성과는 그야말로 화려한 내력을 자랑한다. '소음 재현장치 및 그 제어방법'을 시작으로 7개의 특허출원 경력을 가지고 있고, 1998년에는 대한기계학회와 한국자동차공학회로부터 동시에 학술상을 받은 경력도 있다. 이처럼 같은 해에 두 개의 학회로부터 학술상을 동시 수상하는 경우는 학계에 흔치 않은 전대미문한 사건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오 교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 이듬해 한국소음진동공학회 학술상을 다시 수상했다. 기계 관련 분야에서 '3관왕'이 아니냐며 미소짓는 그의 얼굴에 다사다난했을 오랜 학문의 '연륜'이 배어난다. 오 교수는 지난 20년간 자신이 천착했던 소음 연구를 두 방향으로 설명한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X-ray촬영을 하고, 그 촬영시트를 바탕으로 병을 진단하게 되지요. 기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우선 기계의 소음과 진동을 분석합니다. 즉 기계의 X-ray가 소음진동분석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죠. 이렇듯 기계의 소음진동을 통해 기계의 수명을 진단하고 고장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소음진동 감소를 위한 연구도 진행해 왔습니다. 자동차에서 냉장고, 세탁기 등 요즘 우리의 삶은 너무나 많은 소음과 진동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필요충분조건으로 자리잡은 기계들은 시간이 갈수록 하나둘씩 더 늘어만 가고 있다. 세탁기와 냉장고를 비롯해 컴퓨터, 핸드폰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가정은 기계들로 가득 채워져 가고 있다. 오 교수는 그러한 모든 기계들을 '소음베개'로 규정하면서, 우리 생활 속에 파고 들어온 소음과 진동의 유해성을 경고한다. 특히 일반적으로 넓은 내부 공간을 지니는 서구의 주거환경과 달리, 협소한 주거공간을 지닌 우리나라에서 소음과 진동은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인다. 우리의 문화와 환경에 부합하는 '우리식' 소음진동제어 연구가 시급하다는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복사와 모방은 구분되야 소음진동제어 연구를 위해 우리나라의 기존 관례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기술 도입을 해오는 것이었다. 상대적으로 넓은 주거공간을 지닌 서구의 기술은 실제 우리나라의 환경에는 다소 적합하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오히려 우리와 비슷한 주거환경을 지닌 일본의 연구들이 우리에게는 더욱 적합했다는 것이 오 교수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의 기술을 고집한 것은, 모방을 통해 생성된 일본의 기술이 아닌, 모방 이전의 서구의 기술을 전수 받겠다는 의지에서였다. 하지만 이것은 복사와 모방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오 교수는 지적한다. "복사는 말 그대로 똑같은 것을 하나 더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방은 '복사 플러스 아이디어'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일본은 처음에는 서구의 기술을 복사해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자국의 주거환경을 고려한 아이디어를 덧붙여 실생활에 아주 유용하고 편리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모방은 복사의 발전 모델입니다. 또한 모방은 '창의성'을 이끌어 내는 발판이기도 합니다." 오 교수의 지적과 같이 우리 사회에는 복사와 모방에 대한 그릇된 오해가 팽배해 있다. 대부분의 기술을 서구로부터 유입해 오면서도 '복사'라는 인식을 없애기 위해, 선 연구의 왜곡된 해석을 통한 그릇된 모방작을 만들어 내기 일쑤다. 오 교수는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서구에서 설계도를 그대로 도입했다는 제품들도 우리나라에서는 성능이 저하되는 제품이 생산된다고 한다. 보다 창의적인 제품을 완성하기 위한 절차적 단계로서 복사와 모방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만큼,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좀더 겸허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일관성, 지속성 그리고 경쟁 "콜롬버스가 달걀을 세웠다는 사실은 그의 창의성 발현이고 아이디어의 전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가 최초로 그것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나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콜롬버스가 최초의 아이디어를 가진 것을 인정하는 사회가 되야 합니다. 여기서 3C(Consistency, Continuance, Competition)의 사회가 출발합니다. 선임자의 연구를 인정하는 일관성을 지녀야 하고, 또한 복사와 모방을 넘어 창의성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연구를 수행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의의 경쟁을 도모하는 사회적 분위기만이 창의성과 독창성이 싹틀 수 있는 토대를 생성합니다." 오 교수는 선행 연구에 대한 겸허한 사회적 분위기를 더욱 잘 활용하기 위해 확고한 개인철학이 요구된다고 덧붙인다. 그 자신도 3R(Reflection, Refresh, Recreation)과 3P(Principle, Philosophy, Professional)의 철학을 가지고 있단다. 3R은 우선 자기를 반성하고, 다시금 새롭게 한 후 재창조를 해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칙과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자신이 임하고 있는 분야의 전문가가 되야 한다는 3P의 철학이 적용된다. 오 교수의 3R과 3P의 철학은 그의 제자들에게 직접 전수되어 13명의 교수를 비롯한 수많은 사회 지도급 인사를 배출하는 발판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제자 양성에 욕심이 많다. "제 자신을 위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자들을 위해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제가 본교 출신이라서 제자들이 모두 후배들이기 때문에 제 자신을 더욱 채찍질합니다. 하지만 점점 제가 지닌 '한양인'이라는 자긍심을 후배들에게서는 찾기 힘들어 속상합니다. '한양인'이라는 브랜드에 비해 우리 후배들은 꿈도 희망도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좀더 당당하게, 좀더 자랑스럽게 한양인임을 내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그만큼 특별하거든요." 자신이 제창한 캐치프레이즈 '사랑! 한대'를 거듭 강조하며 오 교수는 올해는 한양인이 모인 각계의 공간에서 이 구호가 외쳐지기를 소망하고 있다. 자신을 거쳐간 제자들이 몸담고 있는 직장의 '시집살이'가 심해서인지 요즘 발길이 뜸해 외롭다고 말하는 오 교수는 어느 순간 시집간 딸의 전화를 목놓아 기다리는 친정어머니로 변해버린다. 올 봄에는 그가 그렇게 기다리는 제자들이 모두 모여 '사랑! 한대'를 외치며 술잔을 부딪히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 학력 및 약력 오재응 교수는 1975년 본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일본의 요코하마 국립대학원에서 안전공학 석사를, 1983년 동경공업대에서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한국자동차공학회 편집이사, 정밀공학회 사업이사, 서울지방국토관리청 설계자문위원회 위원, 과학기술부 기획정책 자문위원회 자문위원, BK 21 국제협력분과위원회 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다. '소음재현장치 및 그 제어방법'을 비롯한 7개의 특허출원 경력과 다수의 학술상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표저서로 『건설안전공학』, 『동적시스템해석』, 『CAE를 위한 구조물 모드해석의 기초와 응용』등이 있다. 사진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1 22

[동문]`시민이 바꾸는 서울` 청계천복원 시민위원 김선아

흔히 서울을 말할 때 '색깔이 없는 도시', '근육만 육중하게 붙어있는 도시'라는 꼬리표를 달곤 한다. 빵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보다 크게 부풀리는 것이 우선의 가치로 여겨졌던 7, 80년대. 대한민국의 심장으로 닥치는 대로 내달려온 서울은 이제 '복마전'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혼란스럽고 숨막히는 공간이 돼 버렸다. 이러한 중병에 시달리고 있는 서울에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 청계천 복원 사업의 시민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가 있다. 바로 김선아(건축과 88년졸)동문. 청계천 복원의 기본 원칙을 '보존과 개입'이라 힘주어 말하는 김 동문을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나보았다. - 건축가로서 시민위원회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청계천 시민위원회는 5개 분과로, 각계의 전문가 및 시민단체 활동가들로 구성돼 있다. 서울시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 본부에서 위촉을 해, 시민위원회 도시계획 분과에서 활동을 하게 됐다. 베니스 건축대학을 졸업할 때 도시건축 관련 논문으로 졸업을 한 점, 유럽의 건축설계와 도시계획부분을 구분 없이 공부한 것, 그 곳에서 이들과 교류하며 건축가로써 성장한 점이 고려된 것 같다. - 청계천 복원의 이유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한 마디로 서울 강북의 정체성 회복 필요성 때문에 반드시 복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시민위원으로서 구체적인 활동은 어떠한가. 서울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계천 복원계획의 방향 및 방법에 대한 비판과 감시기능을 하는 것이다. 도시계획 분과위원회는 서울시 도심부 개발과 함께 하는 청계천 복원에 따른 도심부의 발전 방향, 청계천 주변지역의 개발, 청계천 복원후의 서울시 강북의 도시 모습에 대한 서울시 및 서울 시정개발 연구원의 연구과정을 검토하고 방향제시를 한다. 최근까지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문제점 및 보완책을 제시했다. 위원회의 최연소 위원으로써 선배님들에게서 배우기도 하지만, 의견을 발표할 때에는 많은 분들이 경청을 하시며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 얼마 전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청계천 복원에 대해 '보존과 개입'을 중시하는 유럽식을 강조한 바 있는데. 일단 '유럽식'이라는 말이 일종의 방법론처럼 서울에서 복사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한다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유럽의 건축가들은 새로운 땅에 건물을 설계할 때 그 건물이 지어진 후 도시의 모습의 변화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빈 땅에 뭔가를 설계한다기보다 기존의 도시맥락과 같이 호흡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다는 것이다. 이 점이 꼭 기존의 도시 맥락을 따르기만 한다는 것은 아니다. '조화'라는 것은 다양한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 바둑을 하는 것으로 예를 들자면 바둑을 한 수, 한 수 두어갈 때 바둑판의 모습은 그 때, 그 때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이들은 기존의 도시 맥락에 '개입'을 한다는 개념을 가지고 설계를 한다. - 바람직한 서울시의 상을 그린다면 가장 인상적인 서울의 모습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고가도로와 고가도로 하부, 지하철공간, 버려진 인도, 동네를 가로지르는 8차선 도로, 어디를 가도 똑같은 단지계획 모습, 어디를 가도 그 지역의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모습들이다. 이탈리아에 있을 때는 지나치게 보존 위주로 진행돼 스스로 짓눌리는 도시의 숨통을 틔어 주는 좀더 전위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서울에 돌아오니 '개발은 이제 그만, 제발 보존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도시를 다듬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는 우리를 건조하게 만들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미학적인 면을 생각해 본다면, 땅위에 또 다른 땅을 만들어 주는 흥미로운 오브제이다. 문제는 현재의 고가도로는 자신이 가진 기능적 역할 외에는 어떠한 배려도 없이 놓여져 있다는 것이다. 또 그 하부를 보라. 얼마나 익명적인 공간이 형성되어 있는지. 인도 역시 5m, 7m 되는 인도들이 아주 무책임한 보도 블록으로 깔려 있을 뿐이다. 고가 도로문제나, 인도 등 공공 공간에 대해서는 공공 공간의 중요성을 역설하기보다는 리모델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어디를 가나 똑같은 동네의 모습들도 심각하다. - 시민위원회 활동 외에도 사회 각계에서 활약해 오신 것으로 아는데. 정신적으로 가장 성숙한다는 30대를 보낸 곳이 유럽의 이탈리아다 보니, 그곳의 문화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개인적으로 여러 예술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점과 부합돼 건축 외에도 다양한 일들을 하게됐다. 베니스에서 유학기간 동안 95년에 만들어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코디네이터일(95년-98년)을 했으며, 한겨레21 통신원(96년-98년) 등 몇몇 언론사에 기사를 쓰는 일을 했다. 이 두 가지 일은 서울로 돌아오게 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 9월에 '서울 2002, 도시 비전과 실천'전을 위해 서울 시정개발연구원 초빙 부연구위원으로 들어오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오랜 시간 떠나 있었던 서울에 무슨 일들이 있었나를 빠른 시간에 밀도 있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서울시에서 했던 월드컵 공원, 낙산공원에 세워진 전시관기획 및 총괄을 하게 됐다. 그밖에 2002년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프로젝트 코디네이터로 일을 했고, 최근에는 청계천 전시관 기획을 하게 됐다.(김 동문은 현재 'studio seonahKIM' 대표와 명지대 건축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 - 공사다망한 가운데에도 전시회를 열고 있는 것으로 안다. 제목은 'Visible vs. Invisible'이다. 99.9%의 건축가를 고용할 수 없는 일반 도시민들을 대상으로 했다. 지난해 있었던 2003년도 문예진흥원 기획공모전 선정돼 진흥원의 지원과 '공간', 'A Group 건축 사무소'의 후원으로 1월 17일부터 2월 2일까지 문예진흥원 마로니에 미술관 제2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도시' 와 '사람'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전개를 했다. 보이는 도시로는 우리가 흔히 지나다니며 보는 거리들, 거리 풍경, 막연히 서울이라고 생각하는 도시 모습들, 즉 우리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도시 인프라의 이면들, 익명적, 반복적 획일적 공간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내용적으로는 도시건축을 공부한 사람입장에서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느끼는 도시 서울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 - 한양 가족에게 당부하고픈 말이 있다면.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양인의 명예를 위해서는 한양인임을 잊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앞으로의 세계는 더욱 경쟁과 능력위주로 움직일 것이다. 한양인들이 유대하고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생활할 때 가능할 것이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1 15

[교수]"가장 이상적인 암호는 인간에 대한 신뢰"

'균형이론'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 은 스스로 사로잡힌 환상 속에서 끊임없이 적국의 암호를 찾아 헤맨다. 신문과 잡지의 기사를 스크랩하고, 그 안에서 행렬을 찾고 조합하여 다시 텍스트로 구성해내는 과정은 얼핏 보기에도 고도의 알고리즘과 논리력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비밀스럽고도 은밀한, 또 난해한 학문으로 느껴지는 암호학이 지식정보화사회가 도래한 지금, 새롭게 각광받는 분야임을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송정환(자연대·수학과) 교수는 21세기 암호학 분야를 이끌어갈 차세대 학자로 매우 '은밀한' 주목을 받는 인물이다. 암호학, '음지'를 넘어 '양지'로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암호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많은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로마제국 시대의 시저는 로마와 전선간의 비밀연락을 위해 '시저 암호'라 불리는 암호기술을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새로운 암호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적국의 암호기술을 해독하기 위한 많은 노력들이 집중됨으로써 암호기술 분야의 상당한 발전을 이룬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암호학은 군사, 외교, 국가 보안 등 특정 목적을 위해 봉사해 온 관계로 철저하게 베일에 학문이었다. 송 교수는 암호학이 현대 생활에서 본격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라고 설명한다. "1976년 미국에서 DES(Data Encryption Standard)라는 대칭키 암호 시스템의 표준 알고리즘을 제정하여 널리 사용하게 됐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반인들이 암호 알고리즘을 쓰는 것이 어려웠지만 DES의 제정 이후, 상업용으로 사용이 확산되며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현금입출금기(ATM) 등이 등장하게 됐지요. 이후 Diffie와 Hellman에 의해 공개키 암호 시스템의 개념이 제안되면서 학계에서도 연구가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개키 암호 시스템은 네트워크 환경에서 키 관리의 문제를 손쉽게 해결하고 사용자 및 메시지 인증, 전자서명, 부인 방지 등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정보보안 시스템에서도 핵심기술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대칭키 부문에서 SEED가, 비대칭키 부분에서 KCDSA 등의 표준이 개발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표준암호와 호환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암호 표준은 경제 분야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굳이 다른 나라의 시스템과 호환될 필요성은 없다고 일축한다. 정보의 힘이 나날이 커지고 있는 요즘, 암호 표준은 각 국가의 실정과 목적에 맞게 개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제간 연구의 결정체 암호학의 연구분야는 정수론, 군론, 복잡도 이론, 타원곡선 등 수학에 이론적 기초를 두고 있으며, 대칭키 암호 및 공개키 암호 시스템, 전자서명, 해쉬함수, 타원곡선 암호, 프로토콜, 암호해독 등의 기반 분야와 전자상거래, 인증 기술, 이동통신 보안, 네트웍 보안, 인터넷 보안 등의 응용 분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처럼 송 교수는 암호학은 암호기술을 위해 연구된 학문이지만 수학적 개념만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경영학과 물리학을 비롯해 사회학과 법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 분야가 융합되어야만 암호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암호학의 중요한 개념으로는 개방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기밀성, 다른 통신시스템과 연계하여 서로를 확인할 수 있는 인증성이 있습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데이터의 무결성을 확인하고 사용자 인증을 통해 주고받은 정보에 대해 부인(否認)봉쇄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의 이론적 근거는 역시 수학입니다. 그러나 알고리즘을 개발, 평가하고 정보보호시스템을 작동시키며 여기에 따라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학문과의 연계 역시 필수적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암호는 인간에 대한 '신뢰' 컴퓨터 및 디지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정보 기반 사회로 재편되어 가고 있다. 철도 승차권이나 음악회 티켓의 예매를 위해 창구 앞에 기다란 줄을 섰던 기억은 이제 아련한 추억 속에 자리한다.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는 물론 홈뱅킹 시스템을 이용해 각종 공과금을 가정에서 납부하고, 취업과 대학을 위한 원서접수나 신용대출 등 고급 신상정보를 요하는 업무마저도 이제는 '원클릭'으로 해결하는 추세다. 바야흐로 '디지털 세상'의 복판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송 교수는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를 맞고 있는 요즘, 보다 안정된 정보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선 각종 정보의 기밀성과 인증성 등을 보장할 암호기술도 필요하지만 이에 앞서 사람들 사이의 신뢰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야기한다. "물론 정보 보호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정보 보안의 개념 정립과 여러 가지 암호기술 습득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다소 역설적일 수 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서 암호기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향후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인데, 기술만 믿다보면 결국 사람에 의해 사고가 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죠. 자신이 자신의 정보를 관리할 줄 아는 능력을 배양하고 특히 사람 사이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정보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 수록 우리는 더욱 많은 '패스워드' 기억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처할는지도 모른다. 마이크로웨이브를 열기 전에 순간적으로 '패스워드'를 떠올리려 했던 우울한 경험이 당신에게는 있지 않은가? 개인의 정보와 자산을 지키기 수단으로서 보다 완벽한 암호기술은 정보사회의 안전을 보장하는 핵심기술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숨겨야할 그 무엇인가가 자꾸만 늘어나는 미래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기억해야할 하나의 암호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신의 삶은 하나씩 닫혀간다. 송 교수의 당부를 새삼 곰씹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작 존 내쉬를 알고리즘의 환상으로부터 구제한 것은 아내의 변함 없는 사랑과 신뢰였음을 다시 상기한다. 학력 및 약력 송정환 교수는 1961년 생으로 본교에서 학사과정을 마친 후 1989년 미국 Syracuse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1993년 Rensselaer Polytechnic Institute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리계획과 암호학을 주 연구분야로 삼고 있다. 현재 INFORMS, 한국통신정보보호학회, 한국수학사학회, 대한산업공학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서울캠퍼스 수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1 08

[교수]`목월은 내 문학적 사춘기의 표상`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서울캠퍼스에 자리한 박목월 시비의 이전이 확정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한국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문단의 굳건한 거목으로 자리했던 故 박목월 선생. 이 교수가 애송하는 김춘수 시인의 역작 '꽃'의 한 구절과도 같이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자신만의 목소리로 불러내어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어의 파편들을 모아 꽃으로 만들어 내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시인(詩人)이라 부른다. 목월(木月), 불러도 불러도 그리운 이름이여! 1983년 '심상(心想)'지에 '금환식'이라는 시로 등단한 이상호 교수는 벌써 5번째 시집을 출간한 중견 시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떠밀려 나간 백일장에서 장원을 받은 후, 시인이자 국문학자의 삶이 시작된 것 같다고 그는 회상한다. 그 후 본교에 입학한 이 교수는 그가 걸어야 할 문학인의 길에 큰 영향을 미친, 당시 본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거목(巨木) 박목월 시인을 만난다. 박목월 시인에 대한 그의 열정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것은 인터뷰가 시작된 지, 채 5분이 되지 않아서였다. "목월 선생님은 당시 시단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거목이셨습니다. 당시 목월 선생님을, 마치 여고생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는 마음처럼 따르고 존경했습니다. 제 자신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다고 착각을 가지게 된 것도 선생님의 수업시간 때였습니다. 수업시간에 제 작품이 선생님께 선택되어, 당신의 목소리로 읽혀졌던 그 영광스런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어쩌면 저를 지금까지 이끈 큰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분을 모시고 있었던 것만으로도 상당한 자부심을 가집니다." 목월 시인에 대한 이 교수의 애정은 때로는 그의 작품들 속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크고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 상호에이! 하고 부르시는 당신 / 목소리는 차라리 수묵빛 하늘 / 나는 그만 가슴이 콱 막혔다(광나루에 앉아서-목월생각 中).' 스승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그 빛을 바래고 있는 시절에 아직도 스승 생각에 가슴 두근거려 하는 이 교수는 지금도 목월 선생에 대한 신열을 내리지 못한 영원한 제자다. 이 교수는 현재 자신의 나이에 이미 한국 시단의 독보적인 존재이셨던 스승을 생각하면 스스로가 너무도 초라해진다고 고백한다. 디지털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 시인으로서, 국문학자로서, 스승으로서 목월 선생과 같은 길을 걸어가는 이 교수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이른바 시인의 요람으로 그 명성을 날렸던 본교 국문과에서 매년 고작 한 명 정도만이 등단을 통해 창작의 길에 오르는 작금의 상황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그는 매스미디어의 발달을 꼽는다. 매스미디어 발달이 독서 습관을 밀어내어 작품을 쓰기 위한 기본적 소양이 사라졌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게다가 취업이라는 현실적 장애에 부딪혀 국문학과가 비인기 학과로 전락해 가는 것도 그러한 현상을 가속화시켰다고 이 교수는 덧붙인다. 하지만 인문학이야말로 인류의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열쇠라고 이 교수는 자신한다. "인문학은 인간의 본질과 진실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쉽게 눈에 보이지 않을 뿐더러 오랜 시간에 걸려 나타나게 되지요. 반면 자본을 거름으로 자라난 기술의 발달은 짧은 시간에 큰 결과들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문명은 파괴 쪽으로만 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 인류의 삶을 행복하고 기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인문학입니다."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밀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물질적 가치가 중요해질수록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정신 발달을 위해 인문학이 고양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두 가치는 반비례 선상에 있다. 따라서 물질만능주의의 폭주를 막을 수 없는 이상 인문학의 변화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지론이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자신의 저서 '디지털 문화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있다. "과거 산업사회가 위계적이라면 디지털 시대는 비위계적이며, 일탈적입니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시대의 속성과 그 토대를 같이하는 것이 바로 시적 상상력입니다. 전통의 시가 정신속의 디지털이라면, 현대의 디지털 시대는 기계 문명 속에서 풀어낸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미 경험한 시적 상상력이야 말로 디지털 문화를 발달시키는 핵심 인자로서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적 상상력에 대한 현대적 맥락의 해석을 제시하면서도 이 교수는 전통적 의미에서 시가 지닌 기능들 역시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다. 처음 인류가 발화한 언어라고 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시라고 할 수 있다고 이 교수는 단언한다. 따라서 인간의 근원적인 순수성과 가장 가까운 것이 '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시를 읽는 행위는 공자가 언급한 '사무사(思無邪)'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찾아가는 시인학교 시인으로서, 스승으로서 이 교수는 시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항상 분주하다. 작년까지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전국 광역시들을 돌아다니며 '시 낭송회'와 '시 창작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가 그리 썩 좋았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당시를 회상하는 그의 표정이 어둡다. "모 방송매체의 게릴라 콘서트라는 것이 하루 홍보해서 5000명의 관객을 모으는데, 시 낭송회를 위해 두 달동안 홍보한 우리는 겨우 100명의 관객을 모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이제 시집 사보기를 기다리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시인의 직접 찾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시에 대한 참 맛을 느끼게 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악하게 만들어지고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시 아닌 시들을 식별해 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이제 시인들이 직접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시인은 물론 예술인들의 작품 활동은 그 속성 자체가 워낙 개인적이긴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으로 대중 앞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비록 대중의 물결과 시대적 조류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세간에 팽배한 아류문학의 거품들을 거두어 내는데 예술인들이 앞장서고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그러한 행동의 일환으로 이 교수는 이른바 '찾아가는 시인학교'를 계획 중이란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감히 시인으로서의 삶과 선생으로서의 삶에 양자 택일을 해야한다면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냐는 당돌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이 교수는 망설임 없이 시인의 삶을 선택했다. 그러나 시를 쓴다는 것은 가장 감성적인 작업이고, 가르친다는 것은 가장 이성적인 작업임에 서로 다른 영역의 경계를 넘나들기가 그리 쉽지는 않으면서도 서로의 세계를 보다 견고하게 구축하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단다. 하지만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현실의 모든 제반 문제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야 할 터인데, 그러한 것은 일찌감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쓸쓸한 미소가 번진다. "당연히 시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겠지만, 현실에서는 빈한한 삶이 될런지도 모르겠군요.(웃음) 하지만 창작만큼이나 가르치는 일도 제게는 중요합니다. 제가 목월 선생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온 것처럼 저도 새로운 세대를 가르쳐 재목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창작과 가르치는 일. 그것도 인문학을 기반으로 해야하는 두 가지 일이 과연 지금으로서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먼 미래에 우리나라를, 지구를, 우주를, 조금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학력 및 약력 이상호 교수는 1954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본교 국문과에서 학사를 마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월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 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안산캠퍼스 국제문화대학 국문화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작품집으로 『금환식』,『그림자도 버리고』,『그리운 아버지』, 『웅덩이를 파다』 등이 있으며 『한국현대시의 의식분석적 연구』,『희곡원론』, 『디지털 문화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2003-01 01

[교수]`밤을 잊은 어른들` 입학개발팀 김시정 과장

수험생들보다 더욱 많은 밤을 새운 '어른'들이 있다. 예상문제지를 풀고, 과외를 받거나 학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입시를 위해 '밤을 새운' 나날들이 학생들에 못지 않다고 자부한다. 합격의 기쁨, 그 이면에는 입학과 관련한 각종 전형 방법을 개발하고, 실제 입시행정 전반을 준비한 숨은 노고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입학개발팀은 해마다 바뀌는 입시제도와 빠르게 변화하는 교육시장의 요구에 부응하여 입학전형 업무의 전반을 관리하는 '작전상황실'과도 같은 곳. 지난 달 30일, 정시 '가'군 발표가 막 끝난 직후, 입학개발팀 김시정 과장을 찾아 그들의 숨은 노고를 들어보았다. - 입학개발팀의 업무를 총괄적으로 설명한다면? 입시는 단순히 학생을 뽑는 작업이 아니다. 입시전략은 학생선발의 뚜렷한 비전이 세워져 있어야하며, 학교의 중장기 기획과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전형 방법의 개발과 그 관리를 모두 책임지고 있다. 1, 2학기 수시모집과 정시모집, 특별전형 등 신입생 선발뿐만 아니라 편입학까지 이곳에서 담당하고 있다. - 입시 실무책임자로서의 고충이 많은 것 같다 일단 매일매일 산더미처럼 쌓이는 일들을 처리해야한다는 점에서 가장 힘들다. 입시 철에만 바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앞에서 말했듯 입시는 중장기 기획이므로 한 가지 전형이 끝났다고 해서 쉬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있을 전형, 내후년에 있을 전형까지 미리 개발하고 검토해야 한다. 또한 팀 구성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수험생의 당락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수험생과 학부모들을 문의가 있을 시에 13명 팀원 전체가 같은 생각과 정보를 갖고, 똑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팀웍도 요구된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우리는 매 전형이 끝날 때마다 워크숍을 통해 처리한 일들을 검토, 보완하고 있다. - 본교 수시모집의 전공적성검사가 화제가 됐는데 그렇다. 수시 모집에서 치러지는 전공적성검사는 우리 학교 전형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우리학교의 전공적성검사는 단순히 성적순으로 선별해내던 기존 대학의 제도에서 탈피한 것으로, 학생의 목표와 비전이 뚜렷한지 살피고, 그 가능성을 판별해내는 방법이다. 전공적성검사에는 면접이 포함되는데 응시자 1명과 교수 3명이 30분간 면접에 응한다. 이 면접으로 응시자의 지적수준과 특기, 가능성을 거의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 따라서 대학에 들어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으며, 이 방식은 학생과 학부모들 모두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 올해 실시한 100퍼센트 인터넷 전형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본교는 국내최초로 인터넷으로 지원하고 내 방에서 합격증까지 출력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100퍼센트 인터넷으로 원서를 접수하도록 했는데, 한때는 속도가 느려 불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인터넷 원서 접수는 원활하게 이뤄졌으며, 엄청난 비용과 인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민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던 작업들을 이제 인터넷을 통해 정확하고 편리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 제주도에 사는 학생이 부모님과 함께 상경해 2박 3일간 서울에 머물며 대학 전형에 응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러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인터넷 원서 접수는 국가적 차원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 입시 시스템을 개발해 특허 신청을 했다고 들었다 과거에는 미등록 결원이 생길 경우에 대비해 예비 합격생들이 직접 전화를 하거나,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그 기간에는 입학과의 전화가 불통이 될 정도로 많은 문의가 들어왔다. 이제 본교는 미등록 결원이 생기면 바로 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합격 여부를 확인 할 수 있는 '미등록 결원 충원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는 수험생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 됐고, 그 아이디어가 뛰어나 특허를 신청하게 되어 현재 절차를 밟고 있다. - 향후 업무에 있어 새롭게 계획하고 있는 바가 있다면 1월에는 정시 '나'군과 '다'군의 합격자 발표, 편입학 전형 및 발표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 2월 10일이 등록 마감일인 탓에 2월까지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이 계속 될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한 입시제도는 울릉도에도 PC방이 있다는 한국적 특성을 제대로 이용한 것이다. 그러나 속도와 기술적인 문제, 인간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문제 등은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새로운 시대와 의식에 맞는 제도를 개발하고, 좀 더 가능성 있는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002-12 22

[동문]`이거 로맨틱 코메디 아니에요`

"한양대와 국문과는 영화 위한 아이디어의 원천" 충무로 불문율 속 감독의 고뇌 어린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 전만배 감독(국문 92년졸) 대통령은 현대 국가 권력을 대변하는 최고의 상징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남다를 수 있는 것은 강력한 중앙집권의 정치사를 오래도록 경험한 탓이다. 그러나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인식도 점차 바뀌어 가고 있다. 대통령을 소재로 한 각종 유머가 일상에 지친 시민의 삶을 위로하기도 하고, 대통령선거는 이제 하나의 '국민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모습이다. '대중적 인기'에 내재한 감독의 고뇌 한국 영화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다뤄 화제가 된 '피아노 치는 대통령'. 지난 12월 8일 개봉된 이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영화는 영화 자체의 흥미도 흥미이지만, 대통령을 유머스럽고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모 방송사가 조사한 '비서실장에 가장 잘 어울릴 연예인'을 묻는 코믹한 설문에 이 영화의 주연배우가 꼽혔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10여일 앞두고 개봉된 이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은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전만배 감독(국문과 92년졸)을 인터뷰하는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 감독은 BBC와의 인터뷰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며, 30분이나 늦은 시간에 숨을 헐떡이며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감독, 그것도 이제 막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감독으로서는 아주 행복하죠. 하지만 제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부끄러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정말 제 영화가 좋아서 사랑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대통령'이란 특별한 소재를 그저 잘 꾸며서 사랑을 받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영화가 나온 이후로 부끄러워서 잠을 편하게 잔 적이 별로 없습니다." 전 감독은 영화가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하면서 신인 감독이 지난 한계와 이에 따른 경험 부족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실히 깨달았다고 고백한다. 영화의 내용을 둘러싸고 벌어진 정치권의 논쟁도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짐이었다. 그는 정치권에서 벌어진 논쟁에 대한 질문에 간단히 답했다. "누구 말처럼 정말로 정치권의 개입이 있었으면 재정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았을까요?(웃음) 당연히 영화의 완성도도 지금보다 한층 나았을 것이고, 영화 보급이나 홍보의 측면에서도 훨씬 수월하지 않았겠느냐는 식으로 반론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제작하면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가 못해 힘들었던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영화를 자세히 보셨으면 알겠지만, 값싸게 찍은 장면도 굉장히 많고요." 진지하고 체온이 깃든 영화 만들고파 전 감독은 '재미있다'는 영화평이 나올 때마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가 원래 생각했던 '피아노 치는 대통령'의 대통령은 단순히 로맨틱하고 코믹한 대통령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 감독은 대중적인 평가와는 달리 '피아노 치는 대통령'이란 영화 자체가 사실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고 일축한다. 그가 처음에 그렸던 '한민욱 대통령(안성기 분)'은 매우 진지한 대통령이다. 딸의 담임인 최은수(최지우 분)와의 로맨스도 영화의 한 부분에 불과했다. 전 감독이 처음에 써 내려간 영화의 시나리오 역시 대통령과 그 주변 사람들의 고민과 좌절, 기쁨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 아주 진지한 작품이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인들의 인간적인 면을 여성정책, 독도 문제 등과 관련해서 매우 조심스럽고도 진지하게 표현하려던 게 당초 의도였다는 전 감독의 설명이다. 그러나 신인 감독은 첫 영화에서 확실히 흥행을 해야만 미래가 보장된다는 충무로의 '불문율'에서 전 감독은 조금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보다 흥행이 수월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기존의 계획을 수정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영화는 아주 현실적인 문화 활동이며, 충무로는 아주 냉정한 동네입니다. 제가 앞으로 정말 하고 싶은 영화를 하기 위한 작전상 후퇴였다고 하고 싶네요.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영화요? '피아노 치는 대통령'하고는 많이 달라요. 진지하고 인간적인 향이 그윽한 영화를 하고 싶습니다. 언제 할꺼냐구요? (웃음) 글쎄요? 언젠가는 해야죠! 또 일단 이번 영화가 괜찮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에 앞으로는 조금씩이나마 저만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전 감독이 정말 제작하고 싶은 따뜻한 영화는 '춘향이'를 주인공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성장 영화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춘향이'와는 완전히 다른 '춘향이'를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자신의 천한 신분에 대해서 월매에게 불평하고, 이몽룡이 단 한번의 잠자리 후 기약도 없이 과거를 보러 떠나는 것에 대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춘향이가 전 감독이 상상하는 춘향이다. 한마디로 전 감독은 예쁘게 포장된 대중적 상상력을 극복하고 그 속에 내재한 인간의 진지한 내면을 그리고 싶다는 것이다. 아이디어의 원천, '한양대 국문과' 전 감독은 어느 누구보다도 본교와 자신의 출신 학과인 국문과에 대해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 데 캠퍼스 생활과 국문학적 소양이 특히 많이 작용해 왔다는 것이다.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여자 주인공인 최은수가 국어 교사이고, 한민욱과 최은수의 인연을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든 매개가 '황조가' 숙제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춘향이'를 주제로 한 성장 영화를 만들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도 재학 시절 들었던 '춘향전 원전 강독'이란 전공 과목 덕분이다. 특히 영화의 '황조가' 장면에서는 정확한 한자 자문을 얻기 위해, 과 동기인 이승수(국문과 강사)씨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단다. "국문학적 소양이라... 평상시에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특별히 국문학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영화를 만들다 보면 국문학적 소양이 저도 모르게 꽤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데 있어서도 나름대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고요.(웃음) 전공 얘기를 하니까 이제는 박노준 교수님 (인문대·국문과 교수) 생각이 많이 나네요." 학교와 학창 시절에 대한 회고를 통해 그는 많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전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품은 한양대와 한양인에 대한 애정을 짐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 감독은 본교 출신들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개인적으로는 학교와 학과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면서도 '뭉치는' 데는 조금 약한 것 같다는 지적을 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전 감독은 학교와 동문에 대한 애정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화창한 햇살이 빛나던 진사로, 여름 노을이 아름답던 노천극장, 따뜻했던 인문대 그리고 밝고, 진지한 모습으로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한양인들의 모습 속에서 저의 정서를 살찌울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클 수밖에 없었죠. 더군다나 장학금도 줬고요.(웃음) 앞으로도 계속해서 모교에 대한 애정과 감사함을 가질 것이며, 최대한 이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것입니다. 후배 여러분들도 열심히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한양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세요!"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사진 :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전만배 감독은 누구? 전만배 감독은 1983년에 본교 인문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학창시절 인문대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었다는 소문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일부 국문과 학생들마저도 그를 보며 연극영화과가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정도로 영화 속에 빠져 살았노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그래서 졸업도 1992년으로 조금 늦어졌다는 설명이다. 지난 12월 8일 개봉한 입봉작 , '피아노 치는 대통령'을 통해 데뷔했다. 전 감독은 학교에서 후배들과 함께 영화와 살아가는 얘기를 하고 싶다며, 누군가가 자신을 초청(?)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2002-12 22

[학생]경기산업디자인전서 최우수상 수상한 디자인대 김형욱 군

"시계는 손목에만 차는 것이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죠" 출품작 '첫 출근', 경기산업디자인전 최우수상 수상한 김형욱 군 (디자인대 금속공예 4) 경기도 경제단체연합회, 경기디자인협회, 안산시가 주관하고 경기도 교육청, 수원상공회의소, 한국디자인진흥원, 삼성블루텍에서 후원한 '제7회 경기산업디자인전'에서 본교 김형욱(디자인대·금속공예 4) 군이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경기도에서 주최한 본 대회에서 김 군은 산업공예 디자인 부문 가운데 금속, 도자, 유리, 목재를 이용한 생활용품 부문에 응모했으며 작품은 오는 26일, 안산시 단원전시관 3전시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출품작 남성장신구 "첫 출근"을 통해 최우수상을 수상한 김 군을 만나 공모전에 대한 소회를 들어보았다. - 출품하게 된 계기와 수상 소감은? 우연치 않게 교수님으로부터 공모전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물론 상금에 대한 욕심도 있었지만 졸업하기 전 내 전공분야에 대한 자신감을 높이고 자기 발전을 위한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주저없이 결정했다. 떨어지더라도 작품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만들 수 있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으로 더욱 큰 자신감을 얻게 된 것 같아 기쁘다. - 출품작 남성장신구 "첫 출근"에 대해 소개해 달라. 시계는 손목에만 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작품에 몰입했다. 시계를 색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열쇠고리나 브로지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명함집이나, 머니클립, 타이핀 등을 통해서는 작품 전체적인 컨셉인 직선을 많이 사용했다. 평소 깔끔하고 심플한 스타일을 많이 좋아하는데 이번 작품 역시 나만의 스타일이 그대로 배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특징 중에 하나는 시계에 부여된 독특성이다. 기성품을 쓰면 공예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 시계 속의 눈금을 하나하나 다 지우고 내 이름을 새겨 넣었다. 특히 시계는 금속으로 작업하는 데 힘들다는 이유로 남들이 많이 하지 않아 한번 시도해봤는데 결과가 좋았다. - 금속공예의 매력이라면? 우리 금속공예 전공이 다른 디자인 분야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직접 스케치한 디자인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부분이다. 물론 컴퓨터로 이루어지는 다른 디자인 전공분야도 나름대로 매력이 있지만 결과물을 직접 내 손으로 만져볼 수 있다는 장점은 디자인을 하면 할 수록 깊이 빠져드는 금속공예의 매력이다. 어쩌면 이것은 다른 전공보다 더 따뜻함을 느낄 수 있고,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내 성격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싫어해서 친구들과 여가시간을 함께 하더라도 PC방에는 가지 않는데 이런 부분들까지 금속공예의 따뜻함과 연결되는 것 같다. - 남성디자이너로서 특별히 준비해야 하는게 있다면 금속공예는 전반적으로 여자에게 유리한 분야다. 일단 남자들보다 접할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악세사리 하나만 해도 여성 잡지나 주변의 친구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 확실히 남자들보다 감각이 뛰어나다. 그만큼 나는 많이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책도 많이 보고, 전시회도 많이 참여해 직접 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것들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수상경험이 5번이나 된다고 들었다. 이번 수상의 감회는. 복도를 지나가다 만난 교수님으로부터 축하한다는 말씀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홈페이지에 나온 심사결과를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작품을 하다보면 아무리 정성을 쏟고 심혈을 기울여도 100% 마음에 들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상하게 된 것이 어쩌면 부끄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고 내 작품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작품이었던 만큼 다른 작품보다 더 세밀한 부분까지 애착이 갔는데 과분한 이런 결과를 통해서 결과는 노력에 비례한다는 진리를 사뭇 깨닫게 된 시간이 된 것 같다. -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항상 작품을 완성시키고 나면 딱딱한 느낌이 든다. 좋아하는 스타일이 고정되어 있어서 어쩔 수 없겠지만, 뒤돌아보면 선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하나같이 무뚝뚝해 보인다. 이제는 조금 둥글둥글하면서 자연미와 인간미가 느껴질 수 있는 따뜻한 작품들을 만들고 싶다. 공예라는 것이 원래 일상생활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인 만큼 친근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의 작품, 그렇다고 해서 흔하지 않고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있는 그런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12 15

[동문]`내가 오늘 읽는 것은 너의 미래`

<한양동문이 뛴다 32> 이제 국가의 장래에 대해 감히 '훈수'를 둘 만큼 현대사회의 시민은 도도해졌다. 모든 정보를 국가가 독점하고 사회의 미래에 대한 점괘를 오직 공무원이 놓던 시대는 아득한 추억의 저편에 있다. 현대에 있어 기업활동이란 단순히 양질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고 판매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 관점에서 보다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국가와 시장의 미래를 예측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는 순수 연구의 영역까지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국내 최고의 씽크탱크 중 하나임을 자임하는 삼성경제연구소는 정부의 경제정책에 곧잘 'F학점'을 내놓기도 하는 '도도한 시민'의 대표주자인 셈이다. 정부에 'F학점'을 내린 기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컨설턴트로 재직 중인 송영필 동문(도시공학 91년졸)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사의 '도도함'에 대해 누구보다 자부심이 높다. 민간 기반의 여타 경제연구소들이 모회사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반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자회사는 물론 정부에 대해서도 '입바른 소리'를 일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민간기업 연구소의 대부분이 단순히 증권회사를 지지해주는 역할을 수행해 오던 것에 반해 삼성경제연구소는 상대적으로 모회사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위와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또한 국가 엘리트가 주도하는 경제 연구가 아니라, 민간기업의 시각에서 경제 연구를 하고 있는 것도 저희 연구소의 특징입니다. 점차 그 위상이 높아져 가는 민간 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저희 연구소의 대표적 업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역시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연구소의 배경을 두고 있는 탓에 삼성경제연구소가 갖는 한계도 없지 않다. 이른바 연구소라는 글자 앞에 붙여 놓은 '삼성'이라는 수식어가 갖는 음영이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의 경영 노하우가 축적되었을 것이라는 진실 아닌 진실을 이유로 벤치마킹을 꿈꾸는 다수의 기업들이 연구소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반면, 경쟁 관계에 있는 유사한 규모의 대기업들간에는 기업보안을 이유로 상호 연구를 의뢰하거나, 수주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연구소의 동력, '학제간 연구' 송 동문의 약력을 검토하며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경제연구소에 몸담고 있는 그의 전공이 '도시공학'이라는 점이었다. 일반적으로 '컨설턴트'라고 하면 상경 계열의 학생들이 최고의 전문직종으로 희망하며, 실제로 해당 직업군을 독점하는 분야로 인식되기 쉽다. 하지만 송 동문은 본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한 자신의 경력을 내세우며 경영에 대한 상기의 편견이 왜 협소한 것인지를 조목조목 나열하고 나섰다. 물론 경제연구소의 가장 큰 역할이 경제 예측과 기업 경영에 대한 자문이기는 하지만 경영은 재무와 회계를 넘어선 보다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 자주 목격되는 경제 현상 중 하나가 이른바 '경제 착시현상'이라는 것입니다. 현재에도 전체 경제의 통계 수치만을 살펴보면 상당한 호황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업종군이나, 지역별 경제 상황을 살펴보면 IMF가 다시 도래했다고 느낄 만큼 어려운 분야와 지역이 있습니다. 이는 특정 업종의 고성장과 서울 위주의 발전이 과도한 탓에 통계수치상으로는 그 불황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영의 바탕에는 일반인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다양한 연구분야가 존재합니다. 저요? 부동산(real estate)이 제 연구 분야죠." 아울러 송 동문은 거시적인 국가경제 연구가 아닌 미시적인 지역경제 연구에 있어서 자신의 전공이 탁월한 쓰임을 발휘한다고 부연한다. 사실 송 동문 외에도 삼성경제연구소에는 사회학, 정치학은 물론, 문화예술 부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공을 지닌 컨설턴트들이 있다. 이러한 구성인자들이 많은 경쟁 민간연구소들이 도태되는 외환위기 와중에도 삼성경제연구소를 건실하게 지켜주었던 버팀목이 되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민간연구소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경제나 경영 부문인데 반해 저희 연구소는 학제간 연구를 많이 수행합니다. 그러다 보니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견해가 제시됩니다. 도출된 의견들을 하나하나 융합하다 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매우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 낼 수가 있지요. 이런 경쟁력이 지난 외환위기 때에도, 오직 삼성경제연구소만이 발빠른 대응책을 낼 수 있게 한 동력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학벌의 신화'를 깬다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하기 전, 송 동문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잠시 몸을 담았다. 이후 삼성으로 자리를 옮긴 까닭을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현실에 반영되는지 알 수 없었던 공공 연구기관의 한계 때문이라 설명했다. 또한 민간연구소가 공공연구소보다 상대적으로 현장 밀착적이라는 점 외에 공공연구기관이 지닌 학벌에 대한 신화가 자신을 옥죄고 있었노라 고백한다. "얼마 전 일본에서 학사 출신의 연구원이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아직까지 학벌이 중요한 우리나라나 공공 연구기관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연구소에서는 학사, 석사 ,박사 따위의 학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능력과 노력이 있다면 연구소 내의 그 어떤 지위까지도 승진이 가능합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를 총괄하는 소장님이 학사출신이라는 점을 알고 계십니까?"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닌 개방적인 사고와 유연함은 비단 학력의 문제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공공 연구기관과는 달리, 매우 짧은 시간에 신속한 분석이 요구되는 3개월 미만의 단기 프로젝트들을 주로 수행한다. 따라서 동시대에 이슈화된 경제 전반의 문제들에 대해 그 어떤 공공연구소보다 빠른 연구와 분석을 제공하도록 훈련되어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내가 오늘 읽는 것은 당신의 미래 물론 송 동문은 삼성경제연구소가 단기 연구에 익숙한 탓에 주로 중장기 프로젝트를 하는 공공연구소들에 비해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진행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의 단점이라 말한다. 또한 철저한 능력 중심의 연구소 운영 방침으로 인해 '상시 구조조정'의 위험부담을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은 민간연구소가 주는 '근심'이라는 사실도 덧붙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평생 책상물림을 면치 못하는 연구원의 직분이 숙명처럼 행복하다 고백한다. 남들보다 늘 앞서 배우며 살아간다는 것이 주는 지적희열 탓이다. "이 직업은 항상 새로운 정보들을 먼저 찾아내고 접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물론 그것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지만, 세상의 흐름을 읽어낸다는 성취감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느라, 오늘 즐거운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불확실한 저의 미래를 걱정하지만, 제가 오늘 읽는 것은 당신의 미래입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송영필 동문은 1991년 본교 도시공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 서울대학교에서 도시계획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같은 해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입사했다가 이듬해인 1995년, 삼성경제연구소로 이적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컨설턴트인 그는 '지역산업정책' 및 '부동산'을 자신의 전문 연구분야라 소개한다. 최근 '인터넷시대의 지자체 웹사이트 기능 강화방안', '재정동향점검시스템(FTMS)을 이용한 지자체 재정진단', '외국인 직접투자 촉진을 위한 정책과제' 등의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2002-12 15

[교수]`21세기 화두는 환경 친화적 개발`

"21세기 화두는 환경친화적 개발입니다" 개발과 보존, 공조의 지혜 찾는 도시대학원 이주형 교수 오는 19일 선거를 앞둔 여야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은 최근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진행 중이다. 한쪽에서는 극점에 다다른 서울의 과밀을 해소하기 위해 '행정기능 이전'이란 가히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하다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선 예산과 '서울 공동화'의 문제를 들어 '형편없는 발상'이란 막말도 서슴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서울 시민들의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 가히 포화상태에 이른 서울 거리의 숨막힘을 떠올리다가도, 성급한 추진으로 갖은 문제를 야기했던 신도시 개발 사례를 상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도시개발에 20여년의 세월을 함께 해 온 도시대학원 이주형 교수는 '이전'에 대한 찬반의 입장에 앞서 중요한 것이 '일관성'이라 강조한다. 도시계획의 생명은 '일관성' "대선 이후, 정책 입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보다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도시개발은 단기간에 이루어져야 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단순히 주택 가격이 상승했다고 해서 억지 정책을 세우고, 또 주택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정책을 바꾸는 이러한 모습이어서는 안됩니다. '수도기능' 이전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바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향후 입안될 모든 도시정책은 사전 치밀한 검토와 일관된 정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수도이전'에 대한 논의는 1970년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0.26 사태로 인해 프로젝트는 '미완의 계획'으로 남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천도'에 대한 거대한 꿈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이래 600여년만에 부활한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 교수가 도시개발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도 이 즈음의 일이다. 본교를 졸업한 이후, 과학기술원 지역개발센터를 시작으로 이 교수는 지금까지 2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굵직굵직한 도시개발을 주도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 왔다. 이런 그의 공로가 인정되어 지난 1998년에는 국민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도시계획에 대한 그의 애정이 그 누구보다도 각별한 까닭은 지난 세월의 곳곳에 묻혀 있는 셈이다. "기본적으로 도시계획이라는 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계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많은 세부 사항들이 첨가되겠지요. 보다 편리하게, 보다 안락하게 그리고 보다 안전하게 사는 것.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계획하고, 그에 따른 문제점들이 발생했을 때의 해결 방안을 미리 세우는 것까지도 도시계획에 포함됩니다." 개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 이 교수는 도시계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시 안에서 살아갈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강조한다. '도시'를 위한 도시계획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도시계획이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런 이유에서 그는 최근 5년 사이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신도시들이 못내 걱정스럽다. 외국에서는 하나의 신도시가 개발되기 위해서 보통 10년 내지 20여년의 기간이 소요되는데 반해, 우리나라의 도시는 불과 2-3년 사이에 급조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이런 단기간의 개발 계획들에는 거주의 주체로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가 흔히 소외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오래 전부터 '빨리빨리'라는 것이 몸에 배어 왔습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개발 계획 수립에서부터 도시 건설까지가 불과 몇 년 안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신도시들은 도시로서의 기본 기능들을 다 갖추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또한 주변 도시들과의 조화도 이루지 못합니다. 물론 신도시는 꼭 필요하지만, 그 '필요' 때문에 단기간에 하나의 도시가 건설될 수는 없습니다. 도시건설은 반드시 장기적인 안목에 의해서 추진되어야만 합니다. 그 곳에서 더욱 오래 살아갈 사람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우리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도시개발에 있어서 장기적인 안목을 강조하는 이 교수는 우리나라의 '그린벨트' 제도를 무엇보다 성공적인 정책으로 평가한다. 현재 도시대학원장과 환경대학원장이라는 '개발자'와 '보존자'의 서로 상반된 직위를 겸하고 있는 이 교수가 생각하는 공존의 지혜, 그 한구석에 세계가 인정하고 극찬한 '그린벨트' 정책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60-70년대의 '개발'에 의존하던 시대는 끝이 나고, 이제 '보존'에 의존해야할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보존을 위한 개발, 즉 환경친화적 개발이 21세기의 화두입니다. 최근 재산권 집행에 대한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측면에서 그린벨트를 해제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입니다. 지금까지 보존되어온 그린벨트는 사실상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후손들을 위한 몫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후손들에게는 물려줄 것들이 얼마나 남았다고 생각합니까?" 정부가 그린벨트 매입해야 그렇다고 그린벨트 폐지를 반대하는 이 교수가 보존 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 개인들을 외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의 소유지가 그린벨트에 속한다는 이유만으로 한 개인이 일방적인 재산손해를 보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이 교수의 견해다. 그가 생각하는 책임의 좀더 많은 부분을 정부에 묻는다. "그린벨트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개인들의 견해는 타당합니다. 사실상 그린벨트 제도는 명백한 재산권 침해이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해서 재산권 보호를 그린벨트 정책보다 무조건 우선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갖은 논란과 반대 속에서도 많은 공을 들여 지켜온 그린벨트를 유지하는 동시에 개인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안이 제시되어야 합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저는 그린벨트가 국가에 의해 매입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개 사립은행을 살리는데 들어가는 공적자금은 아깝지 않고, 영구히 살아갈 국토를 살리는데 필요한 예산은 없다는 말이 됩니까?" 이 교수가 재차 강조하며 지적하듯 우리나라의 도시개발 정책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일관성'의 결여와 사회의 조급한 요구를 이기지 못하는 '즉흥성'에 있다. 사적 재산권의 침해를 주장하는 몇몇 개인을 설득하지 못해 수 십년을 지켜온 그린벨트를 폐지하는 것이나, 선거가 닥칠 때마다 등장하는 그린벨트 해제 공약은 우리나라의 정책들이 너무도 즉흥적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그는 부연한다. 어찌 보면 정작 우리가 둘러야 할 참된 그린벨트는 담장 밖이 아니라 조급한 도시인의 마음에 있는지도 모른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t 학력 및 약력 이주형 교수는 1979년 본교 건축공학과에서 공학사를 취득했다. 이후 교비 유학생으로 미 코넬대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본교 도시대학원장 및 환경대학원장을 겸임하고 있다. 건설교통부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위원, 국립공원 관리공단 자문위원, 서울시 개발제한구역 제도개선협의회 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고 대표 저서로는 『인간과 환경』, 『지역계획론』, 『도시의 계획과 관리』등이 있다.

2002-12 15

[동문]공중파에 등장한 한양의 우먼파워들 백승주·김윤지 양

"여유로움과 당당함, 관련 분야 경력이 합격의 비결" 본교 출신, 최초 KBS 공채 여성 아나운서 '한양의 공중파 점령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지난 23일 발표한 한국방송공사(이하 KBS)의 2003년도 신입사원 공채 결과, 두 명의 한양인이 아나운서 부문에 최종 합격했다. 이미 KBS 9시 뉴스를 맡고 있는 홍기섭 동문과 SBS 8시 뉴스 앵커 이영춘 동문 등 각 방송사의 메인 뉴스 진행자를 배출한 본교지만, 이번의 결과가 주목받는 이유는 합격자가 모두 여성이기 때문이다. 본교 출신 여성으로써 최초로 공중파 방송 아나운서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은 바로 백승주(독문 99년졸) 동문과 김윤지(생과대·소비자가족주거4)양. 2003년 새해부터 브라운관을 통해 마주하게 될 새내기 아나운서들을 만나 당찬 포부를 들어보았다. -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생각하게 된 계기는? 백 : 사실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진 않았지만 '말하기'라는 분야에 대한 관심은 많았다. 대학원(교육학 전공) 논문도 '말하기'를 주제로 썼고 오하이오 대학에 유학을 갔을 때에도 'public speaking'을 열심히 배우기도 해, 그 분야에선 자신이 있었다. 이후 방송에 관한 것은 삼척 MBC에 입사한 후 뉴스, 공익광고, 내레이션 등을 직접 경험해 보며 더욱 자세히 알게 됐다. 김 : 주위에서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많이 들어 처음엔 성우를 준비했다. 그러던 중 아나운서 쪽에 관심을 가지게 돼 3학년 말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고 관련 학원과 스터디 그룹, 신문 읽기 등을 통해 차분히 준비했다. - KBS에 입사하기 전 경력은? 백 : 며칠 전 사표를 내기 전까지 삼척 MBC에서 1년 동안 근무했다. 사실 수습 3개월 차까진 '사고'를 우려해 방송을 못하는데 운 좋게 일찍부터 경험을 쌓게 되어 좋았다. 또한 지난 여름 태풍 피해로 인한 수재의연금 모금 방송을 맡은 것도 큰 경험이 됐다. 그리고 각 지역 자체 방송인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김 : 작년 모 라디오 전문방송사 공채 시험에 합격해 라디오 DJ로 일해왔다. 새벽 2시와 4시 사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맡아 지난 8월부터 진행해 왔는데, 선곡부터 멘트, 진행까지 경험하며 예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것을 배웠다. 또한 청취자들과 함께 호흡하며 다양한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행복했고 그분들을 잊지 못할 것 같다. - 공채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때와 그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백 : 강원도에서 회사를 다니다보니 서울까지 시험 보러 오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한번은 방송과 KBS 카메라 테스트가 겹쳐 각서를 쓰고 총알택시를 탄 적도 있다.(웃음) 일하며 공부를 하다보니 잠도 부족했고 여러 가지 이중고에 시달렸다. 하지만 최종 면접은 사장님과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여유롭게 진행하게 돼 매우 편안했다. 최종 면접에서 '영어 잘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곧바로 영어로 대답하면서 분위기를 바꾼 것이 유효했던 것 같다. 김 : 마찬가지로 공부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모두 부담이었다. 그러나 제일 힘들었던 순간은 역시 최종 면접이었다. 다소 긴장된 상태에서 '북한 핵'에 관한 질문을 받고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라는 답을 말했는데 돌아온 질문은 '대화면 돼?'라는 것이었다. 면접관의 당혹스런 질문이었지만 나는 좀 엉뚱하게도 '예, 대화면 됩니다'라고 짧게 말하고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다. 당시 면접관들의 표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아찔한 순간이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여유와 배짱이 합격을 안겨준 듯 하다. - 앞으로 가장 장 맡고 싶은 프로그램과 닮고 싶은 여성 아나운서는? 백 : 뉴스 진행을 가장 하고 싶다. 모든 아나운서들의 공통적인 희망이겠지만 신속하고 정확한 보도를 시청자들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전달하는 매력은 엄청나다. 뉴스와 더불어 MC도 욕심나는 분야다. 너무 튀지도 않고 기죽어 있지도 않은, '평범 속의 비범'을 발산하는 MC가 되고 싶다. 'VJ 특공대'는 사람 냄새가 풍기는 프로그램이어서 꼭 해보고 싶고, 이를 진행하는 황수경 아나운서 또한 가장 닮고 싶다. 김 : 뉴스, 라디오, '도전 골든벨', '가족오락관' 등 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물론 그 중에서도 뉴스가 가장 욕심나는 분야이긴 하지만 어떤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닮고 싶은 분은 KBS 아나운서실 차장으로 계신 이규원 선배다. 프로그램 진행의 차원을 넘어서 나레이션, 성우 등 다양한 분야를 개척해 아나운서 역할의 지평을 넓혔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꼭 닮고 싶은 분이다. -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본교의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백 : 자신의 자질을 검증해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아나운서에게 요구되는 외모, 말투, 지식 등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현재와 비교한 후 부족한 점이 있다면 하나씩 채워나가야 한다. 또한 관련 분야의 경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 최종 합격자의 대부분이 경력자이다. 여유로움과 당당함을 가지고 준비에 임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것이다. 김 :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왜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정말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면 일상생활에서부터 아나운서다운 자신만의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한 여성들의 경우 텔레비전 경력은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상 오히려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면 분명 누구에게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