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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9 15

[동문]`21세기 한국 해양정책의 집행관`

"해양정책은 '개발'과 '보존' 동시에 잡아야" 최초 중국 항로 개설에서 미래 해양정책까지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 서정호 동문 (법학 73) "해양수산부는 풍요로운 바다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해양수산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모토다. 굳이 이러한 구호가 아니더라도 바다가 풍부한 '자원의 보고'임을 재삼 강조하는 것은 이제 상투적인 느낌마저 든다. 식량자원에서부터 광물자원 그리고 생명산업에서부터 관광산업에 이르기까지 바다가 지닌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런 측면에서, 바다로 먼저 진출한 국가들이 전성기를 누린 19세기처럼, 21세기는 바다의 자원을 먼저 개척하는 나라들이 번성할 것이란 예측을 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개발'과 '보존', 두 마리 토끼 잡는다 해양수산부 해양정책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서정호(법학 73) 동문. 그는 현재 해양수산부 내에서도 각종 해양정책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핵심 관료다. 구체적으로는, 해양 환경 보전 그리고 해양 자원 개발과 관련된 정책의 수립 및 집행이 서 국장의 중심 업무이다. '개발'과 '보전'이란 다소 상충된 영역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그냥 보면 대립적인 부분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른바 차세대 해양정책들은 바다를 최대한 보호하면서 동시에 최대한 개발하자는 것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양식기술 같은 것을 개발하면서도 양식장의 인근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관리도 철저히 하는 것이죠. 해양 환경의 보존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많은 양의 자원을 지속적으로 확보하자는 것이 해양수산부의 방침입니다." 서 국장은 이제 단순히 바다를 어업의 현장으로서만 인식해서는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이라 지적한다. 첨단 과학기술과 장기적인 안목을 이제 해양 정책에도 적용시켜야만 한다는 것이 서 국장의 지론이다. 가령 어업의 경우만 하더라도 과거와 달리 단순히 물고기를 잡는 기술 개발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설정하고 있으며, 어류 자원의 고갈 현상이 심각하게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현재의 WTO 체제에서는 외국산 수산물이 싼값에 국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길도 사실상 전무한 형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은 힘들더라도 바이오 기술의 개발을 바탕으로 한 양식산업, 어촌과 갯벌을 활용한 관광산업, 그리고 해저 지하자원을 발굴하는 광물산업 등을 중심으로 해양산업의 전반적인 틀이 옮겨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서 국장은 강조한다. 실제로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서 국장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도 태평양에서 구리, 망간, 니켈, 크롬 등과 같은 심해 광물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수심 200미터에서 흐르는 심층수 개발과 해양 바이오 산업 육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해양 전문통 해양정책과 관련된 서 국장의 거시적인 시각은 해양수산부 관료로서의 전문성을 잘 증명해 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러한 서 국장의 전문성은 지금까지 그가 걸어온 해양 행정관료로서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에 배경을 두고 있기도 하다. 대학 3학년 때인, 지난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관계에 입문한 서 국장은 해운항만청(舊 해양수산부) 진흥과장, 주중 대사관 초대 해양수산관, 기획예산담당관, 공보관, 안전관리관 등과 같은 부처 내 핵심 보직들을 두루 거쳤다. 그리고 지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현정부 내 100대 요직(월간조선 2001년 2월자 참고) 중 하나로 꼽히는 해운물류국장으로 근무했다. 다양한 보직을 거친 만큼, 서 국장이 이룩한 성과들도 다양하다. 해운항만청 진흥과장으로 근무하던 지난 1990년, 서 국장은 당시 미수교 국가이던 중국과의 과감한 협상을 통해 카페리 항로를 최초로 개설했다. 또한 주중 대사관 해양수산관으로 재임 중이던 1993년에는 '한중 해운협의회'를 정례화 시키기도 했다. 서 국장이 해양수산부 내 '중국통'으로서 인정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또한 해운물류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에는 항만 운영과 관련된 업무의 일부를 민간 부문에 위탁토록 하는 작업인 '항만공사' 설립과 선박회사들의 선박활동을 쉽게 하는 '선박투자회사법'과 같은 큼직큼직한 사안들을 기획하기도 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부처 배치를 받을 때 해운항만청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처음 만들어진 부처라서 저희 기수에서 20여명이 해운항만청으로 발령을 받았죠. 당시만 해도 아무런 관련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쪽 분야의 일이 규모가 크고, 변화가 많은 특징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습니다. 업무가 제 적성에도 맡는 것 같아 재미도 있고,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웃음). 어촌 출신은 아니지만 바다에 갈 때마다 아주 기분이 좋고, 친근함을 느낄 정도죠. 배 타는 것에도 비교적 적응을 잘하는 편이고요." 많은 후배들이 공직자의 길 걸었으면 대학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서 국장은 자신의 대학 생활이 너무 '드라이'했던 것 같다며 웃는다. 당시는 사회적으로도 어두웠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캠퍼스의 분위기도 무거울 수밖에 없었노라고 회고한다. 그러나 행정고시반에서 함께 공부했던 동기, 선·후배들과의 추억을 꺼내놓으며 환한 표정이다. "행정고시반에서 같이 공부를 했던 동기, 선·후배들과는 지금도 자주 만납니다. 박혁진(경제 73) 서울지방조달청장, 이종정(경제 73) 국가보훈처 기획관리관, 신현욱(법학 73)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연구진흥원 수석 전문위원 등과 같은 행정고시반 73학번들과는 지금도 매달 한 번씩 등산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며 서 국장은 좀더 많은 후배들이 공직자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특히 그는 해양수산부의 경우 업무의 성격이나 규모가 워낙 방대하고, 특수하기 때문에 아직 개척의 여지도 많다며, 공직에 관심 있는 후배들이 해양수산부에도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제가 공직에 있어서이겠지만, 더욱 많은 후배들이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 학교 출신의 행정고시 합격자들은 양적으로도 많고, 전 부처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초기 합격자들이 소속 부서의 중심적인 국장급으로 활발히 진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행정계에 들어올 후배들은 선배들의 도움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웃음). 그런데 갈수록 행정고시보다는 사법고시를 훨씬 더 많이 준비하는 것 같아 조금 아쉽군요." 그는 이번 여름 한바탕 '전쟁'을 치루었다고 했다. 태풍으로 인해 우리나라 인근 연안에 엄청난 양의 쓰레기들이 떠내려왔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규모 적조 현상까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국무총리 서리 인사가 있었고, 국정감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그래서 서 국장은 이번 가을에도 또 한 번의 '큰 전쟁'을 치뤄야 할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그의 웃음 속에서 아주 맑은 한국 해양의 기상도를 발견한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서정호 해양수산부 해양정책 국장은 1973년 본교 법학과에 입학해, 3학년이던 1975년, 행정고시 17회로 관계에 입문했다. 해운항만청(舊 해양수산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한 후, 지난 1986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해사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부산지방해운항만청 항무과장, 해운항만청 진흥과장, 행정관리담당관, 주중 대사관 해양수산관 등으로 근무했다. 해양수산부 발족 후에는 기획예산담당관, 공보관, 안전관리관, 해운물류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2년 현재, 해양정책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2002-09 15

[교수]`즐거운 춤이 가장 훌륭한 춤이다`

몸의 언어로 빚어낸 한글 사랑 생활체육과학대학장 이숙재 교수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이란 것이 있다. '막간 여흥' 혹은 ‘기분 전환'을 지칭하는 이 말은 고전발레와 현대무용에 있어 유희를 위한 일련의 무용을 말하는 것으로, 작품의 줄거리와 관계없이 볼꺼리를 위해 삽입하는 화려한 춤이다. 무용에서 디베르티스망이 적절히 강조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춤이란 '이해'에 앞서 '보는' 예술인 까닭이다. 안산캠퍼스 생활무용예술학과의 이숙재 교수 역시 '춤이란 고귀하고 우아하기 이전에 즐거워야 하는 것'이라 단정하고 나선다. '본다'라는 행위는 언제나 말보다 선행한다. 나는 춤춘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 교수는 오는 9월 26일 아시안 게임 개막식 공연에 이어, 10월 9일과 10일 이틀 간 국립대극장에서 있을 한글날 기념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밀물현대무용단의 이사장을 비롯한 각종 직함들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최근 생활체육대학 학장에도 임명된 바 있다. 분주한 일상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학장으로서도 정도를 따라, 정의롭게 그리고 합리적으로 업무에 임할 테지만 결코 무용인의 삶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프로는 아름답다'라는 모 광고의 문구가 머리 속을 스치는 순간, 공연에 대한 이 교수의 분주한 언어가 계속된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의 대 전제는 '통일로, 세계로, 미래로'입니다. 특히 이번 아시안 게임에 북한 선수들이 우리와 함께 경기에 출전하게 됩니다. 한글을 주제로 작품을 준비한 까닭은 통일이라는 민족의 대 염원을 앞에 두고, 북한과 우리의 공통점을 찾다보면 언어가 제 1순위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한글은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가장 극명한 상징입니다. 이번 개막식 공연의 춤을 통해서 북한 선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동포들이 그것을 꼭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아시안게임 개막식 공연에 이은 10월의 공연은 문화관광부 주최로 범국가적 차원에서 준비된 한글날 행사의 일환이다. 매년 쉬지 않고 무대에 올려 온 공연에 대해 이 교수의 애착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올해의 공연을 위해서도 일 년여 시간 동안 준비를 해왔노라 설명하는 이 교수는 학예회를 앞둔 소녀처럼 상기된 표정이다. 춤으로 승화된 한글, '읽지 말고 느껴라' "미국 유학시절에 다민족이 모여서 수업을 듣는데, 과제가 그 민족이 가진 고유한 소재를 통해 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의 기와집, 덕수궁, 장구 등의 사진을 가져갔는데, 중국 동료와 일본 동료가 가져 온 사진들이 저의 것과 너무 흡사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자인에 있어서 차이는 있지만, 그 모든 것이 거슬러 올라가면 중국의 영향 아래 이루어 진 탓이었죠. 너무나 낙심하여 한국문화원에 가서 조사했더니 한민족만이 가진 독자적인 문화유산은 오로지 한글과 금속활자뿐이었습니다" 20여 년의 세월동안 이숙재 교수를 한글에 매달리게 만들었던 '한글사랑'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 때부터 한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한글을 무용에 끌어 들였다. 춤 역시 무언(無言)의 언어임에 자꾸만 '말하고자' 하는 그녀의 욕망이 결국 '언어'에 귀착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교수의 이런 '한글 사랑'이 처음부터 모두에게 환영받았던 것은 아니다. "홀소리와 닿소리를 주제로 처음 무용을 만들었더니, 한글학회 분들이나 다른 무용하는 분들이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그 동안 무용이라고 하면 서정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적인 소재로 무용을 만들어낸 제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처음에는 이런 분들의 냉대에 힘들기도 했지만, 대한민국무용제에 출품한 작품이 수상을 하면서 점차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에 한글이 예술로 승화될 수 있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무용제 수상 이후 한글의 홀소리와 닿소리 뿐 아니라 훈민정음 창제 원리인 '천(天)·지(地)·인(人)' 사상과 음양오행의 '화수목토(火水木土)'사상 모두를 무용의 소재로 개발해 오고 있다고 이 교수는 부연한다. 게다가 이 교수가 만들어낸 작품들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비롯해서 현대 무용계에서는 드물게 수 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무대에서 공연되어 왔다. 전국의 한글사랑 동아리들과 한글을 사랑하는 학자들의 지극한 애정 때문에라도 공연을 쉴 수 없다는 이 교수의 말에 행복한 웃음이 번진다. "이번 공연의 주제는 '움직이는 한글' 입니다. 많은 부분 사회 고발 형식을 가지고 있죠. 인터넷 시대, 디지털 시대에 돌입하면서 한글이 점차 왜곡되고 변형되어 가고 있습니다. 외래어가 접목된 단어들이 너무도 빈번히 사용되고, 이미지들이 언어를 대체해 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글의 변화주기가 50년, 10년으로 줄어들다가 근래에는 1년이 채 되지 않는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한글이 변모해 갔을 때 우리의 민족성과 자주성이 어떻게 변화되어 갈 것인가를 생각하며 작품을 준비했습니다." '즐거운' 춤이 '훌륭한' 춤이다 공연 예술이란 관객과의 호흡과 감동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문화다. 따라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무대로 이끌어 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예술인에게 공통된 바램이다. 특히 현대무용은 타 예술에 비해 아직 우리나라에서 그 지지기반이 미약하기에 이 교수가 지닌 바램은 더욱 크다. 안산캠퍼스에 건립중인 무용관을 두고 마치 새 집에 이사를 앞둔 신혼부부처럼 이 교수는 설레이는 마음을 비춘다. 학교 당국에 깊은 감사를 표하는 동시에, 이번 기회를 통해 한양의 문화의식이 발전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인다.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우선 무용이 즐거워야 합니다. 집에서 텔레비전 드라마를 볼 시간에 공연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연이 즐거워야 합니다. 둘째는 그 작품을 연구해서는 안됩니다. '저것이 무엇일까?'라는 것을 가지고 보면 그 작품은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영화를 볼 때 사전에 공부하고 가지 않듯이 무용에 있어서도 먼저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치밀한 호평보다 '즐거웠다'라는 관객의 반응이 작품에 던지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이 교수는 현대 무용의 대중화를 위해 두 가지 조건을 설명하면서 무엇보다 무용에 대한 편견을 버릴 것을 당부한다. 기존에는 무용을 한다고 하면 무조건 키가 크고, 수려한 외모와 함께 날씬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점차 미인에 대한 기준들이 무너지고, 무용도 개성에 맞는 스타일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 뚱뚱한 사람은 뚱뚱한 데로, 키가 작은 사람은 작은 데로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춤이 일상으로 들어온 시대에 우리는 있다고 덧붙인다. 욕망의 피날레, '갈 길이 멀다' 한 시간 여 동안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지금까지의 수많은 작품들과 수상작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단호한 표정 속에 '없습니다'라는 짧은 대답이 뒤를 잇는다. 화려한 수상 경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끝없는 욕망이 짧은 언어에 담겨있다. "20대부터 인간의 세포가 노화되기 시작하여, 30대가 되면 늙기 시작하고 40대가 되면 기능이 저하되고, 50대가 되면 갱년기가, 60대가 되면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집니다. 어떤 면에서 저도 이미 무용수로서의 기량을 점점 잃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무가가 되어 내가 가진 철학과 사유를 무용으로 승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없더라도 나의 작품이 200년, 300년 그리고 영원히 남기를 희망합니다. 평생을 바쳐서라도 그런 작품을 만들어 내고 싶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이재룡 사진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이숙재 교수는 이화여자 대학교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뉴욕대에서 대학원을 마치고 건국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밀물현대무용단 이사장, 한국무용협회 이사, 한국현대무용진흥회 부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1989년 제6회 코파나스상을 비롯해서, 1991년 한국예술가협회 최우수 예술가상(홀소리·닿소리), 1993년 서울무용제 대상 및 안무상, 1997년 이사도라 무용예술가상, 2000년 제1회 PAF 예술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2002-09 15

[교수]세계 산부인과학회 최우수논문상 수상 박문일 교수

한양 태아감시시스템 개발로 정상발육여부 감별 "부드러운 출산환경 만들기에 앞장설 터" 위클리한양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서른 다섯 번째 주인공이었던 박문일(의대·산부인과) 교수 연구팀이 세계 산부인과 학회(IJGO)가 주는 전년도 최우수 임상연구논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박 교수는 지난 2000년 1월 서울방송에서 방영된 뮤지컬 배우 최정원 씨의 수중분만을 지휘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미 지난해 본교에서 최우수교수상을 받은 박 교수에게 1년여만에 또 다시 찾아든 수상의 기쁨을 들어보았다. - 세계 산부인과 학회 최우수 논문상 수상 소감은 사실 세계적인 학회에 논문을 제출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논문 제출마다 매번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이번 수상 논문은 10여 년 이상 끊임없이 매달려 연구한 결과를 완성한 것이므로 기쁨이 더욱 크다. - 이번 수상 논문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지금까지는 산모가 태아의 건강상태를 살펴볼 때 주로 초음파 검사를 이용하고, 임신 중기 이후에는 심박동검사를 병행해 알아보았다. 그러나 사실 심박동수가 정상이라고 해서 태아가 반드시 건강한 것은 아니며, 심박동검사는 의사가 눈으로 보고 판단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신개발 소프트웨어를 통해 태아의 정상발육 여부 감별 기법을 연구한 것이 이번 논문의 주 내용이다. -자체 개발한 한양 태아감시시스템은 어떤 역할을 하나 한양 태아감시시스템은 심박동 자동분석 소프트웨어이다. 우리 연구팀은 10여 년 동안 임산부 6천 4백 55명을 대상으로 태아 심박동 주요 변수를 분석하고, 태아의 정상발육 여부를 감별할 수 있는 기법을 연구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그간의 연구 과정 데이터를 정확히 분석해내고 통계치를 산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신개발 소프트웨어는 태아의 정상발육 여부를 더욱 정확하게 진단해낼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이다. - 신개발 소프트웨어의 명칭에 '한양'이라는 본교 명을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모교 사랑의 마음이라 생각해주면 좋겠다. 한양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또 지금은 한양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어 우리 학교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다. 이번 논문은 실용학풍이라는 한양대학의 슬로건과도 맞물려 더욱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다. 후배들이 좀 더 자신감을 갖고 한양인의 정체성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 2000년 첫 날 방영된 수중분만 TV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있다. 그 후 우리의 출산 문화는 어떻게 바뀌었나 TV 방영 이후 수중분만 뿐만 아니라 좌식분만, 그네분만 등 좀 더 편안한 출산 환경을 찾는 산모들이 크게 증가했다. 사실 의사의 관리는 일부 위험한 임산부들에게 필요한 것이지 모든 임산부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오래 전부터 임산부들이 편안한 출산 환경에서 아기를 낳도록 해왔고, 그러한 방식이 수(水)치료 개념으로 발전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중분만 등 수(水)치료 개념이 널리 알려지면서 제왕절개 시술비율이 6%나 감소했다. - 앞으로의 계획은 대한 태교 연구회를 만든 것이 올해로 삼 년째이다. 앞으로 전공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아 또 한번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도록 노력하겠다. 또 부드러운 출산환경 운동(gentle birth movement)을 계속 펼쳐 우리 임산부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낳고, 고통을 줄일 수 있도록 힘쓰겠다. 김모련 학생기자 moryun@ihanyang.ac.kr

2002-09 08

[교수]`더디가도 사람생각 하지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아닌 '누구를' 교육의 '효율'에 함몰된 '대상' 생각해야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을 굳이 '재난영화'로 분류하는 데에는 어딘지 모르는 어색함이 있다. 미모의 배우들이 선상에서 벌였던 로맨스의 여운에 거대한 빙하가 자리할 곳을 찾기가 딱히 어려운 까닭이다. 푸른 심해로 사라진 남주인공의 '아름다운 죽음' 앞에 조연들이 맞이한 '경건한 죽음'이 빛을 바래는 것도 당연하다. 한국판 더빙의 끝자락에서 '그 안에 인간이 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노라' 회고하는 탐사대장의 고백은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디지털 교육에 '인간의 부재'를 경고하는 교육공학과 유영만 교수의 지적이 값질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한국교육개발원(KDEI)이 밝힌 올해 사이버교육 시장의 규모는 5천억원대. 뿐만 아니라 2005년 무렵에는 15조 이상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급격히 성장하는 사이버교육 시장을 지켜보면서 '정작 우리는 교육이라는 배 안에 인간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유영만 교수의 말이다. 디지털…그 우울한 기술의 체온 "디지털 시대로 변화하면서 교육 시장에도 사이버교육(e-learning)이 화두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의식 중 하나는 아무리 디지털화되어도 여전히 교육의 상당 부분은 오프라인에서 가능한 '휴먼터치(human touch)', 즉 인간적 접촉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치 담그는 '매뉴얼'을 찾아 전국에 있는 모든 딸들이 김치를 담구었다 합시다. 그것이 어머니가 담구어 준 김치 맛과 같은 수 있을까요? 디지털이 해낼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디지털이 해낼 수 없는 것이 '손맛의 차이'라고 강조하는 유 교수는 교육에 있어서도 온라인이 해낼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부연한다. 김치 담그는 매뉴얼을 디지털 네트워크에 올려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그 정보를 획득할 수 있다면 이는 정보 공유의 차원에서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김치맛을 낼 수는 없다는 점에서는 분명 비효과적이라고 유 교수는 설명한다. 그렇다고 그가 사이버교육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전면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사이버교육을 통해 전달하기에 적합한 지식이나 기술의 영역은 따로 존재합니다. 그런 것들은 온라인을 통해서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공유할 수 있고, 이는 온라인이 인류에 기여하는 '속도'와 '효율'로서의 장점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인간의 접촉이 요구되는 것까지도 모두 온라인에서 해결하려는 발상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사이버 시대가 오면 종이책이 없어진다고 했죠? 그러나 통계는 종이 수요가 더욱 늘어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편리함' 그 자체가 곧 교육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는 사이버교육을 지원,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현재 고용보험을 통해 기업의 노동자들이 사이버교육을 수행하는 일련의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지원이 있는 만큼 교육의 커리큘럼과 과정에 정부측의 요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 유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아날로그에서 운영되는 오프라인 교육을 통제, 조정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온라인 교육을 통제하려는 정부의 발상에 전면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보화 정책과 관련된 관료들을 가장 먼저 정보화시켜야 한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그의 단호한 입장을 읽는다. 인간은 피험자가 아니다 교육공학이란 학습 그 자체를 위한, 그리고 학습자의 학습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개발, 실행, 평가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총괄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이다. 교육학이 엄밀히 따져서 교육이라는 현상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여 연구하는 학문이라면, 교육공학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현장에서 과학적 연구성과가 실제 효용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을 통해 교육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테크놀로지는 실천지향적인 동시에 응용지향적이라는 점에서 순수과학과 다른 학문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교육공학이 그 어느 분야보다 실용적 쓰임과 목적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유 교수의 근심은 그 목적에 묻혀버린 '대상'에 있다.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곤충을 삼등분 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고 물으면, 대부분 학생들이 '머리·가슴·배'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곤충을 삼등분 한 순간 이미 그 곤충은 죽습니다.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현상을 연구하기 위해 교육현장에서 그 요인을 떼어놓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육현장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게다가 교육도 사회에서 벌어지는 한 현상을 탐구하는 것인데 실험실에서 식물이나 곤충을 연구하는 것처럼 동일한 접근을 갖는 것은 곤란합니다. 실험자가 연구대상을 아무리 피험자라 부른다 해도 그가 인간이라는 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유 교수가 현실에 있어 교육은 분화된 기술과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큼이나 통합적인 안목을 가르쳐야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도 교육의 '대상'에 대한 배려가 묻어난다. 실제 교육에 있어서, 창의력과 기획력, 문제 해결력 그리고 의사결정론 등 독립된 프로그램과 기술에 의해 교육의 방법이 결정되고 분화되지만, 정작 인간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상기의 배움을 총체적으로 구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전공이 무엇이냐 물을 때, 교육공학이다 말하면 고개를 설레설레 젓습니다. '교육공학 중에서도 기업교육입니다'라고 다시 답합니다. 그 중에서도 무엇인가를 물으면 '프로그램 개발'이라고 답합니다. 이처럼 사회든 학문이든 무척 세분화되고 있지요. 마찬가지로 현실의 교육현장에서도 가르쳐야 할 것들은 모두 세분화시켜서 나누어 가르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를 나누어 구현하지 않고 한꺼번에 발현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제는 교육에 있어서도 이런 통합적인 안목을 가르쳐야 합니다. 비빔밥을 먹을 때 편의적으로 밥과, 나물을 따로따로 먹지는 않지 않습니까?" 구호처럼 폭력적인 경쟁력, '지식' 21세기 디지털 시대와 함께 다가온 시대적 요구는 이른바 '지식사회'에 관한 것이다. 우수한 기술과 인프라를 통해 남들보다 많은 정보를 획득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지식사회의 관건이자 디지털 시대에 통용되는 생존 조건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대에 '교육'을 단순히 많은 지식과 정보의 전달, 습득에 봉사하는 기술과 학문으로 간주하기 쉽다. 이처럼 형편없는 계량주의적 인식이 우리의 교육현장에 팽배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우울한 사실이기도 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식견을 함양시키는 것이 참된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알면 알수록 또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다르게 보는 것. 교육의 효과는 그 사람이 실제 행동의 변화가 나타나느냐, 또한 세상을 보는 관점이 배우기 전과 변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지식을 돈으로 환산하거나, 일련의 경쟁력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소위 '경쟁력'의 실체라는 것이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남을 누르고 내가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것 아닙니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가 '누구를' 가르치려 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유 교수의 지적은 짧은 인터뷰를 잘 요약하고 있다. 발달된 기술이 인간의 체온과 함께 현장에 어우러지기를 바란다는 공학인의 바램이 참으로 따스하기 그지없다. 지식정보사회의 삭막한 구호에 치어 우리는 우리만의 '보물'을 잘못된 곳에서 찾고 있었는지 다시금 생각해 볼 일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세기의 보석을 바다에 던져버린 극중 여주인공은 말한다. '당신은 엉뚱한 곳에서 보물을 찾고 있었어요. 하루하루를 중요하게 만드는, 오직 우리의 삶만이 가치로운 것이죠.'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유영만 교수는 1989년 우리 대학 사범대학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1993년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Learning Systems Institute 연구원을 역임하고, 삼성 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을 거쳐, 2001년부터 현재까지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현재 한국교육공학회 이사와 한국산업교육학회 편집위원겸 연구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죽은 기업교육, 살아있는 디지털 학습》,《지식 경영과 지식관리시스템》,《지식 경제 시대의 학습조직》, 《e세상 e러닝》, 《아날로그여 디지털에 저항하라》등 이 있고, 역서로는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디지털 경제를 배우자》, 《열린 조직 열린 경영》외 다수가 있다.

2002-09 08

[교수]강릉 수해지역 봉사활동 진행한 의대 손주현 교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를 깨달은 값진 시간 도로 끊겨 왕진가방 들고 2시간 산길 걷기도 지난 5일에서 7일까지 2박 3일간 본교 구리병원의 손주현(의대·소화기내과) 교수를 비롯한 16명의 의료진들이 수마가 할퀴고 간 강릉 일원으로 의료 봉사활동을 다녀와 화제다. 이들이 펼친 사랑의 인술은 수해의 휴유증으로 고통받는 주민들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줄 수 있었으며, 의료진 각자에게는 본교의 교육이념인 '사랑의 실천'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면서 피해의 심각성을 절실히 깨달았다는 손 교수를 만나 이번 의료봉사활동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해당지역의 피해상황은 어떠했나? 우리가 간 곳은 강릉시 옥계면의 작은 마을이었다. 면사무소 부근은 피해가 적었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도로가 끊겨 구호물품들조차 걸어서 운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정도 매몰된 집들은 진흙으로 덮여있고 전기와 통신은 물론 수도공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개울 근처의 집 세 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누군가가 얘기를 안 해주면 그곳에 집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 주민이 말해주었다. 불은 재라도 남기지만 물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모두 쓸어가 버린다는 말을 실감했다. - 진료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도착하자마자 옥계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 진료실을 개소했다. 첫째 날은 주민들에게 홍보가 부족한 탓이었는지, 엉망이 된 집안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환자가 많지 않았다. 다음날은 왕진가방을 들고 2시간 동안 산길을 걸어 들어가 산계 2리와 산계 3리의 100여 가구를 가가호호 방문하며 진료했다. 그러나 가지고 갔던 약이 부족하거나 예상치 못한 환자를 만났을 경우는 처방전을 본부로 가지고 와서 다시 산길을 걸어 올라가기도 했다. - 힘든 봉사 후 감회가 있을 것 같다. 직접 환자를 보다보니 여러 가지로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국민들 각자가 자신의 처지와 능력에 따라 이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위로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되어준다면 수재민들 역시 용기를 얻고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위기를 잘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도와야 한다는 구호만이 아닌 실질적인 도움이 절실할 때다. 또한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을 베풀었다'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가진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라는 걸 스스로 깨닫고 왔다. - 학창시절에도 봉사에 관심이 많았는지. 전혀 아니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주 많아 이제까지 나 자신만을 위해 공부해 왔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학교와 병원에만 충실하다보니 인턴과 레지던트 시절에도 남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물론 환자를 볼 때는 성의껏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은 봉사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기독교를 좀 더 가까이 접하면서 이제껏 내가 잘못 살아왔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미국에는 자원봉사 활동이 활발한데 지금의 나는 그곳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 - 봉사 기간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는가? 심장병 환자가 한 분 있었는데 진작 자신은 몰랐다고 한다. 평소에 조금만 걸어도 조금 숨이 찼지만 병원에 가서 진료할 만한 경제적 사정이 안되었다고 한다. 요즘 세상에 자신이 무슨 병을 가졌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 분께 의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도로가 연결되면 꼭 병원에 가보라는 말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도 죄송스럽고 안타까워 가슴이 아프다. - 함께 한 동료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출발하기전 함께 참여한 분들께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을 기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이며 활동을 시작한 이상, 수해의 고통을 같이 느끼고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다들 힘든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해 주었다. 활동에 대해 어떠한 작은 찬사가 있다면 이는 모두 그들의 몫이다. 최수정 학생기자 81choi@ihanyang.ac.kr

2002-08 22

[동문]펀드 매니저, 그 화려한 삶의 음영

'부를 위해 이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진정 꿈꾸는 것은 참된 '라이프 매니저' 현대투신 부본부장 백승삼 동문(경제 79) "자본주의의 꽃, 억대 연봉을 받는 금융 전문가." 펀드매니저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금융시장이 급격히 재편되면서 펀드매니저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최고의 직업 중 하나가 됐다. 막대한 자본의 행방을 결정하는 사람으로서 명실공히 현대 금융시장의 '조타수'를 자임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양지의 찬란함 뒤엔 늘 가려진 그늘이 있는 법.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내다보며 피를 말리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펀드매니저들의 하루하루는 흡사 치열한 전장(戰場)을 누비는 것에 비유되기도 한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면 벌써 '늙다리' 취급을 받는 것이 또한 펀드매니저의 세계다. 지난 8월 19일 발표된 금융감독원의 보고는 국내 펀드매니저의 89%가 40세 이하임에 주목하며 이른바 '화려한 시절'의 씁쓸한 음영을 잘 말해주고 있다. 현대 금융시장의 '조타수'를 자임한다 그 치열한 싸움터에서 늘 승리를 놓치지 않는 백전노장이 있다. 올해로 펀드 운영경력 17년째를 맞은 마흔 두 살의 백승삼(경제 79) 동문이 바로 그 주인공. 현재 현대투자신탁운용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백 동문의 화려한 '승률'은 동업종의 펀드매니저들에게조차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 94과 95년, 연속 3투신사 최우수 펀드매니저상을 수상했으며, 지난해에는 그가 근무하는 현대투신이 주식혼합형 최우수 운용사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또한 지난 6월, 국내 펀드평가사인 '한국 펀드평가'가 선정한 수익률 상위 10위에 포함되면서 '검증된' 펀드매니저로서 그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았다. "주식투자라 하면 운이 70퍼센트를 좌우하고, 개인의 노력이나 능력이 30퍼센트를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 사람의 이성이나 능력범위를 벗어나는 총체적인 요인들에 의해 시장이 움직이기 때문에, 내가 수익을 얻겠다고 하여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서 운이라 하는 것은 장기적 안목에서 누구에게나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30%의 노력이 전부라고 할 수 있지요" 백 동문의 화려한 경력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말하는 70퍼센트의 운이 그에게는 700퍼센트쯤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아니라면, 결과를 30퍼센트만큼만 좌우한다는 노력이 그에게는 300퍼센트로 발휘되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를 "플레잉 코치"라고 하는 백 동문의 말은 그가 타고난 노력가임을 짐작하게 한다. 펀드매니저는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일반관리직으로 업무를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백 동문은 부본부장으로서 4개 팀의 펀드매니저들을 관리하는 동시에 지금도 직접 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본인이 스스로 원하는 일이고, 앞으로도 펀드매니저라는 업무를 길게 가져가겠다는 그의 포부에는 금융시장의 '조타수'를 자임하는 노장의 자신감이 배어 나온다. 화려한 포장 뒤, 치열한 생존게임 펀드매니저의 하루는 스트레스의 연속이다. 그는 "글로벌 시대에는 정보의 활용이 곧바로 생존 능력과 직결된다"고 말한다. 이른 새벽이면 전날의 미국 주식시장을 체크하고, 장중이나 그 후에도 계속 국내외의 모든 정보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온통 긴장으로 점철된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백 동문은 단호하게 "견뎌내는 것도 능력"이라 일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에 대한 보상은 얼마나 될까? "선정적인 가십을 좋아하는 언론의 보도와는 많이 다릅니다. 물론 일반 평범한 회사원들보다는 약 2,30퍼센트 정도는 많다고 할 수 있죠. 작은 증권 부티크 같은 곳에서 일하는 프리랜서 펀드매니저들은 수 억대의 연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돈만큼이나 권위와 명예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국내 시장을 주도하는 회사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비록 프리랜서들보다는 작은 연봉을 받더라도 제가 얻을 수 있는 명예의 교환가치는 별개의 것입니다. 몇 억을 운용하는 그들이 누리는 성취감 보다 수 조를 운용하는 저의 성취감은 비교할 수 없죠." 백 동문은 단순히 돈을 위해 펀드매니저가 되겠다는 욕망은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금융계의 대표적 직무군인 브로커와 애널리스트 그리고 펀드매니저 중에서 가장 작은 연봉을 받는 것이 펀드매니저라는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가장 큰 명예와 성취감을 누릴 수 있는 것도 역시 펀드매니저라고 덧붙인다. 문제는 펀드매니저로서 성취된 명예와 만족감도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효율성이 중시되는 금융시장에서 성과가 없이 무한한 생존을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든지 과거의 경력이나 업적이 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으며, 따라서 다른 직업과 달리 펀드매니저는 신규 편입자와 십 년, 혹은 이 십 년의 경력자가 모두 동일한 경쟁선상에서 출발하는 '써든데스(sudden death)'의 게임이라고. "우리는 항상 전쟁터에 서 있다. 장수가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상사(兵家常事)다. 다만 이기는 확률을 조금 높이기 위해서 노력하자. 다만 한 번이라도 긴 관점으로 봤을 때, 승리의 확률을 높이는 작업을 하자." 팀원들을 독려하기 위해 그가 자주 하는 말이다. 지난 월드컵 때, 승리를 거듭하면서도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 말했던 거스 히딩크의 모습을 그에게서도 발견한다. 어쩌면 성취감을 향한 백 동문의 '허기'는 히딩크 감독의 그것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꿈★은 이루어진다, 참된 '라이프 매니저'를 향하여 5·17과 12·12 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 그 복판에서 대학 생활을 경험한 그에게 학창시절을 물었다. 백 동문은 연일 계속되는 휴교와 사회적 혼란 속에 일반적인 수업 자체가 어려웠다는 회고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한다. 솔직히 모범생은 아니었다고 고백하는 백 동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학점매니저'로서 그의 성취감은 어떤 것일까? "인생을 충실히 살았다는 것이 학창 시절의 결과물인 학점으로 평가될 수 있기에 학업이 중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부를 잘한다고 인생을 반드시 충실히 사는 것은 아닙니다. 공교롭게도 펀드매니저는 단순한 학점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펀드매니저의 경우, 경제 분야의 협소한 지식보다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가지고 전체를 보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편협한 사고를 지양하고 종합적으로 변화의 흐름을 읽어내는 사고력은 인생사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소양입니다" 그는 펀드매니저가 되기를 희망하는 한양인들에게도 종합적인 사고력과 안목을 갖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다. 그 이후에 FM검증 시험을 통해 공인된 자격을 갖추기를 권고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다 빨리 이해하고, 해외 투자자들의 동향과 생각을 예측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불편하지 않도록 어학 공부에도 성실히 매진할 것을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꿈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한다. "저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도, 대단한 학력의 소유자도 아니었습니다. 학연, 지연에서도 내세울 게 없었죠. 게다가 아버님도 안 계셨고, 가정이 넉넉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미래를 향한 꿈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단 한번도, 다소 허황해 보일지라도, 항상 꿈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단 꿈을 가지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것을 위해 노력하게 되니까요. 우리 젊은이들이 그것을 결코 잃어버리면 말았으면 합니다." 후학들에 대한 조바심이 어린 자녀들에 대한 생각으로 미친 것일까. 일곱 살과 다섯 살 박이 두 자녀를 두고서도 그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나누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백 동문은 냉철한 펀드매니저에서 어느새 가슴이 따뜻한 아버지로 돌아와 있었다. 인터뷰의 시작하면서부터 묻고 싶었던, 국내 최고의 '펀드매니저'가 추천하는 투자 1순위의 종목이 다름 아닌 '가족'임을 알기까지 꼬박 1시간이 걸렸다. 그의 건승을 기원한다. 김자영 취재팀장 apriljy@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1979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86 국민투자신탁 입사 1987 운용부 주식운용과 발령 1994·1995 3투신 최우수 펀드매니저상 수상 2001 주식혼합형 최우수운용사 선정 2002 '한국펀드평가' 선정 수익률 상위 10위 내 펀드매니저

2002-08 22

[교수]`디지털 강국의 청사진 그린다`

"디지털이여, 이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라" 삶의 질 향상, 산업생산 유발 위한 디지털 경영 필요 경영학부 장석권 교수 19세기 중반, 미국 북부 캘리포니아에서 한 목수가 금맥을 발견한 사건이 있었다. 서부 개척 시대였던 당시 이 소문은 미국 전역으로 퍼져 이른바 '골드러시(gold rush)'를 불러일으켰다. 그로부터 1백 50년 뒤, 역시 같은 장소인 캘리포니아에서 또 다른 '러시'가 나타난다. 반도체 생산으로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실리콘 밸리를 이끈 '디지털 러시(digital rush)'가 바로 그것이다. 이 디지털 러시는 매우 짧은 시간에 미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이른바 지구의 온라인화를 촉진시켰다. 새로운 '금맥'을 향한 경쟁적 '질주'에서 한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장석권(경영대·경영학부) 교수는 이러한 한국의 '디지털 러시'를 이끈 장본인 중 한 명이다. 경영정보시스템(Management Information Technology, MIS)을 주 연구분야로 삼고 있는 장 교수는 20년 전 통신 산업과 관련된 학위논문을 집필한 이래, 현재에도 통신 분야에 있어 유일무이한 전문학자로 꼽힌다. 시외전화번호 광역화, 개인휴대통신 번호부여,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 구축 등은 그가 참여한 대표적인 사업들이다. 또한 통신업계의 구조개편과 관련하여, 각종 공청회 등을 통해 정부에 직·간접적인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세계 1위의 온라인 인프라 "한국은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에 있어서 세계 1위입니다. 2위인 캐나다보다 보급률에 있어서 2배 이상의 차이가 나죠. 우리의 인프라 구축은 그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고 외국에서는 '기적'이란 표현을 쓸 정도로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빠른 속도의 인프라 구축에도 불구하고 현재 통신업계는 이 인프라를 활용하는데 답을 못 찾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답을 찾기 위해선 두 가지 측면의 접근이 필요하죠. 하나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산업생산을 유발하는데 있어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라는 겁니다." 장 교수는 이미 구축된 우수한 인프라를 통해 어떻게 일반사람들의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인가와 그것이 실물 경제에서 생산을 유발하는 쪽으로 얼마나 빨리 개발·보급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유선인프라와 더불어 세계 수준의 무선인프라(이동통신)를 이용,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면 이는 연쇄적으로 관련 산업의 생산 파급효과를 촉발시켜 해외시장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의미에서 장 교수의 IMT2000(광대역 이동통신서비스)에 대한 기대는 크다. 우리보다 앞서 시작했던 유럽은 UMTS라는 개념으로 IMT2000 사업을 시작했으나 과도한 주파수 경매 대금으로 인해 사업의 진척이 막혀버린 상황이고, 미국의 경우 정부주도가 아닌 민간차원에서 새로운 시장이 개발되는 탓에 아직 부진한 상태인 것. 따라서 2천 7백 만의 무선가입자 기반과 세계 1위의 유선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한국의 지극히 경쟁적이고 변화 지향적인 사업자와 역동적인 소비성향의 소비자들은 빌 게이츠가 국내 통신기업과의 제휴의사를 피력할 만큼 매력적이고 가능성 넘치는 시장 요소라는 것이다. 온·오프라인, '대체' 아닌 '보완' 관계 빠르게 '디지털화'되어 가는 요즘 세상에서 경영학 역시 정보기술(IT)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경영정보시스템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경영학'에 대해 장 교수는 IT 발전을 통해 마케팅, 인사, 조직 등의 기능적 측면의 변화를 연구·고찰하는 학문이라고 밝힌다. 즉 디지털 경영은 기존의 전통적인 경영생산활동에서 IT 도입으로 인해 달라지는 모습을 새로운 시각에서 연구함으로써 미시적인 변화보다는 구조적인 변화에 초점을 맞춰 경영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킨다는 설명이다. "90년 대 중반에 인터넷 붐이 한창 일어났을 때는 디지털 경영이 모든 전통적인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생각은 90년 대 중반에서 2000년대까지 5년 정도의 시간동안 인터넷 거품을 겪으면서 재고됩니다. 결국은 온라인 사회가 전통적인 오프라인 비즈니스 사회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고 보완하는 측면이 많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죠. 예를 들면 디지털 도서관이 보급되면서 전통적인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더 강화시키고 편리하게 만들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90년대의 시행착오를 통해 온라인에서의 경영활동은 오프라인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향후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효과적으로 보완하여 전체적인 생산 프로세스의 효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과 온라인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 디지털 경영의 남은 과제라고 역설한다. 인프라의 강점이 신규 서비스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함으로써 무한한 가능성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에 너그럽고 성공에 자만하지 말라 장 교수는 작년 한해를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으로 회고한다. 안식년을 맞아 1년간 스탠포드 대학의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실리콘 밸리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교의 창업보육센터 소장이기도 한 그가 느낀 실리콘 밸리의 벤처 생태계는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되고 견고한 것이었다. '실패에 너그럽고 성공에 자만하지 않는' 실리콘 밸리만의 특징에는 분명 우리의 벤처기업인들이 배워야할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2000년 4월, 닷컴 기업들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무너지며 연속 5주 동안 주가가 폭락한 후 실리콘 밸리는 심각한 구조조정을 거쳤습니다. 사실 국내 벤처기업들의 사이클을 보면 실리콘 밸리보다는 늦게 시작했고, 늦게 꺼졌죠. 뒤늦게 출발했다는 의미는 세상의 변화를 적어도 리드하지는 못했다는 것이고, 늦게 꺼진 것은 정부의 간섭이 있었다는 것이죠. 시장의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미국과 정부가 보조하고 지원해주는 한국의 벤처 시스템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벤처 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역동성 자체는 서로 같으므로 실리콘 밸리가 거친 구조조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유효한 학습이 될 것입니다." 장 교수의 언급대로 미국의 벤처 환경 생태계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벤처 역사가 기껏해야 수년을 넘지 못하는 것에 반해 미국은 40여 년으로 여덟 배나 긴 시간을 가지고 있다. 두 생태계의 차이는 법제적 기반에 있어서 같을 수 없고 경쟁 규칙과 감시 기능, 시장 진입 및 퇴출의 제도적 기반 등에도 차이가 있다고 장 교수는 말한다.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법률과 광고 그리고 기술적 지원이 필요하지만 전문가 수급이 힘든 만큼 제도 인프라가 미약했던 한국은 그만큼 어려운 환경에서 벤처산업이 태동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장 교수는 IMF 이후 그나마 경쟁력 있는 기업이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며 성실한 경영인의 자세와 윤리의식을 갖고 시장과 정면 승부할 것을 당부한다. 아울러 이러한 승부에서 성공적인 사례가 나온다면 한국의 벤처 생태계도 올바른 모습으로 자리잡아 갈 것이라고 기대한다. '접속=행복', 디지털 강국의 청사진 그린다 'e-코리아'는 본래 전자정부를 추구하는 개념으로서 대 국민 서비스와 행정부처간 업무의 전산화로 추진된 것이지만 장 교수는 그 보다 더 깊고 포괄적인 청사진을 구상 중이다. 오프라인에 '코리아'가 있다면, 온라인에도 '코리아'가 있는 형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오프라인의 한국이 가지고 있는 경제, 지리적 공간의 한계를 넘어 온라인 코리아가 보조적 역할을 할 수 있으면 그것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시장이나 시너지 효과는 막대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를테면 대학로나 '예술의 전당'의 공연이 컨텐츠로 서비스되어 지방에서도 온라인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면 그 사회경제적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 것인가를 상상해 보라는 것이다. "결국 'e-코리아'의 목표는 국민의 실질적인 삶의 질 향상과 새로운 가치 창출을 통한 산업생산 유발입니다. 우리의 사는 모습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죠. 물론 아직은 공상과학 같은 이야기이고 구체화할 부분도 많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가 보편적 개념이 되어 있지 않고, 아직까지는 인식도 높진 않지만 기업과 학교, 정부가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디지털 강국'으로 가는 길이 그리 멀진 않았습니다." 윤석원 학생기자 astros96@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장석권 교수는 1979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과학기술원에서에서 81년과 84년에 각각 산업공학 석사와 경영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4년부터 본교 경영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1990년과 2000년, 미국 반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과 스탠포드대학(Stanford University)에서 교환교수로 활동했다. 한국경영과학회 총무이사, 정보통신부 정보화사업 평가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경영정보학회 부회장, 정보통신정책학회 이사, 본교 창업보육센터 소장, 본교 정보통신원 원장을 맡고 있다. 지난 90년에는 'Fullbright Senior Research Grant'를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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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국제인명센터 선정 `1천명 학자` 오른 공학대 이영해 교수

IBC 선정 '세계 1천명의 위대한 학자' 반열에 "그저 매사의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 다가올 21세기는 정보 및 지식과 창조성이 고도로 중요시되는 지식기반 사회가 될 것이라는데 아무도 이견을 달지 않는다.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자기 분야의 전문지식을 배양함은 물론, 보다 포괄적인 정보 및 지식의 획득과 균형이 잡힌 식견을 함양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13일 영국 국제인명센터(IBC)가 선정한 '세계 1천명의 위대한 학자(One thousand of Great Scholars)'에 오른 이영해(공학대·정보경영) 교수. 현재 SCM(공급사슬경영)학회 회장과 '21세기 분당포럼' 대표를 맡고 있는 이 교수는 미국 BWW 출판사의‘500인의 탁월한 인사들(500 Profiles in Excellence)'과 세계 인명사전인 '마키즈 후즈후'의 2003년 판 수록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류와 산업공학 분야에 많은 논문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연구 및 사회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이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세계 인명사전 등재와 함께 위대한 학자로 선정된 소감은. 갑자기 된 것을 아니고 99년 차세기 지도자 500인에도 선정된 적이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소감은 똑같다. 특별한 소감은 없다. 다만 앞으로 하는 일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 특별히 교수님의 어떤 부분이 선정에 작용한 것 같나? 매년 영국의 단체 인명센터에서 나름대로의 데이터 베이스를 가지고 여러 분야의 학자들을 선정한다. 국제적인 단체이므로 객관적인 데이터로 선정된다고 알고 있다. 아무래도 물류 산업 공학 분야에 대한 많은 국제적인 논문발표와 외국 사람들과의 교류가 아닐까 생각한다. 전공분야를 28년째 하면서 외국 학술대회나 저널이나 잡지에 많이 나갔다. 그래서 국제 인명센터에서 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선정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 선정 인물 중에 한국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인명 센터에서 레터식으로 통보만 오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누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인명센터에서는 선정된 천 명의 명단을 보여주지 않는다. 99년에는 레터에 빌케이츠도 선정되었다고 쓰여진 레터가 도착했었다. 우연히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가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 해외에서의 활동은 얼마나 활발히 진행 중인가? 거의 대부분이 학술대회 참가나 논문 발표를 위해 많이 나가게 된다. 그 외는 특별히 없다. 지난 호주 학술대회에서 논문 발표를 하기 위해 갔을 때의 일이다. 월드컵이 끝나서인지 거기서도 온통 월드컵 이야기였다. 26개국에서 온 학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 우리나라 위상도 많이 높아졌다는 것도 실감하고 왔다. - 1인 3역의 일을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웃음) 어쩌다 보니 일을 좀 많이 하게 되었다. 현재 지식인 및 전문가들이 모여서, 분당을 포함한 한국 사회의 발전에 관한 전반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정기적으로 토론회를 개최하는 분당 포럼을 운영하고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의 실질적인 중심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SCM(공급사슬경영) 학회에서 차세대 물류 시스템과 관련하여 연구를 진행 중이다. - 앞으로의 계획은 솔직히 하는 일이 많다보니 조금은 바쁘고 힘들다.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 하고 싶다. 현재 본교의 정보경영공학과 교수로써 하는 일과 분당 포럼과 SCM에도 신경을 많이 쓸 계획이다. 그리고 전공분야의 연구와 논문 발표에 최선을 다 하겠다. 김혜신 학생기자 onesecond@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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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한양의 소금 13] 학생생활관 유재왕 계장

학업을 위해 자신의 집을 떠나 학교의 생활관에서 지내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에게 있어 생활관은 지친 몸과 마음을 쉬는 제2의 가정인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시설과 환경도 가족과 부모의 체온을 대신하지는 못하는 법. 서울캠퍼스 학생생활관 운영계 유재왕 계장에게는 바로 그런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다짐이 있다. 그가 유난히 이른 출근을 고집하는 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2002년 우리 사회에 자녀보다 늦게 일어나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 반문하는 그다. 새벽 5시 반 출근, 재활용 고집하는 부지런한 살림꾼 새벽 5시 반. 학생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시간에 유 계장은 출근한다. 그는 학교에 오자마자 생활관을 살피기 시작한다. 생활관 건물 주변을 시작으로 건물의 옥상에서부터 지하에 이르기까지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세세히 살핀다. "생활관은 학생들의 집입니다. 의식주를 모두 학교에서 해결하는 학생들을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 제가 해야할 첫 번째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유 계장은 다시 다른 생활관을 향해 총총히 발걸음을 옮겨 버린다. 그는 원래부터 어지간히 부지런을 떤다. 일반적인 출근시간이 8시 반이지만 그는 언제나 7시에 출근했다. 자신의 일을 조금 더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유 계장은 생활관의 운영계로 근무지를 옮기고 나서부터 더욱 바빠졌다. 출근시간도 5시 반으로 앞당겨졌다. 유 계장은 "처음에 이곳으로 부임했을 때는 그다지 일이 없는 곳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와보니까 정말 할 일이 많더군요. 학생들의 집을 꾸미는 일이니 다른 일보다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처음 생활관에 왔을 때를 회상한다. 부지런함도 그렇지만 유 계장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은 억척스런 '살림꾼'이다. 그는 길거리를 걷다가 작은 나사라도 발견되면 바로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렇게 모인 것들은 생활관의 비품을 고치는데 사용된다. "처음에 생활관에 왔을 때 폐기 처분하려고 창고에 쌓아둔 비품들을 봤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조금씩만 손을 보면 모두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고쳐서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유 계장이 책상 한 켠에 쌓여 있는 공구더미를 가리킨다. 그가 생활관에서 근무한 3년 동안은 비품이 파손되어 폐기된 사례가 없다. 그의 손길을 통해 모든 것은 '부활'하고 재활용된다. 10월이면 20년 근속, '주위의 도움에 감사할 뿐' 부지런함도 부족한 것인지, 알뜰함도 성이 차지 않은 것인지, 그는 모든 일에 꼼꼼하기 짝이 없다. "실험관리과에 있을 때는 2년 동안 학교의 모든 실험용 기자재를 제 손으로 만져보고 닦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부 사용서와 비교해서 관리번호를 매기고 했죠. 정말 힘들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는 유 계장의 얼굴에서 비치는 고집스러움이 여간하지 않다. 유 계장이 생활관으로 부임하면서 그의 꼼꼼함도 함께 근무지를 옮겼다. 5시 반에 출근하여 유 계장은 건물 외벽의 금이 간 것부터 시작해 수도꼭지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설과 기물의 이상 유무를 점검한다. 오는 10월 2일이 되면 그가 본교에서 근무한지 20년이 된다. 유 계장은 "20년을 근무했지만 아직도 풋내기입니다. 모두 주위에서 도와주셔서 이렇게 오랫동안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겸손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끝으로 유 계장은 학생들이 생활관을 내 집처럼 생각하고 시설을 사용해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비품을 고의적으로 파손하는 행위를 보았을 때는 화도 나지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자신이 일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며 웃는 그의 미소가 눈부시다. 이희원 학생기자 allumez@ihanyang.ac.kr

2002-08 15

[교수]`경제통합이 통일의 초석이다`

경제통합은 통일 위한 주춧돌 '실사구시 구현의 핵심에는 기술입국이 있다' 경제학부 임양택 교수 1979년 이후 본교에서 줄곧 '거시경제학'과 '기술경제학' 강의를 맡아온 임양택(경제금융대·경제학부) 교수의 연구실은 '불이 꺼지지 않는 방'으로 유명하다. 끊임없는 연구와 열정으로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와 동북아 경제 발전방안에 대한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는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의 출발은 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이후 5년이 흐른 상황에서 경제가 얼마나 회생됐고 앞으로의 발전방안이 무엇인지를 알려면 그때의 아픈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는 기회와 닮은꼴, IMF를 해부하다 "한국의 경제는 저임금과 엔고의 반사적 이익을 노리는 실물부분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금융이 실물 경제의 보조적인 측면 즉, 관치금융 체제로 전락돼 버린 것이 현실이었지요. 외환위기가 IMF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방만한 투자, 국제적인 신뢰도 하락으로 달러가 대거 빠져나가면서 비롯된 것입니다. 외환위기가 국제적인 상황과 맞물려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왜 금융과 실물경제 그리고 전 부분의 위기로 확산됐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임 교수는 이러한 경제위기의 시작을 관치금융 체제라는 온실 안에서 낙후된 채 방치된 금융테크닉의 부실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다. 지난 65년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한 이후로 지금까지 35년 동안 금융부문은 실물경제를 발전시키는 도구로만 이용됐지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는데는 뒷전이었다는것이다. 또한 가격경쟁 위주의 정책으로 인해 기술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서 경제 전반의 위기로 확산됐다는 설명이다. 한편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제위기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군살을 제거하는 데 절호의 기회였다고 임 교수는 강조한다. 대기업의 '군살'을 제거하는 것은 중소기업의 '참살'을 더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업종이 이양됨으로써 양자가 같이 살 수 있고 실업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술입국이 실사구시 구현의 핵심 최근 들어 중국 경제가 경공업과 농산물의 낮은 가격을 무기로 우리나라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 교수는 우리경제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은 상황에서 앞으로 주력해야 할 것은 기술혁신이라고 강조한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가장 역점을 둔 정보통신 산업을 발전시켜 국제수지 흑자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경제성장과 물가안정, 소득분배의 조화 및 공존을 꾀한다는 것은 임 교수가 전공한 기술경제의 핵심이론이기도 하다. "제 3의 물결을 정보화라고 한다면 우리가 또다시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보통신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해야 합니다.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정보기술 발전에 기여하는 가에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제도를 도입해 대통령 직속으로 운영하면서 포괄적인 문제들을 유기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과거와 같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는 동시에 품질과 신뢰성, 브랜드 이미지 등 비가격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 하는 겁니다." 임 교수가 주창하는 기술입국론은 본교의 실용학풍과도 맥이 통하는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구현할 수 있다. 산업, 대학, 연구소, 정부가 연합한 산학연정을 통해 현실적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술개발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실사구시의 정신이라는 것이 임 교수의 설명이다. 지금의 산업발전에 본교가 구축한 탄탄한 공학기술과 인적자원이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공학기술 발전이 경제학 특히 금융과 맞물려서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금융대가 많은 공대생들이 CEO가 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을 모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기술이 제품이고 제품이 곧 기업입니다. 이러한 기술과 경제의 연관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기술과학경제'이라는 과목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오는 30일에 '신뢰성분석연구센터'가 본교에 개소될 예정입니다. 제품의 신뢰성을 분석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는 품질의 개선, 관리, 단순기술개발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더 나아가 제품의 브랜드 이미지와 신뢰성이 더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경제통합이 통일의 주춧돌, 5단계 통일 방안 제시 임 교수는 기술입국 뿐만 아니라 통일 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남과 북은 7차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북 철도와 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등을 논의하기 위해 제2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할 것을 합의했다. 특히 개성공단은 국내 기업들을 대거 유치해 연간 2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자신감을 피력하는 등 남북경협의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임 교수는 경의선 철도가 통과하고 개성과 20분 정도의 떨어져 있는 장단지역을 중심으로 한 남북경협역설하고 경제통합을 시작으로 하는 5단계 통일 방안을 '제3의 통일 방안'(매일경제신문사, 1993)을 통해 제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과 북의 통일 방안은 연합과 연방이 차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합'과 '방'의 차이인데 분단 이후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거론이 안된 것은 그 중간 단계까지 어떻게 가느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중간단계의 시작을 경제통합으로 보고 있습니다. 남에서 필요한 철광, 마그네슘 등의 자원과 양질의 초저임금의 노동력, 그리고 북에서 필요한 철도 등의 기반시설과 자본이 만나는 것이지요. 경제통합을 위해서는 산업구조가 민족산업으로 재편성돼야 합니다. 효율과 형평성을 강조하는 양 경제체제는 혼합경제를 통해 통합을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청년에게 고함, '미·일·중·러'를 활동 무대로 민족역사 발전에 기여한 것 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뽑으라면 상기의 통일방안을 국내외에 제시한 업적을 꼽겠다는 임 교수는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확신이 들었다고 말한다. 7백 만 명이 길거리 응원을 하면서도 쓰레기를 스스로 줍는 모습을 보면서 영국보다 시민의식이 더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고 순수한 열정을 지녔기 때문에 이러한 훌륭한 정신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임 교수는 그 에너지를 스포츠 뿐 아니라 사회 전 분야로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반도를 정보통신분야 등의 첨단기술 발전을 통한 동북아 경제의 허브로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랬듯 '청년들에게 고함'의 형식을 빌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를 염두에 둔 조국의 미래를 구상하고 설계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나라들이 우리의 이웃도 되고 동료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이들과 화합하고 뭉칠 수 있는 대단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습니다. 타고르가 말했듯 '동방의 등불'로 이제 다시 한번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이죠."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학력 및 약력 임양택 교수는 1971년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ia State University에서 74년과 78년에 각각 경제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78년부터 79년까지 미국 Union University에서 경제학 조교수를 역임했고, 79년부터 본교 경제금융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임 교수는 현재 한국경제학회, 한국국제경제학회, 한국재정학회, 한국북방학회 이사, 기술경제학회,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경제분과 위원장,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정책연구위원장,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은 국내에 45편, 국외 15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제 3의 통일방안(매일경제신문사,1993)', '비전 없는 국민은 망한다(매일경제신문사,1995)', '21세기 아시아의 비전과 전망(중국 사회과학원,1999)' 등 국내 18편과 국외 3권이 있다. 올해 제19회 백남학술상을 수상했고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명예 주지사직에 임명된 바 있다.

2002-08 15

[교수][한양의 소금 12] 발전협력팀 공노식 계장

발전기금 조성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 모든 일에 성실함 돋보이는 소문난 '노력파' 기부문화에 대한 범사회적 인식이 제고되면서 '기부'란 더 이상 값싼 동정이나 일방적인 희생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기부는 이제 사회 환원과 관련한 당연한 '의무'로서, 공동체를 지탱하는 양식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한한 투자와 지원이 요구되는 대학의 경우, 이러한 기부문화에 대한 이해가 더욱 절실한 것은 당연하다. 서울캠퍼스 발전협력팀의 공노식 계장은 바로 이러한 대학의 발전기금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물론, 동문 관리 및 동문회 관련업무, 캠퍼스 소식지 제작, 학부모 통신 업무, 홍보용품 제작, 교내외 주요 행사 보도 업무 등 대외 홍보 및 협력과 관련한 무수히 많은 업무들이 있지만 기금 업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에 그는 이견을 달지 않는다. 기금 조성,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발전기금 조성을 위한 기획 업무가 저의 모든 일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발전기금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었어요. 기부금에 대해서도 그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았죠. 하지만 협력팀에 와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지금은 단지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후배들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게끔 무엇을 해준다는 것이 기부의 기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공 계장은 모든 일을 창조적으로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수행하는 '노력파'로 통한다. 덕분에 그의 심신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단지 늘 일에만 쫓기다 보니 나름의 업무 스타일을 갖추지 못한 것이 오직 아쉽다는 고백이다. "이제부터 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발전기금을 마련하는 일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업무가 아닙니까?"라고 반문하는 그에게는 세 가지 목표가 있다. 첫째는 기부금을 많이 조성하는 것, 둘째는 동문들과의 유대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교의 이미지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작은 힘이 되겠다는 것이다. 교사의 꿈이 남아 대학에 내린 뿌리 작년 3월, 발전협력팀으로 부임한 그가 사실 한양대학교에 첫발을 내딛은 것은 84년 봄이다. 그때는 직원이 아닌 학생의 신분이었다. 교육학과 84학번으로 학부를 마친 뒤, 공 계장은 본교 사회교육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사회교육원의 초창기였습니다. 직원은 저 하나였고, 모든 행정업무를 처리해야 했죠. 수업이 있는 날이면 퇴근도 못했습니다. 무엇 하나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사무실에 남아 있었죠. 퇴근이 밤 12시가 넘는 경우도 허다했고 덕분에 데이트도 제대로 못했지만 말입니다. 하하." 당시를 회상하는 공 계장의 얼굴에는 고단함 아닌 미소가 어린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에 사람들이 많은 호응을 보내줄 때는 묵은 피로가 한숨에 달아나기도 했다는 뿌듯한 회상이 함께 있는 까닭이다. 교사의 꿈을 잊지 못해서일까, 교육학을 전공한 공 계장이 삶의 터전으로 결국 학교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학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함께 최고의 고등 학문을 배우는 사람들을 관리한다는 자부심이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라는 말도 무척 살가운 고백이다. '언제든지 배울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학교가 좋다'는 말을 들고 있노라면 그는 천생 대학을 떠날 수 없는 운명인가도 싶다. 그는 후배들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대학 생활을 최대한 만끽할 것을 당부하면서도 삶에 있어 성실한 자세를 결코 잃지 말 것을 주문한다. 자신의 전공과 학업에 있어 오직 성실한 자세로 최고의 전문가가 되라는 소박한 조언은 학창시절,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인해 학교를 다니면서도 직접 생활비를 벌어야 했던 그가 후배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따뜻한 기부다. 이희원 학생기자 allumez@ihanyang.ac.kr

2002-08 08

[교수]`온유한 것이 강함을 이긴다`

그로브 음악사전 등재된 작곡가 본교는 창작음악 위한 최고의 조건 갖춰 서경선 음악대학장 음악을 하지 않는 사람이 음악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나 대중음악도 아닌 순수음악을, 그것도 첼로리스트 장한나나 소프라노 조수미씨 같이 노래나 악기로서 대중 앞에 나서지 않고 악보로서 그 존재를 알리는 작곡가의 삶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작곡가 하면 비발디, 모차르트, 베토벤이 떠오르고 우리나라로 보면 안익태나 윤이상, 백병동 선생 정도가 생각나는 상황에서 현대 작곡가의 울타리에 들어가려 문을 두드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묵직한 방음문을 열기가 저어스러워 한참을 망설이다 작곡가의 방에 들어서자 '2002 아시아현대음악제' 포스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이스라엘, 베트남 등 10여 개 나라의 당대 음악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했다는 호평을 얻은 음악제였다. 개막음악회에서 첼로리스트 장한나가 윤이상의 대표작인 첼로협주곡을 코리안 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아시아 초연을 한 것으로도 유명한 이 음악제를 준비한 장본인이 바로 서경선 교수이다. 여성작곡가들의 목소리 대변 "우리나라 작곡가들이 긍지를 가지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 한 3번의 행사를 모두 준비했어요. 이번에는 한국회장으로, 집행위원장으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행사를 주도적으로 준비했죠. 다행스럽게 모든 행사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일생 중 가장 보람 있고 성공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어요.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서 교수가 작곡계에 입문해 지금까지 50여 년의 삶은 여성작곡가들의 토대를 구축하는 활동과도 맥이 닿아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창단 멤버이기도 한 서 교수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할 당시에는 여성이 6명 중 2명밖에 없었고 발표를 할 기회나 직업을 가지기도 힘든 상황이었다고 한다. 지난해 창립 20주년 기념음악제를 하기도 했던 한국여성작곡가회 회장과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서 교수는 남성 일색이던 작곡계에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데 앞장서 왔다. 훌륭한 작곡가가 되려면 유럽의 백인 집안에서 남성으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 있는 만큼 우리나라 여성들의 입지는 세계적으로 미약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해 음악계의 '브리태니커' 즉, 최고의 권위로 꼽히는 '그로브 음악사전'에 당당하게 등재된 것은 서 교수의 작곡가적 능력과 세계 음악사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일 것이다. 한국에는 전업 작곡가가 한 명도 없다? 서 교수의 작곡가에 대한 애정은 비단 여성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 위원회 회장으로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것 외에도 한국작곡가회 부이사장, 창악회 심의 위원 등 활동을 하고 있다. 서 교수는 순수 창작으로 작품활동을 위한 경비를 충당하고 생계까지 이어가려면 음반 판매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나라 작곡가들의 현실에 대한 근심이 크다. 전업작곡가가 한국에 한 명도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곡가들은 레슨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나 대기업 차원의 후원이 절실하다는 서 교수의 사자후는 구구절절하다 못해 비장함마저 서려있다. "세계 굴지의 오페라 극장인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 같은 극장도 매표수입으로는 전혀 운영이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왕족과 귀족이 후원자였듯이 산업사회에서는 재벌이 후원자가 돼 주어야 합니다. 폴란드가 공산국가일 때는 작곡가 동맹 멤버가 되면 국가에 기금을 요청해 작품을 발표할 때까지 보조금을 받았습니다. 국가차원에서 문예진흥원에서 작품 하나에 7,80만원 정도 지원을 해주긴 하지만 그것으론 어림도 없지요. 고급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몇몇 사람이 후원해줄 수도 있지만 한계가 많지요" 한양대를 창작음악의 산실로 만들겠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은 작곡가들이 창작생활을 안정되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하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타전공자들에 비해 작곡을 전공하는 교수들은 연구활동이 곧 작품을 쓰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악기 전공자들을 만날 수 있고 현대음악에 대해 마음이 맞는 사람과 모여서 일을 하기도 수월하다는 것이다. 특히나 본교는 국악과가 있어 동양과 서양음악을 접목할 수 있는 좋은 토양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서 교수가 대학에 갖는 애정은 각별하다. 지난 99년부터 음대 학장으로 재직 중인 서 교수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뛰어든 것이 본교에 '공연예술대학원'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각종 동서양 악기를 전공하는 교수와 작곡 그리고 연극영화, 무용과까지 세 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본교는 우수한 공연을 창작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조건이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그 계획이 잠시 보류됐지만 본교 음대가 발전할 수 있는 상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전공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자연스럽게 접하고 중학교 때 음악에 깊이 심취해 평생을 음악가로 살아가고자 마음을 굳히게 됐다는 서 교수에게는 교육자로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한양대학교 음악대학에 상주하는 현대음악 앙상블로 을 만드는 것. "미국의 뉴욕대는 매년 5월에 현대음악제를 세미나와 함께 개최하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제이지요.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습니다. 매년 한 번 일주일 정도 현대음악제를 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한양대 하면 창작음악의 중심지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정년이 5년 반정도 남았는데 퇴임할 즈음에 사재를 털어서라도 이런 창작음악제를 지원하는 기구를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을 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를 해본 적이 없다는 서 교수의 인생철학이 있다면 '온유한 것이 이긴다'는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을 절대 화나게 하지 않겠다는 신념이 수많은 음악제를 성사시킬 수 있는 힘이었다고 말하는 서 교수에게 은은한 난초꽃 향을 느끼며 취재수첩을 덮는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동영상 : 박수영 학생기자 rawrat@ihanyang.ac.kr 서경선 교수 학력 및 약력 서경선 교수는 1964년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72년 미국 Univ.of Massachusetts에서 음악석사를 받은 서 교수는 이화여중고, 서울예고 교사, 서울대 강사 등을 거쳐 본교 교수로 부임했으며 99년부터 음대 학장으로 재직중이다. 창악회 및 한국음협이사, 아시아작곡가연맹 본부이사, 한국여성작곡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서 교수는 현재 아시아작곡가연맹 한국 위원회 회장, 한국작곡가회 부이사장, 한국여성작곡가회 및 창악회 심의 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발표 논문으로는 국내작품발표 18편, 국외작품발표 10회, 국내논문 3편, 국외논문 2편이 있으며 국내에 3권의 저서가 있다. 1991년 한국 음악상(창작 부문), 96년 백남학술상 (인문, 예술분야), 98년 대한민국 작곡상(실내악부문)을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