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2237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19-08 26 중요기사

[학생]아리랑 유랑단에 참여한 한양인들, 세계 속에서 한국을 외치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부채춤, 영국 런던에서 들리는 사물놀이 소리. 색다른 활동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아리랑 유랑단이다. 이들은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고 있다. 이번 여름에도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유럽으로 공연을 다녀왔다. 아리랑 유랑단의 활동을 통해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을 외친 이주연, 홍성희(이상 작곡과 2) 씨를 만났다. ▲왼쪽부터 홍성희, 이주연(작곡과 2)씨가 아리랑 유랑단 활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들은 영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서 버스킹 공연을 진행했다. 아리랑 유랑단은 전 세계를 다니며 문화외교, 문화교육 등 활동을 하는 민간 청년외교단체다. 지난 2012년에 만들어진 아리랑 유랑단은 지금까지 전 세계 19개국 42개 도시를 돌며 한국의 문화를 전하고 있다. 창단 초기에는 국악 전공자들이 모여 활동했지만, 현재는 아리랑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다. 이주연 씨와 홍성희 씨도 유럽에서 버스킹 공연으로 한국 전통문화를 알렸다. 이들은 방금 공연한 것처럼 행복해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홍씨는 한국무용, 이씨는 사물놀이를 선보였다. 홍 씨는 에펠탑 앞 독무 공연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홍 씨는 “에펠탑 앞에서 우리나라의 전통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이 환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이 씨도 “벨기에 브뤼셀 시청 앞에서 한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버스킹 공연을 한 장소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왔고 반응도 제일 좋았다”고 말했다. 특히 “많은 관객들이 좋아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한국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 느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아리랑 유랑단의 한국무용 팀이 에펠탑 앞에서 부채춤을 공연하고 있다. (홍성희 씨 제공) 타국에서의 공연이 쉽지만은 않았다. 악기가 온도에 민감해 음이 어긋나 첫 공연에선 곤욕을 치렀다. 프랑스에서는 공연 허가 문제로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많은 짐 때문에 체력적으로 지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로 간의 배려와 한국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다는 기대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이 씨와 홍 씨 모두 “힘들 때도 있었지만 공연하는 그 순간, 모든 힘듦은 사라지고 행복만 남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리랑 유랑단의 사물놀이 팀이 영국 런던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있다. (아리랑 스쿨 제공) “음악을 통해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며 음악의 위대함을 깨달았어요.” 홍 씨와 이 씨는 아리랑 유랑단에서 큰 선물을 받았다. 이 씨는 “전통음악을 배울 수 있어 좋았고 협주를 통해 협동심을 배웠다”고 말했다. 홍 씨도 “서로 배려했기에 공연하기 쉽지 않은 환경임에도 활동을 잘 마무리했다”며 “배려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꼈다”고 했다. ▲아리랑 유랑단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공연을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홍성희 씨 제공) 끝으로 두 사람 모두 아리랑 유랑단 활동을 “강력하게 추천 한다”며 입을 모았다. 홍 씨는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참여를 권유할 만큼 좋았다”며 “좋은 추억과 인연, 어디서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생기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이 씨도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 뜻 깊었다”며 “기회가 된다면 다른 국가에서도 공연해보고 싶다”고 했다. 아리랑 유랑단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 인원을 선발한다. 선발된 이들은 약 4개월간의 연습을 거쳐 여러 국가에 파견된다. 기초부터 알려주기 때문에 비전공자들도 참여 가능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리랑 스쿨 홈페이지(클릭 시 해당 사이트 이동)를 통해 알 수 있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6 26 중요기사

[교수]김성수 교수, 아프리카에 농업의 한류를 열다

김성수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지난달 2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김 교수는 국내 최초로 대학 내 유럽아프리카연구소를 설립해 아프리카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를 선도하고 있다. (클릭 시 지난 기사 이동, [우수R&D] 김성수 교수) 연구소는 지난 2013년 아프리카의 농업 현황 및 농산업 제약 요인과 농업 종사 노동력의 장단점 등을 면밀히 조사하기 시작,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농업 전문가들과 아프리카 농업 관련 이슈와 과제를 토의했다. 김 교수는 막대한 성장 잠재력을 가진 아프리카 농지 및 자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함으로써 또 다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은 경제성장의 잠재력이 굉장하다. 54개국의 역량과 다양성이 합쳐질 경우 정치적, 문화적, 국제경제적 중심으로 급부상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향상시키고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한국과 아프리카 국가 상생의 지속 가능한 교류협력을 확대한다면 한국의 국제적 위상 및 소프트파워도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국은 한류라는 소프트파워가 이미 아프리카 전역에 퍼져있다는 장점을 미루어 볼 때, 농업 또한 훌륭한 공공외교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지론이다. ▲ 김성수 교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나이지리아 에누구 과학기술대학(Enugu State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의 교수들을 만나 한국의 농업과 기술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김성수 교수 제공) 아프리카 국가들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적으로 25%다. 그러나 농업과 연관된 농기자재, 농산물 가공, 판매 등의 농산업을 모두 포함하면 그 비중은 대략 50%를 상회한다. 무엇보다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 비중은 평균 70%에 이른다. 김 교수는 "아프리카 농업인구의 비중, 가계소득, 파급효과 등을 고려할 때 빈곤 해소를 위해 농업의 현대적 발전이 더욱 효과적”이라며 "농업 발전은 식품가공 등 농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져 당장 농촌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농산물의 현대화를 통해 농촌과 도시의 상생적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아프리카 농지 및 자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현지의 토양, 기후, 소득 수준과 가격 조건 등에 부합하는 변형 기술을 제시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고 에너지 소모가 적으며 관리가 쉬운 특징을 갖고 있다. 대표적으로 알제리 현지에 적합한 농업 기술로 씨감자 재배와 흰다리새우 양식, 우간다의 망고와 오렌지주스 제조 공장, 탄자니아 어류 양식, 나이지리아 깨 유착기 보급,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물류유통단지개발 등이 있다. 김 교수는 여러 기업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 현지 국제단체와 농과대학과의 협력에 기반해 적정 기술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 지난달 18일부터 25일 2주에 걸쳐 롯데그룹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아프리카 진출 특강에서 김성수 교수가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김성수 교수 제공) 김 교수는 “현재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농기술 전수 및 농기계 제공 등 일회적인 차원에 머물고 있지만 농기술과 농가공, 농기계 등 농업 관련 제조업 전반을 진출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중에는 IT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팜(smart farm)’을 포함한다. 한국 정부와 의회, 민간 기관, 농업 관련 기업들이 아프리카 현지 국가와 제휴하고 주민들과의 소통을 통해 아프리카 농업 및 농가공 산업의 현대화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진출전략을 추진할 예정이다. 그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의원외교 제안과 함께 현재 대기업들의 요청으로 아프리카 시장진출에 관한 특강과 자문을 진행하고 있어 향후 한국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 확대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naver.com

2019-06 26 중요기사

[교수][신문 읽어주는 교수님] 정란수 교수가 말하는 '체류형 관광' 

‘매번 언제든 떠난다’, ‘여행의 일상화’. 최근 관광 트렌드는 체류형 관광이다. 대표적으로 ‘한 달 살기’가 있다. 명소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즐기는 것. 체류형 관광에서 일상과 관광의 분리는 모호해진다. 대안관광컨설팅 프로젝트수 대표이기도 한 정란수 관광학부 교수를 만나 체류형 관광의 미래를 물었다. 체류형 관광이란 체류형 관광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국내 여행지로는 제주, 여수나 서핑이 유명한 양양, 외국에는 태국 치앙마이가 있다. 정란수 교수는 “체류형 관광은 학술적으로 정립되지 않았지만, 생활 패턴의 변화로 인해 최근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있어 실제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개념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첨단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나 프리랜서가 늘어나며 가능해지고 있어요.” 체류형 관광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행 경력 패턴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행 경력이 쌓일수록 그 지역으로 들어가 지역민들의 일상을 느끼는 것이다. 당연히 이를 위해선 그들의 문화나 환경을 파괴해 일상을 침범하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 ▲정 교수는 한국인들이 체류형 관광을 즐기기 위해서는 ‘여행 철학’이 발달해야 한다고 했다. “여행자의 행복을 위해 지역민들이 운영하는 카페나 공연을 찾아가는 것은 좋아요. 하지만 지역민들의 권리까지 뺏을 권리는 없습니다. 체류형 관광이 늘어날수록 더욱더 이들에 대한 배려를 고려해야 하는 게 여행 철학입니다.” 배려는 필수 여행은 쉬려고 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그 문화를 배려하는 것이다. “제주 올레길을 걸을 땐 거주지를 지날 수밖에 없어요. 그때 지역민에 대한 배려는 필수죠.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거나 조용히 지나가야 해요. 본인에게는 10초만에 지나가는 길이 그분에게는 매일이죠. 안동하회마을도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체류형 관광이 정착되려면 ‘공정여행, 공정관광’이 정착돼야 한다. 지속 가능한 여행이라는 뜻으로, 여행자가 지역민들을 배려하고 여행 철학을 숙지하는 것이다. “요즘 체류형 관광을 가는 사람들은 준비를 오랫동안 해가요. 동아리를 만들어 전문적으로 여행지를 공부하고, 지역민들의 생활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투적인 일상, 여행에서는 그만 대부분의 여행은 전투적으로 명소를 가 사진을 찍는다. 이런 비판이 ‘체류형 관광’을 불러왔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반년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랜 생활을 한 정 교수는 “여행을 오랫동안 떠나면 지역민을 이해하고 동시에 저를 볼 수 있어요.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어떤 삶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는 기회입니다.” ▲대안관광은 개념 있게 여행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정 교수는 “토마스 풀러(Fuller)는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고 했다”며 “공정여행을 떠나 여행의 가치를 제대로 느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06 19

[교수]이상욱 철학과 교수의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뒷이야기 (1)

과학철학자 이상욱 철학과 교수가 지난 5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차클)’에 출연해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몰랐던 천재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학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 이상욱 교수를 만나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가 필요해 이상욱 교수는 한양대학교 기초필수 교양과목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강좌를 만든 장본인이다. 과학기술 기본사회인 21세기에서는 여러 정보를 수집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 교수는 “과학기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 다양한 시각에서 탐색하고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상욱 교수가 방송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도 이와 같다. ▲ 이상욱 교수는 "과학철학은 과학적으로 복잡한 내용이 범람하는 21세기에 꼭 필요하다"며 "21세기 시민들이 꼭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은 사회적 활동이다. 부자가 모든 빌딩을 다 가질 수 없는 것처럼 천재도 과학이라는 학문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이 작다. “방송에서 다뤘던 ‘우리가 몰랐던 천재 이야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건 천재가 최고라는 말이 아닙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이 연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학자가 함께 해야 해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발표가 늦어진 것도 이 때문이죠. 혼자 이뤄낼 수는 없었거든요.” 이상욱 교수가 말하는 철학 이상욱 교수는 이번 방송 출연을 통해 철학에 대한 오해가 조금이나마 풀어지길 바랐다. “철학은 과거 철학자들을 공부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철학사죠. 현 시대의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과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참고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보다 현 시대에 주어진 문제를 철학을 통해 풀어나가는게 더 중요합니다.” 철학과를 취업률로 판단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대학교에서 배운 학문을 졸업해서 바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만연하기 때문”이라며 “대학은 전반적으로 능력을 키우는 곳이고 사회가 재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철학이 실용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으로 깊은 사고력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데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과학철학으로 준비하는 미래 한국과학철학회 편집인이자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 위원회 위원인 이상욱 교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책을 내거나 현대 과학기술을 연구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학술적인 연구가 정책에 바로 적용되는 데 한계가 있지만,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은 유엔기구 내 다양한 국가들의 이해관계나 정치적 환경에 도움을 줄 수 있다. ▲ 이상욱 교수는 앞으로 과학기술을 연구해 유네스코 회원국들이 정책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다. 이 교수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는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과학기술의 철학적 이해’ 과목을 잘 활용하라고 당부했다. “인문계 학생들에게는 과학기술 기반 사회가 어떻게 인문학적인 쟁점이 되는지 공부하는 기회가 되고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어떠한 윤리적 고려를 통해 사회적 지원을 통해 지속 가능하게 과학 연구를 할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6 10 중요기사

[학생]와줘서 고마워-'한양을 찾은 교환학생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가수 015B ‘이젠 안녕’의 한 소절이다.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고, 다시 만나기 위해 약속한다. 하지만 때론 불확실한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한다. 그래서인지 이별을 앞둔 한양대 교환학생들의 하루는 더욱 소중하다. 귀하게 흘러가는 하루 중 유난히 비가 내린 어느 날, 뉴스H와 이들이 만났다. 한양대학교는 70여개 국가와 해외 자매결연을 하고 있다. 매년 한양대로 오는 교환학생은 1300명 정도다. 2018년 4월 기준 지난 봄학기에 서울 캠퍼스를 방문한 교환학생 수는 총 336명, ERICA캠퍼스는 87명이다. 교환학생을 위한 국제처의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교환학생들의 생활과 학업을 돕는 학생단체 ‘한양글로벌라이언즈'(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와 수준별 한국어 교실 등이 있다. 뉴스H가 만난 세 명의 교환학생들은 모두 다양한 도움을 받으며 한양대에서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Q1: 어디서 왔나요? 자기 소개 부탁해요. 멜빈 이스만토(Ismanto,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4): 안녕하세요, 저는 컴퓨터소프트웨어학을 전공하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멜빈입니다.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Tran, 영어영문학과 3): 안녕하세요, 앨리스입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자라온 베트남 사람입니다. 원래 전공은 간호학이지만 교환학생으로 간호학을 듣는 것은 제한돼있어 영어영문학과로 왔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에슐린 페레스(Perez, 파이낸스경영학과 3): 안녕하세요. 에슐린이에요.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지난 6일 한양대 근처 카페에서 교환학생 3인방을 만났다.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Tran, 영어영문학과 3)의 모습. Q2: 벌써 6월, 이제 다시 돌아갈 시간이네요. 한양대학교는 어땠나요? 멜빈 이스만토: 한양대는 제가 다니던 대학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어요. 건물이 크고 다양한 전공들이 각기 다른 건물들에 있었죠. 제 대학교에선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이 10명 밖에 없었는데 이곳은 사람들도 많고요. 사실 전공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저는 기초 수업인 줄 알고 신청했는데 4학년 수업이더라고요. 하지만 한국인 친구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교수님을 오피스 아워(Office hour)에 찾아가 여러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같이 사진도 찍었어요. 모두 고마웠죠. ▲교수님과 꼭 사진을 남기고 싶었다는 멜빈 이스만토(Ismanto, 컴퓨터소프트웨어학부 4).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 저도 한양대의 웅장함에 놀랐어요. 네덜란드에서 제 학교는 한 개의 건물이 다였습니다. 계단이 정말 많아서 인문대까지 가는 건 힘들었습니다. 영어영문학과 수업이 정말 좋았어요. 학생들과 교수님의 관계가 예의 바르지만 굉장히 친밀한 점이 인상 깊었고, 학생들이 영어를 너무 잘하더라고요. 한양대 친구들을 보고 공부 자극도 많이 됐습니다. 에슐린 페레스: 한양대는 정말 큰 학교입니다. 한마당에서 열린 ‘중앙동아리 모집 박람회’를 보고 놀랐어요. 다양한 동아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게 인상깊었어요. Q3: 한국친구들은 많이 만났어요? 멜빈 이스만토: 다섯 명 정도 만났어요. ‘한양글로벌라이언즈’에서 만난 친구도 있고, 네팔에서 온 유학생 친구가 한국인들을 소개해주기도 했죠.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 한양대학교 학생과 교환학생을 친구로 맺어주는 HY-Buddy 프로그램에서 친구들을 만났어요.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각 한 명씩 배정돼요. (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에슐린 페레스: 많은 친구들을 사귀지는 못했어요. 한국인 친구들은 제가 하는 말을 다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영어를 잘하지만, 말하는 건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래도 도움을 요청한 친구들은 열심히 도와줬어요. ▲한국인 친구들의 도움에 감동받았다는 에슐린 페레스(Perez, 파이낸스경영학과 3)의 모습. Q4: 한양대학교에서 인상 깊었던 일화는? 멜빈 이스만토: 친구들과 했던 술 게임이 기억에 남네요. 한국 친구들은 게임을 잘해서 교환학생들이 술을 많이 마셨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에슐린 페레스: 국제처가 진행하는 수준별 한국어 수업을 두 시간씩 매주 두 번 들었어요. 선생님이 수준에 따라 질문을 내주셨는데 저에게 쉬운 질문을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멜빈과 앨리스도 수업에서 같이 저를 많이 도와줬는데 모두가 서로를 돕는 분위기였죠. Q5: 마지막으로 교환학생으로 한양대학교에 올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 교환학생들이 한양대 캐릭터 하이리온 1.0 인형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페레스, 트란, 이스만토. 멜빈 이스만토: 한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세요. 가능하면 많을수록 좋아요. 어떻게 한국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는 지 알려줄 거에요. 앨리스 마이아인아투 트란: 모든 걸 수용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해요. 불편한 상황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에슐린 페레스: 북한산에 꼭 가세요. 홍대나 이태원에서 파티도 즐기고요! 식당에 들어가 메뉴가 한국어로 돼 있어도 그냥 시켜보세요. 한국어로 인사하는 법은 꼭 배우시고요. 한국을 즐기세요!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5 28

[동문][NOW 꿈꾸는 사람들] ‘유척 정신’으로 무장한 대한민국 경제 사령탑 (1)

지난해 11월 9일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임명된 홍남기 동문은 한양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예산 전문가이자 경제 관료로 초대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해 국정 과제에 대한 이해도가 넓다고 평가받는 그가 경제 전반을 아우르며 우리나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정리. 편집실 ▲홍남기 동문(경제학 80) Q. 경제부총리가 된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우리 경제의 활력 제고를 위해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경제장관회의 등 각종 회의 주재, 국무회의·총리회의 등 참석, 경제정책 조율회의 진행, 산업 및 수출 현장 방문 일정 등이 빼곡합니다. 특히 취임 시 말한 소위 ‘1+2+3 약속’, 즉 경제팀 one 보이스(1), 정부-청와대 두 목소리(2) 없도록 조율, 소상공인·중소기업·대기업(3) 등 매주 현장 방문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매일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한 달 동안 미국 워싱턴DC에서의 G20 재무장관회의 및 IMF/WB(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 총회 참석, 북경에서의 일대일로 정상회의 참석, 피지에서의 ASEAN+3(동남아시아국가연합+한·중·일) 재무장관회의 및 ADB(아시아개발은행) 총회 등 세 차례의 국제회의에 대표로 참석했습니다. Q. 현재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A. 1985년 한양대를 떠난 후 줄곧 경제기획원-재정경제원-기획예산처-기획재정부 등 한 부처에서 근무했습니다. 물론 청와대와 외교부(주미대사관) 파견 근무도 있었지만요. 공직을 시작한 경제부처에서 33년 만에 해당 조직의 장에 오르는 운 좋은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공직 생활 내내 지녔던 신조는 두 가지입니다. 나의 역량과 실력을 높이는 것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열심히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저의 자산이었고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물론 그 바탕에는 한양대에서 대학원까지 공부하며 축적한 경제학 지식과 늘 몸에 체화되도록 듣고 접했던 건학 정신이자 교훈인 ‘사랑의 실천’이 있었습니다. Q. 공직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요? A.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며 한결같이 지닌 마음가짐은 정도(正道)입니다. 이는 업무나 생활에 있어 늘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유척을 가장 좋아해 제 스스로 이를 ‘유척 정신’이라 이름 붙이고, 공직 생활 내내 가능한 이를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Q. 재학 당시와 지금의 대학이 다른 점이 있을까요? A. 제가 다닐 때 대학은 ‘학업+학문 연구’에 중점을 뒀다면, 지금의 대학은 ‘학문 연구+산학 협동+창·취업 연계’ 등으로 그 영역이 크게 확대되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양대는 순수 학문 연구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산학연 연계 강화 및 활발한 창업 연구·지원 등으로 발 빠르게 선제 대응해 온 대학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울캠퍼스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ERICA캠퍼스의 부각이 가장 뚜렷한 사례라고 볼 수 있지요. Q. 대학 재학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A. 한양대 기숙사에서 졸업할 때까지 숙식하며 공부했기 때문에 제게는 한양대 캠퍼스 자체가 가장 그리운 곳입니다. 대학교, 대학원 생활의 모든 것이 한양대 캠퍼스에 녹아 있어 제 청춘이 그대로 머문 곳이기도 하지요. 기숙사에서 저를 포함한 80학번 동기 네 명이 함께 고시 공부를 했는데 비슷한 시기에 합격했습니다. 모두 기획재정부에서 함께 공직 생활을 하고 퇴직했지요. 저만 아직 공직에 복무 중입니다. 한양대 출신이라는 동지애와 친우애가 공직 생활 내내 큰 자산이었습니다. Q. 예전 인터뷰에서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세계 여행’을 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가요? A. 예. 변함없습니다. 대학생에게 공부가 전부는 아닙니다.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며 글로벌한 시야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개인적으로는 공직 기간 중에 영국 유학(2년), 미국 워싱턴주정부 예산성 파견 근무(2년), 워싱턴DC 주미한국대사관의 경제공사참사관 근무(3년) 등 해외 근무 경험과 수많은 해외 출장으로 글로벌 마인드의 중요성을 더욱 절감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주저 없이 세계 여행을 할 겁니다. 퇴직 후 가장 하고 싶은 저의 위시 리스트 중 하나가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시야와 견문을 넓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Q. 한양의 후배 또는 동문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지금 우리는 초연결, 초지능화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의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해 보지 못한 대변화가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잡아먹었다면, 지금은 빠른 물고기가 느린 물고기를 잡아먹는 격이랄까요. 이런 변화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빠르게 적응할수록 기회와 가능성은 그만큼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 한양대 동문 그리고 후배들께서 시대를 잘 읽고 그 흐름을 타서 4차 산업혁명의 주역으로 우뚝 서길 기대합니다. 사랑한대 2019년 05-06월 (제248호) 이북 보기

2019-05 27 중요기사

[학생]코드(code)에 옷을 입히다

코드(code)는 컴퓨터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다. 컴퓨터에 명령들을 작성할 때 코드를 사용한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코드를 작성하는 ‘코딩’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코드는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읽기 힘든 만큼 가독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영수(컴퓨터공학부4) 씨는 코드의 특정 키워드를 자동으로 칠해주는 프로그램(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Color Scripter’를 개발해 6년째 운영하고 있다. Color Scripter 탄생 이영수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Color Scripter’를 개발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가진 그는 여러 언어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씨는 블로그에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코드와 함께 강의로 올리기 시작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사용할 수 있는 적합한 구문 강조법(Syntax Highlighter)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영수(컴퓨터공학부 4) 씨는 “필요한 구문 강조법이 존재하지 않아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프로젝트는 사용자들에 의해 자체적인 생태계로 구성된다. 이 씨는 “Color Scripter를 사용할 시 표식을 남기게 했고, 사용자들이 블로그에 Color Scripter를 사용한 코드를 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표식이나 링크를 통해 Color Scripter에 찾아온 방문자 수가 늘어나 현재는 일평균 550명을 기록했다. 점점 증가하는 사용자 수는 6년간 지속할 수 있게 한 동력이 됐다. “모르는 사람들이 제가 만든 것을 사용하고, Color Scripter를 써서 올린 블로그 글을 종종 발견했습니다. 굉장히 뿌듯한 경험이죠.” 유료화보다 값진 경험 이영수 씨와 사용자들이 함께 만든 Color Scripter는 무료 웹사이트다. 이 씨는 “사용자들에게 무료 서비스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며 “돈을 버는 제품은 사용자들의 불만을 바로 처리해야 하는 책임감이 필요하지만, 무료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운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들은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Color Scripter의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이 씨는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디자인 변경, 언어 추가, 옵션 설정 등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찾는 서비스가 없을 시 직접 쉽게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확장 스토어’도 생성했다. (클릭 시 관련 사이트로 이동) 이 씨는 1년 전부터 사용자들에게 후원을 받았다. “후원을 처음 열었을 때 후원금이 얼마나 모일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솔직하게 사용자들에게 벅찬 부분이 있다고 공개하니 바로 후원자가 생기더군요. 1년이 지난 지금 전체 누적 100명 이상의 사람들의 후원으로 안정적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영수 씨는 “사용자들의 후원 덕분에 안정적인 서비스 운영이 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Color Scripter 홈페이지 제공) 함께 성장하는 서비스 이영수 씨에게 Color Scripter는 ‘함께 성장해 좋은 추억이 많은 친구’다. “무료이기에 얻을 수 있던 경험은 유료 서비스로 판매할 때보다 더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사용자들과 소통하면서 만들어낸 생태계이기 때문이죠.” 이 씨의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그는 “항상 많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준비될 때 원하는 것을 바로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5 27 중요기사

[학생]옷으로 다시 피우는 꽃중년의 품격

패션 에이전시이자 브랜드 ‘헬로우젠틀’에서 지난해 6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들을 위한 ‘패션 메이크오버(Fashion make-over)’ 캠페인 <더뉴그레이(THE NEW GREY)>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헬로우젠틀’ 편집장 여대륜(산업공학과 4) 씨는 현재 3기를 모집하며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글, 편집/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편집/ 임지우 기자 il04131@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Odeo@hanyang.ac.kr

2019-05 21

[동문][사랑, 36.5°C] 기부는 적은 돈을 크게 쓰는 방법

미국 회계법인 ‘더 리 어카운턴시 그룹(The Lee Accountancy Group)’ 이종혁 대표는 입학한지 60년 만인 지난 2017년 건축공학과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오랜 만에 모교를 찾으면서 그는 당시 등록금을 전액 면제 받으면서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감사의 마음을 갚기 위해 1년에 1만 달러씩, 총 4만 달러의 발전기금 기부를 실천하고 있다. 글 공주영 ▲이 동문은 "기부나 나눔 활동을 하는 이유는 제가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가진 것을 더 가치 있게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기부는 적은 돈을 더 크게 쓰는 방법입니다."라고 말한다. Q. 1958년에 건축공학과에 입학하신 후, 공업경영학과로 전과를하셨습니다. 특별한 사유가 있으신지요? A. 입학 당시에는 폐허가 된 서울을 보며 복구에 힘쓰자는 결심으로 건축학과를 택했습니다. 그러다가 국가유학시험에 합격한 뒤, 국방대학원 연구사병으로 가서 인생의 전환기를 만났죠. 연구사병 시절, 교수님 연구를 도우려고 도서관에 자주 드나들면서 경영학 책을 많이 봤습니다. 경영학 석학들의 책을 번역하면서 굉장한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그래서 제대 후에 공업경영학과로 전과를 했죠. 수업을 듣다보니 경영학의 근간이 되는 회계학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1965년에는 졸업한 다음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경영학을 공부했고, 2007년에는 경영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Q. 2017년에는 한양대 건축공학부 명예졸업장을 받으셨습니다. 더불어 오랜 만에 모교를 찾아 여러 모로 감회가 남다르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A. 2017년 11월 20일은 저에게 무척 뜻깊은 날입니다. 입학한지 꼭 60년 만에 받은 건축공학부 명예졸업장이었습니다. 도중에 전과를 했지만 건축공학과로 입학했고 3년을 공부했기 때문에 지금도 스무 살에 만난 과 친구들과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명예졸업장 때문에 오랜 만에 들른 모교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제가 재학할 당시, 한양대학교는 목조건물 한 채와 석조건물 네댓 개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엄청난 규모이고, 학생들의 모습도 씩씩하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Q. 졸업증서를 받던 자리에서 한양대에 1년에 1만 달러 씩, 4만 달러의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하셨는데요. 당시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결심하셨나요? A. 저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다섯 살인 1945년에 남한으로 내려왔는데 6·25 전쟁이 터져 가족을 다 잃고 홀로 자랐습니다. 어렵게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지요. 실향민인 저에게 한양대학교에서 여러 도움을 주고, 등록금도 전액 면제해 주었습니다. 한양대학교가 저를 키워준 것이나 다름없지요. 모교를 위해 뭔가를 꼭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명예졸업증서 수여식이 그 기회가 되었습니다. Q. 미국에서도 다양한 봉사활동과 기부를 펼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봉사와 나눔을 실천하게 되었는지요? A. 24년 동안, 오클랜드시와 함께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2,500명 가량의 노숙자와 어려운 이웃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행사를 해왔습니다. 제가 자금 마련과 봉사자를 모으는 등의 일을 맡았는데 오클랜드시에서 그 공로를 인정해 2004년 3월 5일, ‘이종혁의 날(Jong H. Lee Day)’를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또 미국 모교에 10년 동안 매년 1만2,000달러 씩 기부하면서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장학금 조성도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부나 나눔 활동을 하는 이유는 제가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가 가진 것을 더 가치 있게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기부는 적은 돈을 더 크게 쓰는 방법입니다. Q. 대표님이 전달하고 있는 발전기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 6·25 전쟁 때문에 저에게는 초등학교 졸업장이 없습니다. 배움에 대한 애착이 큰 이유는 그만큼 어렵게 공부를 해서입니다. 35세가 되어서 석사 학위를 받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따면서도 더 공부해야한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공부를 잘 하는 학생에게 돌아가는 장학금이 아니라, 발전의 가능성이 보이고 기회가 필요한 학생이라면 성적에 상관없이 기부금의 혜택을 받길 바랍니다. Q. 그 동안 꾸준히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오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80에 가까운 나이가 되다 보니,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나눔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한양대로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 받은 여러 혜택을 누군가도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인생도 달라질 수 있겠지요. 기부는 뒤로 미루는 게 아니라, 지금 생각이 있다면 바로 실천해야 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적은 돈이 모여 큰 힘을 냅니다. 동행한대 2019년 Spring(제13호) 이북 보기

2019-05 21

[동문][사랑, 36.5°C] 나의 ‘빚’이 누군가에게 ‘빛’이 되길

곽용섭 변호사는 대학 시절 내내, 기숙사 고시반에서 생활하면서 장학금과 생활비를 받았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받은 이러한 혜택을 모두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 생각이 바뀌었다. 자신을 키운 것은 한양이며, 모교에 빚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10년 간 기부를 약정하고 2018년부터 매월 일정금액을 기부하며 빚진 마음을 조금씩 갚아 나가고 있다.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다시 누군가에게 빛이 되어줄 것을 믿으며. 글 공주영ㅣ사진 이서연 ▲ 곽용섭(법학 84) 변호사 Q. 2018년 10월부터 매월 기부하고 계신데요. 10년간 6천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A. 1984년 한양대 법학과에 입학하면서 기숙사 고시반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기숙사 고시반은 260명 법학과 학생 중에서도 50명 이내만 선발해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명이었으니 저로서는 굉장히 큰 행운이었죠. 고시반에서는 조교가 공부도 살펴주고 생활지도도 해주었기 때문에 꾸준함을 잃지 않고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감사한 마음을 언젠가 목돈이 생기면 갚아야지 했는데, 때를 기다리다 보니 자꾸 늦어지더군요.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나눠서라도 기부를 하자고 결심했습니다. Q. 기부를 약정하면서 ‘빚을 갚는다’라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학교로부터 혜택을 많이 받으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인지요? A. 백남장학금과 대학 등록금, 대학원 등록금, 기숙사비까지 모두 제가 받은 혜택입니다. 당시에는 제가 받는 장학금이 얼마나 큰 혜택인지 몰랐습니다. ‘공부를 잘하니 당연히 장학금을 주는 게 아닌가?’하는 오만한 생각을 했죠. 하지만 사회에 나와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공부를 잘 하는 건 개인이 지닌 재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만약 그 재능을 보살펴주는 한양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그런 깨달음을 얻고 나니 ‘내가 받은 만큼 되돌려줘야 또 누군가가 나처럼 혜택을 받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빚을 갚는다’는 표현을 쓴 거죠. Q. 나눠서 내고 있지만 10년 동안 쌓이면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혹시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A. 제가 받은 것에 비하면 큰 금액이 아닙니다. 심지어 채무 관계의 빚이었다면 이자까지 훨씬 더 붙었겠죠. 또 제 마음의 빚을 금액으로 정산할 수도 없습니다. 매월 정해진 금액을 납입하니 오히려 적금을 붓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변호사 역시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형편이 좋을 때가 있고 나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자동이체를 신청해서 기부금이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빠져나가도록 해놓았습니다. ▲곽 동문은 " 공부를 잘 하는 건 개인이 지닌 재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만약 그 재능을 보살펴주는 한양이 없었더 라면 지금의 저도 없었겠죠" 라고 말한다. Q. 오래 전부터 기부를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부에 대한 변호사님의 철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광주에서 판사를 하던 시절, 여직원회에서 어린이를 돕는 기부에 동참해달라고 찾아왔어요. 그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25년 동안 여러 가지 나눔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도 바울이 “나는 세상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이다.”라고 한 말이 있습니다. 저를 스무 살 이전까지 키워준 사람은 팔 남매 가운데 다섯 번째 누나였고, 그 이후에는 한양대가 저를 키웠죠.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빚 위에 서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빚을 갚아야 하겠죠. Q. ‘빚’이라고 표현하셨지만 변호사님의 기부가 그 누군가에게는 ‘빛’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 제가 낸 기부금이 어떻게 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학교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써주실 거란 믿음이 있습니다. 공부가 절실한 저에게 한양이 준 도움은 큰 ‘빛’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즐거움을 깨달은 이 곳에서 제가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해주었죠. 공부의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후배들이 그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에 사용된다면 더욱 감사할 것 같습니다. Q. 기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시작을 어려워하는 분이 많습니다. 먼저 기부를 시작한 경험자로서 한 말씀 해주신다면? A. 졸업을 하고 보니 설립자의 정신인 ‘사랑의 실천’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학생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주었기 때문에 저 역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불교에서 인드라망(우주적 그물망)에 의해 모든 존재가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합니다. 동문들이 조금씩 나눔을 실천한다면, 그것이 온 세상으로 퍼져 한양을 더욱 빛나게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부에 있어 금액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실천을 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동행한대 2019년 Spring(제13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