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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4 08

[교수]`태교로 습관성유산 치료한다`

수중분만 소개로 문화적 분만환경 조성 주도 "심신의학센터 개설 등 대체의학 연구 시급" 의대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 지난 2000년 1월 새해 벽두에 방영된 서울방송(SBS)의 다큐멘터리〈생명의 기적〉 3부작은 다큐멘터리로는 기록적인 30%대의 시청율을 기록하는 등 대단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산모의 임신과정과 태아의 탄생에 얽힌 신비를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무분별한 제왕절개 시술, 가족과 산모의 격리 등 병원중심의 우리 출산문화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동안 후진적이었던 국내 출산문화에 경종을 울렸다. 특히 1999년 9월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으로 아이를 출산한 연극배우 최정원 씨의 분만과정은 산모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 일종의 '충격'으로까지 받아들여졌다. 40%가 넘는 세계최고수준의 제왕절개 출산율이 말해주듯 왜곡된 우리 출산문화에서 자연분만은, 그것도 물속에서 아이를 낳는 광경은 생경하다 못해 경이적인 것이었다. 이 다큐멘터리의 방영이후 좌식분만, 그네분만 등을 통해 아이를 낳은 산모들이 크게 늘어나는 등 우리 출산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나타났다. 최정원 씨의 분만과정을 지휘하면서 국내에 처음으로 수중분만을 소개한 박문일(의대·산부인과) 교수는 이러한 변화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저 옛날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임산부중심 문화적 분만환경 조성 주도 과거의 출산은 임신부 자신과 가족들에 의해 주도되는 환경이었으며 '의료'라기 보다는 '문화'적인 측면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현대 의학이 발전하면서 산과학과 관련된 새로운 기술이 소개되고, 이를 의료인들이 주도하게 되면서 분만이 '문화'라기 보다는 '의료'의 범주에 들게되었고, 임산부들은 '환자'로 불리게 되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의료적인 분만환경을 문화적인 분만환경으로 되돌려 놓아야한다고 주장한다. "분만을 문화로 이해할 때, 능동적인 출산(active birth)과 부드러운 출산(gentle birth)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능동적인 출산이란 지금까지 의료인에 의하여 주도되어왔던 분만환경에서 임산부가 주체인 분만환경으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능동적인 출산이 임신부 관점에서 보는 견해라면, 부드러운 출산은 의료진이 임산부에게 제공하거나 권유하는, 부드럽고도 품위있는 출산환경을 말합니다." 박 교수가 처음 수중분만 과정을 지켜본 것은 92년 영국 옥스퍼드 의대 산부인과에서 연수를 할 때였다. 따뜻한 욕조 속에서는 통증이 줄어든다는 점을 착안, 이를 임상에 활용하는 유럽의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분만환경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습관성유산이나 태교 등에 더 관심을 가졌던 박 교수는 귀국후 수중분만은 거의 잊고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 99년 인간적인 분만환경속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싶었던 최정원 씨가 박 교수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냈고, 마침 〈생명의 기적〉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던 서울방송을 통해 이 과정이 소개되면서 대중들의 관심도 크게 모을 수 있었다. 습관성유산 클리닉 개설, 현대판 '산파' 자임 수중분만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지만 박 교수의 전공은 '습관성유산'이다. 산부인과는 전공별로 크게 주산의학, 부인종양학, 생식내분비학으로 나뉘어지는데 박 교수는 임신전후의 문제를 다루는 주산(周産)의학을 전공했다. 전공의 과정과 군의관을 거쳐 지난 85년 본교 교수로 부임한 박 교수가 주로 생식내분비학에서 많이 연구하던 분야인 습관성유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주산의학분야의 학자로 습관성유산에 관한 세계적인 석학인 Scott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당시 학계에서 유행하던 습관성 유산의 특이한 치료방법이 있었는데 남편의 백혈구를 채취하여 아내에게 투여하는 것입니다. 남편의 백혈구를 습관성유산환자인 아내에게 투입하면 아내의 혈액에서 면역학적 거부반응을 차단하는 '면역 차단항체'가 생긴다는 것이 그 이론적 배경인데 이 연구를 위해서는 결혼한 부부들의 혈액이 많이 필요합니다. 미국에서는 환자들의 동의없이는 혈액을 채취할 수 없고 그 절차도 까다로와 자연히 한국인 유학생 부부의 도움을 청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결혼한 한국 유학생들의 집을 밤중에 돌아다니면 혈액을 채취했는데 어느 학생은 '피를 뽑으러 밤에만 돌아다니시니 혹시 드라큐라 아니냐'고 놀리기도 했습니다." 유산이나 조산은 어떤 의미에서는 아예 임신이 되지 않는 불임보다 가족들에게 주는 고통이 가혹하다고 할 수 있다. 임신과 관련한 모든 신체적 변화를 이미 겪은 후에 그 임신이 중단된다면 이미 임신을 위하여 변화되었던 모든 부분들에 많은 충격을 주게 되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그 신체적 손실과 정신적 충격을 정녕 남자들은 모른다고 말한다. 정작 본인도 남자이면서 말이다. 이러한 산모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박 교수는 미국에서 귀국하자마자 지난 90년 4월 국내에서 최초로 '습관성 유산 클리닉'을 개설했다. 현재 이 클리닉에는 약 1,400여명의 환자가 등록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국내 습관성 유산 환자의 원인 분석 등 수많은 임상결과를 쏟아내고 있다. '태교는 과학이다' 무르익는 심신의학의 꿈 몇 년전부터 박 교수는 태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습관성 유산을 치료하면서 원인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던 박 교수는 '습관성 유산이란 원인을 모르는게 아니라, 원인이 없는 것'이라는 한 연구결과에 주목했다. 임신부들로 하여금 긍정적 사고를 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줄인다면 습관성 유산을 획기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Tender Loving Care'을 우리 전통에서 찾은 것이 바로 태교이다. 지난 99년 5월 '대한태교연구회'를 발족한 박 교수는 전국 의대 50여명의 교수들과 함께 태교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수중분만, 그네분만 등 '부드러운 출산환경(gentle birth)'을 주창하고 있다. "'gentle birth' 운동을 전개하면서 제왕절개시술이 5∼6% 정도 감소했다고 합니다. 자연분만을 원하는 임신부들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입니다. 습관성 유산은 과학적인 태교를 통해 많은 부분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태교연구 역시 심신의학 등 대체의학과 연계해 보다 발전시켜 나가야합니다. 심신의학분야는 향후 우리 대학이 발전·특화시킬 수 있는 분야입니다. 공대, 자연대 등 우수한 인적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 대학에서 학제간 연구로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꾸면 꿈이지만 여러 사람이 꾸면 현실' 박 교수는 우리 대학 의료원이 '류마티스센터'를 설립해 국내 최고 수준의 류마티스 병원으로 성장시켰듯이 심신의학분야도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국내 최초로 수중분만을 소개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료원에 도입하지 못한데 대해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박 교수는 '심신의학센터'를 개설해 습관성 유산 치료와 태교 연구를 보다 발전시키고 싶다는 바램을 피력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처음 접했던 수중분만을 지난 99년 국내에 처음 소개했는데 정작 우리 의료원에서는 이를 본격적으로 도입하지 못했습니다. 한달에 평균 1백명 정도가 저희 의료원에서 태어나는데 만약 수중분만을 도입했다면 아마도 5, 6백명 정도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남들보다 앞서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지요. 대학병원은 일반 민간병원과는 다르고 또 달라야합니다. 대학병원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과감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대학이라고 옥스퍼드대학이 되지 말란 법 있습니까?." 의대 4회 졸업생인 박 교수는 현재 '한양의대 동문 교수회' 회장을 맡고 있다. 본교 의대가 시설과 규모면에서 전국 43개 의대중에서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고 믿고 있는 박 교수는 이러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불만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한 것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털어놨다. "우리 의대와 의료원은 좋은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시설탓만 하면서 불평을 토로합니다. 문제는 시설과 규모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우리가 최고'라는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합니다. 교육을 통해 이러한 사고를 불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저를 포함한 교수들도 자기 성찰을 통해 거듭나야 하구요. 총장님이 강조했듯이 한사람이 꾸면 꿈이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의학계에서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일컬어 메이저(major) 과목이라고 한다. 생명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이들 과목중에서 나머지 3과를 모두 알아야 진료가 가능하고, 임산부와 태아의 두 생명을 다루며, 자궁속에 있는 태아에 대한 신비로움 때문에 산부인과를 선택했다는 박 교수는 특히 평소에 생각해오던 '인간 생명 사랑'을 직접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오랜 기다림과 힘든 진통 끝에 태어난 새로운 생명의 경이로움을 생각하면 피곤함이 싹 가신다는 박 교수는 '출산현장에서의 의료인들의 손은, 새로운 인간정신이 깃드는 순간에서 발휘되는 신 다음의 위대한 손이다'라는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늘 되새기면서 오늘도 회진을 돈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박문일 교수는 누구? 박문일 교수는 1977년 한양대 의대를 졸업한 후, 1982년 산부인과 전문의를 획득했으며 1986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미국 유타(Utah) 의대 산부인과에서 생식면역학을 연구했으며 1992년 영국 옥스퍼드(Oxford) 의대 산부인과에서 태아심박동을 연구했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한양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우수논문상(1990, 1991)을 연속 수상했고, 세계주산의학회 우수논문상(1991), 대한의용생체공학회 의공학상(1995), 대한주산의학회 최우수논문상(1996, 2001)을 수상하는 등 다수의 학술상을 수상했다. 최근에는 2001년도 한양대 최우수교수상을 수상한바 있다. 현재 대한주산의학회 정보위원장, 대한태아의학회 섭외위원장, 대한성의학회 정보이사, 대한태교연구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저서로는〈산과학 전자교과서〉,〈임신과 약물선택〉,〈태교는 과학이다〉,〈엄마와 아이를 위한 출산혁명〉등이 있다.

2002-04 08

[교수]공대 첫 여성 교수로 부임한 이석정 교수

전공공부보다 취업에 매진하는 학생들 안타까워 "실생활과 접목할 수 있는 종합적 학문 추구할 터" 공대에 처음으로 여성 교수가 부임해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지난 3월 도시과 교수로 부임한 이석정 교수.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이 교수는 주위의 관심에 대해 "내가 처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반응했다. 이 교수는 독일에서도 공대에 여교수가 부임한 것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호기심어린 시선에 대해 다소 부담스러워했다. 본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같은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던 이 교수는 독일 노이브란덴부르크시와 상하이시 신도시 건설에 도시 설계사로 참여하기도 했던 도시 설계 전문가이다. 이 교수를 만나 모교 강단에 선 감회와 교육철학에 대해 들어보았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우선 건물이 깨끗하고 좋아졌다. 학생과 교수가 수평적인 관계로 바뀌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수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의 전공을 배우고자하는 열기가 앞서기보다는 당장의 취업 걱정에 영어공부나 기사 자격증 등 직장 고르는 것에 급급한 현실도 안타깝다. 토익·토플 점수가 높다고 해서 영어 능력이 우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영어점수 지상주의를 거스를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한다. 이런 것은 교수들이 앞장서서 고무해야 한다고 본다. 전공공부를 기존사회가 추구하는 단기적인 것이 아닌 장기적인 차원에서 폭넓게 공부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 철학이 있다면 교수와 설계사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하겠다. 그만큼 도시공학은 실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이 중요한 응용학문이다. 강의할 때도 이론에 치우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를 중점적으로 가르치고자 한다. '도시'라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다. 공학이나 교통, 경제라는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육체, 문화, 욕구, 심성, 정신적인 것을 하나로 묶어서 볼 줄 아는 전문인을 키우고자 한다. 독일과 우리 학생들의 차이점이 있다면 현재 학부 2, 3학년과 대학원 설계수업을 맡고 있다. 학생들의 용기를 꺾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창의적인 생각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도시를 전체적이고 다각적으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이론적으로만 보려한다. 이는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라 실무현실과 교육의 복합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본다. 학부 4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모자라는 것이 아니라 영어학원이나 기사자격증 등에 정신적, 시간적 압박을 많이 받는 것 같다. 이런 학생들을 질타할 생각은 없지만 각자가 용기를 가지고 자기 인생을 결정해 주었으면 한다. 도시과 전공학생의 취업률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설계부분을 살펴보면 종합적인 전문인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섹터별로 분화된 전문인을 키우려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배경이 조금은 다르겠지만 독일은 우리나라만큼 심하지 않다. 요즘 이공계 기피현상이 일어나고 경영이나 경제학으로 전과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공대 학생들을 줄이려 하는 것 같은데 이는 너무 단기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현재 기피하는 분야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나중에는 정작 필요한 사람으로 남게 될 것이다. 취업에 급급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뒤로하면 결국 큰 성과를 보지 못할 것이다. 학창시절은 어떠했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한편으로 여성이 도시분야에서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동아리 활동은 가족, 동창 등에 덧붙여 또 하나의 집단을 만든다는 스트레스 때문에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동아리의 장점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혼자가 외롭다는 것을 알 때 남의 외로움을 더 잘 아는 포용력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자기 집단을 너무 중요시하다 보면 다른 집단에 배타적이기 쉽다. 보다 폭넓고 적극적인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다. 서로가 아무런 울타리 없이 만난 후 절친한 인간관계를 이루는 것이 이미 정해진 관계보다 바람직하다고 본다. 학사와 석사는 건축공학을 했다. 박사학위는 어떤 것으로 받았나 이것이야말로 전체보다는 부분을 강조하는 가장 한국적인 질문이라 생각한다. 주로 다루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도시를 잘 만들자는 것이 나의 전공이다.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사회적 과제로 본 도시설계'이다. 여성이 도시공학분야서 어떤 강점이 있다고 보는가 여성은 남성보다 어떤 일을 동시에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본다. 복합적인 사고가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도시공학에서는 여성이 유리하다고 본다. 서용석 학생기자 antacamp@ihanyang.ac.kr

2002-04 01

[교수]`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신영조 교수

최고의 무대는 꽃동네ㆍ나환자촌에서의 자선공연 "최선을 다해 노래부르고 아는 만큼 가르치겠다" 음대 성악과 신영조 교수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 호세 카레라스. 전세계는 이들 'Three Tenors'의 공연에 열광하고, 관심을 기울인다. 지난해 6월 서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이들의 한국 공연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관객들로 가득 메워졌고, 시청률을 의식해 평소 클래식 음악과 관련된 공연을 방영하는데 인색했던 공중파TV 방송에서도 이를 생중계했다. 'Three Tenors'의 공연을 감상해본 사람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 저런 전세계적인 성악가가 나올까?"라는 질문을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던졌을지도 모른다. 현재 홍혜경, 신영옥, 조수미 등 여성 성악가들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등 세계적인 오페라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고, 안식년을 맞아 지난해 유럽으로 건너간 바리톤 고성현(음대·성악과) 교수는 각종 오페라무대를 종횡무진하며 현지 비평계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테너 신영조 교수는 언제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빠르면 5년, 10년 후쯤에 우리나라에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테너가 나올지도 모른다며 기왕이면 본교 출신 중에서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98차례의 독창회 등 지칠줄 모르는 왕성한 연주활동 지난 1960년에 설립된 음대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대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음악인들을 양성해 왔다. 소프라노 박정원, 김우경 등 음대 출신 성악가들의 활발한 활동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신 교수는 이러한 본교 출신 성악가 라인업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리오 국제 성악 콩쿨에서 입상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 교수는 독일 스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의 독창자 오디션에 합격해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신 교수는 세종문화회관과 뉴욕 카네기홀 등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각종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수없이 많은 공연을 통해 국내 최정상급의 테너 반열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총 98번의 독창회를 가졌으며,〈춘희〉,〈라보엠〉,〈로미오와 줄리엣〉등 40여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연가곡의 밤이나 연주회 참여는 1,000회를 넘을 정도로 신 교수의 정력적인 연주활동은 다른 성악가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이러한 활동으로 신 교수는 1983년, 1996년에는 '올해의 음악가상'을, 1999년에는 '한국 음악상'을 받았으며 월간 음악상은 13회 차례나 수상했다. 그리고 1976년부터 1995년까지 국립 오페라단 단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목 보호를 위한 냉수마찰 등 철저한 자기관리 유명 물론 이러한 돋보이는 경력은 부단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신 교수는 투명한 목소리, 완벽한 고음처리, 풍부한 표현력으로 유명하다. 이를 위해 성악가의 천적인 감기를 예방하고, 목을 보전하기 위해 약 27년간 1년내내 냉방에서 자고, 냉수마찰을 할 정도로 자기관리를 철저하게 해왔다. 그 결과 그는 감기에 걸린 기억을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감기관리'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해부터 건강이 나빠져 냉방에서 자는 것과 냉수마찰을 중단했다. "저는 천부적인 음악성이 있는 성악가 스타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런 측면 때문에 더욱 더 자기관리에 철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로가 되려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잖아요? 나름대로 성공했고, 많은 것을 이루었죠. 하지만 그것 때문에 건강이 안 좋아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신 교수는 대학에 들어온 후 처음에는 자신이 재능이 전혀 없는 것 같아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군대에 가서는 복학 후에 법대로 전과를 해야겠다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마련했을 정도다. 그러나 군제대 무렵 교회에서 우연하게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자신도 놀랄 정도로 좋은 소리가 나왔다. 음악적 성공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버린 결과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신 교수는 성악과로 복학했고, 이후 출세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성취와 만족을 위해 음악을 하자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가지면서 더 많은 음악적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꽃동네·나환자촌에서의 자선공연 성악가로서 누릴 수 있는 영예와 음악적 성공을 거둔 신 교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독창회를 3년마다 한번씩 홀로 무대에 선 세종문화회관이나 세계적인 무대인 카네기홀일 것이라는 예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든 공연이 다 기억에 남죠.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자선공연들입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관객들도 음악적 소양이 많지 않지만 저에게는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해주는 자리입니다. 꽃동네, 나환자촌 같은 곳에서 열린 자선공연들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한번은 시각장애자들 앞에서 공연을 했는데, 제가 만났던 관객들 중 가장 두려운 관객들이었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죠. 소외된 사람들에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게 저의 가장 큰 계획 중 하나입니다. 또 이를 통해 저 자신은 사회적 환원을 실천하고, 몸과 마음이 부자인 음악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와 함께 독일에서 귀국한 직후에 출연한〈파우스트〉공연도 잊을 수 없는 무대다. 주인공 역을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공연을 통해 본교 교수로 부임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 공연을 관람한 본교 김연준 이사장이 신 교수에게 성악과 교수로 와 줄 것을 제안한 것. 신 교수는 '청산에 살리라' 등을 작곡하는 등 음악가로서 일가를 이룬 김연준 이사장이 우수한 음악인들을 교수로 초빙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열정이 지금의 음대가 있게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말했다. 한국 가곡에 대한 관심 커져…"음악적 '신의' 지키겠다" 대학시절을 포함해 젊었을 때는 오페라에, 연륜이 쌓여가면서부터는 독일의 고전가곡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는 신 교수는 최근 들어 우리의 가곡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독창회나 연가곡의 밤 등 공연을 하면서 우리의 정서가 살아있고, 가사가 모국어로 되어있는 가곡이 관객들에게 음악적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신 교수는 현재 클래식 음악계의 현실이 너무 좋지 않다며 크게 우려하고 있다. 오페라든 가곡이든 클래식 음악이 발전하려면 이에 합당한 여건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인들도 공연을 볼 줄 알게 만드는 교육과 고급음악에 대한 최소한의 경제적, 사회적 대우가 필요하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국가정책이나 사회 분위기는 이런 것과 거리가 너무 멀다고 지적한다. 이런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명한 음악가가 많이 나와도 전체적인 문화수준의 상승은 불가능하다고 덧붙혔다. 신 교수의 음악철학은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부르고, 자신이 아는 만큼 제자들한테 가르치는 것이다. 제자들이 자신을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최선을 다했던 선생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신 교수는 최근 들어 건강이 좋지않아 가르치는 일이 다소 힘겹다며 제자들에게 못내 미안해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테너이기 이전에 제자들의 숨결에 음악적 열정과 혼을 불어넣어주고자 자신을 불사르는 음악적 스승이자 인간적인 선배였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신영조 교수는 한양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 국립음악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으며〈춘희〉,〈라보엠〉,〈로미오와 줄리엣〉등 수십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또한 뉴욕 카네기홀 공연 등 총 98회의 독창회와 1,000여회의 가곡의 밤 및 연주회 무대에 섰으며 1회부터 3회까지 대한민국 음악제에 출연하기도 했다. 올해의 음악가상(1983, 1996), 한국 음악상 수상(1999)을 수상했으며 지난 76년부터 95년까지 국립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95년부터 99년까지 음대 학장을 역임했다.

2002-03 22

[교수]`한국 섬유공학의 자존심 지킨다`

첨단 수요에 부응하는 실용학풍론 "누가 공학의 위기를 말합니까?" 임승순 교수 (공대 응용화학공학부) 철이 지닌 질량의 중압감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것은 하나의 당구공이었다. 19세기 중반, 한 제조업자가 상아를 대체할 수 있는 당구공의 소재를 발명하는 사람에게 1만 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공언한다. 여러 사람들이 그 일에 매달렸고, 결국 나타난 행운의 주인공은 미국의 J.W 하이엇. 그는 질산 셀룰로스에 장뇌와 알코올을 섞어 셀룰로이드라는 새로운 당구공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플라스틱이었다. 새롭게 탄생한 고분자 화합물의 장점은 철만큼 튼튼하면서도 가볍고, 성형이 용이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을 기쁘게 한 것은 신소재는 녹이 슬지도 않고, 쉽게 변질되지도 않아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100년의 시간이 흐른 뒤, 인간에게 새로운 문제에 직면한다. 물질의 '영구성'이 갖는 고통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질의 '사용가치', 그 이후를 탐구한다 공대 응용화학공학부 임승순 교수는 섬유재료 연구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전문가다. 여기서 섬유란 비단, 의식주의 일부를 구성하는 피복의 소재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술용 봉합실에서부터 반도체를 구성하는 첨단 섬유, 인공피부 조직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은 가히 무한하다. 뿐만 아니라 현대 섬유공학의 관심은 섬유가 지닌 현재의 사용가치보다 사용가치가 소멸한 '이후'에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임 교수가 이른바 '썩는 플라스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하루의 일상에서 우리가 접하는 물질의 80% 이상이 고분자 화합물입니다. 플라스틱이죠. 옛날에는 강하고 오래 쓸 수 있는 내구성을 지닌 소재와 물건이 환영받았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아니죠. 도무지 썩지 않는 플라스틱이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하면서 새로운 사회적 수요를 낳은 것입니다. 소재의 '영구성'에 대한 인식이 바뀐 지 오래입니다." 현재 상품화되어 있는 플라스틱의 대부분은 버려질 경우, 분해되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남아 있어 환경오염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따라서 사용시의 편리성 및 내구성만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킨 합성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고, 사용 후에는 붕괴 또는 분해되어 자연의 순환사이클로 흡수됨으로써 환경오염을 예방할 수 있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한 사회적인 요구가 급격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 속에서 지난 1999년, 임 교수가 분해성 비닐을 획기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것은 관련 업계와 학계를 충분히 긴장시킬만한 것이었다. 기존에 개발된 분해성 수지의 원료가 값비싼 부틸렌석시네이트인 점에 착안, 원료를 값싼 벤젠으로 대체함으로써 생산원가의 30% 이상을 낮출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된 상품이 수요가 충분하지 않은데 대해 임 교수는 불만이 많다. 누구나 환경문제를 이야기하고 모두가 그 심각성에 동의하지만 실제로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분해성 비닐은 이미 사회에서 일부 실용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대중화되지 못한 까닭은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된 배경도 그렇지만 자연과 환경은 우리만 살고 끝나는 게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라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법규로 지정하고 강제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과 기업의 의식수준, 그리고 생활수준을 여실히 증명하는 것이지요." 플라스틱, '소리없이 세상을 움직인다' '분해성 고분자'외에도 임 교수가 완료했거나 현재에도 연구가 진행 중인 주요 관심은 '전도성 고분자'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고분자가 지닌 기능성 확대의 극치라 할 수 있는 '전도성 고분자'란 말 그대로 전류가 통할 수 있는 고분자 화합물을 의미한다. 플라스틱은 절연의 속성을 지녔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전도성 고분자는 경량성, 유연성, 신축성 등 플라스틱이 지닌 기존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금속을 대체하여 전도체 영역에서의 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대안 소재입니다. 이미 10년 이상 이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나노기술과 연계하여 전도성 고분자가 개발되면 분해성 고분자와 함께 로봇에 사용될 인공근육 등, 첨단의 수요를 현실화할 수 있겠지요." 썩는 플라스틱과 전도성 플라스틱 개발 등에서 드러나듯이 사회적 요구를 학문의 출발로 생각하는 임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 있어 실용적 관점을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이른바 '공학 위기론'이 대두되는 현실에서 학문에 대한 그의 입장은 매우 명쾌하다. 세상에는 '쓰임 있는 학문'과 '쓰임 없는 학문'만이 있다. 그리고 응용학문이란 것이 마땅히 현실적 쓰임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일진대, 고담준론(高談峻論)을 즐기며 진리 탐구 그 자체에서 멋을 부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 이공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이는 사회적 경향 속에 발생한 일시적인 정서에 지나지 않습니다. 경제위기가 금융에 대한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일깨워 주었고 정부는 IT산업을 위기 극복의 복음처럼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언론이 이러한 경향을 반복해서 조명하면서 상대적으로 공학이 소외된 것입니다. 제 전공이 섬유공학입니다. 사람들이 섬유산업은 이제 사양산업이다 말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옷을 입지 않고 살 수 있어요? 사회적 요구가 소멸되지 않는 한 응용공학은 절대로 쇠퇴하지 않습니다." 편의주의는 학문의 가장 큰 적 공학 위기론에 대한 임 교수의 비판은 해당 학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부로 이어진다. 특히 섬유공학처럼 본교가 연구의 수준과 성과에 있어 명실공히 국내 유일무이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분야들은 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더욱 전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개 섬유공학과에 120명에 달하는 교수진을 갖춘 일본의 대학을 예로 들며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응용학문과 자본간의 관계다. 유목적적 학문은 '투자'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학문의 목적과 함께 임승순 교수가 강조하는 것은 '학문의 자세'에 관한 것이다. 1992년 한국섬유공학회 학술상, 1993년 백남학술상, 1994년 한국고분자학회학술상, 1996년 국제과학학술지 논문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대변하듯이 매년 평균 7편 이상의 논문을 집필하는 임 교수의 연구력은 이미 사회적으로 검증된바 있다. 그는 정작 논문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 단언하지만 학문에 있어 성실함의 가치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뿌린 만큼 거둔다는 말을 신뢰합니다. 요즘 학생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바로 학문의 자세에 있습니다. 애써 노력해서 최고 교육기관에 들어온 가장 큰 목적은 '학문'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강의실 안팎에서 학습 환경을 스스로 조성해 가는 노력도 부족하지만 학점을 어떻게든 쉽게 받으려는 일련의 생각들이 팽배해 있습니다. 까다로운 강의, 어려운 과목은 무조건 피하려하고 적게 생각하고 많이 얻으려하는 학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편의주의는 학문의 가장 큰 적입니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약력 및 경력 임승순 교수는 1972년 본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도쿄공대에서 유기재료공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2년 한국과학재단 과학기술처 IR52 장영실상을 받은 것을 비롯 한국섬유공학회 학술상(1992), 백남학술상(자연과학부문. 1993), 한국 고분자학회 학술상(1994), 국제 과학학술지 논문상(1996)을 수상했다. 한국섬유공학회 평의원, 환경친화성 고분자연구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회원, 한국 고분자학회 이사, 미화학회(ACS) 회원, 일본 고분자·섬유학회 회원을 역임하거나 활동하고 있다.

2002-03 22

[학생]`소신과 열정 가진 검사 꿈꾼다` 박왕규군

소신과 열정 가진 검사 꿈꾼다 사법연수원생 박왕규 군

2002-03 15

[교수]`한양레퍼토리` 창단 통해 개성파 배우 양성한다

'한양레퍼토리' 창단, 개성있는 연기파 배우 양성 희곡작가 양성ㆍ연기파 위한 지침서 집필 계획 최형인 교수 (인문대 연영과) 흔히들 인생을 곧잘 연극에 비유한다. 이는 아마도 수많은 '상황(무대)'속에서 무수한 '사람(배우와 관객)'들을 만나 '말(대사)'을 소비하고, '행동(연기)'을 연출해야 하는 우리의 삶이 연극이라는 장르와 많이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연극이 곧 인간의 삶을 무대라는 공간으로 옮겨놓은 것이라는 설명이 오히려 정확할 듯 싶다. 현대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 가운데 연극처럼 인류의 삶과 오랜 세월을 같이한 것도 드물다. 고대 희랍의 여러 희곡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연극은 현대 대중문화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대중문화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에 대해서는 인정하면서도 기실 연극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영화와 텔레비전이라는 오락성과 대중성을 지닌 매체가 등장하면서 연극은 관객에게는 '재미없고', 연기자들에는 '배고픈' 장르로 인식된지 오래이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렇다. 인문대 연극영화과(이하 연영과) 최형인 교수는 이러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중의 한명이다. "모든 예술분야가 그렇겠지만 연극은 단순히 무슨 문화정책을 만들고, 자본을 투자한다고 해서 클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연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연극을 계속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고, 일반인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져서 스스로 연극 공연장을 찾아올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뿌리가 너무 약합니다." '한양레파토리' 창단해 연기파 배우 양성 최 교수는 연극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대학 연영과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한다. 연극에 애정과 자질이 있는 연기자와 연출가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것은 물론 돈이 안 되는 비상업적인 공연을 무대에 올리는데 연영과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 교수가 대표로 활동중인 극단 '한양레파토리'는 그에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한양레파토리'는 대학의 연영과에서 만든 최초의 극단이며 재학생과 졸업생 그리고 교수가 동시에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 숨쉬는 '교육무대'이기 때문이다. '한양레파토리'는 최 교수가 미국 뉴욕대에서 유학하던 중 보았던 'Yale Repatory Company'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예일대 연극인 출신들로 이루어진 이 극단은 많은 연극인들을 배출했으며, 다양한 공연을 통해 미국내에서 상당한 명성과 인지도를 지니고 있다. '예일레파토리'에 깊은 인상을 받은 최 교수는 본교로 부임한 후 많은 생각과 노력 끝에 '한양레파토리'를 탄생시켰다. 최 교수에게서 엄격한 연기지도와 뜨거운 연극사랑을 사사받은 제자들은 연극무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종횡무진하고 있다. 설경구, 유오성, 박광정, 권해효, 전수경 등과 같이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배우들이 모두 최 교수에게서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개성이 뚜렷한 연기를 보여주는 '연기파 배우'들이다. 무대 떠난 삶 상상할 수 없어 … 희곡작가 양성 계획도 최 교수는 '한양레파토리'의 대표를 맡고 있으면서 연출은 물론 직접 배우로 참여하기도 한다. 제자들과 직접 호흡을 맞추며 연기하는 것은 그것 자체가 자연스레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1년에 한번씩은 꼭 무대에 서고 있다. 지난해 9월 공연한〈러브레터〉에서는 주인공역을 맡았다. 무대를 떠난 최 교수는 상상할 수 없다. "저는 결국 현장에서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또 교수이기 이전에 연극인입니다. 대학 교수의 당연한 의무인 논문을 쓰는 것보다는 저는 무대 위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무대 위에서 어느 위치에 있던간에 다른 사람들과 같이 호흡하는 것이 제 체질에 맞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연극 여건은 앉아서 논문만 써도 괜찮을 정도로 좋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도 연구지만 직접 참여해서 조금이라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려는 태도가 더 필요하고, 절실하다고 봅니다." 연극 교육과 관련해서 최 교수는 아직 한 가지 못 이룬 꿈이 있다. 바로 희곡작가이다. 최 교수는 자신이 연기인과 연출인을 양성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아직 희곡작가는 길러내지 못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희곡작가를 길러내는 작업에는 아직 시간이 좀더 많이 걸릴 것으로 최 교수는 예상하고 있다. 물론 포기한 것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판단아래 세계명작들을 공연에 많이 반영하고 있다. 브레히트 대한 그릇된 인식 바로잡은 일 보람 최 교수는 본교에 재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지난 1990년 학과 창립 30주년 기념으로 열린 연극〈사천의 착한 여자〉를 연출한 것을 뽑는다. 학생들과 어울려 연극에 참여한 것도 좋은 추억이지만 최 교수 개인적으로는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를 사실상 처음으로 제대로 알린 계기였기 때문이다. 당시 브레히트의 작품들은 사회주의적인 요소들이 많다는 지적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금기시됐었다. 또 브레히트가 극작가보다는 사상가로서 더 많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사천의 착한 여자〉를 통해 최 교수는 브레히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많이 바꿀 수 있었다.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브레히트의 작품을 재미있고, 즐겁게 또 예술미가 넘치는 연극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연극에는 휴머니티가 살아있어야 하다고 생각했어요. 이념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휴머니즘적인 요소들을 연극에 반영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으로〈사천의 착한 여자〉를 연출했습니다. 또 관객들을 재미있고, 즐겁게 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연극의, 연극에 의한, 연극을 위한 삶 현재 최 교수가 가장 큰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책을 집필하는 것이다. 연기자를 위한 지침서 개념의 교과서를 쓰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최 교수는 원래 연기란 직접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연기와 관련된 책을 보는 걸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만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연기와 관련된 사항들을 모두 담은 교과서의 필요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이왕이면 자신이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올해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자꾸 늦어지고 있다면서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최 교수의 얼굴에서 연극과 연기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묻어났다. "돌아가신 배우 이낙훈씨가 제 외삼촌이예요. 어려서부터 저와 굉장히 친했고, 외삼촌 덕에 연극을 비롯한 공연을 볼 기회가 굉장히 많았죠. 또 안목도 키웠고요. 대학에서도 처음에는 다른 전공을 공부하다 연극이 너무 좋아 결국은 연극을 공부하고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어떤 일이든 계기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인간애가 넘치는 성품을 가진 학생 그리고 연극인들을 계속 길러내고 싶습니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약력 및 경력 1972 St. Joseph's College 문학사(불문학 전공) 1974 American University 무대공연 학사 1979 New York University 예술전문 석사 현 인문대 연영과 교수. 극단 한양레파토리 대표 주요 출연작 연극〈나비처럼 자유롭게〉,〈 봉숭아 꽃물〉,〈수족관 유령〉,〈러브레터〉,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 주요 연출작 연극〈사천의 착한 여자〉,〈한 여름밤의 꿈〉,〈핏줄〉,〈다이닝룸〉

2002-03 15

[동문]KBS 뉴스9 앵커 홍기섭 동문

"감동이 있는 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뉴스광장'에 이어 '9시뉴스' 전격 발탁 KBS 뉴스9 앵커 홍기섭 (경제학과 80) 매일 저녁 전국 250만대의 텔레비전 세트에 그가 등장하고 1천만명의 시청자가 그를 바라본다. 방송시간만을 따지자면 할 말은 더욱 많다. '핑클'이 방송에 출연하여 50여 차례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시간, '겨울연가'의 배용준이 재방영을 포함하여 주 4회 출연하는 방송시간을 모두 합한 것만큼 그도 방송을 탄다. 비록 팬레터는 없어도 4천만 대한민국 국민 중 가장 오랜 시간 공중파에 실려 있는 사람. KBS 9시 뉴스 앵커 홍기섭(경제 80) 동문이다. 뉴스에 재방송은 없다 "9시 뉴스가 가장 긴 뉴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아침 6시에 방송되는 뉴스광장이 실제로는 가장 긴 뉴스죠. 1시간 45분입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긴 뉴스라고 할 수 있죠. 거의 3년의 시간동안 새벽 뉴스를 진행하다 갑자기 저녁 뉴스로 오니, 사실 지금도 적응이 잘 안돼요. 간판뉴스가 주는 정신적인 중압감도 있고 어깨가 무겁습니다." '뉴스광장'을 진행하던 홍기섭 동문이 '뉴스9' 앵커로 전격 발탁된 것은 지난 3월 5일. 2년 10개월 동안 진행해온 아침 6시 뉴스에서 갑자기 프라임타임으로 방송을 옮기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루의 반나절을 거슬러 살아야 하는 점도 그렇고 9시 뉴스만이 지닌 부담도 여간하지 않다. 보도국 앵커룸에서 만난 홍 동문은 그야말로 '시차적응'에 대한 고충으로 말문을 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다가 갑자기 일상이 바뀌니 힘든 부분이 없지 않죠. 지금도 새벽 5시나 6시쯤 되면 저절로 잠이 깨지만 좀더 자야한다는 생각으로 8시까지 선잠을 잡니다.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보고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냅니다. 빨리 새로운 스케줄에 적응해야겠죠. 앵커는 몸 관리와 시간 관리가 정말 중요합니다." 방송인 중에서도 앵커의 생활은 정확한 시간 준수를 생명으로 한다. 2시쯤 회사에 출근해서 편집회의에 참석하고 회의가 끝나는 3시 20분부터 부서별 뉴스를 파악한 뒤 기사를 검토한다. 4시 30분에 목욕을 한 뒤 5시 30분부터 당일의 뉴스와 관련된 기타 변동사항을 확인하고 주요 석간 신문을 검토한다. 6시 30분이 되면 또다시 확인해야 할 가판 조간신문이 도착한다. 앵커는 24시간 뉴스에 접속하고 있어야 한다. 기타 신문과 방송 등, 모든 뉴스채널을 놓치지 않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에 촉각을 세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방송 한 두시간 전에 몰려드는 40여건의 기사를 정확히 이해하고 핵심을 짚어내지 못한다. 7시 30분부터는 원고 작성 및 분장. 출근 전에 면도를 했다가도 이 시간쯤 되면 다시 면도를 한다.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분장을 마치고 최종 원고를 검토하며 초조함을 달래다보면 어느새 '큐사인'이다. 9시 뉴스, 전통의 신뢰 지키고파 '앵커'라는 말은 1952년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원래 육상의 '릴레이 주자'를 의미하던 이 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의 시사프로 '60분(60Minutes)'의 프로듀서를 지냈던 휴이트가 미국 정당들의 전당대회를 취재하면서 쓰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일반 아나운서와는 다르게 보다 전문적인 '뉴스 진행자'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시청자들은 뉴스의 전달이라는 것이 단순히 '팩트(fact)'를 소개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1989년 '타임'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는 '뉴스 선택에 있어 앵커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고 답하고 있었다. 같은 뉴스라도 앵커에 따라 수용자의 신뢰도와 이해력에 차이가 있다는 얘기다. "제가 지향하는 앵커는 간결하면서도 적절한 속도감을 유지하고, 결코 가볍지 않으면서 신뢰감을 주는 것입니다. 기자로서 10년이 넘는 기간의 현장경험을 소중히 생각하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사태를 단순히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간파해내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하죠. 1시간 45분의 아침 뉴스를 오랫동안 진행하면서 익힌 순발력이 큰 도움이 됩니다." 12년 간 사회부와 정치부, 경제부를 넘나들며 각종 특종상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던 홍 동문은 '뉴스광장'이야말로 앵커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시험하는 프로라고 말한다. 짧은 새벽의 시간에 당일의 모든 이슈를 종합하고 2시간에 가까운 방송에 들어가자면 어지간한 순발력과 아니고서야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홍 동문이 9시 뉴스에 발탁된 배경에는 이러한 경력과 검증된 자질이 있다. 새벽 6시에 방송되는 '뉴스광장'이 다소 저조했던 시청률을 극적으로 끌어올리며 최대의 전성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것도 앵커로서 홍 동문 활약이 있었다는 것이 주변의 일관된 설명이다. "9시 뉴스는 KBS의 대표 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간판뉴스라고 생각합니다. 시청률만 따지더라도 3개 공중파에서 탁월한 위치에 있으니까요. 지금 가장 어려운 점은 시청자들이 9시 뉴스에 보내준 신뢰의 전통과 앵커에 대해 갖고 있는 일종의 기대감을 잘 충족시킬 수 있을까하는 부담에 있습니다. 오직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동이 있는 뉴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한양인, 2개 공중파 프라임뉴스를 점령하다 홍 동문의 9시 뉴스 발탁으로 한양은 3개 공중파 중 2개 방송의 메인 뉴스 앵커를 배출한 명실공히 '앵커학교'가 됐다. 현재 SBS 8시 뉴스를 맡고 있는 이영춘 앵커는 경제학과 79학번이다(2001년 8월 보도분 참조). 굳이 학번을 따지자면 80학번인 홍 동문 역시 경제학과로 이영춘 앵커와는 1년 터울의 선후배간이다. 이 외에도 작고한 이득열 전 문화방송 사장은 한양이 자부심을 가졌던 전설적인 앵커다. "가뜩이나 취업난이 심각하고 언론계의 문은 더욱 좁다고들 합니다. 그렇지만 언론사는 오히려 학벌이나 지역, 출신 등에서 자유로운 곳입니다. 모교에서 언론계 입사를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은 지극히 평범한 조언으로 들릴지라도 부디 자신감을 가지고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오직 개인의 실력과 역량일 뿐입니다. 한양이 가지 못할 곳, 여러분이 오르지 못할 산은 이제 없습니다." 최근 ABC의 피터 제닝스, CBS의 댄 래더 그리고 NBC의 톰 브로커 등 앵커들이 수백만 달러의 고액 연봉을 받는 미국의 방송시장을 거론하며 국내 방송계가 고급 전문인력인 앵커에 대한 처우와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사회의 '공기(公器)'라는 말이 유달리 강조되듯이 방송에 대한 국내의 인식은 해외 시장과는 구별되는 접근법을 필요로 한다. '감동이 있는 뉴스'를 전하고 싶다는 홍 동문의 각오가 '책임'과 '봉사'에 대한 의미를 강조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촌음을 다투는 긴장과 격무 속에도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사람들은 '공인'이라 부른다. 최 홍 취재팀장 choihong@ihanyang.ac.kr 학력 및 경력 1960년생 1980년 한양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87년 KBS 입사,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기자 1998년 대통령 표창 수상 1999년 '뉴스광장' 앵커 1999년 KBS 앵커상 수상 2002년 '뉴스9' 앵커

2002-03 01

[학생]한국골프의 기대주 프로골퍼 배성철 군

필드의 정복자 꿈꾸는 한국골프의 기대주 프로골퍼 배성철 군

2002-03 01

[교수][이영무 교수 인터뷰] `이래야 이공계 살린다'

"이공계 기피 현상 계속되면 산업 붕괴" '고급 엔지니어' 육성 체제로 전환 필요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에 적신호가 켜졌다. 최근 이공계 관련 전공의 지원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 산업의 붕괴는 시간문제라는 심상치 않은 예측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천연자원이 전무하고, 국토가 비좁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감안할 때, 과학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경제활동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 의미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은 단순한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에 대한 대안마련이 절실하다. 병역특례, 해외 유학 지원 등 국가와 대학 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공대 응용화학공학부의 이영무 교수가 얼마전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 '청소년의 이공계 대학 진학률 감소에 따른 대책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교수를 만나 이공계 기피현상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이공계 기피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것처럼 매우 복합적이다.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의 경우 일단 학업량이 많고, 어려운 수학과 과학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이공계 전공자들은 상대적으로 취업은 유리하지만, 취업한 후에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는 형편이다. 또한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인문·사회과학계열 출신자들을 우대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렇다보니 사회의 중심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이공계 출신은 매우 드물다. 한 마디로 말해, 사회 전반에 걸쳐 이공계쪽 공부를 해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공계 전공자들이 기업체나 정부부처의 핵심인력이 되지 못하는 이유로 기획, 정책제안, 외국어, 보고서작성, 프레젠테이션 등과 관련된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사실이다. 사람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이공계 인력들은 이런 부분의 능력이 전체적으로 많이 떨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교육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이공계 전공교육에서는 이런 능력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진국의 이공계 전공교육처럼 우리나라의 이공계 전공교육도 바뀌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이공계 인력들이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적인 소양을 갖추고, 경영학적 마인드를 키울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영학, 경제학 등과 같은 분야와 연계된 이공계 교과과정을 개발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렇게 될 경우 이공계 인력들의 연구 외적 능력은 크게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이공계 인력들의 연구력과 기술 수준은 어떤가 미국이나 일본 등과 같은 선진국의 이공계 인력들과 비교했을 때 떨어지는 면도 있지만, 동등하거나 이미 앞서는 분야도 많다. 반도체 같은 분야에서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 아닌가. 그동안 다소 부진했던 설비기술과 핵심기술에서도 수준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 그리고 연구와 기술을 이해하고, 응용하는 기초 능력은 한국의 이공계 인력들이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서도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관심과 투자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성장할 수 있다.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는 방안으로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이공계 출신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주고, 사회적으로 적절한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연구능력이 우수한 이공계 인력들에게는 병역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 입시제도도 달라져야 하며, 대학의 이공계 학과 운영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전반적인 이공계 전공 정원은 다소 많은 편이다. 특히 무분별한 정원제로 인해 이공계 인력의 수요와 공급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공계는 산업구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만큼 각 전공별로 산업동향에 따라 정원을 조정할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상위권 대학들은 이공계 학과의 정원을 줄이고, 보다 내실있고 철저한 교육을 통해 '고급 엔지니어'를 육성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확실한 교육을 바탕으로 검증된 능력을 갖춘 '고급 엔지니어'를 양성하자는 얘기다. 이러한 교육체제는 이공계쪽 전공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더 좋으며, 이공계 인력들의 지위도 더 끌어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공계 전공을 공부할 경우 좋은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굉장히 많다. 우선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을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결국 과학기술에 의존한 경제체제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따라서 이공계 인력에 대한 수요는 항상 많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공계 인력에 대한 처우 역시도 점차 개선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공계 기피 현상이 계속된다면 한국 산업이 붕괴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할 때 끔찍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이나 유통 같은 분야도 결국에는 산업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없는 한국경제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2002-02 22

[교수]`다시쓰는 천일야화`

다시쓰는 천일야화 이슬람 연구의 권위자 문인과 이희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