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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 17 중요기사

[학생]한진희 학생, 2020 의사 국가고시 수석 합격으로 의사 첫 발 내딛다 (2)

한진희(의학과 4) 씨가 제84회 의사 국가고시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으로 수석의 쾌거를 이뤘다. 훌륭한 첫걸음을 내디딘 한 씨의 목표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의사가 되는 것이다. 의대생이 아닌 의사로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한 씨의 미래가 기대된다. ▲한진희(의학과 4) 씨가 제 84회 의사 국가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의사 국가고시는 의사가 되기 위한 면허시험이다. 해당 시험은 필기와 실기 시험으로 구성돼있다. 총 360문제 중 60% 이상을 맞추면 필기시험에 합격이다. 실기는 P/F 방식으로 술기(기술)와 모의 환자 진료로 이뤄졌다. 두 분야를 합쳐 총 12문제가 출제되고 그 중 8문제 이상 통과할 경우 합격이다. 한 씨는 필기시험에서 360점 만점에 339점을 받고 실기 시험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둬 수석의 기쁨을 안았다. 한 씨는 “수석 합격 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며 “함께 공부해온 동기들과 많은 도움을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 씨는 필기와 실기 시험 모두에 노력을 기울였다. 한 씨는 실기 시험을 필기시험보다 4개월 먼저 치렀다. 특히 실기 시험의 한 분야인 모의 환자 진료 테스트를 위해 조를 짠 후, 조원들과 함께 시험을 준비했다. 모의 환자 진료란 의사 역할의 학생들이 환자 역할을 하는 연기자의 증상을 보고 환자가 어떤 병을 가졌는지 맞히는 시험이다. 실기 시험 후, 필기시험까지 4개월의 시간이 남은 한 씨는 남은 기간 필기시험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시험 과목인 의료법규, 의학총론, 의학각론 공부에 열중했다. 모든 시험 분야에 최선을 다한 한 씨는 좋은 결과를 얻었다. ▲한 씨는 필요한 개념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했다. (한진희 씨 제공) 수석 합격의 비결은 무엇일까? 기본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다. 한 씨는 “필기시험의 경우, 본과 1학년부터 학교 공부를 꾸준히 잘해온 게 도움이 됐다”며 “기본기를 열심히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필요한 개념들을 정리한 후 단권화한 방법도 좋았다”고 덧붙였다. 한 씨는 실기 시험 합격의 공을 학교, 교수님과 동료들에게 돌렸다. 한 씨는 “한양대는 술기 연습을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센터가 잘 돼 있다”며 “학교의 지원, 교수님들의 조언과 함께 준비한 동기들 덕분에 술기 시험은 걱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공부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평소 허리 건강이 좋지 않은 한 씨는 장시간 앉아 공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 씨는 “허리가 아파서 오래 앉아 있지 못해 1시간마다 일어나 자세를 바꿔야 했다”며 “열람실에서 동기들과 함께 공부하고 싶어도 허리 건강으로 인해 집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실기 시험 이후 평균 7시간, 많게는 12시간씩 공부를 해온 한 씨의 고충이 여실히 느껴졌다. 한 씨는 처음부터 의사를 꿈꾸지 않았다. 한 씨는 “처음엔 뇌 과학 분야에 대한 막연한 관심만 갖고 의대에 진학했다”며 “의사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다”고 말했다. 본과에 올라가 본격적인 의학 공부와 실습을 진행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한 씨는 “의학 공부 자체가 재밌고 환자들을 보며 진료하는 것이 잘 맞았다”며 “거창한 이유로 의사의 길을 걷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한 씨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의사를 꿈꾸는 한양인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한 씨는 “의사 국가고시를 앞둔 후배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란다”며 “1학기 때는 실습을 성실히 돌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의예과 후배들에게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한 씨는 “기본기를 잘 쌓아두는 것이 필요하다”며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아쉬움을 말하며 진심 어린 조언을 남겼다. 한 씨는 “대학 시절, 학교 공부 이외의 다양한 대외활동을 못 했다”며 “여유를 갖고 여러 활동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전했다. 의사로서의 시작을 멋지게 해낸 한 씨의 도전은 지금부터다. 오는 3월부터 시작되는 1년간의 인턴 생활을 통해 더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갈 계획이다. 최종적으론 환자 진료, 연구 활동과 후학(학문에서의 후배) 양성 등을 모두 해내는 의사가 되려 한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류서현 기자 ideal1440@hanyang.ac.kr

2020-02 12 중요기사

[동문]김예원 동문, 저서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로 청춘을 이야기하다

문학 작품을 즐겨 읽던 평범한 학생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김예원(영어교육과 15) 동문은 나태주 시인과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함께 출판했다. 한양대에서 써 내려 간 김씨의 청춘 이야기는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김 씨는 생애 첫 북 콘서트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김예원(영어교육과 15) 동문은 나태주 시인과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출판하며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었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행복하고 슬펐던 모든 시간에 시(詩)가 있었다 2015년, 당시 스물한 살 새내기였던 김 씨는 지쳐있었다.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험공부 때문이었다. 바람을 쐬러 나오다 도서관 책장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읽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였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속 일상의 언어로 소중함을 노래한 시들은 김 씨의 마음을 적셨다. 그날부터 김예원씨는 나 시인의 팬이 됐다. 그는 노트 한 켠에 시를 옮겨 적었다. 옆에는 하루의 단상을 기록했다. 사랑하고 이별하고 행복하고 슬펐던 시간을 문장에 녹였다. 시를 읽고 생각을 정리하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 김예원씨는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나 시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시인은 화답했고 점차 교류가 늘어났다. 김 씨와 나 시인은 50년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문학을 매개로 소통했다. 그러던 중 시인은 책 출판을 제의했다. 김 씨는 “내밀한 기록을 공개하는 것이 부끄러웠다”면서도 “시인에게 받은 공감과 위로를 더 많은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어 출판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렇게 스물다섯 청춘의 감정과 경험이 한 권의 책이 돼 세상에 나왔다. ▲김예원씨는 저서 <당신은 오늘이 꽃이에요>에 스물다섯 청춘의 감정과 경험을 담았다. (시공사 제공) 대학 생활을 이야기하다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읽은 한양대 구성원들은 한 목소리로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김 씨가 대학 생활 중 보고 배운 느낀 점을 글에 담았기 때문이다. 에세이에 등장하는 인물 상당수는 한양대 재학 중 만난 사람들이다. 김 작가는 한양대를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준 고마운 곳이라고 지칭했다. 이어 “학교에 다니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채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영문학 전공 수업을 수강하며 문학 전반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특히 서현주 영어교육과 겸임교수에게서 사사(師事)하며 문학 작품과 삶과 연결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문학적 감성을 통해 세상을 더 아름답게 보게 됐다”며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통해 많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예원 작가가 한양대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집필했다. (김예원 작가 제공) 사람은 사랑을 통해 성숙한다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를 관통하는 가장 큰 주제는 사랑이다. 김 작가는 사랑의 대상을 국한하지 않는다. 자신에서 출발해 가족, 연인, 주변인, 자연 등으로 사랑의 범위를 확장한다. 그는 “사람이 사랑을 통해 성숙한다”고 말한다. 김예원씨가 생각하는 사랑의 전제조건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이다. 김씨는 대부분의 사람이 “잘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에 빠져 고통받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는데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며 이를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심리학자 앨버트 엘리스(Ellis)의 말을 인용하며 “자신에 대한 당위성, 타인에 대한 당위성, 세상에 대한 당위성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중함을 찾다 김 작가는 졸업을 앞두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았다.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던 찰나였다. “무심코 본 새벽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여행을 좋아하는 그는 새로운 여행지에 가면 하늘을 바라본다고 한다. 외국 하늘에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그날 바라본 서울 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푸르렀다고 한다. 김예원 작가는 “하늘을 올려다볼 시간이 없었음”을 자책하고 일상에서 소중함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날부터 집에 돌아가며 관찰한 내용을 일기장에 기록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다른 내용이 담겨있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눈이 내린 날에는 “학교 직원이 넘어지지 않도록 염화칼슘을 뿌려줬다”고 적었으며 어떤 날은 “집에 가는 길에 부모님과 전화했다”고 메모했다. 김예원씨는 이를 통해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예원 씨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며 행복을 찾는다"고 말했다.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 대부분의 사람은 일상의 피로 속에서 위로의 한 마디를 갈구한다. 하지만 그는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삶에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럴 때 시를 읽었다고 한다. 시 속 화자는 다른 상황에 놓여있을지라도 그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는 삶이 가진 소중한 가치를 암시한다. “당신이 오늘은 꽃이에요”라는 제목에는 “독자들이 책의 진짜 주인공”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김씨는 글로써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달하고자 노력했다. 김예원씨는 “오늘도 오늘을 살지만 내일도 오늘을 살아간다”며 “한 사람이 하는 작은 일이 서로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예원 작가는 “독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책을 출판했을 때까지만 해도 향후 집필 계획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역으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좋은 글감이 모이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찾아가겠다”며 향후 계획을 밝혔다. 글, 사진/ 오규진 기자 alex684@hanyang.ac.kr

2020-02 04

[학생]"경험으로 다지는 나의 길, 나의 미래" - 현장실습 우수성과 학생 인터뷰

나날이 치열해지는 취업 시장.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특별한 스펙으로 승부를 볼 필요가 있다. 여기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통한 실무경험을 녹여 자신만의 특별한 스토리를 만들어낸 주인공들이 있다. 이영호(전자공학부 13), 김현서(산업경영공학과 14) 학우는 주식회사 효성 계열사인 효성중공업 연구소에서 Best Internship Award를, 류태영(해양융합공학과 15) 학우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표창장을 수상하며 장기현장실습 기간 동안의 우수상 성과를 인정받았다. 실무 경험과 수상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한 큰 확신을 가지게 된 세 학우를 직접 만나보았다. Q1. 현장실습을 하신 기업에서 우수성과를 인정받으셨어요. 소감 부탁드립니다. 이영호(전자공학부 13): 수상에 대한 욕심과 기대가 없었어요. 저보다 더 고생한 분들이 많은데 저에게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김현서(산업경영공학과 14): 수상을 하게 될 줄 상상도 못했어요. 초반에 적응이 어려워서 걱정했는데 끝까지 노력한 부분에서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류태영(해양융합공학과 15): 현장실습을 먼저 제안해 주셨던 신성원 교수님 덕분인 것 같습니다. 좋은 상을 받아서 기쁘지만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네요. Q2. 현장실습을 결정하게 된 계기와 각 기업을 선택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이영호 : 4학년이 되고 취업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다가 기업 입장에서 볼 때 저에게 특별한 스펙이나 스토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입사 전에 실무 경험을 쌓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고 관심 있던 직무에 현장실습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관심이 있던 전력공학 분야가 효성중공업연구소와 제일 가까웠습니다. 김현서 : 학과 동기 중에 이미 효성중공업연구소에서 현장실습을 한 친구가 있었어요. 이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실제로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구가 응원을 아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서류와 면접에 대한 팁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류태영 : 교수님의 추천으로 현장실습을 결심했습니다. 농어촌공사 외에 다른 기업들도 있었지만 이곳에서의 일이 가장 잘 맞다고 판단했습니다. 관심이 큰 과목과 가까운 분야이기도하고 실험이 주가 되는 능동적인 업무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제 성격과도 아주 잘 맞았습니다. 류태영 학우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표창장을 수상했다. Q3. 속해있던 부서와 주로 맡았던 업무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이영호 : 효성중공업연구소의 DC grid팀에 속해있었습니다. 미래 중공업 시장에서 상품화시킬 수 있는 가치를 연구하고 저희 기업이 이러한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증명을 하는 부서입니다. 여러 대학교의 연구실뿐만 아니라 타 기업들과 협력하기도 했어요. 학부에서는 소프트웨어 툴을 이용하여 간단하게 모의로 동작 여부 정도를 확인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품 제작과 재고 조사까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하드웨어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 부서에 원래 관심이 있었기에 뜻깊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김현서 : 효성중공업연구소의 기술경영팀에 속해있었습니다. 연구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연구과제인데, 이를 관리하고 기획하는 역할을 하는 부서입니다. 과제들의 진행사항을 파악, 점검하고 사전 조사를 진행할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을 컨택하고 대학교들과 연계하여 연구 과제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거의 연구소의 중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효성 기업만의 시스템을 통해 연구 작업을 관리합니다. 류태영 : 농어촌공사는 동양에서 가장 큰 실험실을 보유하고 있어요. 센터에서 했던 대표적인 사업이 새만금 사업인데 이러한 큰 규모의 실험을 진행하였습니다. 수리모형을 의뢰 받은 후 모의 실험을 진행했어요. 사수 분께서 실험 방법을 알려주시면 그에 따라 실험을 진행하고 그 결과 값을 박사님께 전달했습니다. 결과 분석과 수치 분석 같은 업무는 박사님께서 맡으시고 학생들은 테크니션(Technician)분과 함께 실험을 진행합니다. Q4. 현장실습을 통해 배운 점은 무엇일까요. 이영호 : 나이차가 많은 상사 분들과 오래 지내다보니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기업에서 어떤 식으로 업무가 처리되는지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해보는 일이기에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이럴 때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올바른지 배울 수 있었어요. 기업에서 일할 때 학부에서의 전공 지식이 배경지식이 될 수 있지만 초반에는 생각보다 능동적인 업무가 많아서 어려웠어요. 그래도 적응을 하고 나니 적성에 맞기도 하고 제품을 테스트 하는 과정에서 은근한 재미도 느꼈어요. 연구실이라고 해서 테스트만 하는 게 아니라 타 기업들과 회의하는 등 비즈니스적인 업무가 많아서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김현서 : 대인관계에 있어 많이 배웠습니다. 부서 내에서 오랜 기간 근무를 해야 하기에 팀원에게 먼저 다가가서 도와드릴 것을 묻고, 도움도 청하며 말을 많이 건네면서 다가갔어요. 엑셀, 파워포인트 등을 많이 다뤄보면서 생산성도 늘어나고 실무 능력도 향상된 것 같아요. 초반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작업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적응을 마친 후에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하려고 노력했어요. 먼저 프로젝트를 제안도 하고 말이죠. 실제로 그것이 잘 되었기 때문에 상을 받은 것 같기도 해요. 류태영 : 자신이 진로를 명확히 세웠다면 그쪽 관련 기업에서 맛보기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취업을 하고난 후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학교에서의 교육이 아닌 실제 전문가들로부터 전문적인 지식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게 경쟁자들과의 차별성을 만들어주었어요. 어쩌면 현장실습이 사회생활에 대한 체험일 수도 있어요.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딜 가던 스스로 열심히 노력한다면 도와주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죠. 이런 사람이 생기면 힘들 때 의지하고 서로 도울 수 있는 것 같아요. Q5. 현장실습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과 팁 부탁드립니다. 이영호 : 생각보다 학생들이 현장실습 지원을 많이 망설이고 있어요. 단기 현장실습도 있으니 장기가 부담스러운 학생들도 많이 고려해보면 좋겠어요. 현재 취업 시간의 상황을 잘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현장실습에서의 경험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진로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값진 경험이 될 수 있어요. 그리고 서류전형에서 랩실에서 대학생 학부 인턴을 한 경험을 기재하고 면접에서 조직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을 강조한 점이 큰 어필이 된 것 같아요. 김현서 : 저희 학교 현장실습 프로그램이 매우 잘 구축되있고 센터 건물도 있어요. 센터를 직접 찾아가 보는 것도 좋습니다. 상담을 할 수도 있고 기업과 관련된 자료도 얻을 수 있어요. 주변에 현장실습을 경험한 친구가 있다면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해요.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 필요성을 느끼고 기업에서 현장 근무를 경험해보고 싶을 때 지원하기를 권장 드립니다. 그리고 서류에서 학부에 재학하면서 교수님을 도와 연구했던 경험을 알리며 관심 분야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고 면접에서는 어디에서든 잘 적응할 수 있다는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류태영 : 현장실습을 추천해주신 교수님께서 성적보다 중요한 것이 ‘잔꾀를 부리지 않고 열심히 하는 태도라고 강조하셨어요. 그리고 현장실습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찾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장실습을 준비하면서 재학 중인 학과가 기업과 관련된 분야인 만큼 이쪽에 관심이 많다는 부분을 최대한 어필했습니다. 농어촌 공사에서 하는 업무들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힘들기에 이 학과에 재학 중이라는 점이 충분한 메리트가 되었습니다. 면접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합격이 가능하니 일단 고민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추천합니다. Q5. 앞으로의 목표와 꿈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영호 : 원하는 기업, 원하는 직무에 입사하기 위해 준비 중입니다. 제 역량을 크게 발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제가 하는 일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서 : 현장경험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스토리가 많아졌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저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기업에서 근무하고 싶습니다. 류태영 : 전공을 100% 살려 취업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100% 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보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한양대학교 현장실습 프로그램인 ‘HY-WEB’에서는 전공과 관련된 산업현장에서의 경험과 진로탐색 기회를 제공한다. 실습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현장실습지원센터에서 등록된 정부기관, 기업, 연구소 및 비영리 단체 등 교육부 현장실습 요건에 부합하는 기관에서 장·단기의 실습과정을 거치게 된다. 명확한 진로 선택을 통한 전공 역량 강화와 다양한 경험을 통한 실무 능력의 향상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주로 홈페이지를 통해 1차로 서류를 제출하고 각 기업에서 2차로 면접을 진행한 후 최종 선발을 한다.

2020-01 31

[교수][백남의 교수저서] 산업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의 필란트로피

한국의 기부문화는 더디기는 하지만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기부선진국이 기부문화의 산업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길로 들어섰듯이 한국의 기부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기부산업을 추동하는 힘을 미리 찾고 다른 분야의 산업화에 따른 시행착오를 통해 배우고, 기부 메커니즘을 바로 이해하여 큰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한국형 가이드라인이 제시될 필요가 있다. '필란트로피 산업론'은 기부문화의 산업화를 대비하고, 그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됐다. 저자 비케이 안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비케이 안 교수는 2018년 8월 30일 '필란트로피 산업론'을 출간했다. 1.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현재 경영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비케이 안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생활하며 '국제공인모금전문가'가 되었고, 이후 한국으로 와서 강의를 맡고 있습니다. 2. 국제공인모금전문가라는 이력이 인상 깊었는데, 어떤 일을 하시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국제공인기금조성전문가는 기금을 조성한다는 점에서는 펀드매니저와 비슷합니다. 다만, 일반 펀드매니저와의 차이는 필란트로피와 관련한 재원을 조성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재원은 돈, 시간, 재능, 정보, 네트워크 등 다양한 리소스들을 포함합니다. 3. 한국의 기부문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의 기부산업은 미국과 비교했을 때 기반구조(infrastructure)가 약합니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이영학 사건' 이후 한국의 기부 액수가 추락했습니다. 한국 기부산업이 한파를 겪고 있다고 했는데, 이런 단계를 넘어 빙하기에 도달한 것이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한국의 기부문화가 산업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기부문화가 산업화된다면, 그런 사건이 있어도 기부문화가 존속할 수 있습니다. 큰 사과 상자 안에 있는 하나의 썩은 과일 정도로 취급할 수 있게 됩니다. 상자 안에 있는 과일 한 개가 썩었다고 해서 상자 자체를 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4. 기사로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 교수님의 저서 <필란트로피 산업론>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려요. ▲ 『필란트로피 산업론』 비케이 안 / 사곰(한양대학교 출판부) / 480쪽 앞에서 말했듯이 한국의 기부문화는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이 책의 이름인 <필란트로피 산업론>도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것입니다. 산업화하자는 것이 상업적으로 이용하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기부문화로써 끝내지 말고 산업화하는 것이 탄탄한 기금조성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필란트로피 관련 산업이 12조 규모 정도 됩니다. GDP 대비 적은 편이죠. 그러나, 파생산업까지 하면 100조 정도의 부가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필란트로피를 산업화하면 고용인구 증가 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전체 고용인구의 12%가 필란트로피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그보다 종사자의 규모가 훨씬 작습니다. 필란트로피의 산업화는 지금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러려면 산업화된 기부문화가 가져다줄 장단점에 대한 분석과 대비가 필요합니다. 이 책에서는 기부문화의 산업화에 따른 한국형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5. 책에서도 언급된 '필란트로피'라는 단어가 학생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필란트로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비케이 안 교수는 "리더는 공익을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며 필란트로피를 실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필란트로피'는 단순히 남을 돕는 행위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전 과정을 뜻합니다. 필란트로피는 네 가지의 축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Giving', 주는 것입니다. 타인에게 돈을 기부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두 번째는 'Joining', 사회적 문제에 함께 고민해달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Serving', 사회적 단체에서 일하는 것,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Asking'이 바로 기금을 달라고 요청하는 행위입니다. 이 네 가지의 축이 필란트로피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한 필란트로피의 실현은 단순히 돈을 기부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의 사례처럼, 돈을 모으고, 실질적으로 단체에서 활동하고, 함께 고민하고, 기금을 요청하는 전 과정이 필란트로피의 실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6. 필란트로피 네 가지의 축 중에서 마지막 기금 요청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기금을 주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달라고 요청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기금을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타인을 위해 돈을 달라고 설득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왕이나 종교지도자가 이러한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일반인들도 이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기금을 달라고 요청할 때는 '경청'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 말을 많이 하며 기금을 요청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사람의 말을 잘 듣고, 마음을 움직여서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7. 교수님의 칼럼에서, 시대별로 기부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현시대에서 가장 적절하고 바람직한 기부였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학문적으로는 주는 사람도 모르고, 받는 사람도 모르는 기부가 가장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부문화가 산업화 될 수록 주는 사람이 누군지, 받는 사람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것은 쉽지 않겠죠. 따라서 현대에서는 돈만 기부하고 끝나는 것보다, 필란트로피의 네 가지 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기부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도 좋은 예입니다. 기부도 하고, 이벤트에 참여하며, 타인의 참여까지 유도하며 요청까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기부였다고 생각합니다. 8. 마지막으로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미국 오바마 전대통령은 25세에 로스쿨을 졸업하고 25만불을 주는 맨허튼 로펌으로부터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대형 로펌 자리를 거절하고 시카고로 갔습니다. 시카고에서 모금가로 일하며 흑인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처럼 리더는 공익을 위해 자신에게 불리한 선택을 하며 필란트로피를 실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양대학교 학생들도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능을 투자하는 리더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본 내용은 2020. 1. 31 백남학술정보관 공식 블로그에 게시된 글입니다. ▷ 블로그 [교수저서] 코너 바로가기 ▷ 원글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hyulibrary/221791109562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김동립 교수, 기부는 후배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2019년 겨울호)

▲ 김동립(기계공학 97) 기계공학부 교수 기부는 후배에 대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김동립(기계공학 97) 기계공학부 교수 기계공학부의 독립건물이 될 기계관 설립을 위해 기계공학부 김동립 교수도 마음을 보탰다. 김동립 교수는 기계관 건립기금으로 지난 해 9월 1억 원의 기부금을 약정하면서 캠페인에 동참했다. 한양대가 있었기에 현재의 자신이 있었다고 생각하는 김동립 교수는 자신이 받은 혜택과 사랑을 후배들에게 돌려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기부 는 더할 나위 없이 큰 만족감을 준 선택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저는 한양대로부터 받은 자부심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Q1. 김동립 교수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기계관 건립기금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기계관 건립을 위한 활동은 얼마만큼 진행이 되었나요? A1. 많은 동문분들이 건립기금 캠페인에 참여해주셔서 기계관은 현재 설계 진행 중입니다. 기계공학을 선도하는 교육과 연구의 메카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 기계공학부의 바람입니다. 동문회에서 기계공학부에 맞는 공간설계를 위한 큰틀은 정해졌고 현재 세부적인 사안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Q2. 교수님께서 캠페인에 참여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어떻게 이런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하게 되셨는지요? A2. 지난 해 한양대가 4차 산업혁명 혁신선도대학으로 지정되고 제가 단장으로 활동하면서 융합지식에 대한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지금은 오픈된 문제를 여러 가지 지식으로 해결하는 PBL(Problem-Based Learning)과 융합 교육이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모여서 토의하고 협업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해외 유수의 대학들도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식의 연구와 교육을 해나가는 추세입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에도 그런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러던 중에 동문회에서 기계관 건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기부를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Q3. 학생들을 가르치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기계관 건립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컸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기대가 되시나요? A3. 지난 해 2월 종료된 기계공학부 특성화사업이 있습니다. 그때 설계교육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었는데 학생들이 좋아했습니다. 뭔가 만들고 고민하는 공간이 부족했던 차에 생겨서 지금도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계공학부 친구들은 수업을 듣고 바로 집이나 도서관을 가는 게 아니라 학생들끼리 자발적으로 모여서 프로젝트를 해내기도 합니다. 저에게 찾아와 지도를 해달라고 먼저 제안을 하기도 하고요. 그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기계공학부 학생들은 실체가 있는 것을 만들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져야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배출할 수 있습니다. 기계관이 그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합니다. Q4. 한양대 기계공학부를 졸업한 동문이신데, 재학 당시 학교로부터 받은 혜택이나 기억에 남는 도움이 있으셨나요? A4. 2005년도에 학부 졸업을 한 뒤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유학을 했습니다. 하루는 상담을 해주는 지도교수인 아카데미 어드바이저가 저와 상담 중에 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습니다. 그러더니 “내 기억에 남는 우수한 학생 중 하나가 한양대 출신이었다”며 “너는 한양대를 나왔으니 앞으로 잘 할 것이다.”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격려가 유학 시절 내내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스탠포드대학에서 잘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제가 학부 때 잘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성장에는 한양대라는 기둥이 있었습니다. 자부심과 자신감을 심어준 한양대에 언젠가 제가 받은 도움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하고 있었습니다. Q5. 동문회 장학재단의 간사로도 활동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을 보면서도 기부에 대한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A5. 장학재단 간사를 맡으면서 어려운 친구들의 사연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밤에 세차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가 장학금을 받으면서 “이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했을 때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후배들을 보면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그래서 교수가 되고 얼마 안되어 월 2만 원씩 100만 원 정도의 금액을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적은 금액이었지만 우리 후배들을 위해 쓰일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소액을 썼는데도 마음이 커지는 느낌이었습니다. Q6. 기부도 여러 선택 중 하나입니다. 기부를 선택하신 뒤 현재 어떤 마음이신지 궁금합니다. A6. 저에게 기부는 그 자체로 뿌듯한 선택이었습니다. 후배들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돌려줄 수 있다는 만족감이 저를 마음 편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한양대로부터 받은 자부심과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기부는 금액의 크기를 떠나서 시작하는 것 자체가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김장순 동문, 늘 생각해온 나눔이 후배들에게 빛이 되길 바라며 (2019년 겨울호)

▲ 김장순(국어국문학 79) 지아이엠시스템 대표 늘 생각해온 나눔, 후배들에게 빛이 되길 김장순(국어국문학 79) 지아이엠시스템 대표 김장순 대표는 1984년 제1기 교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2년 간 유학생활을 했다. 학비가 절실했던 시기에 한양대에서 받은 장학금은 학업을 이어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다. 그때 받은 도움을 내내 잊지 않았던 그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세 번에 걸쳐 국어국문학과에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했다. 앞으로도 힘들게 학업을 해나가는 후배들에게 조그만 빛이라도 되어주고 싶다는 김장순 대표와 마음 훈훈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 국어학을 전공하는 훌륭한 후배들이 많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Q1. 국어국문학과에 총 1억 원의 장학금을 기부하셨습니다. 학과를 위해 이 같은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가 무엇인지요? A1. 저는 11남매 가운데 막내인데, 저희 집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학비를 책임져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대학원도 장학조교 생활을 하면서 학비를 벌어서 다녔는데, 마침 교비유학생이라는 제도가 생겨서 신청을 했습니다. 다행히 성적이 좋아서 첫 교비유학생으로 뽑힐 수 있었습니다. 한양대는 국내에서 최초로 교비유학생을 모집한 학교입니다. 그 장학금이 없었다면 유학도 어려웠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한양대에서 받은 도움을 언젠가 돌려줘야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기왕이면 국어국문학과 후배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고요. Q2. 대표님의 아버님께서는 조선어학회 사전편찬위원이자 언어학자인 무돌 김선기 선생이신데요. 1992년에는 한양대에 장서 5천여 권을 기증하시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후배 사랑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A2. 대학원을 졸업한 후 전공과는 다른 분야인 LG화학에 입사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지만, 당시 결혼도 한 상태였고 아이도 키워야 하는 가장의 입장에서 어려운 면이 있었죠. 저의 선택에 후회는 없지만 국어국문학과라는 전공이 직업으로 이어 나가는 데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특히 언어학은 더욱 그렇고요. 한양대 중앙도서관에 아버지 책을 기부해 ‘무돌문고’라고 별도의 서고를 만든 것도 우리나라의 국어학발전을 위함과 동시에 한양대 후배들이 언어학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위 하는 바람에서였습니다. Q3. 졸업하시고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학교와 후배들에 대한 관심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간 한양대와는 어떻게 인연을 유지해 오셨는지요? A3. 국문과 교수님들 가운데 정민 교수와 이도흠 교수가 79학번 동기라 정기적으로 만나는 벗입니다. 제 아내 역시 79학번 동기고요. 만나서 학교 이야기를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양대로 뭉친 인연들이기 때문에 학교에 대한 마음도 각별할 수밖에 없지요. Q4. 국어국문학과의 여러 학생들이 대표님이 기부하신 장학금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혹시 발전기금을 기부하시면서 장학금이 어떤 학생에게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으셨을까요? A4. 지난 2019년 12월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과 간담회 자리가 있었습니다. 장학생 여덟 명을 만났는데, 그 가운데 몸이 불편해서 어머니가 등하교를 시킨다는 학생이 기억이 납니다. 제 기부가 학생의 노력과 어머님의 수고에 조금이라도 힘이 된다면 참 좋은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언어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장학금의 기회가 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현대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 대부분이고 언어학을 하는 친구는 점점 줄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Q5. 대표님께서 한양대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데 영향을 주신 분이 있을까요? A5. 무돌문고를 만들 때 故 이종은 교수님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종은 교수님은 제 은사이시자, 저희 아버지의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2007년 아버님의 탄신 100주년 기념식도 아버님이 몸 담으셨던 서울대나 연세대가 아닌 이곳 한양대 백남학술정보관에서 개최했습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국어국문학과에서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을 심도 있는 언어학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 깊숙이 박혀 있습니다. Q6. 대표님에게 기부란 어떤 의미일까요? 그리고 앞으로 기부에 대해 계획하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A6. 살아가면서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느낀 순간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기부는 평생을 살며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양대에 기부를 하기 전에도 다니는 교회에 계속 기부를 해왔고요. 회사를 운영하면서 지난 3년간 회사 경상이익의 10%를 무조건 기부하는 것으로 스스로 약속했었고, 결국 실천했습니다. 앞으로도 회사의 이익을 꾸준히 상승시켜 더욱 많은 기부를 하는 것이 제 꿈이자 소망입니다.

2020-01 23

[동문][동행한대] 故 정순애 동문, 한양에 대한 사랑을 기부로 새기다. (2019년 겨울호)

▲ 故 정순애 동문 (간호학 74) 한양에 대한 사랑, 기부로 깊이 새기다 故 정순애 (간호학 74)동문 2019년 6월 13일, 故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한양대학교와 한양대학교병원에 각각 2억 원의 발전기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1978년부터 2015년 퇴직할 때까지 37년 동안 한양대학교병원에 몸 담았던 故 정순애 간호사는 암 투병 말기에 자신의 유산이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양대 간호학과에서 함께 공 부하고, 많은 시간을 한양대병원에서 함께 근무한 최정순(간호학 73) 동문과 박경복(간호 학 73) 동문을 만나 故 정순애 간호사의 한양대와 한양대병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성실하고 반듯하게 일했던 간호사 시절 故 정순애 동문은 1974년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후 졸업과 함께 바로 한양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대의 시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0여 년을 한양대와 함께 지내온 셈이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살뜰하게 살피던 효심은 간호사라는 직업적 자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최정순 동문은 아직도 기억한다.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정말 성실했어요. 옆에서도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근면하게 일했죠.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어요. 자기 자리를 떠난 적이 없을 만큼 반듯하게 일하던 사람이라 어디가 아프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2011년에 유방암이 발병하자 故 정순애 동문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고 1년 만에 복직을 했다. 동기들도 차츰 퇴직을 준비하던 시기라, 이때 같이 그만두고 쉬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도 본인이 거부했다. 자신은 병원에서 아직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방암 말기였으니까 치료는 했다고 하지만 몸 상태가 예전 같을 수가 없죠. 걱정이 되어서 저희가 퇴직을 권유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그만큼 한양대병원과 환자들에 대한 소명의식이 확고했어요.” 2015년 2월 퇴직을 하고 난 뒤, 故 정순애 동문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전에 모아온 재산을 정리하면서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한 것은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고 가장 자신답게 살아온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밴 검소함과 후배에 대한 지극한 사랑 故 정순애 동문은 외투 한 벌로 겨울을 날 정도로 평소 검소하게 생활해왔다. 박경복 동문은 한 번도 고인이 허투루 돈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부금을 결심할 때 모아둔 재산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병원과 집만 오가는 생활을 했어요. 그래도 미혼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그렇게 큰 금액을 모아뒀을 지는 몰랐어요. 저희도 나중에 알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상으로 참 착실하게 살았구나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간호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성실한 태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환자를 대할 때 차등을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이런 바른 모습은 후배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유독 따르는 후배가 많았던 것은 사람을 챙기는 것에도 마음을 잘 썼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에게도 깍듯했지만 후배들에게 마음을 많이 썼어요. 후배들이 뭐가 부족하고 뭐가 필요한지를 잘 알아챌 정도로 세심하게 살폈어요. 선배로서 자신이 뭘 도와줘야 하는지를 제때제때 아는 선배였죠. 그래서 후배들과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후배와 환자를 향한 사랑의 실천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은 故 정순애 동문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은 천직이었고, 한양대병원이 집과 같은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을 들어왔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처럼 다른 데 한 눈 파는 일 없이 수업을 들었어요. 졸업하자마자 다른 데를 볼 것도 없이 한양대병원으로 취업을 했고요. 이런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끼리 서로 애착도 강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죠. 고인도 한양대병원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자주 말했어요.”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기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옆에 있었던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에게 故 정순애 동문은 후배와 병원을 위해 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전했다. 한양대에는 간호학과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한양대병원에는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 건립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자신의 기부금이 후배들과 환자들을 위해 쓰이길 원했는데 그 뜻이 잘 전달되어 저희로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故 정순애 동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한양대에서는 현재 한창 공사 중인 간호학부 미래교육관에 ‘정순애 홀’을 조성할 예정이다. 평생 사랑을 실천해온 故 정순애 동문은 앞으로도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2020-01 13 중요기사

[학생]김소연 학생, 크라우드 펀딩으로 <유럽, 교환학생 : 맥주와 홍차사이> 출판

김소연(국제학부 4) 씨는 홍도원(고려대 4) 씨와 함께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 <유럽, 교환학생 : 맥주와 홍차사이>를 출간했다. <유럽, 교환학생 : 맥주와 홍차사이>는 유럽지역의 교환학생 준비부터 현지 생활까지의 정보를 담고 있다. 책은 영국과 독일의 생활정보와 유럽 여행 정보 또한 수록하고 있어 한달살이, 단기 체류를 생각 중인 사람에게도 유용하다. 검색 엔진에 ‘교환학생’을 입력하면 신청 절차부터 준비물까지 방대한 양의 조언들이 쏟아진다. 김 씨는 흩뿌려진 정보들을 누군가 정리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필을 결심했다. 김 씨에게 지난 2018년 가을 영국 교환학생은 첫 해외 경험이었다. 그는 단순한 물가 정보, 출국 준비절차 등이 아닌 현지의 문화상과 생활상이 궁금했다. 김 씨는 “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들조차 교환학생 준비과정에 대해서는 많이 올리지만 출국 이후에는 게시가 뜸했다”며 외국 생활에 대해 느낀 막연함을 전했다. ▲김소연(국제학부 4) 씨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영국과 독일의 교환학생 정보를 담은 책을 출판했다. 펀딩은 목표금액의 3배를 달성했다. 김 씨는 교환학생 출발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김 씨가 느낀 어려움과 알게 된 사실들이 실시간으로 기록돼 책에 세밀함이 더해졌다. 그는 교환학생 기간 중 여행을 다니며 다른 유럽 지역의 정보들도 수집했다. 김 씨는 “‘대형마트가 근처 없을 때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법’ 등 영국과 독일이라면 지역과 관계없이 유용한 내용을 담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지난해 9월 초고를 완성했다. 이듬달 디자이너와의 계약이 이어졌다. 김 씨는 전자책(E-Book)만 출간할 계획이었지만 1인 출판업을 겸하던 디자이너의 추천으로 실물책 발행을 결정했다. 최소 인쇄 부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실물책 인쇄에는 많은 비용과 위험부담이 따른다. 김 씨는 “이윤을 떠나 인쇄비용만 보전하면 책을 찍자는 생각으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유럽, 교환학생 : 맥주와 홍차사이>는 2판 수정을 거치고 있다. 추가적인 실물책 판매와 전자책(E-Book) 출간이 알라딘을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김소연 씨 제공) 실물책 출간은 판매, 배송관리와 마케팅 등 단순히 글을 쓰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크라우드 펀딩 리워드를 위한 굿즈(goods·상품) 결정에도 많은 고민이 따랐다. 김 씨와 책의 공동 저자는 유럽 생활에 도움이 되는 동전 지갑, 장바구니 등을 계획했다가 주문 제작의 최소수량 등을 고려해 컵과 엽서로 결정했다. 크라우드 펀딩의 특성상 사업자로서 배송업체와 계약하는 것이 아닌 기획자가 직접 포장하고 우편 발송하므로 큰 배송비 부담과 배송추적에 어려움이 있다. 김 씨는 “배송과정 중 유실된 책들이 있지만 찾을 수 없어 다시 보낸 경우가 꽤 있다”고 전했다. 책을 받아본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필요 없는 짐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됐다' 등 후기들이 잇따랐다. 펀딩 단계에서부터 목표금액을 하루 만에 달성하는 쾌거와 함께 마감일 기준 309%의 금액에 도달했다. 김 씨는 “부모님, 도움을 준 주변의 많은 친구, 한양대학교 국제처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며 소감을 나눴다. 이어 그는 “마케팅을 좀 더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했다. 현재 <유럽, 교환학생 : 맥주와 홍차사이>는 초판 이후 수정을 거치고 있으며, 가까운 시일 내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 글/ 김현섭 기자 swiken1@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20-01 13 중요기사

[학생]김지우 학생,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

김지우(영어영문학과 4) 씨가 한국 문학 신인 등용문인 2020년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김 씨는 작품 ‘길’(클릭 시 해당 작품으로 이동)을 통해 서울신문 희곡 부문에서 수상 영예를 안았다. 처음으로 완성한 희곡이자 첫 희곡 출품작이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쾌거를 이뤘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힘과 생생한 표현력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다. 작가로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김 씨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지우(영어영문학과 4) 씨는 희곡 작품 ‘길’을 통해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각 일간 신문사는 매년 1월 1일 신춘문예를 통해 새로운 작가의 작품을 선정한다. 한국에서 작가가 될 수 있는 정식 경로인 신춘문예는 역사와 권위를 가진 문예 행사다. 작가의 꿈을 안고 첫걸음을 디딘 김 씨는 신춘문예라는 큰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김 씨 자신도 놀랐다. 김 씨는 “처음으로 완성해 출품한 희곡이 당선된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앞으로 더 열심히 글을 써야 좋은 흐름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씨의 말에서 신인 작가의 겸손함과 포부를 동시에 볼 수 있었다. 작품 ‘길’은 멕시코 빈민촌에 살던 15세 소년 ‘미르’와 ‘이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화물 열차에 매달려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김 씨는 과거 시청했던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었다. 김 씨는 “과거에 어린아이들이 기차에 매달려 미국으로 불법 이민을 가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봤다”며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해맑은 표정으로 여행(이민)을 떠나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났다”고 전했다. ▲김 씨(오른쪽)가 2020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모습. (김지우 씨 제공) 상상은 삶의 원동력이다. 무료한 기차 안에서 미르와 이르는 많은 상상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또띠야(tortilla), 엄마와 할머니 등 두 주인공과 관련한 다양한 상상. 상상력은 아이들의 고된 삶을 이어가는 힘이 된다. 김 씨가 꼽은 최고의 장면도 상상에 대한 것이다. 김 씨는 “무뚝뚝하던 이르가 미노에게 한 번도 보지 못한 코요테와 늑대를 상상할 수 있도록 묘사해주는 장면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본래 뮤지컬 작가를 꿈꾸던 김 씨는 왜 뮤지컬이 아닌 희곡을 선택했을까? 김 씨는 “이번 작품은 공백과 정적이 많기를 바랐다”며 “이야기 특성상 음악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판단해 희곡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무대의 생생한 현장감을 좋아하기도 하고 지난해 11월에 수강한 극작 수업이 희곡에 도전한 계기가 됐습니다." 첫 작품에 첫 출품이었다. 고속도로 같은 김 씨의 신춘문예 당선 이면엔 큰 노력이 숨어있다. 창작 연합 동아리 창단, 외부에서 진행한 한 달간의 희곡 수업 수강과 많은 공연 관람 등 여러 방면에서 최선을 다했다. 무대를 좋아한 김 씨는 전공 수업 안의 희곡 수업과 연극 관련 교양 수업 등 교내 수업을 통해서도 극 분야를 공부했다. 연극영화학과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대본 창작 수업을 듣기도 했다. ▲김 씨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다. 집필 과정에서 힘든 순간도 있었다. 김 씨는 “소재가 낯설고 극이 아리송해 갈피를 못 잡겠다는 독자들의 평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극의 아리송한 부분은 어느 정도 의도한 바가 있었기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흥미로운 시간도 많았다. 김 씨는 “독자들마다 다른 해석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며 “작품 내에 인물에 대한 힌트를 깔아놨는데 이를 알아챈 독자가 있는 것도 재밌었다”고 말했다. 김 씨의 본격적인 도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올해 작가 데뷔로 시작한 김 씨의 한 해는 문학으로 가득하다. 영어영문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다양한 공부를 이어갈 예정이다. 오는 3~4월 내지엔 작품 ‘길’이 신춘문예 단막극 전에 연극으로 올라가 무대 준비에도 힘쓸 예정이다. 노래를 좋아하는 만큼 최종적으론 본래 목표인 뮤지컬 작가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12 31

[직원][이달의직원] "나는 부족하지만, 타인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 공과대학 장현일 대리

지난 1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달의 직원’ 제도의 첫 선정자인 공과대학 장현일 대리를 만나 보았습니다. 2019년 11월 이달의 직원으로서, 그리고 11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모범적인 직원으로서 그의 생각과 다짐을 함께 나눕니다. Q. 이달의직원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합니다. 우선 자기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장현일 대리 서울캠퍼스 공과대학 RC 행정팀에 근무하고 있는 장현일입니다. 공과대학은 50여명의 직원이 소속되어 있고, 행정조직은 공과대학 행정팀과 소프트웨어 행정팀, WCD그룹, 공학대학원, 도시대학원, 부동산융합대학원, 부속센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저는 공과대학 행정팀 소속으로 행정업무와 실험교육을 겸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공과대학의 예산, 총무, 시설, 관재 등 행정업무를 하고 있으며, 학기중 주2~3일은 기계 기술사로서 Advanced Manufacturing Center(기계공작실)에서 기계공학부, 미래자동차공학과 학부생을 대상으로 기계제작공정 실험실습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Q. 2009년 입사해서 벌써 11년차이신데요, 그 동안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들을 해오셨나요. 저는 일반 행정업무와 겸해서 학부 실험교육이라는 직무의 특수성 때문에 임용 이후 줄곧 공과대학에서 근무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공과대학 조직이 통합과 분리를 반복하다보니 늘 적응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7월에도 분리되어있던 공대 행정조직이 통합되면서 새롭게 적응하고 있는 중인데요, 한 부서에 오래 있다 보니 업무적으로 히스토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래서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것은 개인에게는 단점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공과대학이 규모가 커서 관리해야 될 건물이 많은데, 행정팀에서 맡은 업무가 예산과 시설관련이라 교육환경개선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Q. 평소 업무를 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학교에 임용되기 전에는 엔지니어로 근무를 했었는데요, 임용 후에 수업과 행정업무를 하면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익숙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거나 그런 상황들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기 위해서 배우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정말 많은 동료 선생님들께서 가르쳐주시고 도와주신 덕분에 지금은 그나마 조직에 피해를 주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된 것 같습니다. Q. 이번 선정의 근거가 된 ‘칭찬 게시글’을 보셨죠?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처음 “이달의 직원” 제도를 시행한다는 공문을 봤을 때는 나와는 상관없는 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부끄럽지만, 누군가를 칭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고 당연히 제가 칭찬 받을 거란 생각도 못했는데, 동료로부터 처음 칭찬 게시글이 올라왔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놀랐습니다. 글 하나하나 읽으면서 과분한 칭찬에 부끄러우면서도 참 행복하였습니다. 다들 바쁜 와중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글을 쓰고, 댓글을 쓰고, 추천을 누른다는 것이 참 어려운데, 11년이란 시간동안 저를 지켜봐주신 교수님, 실험수업에 참여한 학생, 무엇보다 함께 일하며 많이 도와주시고 응원해주신 동료 직원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Q. 그동안 업무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다른 직원분들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짧은 사견으로 직원으로서 교수와 학생에게 행정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직원이 직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분은 놓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혼자서 해결 할 수 있는 업무보다는 여러 직원 또는 타 부서의 도움으로 완성되어지는 업무가 대부분인데요, 감히 제가 다른 직원 선생님들께 부탁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만, 직원들 간에도 나의 고객이라는 마음으로 도와주시고 배려해주시면 서로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칭찬 받는 직원이 많아질 수 있도록 저도 더 노력하겠습니다. Q. ‘칭찬 직원’으로서 앞으로의 각오나 업무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백범 김구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칭찬에 익숙해지면 비난에 마음이 흔들리고, 대접에 익숙해지면 푸대접에 마음이 상한다. 문제는 익숙해져서 길들여진 내 마음이다.” 칭찬과 대접에 익숙해지지 않도록, 그래서 마음이 흔들리고 상해서 조직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이 순간을 기억하며 초심을 잃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연관기사 : "대학직원 칭찬 1호" 공과대학 장현일 대리, '이달의 직원'에 선정 한양위키 : 이달의직원

2019-12 25

[교수][백남의 교수저서] 박찬승 교수, 우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1919'년을 주목하다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30년간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해온 역사학계의 거장이자, 지난 수십 년간 잘못 기념되던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4월 11일로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한 박찬승 교수는 100년 전인 1919년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1년"으로 손꼽는다. 바로 그해, 한국인은 스스로의 힘으로 몰락한 식민지의 백성에서 세계 최초로 헌법에 ‘민주공화정’을 명기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박 교수가 4월 8일 출간한 책 '1919'는 우리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그 시절의 풍경을 생생히 담아낸 역사 교양서다. ▲ 박찬승 교수는 4월 8일 '1919'를 출간했다. 1.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박찬승입니다. 현재 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소장직을 겸하고 있으며 한국 근대사, 주로 일제 시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 교수님의 이력 중, 임시정부수립기념일을 바로 잡는 데 이바지하셨다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기념일이 바뀌게 된 연유와 이와 관련된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책 <1919>에도 간단하게 써놓았는데요,임시의정원 회의록을 살펴보면 4월 11일에 회의를 진행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4월 11일이 임시정부 수립일이 되는 것이 맞습니다.그런데 당시 상해에 있던 일본 영사관 경찰에서 편찬한 <조선민족운동연감>이라는 책을 보면 4월 13일에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을 선포했다고 나와있습니다. 선포일을 중요시 여긴 학자들의 생각에 따라 4월 13일로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을 정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임시정부 자체 기록에는 4월 13일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저 역시 이에 의문을 가져왔고, 작년 여름에 자료를 보던 중 <조선민족운동연감>이 참고한 자료는 무엇일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임시정부가 나중에 편찬한 한일관계 사료집에 그 내용이 나와있었는데요, 사료집을 보면 안엔 4월 13일자에 13일 이후 여러 날의 일들이 기록되어 있었고, 23일에 임시의정원에서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이 성립되었다는 것을 널리 알리자는 것을 결의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일본영사관 경찰은 이를 ‘임시정부 성립을 선포했다’고 기록한 것이지요. 사료를 오독하고 잘못 쓴 것입니다. 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해당 내용을 신문에 투고하였습니다. 이후 학술토론회와 국무회의 등을 거쳐 올해부터 4월 11일로 기념일을 바로잡게 된 것입니다. 3.1운동 백 년이 되는 올해, 다행스럽게 고쳐지게 됐지만 그동안 역사학계가 치밀하게 검증하지 못하고 너무 게을렀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3. 1919년은 우리에게 꽤나 친숙한 해이지만, 당시 벌어진 일들을 이렇게 자세히 접할 기회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책을 쓰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기사로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 책 내용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 『1919』 박찬승 / 다산초당 / 412쪽 30년 전에, 제가 속해 있던 학회에서 3.1운동에 관한 책을 하나 냈었습니다. 이 때 좀 더 깊게 연구를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한 탓에 엄두가 안 나 미뤄두고 있었습니다.올해가 마침 3.1운동 백주년이 되는 해라 주변 학회, 연구소에서 3.1운동에 관해 연구한다는 이야기들이 들려왔지만 3.1운동 자체에 대해 자세한 정리를 하려는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저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30년만에 자료들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마침 작년이 연구년이라 만사 제쳐놓고 이 책에만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3.1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 천도교와 기독교 측의 준비과정, 3월 1일에 서울을 중심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운동이 전국적으로 어떻게 확산되어 갔는지와 임시정부 수립 과정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백미라면 3.1 운동의 준비과정을 날짜, 시간순으로 꼼꼼하게 정리한 점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3.1 운동과 관련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정보들을 새로이 밝히기도 했습니다. 첫번째로 독립선언문의 공약 3장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동안 이를 한용운이 썼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최남선이나 최린 등의 진술을 아무리 읽어봐도 한용운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왜 한용운이 썼단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찾아보니 그의 제자인 김법린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퍼진 것이었습니다. 독립선언문 공약 3장은 천도교 측의 최린이 최남선에게 의뢰해 작성한 것이었고 한용운은 3.1 운동 당일에 태화관에서 짧은 연설을 했을 뿐입니다. 또 하나는 독립선언서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설입니다. 내용은 같지만 신문관과 보성사 두 곳에서 인쇄를 했다는 것인데, 신문관 판본은 당시 활자가 아닐뿐더러 문법도 현대어 문법이라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살펴보니 신문관 판본은 1950년대에 어느 신문사에서 3.1운동 40주년을 기념해 찍은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3.1 운동을 연구했다는 전문 학자들도 선언서에 두 가지 판본이 있다고 주장해왔고 아직까지 정부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어 이 부분에 있어선 본격적으로 논문을 써 볼 생각입니다. 세번째는 3.1운동 당시 사망자 숫자 문제입니다. 그동안 교과서에서 3.1 운동 사망자 숫자를 약 7500명으로 표기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당시 총독부 경찰 당국의 기록 600~900명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7500명의 숫자는 박은식 선생이 상해 임시정부에 있을 때 한일관계 사료집을 바탕으로 추산한 숫자였고, 해외에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정보를 알 수 없어 잘못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사망한 숫자와 부상 이후 사망한 숫자를 합치면 약 천여 명 정도로 볼 수 있고, 천여 명도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라고 봅니다. 4. 교수님의 책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소 생소한 인물들과 구체적인 일화들이 제시되어 더욱 흥미를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책 속에서 일컬어지는 위대한 보통 사람들 중 학생들에게 소개하고픈 인물, 관련 일화가 있다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 박찬승 교수는 수십 년간 잘못 기념되던 임시정부 수립기념일을 4월 11일로 바로잡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제가 제일 이야기해주고 싶은 사람은 독립선언문을 찍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독립선언문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보성사의 사장을 맡고 있었던 이종일 선생은 이를 배포하는 책임까지 맡았습니다. 그리고 이종일 선생을 도운 김홍규는 보성사의 공장장으로서 인쇄를 책임지고 도맡아 했습니다. 또 이 선언서를 전국에 배포한 기독교, 천도교, 불교계의 청년들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국에 배포된 독립선언서는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선언서가 전달된 거의 모든 곳에선 봉기가 일어났습니다. 또 당시 서울 학생들의 공도 큰데, 선언서뿐만 아니라 조선독립신문 등 각종 신문들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배포하였습니다. 이는 3. 1 운동이 두 달 가량 지속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5. 최근 영화나 드라마 등 쉽고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역사 콘텐츠들이 다수 제작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선 미디어를 통해 근현대사를 습득하고 있는데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긍정적인 측면과 더불어 역사 왜곡 등의 우려도 낳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역사를 바로 알기 위해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그것 역시 역사를 배우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보다도 재미가 우선시되기 때문에 가공이 불가피하다는 것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실제 인물이 등장하는 경우에는 가급적 사실대로 써야 한다는 것에 유의해주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 왜곡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적어도 대학생들의 경우에는 미디어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직접 책을 읽어서 역사를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쓴 <1919> 책은 고등학생들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썼습니다. 물론 각주를 달아 전문가들도 참고하게 했지만, 가급적이면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6. 마지막으로 한양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나 조언 부탁드립니다. ▲ 박찬승 교수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현대에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 지 지침이 필요한데, 역사공부를 통해 그러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역사 공부를 하게 되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지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 속의 인물들이 그러한 지침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또 과거의 축적이 현재이고 현재가 이어져 미래가 되기 때문에 미래를 전망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는 윤리, 도덕, 가치관 등에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따라서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할지 어떤 지침이 필요한데, 우리는 역사 공부를 통해서 그러한 지침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본 내용은 2019. 12. 25 백남학술정보관 공식 블로그에 게시된 글입니다. ▷ 블로그 [교수저서] 코너 바로가기 ▷ 원글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hyulibrary/221749307706

2019-12 16 중요기사

[교수]유영만 교수, 88권 출판으로 지식의 씨앗 뿌리다

유영만 교육공학과 교수는 본인을 ‘지식 생태학자’라고 소개한다. 그의 목표는 우리 삶에 지식나무를 심어 지식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다. 꿈에 다가가기 위해 유 교수는 교수는 연사와 작가로 활동하며 지식의 씨앗을 뿌리는 중이다. ▲ 유영만 서울캠퍼스 교육공학과 교수는 지식 생태학자, 작가, 교수와 연사로 활동 중이다. 유 교수의 책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는 작품 연재 공간 브런치 에서 62만 조회 수를 기록한 화제작이다. 유 교수는 본인이 만났던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반성하고 성찰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유 교수는 "인간관계를 단지 사람의 만남이 아니라 삶과 삶의 만남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본인은 상대방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볼 시간을 준다. ▲브런치 62만 뷰의 화제작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왼쪽, 나무생각 제공)와 고두현 시인과 함께 집필한 <곡선으로 승부하라> (새로운 제안 제공) 자극적인 제목으로 인해 유 교수는 많은 악성 댓글을 받았다. 그는 아쉬움을 달래며 또 다른 저서 <곡선으로 승부하라>를 소개했다. 이 책은 최단 거리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직선’ 대신 돌아가더라도 여정을 즐길 수 있는 ‘곡선’으로 바꾼다면 여유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유 교수는 “일상 속에 은유적 표현은 사라지고 직설적인 표현만 남고 있다”며 “속도, 효율, 획일화가 우리의 삶을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독자의 공감을 얻는 글을 쓰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체험 없는 개념은 관념이고, 개념 없는 체험은 위험하다’라는 본인의 좌우명처럼 그는 공부는 정신노동이 아닌 육체노동이라고 말한다.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톤을 하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오른 것도 제 몸의 한계를 실험하고 공부하기 위해서였죠” 그는 "몸으로 얻은 경험만큼 책을 통해 얻은 간접 경험도 중요하다"고 전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체인지(體仁知)> : 체험하고 공감하며 실천하는 진짜 지성의 탄생 (위너스북 제공),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 : 파란만장한 삶이 남긴 한 문장의 위로(비전코리아 제공)와 유 교수의 붓글씨 엽서(유영만 교수 제공) 책 <체인지(體仁知)>는 몸으로 겪으면서 얻은 깨달음을 통해 가슴으로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지식을 의미한다. 그는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따뜻한 지식인이 세상을 체인지(Change)할 수 있다고 말한다. 체인지를 주제로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한 강연 (클릭 시 강연 동영상으로 이동)은 비록 8년 전 강의지만 지금도 의미가 통한다. 유 교수는 지난 11월 출판한 88권째 책인 <유영만의 파란 문장 엽서집>에서도 “엽서에 적은 문장들은 머리로 쓴 게 아니라 몸으로 남기는 얼룩이자 무늬"라고 말했다. 유 교수는 한양대에서 재직하는 동안 100권의 책을 쓰는 것이 목표다. 이번 겨울방학 동안 2권의 책을 집필할 계획이다. 한 권은 책을 쓰기 위한 기술적인 방법 대신 자신의 삶을 책에 녹여내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다른 한권은 어휘력에 초점을 맞췄다. 유 교수는 “모든 생각은 언어를 매개로 한다다”고 말하며 “그만큼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말의 가짓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유영만 교수는 한양인들에게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곳에서 경험을 쌓고 있으며, 어떤 책을 읽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유 교수는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라는 괴테의 말을 인용하며 방학 동안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길 권유했다. 글/ 윤석현 기자 aladin@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0deo@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