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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 24

[교수]정민 교수, 다산 정약용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다

'목민심서', '애민 의식', '청렴결백' 우리가 아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은 여기까지다. 다산 연구의 권위자 정민 서울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그 한계를 벗어났다. 정 교수는 정치가 다산, 지성인 다산, 사람으로서의 다산까지 다산 정약용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하고 색다른 시선으로 봤다. 정 교수에게 우리가 몰랐던 다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민 서울캠퍼스 국어국문학과 교수에게서 다산의 다양한 모습을 들을 수 있었다. 정민 교수가 말하는 다산 정 교수는 우리나라 다산 연구의 대가다. 지난 10년간 집필한 다산 관련 도서가 10권에 달한다. 지난 9월엔 1년 반 간의 한국일보 기획특집 <다산독본> 연재를 마쳤다. 연재에선 ‘정조', '천주교', '다산’ 세 키워드의 조화를 통해 다산의 다면적인 부분을 소개했다. 정 교수는 다산을 향해 상투적인 질문을 하지 않았다. 다산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고 새로운 답변을 얻고자 했다. ▲정민 교수의 저서 ‘파란’ 표지. 정 교수가 집필한 다산 정약용에 대한 저서 중 하나다. (천년의상상 제공) 새로운 시대를 꿈꾸던 청춘 다산은 조선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젊은 정치가였다. 조선 사회를 새롭게 재정비한 정조와 뜻이 맞았고 서구 문명을 품고 있는 천주교를 수용할 만큼 진취적이었다. 젊은 지성인으로서 나라의 발전을 위해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성향도 저돌적이어서 문제가 있을 때 회피하기보다는 정면 돌파를 택했다. 정 교수는 “다산은 손해를 보더라도 반드시 정공법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젊은 날 다산의 모습은 변화를 두려워하고 어려운 상황을 피하기에 급급한 요즘 청춘들에게 귀감이 된다. 시공간을 아우르는 지성인 다산은 조선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도 큰 영감을 주는 지식인이다. 공학, 철학과 문학 등 지식의 분야가 다채롭다. 특히 빅데이터와 집단 지성이 화두가 되는 정보화 사회에서 다산의 작업 방법은 놀랍다. 그는 이미 조선 시대부터 제자들과 함께 수많은 정보를 펼쳐 놓고 정리하는 집체 작업 방식을 사용했다. 오늘날 현대인이 활용했을 때에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외에도 중국과 서양 등에서 들어온 정보를 우리 실정에 맞게 매뉴얼화시킨 다산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정 교수는 이러한 다산을 ‘지식편집자’라고 칭했다. 실학자 다산의 활약 또한 뛰어났음을 의미한다. 다양한 지식 모델을 제시한 다산은 정보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준다. 사람으로서의 다산 완벽해 보이는 다산에게도 흠이 있다. 다산의 부부 금실은 그리 좋지 않았다. 유배 시절엔 소실을 두고 딸을 낳기도 했다. 지금껏 다산의 빛나는 업적들만 봐왔던 사람에겐 새로운 사실이다. 정 교수는 “한국은 위인전 문화가 발달해서 누구든지 완벽한 인물로 만들고 싶어 한다”며 “한 사람을 입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강점과 약점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민 교수는 “새로운 답을 얻기 위해선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다산 연구자 정민 교수 정 교수는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학자보단 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는 학자를 지향한다. 실제로 정 교수는 깊이 있는 다산 연구를 위해 여러 유적지를 방문하며 자료의 생동감을 느끼는 중이다. 그는 “현장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새로운 자료는 다산의 또 다른 이야기가 됐다”며 “예전에 봤던 자료들과 새로 발견한 자료 간의 퍼즐이 맞춰져 가는 게 흥미롭다”고 전했다. 정 교수는 “다산의 일생을 총합한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게 목표”라며 “다산의 위대한 작업, 학문 세계 등의 주제들도 글로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식 경영인으로서의 다산에 대한 모습도 연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한양인들에게 “질문을 바꿔야 대답을 바꿀 수 있다”며 “질문의 경로를 조금만 틀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고 조언을 남겼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0deo@hanyang.ac.kr

2019-11 10 중요기사

[동문]김민식 동문, ‘김민식’이라는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가다

'뉴 논스톱,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한 스타 PD',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등 많은 책을 집필한 베스트 셀러 작가', '두 달 만에 구독자 3만 명을 돌파한 유튜버 계의 신성' 김민식(자원공학과 87) 동문을 설명하는 말들이다. 김 동문은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실력을 펼치며 한양을 넘어 사회 전반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김 동문과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민식(자원공학과 87) 동문은 PD, 작가와 유튜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가장 최신작인 MBC 드라마 <이별이 떠났다> 이후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드라마 종영 후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년에 차기 드라마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양대학교 87학번 김민식 동문에게 한양대학교란 어떤 존재인가요?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땐 우울했습니다. 1지망이었던 산업공학과에 떨어지고 2순위였던 자원공학과에 합격했거든요. 자원공학과보다 산업공학과가 제 적성에 맞을 것 같았는데 원치 않는 과에 입학한 것이 참 아쉬웠습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학생 진로 특강에서 늘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은 대학 1지망 학과에 탈락한 것'이라고 말해요. 원치 않는 과에 진학했기 때문에 늘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 지에 대한 고민을 했습니다. 그 고민은 영업 사원, PD, 작가 등 다양한 직업에 도전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지금은 정말 행복합니다." 대학생 시절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대학생 때 연극을 많이 봤어요. 좋아하는 여학생이 연극 동아리원이었거든요. 처음엔 연극이 재미없었지만 그 아이와 잘돼보려고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결국엔 차였지만요. (하하) 근데 신기하게도 연극은 여전히 좋고 재밌더라고요. 연극을 좋아한 덕분에 PD 할 때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 사람의 취향은 제게 남아있습니다." ▲김 동문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연출자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첫 작품인 ‘뉴 논스톱’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공대 졸업 후 재밌는 일을 찾기 위해 많은 직업에 도전했어요. PD가 되기 전엔 영업사원으로 일했습니다. 방송계와 관련 없는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PD라는 직업에 확신이 없었어요. 재밌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뉴 논스톱’은 그랬던 제게 확신을 줬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백상예술대상 신인상도 받고 많은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연출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가요? "협업입니다. 본인이 가장 잘난 사람일 필요가 없어요.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제 역할입니다." ‘공짜로 즐기는 세상’ 블로그를 소개해주시고, 시작하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블로그를 통해 전달하고픈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은 제 삶, 책과 여행 등의 이야기를 담은 블로그입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쓰고자 블로그 운영을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제 글을 읽고 ‘세상은 공짜로 즐길 수 있구나!’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여러 가지 재밌는 일들을 할 수 있거든요.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예전부터 책을 너무 쓰고 싶어서 책에 들어갈 원고를 늘 작성했어요. 책을 쓰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며 노력했습니다. 열심을 다하다 보니 어느새 여러 권의 책을 쓴 작가가 되었네요." 지난 2018년 作 '매일 아침 써봤니?'부터 올해 출간한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까지 집필한 총 7권의 책들 중 한양대 학생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본인의 저서는 무엇인가요? "기초회화 책 한 권만 외워도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라는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 책에 제 30년 독학으로 습득한 영어 공부 노하우가 담겨있습니다.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책입니다. 또 제 대학생 시절을 담은 책이라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도 잘 와닿을 거라 생각해요." ▲김민식 동문의 저서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표지. 김 동문이 한양대 학생들에게 추천한 책이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유튜버 김민식의 주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제 채널명은 ‘꼬꼬독(꼬리에 꼬리를 무는 구독)’(클릭 시 해당 유튜브 채널로 이동)입니다. 주요 콘텐츠는 책입니다. 독서와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방송을 제작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유튜브 채널 운영의 재밌는 점이나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인가요? "유튜브 활동이 훨씬 재밌습니다. TV 프로그램에서 PD는 잘 보이지 않는 존재입니다. 보통 작가와 배우에 대한 피드백이 대부분이거든요. ‘꼬꼬독’이라는 채널은 달라요. 대본부터 출연, 심지어 시청자의 반응까지 모든 게 온전히 제 것이라 더 즐겁습니다. 시청자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유튜브의 매력 중 하나에요." 김민식 유튜버에게 ‘좋아요’와 ‘구독’이란? "‘좋아요’는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고, ‘구독’은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입니다. 단시간에 구독자가 는 것에 참 감사합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김 동문.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연출자, 더 나아가서는 언론인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뭐든지 즐기는 게 우선이에요. 콘텐츠 만드는 것 자체를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선배로서 한양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20대에게 가장 좋은 건 연애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많은 학생들이 연애보다 학업을 중요시하더라고요. 학업도 좋지만 20대엔 연애도 하면서 많은 추억을 쌓았으면 좋겠습니다." 김 동문의 전성기는 특정 시점이 아니다. 그의 전성기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다. 언제 어디서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닦아가는 모습. 어쩌면 그에게 있어 최고의 작품은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의 전성기는 앞으로 더 아름답게 빛날 것이다. 뉴스H 기자노트 정연 국문기자: 김 동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마치 맑은 종소리 같았다. 간결하지만 명쾌했다. 그래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모든 일을 즐기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김 동문의 모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 꿈과 비전을 위해,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오규진 영문기자: 롤-모델인 김민식 동문과의 만남은 큰 행운이자 선물이었다. 취재를 기획하고 기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김 동문이 가진 습관이다. 순간순간을 기록하고, 시간을 쪼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언제나 책과 함께하는 삶. 이를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글을 마친다. 이현선 사진기자: 김 동문이 입은 체크무늬 셔츠는 농부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미소도 잘 익은 벼가 가득한, 황금 들녘에서 행복해하는 농부와 닮은 듯하다. 친근한 인상의 그가 던진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지금을 즐기시나요?”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10 28

[교수][백남의 교수저서] 이상욱 교수, 과학적 상상력에 대한 통념을 완전히 깨다

이상욱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하고 석사학위까지 받았지만, 한양대학교에서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그는 과학기술을 인문학적·사회과학적 시각에서 연구하고, 그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의 저서인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역시 그가 한양대에서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한 '상상력과 과학기술'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이 교수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이상욱 교수는 1월 7일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를 출간했다. 1. 교수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02년도에 한양대학교에 부임하였고 현재 인문과학대학 철학과에서 과학철학, 기술철학 연구와 강의를 담당하고 있는 이상욱 교수입니다. 2. 물리학전공자에서 철학과 교수가 된 이력이 상당히 독특하신데요,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학문을 함께 공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전공이었던 물리학교수가 아닌 철학과 교수가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볼 땐 두 학문이 거리가 있어 보이겠지만 저는 이 두 학문이 크게 다르다고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예컨대 물리학은 자연과학 내에서 제일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며, 철학과 물리학 모두 기초학문에 속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 또한 관찰 전에 존재론적 질문을 하는 등 양쪽이 연결된 지점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과학 중에서도 기초적인 질문에 관심이 많아 학부 때 물리학을 전공했는데요, 이후 철학과 물리학 중 어떤 것을 본업으로 할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석사까지 물리학을 계속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석사 때는 독자적인 연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학문의 성격들을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었고, 제가 그 과정에서 얻은 결론은 물리학은 지금 너무나도 세분화 되어 있어서 물리학 박사를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 연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학문이 진행되는 방식에 있어서 물리학 교수가 철학을 같이 연구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거의 불가능하지만 그 반대, 즉 과학의 철학적 탐구는 가능했기 때문에 저는 일종의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 이상욱 / 휴머니스트 / 280쪽 3. 우리가 흔히 순간적인 상상력이 시초가 되었다고 생각해온 위인들의 이야기, 책에서 그 이면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교수님은 어떤 상상력의 과정을 거쳐 이 책을 쓰게 된 것인지, 기사로 책을 접하게 될 독자들을 위해 책 내용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학부시절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의 수업들을 골고루 들으며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연과학자들의 이론 개발에 대해 많은 오해(순간적인 상상력이나 창의력)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런 영감을 떠올릴 수 없는 사람들은 과학에 기여할 수 없다?’, ‘천재만 과학을 하는 거다?’하는 이러한 천재 담론들의 문제점은 자연과학자들이 이해하는 방향을 왜곡시키고 그 이후의 중요한 결정들을 잘못 내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학은 사회과학자들에 의해서 제도나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인문학자들에 의해 비판 받곤 합니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그러한 비판이 유효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팩트 차원에서 틀린 게 무엇이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밝히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휴머니스트에서 네이버 연재 시리즈를 제안했고, 그렇게 글을 쓰게 된 것이 바로 ‘과학은 이것을 상상력이라고 한다’입니다. 4. 책 내용 중 ‘수렴적 상상력’과 ‘발산적 상상력’에 대한 언급이 인상깊었는데요, 각각의 상상력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사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과학자들은 특정 패러다임에 관해 연구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 패러다임을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이 발산적 상상력이며, 이것이 없다면 과학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발산적 상상력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대부분의 연구시간동안 발산적 상상력보다 수렴적 상상력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기존 이론적 전통의 규제 조건을 만족하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바로 수렴적 상상력인데, 이것을 잘하는 능력이 실제 과학을 진보시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창의성에 대한 담론에서 번뜩이는 영감과 혁신적인 사고를 강조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 과학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며, 수렴적 상상력과 발산적 상상력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에서 언제, 어떤 상상력을 활용할 지 선택하는 것이 어려운데 이 같은 본질적 긴장의 상황에서 이를 잘 관리하는 사람이 과학적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이상욱 교수는 한양인들에게 "다른 학문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갖고 졸업하기를 권한다"고 말했다. 5. 최근 인기인 도서들을 보면 인문학과 과학의 융합을 비롯해 학문간 융합이 대세인 듯 합니다. 교내에서 관련 강의를 주도하고, 그 중심에 계신 분으로서 융합 연구에 대한 중요성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교수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기존의 연구(분과학문)는 관련학자들이 동의하는 패러다임 안에서 하는 연구이다 보니 대부분 어떠한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고, 그 결과의 수용 또한 상대적으로 쉬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융합연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각각의 학문에서 중요시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융합 연구가 중요할까요? 과학이나 기술의 역사를 보면 그 분야의 연구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융합 연구를 했습니다. 성공 확률은 낮지만 성공하면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킬 만큼 혁신적인 발전을 야기해왔다는 것입니다. 즉 융합 연구는 전체 연구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성공 확률도 낮은 학문이지만 그것이 야기하는 결과는 매우 혁신적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두가 융합 연구를 할 필욘 없겠지만, 적어도 융합 연구에 너그러운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6. 마지막으로 한양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나 조언 부탁드립니다. 대학은 사회에 나가기 전, 자신과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기입니다. 때문에 다른 학문의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할 기회를 많이 갖고 졸업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 강의를 듣는 학생들에게 ‘인류학적 경험’을 추천하곤 하는데, 다른 학과의 수업을 참관하면서 서로 다른 학문들이 어떤 걸 문제라 하고 답이라 하는지 그 문화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내용을 알아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즉 어떤 걸 강조하고 어떤 걸 질문하는지 이해함으로써 한양인들이 대학생활을 통해 보다 융복합적인 시각을 가졌으면 합니다. ▶ 본 내용은 2019 .10. 28 백남학술정보관 공식 블로그에 게시된 글입니다. ▷ 블로그 [교수저서] 코너 바로가기 ▷ 원글 바로가기 https://blog.naver.com/hyulibrary/221690722948

2019-10 25

[학생]환경서포터즈 출범 한달, 환경 동아리가 가야할 길을 고민하다

지난 9월 25 캠퍼스의 축제의 열기로 가득하던 그 시간. 본관 한켠에서는 축제의 분위기와는 다른 진지한 모습의 학생 조직이 탄생했다. 바로 '환경서포터즈'가 발대식을 갖고 출범을 한 것. 축제기간 동안 가슴에 'PLASTIC FREE CAMPUS'라고 적힌 티를 입고 텀블러를 나눠주며 환경운동을 진행하던 서포터즈 학생들의 한달은 바쁘게 흘러갔다. 출범 한달, 서포터즈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지난 9월 25일 환경서포터즈 발대식 ▲ 발대식에서 김우승 총장이 환경 서포터즈의 중요성과 역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 환경서포터즈 단원들은 발대식에서 환경 운동 관련 의견과 총장과 학생처에 전달했다. 1. 서포터즈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평소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사회혁신융합전공' 학생들이 모여서 시작된 것이 이렇게 공식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번 학기 '체인지메이커십' 수업을 듣던 학생 2명이 수업 관련하여 교내 환경 문제로 팀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때 수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쉬워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 나가자고 생각을 했고 주변 친구들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뜻을 같이 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더 의미있는 조직이 된 것 같습니다. 2. 환경 서포터즈의 존재 이유는 더 많은 학생들이 기부변화와 같은 환경 문제에 더 많이 공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생각으로 멈추지 않고 행동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것 같습니다. 환경 문제가 아무래도 거시적인 주제라 피부에 와닿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명씩이라도 '인식'을 바꾸고, 그로인해 '습관'이 바뀌면, 작은 '변화'들이 만들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의 프로젝트는 총학생회가 함께 교내 학생들의 일상 속 작은 것들 부터 돌아보는 캠페인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결국 학생들이 이 환경에 대한 주제 의식을 내면화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 서포터즈 학생들이 축제기간 플라스틱 프리 캠퍼스 캠페인을 진행하며 텀블러를 나눠주고 있다. ▲ 서포터즈 학생들이 직접 환경 행동 시위에 참여하여 의견을 나누고 있다. 3. 발대식 이후에 활동은 어떠했나 텀블러 세척기 홍보 활동을 우선 진행했습니다. 총학생회 홈페이지 등에서 학생들이 많이 공감해주고 호응해주기도 했습니다. 관련하여 카드뉴스 제작을 위해 미화원 분들을 인터뷰 했는데, 그때 교내의 환경 문제 실태를 좀 더 자세히 파악해볼 수 있었구요. 청년 기후단체인 빅웨이브와 연결되어 '기후변화' 관련 행사에도 참여하고 관련하여 청년 네트워크를 쌓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이렇게 공부했던 것들을 바탕으로 실제 학생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4.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사실 교내 첫 환경 동아리이다보니 처음에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어떻게 하면 양질의 프로젝트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하고, 관련 자료 조사와 회의를 정말 많이 했습니다. 저희가 이런 고민을 하다가 내린 결론은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아는 만큼 더 좋은 내용으로 환경 운동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고, 저희부터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배움에 먼저 많은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향후 2기가 만들어지고 지속적으로 체계적인 조직을 다져가는데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서포터즈 학생들은 먼저 많이 배워야 실천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자체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5. 한양 구성원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저희가 스터디를 하면 할 수록 느껴지는 부분은 한양의 구성원들이 이 문제를 단순히 캠페인 정도가 아닌 진짜 심각한 삶의 문제로 인식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인식이 절실합니다. 그리고 그런 인식을 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생활속에서 작은 습관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개인의 탄소발자국을 줄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기억해주길 원합니다. 비록 뻔한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 사람의 변화를 믿기에 작은 변화가 큰 변화로 이어지리라 기대합니다. 아직은 내딛은 첫발이 멀리 가진 못했지만, 진정성 있는 변화를 기대하며 공부부터 차근차근 하겠다는 학생들의 모습에서 한양이 진짜 친환경 캠퍼스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인다. 단장을 맡고 있는 김소희 학생은 "환경 문제에 대해 공감하고 열심히 알리고자 하는 친구들과 함께 해서 정말 행복하다"며, "앞으로 더 깊고 치열하게 공감하며 모범을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을 전했다. * 환경 서포터즈 구성원 : 김공민 (교육공학과 15),김소희 (국제학부 17), 김신구 (원자력공학과 13), 김영우 (정치외교학과 17), 변선정 (관광학부 17), 유아형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6)

2019-10 20 중요기사

[동문]노승철 동문, 국내 최초 여행 동행 플랫폼 ‘트립버디’ 출시 (2)

㈜옵티마이즈 대표 노승철(산업공학과 13) 동문은 국내 최초 여행 동행 플랫폼 ‘트립버디’ 서비스를 진행 중이다. 트립버디는 지난 7월 안드로이드 앱을 출시했다. 한양대학교 창업동아리에서 시작한 작은 아이디어는 현재 수만 명의 사랑을 받는 멋진 사업 아이템으로 성장했다. 누구보다 빨리, 더 많이 뛰며 성공적인 사업가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노 동문을 만났다. ▲국내 최초 여행 동행 플랫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옵티마이즈 대표 노승철(산업공학과 13) 동문. 노 동문이 운영하는 옵티마이즈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롭게 하라’는 뜻이다. 회사가 꿈꾸는 세상에 고객이 함께 있는가를 성찰하게 하는 사명이다. 주력 사업 아이템은 ‘나홀로 여행객’을 위한 여행 중개 서비스인 ‘트립버디’다. 트립버디는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행 친구’를 연결해주는 앱 서비스다. 여행자 본인 성향에 맞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맞게 연결하는 것은 물론 여행자들과 여행 상품을 공동 구매할 수도 있다. 동행 신뢰 시스템도 잘 갖춰져 있어 새로운 사람과도 걱정 없이 여행할 수 있다. 최근에는 유명 여행 플랫폼 회사와 제휴 계약을 맺어 1인 여행객을 겨냥해 6만 가지가 넘는 상품을 선보였다. ▲ 간단한 개인 프로필 등록 후 여행 장소, 날짜와 동행 인원 수 등을 작성하면 동행카드가 업로드 된다. (트립버디 제공) ‘트립버디’라는 사업이 인정받기까지는 몇 년간의 노력의 시간이 있었다. 그는 “아이템 시작인 위치 기반 서비스에 대한 고객의 반응은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며 "이를 계기로 이 아이템을 접목시킬 분야를 찾던 중 ‘여행’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타겟 고객을 ‘1인 여행객’으로 전환한 그는 실제 고객과의 만남을 위해 긴 여정을 떠났다. 혼자 4개월간 여행을 하며 약 500명에 달하는 여행자들을 직접 만나고 한 명 한 명 인터뷰했다. 노 동문은 여행객들이 여행 경비, 경로와 여행자들 간의 만남 등에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했다. 인터뷰를 통해 받은 영감을 토대로 사업 아이템을 확장했다.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창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결과적으로 노 동문의 사업 아이템은 SK텔레콤, 한양대학교 BI와 서울창업디딤터 PRE-BI 인큐베이팅 과정을 거쳤다. 마침내 수억 원에 달하는 각종 정부 지원을 통해 지금의 트립버디 서비스를 완성했다. ▲트립버디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다. (트립버디 제공)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노 동문은 수많은 고생 끝에 얻어낸 ‘서비스 런칭’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그는 “고객에게 정말로 필요한 서비스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서비스를 고객에게 선보인 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유명 여행 플랫폼 회사와 성사된 협업 역시 귀띔했다. “고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잊지 못할 성과입니다” 업무 하나부터 열까지를 해내야 하는 창업은 쉬운 일이 아니다. 노 동문은 왜 창업에 뛰어들었을까?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정신과 리더십이 지금의 ‘노승철 대표’를 만들었다. 무슨 일이든 주도적으로 도전하기 원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창업을 꿈꿨다. 노 동문은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임에도 불구하고 비즈니스 모델 특허 등록과 실용신안 등록 등 창업과 관련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냈다. 하나하나의 경험이 모여 300쪽에 달하는 창업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켰고 창업 선도 대학인 한양대학교에도 입학할 수 있었다. 노 동문은 창업 성공의 공을 한양대에 돌렸다. 그는 “한양대에서 다방면의 도움을 받았다”며 “창업 초기에 한양대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창업융합학과 전공 수업과 간단한 프로젝트 사업 등 다양한 창업 지원을 통해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한다. 특히 체계적인 창업 지원 시스템으로 창업동아리에서 시작한 사업이 법인설립 단계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사무실, 기숙사, 자금과 멘토링을 제공하는 등 차기 CEO들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는다. ▲노 동문은 1인 여행객들이 ‘트립버디’를 쉽게 떠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트립버디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노 동문은 “숙박 예약하면 ‘H’사, 항공 예약하면 ‘A’사가 떠오르듯 여행에도 각 분야별로 떠오르는 상징적인 브랜드가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1인 여행하면 ‘트립버디’를 떠올리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또 “여행 관련 서비스답게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자주 여행을 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다”며 ‘일상의 여행화’를 강조했다. 끝으로 노 동문은 창업을 하고 싶은 한양대 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남겼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기보다는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을 추천한다”면서 “많은 고객들을 직접 만나며 니즈를 파악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10 18

[교수][동행한대] 이승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자원환경공학과 100주년을 바라보며 실천하는 기부(2019년 가을호)

▲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자원환경공학과 100주년을 향한 마음으로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미국에서 모교인 한양대로부터 부름을 받고 자원환경공학과로 돌아온 이승원 교수는 뿔뿔이 흩어져 수업을 받고 강의를 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원환경공학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모금사업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십시일반의 힘, 이승원 교수는 작은 힘이 모여 큰 목표를 이룬다는 진리를 이번 모금사업을 통해 더욱 깨닫고 있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올해 벌써 두 배 정도가 모인 것 같습니다. 작게 모아 크게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Q1. 몸 담고 계신 자원환경공학과에 최근 학과 발전기금을 기부하셨습니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1. 2년 전 부임해서 자원환경공학과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실과 연구실 등 학과 공간이 4개 건물에 나눠져 있어 학생과 교수, 선배와 후배 간에 서로 접촉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뭐 중요할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공간의 분리가 소통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구나.’를 많이 느꼈습니다. 또 과거에는 수업이 일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토론식의 쌍방향 수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의 강의실로 그런 수업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론식 수업보다 실용적인 교육이 필요할 때도 많고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환경도 바뀔 필요가 있지요. 발전기금을 통해 그런 공간이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2. 자원환경공학과 설립 80주년을 맞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모금사업을 진행 중인데요. 어떤 모금사업인지요? A2. 자원환경공학과는 1939년 한양대 개교와 함께 시작한 학과입니다. 지난 10월 17일, 학과 설립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많은 동문들이 모여 그 동안 해온 일들을 되돌아보고, 20년 후인 100주년 때는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원환경공학관(가칭) 건립은 20년 안에 우리가 이뤄내고 싶은 미래입니다. 이번 발전기금 모금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2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모아 자원환경공학관을 건립하고, 단기적으로는 학과를 위한 작은 공간이라도 하나하나 넓혀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3. 학과 교수님들과 동문들이 모금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현재 모금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3. 학번 별로 기부금을 모으는데 현재는 80년대 학번이 주축이 되어 모금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90년대, 2000년대 학번이 이끌어 나가겠지요. 기부 방식은 몇 년 전부터 자원환경공학과에서 운영해 오고 있는 ‘십시일반 장학금’처럼 할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을 지속적으로 기부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올해 벌써 두 배 정도가 모인 것 같습니다. 작게 모아 크게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학과장으로서 교수님들의 기부와 학생들의 재능기부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4. 기부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평소 기부나 나눔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4. 어릴 적, 저희 어머니께서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안동 시내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번 돈으로 ‘깡통장학금’을 만들어 운영하셨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부활동을 하셨지요. 연세가 드셔서 이제는 더 이상 하기 힘드셨던지 얼마 전 저에게 장학금 기부 내역 장부를 건네주시면서 그 동안 모아 놓은 돈도 모두 장학금으로 나가도록 조치를 해놨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위해 좀 더 써주지 뭘 저렇게 남을 위해 돈을 모으나’하고 서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그렇게 기부를 하고 나눔을 행하셨던 것이 제 삶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제가 모금사업을 기획하고 열심히 동참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에게 받은 긍정적인 영향 덕분이겠지요. Q5.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를 전공하고, 다시 같은 학과에서 후배를 제자로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후배(제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5. 한양대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사자처럼 용맹한 청춘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1학년 때부터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으로만 진로를 결정하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자신의 야성을 깨워 더 큰 모험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019-10 18

[동문][동행한대] 이경록 효봉물산 대표,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2019년 가을호)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봉물산 대표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방법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봉물산 대표 30년 가까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장학회를 운영할 정도로 오랫동안 나눔을 실천해 온 이경록 대표는 올해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게 되면서 한양대 선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잦아지자 마음에 계속 담아두었던 결심을 실행했다. 지난 4월, ROTC 재학생 후배들을 위한 발전기금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한 것이다. 나의 도움이 다른 도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믿음은 그를 꾸준한 기부천사로 만들고 있다. ''저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거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제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Q1.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A1. 동문회장 자리는 1년씩 돌아가며 순임제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22기 차례라 제가 동문회장이 되었습니다. ROTC 동문회는 대학 동문 모임이지만 군대 모임이기도 해서 우애와 유대감이 매우 강합니다. 매달 만나 친목을 다지는 활동을 주로 하지만 최근에는 재능기부를 하는 동문들에게 한학이나 민간요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또 동문회 집행부에서 한 달에 한 번 밥퍼 등 봉사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Q2. ROTC 발전기금 용도로 기부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2.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모교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마침 올해 ROTC 동문회장을 맡아 오랜 만에 모교를 찾게 되면서 그 마음을 실천한 것뿐이고요.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우리 동문회에서도 기부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ROTC 동문회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면서 우리 동문회가 학교와 함께 걸어간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지요. Q3. 광성장학회를 운영하시면서 소년소녀가장이나 탈북 청소년들을 돕고 있으신데요. 어떤 동기로 장학회를 시작하셨는지요? A3. 운영 중인 광성장학회는 1990년에 설립해 어느덧 29년차가 되었습니다. 부친께서는 한국전쟁 시기에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어렵고 힘든 생활 끝에 재산을 모으셨습니다. 이북5도청에서 하는 장학재단에도 관여를 하셨을 만큼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았던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아들인 제가 유지를 받들자는 마음으로 광성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대개 장학금이라고 하면 성적을 보게 마련인데, 저는 성적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우선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Q4. 기부는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기부의 가치가 궁금합니다. A4. 사실 저는 부친이 고생하시면서 생활을 잘 일궈내셨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도 돈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요즘말로 ‘금수저’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의 가치를 일찍 깨달은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사회가 양극화 되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거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제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Q5. 오랜 만에 모교를 방문하면서 한양대의 변화를 한 눈에 보셨을 텐데요. 기부자로서 한양대에 전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A5. 제가 80학번으로 입학할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의 한양대 위상은 너무나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특히 공과대학의 위상은 국내 최고 수준이기도 하죠.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 같은 한양대의 성장이 졸업생에게는 축복과 같지요. 졸업생 가운데 한 명으로서 학교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Q6. ROTC 발전기금이나 장학회 장학금 등 어려운 학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학업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6. 저는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가락도 각각 길이가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그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길이가 짧다고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고 길이가 길다고 더 잘난 존재도 아닙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실감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경험이라고 믿으면서 현재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019-10 18

[동문][동행한대] 김성윤내과의원의 김성윤 원장, 한양의대의 더 큰 발전을 바라다 (2019년 가을호) (1)

▲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한양 의대, 더 큰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국내 최초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한양대 병원에 설립했던 김성윤 원장은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의과대학의 발전과 함께한 동문이다. 2013년 익명으로 첫 기부를 시작해 조용하게 기부를 이어오던 김성윤 원장이 올해 1월 3억 원이라는 큰 기부를 또 한 번 실천했다. 한양대 의과대학이 지난 50년 간 국내 의료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만큼, 앞으로도 더욱 큰 걸음으로 나아가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번 기부에 담았다. 모교에 대한 지극한 애정, 김성윤 원장은 자신의 기부를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일뿐이라 말한다. ''올해 5월 24일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는데,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어요. 후배들이 좋은 상황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Q1. 올해 1월 의과대학 발전기금으로 3억 원을 기부하셨는데요. 이렇게 큰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한양대의 교훈이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교훈으로만 여기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한양대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제 직장이었기도 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20여 년 전, 병원을 그만 둘 때는 ‘다시는 한양대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나는 한양대에 서운함이 많았는데 한양대는 여전히 날 잊지 않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학교로부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고, 저도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기부를 했습니다. Q2. 2015년에 바이오메디컬센터 건립기금, 2016년에 의과대학 발전기금 등 꾸준히 기부를 해오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2013년에 하신 첫 기부는 1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익명으로 하셨습니다. 익명을 원하셨던 이유가 있으신지요? A2. 1975년 한양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고 레지던트까지 마친 후, 198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류마티스는 정형외과의 영역이었지요. 1989년 한양대 병원에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열었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떠나긴 했지만 병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계속 있었지요. 그래서 류마티스 전문병원에 힘을 보태고 싶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고 조용히 기부를 했어요. 이번에 다 드러나 버렸네요.(웃음) Q3. 기부와 나눔에 대한 원장님의 평소 생각도 궁금합니다. A3. 미국 병원에 있을 때, 한쪽 벽에 ‘밀리언달러 트리’라는 게 있었어요. 병원에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나무 잎사귀에 새겼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이렇게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의사라는 직업은 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부나 나눔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보면 재능이나 노력 봉사 등 다양한 기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발전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Q4. 지난 5월 의과대학 내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습니다. 직접 한양대에서 강의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공간을 후원해주신 소감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4.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김성윤 LAB도 그렇고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얼굴과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제가 아들에게 그랬죠. “나중에 나 죽거든 따로 묘지나 묘비를 세우지 말고 여기 와서 묵념을 해라.”고요. 이곳이야말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니까요. Q5. 한양대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후배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A5. 후배나 제자들에게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입학한 해가 1969년입니다. 그 시절은 제게 가장 힘든 시기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힘들면서도 좋은 이유는 가능성 때문이지요. 제가 나아가려고 하는 꿈에 도달하려면 힘들게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꿈이 있었으니까 너무 행복한 시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지금이 힘들지만 가장 좋은 시기다.”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Q6. 2000년에는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는데요. 이처럼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학교를 빛내는 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 원장님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A6. 한양대 병원에 처음으로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세운 공이 인정되어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받고, 이희호 여사님을 오래 치료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설립할 때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서울대 병원도 세브란스 병원도 하지 못한 게 뭘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길이었지요. 미국을 건너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새롭게 개척한다는 것은 길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젊은 시절, 그런 오기와 마음가짐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그러한 도전을 한양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성과였지요. Q7. 벌써 한양대에 네 번째 기부를 하셨는데요. 기부를 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7. 기부는 처음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하고 나면 계속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돈이 생기면 ‘뭘 더 사야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부를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변화했어요. 이런 것도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자세의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가지 변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장려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가 주는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모교의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니만큼, 기부를 하고 난 후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우리 세대들이 더 나서야지요. Q8. 한양대 의과대학에 중요한 획을 그으신 한 분으로서, 앞으로 한양대 의대가 어떻게 발전해나가기를 바라시는지요? A8. 지난해가 한양대 의과대학이 생긴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지닌 의과대학이 국내에 몇 없지요. 지난 5월 참석한 ‘의대 5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한양대 의과대학이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을 목표로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양대 의과대학에는 훌륭한 교수진과 의료진이 많으니,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뒷받침이 되어 그 목표에 꼭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2019-10 17 중요기사

[교수]김민경 교수,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 출판으로 '화학 전도사'로 나서

"화학 만물박사라니… 민망한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슈가 됐던 '화학 만물박사'의 주인공 김민경 창의융합교육원 교수가 최근 저서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를 출간했다.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는 국립중앙도서관 '2019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100권에 선정됐다. 그는 세계 최초로 5G 통신기술을 활용한 텔레프레즌스 강좌 '생활 속의 화학' 교수로서 부지런한 교육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SNS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양대 학생과 김민경 교수의 대화 캡처.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가 나오기까지 책 집필의 시작은 1만2547kl(1만900t)의 원유가 태안 해역으로 유출됐던 지난 2007년 유조선 사고다. 김 교수는 "어린 아이들이 기름 닦아내는 모습을 보는 게 불편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원유 속에 들어 있는 벤젠과 톨루엔 같은 화학 물질이 만 13살 이하의 어린이들에게 치명적인 발암 물질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게 아쉬웠어요.” 김 교수는 화학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화학을 알려보자는 취지로 '생활 속의 화학'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는 '생활 속의 화학' 강좌를 기반으로 최근 출간됐다. ▲ 김민경 창의융합교육원 교수 저서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 표지. (휴머니스트 제공) 책을 읽는 순간 당신도 우리 집 화학자 '우리 집에 화학자가 산다'에는 일상생활과 밀접한 화학 정보가 많다. 식초로 생선을 구운 프라이팬 비린내 없애기와 라돈과 같은 실내 방사성 원소 저감을 위해서 미세먼지가 있는 날에도 환기하기 등 실제로 김 교수가 유용하게 적용하는 화학 지식을 담았다. 생선을 굽고 난 뒤 비린내를 없애는 방법으로 아세트산수용액(식초)을 이용한 ‘중화 반응’을 설명했다. 또 코팅 프라이팬, 비누와 자외선 차단제같이 실생활에 사용되고 있는 물질의 화학 원리와 응용 방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 김민경 교수는 뉴스H와의 인터뷰에서 "화학 지식의 내용을 쉽게 소개하기 위해 일반인의 눈으로 화학 성분을 바라봤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화학 물질을 거부하는 ‘노케미족(No-chemi族)'에게도 이 책을 추천했다. 김 교수는 "과학적으로 그들의 오해를 해결할 수 있으면 좋겠다"며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화학 물질에 대한 막연한 공포는 정확하게 알면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화학 물질은 잘못된 장소와 시간에 과량이 존재할 때 문제가 될 뿐 현명하게 사용한다면 더 없이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물질입니다.” 텔레프레즌스 강의에 녹아낸 열정 김 교수는 현재 텔레프레즌스(Tele-presenceㆍ원격 현실)를 활용한 ‘생활 속의 화학’ 수업을 맡고 있다. 텔레프레즌스는 원거리를 뜻하는 ‘텔레(Tele)’와 참석을 뜻하는 ‘프레즌스(Presense)’의 합성어다. 다른 공간에 있는 사람을 실물 크기로 보며 소통할 수 있는 '텔레프레즌스' 기술이 김 교수의 열정과 만난 것이다. 김 교수는 “모교 졸업생으로서 새로운 형태의 강의를 후배들에게 소개해 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했다”며 "텔레프레즌스 강의가 활성화된다면 한양대학교뿐만 아니라 학점 교류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김민경 창의융합교육원 교수가 지난 3월 개설한 ‘생활 속의 화학’ 수업에서 동시에 4개의 강의실, 약 150여 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텔레프레즌스 강의는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는 대형 강의 단점을 해소한다. 현재 텔레프레즌스를 활용한 ‘생활 속의 화학’ 강좌는 서울캠퍼스 3개의 강의실과 ERICA캠퍼스 1개의 강의실에서 진행한다. 김 교수는 “수업 특성상 직접적인 교감이 떨어져 수업 난이도와 속도 조절의 어려움은 있지만 열린 마음으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 또는 개인 카카오톡 등을 통해 언제든지 질문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글/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0deo@hanyang.ac.kr

2019-10 14 중요기사

[학생]정책학과 4년 이준표, 2019년 5급 공채 행정직 최연소 합격

‘외교관 선발시험 합격’, ‘5급 기술직 합격자 전국 대학 2위’ 등 공직 임용 소식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이준표(정책학과 4) 씨는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일반행정 직렬에 전국 최연소로 합격했다. 세 차례의 도전 끝에 최종 합격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Q. 5급 일반행정직 공채를 준비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나요? A. 고등학교 2학년 때 지리 동아리를 하며, ‘대구 지역 정주 여건 개선을 통한 대구 지역 발전 방향’에 관해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지방재정과 교통 등의 정책을 조사하고 나름의 대안을 만들며, 정책 입안에 관한 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한국이 당면한 여러 사회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해 5급 공채를 준비하게 됐습니다. ▲올해 국가공무원 5급 공개경쟁채용시험 일반행정 지역모집(대구)에 합격한 이준표(정책학과 4) 씨. 23세의 나이로 전국 최연소 합격자로 이름을 올렸다. Q. 시험 준비 기간은 어떻게 되나요? A. 새내기 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약 3년 정도 수험생활을 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로 한 학기 휴학한 것을 제외하면 학교를 병행하며 준비했습니다. 학교 공부와 5급 공채 공부를 함께함으로써 생기는 장점을 활용하려 했습니다. 학교 수업은 ‘미시경제학1,2’와 ‘행정법학’ 등 수험 과목과 관련 있는 강좌로 들었습니다. 일찍 일어나 규칙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서 학교 수업은 일부러 아침 시간대에 잡았어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이나 학교 내 카페, 라운지 등에서 공부했습니다. Q. 행정고시반에서 얻은 도움은 어떤 게 있나요? A. 행정고시반은 교내·외 교수님들을 모셔와 5급 공채 2차 과목 모의고사의 채점과 해설을 진행합니다. 이게 가장 큰 도움이 됐습니다. 사설학원에서 강의를 들어도 실제 채점에서 중요한 부분은 놓치기 일쑤입니다. 교수님들께서 이런 점을 잘 짚어주셨습니다. Q. 공채 시험에서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던 부분이 있나요? A. 제2차 시험의 정치학에 특히 집중했습니다. 정치학은 흔히들 정해진 답이 없는 학문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저만의 답안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스스로 정치 논문이나 관련 서적, 백과사전 등을 찾아보며 답안에 쓸 만한 사례나 역사적 배경, 이론, 학자 등을 정리했습니다. 면접에도 신경을 많이 쏟았습니다. 저는 면접도 답이 있는 시험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토론 과정에서 양보하는 방법, 발언 기회를 찾는 방법, 딜레마 문제에서 케이스를 나눠 세부적 판단을 내리는 스킬(skill) 등이 중요합니다. 학원도 다니고 학교 스터디도 하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A. 공채 공부를 하면서 공직의 무게를 많이 느꼈습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 ‘국제적 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과 ‘사양 산업 종사자들이 시대 변화로 생활고를 겪게 되는 사안’ 등을 공부하면서 공익의 실현을 위해 많은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으레 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가장 낮은 자세에서 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공무원이 되고 싶습니다. (웃음) Q. 5급 행정직 공채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A. 2017년 초시 때 터무니없이 낮은 점수를 받고 떨어졌습니다. 만약 이때 좌절했더라면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충분히 합격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게 중요합니다. 자신만의 공부 방식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독서실보다 트여있는 카페에서 공부가 더 잘 될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의 공부방식을 다른 사람에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아도 됩니다. ‘나’의 스타일을 자기 자신이 존중해주세요. 글/ 김현섭 기자 swiken1@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10 07 중요기사

[학생]장지호 학생, '발명부터 창업까지' 만능 의대생

여기, ‘다재다능’이라는 말이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바로 장지호(의학과 2) 씨다. 장 씨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2019 IDEA 디자인 어워드와 2019 제임스 다이슨 어워드에서 ‘이동형 정맥 수액 팩 적용 유속 감지 IoT 디바이스’라는 발명품으로 수상했다. 디자인계의 아카데미상이라고 불리는 IDEA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기업이나 관련 전공 교수가 아닌, 의대학부생 개인이 수상한 사례는 처음이다. 환자와 병원을 생각하는 마음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통해 멋진 성과를 만들어냈다. 장 씨는 이외에도 의학 공부, 사업, 유튜버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끊임없이 정진하는 장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장지호(의학과 2) 씨가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2019 IDEA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발명으로 환자와 병원 모두의 어려움을 해결하다 장 씨의 발명품은 병원과 환자의 고충에서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링거가 새거나 막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간호사가 링거 상태를 체크해주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한정된 간호사의 인원으로 많은 환자들을 일일이 돌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또 환자는 이동할 때 무거운 철제 행거에 링거를 휴대하는데, 이는 회복 속도를 저하시킨다. 무거운 철제 행거가 환자의 이동성을 떨어뜨려 회복을 위한 가벼운 걷기 운동 등 재활을 어렵게 만든다. 장 씨는 위 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했다. 바로 ‘이동형 정맥 수액 팩 적용 유속 감지 IoT 디바이스’이다. IoT 디바이스는 광 굴절률 변화를 활용해 점적통(수액이 한 방울씩 서서히 몸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장치)의 유속을 탐지하여 일정한 수액 공급을 가능하게 만든다. 때때로 한 방울씩 정상적으로 떨어지던 수액이 한꺼번에 많이 들어가거나 혹은 막혀서 환자의 몸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때 광 굴절률을 이용하면 평소와는 다른 굴절률과 조도의 변화를 인지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것. 해당 변화는 사물 인터넷 기술을 통해 간호사 스테이션과 연동된다. 장 씨는 “빛 굴절률 변화를 통해 수액이 들어가는 타이밍을 알 수 있다”며 “사물 인터넷 기기로 수액의 흐름을 실시간으로 탐지해 수액의 정상적인 주입 여부와 수액 팩 교체 시간도 예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 장지호(의학과 2) 씨가 고안한 발명품인 ‘이동형 정맥 수액 팩 적용 유속 감지 IoT 디바이스’. (장지호 씨 제공) 신선한 디자인은 환자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열쇠가 됐다. 무거운 철제 행거에 수액 팩을 갖고 다녔던 기존 방식은 화장실 가는 것, 식사 등 기본적인 생활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장 씨가 개발한 ‘모자’ 형태의 수액 팩은 환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한다. 머리에 쓰고 다니기 때문에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무게도 스마트폰 한 개 정도이며 평상시에는 기존 링거처럼 걸어 놓기 때문에 관리 부담도 적다. 장 씨의 놀라운 성과에는 여러 분야를 향한 열정이 숨어있었다. 그는 “학교 내의 경영, 디자인, 공학 수업을 청강하며 다양한 학과의 지식을 키워나갔다”고 말했다. “경영학과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외부에서 코딩을 배우며 실력을 쌓았습니다.” 장 씨는 주 전공인 의학을 기반으로 많은 영역에 뛰어들며 융합 인재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다. ▲ ‘의대생 TV’ 활동 모습. 장 씨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장지호 씨 제공) 또 다른 도전을 향한 노력 장 씨의 도전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는 올해 초부터 벤처캐피탈(VC) 업계 동료들과 함께 애플리케이션 형태의 약국 플랫폼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 씨는 “경영에 관심이 많아 애널리스트들의 글을 읽는 것이 취미”라며 “현재 함께 일할 개발자들과 미팅을 진행 중이고 투자도 확정된 상태”라고 말했다. 이뿐 아니다. 그는 ‘의대생 TV’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유튜버로도 활약 중이다.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연하고 있다. 유튜버 활동을 통해 얻은 수익금은 전액 기부한다. 앞으로의 계획 끝으로 그는 “어떤 일을 하든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환자를 직접 보고 진료하는 의사도 꿈꾸고 있지만 의료 시장에서의 혁신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의사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아이디어가 실행될 때 비로소 아이디어로서의 가치를 갖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를 고안할 수는 있지만 실행에 옮겨야 창의성을 인정받는다는 뜻. 한 곳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장 씨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장 씨의 말처럼 많은 한양인들이 아이디어를 실천으로 옮겨 더 큰 혁신을 이뤄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글/ 정연 기자 cky6279@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

2019-10 06 중요기사

[동문]김신비 동문, 한양대학교 최초 외교관 선발시험 합격 (2)

매년 10월이면 한양대학교 캠퍼스에서 5급 기술직 공무원 합격자들을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다. 특히 올해는 2차 합격자를 18명 배출하면서 전국 1위로 한양대의 위상을 높였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기술직이 아닌 다른 분야의 합격자를 축하하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김신비(정치외교학과 12) 동문이 외무고시 폐지 이후 한양대 최초로 외교관 선발시험에 합격했다. 외교관 선발시험은 지난 2013년 외무고시 폐지 이후 신설된 자격시험이다. 외교관 선발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공인된 영어성적 ▲한국사 2급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제2외국어 시험 성적 요건을 갖춰야 하며 총 3번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1차 시험은 선택형 필기시험으로 헌법과 공직적격시험(PSAT)으로 이뤄져 있다. 2차 시험은 통합논술 시험인 학제통합논술Ⅰ과 전공 평가시험인 학제통합논술Ⅱ을 통해 과목별 지식과 소양을 테스트한다. 그 뒤 3차 집단심화토의 면접과 개인발표 및 면접을 통해 최종합격자를 선정한다. 최종합격자는 국립외교원에 입교해 1년의 정규과정을 거친 후 외교관으로 임용된다. 올해는 1192명 중 41명의 최종합격자가 선발됐다. ▲김신비(정치외교학과 12) 동문이 수험 기간과 한양대 외교원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Q : 왜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됐나요? A : 선화예술고등학교 재학시절 클래식 작곡을 공부했습니다. 당시에 서양 클래식에 한국적인 느낌을 가미한 곡을 쓰려고 했었죠. 자연스럽게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덕분에 외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음악을 더 공부하기보다는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교환학생 경험이 저에게 확신을 줬어요. 저는 한국이 선진국이고 대부분의 외국인이 한국을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북한에서 왔니?, 남한에서 왔니?”였습니다. 이런 일을 겪고 난 뒤, 한국을 알리고 싶어 외교관이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Q : 공부하면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요? A : 많은 수험생분들이 공감하실 부분입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많은 이해와 보살핌이 있었지만 결국 혼자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많았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점은 하루에 12시간 넘게 공부만 하는데, 안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었어요. 운도 필요한 시험이기 때문에 “헛된 공부를 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한양대 국립외교원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서로를 다독이며 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Q : 국립외교원반에서 큰 도움을 받으셨다고 했는데, 국립외교원반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A : 외교관 시험을 준비하려고 했을 때, 시험 관련 정보를 몰라서 막막했는데 김성수 정치외교학과 교수님께서 국립외교원반을 추천해주셨습니다. 입반을 위해서는 외교관 1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춰야 하고 외교원반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1차 PSAT 모의시험과 면접을 봐야 합니다. 아마 외교원반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합격하지 못했을 거예요. 외교원반은 지원이 많습니다. 5급 공무원 강의 수강료가 매우 비싼 편인데, 이를 보조해줍니다. 재학생과 졸업생 간에 차이는 있지만 열람실과 기숙사도 지원해줍니다. 매달 모의고사를 보기 때문에 저의 위치와 실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지원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면학 분위기도 좋았고, 대부분 같은 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견제하기보다는 서로 도움을 많이 주는 분위기입니다. Q : 바로 국립외교원에 입교하시는 건가요? 어떤 외교관이 되고 싶나요? A : 오는 12월 말쯤에 입교하고 1년 동안 서울 서초구 양재동 국립외교원에서 52주 과정의 교육을 받습니다. 영어와 제2외국어도 공부해요. 그다음 해에 임용되면 광화문 외교부 청사에서 근무합니다. 외교관는 분야가 매우 다양합니다. 저는 의전(儀典)과 경제 분야의 외교를 담당하고 싶습니다. 국빈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때 행사를 관리하는 분야인 의전은 우리나라를 알릴 기회가 많아요. 행사 도중에 돌발상황이 많이 발생하는 분야기도 합니다.제가 갈고 닦은 위기 대처능력을 활용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수입수출 의존도가 높아서 경제 외교가 어떻게 흘러가느냐가 일상에 큰 영향을 줍니다. 국익을 위해 일하고 싶기 때문에 양자외교, 다자외교 모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Q : 마지막으로 합격하신 소감과 앞으로의 다짐 부탁드립니다 A : 합격 통보를 받고 기쁘기도 했지만 감사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믿고 지켜봐 주신 부모님, 많은 지지를 준 친구들과 큰 도움을 준 외교원반. 이분들이 없었다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겁니다. 외교원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조금이라도 외교원반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모범이 되는 외교관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글/ 윤석현 기자 aladin@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