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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 01

[학생]"활발한 남북교류,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통일의 가교 자임하는 '통일교두보' 회장 최경희(인문대·중문4)양 "통일은 어느 한 쪽 살리는 것이 아닌, 우리 민족 살리는 길" 국내로 들어오는 탈북자 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국내입국 탈북자 수는 올해로 누적인원 5천명을 넘어섰으며, 올 들어서만 8월까지 1천 3백 99명이 우리나라로 입국했다. 언론 역시 대규모 입국과 같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탈북자들의 입국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지 않는 요즘이다. 갓난아이에서부터 노인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직업도 각양각색인 탈북자, 그들 중 많은 수가 대학을 다니거나 준비하고 있어 캠퍼스에서 어렵지 않게 북한 인사말을 들을 수 있는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이러한 대학생들과 대학진학을 원하는 탈북자들을 돕기 위한 모임인 탈북자 대학생회 ‘통일교두보’가 지난 5월 15일 공식 출범했다. 출범과 함께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통일연구 모임, 전공별 그룹 모임, 축구단을 통한 교류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통일교두보’의 초대 회장은 본교 최경희(인문대·중문4) 양. 최 양을 만나 통일교두보와 통일,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탈북자 대학생과 ‘통일교두보’ 회원 현황에 대해 말해 달라. 정부에서 학비를 지원받는 35세 이하까지의 사람과 자비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을 더하면 약 3백에서 4백 명 정도로 볼 수 있다. 많은 탈북자들이 대학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 중에 ‘통일교두보’ 가입자 수는 1백 20여명 정도이고 그 중 70명은 정회원으로 활발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통일교두보’는 어떤 뜻을 가진 모임인가? 통일교두보란 통일 조국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모임으로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견고한 다리의 전진기지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더불어 탈북자 대학생들이 한국사회와 대학생활에 더욱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자 하는 모임이다. 좌·우익 어느 쪽도 아닌 객관적 입장에 서고자 노력하고 있다. 남과 북이 편견 없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 현재 어떤 활동을 주로 하고 있나? 누구보다 북한의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모임의 회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고등 교육을 받고 있는 사람들로써 통일연구 전문가들과의 토론·학술모임을 통해 통일에 기초가 될 지식을 얻고 통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는 자리를 주기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또한 전공별 그룹 모임을 통해 자기 전공분야에서의 학업과 관련된 실력을 쌓기 위해 함께 공부하고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외부단체와의 교류는 축구단을 통해 하고 있는데 실력이 대단하다.(웃음) 얼마 전에 있었던 경기에서도 3대 1로 승리했다. 통일연구와 전공그룹 모임, 스포츠 교류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남한의 대학생·청년들과 통일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교류의 자리를 만들고 싶다. 통일에 대한 생각이 남다를 것 같다. 나에게 통일은 절실한 일이다. 통일이 되어야만 북의 가족과 친구들을 다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대학생들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아쉽다. 분단된 체제에 익숙해져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통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통일은 어느 한쪽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을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이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실체가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통일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낮아진 장벽과 활발해진 교류가 이미 통일이 시작되었음을 보여준다. 우리 탈북자들이 남한에서 정착해나가는 모습이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 한국을 이뤄가는 실험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이 있다면. 대학생활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누구나 겪는 어려움 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체제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가 있어 모든 것을 새로 배우고 받아들여야 했다. 북한의 경우는 대학에서 수강신청이라는 개념이 없다. 정해진 시간표가 있고, 학생들은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을 마음대로 선택해서 듣는 것 자체가 새로웠다. 더구나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해야 했는데 처음에는 어떤 것인지조차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러한 것 외에도 탈북자 대학생들이 대학 생활을 하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에피소드가 많다. 그런 이야기들을 모아 책을 만들어 볼 생각도 하고 있다.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어려움들은 하나하나 배워간다는 생각으로 차근차근 극복했다. 그 과정에서 선배나 주위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을 때 우리민족 특유의 친절함과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 외에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다. 북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대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즐겁고 좋았던 점을 말해 달라. 우리 학교를 다니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백남학술정보관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많은 책과 자료를 마음껏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 북한에서는 책을 접할 수 있는 사람이 매우 제한적이다. 일반인이 외국의 서적을 접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도서관 열람실에 들어서서 책장에 가득 꽂혀있는 책들을 보면 기분이 좋다. 캠퍼스 곳곳에서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각종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도 좋다. 풍부한 지식과 정보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점이 가장 즐겁고 기쁜 일이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것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막 친해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곧 졸업이라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졸업반인데,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보수가 적더라도 북한관련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다. 취업과 함께 대학원 진학도 준비하고 있다. 북한학을 전공할 생각이다. 남한의 북한 관련 연구들은 이론과 체계에 있어서는 굉장히 뛰어나지만 북한의 현실에 관한 연구는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북한의 현실 자체를 직접 경험하거나 관찰할 기회가 없는데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북한의 현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지만 체계적인 이론이 부족하다. 체계적인 이론을 통해 북한의 현실 그 자체를 연구하면 더욱 바람직한 통일 대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됐다. 나 이외에 탈북자 대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고 연구한다면 남과 북의 의식차이나 문화적 차이를 좁히고 통일을 향해 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2004-10 15

[학생]"주식은 투기 아닌, 재테크의 훌륭한 수단"

전국 대학생 경제 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인 1위 오주연(국문대·영미언어문화2)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것'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랑과 주식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주식은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재테크를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다. 또한, 자본주의 시대에 있어 주식은 한 국가와 기업의 경제상황을 반영하는 가장 공식적인 지표로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이러한 주식과 경제에 관한 지식을 측정하는 전국 대학생 경제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본교는 제1회 대회에서 개인부문 종합 1위를, 2회 대회에서는 대학별종합순위에서 1위에 이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수상의 전통을 이어갔다. 제 3회 대회 수상의 주인공은 개인부문 1위를 탈환한 오주연(국문대·영미언어문화2)군. 1천 점 만점에 9백 53점으로 종합1위를 차지한 오 군을 만나 대회 한 달 동안 주식 때문에 웃고 울었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 달라. 당연한 말이겠지만, 너무 기쁘다.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아서인지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 것 같다. 대회기간동안 옆에서 많이 도와준 서영봉(디경대·디지털경영 2)학우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계기는? 주식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이번 대회에 참가하기 직전, 당시 갓 병역을 마치고나서부터였다. 그때는 뭔가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 경제유니버시아드 대회 개최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아. 이거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영, 경제관련 학과가 아닌데, 정보수집은 어떻게 했나? 대회에 참가하고 나서부터, 주위에 경영이나 경제, 주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주로 관심 있는 사람들 간의 모임을 통해서 정보를 많이 공유했다. 그 때 만난 모임의 구성원들과 함께 모임을 경제·주식관련 동아리나 학회로 발전시킬 계획도 갖고 있다. 모임 이외에도 경제신문의 기사를 많이 접했다. 대회기간 중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대회기간 동안 자기 생활이 거의 없었다. 약 4주 동안, 동아리 활동도 참가를 못했고, 찾아온 친구도 소홀히 대한 적이 있어 굉장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번 대회 종합 2위를 차지한 분과 종합순위평가에서 1점 밖에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경쟁이 대단했다. 대회 막판까지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잠도 많이 못잔 거 같다. 대회기간 동안 대회에 얼마나 시간을 투자했나? 사실 이번 대회는 처음부터 목표를 1위로 잡고 참가한 것이 아니어서, 대회 초반부에는 그렇게 몰두하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득점도 많이 하게 되고, 순위가 계속 상승해서, 막판 일주일동안에는 거의 하루 종일을 투자했었다. 때문에, 대회 막바지에는 재학생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수업보다 대회에 더욱 열중했다. 수업도 제대로 못들었다(웃음). 교수님들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주식투자에 관련해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노하우라고 말하기도 부끄럽다. 하지만, ‘행운이란 길을 알아보는 감각이며, 그것을 이용하는 능력이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에 운이 따라야 하겠지만, 운이라는 것도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법이다. 주식을 본다면, 흐름을 잃지 않도록 정보를 끊임없이 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각종 신문, 방송 등의 매체를 통해서 기사를 접할 때, 이미 매체에 드러난 정보를 가지고는 주식투자를 판단하기에 한발 늦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때 참가해도 늦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주식시장의 상황은 어떻다고 판단하나. 주식시장에 있어서는 심리적 요인이 가장 큰 변수라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지금 주식시장에 버블이 형성돼서, 시장이 왜곡되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최근 주식시장의 전반적 주가상승이 버블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의 성장 잠재력은 이정도선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관심을 많이 갖고,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 주식시장을 투기의 목적으로 불확실성을 내재한 기업에 투자하는 하는 것은, 주식의 원래목적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향후 진로가 궁금하다. 원래 생각하고 있던 진로는 주식 쪽이 아니었다. 전역하기 전까지만 해도, 광고 분야에 관심을 갖고 나름대로 준비를 했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의 경험도 그렇고, 나에게 주어진 새로운 소질을 발견하게 된 것 같다. 아직 결정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이번 대회의 경험이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사진 : 권병창 사진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10 08

[학생]'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

체코 'Young Package 2004'에서 2등상 수상한 이서영(디자인대·그래픽패키지4) 양 "패키지 디자인의 생명은 실용성, 사용 가능한 디자인 만들려고 노력했다" ‘아름답지 않은 제품에는 소니 로고를 붙일 수 없다’ 일본 소니가 오래전부터 이와 같은 모토아래 디자인 중시 경영을 펼쳐 왔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국내에서도 최근들어 많은 분야에서 디자인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바야흐로 디자인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와 같은 흐름 속에 본교 학생이 외국의 디자인 공모전에서 수상의 영광을 누려 화제가 되고 있다. 이서영(디자인대·그래픽패키지디자인4)양이 그 주인공이다. 이 양은 지난 3월 체코에서 열린 ‘Young Package 2004' 국제패키지디자인공모전에서 대학 부분 2등상을 수상해 본교의 실력이 세계수준에서도 통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줬다. 이번 공모전에는 이탈리아, 캐나다 등 전 세계 12개국에서 23개 대학이 참여했다. 투명한 향수 패키지 디자인을 출품해 수상의 영광을 안은 이 양을 만나 그녀의 디자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처음에는 학교 과제물로 준비했다고 들었다. 3학년 2학기 때 최인영 교수님의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그 수업의 내용은 가상 브랜드를 세우고 최종 패키지까지 만드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내가 그 수업의 과제물로 제출한 디자인을 보시고 외국에서 온 공모전 추천서에 날 추천해 주셨다. 작품을 좀 수정해서 보내 보자는 것이었다. 매년 정기적으로 있는 대회인데, 교수님이 우리 학교에 오신지 얼마 안 되신 분이라 수업을 통해 대회 출전자를 선발한 것은 내가 처음인 걸로 알고 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수업 과제물의 완성도가 높았나? 내가 봤을 때 우리 학교 커리큘럼은 실무 쪽에 강세를 띠고 있다. 그랬기 때문에 수상도 가능했던 것 같다. 이번에 출품한 제품도 실용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소재도 아크릴 류의 플라스틱을 사용했다. 절대 구하기 어려운 재료가 아니다. 나는 구하기 어려운 재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 처음에는 종이로 만들까 생각도 해봤다. 그런데, 플라스틱으로 해서 내용물이 보이게 하고, 녹색과 파란색을 겹치게 해서 가운데 새로운 색깔이 나타나게 하자는 취지에서 일부로 플라스틱을 골랐다. 제품 만들 때 패키지 가격이 올라가면 실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신경 썼다. 영감은 어디에서 얻었나? 이번 작품은 조금씩 수정하고 또 수정해서 나온 결과이다. 어디서 영감을 얻어서 한 번에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다. 처음 만들었을 때는 천운이라는 브랜드로, 30~40대를 대상으로 한 다이어트 식품 패키지였다. 처음에는 향수 패키지로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출품을 결정하고 그것에서부터 조금씩 변형을 시켰다. 변형을 시키는 과정에서 동양적인 특징을 살리기 위해 수저통이나 도장 등도 생각해 봤지만 최종적으로 향수 케이스로 결정했다. 대회에 나가 다른 외국 작품들을 감상한 소감은? 사실 1위작을 보니 뭘 만든 건지 이해도 안 되더라.(웃음) 이번 공모전이 시각적인 측면보다 보관을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를 보는 실용적 측면이 강했기 때문인데, 그래픽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약간 떨어지는 면은 있었다. 우리나라는 이 분야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잘 되리라 믿는다. 개인적으로는 패키지 디자인 보다는 편집 쪽으로 나가서 디자인 일을 계속 해보고 싶다. 제품 패키지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출판 쪽으로 가려고 하나?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보시고 추천해 주신 덕분에 이번 공모전에 나갈 수 있었지만, 사실 원래 편집 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우리 과는 1,2학년 때는 이것저것 많이 배워서 다양한 일들을 하지만, 3,4학년이 되면 구체적으로 방향을 정한다. 지금은 편집 레이아웃 쪽에 관심이 많다. 편집 쪽 공모전에도 많이 출전해보고 싶다. 지금은 졸업전시회 준비로 바쁘지만 끝나면 도전해 볼 생각이다. 또 대학원에도 진학하고 싶다.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이란? 디자인이란 주관적인 판단보다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미적으로도 뛰어나야하겠지만 모두에게 공감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도 디자인할 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더욱 많은 신경을 쓴다. 실용성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번 작품도 충분히 제품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만 재질을 바꾸고 크기를 바꾸면 다른 제품을 위한 포장용으로도 쓸 수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준비했나? 난 부산 예술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준비했지만, 누구나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와서 시작해도 된다. 감각과 창의적인 생각만 있으면 구체적인 방법은 대학 와서 배우면 된다고 생각한다. 사진 : 김달환 취재팀장 hyhavas@ihanyang.ac.kr

2004-09 29

[학생]"주어진 조건에서 최선 다할 겁니다"

연기배우로 거듭날 준비하는 CF계의 샛별 이영아(생체대·무용2)양 CF 속 새침한 모습, 실제는 털털한 팔방미인 지난 여름, 한 인터넷 게임전문 사이트에 ‘아쿠아 걸’이 등장했다. 동글동글한 눈망울에 발랄함으로 네티즌들로부터 궁금증을 자아냈던 그녀. 최근 KTF, LG홈스타, KFC의 CF모델과 에버랜드, 옥션 등의 지면광고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스물 둘의 신인 이영아(생체대·무용2) 양이 그 주인공이다. 연예인이 되기 전부터 각종 학교 축제 사회를 도맡아 끼를 보여줬던 이 양은 재즈댄스 강사, 태권도 공인 2단, 학과 수석입학에 4년 장학생 등 화려한 이력을 지닌 팔방미인으로 통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그녀를 바라보는 눈길은 ‘공주’ 아니면 마냥 ‘콧대 높은 아가씨’가 대부분. 하지만 인터뷰에서 만난 그녀의 모습은 CF 속 새침함을 찾아 볼 수 없고 캠퍼스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솔직 담백’한 22살의 아가씨였다. “늘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녀와의 특별한 데이트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연예계 데뷔는 어떻게 하게 됐나? 우연한 기회에 길거리 캐스팅이 된 케이스다. 헬스를 마치고 친구와 음료수를 마시다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고교 동창을 만났다. 그 친구를 통해 당시 매니저 분을 만났다. 그 후 얼마 되지 않아 ‘방송국 구경가자’는 매니저분의 말 따라 방송국에 갔는데 작가 분들이 출연제의를 해와 당일 날 촬영에 들어갔다. 너무 갑작스러워 별다른 준비 없이 출연한 거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이 내 자신을 드러내는데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솔직한 것만큼 강한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이후로도 편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변의 반응은? 학교에서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무용에 전념 못한다고 좋지 않게 생각하시는 교수님들도 계셔서 마음이 안 좋았다. 또 아버지께서 반대를 하셔서 활동을 하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첫 방송출연을 마친 뒤 1년간의 공백을 가졌다. 그 기간 동안 집안에서 허락도 받고 제대로 된 활동을 위해 준비도 했다. 어렵게 결정한 선택인 만큼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다. 지금은 나를 믿어 주고 응원해 주는 분들의 기대에 걸맞게 열심히 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라고 하던데, 평소 관리는? 보통 인터뷰를 하면 몸매 관리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렇지만 헬스 외에 따로 몸매 관리하는 것은 없고 먹는 양 역시 장난이 아니다. 나도 한때는 70킬로그램까지 나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루 12시간씩 운동을 하고 6시 이후에는 금식해 한 달 동안 15킬로그램을 감량했다. 또 녹차를 하루 1.5리터씩 갖고 다니면서 계속 마셨다. 그래서 총 30킬로그램을 감량한 경험이 있다.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몸매관리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생활은 어땠나? 학과 수석입학생이라고 하던데. 지금은 휴학 중이다. 대학교 1, 2학년 때는 정말 재미있게 보냈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고 무용하는 것도 좋았다. 또 학교 앞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봤고 학과 오티, 엠티도 자주 다녔었다. 한번은 과 선후배들과 놀러 가 차력쇼를 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나를 참한 아이로만 봤던 선배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웃음). 수석입학과 관련해서는,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할 것은 다 하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 주신 덕분이다. 고2 때까지만 해도 노는 것을 좋아해 놀면서 공부했는데 남동생이 같은 학교에 들어오자 변했다. 철이 들어 그랬는지 보는 눈이 있으니 잘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고 3때는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만큼 열심히 했던 적은 없었다. 그 결과 수석입학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실제 성격은 어떤가? 실제로는 꽤 털털하다. 또 일기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길을 가다 이뿐 헤어스타일은 사진으로 찍어 두기도 하고 관련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두기도 한다. 볼지 안 볼지 몰라도 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일 거라는 생각에서다. 그러고 보면 꼼꼼한 면도 있는 것 같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리더역할을 한다. 나서는 편은 아니지만 다들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 한 마디로 결정 내리는 것이 내 역할이니 말이다. 요즘에는 친구들이 나더러 방송에 나가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입만 열면 좋은 이미지가 깨진다나?(웃음) 배우가 꿈이라는데,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 유명해지더라도 겸손한 배우이고 싶다. 누구라도 무시하지 않고 작지만 큰 배려 할 수 있는 그릇이 되었으면 한다. 내 꿈은 노력하면 할수록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맞는 배역 주어지면 열심히 할 것이다. 올해 안에는 좋은 연기로 뵐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별히 닮고 싶은 배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딱히 한 분을 지목 할 수는 없다. 연기를 하기 전에는 유명한 몇몇 분을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모든 배우 분들이 존경스럽다. 최근 근황을 알려 달라. 연기수업을 받고 있다. 서툴었던 모습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현재 제일 하고 싶은 것은 시트콤이다. 내 나이에 걸 맞는 연기를 해보고 싶다. 무용을 할 때는 몸이 많이 힘들었는데 연기는 더 어렵더라.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편하게 할 수 있는 행동들도 연기라고 생각하면 힘들어지니 말이다. 아직은 신인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처음에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친구 분들께 술을 사셨다고 한다. 아버지께 자주 그런 기회를 드리고 싶다. 평소 생활신조가 있다면? 평소 좋아했던 유명 랩퍼의 공연을 보러간 적이 있었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 가운데 내 마음속까지 전해지는 가사가 있었다. “나는 인물도 없고, 실력도 없지만. 나는 열심히 하는 랩퍼...” 어느 정도 이쪽 분야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라고 보여 지는 사람의 고백이라고 생각하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더라. 내가 가진 좋은 조건에서 과연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지, 남들에겐 그냥 노래 가사에 불과했을지도 모르지만 힘들 때마다 그때를 생각하며 매번 다짐한다. 지금은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대신해야 할 것 같다 . 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9 22

[학생]"성실함, 성공의 키워드"

"단결정 프로브 기술로 세계 시장 석권할 것" 벤처육성을 산업부흥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국민의 정부. 하지만 5년이 지난 요즘 그 화살은 되레 불화살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2, 3년 전만 해도 신흥부호 벤처인들의 메카로 불야성을 이루던 테헤란로도 어느덧 황량한 삼성동 뒷골목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벤처성공률 5퍼센트라는 수치가 말해주듯 벤처기업은 고도의 기술력과 치열함을 요구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경제불황은 그나마 5퍼센트를 유지하던 벤처기업 성공률은 더욱 낮추고 있으며, 이제 누구도 벤처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기술력 하나로 쾌속항진을 하는 이가 있다. 바로 아이블휴먼스캔의 임성민(과기대·응용물리 96졸)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이름도 낯선 ‘초음파 단결정 프로브’라는 기술로 한국에서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는 임 동문, 그는 이 분야의 ‘마이다스 손’으로 통하고 있었다. 미래 의학의 지표, 초음파 탐지 프로브 아이블휴먼스캔은 단결정 세라믹 소재를 이용해 초음파 탐지 프로브를 연구·개발하는 벤처회사다. 태아를 탐지할 때 쓰이는 기구로 잘 알려진 초음파 프로브는 초음파 탐지의 80퍼센트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핵심 기술. 이러한 프로브는 인간을 해부하지 않고서도 진단할 수 있기에 미래의학의 지팡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래 의학의 핵심기술로 여겨지고 있는 프로브 연구에는 우리에게도 이름이 익숙한 의료기기 선두업체 GE, 필립스, 지멘스 등이 수십 년간 장기 계획을 수립해 연구개발에 진행해 나가고 있다. 특히나 몸에 아무런 상처를 내지 않고 몸속을 정확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그 기술적 매력에 많은 후발업체들도 앞 다투어 경쟁에 뛰어들고 있는 실정. 세계 굴지의 기업들도 수십 년 계획을 세워 진행하고 있는 이 분야에서 임 동문은 혼자 몸으로 도전장을 낸지 3년 만에 실용화에 성공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창업 때만 해도 누구도 그 가능성을 믿지 않았지만, 그만의 뚝심으로 그 모든 의문들을 잠재운 것이다. 임성민 동문, 학문의 바다에 빠지다 사실 임 동문은 학사학위를 간신히 받았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고백을 빌리자면 그는 학부 1학년 과정만 세 번을 다녔을 정도로 공부와 친하지 않았던 것. 하지만 이런 그가 학문이라는 마법의 세계로 빠진 것은 석사과정을 진학하면서부터였다. 책에서만 배우던 것을 눈으로 확인했을 때의 희열, 그는 그 매력에 빠져 석사를 거쳐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고 말한다. “대학원에 가보니 학부 때와는 다르게 뭔가 보이더라구요. 물론 제가 학부시절 공부를 안했던 것도 있지만,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면서 부터는 단순히 책에서 보던 것들이 실제로 확인하게 되니까 신기했어요.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얻어지는 과정들 하나하나가 저에게는 새롭게 다가왔죠. 그 매력에 빠져들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그에게도 진로에 대한 고민은 찾아왔다. 박사과정 말미에 국내 모 대기업의 연구원으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것. 당시 임 동문은 창업과 취업을 놓고 고민 중에 있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직장 생활 후 창업을 권했지만, 그는 바로 창업을 선택했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 고체물리에 대한 가능성을 믿고 선택한 길이었다고 임 동문은 말한다. “당시만 해도 한창 벤처붐이 불고 있을 때죠. 그 와중에 괜찮은 대우에 괜찮은 회사로부터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저도 사람이다 보니 안정된 생활에 대한 욕구도 있었고, 그러한 제의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공부하고 있던 분야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제가 창업을 선택한 것은 벤처가 유행이어서가 아니라 자신감 때문이었죠.” 자신감에도 이유가 있다 자신감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었던 가장 큰 무기였다. 그리고 그 자신감의 밑바탕에는 그가 석·박사 과정 동안 거둔 연구 성과가 있었다. 이미 대학원 박사 1기 과정부터 외국 학술지에 논문이 실을 만큼 자신의 분야에 대한 독자적 지위를 쌓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차별화된 기술력만으로 창업을 선택했다는 임 동문. 그래서 뛰어든 것이 의료전문업이었다. “의료전문업체 메디슨 社의 창업 인큐베이터에서 시작했습니다. 후배 한명을 데리고 시작했죠. 그 친구는 한 달에 한번, 저는 가정이 있었기 때문에 한 달에 두 번 집에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시를 기억해 봐도 힘들단 생각은 해본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연구 성과가 하나둘씩 나오니까 오히려 재밌더라고요.” 실력과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임 동문이지만, 그에게도 자금난은 피해갈 수 없는 시련이었다. 생산설비를 늘리고 원자재를 구입하려면 자금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가 찾아가는 어느 은행도 그의 기술력 하나만을 믿고 선뜻 돈을 건네주지 않았다. 그는 정부의 벤처육성정책이 구호에만 그쳤다고 혹평한다. “벤처육성이라는 말을 피부로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성과는 나오고 연구시설, 생산설비를 늘려야 하겠는데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몇 명 되지도 않는 직원들 월급도 못 줄 정도로 힘들었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은행문턱은 역시나 높았습니다. 벤처육성이라고 정부에서 이야기하지만 구호뿐인 것 같더라구요. 아무런 지원도 없었으니까요. 우수벤처업체로 선정된다 해도 명예뿐 실질적인 도움은 없었습니다.” 성공의 키워드는 ‘성실함’ 이런 난관을 뚫고 성장한 아이블휴먼스캔은 내년쯤 지금 위치한 시화반월공단에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설비와 연구시설을 갖춘 강원도로 이전할 계획이다. 그는 수없이 많았던 난관을 뚫고 지금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를 뛰어난 두뇌도, 좋은 연구 여건도 아닌 성실함이라고 설명한다.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는 좋으나 불성실한 사람, 머리는 나쁘지만 부지런한 사람이죠. 전 후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머리도 좋고 성실하면 모두 좋겠지만 그러기는 쉽지 않죠. 연구는 시간투자 많이 하는 사람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내와 끈기, 이 두 가지가 좋은 성과의 키워드죠.” 최근 각종 경제지와 일간지 1면을 장식하는 불황이라는 단어가 낯설게만 느껴진다는 임 동문. 5퍼센트의 성공률도, 주변의 만류도, 세계 유수기업을 제치고 세계 최초로 단결정 프로브를 개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두뇌도 남다른 아이디어도 아닌 성실함에 그 이유가 있었다. ‘천재는 1퍼센트의 영감과 99퍼센트의 노력으로 이뤄진다’라는 발명가 에디슨의 격언이 가진 자의 여유가 아니가 아니었음을 느끼며, 아이블휴먼스캔이 벤처라는 꼬리표를 뗄 그 날을 기대해 본다. 학력 및 약력 임성민 동문은 89년 본교 과학기술대 응용물리학 전공의 전신인 물리학과에 입학해 96년 졸업했다. 동대학원에 진학한 임 동문은 98년 석사학위, 2001년 박사학위를 취득 후 초음파 탐지 프로브 기술을 바탕으로 한 ‘아이빌휴먼스캔’을 창업했다. 2002년 전경련 선정 A급 유망벤처기업에 선정되기도 한 아이빌휴먼스캔은 세계 최초로 단결정 프로브를 기술을 상용화해 첨단 의료업계에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9 22

[학생]'불가능한 것은 없다'

"시장 정보 비대칭성 완화하는 회계사가 되겠다" 대우그룹, SK, 그리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까지, 분야도 다르고, 회사 규모도 다르지만 이 기업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분식회계를 통해 투자자와 채권자에게 재무적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IMF 체제 이후 기업의 경영사정 악화로 급증한 분식회계는 경영자의 윤리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이러한 때, 회계 감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보를 가진 투자자와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공인회계사의 몫이다. 얼마전 발표된 제 39회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최연소로 합격한 이재우(경영·경영3)군은 시장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시키는 회계사가 목표. 위클리 한양에서는 만 20세의 나이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이 군을 만나 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합격을 축하한다. 우선 소감을 말해 달라. 합격소식을 접한 직후에는 잘 실감나지 않았다. 이번 시험 합격자 중 최연소 합격자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조금은 실감이 난다(웃음) 다른 합격자들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한 계기가 있다면. 처음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적성검사를 했었는데 내 적성에 맞는 직업으로 회계사가 나왔었다. 그때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경영학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버지의 권유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시험 준비 과정을 말해 달라. 02년 12월, 공인회계사반에 들어간 것이 공부의 시작이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기본지식이 부족해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우선 강의를 들으면서 필기를 열심히 했다. 필기한 내용은 혼자 공부할 때 다시 보면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공부하던 선배들에게 물어서 바로 해결했다. 주로 공인회계사반에서 공부한 편인데 혼자 하는 것보다 굉장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안정적인 준비 공간이 주어지고 정기 모의고사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성적을 관리할 수 있다. 시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쉽다는 것도 공인회계사반 만의 장점이다. 1차 시험을 준비할 때는 학기 중에는 6시간 정도, 방학 중에는 10시간 이상을 공부했다. 주일에 교회를 갔기 때문에 평일에 공부하고 주말에 휴식을 취하는 패턴으로 생활했다. 정기적인 휴식이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능률을 올리는데 효과적이었던 같다. 2차 시험을 준비할 때는 휴학을 하고 시험공부에 집중했다. 시험을 1주일 앞두고는 하루에 한 과목씩 소화한다는 결심으로 하루에 17시간 정도를 공부하며 최종정리를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는지. 다들 그렇겠지만 합격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다. 군대 입대까지 미뤄두고 했던 시험 준비라 심적 압박이 상당했다. 그럴 때는 합격 수기를 읽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긴장을 풀어줬다. 그래도 수험 생활 동안 느낀다는 외로움은 공인회계사반 선배 및 동기들로 인해 많이 덜했다. 이 자리를 빌어 도움주신 이화득 교수님, 공인회계사반 조교 분들 및 선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방법대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수험 생활 동안의 건강관리는 필수적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공부도 계속 할 수 있다. 나 또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헬스를 했다. 막 도전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망설이거나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기가 쉬운데 우선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다.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히 합격이라는 열매가 함께 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공인회계사는 어떠한 사람인지. 크게 회계감사와 세무, 경영컨설팅 등으로 나뉘는 공인회계사의 업무 중에서도 회계감사는 특히 중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공인회계사를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고 한다. 공인회계사는 회계감사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한 감사를 위해 제 3자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도덕성을 겸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거대해진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즉 시장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공인회계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졸업하기 전까지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에 충실하고 싶다.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할 것이다. 방학 때는 회계 법인에서 수습으로 일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선 아직 여러 가지로 생각중이다. 현재의 계획으로는 졸업 후 실무 경험을 쌓고 해외로 유학을 가 학위를 취득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해외의 회계법인 등에서 일하고 싶다. 대우그룹, SK, 그리고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하이닉스 반도체까지, 분야도 다르고, 회사 규모도 다르지만 이 기업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분식회계를 통해 투자자와 채권자에게 재무적 손실을 입혔다는 것이다. IMF 체제 이후 기업의 경영사정 악화로 급증한 분식회계는 경영자의 윤리의식으로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이러한 때, 회계 감사를 통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정보를 가진 투자자와 채권자를 보호하는 것이 바로 공인회계사의 몫이다. 얼마전 발표된 제 39회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최연소로 합격한 이재우(경영·경영3)군은 시장 정보의 비대칭성을 완화시키는 회계사가 목표. 위클리 한양에서는 만 20세의 나이로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이 군을 만나 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모습에 대해 들어봤다. 합격을 축하한다. 우선 소감을 말해 달라. 합격소식을 접한 직후에는 잘 실감나지 않았다. 이번 시험 합격자 중 최연소 합격자라는 것도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분들이 축하해주셔서 조금은 실감이 난다(웃음) 다른 합격자들에게도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싶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다.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한 계기가 있다면. 처음 공인회계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적성검사를 했었는데 내 적성에 맞는 직업으로 회계사가 나왔었다. 그때는 그저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경영학과로 진학하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아버지의 권유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준비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시험 준비 과정을 말해 달라. 02년 12월, 공인회계사반에 들어간 것이 공부의 시작이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기본지식이 부족해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우선 강의를 들으면서 필기를 열심히 했다. 필기한 내용은 혼자 공부할 때 다시 보면서 이해하고 넘어갔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같이 공부하던 선배들에게 물어서 바로 해결했다. 주로 공인회계사반에서 공부한 편인데 혼자 하는 것보다 굉장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일단 안정적인 준비 공간이 주어지고 정기 모의고사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성적을 관리할 수 있다. 시험에 관한 정보를 얻기 쉽다는 것도 공인회계사반 만의 장점이다. 1차 시험을 준비할 때는 학기 중에는 6시간 정도, 방학 중에는 10시간 이상을 공부했다. 주일에 교회를 갔기 때문에 평일에 공부하고 주말에 휴식을 취하는 패턴으로 생활했다. 정기적인 휴식이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능률을 올리는데 효과적이었던 같다. 2차 시험을 준비할 때는 휴학을 하고 시험공부에 집중했다. 시험을 1주일 앞두고는 하루에 한 과목씩 소화한다는 결심으로 하루에 17시간 정도를 공부하며 최종정리를 했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는지. 다들 그렇겠지만 합격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컸다. 군대 입대까지 미뤄두고 했던 시험 준비라 심적 압박이 상당했다. 그럴 때는 합격 수기를 읽거나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긴장을 풀어줬다. 그래도 수험 생활 동안 느낀다는 외로움은 공인회계사반 선배 및 동기들로 인해 많이 덜했다. 이 자리를 빌어 도움주신 이화득 교수님, 공인회계사반 조교 분들 및 선배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자신의 방법대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수험 생활 동안의 건강관리는 필수적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공부도 계속 할 수 있다. 나 또한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헬스를 했다. 막 도전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은 망설이거나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하기가 쉬운데 우선 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시작이 반이다.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히 합격이라는 열매가 함께 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공인회계사는 어떠한 사람인지. 크게 회계감사와 세무, 경영컨설팅 등으로 나뉘는 공인회계사의 업무 중에서도 회계감사는 특히 중요한 업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공인회계사를 ‘자본주의의 파수꾼’이라고 한다. 공인회계사는 회계감사를 통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앞장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한 감사를 위해 제 3자의 입장에 설 수 있는 도덕성을 겸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거대해진 시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즉 시장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해 발생하는 부작용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공인회계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다. 졸업하기 전까지 학기 중에는 학과 공부에 충실하고 싶다. 영어 공부도 꾸준히 할 것이다. 방학 때는 회계 법인에서 수습으로 일할 예정이다. 현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선 아직 여러 가지로 생각중이다. 현재의 계획으로는 졸업 후 실무 경험을 쌓고 해외로 유학을 가 학위를 취득할 생각이다. 이후에는 해외의 회계법인 등에서 일하고 싶다. 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9 08

[학생]'리모델링은 제 2의 창조'

고속버스 터미널 리모델링으로 대상 수상한 이정환, 서정석(석사·건축 5기)군 '리모델링 작업, 아이디어와 실무로 역할분담 통해 시너지 효과 얻어' 건축주는 기존 건축물을 허물고 새로이 짓는 것보다 적절하게 개·보수해 기존 건축물의 사용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당연지사.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들어 이러한 건축물의 운용과 관련한 유지·관리 및 개·보수 부문 시장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우리보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진전이 빨랐던 서구 선진국의 경우, 기존 건축물의 유지·관리와 개·보수에 대한 시장수요가 전체 건설수요의 3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산업화 시간이 비교적 짧았던 우리나라에서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반영하듯 국내 최초로 쌍용 건설이 주관하는 “제1회 리모델링 공모전”이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1천 5백 30개 팀이 참가해 리모델링에 대한 학생들의 뜨거움 관심을 그대로 반영했다. 이번 대회에서 ‘Infra Nexus(강남 고속터미널 리모델링)로 대상의 영광을 안은 이정환, 서정석(건축대학원 석사5기)군을 위클리한양이 만났다. 처음에 어떻게 서로를 알게 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공모전을 준비했나? 서정석(이하 서) : 현재 정환이와는 다른 연구실에 있지만 입학동기로 처음 만났다. 이번 공모전은 정환이의 권유로 같이 하게 됐다. 같이 공모전을 나가 본 경험은 없지만 처음 시작할 때 느낌이 좋았다. 이정환(이하 이) : 일단 리모델링 공모전이란 주제가 독특했다. 리모델링은 현실에 기반을 둬야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대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석이 형은 회사를 다니다 온 실무경력이 있기 때문에 현실적인 기반을 바탕으로 설계하는 장점이 있고 나는 대회경험이 많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컨셉에 중점을 둔 디자인에 자신이 있다. 이런 것들이 잘 맞아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서 : 주제가 비주거 분야와 아파트 분야가 있었는데, 비주거 분야를 선택했다. 비주거 건물 중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가져올 수 있고 공공적인 성격이 짙은 터미널을 선정해 준비하기로 했다. 현재 고속버스 터미널은 30년이 넘은 건물로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이번 공모전은 이것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과정이었다. 정환이는 개념적인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내고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서로의 의견과 생각을 조정해 나갔다. 새롭게 리모델링한 고속버스 터미널에 대해서 소개해 달라 서 : 이 작품이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은 부분은 기존 건물의 사선 기둥에 의한 구조적 결함을 보완하고 승차장으로 사용하던 데크를 확장해 휴식공간으로 조성한 점이다. 현재 승차장 지하는 의류나 침구류 등의 판매시설로 이용되고 있는데 사람들의 접근이 적어 슬램화 되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집어넣었는데, 지방과 서울을 연결해 주는 곳이 바로 터미널이라는 데 착안해 지방에서 이뤄지는 지역축제를 홍보하는 전시장을 두고 이와 관련된 특산품 판매하는 쇼핑센터를 함께 계획했다. 이 : 고속버스 터미널 뒤쪽 성모병원 근처의 산과 앞쪽의 녹지공간을 잇는 녹지축을 건물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중앙에 아트리움(Atrium)을 설치했다. 이는 자연채광과 환기 기능을 극대화 해주는 역할도 한다. 이번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둔 것이 있다면? 서 : 최근 건축계의 주요한 흐름과 관심을 3가지로 꼽자면 우선 친환경적인 건축과, 친인간적인 건축 그리고 지속가능한 건축 즉 리모델링이다. 앞으로 리모델링 시장이 급성장 할 것은 당연하다. 현재 아파트 리모델링이 관심이 높은데 아파트 같은 주거건물 이외에도 비주거 건물과 공공건물 등에도 리모델링이 주요한 흐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 고속버스 터미널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단독 공모전이 아니고 2명이라 팀워크가 중요할 것 같다. 의견충돌은 없었나. 서 : 같은 팀이기 때문에 서로를 배려해 주는 것은 당연하다. 서로를 믿지 못한다면 같이 해 나갈 수 없다. 이 : 나는 아이디어와 디자인 쪽으로, 형은 내부공간과 실무적인 부분으로 나눠 진행했다. 설계는 주관적인 성격이 짙은데 형이 양보를 많이 해주었다. 아무래도 형의 연륜과 경험이 크게 작용 했다고 생각한다. 두 명 모두 이번에 5학기 째이다. 앞으로 진로와 학부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서 :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차분히 기본을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임하겠다. 기본적으로는 설계를 계속 할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항상 배운다는 자세로 공부하겠다. 이 : 무조건 일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큰 목표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열심히 하는 것이다. 특히 공모전 같은 경우는 주제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수상 여부를 떠나서 자신에게 떳떳할 정도로 충실하게 노력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껍데기와 포장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이 건물 속에 녹아나야 할 것이다. 사진 : 변대섭 학생기자 tovegout@ihanyang.ac.kr

2004-09 01

[학생]'책 속에 없는 가르침 있었죠'

몽골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운동 다녀온 임준환(공과대·기계4)군 "봉사는 일상의 한 부분이자 교양인의 입문 코스" ‘해비타트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흔히 쓰는 해비타트(habitat)란 말은 우리말로 ‘거주지’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영어 단어이다. 단순히 ‘거주지’일 뿐인 명사를 ‘거주지를 지어주다’의 동사로 탈바꿈시킨 이들이 있다. 미국 변호사인 밀러드(Millard)와 그의 부인 풀러(Fuller)가 그 주인공.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해비타트 운동은 국내에서도 1980년도부터 위원회가 설립돼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바쁜 요즘,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배품’의 현장에 다녀온 학생이 있어 화제다. 위클리한양이 이번 여름방학 동안 ‘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가 주최한 몽골 해비타트 운동을 다녀온 임준환(공과대·기계4)군을 만나봤다. 몽골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1학기 학교 축제 기간 중 사회봉사단에 관련된 이벤트 프로그램을 맡게 돼 사회봉사단 사람들을 알게됐다. 이 일을 계기로 그 분들과 친하게 됐고, 그런 와중에 몽골 해비타트 운동에 관한 소식을 접하게 됐다. 4학년이란 부담감이 있어 망설이던 중 본교의 참여인원이 무척 적다는 말에 용기를 내서 참여하게 됐다. 최종적으로는 네 명이 몽골에 해비타트 운동을 다녀왔다. 가장 인상에 남는 일이 있다면. 현지인과의 유대감이다. 몽골어를 몰라 보디랭귀지(body language)로 의사소통을 했다. 그러면서도 서로에 대한 가족관계나 취미를 알 수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우리와 생김새와 체형이 비슷해 동네 형을 대하는 느낌이었다. 현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분이 몽골 사람들과 지나치게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를 줬는데, 노래방에 가서 놀 때는 몽골 인들이 지나치게 친근감을 표시에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다. 하루는 산책에서 만난 몽골인 미술학원 선생이 몽골 전통그림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다른 학교 참여자들과 허울 없이 지내게 된 배경에는 우리들을 격식 없이 대해준 몽골 인들의 관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말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느꼈던 점을 말해 달라. 참여자 중에서 여대생들도 있었는데 하나같이 팔을 걷어 부치고 벽돌을 나르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여대생들이라면 하나같이 소극적이고 힘든 일을 꺼릴 것만 같았는데 같이 생활하면서 지내보니 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을 짓는 방식에 있어서도 현지에 가장 적합한 형태의 집을 짓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서양식 주택건물이 아니라 몽골의 전통가옥인 게르(둥그런 이동식 텐트와 같은 집)와 비슷한 모양으로 주위에 벽돌로 두르고 가운데에 난로를 만든 후 지붕을 텐트형식으로 막는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집은 한 가정이 눌러 사는 것이 아니라 유목을 하면서 거주인이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필리핀과 우리나라에선 나무로 집을 짓는다. 각국의 기후와 환경에 적합한 집을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지으면서 문화에 대한 다양성과 포용성을 느꼈다. 국제 자원봉사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새로운 문화체험을 해 볼 수 있다. 몽골과 같이 우리나라보다 경제력이 뒤지는 나라에 갔을 경우 ‘후진국’에 대한 편견을 바로 잡을 수 있다. 경제력만이 나라의 국력이 아니라 현지인들의 문화와 의식 역시 한 나라의 국력을 형성하는 요소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몽골에 가서 무척 놀란 것은 몽골의 공항이 시골 버스터미널 수준이고 가장 큰 도시라고 해봤자 우리나라 시골 읍내밖에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몽골 인들은 생활하는 것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의 욕심 없는 생활이 우리들을 편안하게 만들어 준 배경인 듯 하다. 몽골에 가서 가장 고생했던 점이 더운 기후와 음식이었는데 출발 전 국제 자원봉사에 관한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충분한 정보제공은 국제 자원봉사 참여 희망학생들을 늘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봉사를 어려워하는 학생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단체 활동을 통해서 단합심과 공동체 의식을 배양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가르침인 것 같다. 막상 사회봉사를 접하면 자신의 시간과 정력을 뺏기는 것이 두려워 참여를 망설이게 되는데 처음 계기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봉사란 일상의 한 부분이고 대학생이라는 교양인의 입문과정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필요한 것이다. 어떠한 사회봉사를 하게 되더라도 사회적 약자를 몸으로써 직접 돕는 다는 뿌듯함은 지적만족 이상이다. 사회봉사 중에 자신이 해내는 작업량은 아주 미미하다 할지라도 모이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참여의식’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8 22

[학생]나만의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수상 아닌 도전만으로도 많은 것 얻을 수 있어"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 중이오니...’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멘트다. 발신자는 상대방이 무슨 일로 전화를 받을 수 없는지 알 수 없어 혹시 하는 심정으로 다시 한번 재발신을 누른다. 하지만 회의 또는 급한 업무에 쫓기고 있는 수신자에게는 그것조차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평상시 누구나 겪음직한 이런 상황을 마케팅 아이디어로 타개한 이가 있다. 바로 지난 11일 열린 ‘KTF 마케팅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진수영(경영·경영4)양이다. 진 양은 고객의 부재 상황을 상세하게 안내해 주는 ‘마이 비서 서비스’라는 신규 서비스를 제안해 영예의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누구나 한번쯤 공감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공모전에 참여했다는 진 양. 평소의 경험을 참신한 마케팅 아이디어로 전환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을 말해 달라. 처음 공모전에 참여한 것이 2002년이다. 지금까지 여러 대회에 참여해 받은 상 중 가장 큰상이다. 이번 8월에 졸업을 앞두고 대학생활의 끝을 뜻 깊게 장식할 수 있게 돼 기쁘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출품작에 대해 소개한다면. KTF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자사 서비스 및 마케팅 전략에 대해 마케팅 아이디어 공모를 했다. 고객혜택, 고객서비스, 신규서비스 등의 여러 주제 중에 신규 서비스에 대한 마케팅 아이디어를 출품했다. 출품작은 일종의 신규 부가서비스로 ‘마이 비서 서비스’라고 이름을 지어봤다. 전화가 걸려왔을 시 사용자의 부재 사유를 보다 상세하게 알려주는 서비스로 간단한 조작을 통해 상황 및 통화 가능시간을 설정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가 수업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서비스에 연결해 사유 및 상황, 통화가능시간을 설정해두면 사용자가 설정한 자동응답 안내가 나오게 된다. ‘현재 수업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수업이 종료되는 6시 이후 통화가 가능할 예정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공모전 준비과정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이번 공모전은 대회의 주제를 확인하는 순간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평소에 불편함을 느꼈던 사례에서 생각해낸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조금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1차와 2차 예선에 걸쳐서 본선에 올라가게 됐다. 주최 측에서는 본선 발표 후 10일 정도 여유를 준 다음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게 했다. 실은 신규서비스와 함께 다른 주제로 출품한 작품이 하나 더 있었는데 제시한 두 가지 안이 모두 본선에 선정돼 두 번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파워포인트 작업을 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발표도 긴장하지 않고 의견을 조리 있게 전달하기 위해 사전연습을 많이 했다.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도움 됐던 것이 있다면. 학부시절 마케팅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사례 위주로 특색 있게 진행되는 수업을 들으면서 이론과 실무를 동시에 정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business에 관련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바일 관련 사업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한 적도 있어 공모전 준비에 많은 도움이 됐다. 많은 것을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대회 기간 중 힘든 점은 없었는지. 실은 대회 기간 내내 어머니께서 입원 중이셨다. 대회 준비를 하느라 어머니 간호도 제대로 못해드려 너무 죄송했다. 마침 어머니 퇴원 전날, 발표와 시상이 이뤄졌다. 그동안 잘 못해드린 것을 상으로나마 대신하게 돼 기쁘다. 공모전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노하우를 전한다면. 2년 전부터 여러 공모전에 참여했다. 처음엔 노력한 보람도 없이 자꾸 떨어지기만 했다. 하지만 참여를 거듭할수록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하는지 알게 됐다. 이제는 공모전의 주제에 대해 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단계까지 오게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도전을 통해서 자신이 부족한 것을 깨닫고 그 점을 보완할 수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필요로 하는 공모전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경쟁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보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평가도 할 수 있어 대회가 끝난 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기업이나 제품을 찾아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평소에 관심이 있는 분야라면 그만큼 좋은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학생에게 요구하는 건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참신한 아이디어다. 재학 동안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활용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달라. 마케팅 관련 쪽으로 진출하고 싶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한다면 고객 서비스를 중요시 하는 기업에 몸담고 싶다. 이번 공모전의 주최사도 고객 서비스가 중요한 통신업체가 아닌가. 그동안 마케팅에 대해 배우면서 고객 서비스 분야에 특히 관심이 갔다. 또한 패션 산업 같이 특화된 분야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하는 쪽도 진출하고 싶은 분야다. 사진 :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8 15

[학생]10년 '우정'이 10년 '한'풀다

농구부 우승의 견인차 김학섭, 조성민 군 "10여 년 동안 그림자처럼 동행 했지요" ‘1+1>2’ 잘못된 계산이 아니다. 베스트셀러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박사는 시너지 효과를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와 하나가 모여 둘 이상의 효과와 결과를 만들어 낼 때 우리는 이것을 시너지 효과라고 말한다. 최근 학내 운동부 중 이러한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본 곳이 있어 화제다. 바로 지난달 ‘종별대회 10년만의 우승’이라는 작품을 만든 농구부 조성민, 김학섭(체대·체육 3)군이 그 주인공. 각각 포워드와 가드로 활약하며 상승효과를 얻고 있는 이들은, 9번과 10번이라는 나란한 등번호까지 가진 인연중의 인연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한 팀에 있으면서 전국 대회를 비롯한 다수의 대회를 휩쓸었다는 이들을 위클리 한양이 만나봤다. 우승을 축하한다. 10년 만에 종별대회 대학부 단독 정상에 올랐는데 소감을 말해 달라. 김학섭(이하 김):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한 적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우승이 더욱 기쁘다. 선수들과 감독선생님 모두 고생하셨다. 매일 새벽 5시 반부터 10시까지 연습을 했는데 이러한 강도 높은 훈련 덕분에 좋은 결실을 맺은 것 같다. 결승전에서 속공으로 찬스를 많이 만들어낸 것도 승리에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상대팀보다 한 발 앞선 의욕과 정신력이 우승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 같다. 조성민 선수는 대회의 MVP도 받았는데. 조성민(이하 조): 솔직히 4학년 형이 받을 줄 알았는데 마지막 운이 좋았던 것 같다. 포워드를 하면서 슛을 성공하는 데에는 패스가 정말 중요한데, 가드를 맡은 학섭이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섭이에게 영광을 돌리고 싶다. 서로 십년지기라고 들었다. 둘의 인연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 : 정확히 하면 11년 친구다. 초등학교 때 육상부를 했는데 키가 커서 5학년 때 근처 송촌초등학교 농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초등학교 때 키와 지금 키가 별반 다를 바 없다. (웃음) 농구와 성민이는 이렇게 해서 만나게 되었다. 당시 ‘마지막 승부’라는 농구 드라마가 인기였는데 그 덕분에 농구를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조 : 농구는 학섭이와 마찬가지로 초등학교 때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과 반대로 내가 학섭이보다 키가 작았는데, 키가 많이 클 것 같다며 농구부에 선발됐다. 지역 중심으로 활동하다 보니 학섭이와 초, 중, 고, 대학까지 모두 같은 학교를 다니게 됐다. 자의 반 타의 반이지만, 지금은 내게 무엇보다도 힘이 되어주는 친구이다. 함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김 : 전주고등학교를 다니면서 3년 연속 우승을 했다. 특히 3학년 결승전 때 역전을 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3점차이로 지고 있었는데 성민이가 종료 직전에 파울을 얻어냈다. 프리드로 3점을 성공하면 연장전으로 갈 수 있었는데, 마지막 한 구가 골대에 맞고 나왔다. 이 공을 성민이가 다시 리바운드 해서 골로 연결해 1점차로 승리할 수 있었다. 농구를 하면서 가장 스릴 있었던 순간이었다. 서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것 같다. 상대방의 장점을 말해 달라. 조 : 학섭이는 개인기가 좋다. 가드는 슛 기회를 잘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한데 학섭이는 슛 기회를 만들어주는 패스 능력이 강하다. 또한 팀 리더로서의 인솔력이 강하다. 가드가 실책하면 경기가 망가지기 십상인데 그런 면에서 경기 운영능력이 탁월하다. 이번 우승의 원동력도 학섭이의 리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 성민이는 공격 패턴이 다른 선수와 다르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한 템포 빠르게 혹은, 느리게 접근하기 때문에 돌파력도 좋다. 무엇보다도 승리에 대한 집념이 누구보다도 강하다. 지난 시험기간에는 답안지를 작성한 후 마지막 부분에 늘 ‘교수님 꼭 우승하겠습니다’라는 구절을 적고 나오기도 했다. 농구를 하면서 안타깝거나 힘든 적은 없는지. 김 : 우선 사회적으로 농구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안타깝다. 내가 농구를 시작할 때처럼 농구 드라마를 한 편 만들면 다시 인기를 얻지 않을까 생각한다.(웃음) 거의 모든 시간을 훈련해야하기 때문에 과 친구들과 친해질 기회가 많지 않은 것 또한 아쉽다. 그래도 성민이가 곁에 있어서 든든하다. 조 : 우리학교는 다른 학교에 비해 전체적인 지원이 약하다. 특히 응원에서 그것을 많이 느낀다. 대학농구의 인기가 사그라진 까닭에 경기를 할 때면 장내는 거의 비어있다. 그나마도 대개 다른 학교의 응원을 듣게 되는데 앞으로는 우리를 응원하는 모습도 종종 보고 싶다. 지난 월드컵의 경우처럼 경기에 있어 분위기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 조 : 기복 없는 선수가 되고 싶다. 한 번 유명해졌다 사라지는 선수가 아닌, 꾸준히 노력해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고 싶은 바람이다. 우선은 2006년에 있을 드래프트를 위해 열심히 뛸 생각이다. 김 : 무엇보다도 독특한 농구를 하고 싶다. 데니스 로드맨처럼 개성 있는 선수를 좋아한다. 골 세레모니 하나를 하더라도 모션이 크고 자유분방한 모습이 보기 좋다. 이렇게 색깔 있는 선수가 되기 위해 기본기 수련도 더욱 열심히 할 것이다. 서로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김 : 성민이는 본교의 에이스지만 나에게는 그림자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림자처럼 떨어질 수 없기도 하거니와 앞에서, 옆에서, 혹은 뒤에서 보이지 않게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친구기 때문이다. 조 : 간단히 말하면 동행자다. 10여 년 동안 동행을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혹자가 말하는 라이벌 의식은 애초에 생길 틈이 없다. 포워드와 가드라는 공생의 관계로서 학섭이와 영원한 동행을 하고 싶다. 사진: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8 08

[학생]"봉사요? 제가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세계무대에서 보고 경험하는 것, 그 무엇보다 값져" 자유의지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Voluntas. 자원봉사란 용어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이것은 인류사회의 협조를 위한 인간 개인의 자유의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개인의 선의에 의한 자발적으로 이웃을 돕는 자원봉사는 각박한 세상에 윤활유가 되고 있다. 이웃에 대한 작은 관심에서 시작되는 자원봉사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방학을 맞아 해외에 나가 봉사활동과 기능교습, 나아가 문화교류 활동을 하고 돌아온 이주형(언정대·광홍2)군. 한 달 가까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더 많은 것을 배웠다는 이 군을 위클리한양에서 만나봤다. 해외청년봉사 프로그램에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평소 국제교류와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 사회봉사단 게시판에서 태평양아시아협회(PAS)의 해외청년봉사단에 대한 정보를 얻어 신청하게 됐다. 봉사활동 할 지역은 자신이 선택하는 것인데 평소 친구가 추천했던 러시아를 선택했다. 많은 학생들이 유럽 쪽을 선택하지만, 러시아에 유럽 못지않은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가기 전 많은 준비를 했다고 들었다 해외청년봉사단으로 최종 선정된 것은 지난 겨울이었다. 2월에 전체 워크숍을 통해 팀원과 인사를 하고 3월부터 6월까지 매월 정기적으로 만났다. 러시아에서의 우리의 활동은 단순한 봉사활동 뿐만이 아니라 문화교류 활동도 병행 했다. 그래서 출발하기 전 태권도, 사물놀이, 한지, 다도 등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를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대학의 풍물동아리의 도움을 받아 풍물을 익히고, 다도는 다도전문가의 자택에 가서 직접 배웠다. 나는 태권도팀 팀장을 맡게 됐는데 봉사단을 후원하는 체육관에 주말마다 나가 태권무와 격파 연습을 했다. 한 달 가까이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활동들을 했나? 러시아 사하공화국 소재의 야쿠츠크 악쫌쯔 여름캠프에 참가했다. 사하공화국의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의 문화와 교육을 전파하는 것이 주된 활동이었다. 그동안 연습했던 전통 문화를 전해주고 공연을 했다. 마침 파견지역인 야쿠츠크시에서 아시아의 사회주의 체제 나라들이 참가하는 아시아청소년올림픽이 개막됐었고, 개막식에 공연을 하기도 했다. 올림픽에 참가한 북한 선수들을 만났을 때는 기분이 묘했다. 이 외에도 마침 그곳에서 열리던 수학·과학 올림피아드의 개막공연과 폐막공연을 해 한국문화를 보여주고 함께 즐겼다. 캠프의 마지막 날에는 ‘한국의 날’이라는 행사를 통해 러시아 학생들과 함께 그동안 배우고 가르친 것을 공연하고 한국음식 페스티벌도 열었다. 한 달동안 우리 봉사단은 야쿠츠크시내를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유명인사였다(웃음). 돌아오는 길에 사회봉사단과 국제협력실에서 지원해 준 기념품도 전달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야쿠츠크의 한 공원에 러시아 아주머니가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쓰러져 있었다. 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구조대에 연락을 한 뒤 간단한 응급처치를 했다. 수상안전요원 자격증을 땄는데 그 때 배운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 해외에서 내 작은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뿌듯했다. 이번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느낀 점이 많을 것 같다 야쿠츠크에 도착해서 가장 놀란 것은 그 곳의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한 주변 환경에 한 달이 너무나 평화롭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한 달 가까이 생활하면서 주고 온 것 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 빡빡했던 학교생활에 지쳤던 나에게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됐다. 한 달 동안의 바쁜 일정에 몸은 지쳤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행복했다. 정도 많이 들어서 마지막 날에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는 여학생들도 있었다. 국제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국제활동의 매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무엇보다도 자신의 안목을 넓힐 수 있다. 이번에 다녀온 야쿠츠크시도 서울에 비하면 아주 열악하지만 배울 점이 참 많았다. 후진국이라고 할지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배 우고 느낄 수 있는 점은 많다. 학과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외에 나가서 보고 경험하는 것은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잘 활용하면 학과공부와 다양한 경험 모두 할 수 있다. 방학을 잘 활용해야한다. 직접 보고 부딪치는 것은 자신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준비 과정은 힘들지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런 국제적인 행사에 계속 참여할 생각이다. 사진: 권병창 학생기자 magnum@ihanyang.ac.kr

2004-07 22

[학생]"발명의 문턱,높지 않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 보다는 끈기와 노력이 필요" 지난 21일부터 25일까지 코엑스 태평양 홀에서는 특허청과 조선일보사가 공동 주최한 대한민국학생발명전이 열렸다. 응모한 4천여 점의 작품 중 6백여 점을 뽑아 상을 수여하고 수상작을 전시하는 이번 발명전에서 본교 심대선(공과대·분자시스템 4)군이 최고상인 대통령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대상은 생활 속에서 수없이 부딪히는 ‘자전거’. 지우개 달린 연필, 연통 없는 난로가 세계적 발명품이었듯 그의 ‘자전거 정지시 두발로 서게 내려가는 안장’ 역시 누구나 불편해 하지만, 누구도 고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생활의 불편함을 개선하려는 노력’ 심 군은 이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발명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꾸는 발명, 그 발명의 세계로 심 군과 함께 들어가 보자. 이번 수상작에 대해 설명해 달라 평소에 자전거를 즐겨 타는 편이다. 그런데 자전거가 정지해 있을 때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이 늘 불편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내릴 때는 안장을 낮추고 주행 중에는 안장을 높일 수 있게 한다면 편할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특허청에서 대학생들의 아이디어를 무료로 실용실안 등록해 준다는 공고를 봤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켜 신청했는데 실용실안 등록이 됐다. 이것이 이번 발명의 시작이다. 볼펜심이 나오고 들어오게 하는 원리를 이용해 스프링을 사용, 정지했을 때 안장이 내려갈 수 있도록 했다. 발명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실용실안 등록 후 무턱대고 발명품을 만들어 보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용접이나 기계공작을 할 수 없어 청계천 공구상가로 가서 부품을 만들어 와야 했다. 자전거도 내 것과 아버지 것, 옛날 여자친구에게 받은 것, 이렇게 3개나 들어갔다. 무엇보다 ‘내 발명품이 과연 쓸모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던 중 탔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는 자전거가 자신에게 맞는 자전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덕분에 내 발명품의 실용성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다 큰 녀석이 자전거 붙잡고 끙끙대는 모습이 싫었던지 어머니와 형은 반대했지만, 나보다 자전거를 더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는 계속 용기와 도움을 주셨다. 평소에 발명에 관심이 많았나? 초등학교 때 발명반 활동을 잠깐 한 적은 있지만, 실제 발명해 본 적은 없다. 단지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발명해 보려고 늘 생각해 왔다.(웃음) 이번 발명품은 대통령상을 받았지만, 그 전에는 발명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에 제출해야 하는 발명노트가 없어 A4지 한 장에 대충 정리해서 담당자 분에게 꾸중을 듣기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 자전거 이용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다는 상주 시청에서 자전거 박물관에 내 작품을 전시 했으면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 밖에도 전시회에서 내 발명품을 보고 자전거를 사겠다고 연락해온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발명에 대한 상품화 계획은 없다. 금상 이상 수상작품은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청소년발명전시회에 전시되고 수상자에게는 견학 기회가 제공된다. 다음달 쯤 출국할 예정이다. 그 곳에서 각국의 발명품들을 많이 보고 배워 올 생각이다. 발명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지속적으로 발명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필요한 물건을 그대로 쓰는 것보다 고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도 계속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발명품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니다. 다만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면서 불편했던 점을 고치려고 했던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발명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위한 끈기와 노력이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발명이 일상화돼 로열티를 많이 받는 발명 강국이 됐으면 한다. 전공이 발명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데 앞으로의 진로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평소 전공 수업시간 중 교수님들이 이론수업과 함께 발명을 권장하신다. 덕분에 발명에 관심을 가지고 특허법과 관련된 교양수업을 듣기도 했다. 비록 섬유라는 전공이 발명과 직접적으로 관련은 없을지라도 이 분야에서 필요한 물건을 만들고, 또 고치기도 하면서 발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내 분야에서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한창재 박사님도 실제 이론을 응용해 각종 기계를 발명해 나간다고 들었다. 나도 전공 공부를 바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사실 이번이 첫 발명이지만 이번 수상을 계기로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처음에 반대했던 가족들도 벌써 ‘이런 걸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냐’며 이것저것 제안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곧 다음 발명품이 탄생할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