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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 01

[교수]‘수고하셨습니다’ 교수·교직원 정년퇴임식

본교를 위해 한평생을 바쳐온 한양지기들이 정든 교정에 아쉬운 작별 인사를 고했다. 지난 25일, 본교 서울캠퍼스 백남학술정보관 국제회의실에서 ‘2004년도 후반기 교수·정년 퇴임식과 직원 정년·명예 퇴임식’이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김종량 총장 외 여러 정년퇴임 교수와 교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들의 가족, 제자들이 함께 해 본교 발전을 위해 헌신의 노력을 다한 이들의 은공를 기렸다. 앞서 시작한 ‘교수정년퇴임식’의 주인공은 문정희(도시대학원·도시건축설계) 교수, 김재환(의대·신경정신과학교실) 교수, 이기옥(사회대·행정) 교수, 최영길(자대·생명) 교수, 유인학(법대·법) 교수, 김경자(사대·응용미술) 교수, 최창국(체대·체육) 교수, 현길언(국문대·국어국문) 교수 이상 총 8명이었다. 교무처장 이연택(사회대·관광) 교수는 “본교를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부상시키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쉼 없이 정진한 퇴임 교수님들이 자랑스럽다”며 “전공분야 연구 외에도 인재양성, 봉사활동, 저서 집필 등의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셨다”며 퇴임교수들의 재직기간 중 높은 업적을 평가했다. 퇴임교수 대표 인사를 한 이기옥 교수는 “30년 동안 몸담은 이곳은 나에게는 친정과도 같은 곳이다”라며 “자식과도 같은 학생들 곁을 떠나려니 섭섭하다. 한양인임을 영원히 가슴으로 기억 하겠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진행된 ‘직원 정년·명예 퇴임식’ 행사는 총 14명의 교직원을 대상으로 열렸다. 행사를 주관한 인사과 양정숙 인사팀장은 “본교를 위해 묵묵히 어려운 일도 마다않고 열심히 해준 그들이 있었기에 현재의 한양이 존재 할 수 있었다”라며 “그들이 일궈놓은 성과를 바탕으로 더 열심히 일하는 후배가 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라고 떠나는 선배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올해 정년퇴직을 맞은 송일용(안산캠·총무관리처) 씨는 “긴 세월동안 본교 여러 부서에서 동료들과 동고동락하며 열심히 일했던 시절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하다”라며 “예나 지금이나 한양을 사랑하였지만 앞으로도 변함없이 영원히 한양을 사랑하겠으며 떠나는 우리를 잊지 말아 달라”라며 퇴임인사를 즈음했다. 특히 이번 행사는 본교에서 마련한 공로패뿐 아니라 모든 정년퇴임 교수에게 대통령 및 국무총리 훈장이, 정년·명예 퇴임교직원 10명에게는 교육인적자원부장관 표창이 수여됐다. 대외적으로도 그 공을 인정받아 그들이 본교를 위해 수 십 년 동안 흘린 땀과 노력에 더욱 값진 의미를 부여했다. 상을 전달한 김종량 총장은 “격동의 시절 속에 본교의 주춧돌을 쌓고 체계를 잡아간 그들이야 말로 한양의 진정한 빛과 소금이다”라며 “시작되는 ‘제 2의 인생’에서도 남은 후학들과 후배들에게 더 진한 가르침의 향기를 뿜어주시길 바란다”며 퇴임 교수, 교직원을 배웅했다.

2005-02 22

[교수]미술도 실용주의로, 사범대 이부연 교수

많은 사람들이 현대 미술에서 순수와 상업·응용 간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언급한다. 실제로 사회 전반에서 우리는 전통적인 의미의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개념의, 새로운 유행들을 끊임없이 창출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중반 앤디 워홀은 일반 대중의 흥미와 취미가 반영되지 않고,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전제되지 않는 예술에 대한 저항으로 팝 아트(Pop Art)라는 장르를 선보였다. 본교 이부연(사범대·응용미술) 교수의 영역은 팝 아트의 장르로 규정짓기는 힘들지만 실용주의자라는 점에선 공통적이다. 감상만을 위한 작품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1989년 예술의 전당 개관 기념전을 비롯한 수십 회의 전시회, 1988년 일본 도예가회 주최 도예전 협찬상 수상 등 이 교수의 도자 공예에 대한 애착과 노력은 남다르다. 지난 2001년 본교는 그런 이 교수의 열성 덕에 이천 도자기 엑스포에서 타 대학들의 스무 배가 넘는 규모의 대형 전시관을 열었다. 이러한 도자기 사랑은 우리 것에 대한 이 교수의 강한 자부심에 근거한다.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우리의 도자기 역사는 중국을 비롯한 4대 문명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기에 도자기 엑스포 같은 행사를 통해 자랑스런 문화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 97년부터 ‘한국미를 찾는 도자모임'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한 이 교수는 늘 ’우리 것 다시 찾기'를 강조한다. 전통에 바탕을 두고 한국인의 아름다움을 되찾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식을 줄 모르는 창조력의 원천에는 21세기 한국의 정서와 정체성을 도자기로 빚어내려는 노력이 숨어 있다. 이 교수는 전인교육을 위한 도구로도 점토를 이용한 도자 공예를 예찬한다. 사람이 상상한 모든 것을 구현할 수 있는 점토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교육의 지상 목표인 전인교육 실현은 물론 아이큐와 감성, 사회성을 비롯한 손과 팔 근육 발달을 통해 육체적 성장까지 촉진시킬 수 있다. 아동들의 조기교육에 매우 유용하다 할 수 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정신 및 지체부자유 아동의 교육에도 점토는 매우 효과적이라 말한다. 국내에 응용미술교육이 도입된 역사는 50년 정도로 매우 짧은 축에 속한다. 미술교육계의 유학 1세대인 그는 지금도 이 분야의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세상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해 나가는 응용미술분야야 말로 학생들에게 최신의 정보를 제공하는 유익한 학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21세기에는 세계화의 조류를 놓치지 말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승부해야 하며, 이를 위해 한국의 미를 잊지 말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미의 현대화를 이루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 교수의 조언은 귀를 기울여야 할 빛나는 보배이다. 학력 및 약력 이부연 교수는 1975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77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다. 이후 83년 미주리 콜럼비아 대학에서 미술교육 박사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후 지금까지 본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내 논문 11편, 국외 논문 1편을 발표했으며, 개인 작품전은 국내와 국외 각각 3회, 4회씩을 열었다.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 추천작가, 초대작가 및 심사위원, 제7차 미술교육과정 심의위원, 한국도자공예가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미를 찾는 도자모임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미술교육학원론』이 있다.

2005-02 22

[교수]‘실용성과 현실성’ 경영학부 예종석 교수

흔히 마케팅은 기업 경쟁력 유지의 핵심이 된다고 말한다. 근래 우리나라의 기업들 역시 마케팅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지만, 아직 선진 기업들에 비하면 그 실행 능력에서 많은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격차는 곧 사라질 것이라고 확신하는 학자가 있다. 바로 경영대 경학학과의 예종석 교수. 그는 나아가 '국가마케팅을 통해 '대한민국' 브랜드 가치를 높임으로써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단언한다. 예 교수의 본래 전공은 경제학이다. 경제학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그였지만, 우연한 기회에 마케팅 과목을 수강한 것이 전공을 바꾸는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가정(假定)'의 학문이라는 경제학에서는 알 수 없었던 현실성과 실용성을 마케팅이란 학문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전공인 '소비자행동 이론'에 있어서도 경제학에서는 효용이론을 설명하는데 비해 마케팅에서는 심리학이나 사회학적 배경을 가지고 분석함으로써 더욱 합리적으로 접근된다고 설명한다. 현재 본교 경영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예 교수는, 동시에 한국 마케팅학회 편집위원장, 한국 소비자학회 고문, (주) 제일모직 사외이사, (주) 두산 사외이사 등의 직함 아래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또한 국내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지난 2000년 창립된 아름다운재단의 정책자문단장으로 활동 중인 그는 '1% 나눔운동'을 주도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세상을 살아가는 제일 좋은 전략은 겸손함”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학생들에게 기본적인 예의를 지킬 것도 당부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제일 관대한 곳입니다. 사회에 나가면 야단치는 사람이 없죠. 다만 외면하고 낙오시킬 뿐입니다.” 예 교수는 본교의 학생들에게 아쉬운 점은 바로 '겸손'이라는 덕목이라고 덧붙이며, 겸손함이란 자신의 잠재적 브랜드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는 인생 경영의 중요한 전략이라고 말한다.

2005-02 15

[교수]‘시를 통한 인문학의 부활’ 국문과 이상호 교수

인간의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해 인류의 삶을 행복하고 기름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인문학이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바르지 않다면 문명은 파괴 쪽으로만 갈 것 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가치는 점점 물질적 가치에 밀려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본교에서 박목월 시인을 스승으로 모셨던 이상호 교수는 과거의 스승과 같이 시인이며 국문학자이다. 사람들이 인문학적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것 때문에 이 교수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이상호 교수는 인문학이 변화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생각은 자신의 저서 '디지털 문화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있다. 그는 시적 상상력에 대한 현대적 맥락의 해석을 제시한다. "과거 산업사회가 위계적이라면 디지털 시대는 비위계적이며, 일탈적입니다. 이렇듯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디지털 시대의 속성과 그 토대를 같이하는 것이 바로 시적 상상력입니다. 전통의 시가 정신속의 디지털이라면, 현대의 디지털 시대는 기계 문명 속에서 풀어낸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그는 시를 읽는 행위야말로 공자가 언급한 '사무사(思無邪)'에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믿는다. 이 교수는 그의 신념을 실천하고자 한다. 그래서 시의 대중적 보급을 위해 항상 분주하다.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역임했을 때는 전국 광역시들을 돌아다니며 '시 낭송회'와 '시 창작강연'을 주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 낭송회를 위해 두 달 동안 홍보했어도 겨우 1백 명의 관객을 모았다. 그는 이제 시집 사보기를 기다리는 시대가 아닌 시인의 직접 찾아가야만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고 말한다. 시인은 물론 예술인들은 이제 적극적으로 대중 앞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이 교수는 강조한다. 비록 대중의 물결과 시대적 조류를 막지는 못하겠지만 세간에 팽배한 아류문학의 거품들을 거두어 내는데 예술인들이 앞장서고 그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그는 덧붙인다. “시에 대한 참 맛을 느끼게 하고, 인터넷을 통해 조악하게 만들어지고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시 아닌 시들을 식별해 내는 안목을 키우기 위해 이제 시인들이 직접 움직여야 할 때입니다." 학력 및 약력 이상호 교수는 1954년 경북 상주에서 출생했다. 본교 국문과에서 학사를 마친 후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동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2년 월간 '심상'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신인상, 편운문학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한국 시인협회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현재 안산캠퍼스 국제문화대학 국문화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표 작품집으로 『금환식』,『그림자도 버리고』,『그리운 아버지』, 『웅덩이를 파다』 등이 있으며 『한국현대시의 의식분석적 연구』,『희곡원론』, 『디지털 문화 시대를 이끄는 시적 상상력』 등의 다수의 저서가 있다.

2005-02 15

[교수]‘미래형 자동차 선두주자’ 기계공학부 선우명호 교수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자동차는 우리의 삶 속에 너무나 깊이 들어와 있다. 지난 2002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자동차 생산량은 3백 14만 8천대로 세계 총생산량의 5.3퍼센트를 차지하며 세계 6위에 올랐다. 선우명호 교수는 국내 자동차 연구의 최고 권위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사람이다. 이는 기계공학과 전기공학의 학제 간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1979년 본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선우 교수는 그 뒤 미국으로 건너가 석사학위를 마치고 세계 굴지의 전자회사인 필립스를 거쳐 세계 1위의 자동차 생산 업체인 GM 연구소에 있었다. 선진 자동차 기술을 접한 뒤 그는 1993년 본교에 부임했다. 선우 교수는 "필립스에 있다가 GM으로 옮긴 후 회사측에서 장학금을 줘서 박사과정을 밟았는데 결국 학위논문도 자동차에 관한 것으로 썼다. 전기공학를 전공했던 경력은 오히려 자동차 연구에 수행하는데 큰 경쟁력이 됐다"고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이제 기계적·물리적 산업이 아닌 첨단의 전자기술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자동차들은 적게는 30여 개, 많게는 약 70여 개의 컴퓨터 장치가 탑재되는 전자산업의 산물이다. 엔진은 물론 트랜스미션과 현가장치, 제동장치 심지어 타이어에도 첨단의 전자기술은 빠지지 않는다. 선우 교수가 이끌고 있는 자동차전자제어연구소(Automotive Control and Electronics Laboratory, 이하 ACE 랩)는 자동차 파워트레인, 새시, 그리고 차체와 관련한 각종 전자 제어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소다. 국내 최고를 자부하는 연구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ACE 랩은 지난 2000년, 세계 최대의 통신 및 자동차 반도체 회사인 모토로라와 2010년까지 10년간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과의 배기환경연구센터(Center for Environmental Research and Technology)와도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2001년 6월에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케피코와 함께 공동연구컨소시엄을 구축했고 지난해 6월에는 과학기술부로부터 5년간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가지정연구실로 지정됐다. 연구비 수주액도 연평균 10억원에 달해 개인 교수 연구실로는 전국 최대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자동차 전자제어기술과 관련한 고급인력 확보를 위해 산업자원부 지정 교육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또 선우 교수는 현재 산업자원부와 과학기술부가 공동으로 추진하는 미래형 자동차 개발 사업의 사업추진단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는 차세대 지능형 자동차 생산에 있어서 선진국에 뒤지지 않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갖고 있다. 선우 교수는 연구 개발된 내용과 실용화 단계를 효율적으로 접목시키고자 한다. 또 선우 교수는 앞으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 개발을 지원해야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 자동차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망한다. 학력 및 약력 선우명호 교수는 1979년 본교 공과대를 졸업하고 이후 1983년과 1990년 텍사스주립대와 오클랜드대에서 각각 공학석사 및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필립스, GM 연구소를 거쳐 지난 1993년 본교에 부임했고 전공은 시스템 모델링 및 전자제어시스템 설계로 알려져 있다. 한국자동차공학회, 대한기계학회, IEEE, 대한전기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고, 논문으로 국내 44편 국외 16편이 있다.

2005-02 15

[교수]‘외유내강의 청빈한 선비’ 국교과 최래옥 교수

최래옥(사범대·국어교육) 교수의 연구실 책장을 가득 매운 책 뒤를 살피면 그와 학생들이 전국을 누비며 녹취해 온 설화며, 전설, 노래, 속신어, 방언 따위의 테이프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마치 첩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보물이라도 감추듯 책장의 책들 뒤로 그것들을 감추어 놓은 이유를 굳이 물으니 '누가 훔쳐갈까봐 걱정이 되서'라고 너스레를 떠는 최 교수다. 십 수년 세월의 먼지를 얹은 것부터 올 봄 답사의 녹취물까지 책장 구석구석에 꼭꼭 숨겨놓은 3천여 개의 낡은 테이프에 대한 그의 애정은 각별하다. 하긴, 그 테이프들 중 어느 것 하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옛 이야기 하나를, 노래를 그리고 언어 하나를 우리의 기억에서 영구히 잃어버리는 것과도 같은 것 일수도 있겠다 생각하면 그의 남다른 애착에 이해가 간다. 최 교수는 한국 구비문학 연구에 있어 가히 독보적인 존재다. 지난 1968년 탈고한 석사논문, '설화와 그 소설화 과정에 대한 구조적 분석'을 시작으로 지난 30여 년간, 수 백 편에 달하는 논문과 답사 보고서 그리고 수 십 권에 달하는 단행본 저서를 통해 그가 천착해 온 것은 한국의 구비문학 연구사 그 자체에 다름 하지 않는다. 스스로가 성취한 학문의 업적을 겸손한 유머로 휘둘리며 너털웃음을 짓는 최 교수는 영락없는 이야기꾼이다. 본래, 이야기를 소재로 학문을 했던지라 부지런한 귀 만큼이나 달변의 입을 지닌 것도 새삼스레 놀랄 것이 아니다. 수업 시간에 갖은 재담으로 학생들의 혼을 빼놓기도 하고 흥이 나면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하는 그다. 스스로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자랑스레 소개하는가 하면 수업에 불성실한 학생들에게는 따끔한 불호령도 잊지 않는다. 무릇, 수업에는 '지육(智育)'도 있어야 하지만 '재미'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근엄하고 권위적인 스승의 모습보다 '어려운 것도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강의', '흥이 있는 강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야기꾼 최 교수의 강의 철학이다. 구비문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절한 아쉬움의 반영이기도 하다. 그는 변변한 글 하나로 기록되지 못한 채 국문학 연구에서 소외되었던 구전의 민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소멸되어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민중들의 삶 속에서 입에서 입으로 수백년의 세월을 거쳐 전승되어온 사연과 노래들이 '가볍다'는 이유만으로 연구에서 배제되고 잊혀지는 학계의 풍토에 그가 반기를 든 것은 과거에 대한 올바른 관심과 애정은 가장 미래지향적인 작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됐다. 구전자료들이 모두 소멸되어 버리기 전에 조사만이라도 시급히 해서 기록을 남겨두어야 한다며 “이미 사라졌거나 지금도 소멸되고 있는 구전자료들은 엄연히 우리의 문화이고 선인들의 지혜가 녹아난 산물이다”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구비문학의 이야기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구비문학을 전할 수 있다면 어느 곳이든 마다하지 않고 달려간다. “구비문학을 툼레이더 같은 영화나 뮬란 같은 만화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라며 “한류가 다른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것 보면 한국적인 정서가 세계화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그리고 책상 구석구석에 꼭꼭 숨겨놓은 3천 여 개의 녹음 테이프를 문헌으로 정리하고, 60여권 가량의 저서를 1백 권까지 채우고 싶다고 했다. “구비문학은 연구량이 많고 어렵지만 도전해 볼만한 가치와 매력이 있어요”라고 최 교수는 덧붙였다. 학력 및 약력 지난 1940년 전라북도 운봉에서 출생한 최래옥 교수는 81년 서울대 국어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82년 본교에 부교수로 부임하고 이듬해 지금까지 정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최 교수는 현재 베데스다 장애인선교회 이사장, 무형문화재 위원장을 지내고 있다. 저서로는 83년『한국전래동화집 5권(창작과 비평사)』,『89년 풀어 읽는 우리 신화(고려원)』,『93년 되는 집안은 가지 나무에 수박 열린다(미투)』,『94년 천냥짜리 입담(동아출판사)』,『98년 눈치 빠른 놈은 절에 가서도 젓국 먹는다(제삼기획)』,『99년 그래 그래 좋아 좋아(제삼기획)』 외 60여권이 있다.

2005-02 15

[교수]‘IT인력양성의 선봉장’ 정통대 이병호 교수

대형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 바코드를 찍을 필요 없이 출구를 지날 때 가격이 계산된다. 더 이상 종이 지폐도 점원도 필요 없다. 책, 침대, 의자, 보일러, 차량, 냉장고, 전등 등이 디자인을 가지듯 모든 사물이 칩을 가지게 되는 세상. 이것은 장차 유비쿼터스(ubiquitous)가 실용화될 때의 세상을 스케치한 내용이다. 유비쿼터스란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는 라틴어로서 유비쿼터스 컴퓨팅의 줄임말이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것을 이용하더라도 온라인 네트워크 상에 있으면서 서비스를 받는 환경과 공간을 의미한다. 정보통신대에서 미디어통신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이병호 교수는 이러한 온라인 네트워크를 효율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이 교수는 1980년 한국전자연구원에서 국제전화가 가능한 디지털전화기 개발 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숱한 밤을 새우며 만든 프로그램을 신형 전화기에 적용시키고 난 후 완성된 제품을 처음 사용했을 때의 짜릿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는 이 교수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SDR(Software Defined Radio) 단말기를 구축하는 것이다. SDR을 직역하면 다중모드로 움직이는 단말기로 풀이되는 데 쉽게 말하면 PCS와 셀룰러폰 방식을 하나의 기계로 동시에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상용화되면 하나의 기계로 세계 어디서나 다양한 통신방법을 소화할 수 있어 기계를 교체해야하는 번거로움과 비용부담을 덜 수 있게 된다. 이 SDR은 이 교수가 단장으로 있는 본교의 연구특성화 IT사업단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대학과 기업간의 원활한 협력을 바탕으로 한 연구 활동 뿐 아니라 그가 요즘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고급 IT인력을 양성하는 것. 기업이 원하는 수요 지향적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기업과 대학, 연구소, 정부, 관련 단체들이 총 출동한 'IT인력양성협의회' 가 발족돼 초대 회장으로 이 교수가 추대된 것이다. "이 협의회가 활성화되면 전문대 정도의 소양을 갖춘 사람과 대학과 석사과정에서 좀더 고급화된 인력, 그리고 박사 이상의 최고급 인재양성을 효율적으로 조절함으로써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할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IT 전문인력 양성은 본교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정보통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단과대를 설립해 이미 그것을 실현하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정보통신학부는 기존 관련 학과들이 공대의 커리큘럼 속에 있었던 것과는 달리 정보기술경영, 소프트웨어, 미디어통신공학 등과 같이 완전히 특성화된 신 개념의 전공들로 구성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보통신학부 설립에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 교수는 공학과 정보기술경영 마인드를 두루 갖춘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유례없는 맹활약을 떨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마라톤을 좋아한다는 이 교수는 정보통신 분야의 연구를 처음에 시작할 때는 어렵지만 시간이 지나면 탄력이 붙는 외로운 운동이라고 비유한다. 중간에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마라톤처럼 꾸준히 앞을 향해 뛰어가야 하는 것이 연구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현재 이 교수에게 있어 가장 큰 목표는 진행 중인 SDR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정보통신 분야는 10년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기술 발전이 빠른 분야라는 이 교수에게서 학문과 교육이라는 기나긴 코스를 뛰는 마라토너의 기상을 느낀다. 학력 및 약력 이병호(정통대·미디어통신)교수는 1975년 본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해 77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93년 일본 국립 지바대학 전기전자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6년 한국개발연구원에서 연구 활동을 시작한 이 교수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을 거쳐 81년 본교 전자컴퓨터공학부에 부임했다. 현재 본교 총무처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교무처장, 입학관리실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했고 대외적으로 정보통신연구진흥원 하 'IT인력양성 협의회' 의장, 상임이사와 평의원, 한국정보과학회 평의원, 한국정보치리학회, 일본 IEICE, 미국 IEEE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2005-02 08

[교수]‘기초 과학의 기수’ 이영백(자연대·물리) 교수

텔레비전이나 비디오는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비교해보면 이제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한 대 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가격이 내려갔다. 이렇게 된 바탕에는 응집 및 응용 물리학의 기술들이 있었다. 이영백(자연대·물리) 교수는 1백여 편 이상의 논문을 발표하며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응집 및 응용 물리학(Condensed Matter Physics and Applied Physics)은 응집체에 대한 물리학을 다루는 학문으로, 첨단 전자·전기 장치나 부품 등의 개발 기반이 되는 과학이라 할 수 있다. 즉, 텔레비전이나 컴퓨터의 반도체 소자나 전자기 소자, CD, DVD 등에 사용되는 자성체 박막 등을 개발하는 데 기초가 되는 연구 분야이다. 이 교수는 92년 한국의 대표적 과학기술 상의 하나인 장영실 상을 수상했다. 특허와 함께 논문으로 발표된 '무개스 아아크 방전 이온플레이팅'(내마모성과 윤활성을 증진시키고 부식속도를 지연시키는 기능성 박막)과 관련된 수상이었다. 이 밖에도 해외 학술지 발표 논문이 110여 편, 국내 학술지를 포함한 기타 논문이 120여 편, 그 중에서 SCI(Science Citation Index, 국제 과학논문 인용 색인 : 국제적 저명 학술지라는 공인) 논문만도 110여 편에 달한다. 특허를 낸 것만도 40여 건에 이르며, 그 중 일부는 실용화되기도 했다. 이 교수는 첨단 자성 및 광자성 박막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초고밀도 정보 저장 매체를 개발하고 그와 관련된 새로운 물리적 현상을 발견해 나가는 연구라 할 수 있다. 또한 이 연구를 위해서 광자기 분광분석(적외선에서 X-선 영역에 걸쳐 물질의 자성과 전자파간 상호작용을 측정하는 기술)이라는 실험 기법을 주로 사용하는데 과거의 선형적인 방법이 아닌 비선형적인 광자기 분광분석을 국내 최초로 시도해 볼 계획이라고 한다. 학문의 밑바탕이 되는 기초 과학 분야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는 “요즘 학생들이 외모는 성숙했지만, 삶에 대한 혹은 학문에 대한 진지함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가려는 이 교수의 신념은 한양의 미래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미래를 받쳐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학력 및 약력 이영백 교수는 75년 서울대 공대 원자핵공학과를 졸업하고 87년 미국 I아이오와 주립대(owa State University)에서 물리학과 졸업하고 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90년부터 96까지 포항 공대 겸직 교수로 있었으며 2000년부터 본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양자광기능물성연구센터장을 지내고 있다. 92년 장영실 상 수상을 비롯해 99년 한국물리학회 응용물리학분과 Best Poster 상, 같은 해 미국 LBNL ALS 이용 우수연구업적에 선정됐다.

2005-02 08

[교수]‘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다’ 국문과 박노준 교수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전승되어 규범적인 힘이 되는 정서나 가치를 전통이라 부른다. 따라서 전통은 한 시대만의 유물이 아니라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유기체인 것이다. 음악이나 미술, 문학은 더욱 전통과 함께 발전해나간다. 즉, 전통에 대한 이해가 전제 되어야 오늘의 예술 활동이나 문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박노준(인문대·국문과) 교수가 현대시의 정서적 원류를 고전시가로 거슬러 되짚어 나가는 노력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맥을 잇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생을 향가와 고려 속요에 관한 연구를 해 온 박 교수의 학부 시절 전공은 본래 현대문학이었다. 그런 박 교수가 대학 3학년 때 지도교수였던 조지훈 선생과 한용운 전집 편찬 사업에 참여하면서 현대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때의 성과가 대학 4학년이라는 신분으로 60년 「한용운 연구」 편찬으로 이어지며 고전 시가에 빠져들게 됐다. 고전문학 전공인 박 교수는 향가와 속요를 연구하며 옛 시가의 정서가 현대시와 맥이 닿고 있음을 인식했다. 향가와 속요에 담긴 조상들의 정서가 비단 한 시기를 구분 짓는 특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대로 이어져 내려온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이러한 인식을 「향가여요의 정서와 변용」이라는 책으로 펴내며 기존의 단편적 논의를 학술적으로 확대시켰다. 이전까지 전통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정서적인 차원에서만 찾은 반면, 박 교수는 향가·속요의 현대시로의 계승을 주제면, 표현면, 인간과 자연과의 문제 등으로 나누어 다양한 측면에서 그 흐름을 파악했다. 이러한 박 교수의 노력으로 2000년에는 도남국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대부분의 현대 시인들이 고전 작품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점을 감안한다면, 향가나 속요를 현대시로 되살려낸 일부 시인들의 노력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전의 변용에 대해 “고전의 변용이 원전의 가치를 인정하는 작업이지, 원전에 오히려 울타리를 둘러놓는 작업은 아니다”라고 후배들을 위해 충고했다. 고전의 품격과 원형이 훼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지나친 변용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의도는 좋을지 모르나, 원전의 범위를 넘어서는 해석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무조건으로 전통을 이야기하고 주장하는 연구는 현대를 살아가며 현대적인 정서에 더 많이 발을 담그고 있는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그러나 전통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해석하는 좋은 열쇠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다. 박 교수의 연구는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이라는 시대의 벽을 허물고, 장르의 벽을 허물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통이라는 불변의 가치가 내재되어 있음을 일깨워주며 전통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학력 및 약력 박노준 교수는 1960년 고려대 문리과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68년과 82년,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학위 수여 받았으며 72년부터 81까지 강원대 국문과 교수, 82년부터 본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용운 연구」(60년, 통문관), 「신라가요의 연구」(82년, 열화당), 「현대시의 전통과 창조」(98년, 열화당) 등의 저서 이외에 6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2005-02 08

[교수]‘법 해석도 다원화 시대’ 법학과 오영근 교수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형법 제 250조) 이 문장에서 법률적 해석이 필요한 단어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과 ‘살해’라는 두 가지의 단어이다. 얼핏 들으면 너무나도 자명한 단어일지 모르지만, 현실에서는 ‘사람’과 ‘살해’라는 단어에 대해서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우를 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태아상태에서부터 인간이라고 봐야 옳은 것인가? 아니면 모체 밖으로 배출된 후부터를 인간이라고 봐야 하는 것인가? 또한, 모체 밖으로 배출되기 이전의 태아가 누군가의 고의로 인해서 사망하게 된다면 살인죄에 해당하는 것인가? 이렇듯, 복잡하기만 한 우리사회를 법률 한 문장에 의존해서 해석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법해석학이다. 오영근(법대·법학) 교수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의 흐름에 발맞춘, 다원화된 법해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시대가 빠르게 바뀌는 만큼, 범죄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 법해석 역시 다원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법적 해석이 존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현존하는 한국의 법문화의 문제점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오교수의 지론이다. “사법시험은 지금의 고시제도가 아니라, 운전면허와 같은 ‘자격시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변호사 면허가 중요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운전면허가 인간의 생명에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실제 검사들이 사형에 구형하는 경우는 1년에 20명도 채 안됩니다. 하지만 운전자들의 부주의로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한해 수 백 명에 이릅니다.” 그는 고시원에서 오직 책과 씨름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을 어떻게 균형 있는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는 지에 대해서 반문한다.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알아야만 법학을 연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오 교수는 불필요한 규정들에 대한 과감히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불필요한 규정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 때문에 한국을 ‘전과자의 나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법은 누구나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한도 내에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법은 적용과 집행보다는 ‘예방’이 더 큰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법 규정을 줄이고, 합리화를 이루는 것은 다원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중요 과제입니다.” 즉, 규정을 과감히 정비함으로써, ‘최소한의 법’으로서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고, 법적해석의 유동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오교수의 주요 관심사는 이러한 한국 법문화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 특히 형법분야의 법규를 정비하고, 법리의 합리화를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피해자학회 회장, 한국형사정책학회 연구이사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항상 연구하며 한국 법학계의 앞날을 걱정하는 오 교수. 올바른 법해석을 통해 죽은 법문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그의 굳은 신념이다. 학력 및 약력 오영근 교수는 1979년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이후 동대학원에서 법학석사,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9년 독일 Bonn대학, 1997년과 2001년 독일 Konstanz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펼쳤다. 한국형사법학회 편집위원, 한국형사정책학회 연구이사, 한국피해자학회 부회장, 형사판례연구회 이사, 한국소년법학회 부회장, 서울보호관찰심사회위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전문위원 등을 두루 역임했고 최근 한국피해자학회 회장에 선임됐다. 저서로 국내 10권, 논문으로 국내 100여 편, 국외 5편이 있다.

2005-02 08

[교수]‘남북체육교류의 선봉’ 체육과 이학래 명예교수

‘남북한이 스포츠라는 이름아래 하나였던 순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제 27회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태극기와 인공기가 아닌, 하늘색의 한반도기를 양선수단이 들고 입장했던 당시의 모습은, 전 국민으로 하여금 가슴 찡한 감동과 함께, 통일의 의지를 되새기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북이 동시입장 했고, 이제는 국제대회에서 남북한 선수단의 동시입장은 양국간 합의된 하나의 문화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감동의 순간을 연출했던 주역중의 한명이 본교 이학래 명예교수이다. 이 교수는 시드니 올림픽에서 총감독을 맡아, 스포츠라는 이름아래 남북이 하나 될 수 있는 전통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받는다. “남북간 화해, 협력을 통한 평화적 분위기 조성에는 무엇보다 동질성 회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스포츠가 해야 합니다.” 이 교수는 자신이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체육교류에 매진하게 된 계기는 청소년축구대회에 참가할 남북단일팀 구성을 성사시켰을 때라고 말한다. 90년과 91년 이교수가 참가한 체육회담 대표팀이 이뤄낸 ‘남북한 최초의 단일팀’이라는 성과에 감격한 후, 이때부터 평화적인 조국 통일을 위한 노력을 다하기로 마음먹었고,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민족통일체육연구원의 창립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2002년 ‘남북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한민족 체육학술 교류의 기본방향’을 주제로한 학술세미나 개최, 2003년 ‘한반도 평화구축과 2010 평창 겨울올림픽게임’을 주제로 한 국제 학술 세미나의 개최 등의 활동을 통해 구체화 시켰고, 이러한 활동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또한, 이 교수는 남북간의 체육교류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국내 스포츠계의 앞날에도 관심을 갖는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엘리트 스포츠 위주의 육성정책’에서 ‘국민생활체육의 육성정책’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위주의 엘리트 육성 체제가 클럽 중심의 생활체육 활성화 체제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그 동안 생활체육은 정부에서 가시적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 소홀히 취급해 왔던 부분이지요.” 지금까지의 업적을 높이 평가받아, 2004년 ‘제1회 한양체육인 상’시상식에서 공로상을 시상하기도 한 이 교수. 현재 그는 민족통일체육연구원 이사장, 아시아체육학회장, 대한체육학회 부회장, 남북체육 교류협력위원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를 통해, 스포츠를 넘어, 남북이 진정으로 하나 되는 결실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학력 및 약력 이학래 교수는 지난 1965년 경제학사 과정을 수료하고 1967년 본교 체육학과를 졸업한 뒤, 1969년 프랑스 Universite de Toulouse 체육학 Diplome Superieur를 취득, 1976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은 후, 동국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지난 1971년부터 본교에 몸을 담았으며 2003년 정년을 맞이해 지금은 명예교수로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1982년부터 1983년까지 브라질 Saopaulo대학교 체육대학 교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현재 민족통일체육연구원 이사장, 아시아체육학회장, 대한체육학회 부회장, 남북체육 교류협력위원 등의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5-02 01

[교수]‘만년청년’ 이승훈(인문대·국문과) 교수

‘사이의 미학, 반미학, 혹은 복합매체(intermedia) 미학’ 이 낯선 단어들로 표현되는 불확정적이고, 전환적이며, 끝없이 떠도는 작품세계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승훈(인문대·국문) 교수다. 스스로를 언어파 시인으로 규정하고 있는 이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시 속에서 지속적으로 언어에 대한 탐구에 몰두해오고 있다. 또한 이 교수를 말할 때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것이 ‘시인 이승훈’ 이듯이 그의 학문적 활동이나 성과를 말할 때도 그의 시 세계를 빼놓고는 온전한 그를 담아내기 어렵다. 1942년 춘천에서 출생한 이 교수는 61년 본교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이른바 ‘공돌이’였던 그가 시에 취해 국문과로 전과한 것은 이미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한 후인 3학년 때다. 당시 국문과 교수였던 박목월 선생의 추천으로 ‘낮’ 등 두 편의 시가 잡지에 실렸다. 그 후 이 교수는 불교와 만나게 된다. 불교는 그에게 새로운 문학 지평을 열어준 계기이자 통로였다. 이때부터 시의 중심은 주체 분열에서 주체 부정으로 변모했으며 또한 부분적으로는 선(禪)사상의 영향을 받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의 시(詩)세계는 그의 학문 세계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 교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결과적으로 그의 시에 생명을 불어넣게 됐다. 시 이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새로운 시 형태 개발을 위한 시도는 지속적인 시작(詩作)을 위한 힘이었다. 96년 시의 미적 가능성에 대한 격론이 벌어졌을 때 해체주의를 옹호하며 정신주의 진영의 비판을 반박했던 대표적 학자도 바로 이 교수였다. 그의 그런 학문적 토대 덕분에 현대시 동인들의 몰락 속에서도 이 교수는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런 그이기에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는 변하는 것들에 대해 호의적이다. “형식과 장르를 깨야 해요. 모든 것이 시가 될 수 있거든요. 절대적인 것은 아니에요. 한국 시인들의 병폐는 조로에요. 일찍 늙어요. 그래서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 하는 것이죠.” 이 교수는 신인 작가들의 새로운 실험과 시도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학자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최근 전통 서정으로 회귀하는 한국 시 문단을 고려할 때 새로운 시도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교수다. 그러고 보면 그가 그토록 젊은 시인이라고 극찬했던 김춘수 시인만큼이나, 그도 같은 이유로 젊은 시인인 듯싶다. 그는 아직도 ‘바람 불면 괴로운’ 낭만 가득한 순수청년이다. 학력 및 약력 이승훈 (인문대 국문과) 교수는 1942년 춘천에서 태어나 본교 인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석사과정, 연세대 대학원 박사과정을 마쳤다.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으며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을 수상했다. 시집에 ‘사물 A’, ‘환상의 다리’, ‘당신의 초상’, ‘사물들’, ‘당신의 방’, ‘너라는 환상’, ‘길은 없어도 행복하다’, ‘비누’ 등이 있으며, 시론집 ‘시론’, ‘모더니즘 시론’. ‘포스트모더니즘 시론’, ‘한국현대시론사’, ‘한국 현대시 새롭게 읽기’ 등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