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1252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05-02 01

[교수]`정도를 지킨다` 사회대 사회학과 김두섭 교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나라는 어디일까? 바로 대한민국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지난 2000년 65세 이상인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7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또한 오는 2019년에는 고령인구가 전체인구의 14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고령 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문제는 인구가 고령화 되면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반면 고령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커져 국가 경제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고령화 문제를 비롯한 인구 문제를 해결할 열쇠는 바로 인구학. 인구학은 통계적·수리적 방법을 사용해 인구 변동의 여러 요인을 연구, 사회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하루하루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해 가는 사회현상을 이해하고 진단해 장차 인구 변동에 대비한 정책을 세울 수 있게 하는 인구학 연구의 중심에 본교 김두섭 교수가 있다. 김 교수는 특히 인구학의 방법론인 통계라는 주제에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수치들이 사회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통계의 바다’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연일 언론 지상을 오르내리는 각종 통계수치는 과연 믿을 만 한 것일까. 김 교수가 경계하고 있는 것이 바로 통계 수치에 숨어있는 ‘의도성’이다. 김 교수는 “조사는 신뢰성, 정확성, 대표성이 생명인데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의도한 결과를 내기 위해 조사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조사 결과가 여과 없이 일반에 전달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구라는 것은 갑자기 문제가 생겼을 때, 정책을 만들어 하루아침에 효과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김 교수는 인구 문제를 항상 멀리 내다보고 미리 대비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북한 인구 문제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 당시 서독의 인구가 동독의 그것에 비해 4배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통일 후 동·서독은 이질감 극복을 위해 10여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잠정적인 집계로 남한의 인구가 북한 인구의 2배인 현 상황을 고려해볼 때 통일 후 남·북한의 이질감은 동·서독의 경우보다 더욱 심할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자료는 일부 탈북자들의 말이나 외신 보도에만 의존하는 정도로 낙후돼 있다고 말한다. 그는 “독일의 통일 과정을 지켜본 우리는 통일 후 나타날 부작용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북한 구조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호남 지역감정보다 더욱 심각할 남·북 간의 이질적인 지역정서 문제 또한 인구학적인 분석을 통해 가능함은 분명하다. 사람을 공부하는 만큼, 그 공부의 결과가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김 교수. 그가 인구문제와 관련한 언론 보도마다 이름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구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수한 교육환경이 아니라 김 교수 스스로가 견지한 학문에 대한 성실함 덕분일 것이다. 그럼에도 스스로의 성취와 기쁨을 다시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은 인구, 즉 사람 그 자체가 학문의 테마인 김 교수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른다. 학력 및 약력 김두섭 교수는 서울대에서 1975년 문학사를, 1977년 동대학원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83년 미 브라운대학(Brown Univ.)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1984년부터 현재까지 본교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으며, 지난 1989년부터 1992년까지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현재 한국 인구학회와 한국사회학회의 이사직을 겸임하고 있으며, 21세기 남북문화 연구원 이사, 본교 아태지역연구센터 연구위원을 역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인구분석, 센서스자료 분석 등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옥조조정훈장을 받기도 했다.

2005-02 01

[교수]‘과거와 현재의 가교’ 배기동(국문대·문인과) 교수

국사 교과서 앞머리에 등장하는 전곡리 유적은 정부가 국가사적(國家史蹟)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구석기 유적 중의 하나이다. 배기동(국문대·문화인류)교수는 이 발굴에서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찍고 자르는 기능을 함께 할 수 있는 도끼)를 출토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동아시아 구석기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는 계기가 됐으며, 또한 외국 문화사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전기(前期) 구석기 유적으로 당당히 수록될 만큼 우리나라의 큰 문화유산 중 하나가 되었다. 과거와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고고 인류학을 전공하게 된 배 교수는, 국내에서 고고학 석사를 마친 후 좀 더 폭넓은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인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국내로 돌아와 삼성미술문화재단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 UC Berkeley 인류학과 및 동아시아 연구소 강사 등을 거쳐 본교에 취임하게 된 배 교수는 51편의 국내외 논문을 발표하고 30권의 저서를 내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배 교수는 고고학자로서, 지난 수 십 년 동안 선사 시대 유물을 통해 이제는 다 풍화돼 없어져간 선사인들의 삶을 재구성하는 일에 몰두해왔다. 20여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일생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전곡리 유적 발굴 작업에 참여했으며, 98년에는 구석기 연구의 가장 중요한 현장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배 교수는 이에 대해 문화재 보존기금에 대한 시론을 쓰는 등 문화재 보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배 교수는 고고학자가 단지 과거의 유물을 발견하거나 수집하는 것만은 아님을 강조한다. ‘고고학은 과거의 복원을 통해 현재를 새롭게 창조하는 작업이며, 결국은 인간을 이해하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배 교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도 고고학을 통한 인간 삶의 복원일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 어린 집착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상아탑 속의 연구도 좋지만 현장에서 땀을 흘리며 발굴에 참여하기를 더 좋아하는 배 교수는 고고학이 단순히 유물을 발굴하고 분류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과거를 통한 인간 행위의 복원이라는 차원으로 확장되어 나아가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참지식인이다. 학력 및 약력 배기동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고고인류학을 전공하고, 미국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에서 인류학 박사(Ph.D)를 취득했다. 국내로 돌아와 삼성미술문화재단 호암미술관 학예연구원 및 서울대학교 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1990년부터 한양대학교 문과대학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본교에 적을 두게 되었다. 현재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 운영을 맡고 있으며, 50편이 넘는 논문과 30권이 넘는 저서를 발행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주요저서 및 역서로는 전곡리구석기유적(1989), 금파리구석기유적(1999), 한국선사고고학사(공저 1991), 문명의 여명(1988, 번역), 일본인의 기원(1992, 번역), 아프리카역사의 이해(2001)등이 있다.

2005-02 01

[교수]‘고분자 연구의 선봉’ 공과대 응용화공 서경도 교수

“항상 학생들에게 독창적으로 사물을 보고 생각하라는 주문을 합니다. 학생들이 독창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하지만 결국은 좋은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공학은 자연과학에서 이미 이루어 놓은 자연에 대한 ‘발견’을 이용하여 새로운 것을 ‘발명’해 내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창의적인 사고는 공학을 연구하는 이에게 꼭 필요한 소양이다. 서경도(공과대·응용화공) 교수의 ‘고분자 표면 및 계면 연구실’에서는 특히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강조된다. 어떠한 기술이든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응용에도 성공하지 못하며 이러한 응용을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 서 교수의 지론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1년 서 교수가 본교로 부임하면서 설립된 ‘고분자 표면 및 계면 연구실’은 국산 LCD 모니터 개발의 길을 개척한 것으로 유명하다. LCD 모니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전도성 유리(ITO Glass)를 5마이크로미터정도의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겹치게 하는 기술이 필요한데 이를 서 교수가 개발했다. 전도성 유리 사이에 주입시킬 스페이서(spacer, 지름 5마이크로미터의 크기가 똑같은 입자)의 생산을 가능케 한 것. 유일하게 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일본에서도 두·세 개의 회사만이 보유한 기술이다. 이 뿐 아니라 마이크로 캡슐을 이용한 고기능성 화장품이나 전자 종이 등 작은 소재에 대한 서 교수의 탐구는 일상에서 그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전자종이는 자료를 다운받아 수백만 번 썼고 지우고를 반복할 수 있으며 적은 량의 에너지로도 사용 가능해 책과 신문은 물론 기존의 인쇄매체를 대체할 혁신적인 재료로 기대된다. 서 교수는 이러한 핵심 기술들의 개발은 가격보다는 우리가 독창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기업들이 원천기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 비싼 로열티를 내고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은 상품 개발과 운영에 능하지만 기초기술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연구능력이 없다”고 말하며 “대학이 원천기술과 아이디어를 개발해야만 한다”고 대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학생들에게 창의적인 사고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점 때문. 덕분에 서 교수의 연구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빌리기 위해 문을 두드리는 기업들의 발길로 분주하다. 현재 서 교수는 생리활성화 물질(bioactive material)의 안정화 연구와 전자종이 기술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비타민 등 인체에 유익한 물질인 생리활성화 물질은 불안정해 분해가 쉽게 일어나는 데 서 교수가 연구하는 것은 이를 안정화시키는 기술. 이미 개발돼 고기능성 화장품에 적용 됐던 이 기술을 좀 더 발전시키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 액정을 캡슐화 시켜 고분자 분산형 액정에 적용시키거나 흑연을 이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전자종이의 개발에 접근하고 있다. 학생들과 매 주 두 번의 보고회를 함께하며 연구내용에 대해 서로 토론하도록 독려한다는 서 교수는 “교수는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를 하고 싶게끔 도와주는 사람이다”며 자신의 모든 연구결과를 학생들의 공으로 돌린다. ‘모든 성과가 저 개인보다 학생들이 노력한 결과물일 뿐입니다’라고. 학력 및 약력 서경도 교수는 지난 1977년 본교 고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과 1987년에 일본 동북대학교에서 화학 제 1전공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동북대학교 조수, 89년부터 91일까지 동양나일론 책임연구원을 거친 그는 지난 1991년부터 본교 공업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서 교수는 또한 한국공업하학회, 한국고분자학회, 한국고무학회, 한국유변학회 등에서 종신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5-01 22

[교수]일본문학 비평의 선구자 윤상인(국문대 일본언어문화)교수

소설 '노르웨이 숲'의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한국의 독자들에게 꾸준한 사라을 받고 있고 최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연예인 배용준과 보아 는 일본 가정의 문지방을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다. 이렇듯 한일 상호간의 문화 교류가 활발한 상황에서 일본을 알려면 일본 문학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라고 충고하는 이가 있다. 바로 국제문화대 일본언어학부의 윤상인 교수. 그는 작게는 일본 문학을 넓게는 일본 문화를 연구하는 일본 문학 비평의 선구자이다. 또한 그는 한국사상사학회와 일본비교문학학회에서 활동 중이며, 두뇌한국21의 핵심 사업 분야 중 ‘학제적 일본연구 전문 인력 양성팀’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윤 교수의 주요 연구대상은 근대 일본, 즉 메이지유신 이후부터 1945년까지이다. 마무리 단계에 있다는 ‘두뇌한국21’ 연구 사업에서도 이 분야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는 현대 일본문학에 대한 비평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비교문학을 전공한 그에게 일본의 근대와 현대를 비교하는 일은 익숙해져 버린 일인 것이다. 그런 윤 교수는 근대 일본과 현대 일본은 많은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시대적 조류가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지금의 일본과 과거 군국주의의 일본과는 판이한 차이가 있다는 설명이다. 10여 편이 넘는 일본 문학작품의 번역뿐만 아니라 한국 문학을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윤 교수를 일본과 한국 사이의 ‘문화 메신저’라고 일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일본에서 발간한 김광규 시인의 시집은 일본 내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또한 윤 교수는 거대담론적 성격의 김지하, 황석영 씨 작품만이 소개되는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적 성향이 짙은 김광규 시집을 소개했다고 한다. 그의 이런 행동 밑바탕에는 한국의 다양성을 일본에 제대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또한 문화교류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윤 교수는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더군다나 수 년 전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거셀 때도 그 만은 전혀 염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일본문화가 풍토가 다른 한국문화에 진입하는데 일정 부분 한계가 있으며, 오히려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한류 열풍은 대등한 관계로의 인식 전환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라며 "일본 문화를 경계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보단 우리 문화를 살찌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더 생산적이다"고 강조했다. 최근 십여 년 동안 회자되고 있는 인문학의 위기가 10여년 후에는 한국 사회에서 철학의 부재로 이어질 것이라 염려하는 윤 교수는 "타국과의 지속적인 문화 교류와 내적 발전, 나아가 문화 선진국도 따져보면 인문학적 소양 즉, 철학이 뒷받침 돼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의 교육 철학 역시 한국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철학을 가진 제자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하는 것이다. 학력 및 약력 윤상인 교수는 1983년 서강대 국문과를 졸업한 후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1988년과 1991년 각각 문학석사 학위와 비교문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런던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 학부에서 2년여 동안 연구활동을 하기도 한 윤 교수는 1992년부터 본교에서 일본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해 오고 있다. 논문으로 국내 19편, 국외 11편을 발표했으며 국내외 저역서(공저포함) 17권을 출판했다. 1994년 <세기말과 나쓰메 소세키>로 산토리 출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사상사학회와 일본비교문학학회에서 활동 중이며, 두뇌한국21의 핵심사업분야 중 ‘학제적 일본연구 전문인력 양성팀’을 이끌고 있다.

2005-01 22

[교수]21세기는 물의 시대

21세기는 물의 시대이다. 물을 소유한 나라가 강국과 부국이 될 수 있다. 수자원은 단지 자연의 일부일 뿐 아니라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자원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UN이 지정한 물 부족국가이다. 그러므로 수자원의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관리가 중요하다. 한명수(자연대?생명과학)교수가 지난 1월 1일 우리나라의 수자원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연구를 하는 한국육수(陸水)학회의 제 20대 신입회장에 취임했다. 한국육수학회는 지표수 및 지하수 등, 국내 모든 육수에 관해 관리와 보호를 위한 학문을 연구하는 학회이다. 또한 단순히 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자원의 행정적인 부분까지 연구한다. 앞으로 수자원은 분쟁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점점 물이 귀중해 지는 추세에 임에 비해 대부분의 국가 경계나 국가내의 행정 경계가 강이 되기 때문이다. 임기 2년 동안 우리나라 내륙의 하천, 후수 및 강에 대한 수자원의 관리와 보호, 그리고 상수원 수질 관리를 위한 학문의 발전을 선도하여 물 부족 국가인 우리나라 수자원의 지속적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한 교수는 재임기간인 2년 동안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먼저 환경 분야의 젊은 과학과 육성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한 교수는 “최근 나노과학이나 생명과학이 각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라며 “이 때문에 환경 과학 분야의 유능하고 젊은 과학자가 부족하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터전이 되는 환경과학은 중요하다”며 환경과학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또한 현재 학회의 국내중심의 활동을 외국과의 학자 교류, 학술 교류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동북아시아 및 시계로 활동영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한 교수가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물환경생태복원연구실은 2000년도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서 시행하는 국가지정연구실 사업에 환경, 기술 분야의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되어 자체 생성 유기물 오염수역의 생태복원기술 개발이라는 과제로 연구를 진행 중에 있다. 호수에서 발생하는 녹조, 바다에서 발생하는 적조는 수질오염에 의한 부영양화현상에 의한 것이다. 현재는 물리, 화학적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으나 이를 환경친화적인 방법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향후 이에 관련된 환경신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2005-01 22

[교수]‘영혼을 울리는 목소리’ 음대 성악과 신영조 교수

지난 1960년에 설립된 본교의 음대는 자타가 인정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음대 가운데 하나로, 수많은 음악인들을 양성해 왔다. 소프라노 박정원, 김우경 등 음대 출신 성악가들의 활발한 활동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중 신영조(음대·성악)교수는 이러한 본교 출신 성악가 라인업의 선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맑고 시원한 고음을 자랑하는 테너 신 교수는 어느덧 음악인생 40년을 맞아 지난해 9월 1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제자들과 함께 ‘가곡과 오페라의 대향연’이라는 제목으로 음악회를 성황리에 열기도 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리오 국제 성악 콩쿨에서 입상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신 교수는 독일 스투트가르트 오페라 극장의 독창자 오디션에 합격해 그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신 교수는 세종문화회관과 뉴욕 카네기홀 등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각종 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쳐왔으며, 수없이 많은 공연을 통해 국내 최정상급의 테너 반열에 올라섰다. 지금까지 총 1백 여회 가 넘는 독창회를 가졌으며,〈춘희〉,〈라보엠〉,〈로미오와 줄리엣〉등 40여 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신 교수는 1983년, 1996년에는 '올해의 음악가상'을, 1999년에는 '한국 음악상'을 받았으며 월간 음악상은 13회 차례나 수상했다. 그리고 1976년부터 1995년까지 국립 오페라단 단원을 역임하기도 했다. 신 교수의 경력은 언뜻 보기에 화려하지만 독일 유학시절에야 빛을 발한‘대기만성’형이다. 음악평론가 이남진 씨는 신 교수에 대해‘성격과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직성이 매력’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대학 입학 후에는 노래에 자신이 없어 군대에 입대해 2년 동안 노래를 중단하기도 했다. 그리고 상병 이후에 노래를 해봤는데 놀랍게도 고음이 나와 자신을 가졌다고 한다. 대학시절을 포함해 젊었을 때는 오페라에, 연륜이 쌓여가면서부터는 독일의 고전가곡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는 신 교수는 최근 들어 우리의 가곡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독창회나 연가곡의 밤 등 공연을 하면서 우리의 정서가 살아있고, 가사가 모국어로 되어있는 가곡이 관객들에게 음악적 느낌을 전달하는 데 있어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신 교수의 음악철학은 ‘떳떳함’이다. 사후에 사람들에게 옳지 않은 일로 오르내리기는 싫으며 좋은 자리에 덥석 앉기 보다는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한다는 것. 제자들이 자신을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최선을 다했던 선생으로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신 교수는 최근 들어 건강이 좋지 않아 가르치는 일이 다소 힘겹다며 제자들에게 못내 미안해했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테너이기 이전에 제자들의 숨결에 음악적 열정과 혼을 불어넣어주고자 자신을 불사르는 음악적 스승이자 인간적인 선배였다. 학력 및 약력 신영조 교수는 한양대 음대 성악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유학을 떠나 뮌헨 국립음악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이후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으며〈춘희〉,〈라보엠〉,〈로미오와 줄리엣〉등 수 십 편의 오페라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또한 뉴욕 카네기홀 공연 등 총 98회의 독창회와 1천 여회의 가곡의 밤 및 연주회 무대에 섰으며 1회부터 3회까지 대한민국 음악제에 출연하기도 했다. 올해의 음악가상(1983, 1996), 한국 음악상 수상(1999)을 수상했으며 지난 76년부터 95년까지 국립 오페라단 단원으로 활동했다. 95년부터 99년까지 음대 학장을 역임했다.

2005-01 22

[교수]‘교육, 접속보다 접촉’ 사범대 교육공학 유영만 교수

정보통신부와 한국전산원이 펴낸 '한국 인터넷백서'에 따르면 지난 해 온라인 교육시장의 전체 규모는 약 2조3천억 원대. 2001년 전체 사이버 교육시장 규모가 1천억 원대였음을 감안했을 때, 이는 놀랍도록 비약적인 발전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이버 교육의 열풍 속에서 ‘휴먼터치(human touch)’, 즉 인간적 접촉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이른 바 ‘인간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사범대 교육공학과의 유영만 교수. 그는 봇물처럼 쏟아지는 디지털 교육에 인간의 부재가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소리 높여 경고한다. 유 교수는 일찍이 ‘보다 효율적이며 인간적인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본교 사범대학에서 교육공학을 전공했다. 그 후 한층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유 교수는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활발한 학업 및 연구 활동을 펼치다 귀국, 2001년부터 본교에 적을 두고 있다. 유 교수는 본업인 강의 이외에도 왕성한 저작활동 및 번역에 매진중인, 그야말로 ‘멀티태스킹’ 학자다. 또한 그는 현재 한국 교육 공학회 및 한국 교육학회에 몸담고 있다. 교육공학 중에서도 기업교육을 연구하고 있는 유 교수는 현재 본교 교육공학연구소(IET)의 연구위원으로서, 온라인 원격교육, 인터넷 활용교육 등과 같이 기업을 포함한 여러 교육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대안적 교육용 프로그램을 연구, 개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수학습개발센터 부센터장으로서, 공학 교수방법 개선을 위한 ‘Teaching clinic'의 필요성 제기 및 효율적 활용방안 제안에 힘써오고 있다. 또한 그는 ‘유영만 박사의 지식의 숲(www.010000.pe.kr)’이라는 홈페이지 운영을 통해 학생들과 남다른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 그야말로 자상하며 친근한 교수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급격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턱없이 부족한 내실로 인해 진통을 겪고 있는 요즘의 사이버 교육의 현실을 직시하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한다. ‘접촉’없이 ‘접속’만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사이버 교육이 야기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쉽게 간과하는 세태 또한 유 교수에게는 근심의 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누구를 가르칠 것인가에 주목해야 한다”는 유 교수의 교육철학은 모든 것이 디지털 일색인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력 및 약력 유영만 교수는 1989년 우리 대학 사범대학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를, 1993년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 Learning Systems Institute 연구원을 역임하고, 삼성 경제연구소 인력개발원을 거쳐, 2001년부터 현재까지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현재 한국교육공학회 이사와 한국산업교육학회 편집위원겸 연구이사를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죽은 기업교육, 살아있는 디지털 학습》,《지식 경영과 지식관리시스템》,《지식 경제 시대의 학습조직》, 《e세상 e러닝》, 《아날로그여 디지털에 저항하라》등 이 있고, 역서로는 《펄떡이는 물고기처럼》, 《디지털 경제를 배우자》, 《열린 조직 열린 경영》외 다수가 있다.

2005-01 15

[교수]‘광고와 사회 간의 끊임없는 고뇌’ 조병량 교수

90년대 중반까지 광고에 주목하는 시청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광고는 TV 프로그램과는 다른 독특한 볼거리로 시청자 곁에 다가서고 있다. 광고 자체가 시청자에게는 즐거움이 된 것. 이제 광고는 상품 판매 도구일 뿐만 아니라, ‘광고는 사회상을 반영한다’는 말처럼 독자적인 영역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한편으론 ‘광고의 영역은 무한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연일 세상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광고의 성장세와 그에 따른 영향 때문에 광고에 대한 자율과 규제는 최근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조병량 (언정대·광고홍보) 교수는 바람직한 광고문화 정착을 위해, 관련 사회기구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여 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표시광고심사 자문위원회와 방송광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으며,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장,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회장, 한국광고협회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조 교수는 그동안 광고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양분되어왔음을 지적하면서, 무조건적인 옹호론이나 비판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광고는 상품 판매의 도구가 되는 동시에 사회 제도이므로 ‘긍정과 부정’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지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고의 긍정적 측면을 장려하고, 아울러 부정적 측면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광고기획이나 제작과 같은 광고실무분야와 함께 광고 법제와 규제 등에 주목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광고와 관련된 사회 기구에서 활동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조 교수는 “광고가 상품 판매를 위해 소비자들에게 얼마나 설득력을 발휘하고 효과가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게, 인류에게 광고가 과연 무엇이며,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판매 도구로서의 광고뿐만 아니라 사회 제도로써 광고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문제의식도 중요하다”라고 평생지기 광고에 대한 그만의 철학을 표현했다. 사실 조 교수는 광고 현업에서도 알아주는 스타 카피라이터였다. 아직도 광고업계에서 성공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80년대의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왜 나이키를 신는가?"라는 나이키 광고 카피는 조 교수의 역작 중의 역작으로 꼽힌다. 광고 현업 선배로서 예비 광고인들에게 전하는 조 교수의 메시지는 ‘영감은 노력과 몰입의 결과이다’라는 것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라’는 것.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채택돼 그것이 광고로 만들어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호흡이 길어야 하며 무엇보다 그 호흡을 지탱해 주는 힘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서 생겨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력 및 약력 조병량 교수는 1972년 본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84년과 89년 각각 본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73년부터 75년까지 서울신문사 기자를 역임했으며 75년부터 86년까지 오리콤과 삼희기획에서 각각 제작부장과 제작본부장을 역임했다. 89년 본교 광고홍보학과에 부임한 조병량 교수는 공정거래위원회 표시광고심사 자문위원장 방송광고심의위원장,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심의위원장,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회장, 한국광고협회회장 등 왕성한 사회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2005-01 15

[교수]경제는 실사구시 정신으로, 경금대 임양택 교수

1979년 이후 본교에서 줄곧 '거시경제학'과 '기술경제학' 강의를 맡아온 임양택(경금대·경제학부) 교수는 끊임없는 연구와 열정으로 국내외에서 한국 경제와 동북아 경제 발전방안에 대한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다. 지난 97년 IMF 경제위기의 시작을 금융이 실물 경제의 보조적인 측면 즉, 관치금융 체제라는 온실 안에서 낙후된 채 방치된 금융테크닉의 부실이라는 데 방점을 찍는 임 교수는 가격경쟁 위주의 정책 또한 기술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서 경제 전반의 위기로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러한 경제위기는 공공부문과 대기업의 군살을 제거하고 그것이 중소기업으로 이양됨으로써 양자가 같이 살 수 있고 실업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한편 임 교수는 우리경제가 앞으로 주력해야 할 것은 기술혁신이라고 강조한다. 대통령 직속의 산업과학기술 담당 비서관제도를 도입해 교육인적자원부와 정보통신부,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가 유기적으로 정보기술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포괄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정보통신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해야한다는 것도 임 교수의 지론이다. 동시에 과거와 같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고 품질과 신뢰성, 브랜드 이미지 등 비가격 부문에서도 경쟁력을 지닐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해야한다며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공학기술 발전이 경제학 특히 금융과 맞물려서 함께 발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술입국 뿐만 아니라 통일 문제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임 교수는 경제통합을 시작으로 하는 5단계 통일 방안을 '제3의 통일 방안'(매일경제신문사, 1993)을 통해 제시하기도 했다. 남과 북의 통일 방안의 연합과 연방이 차이를 경제통합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북으로부터 남이 천연자원과 초저임금의 노동력을 얻고, 남은 북에 필요한 철도 등의 기반시설과 자본을 경제 제반여건을 형성하고 산업구조를 민족산업으로 재편성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더욱이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 민족의 우수성에 확신이 들었다고 회고하는 임 교수는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랬듯 '청년들에게 고함'의 형식을 빌려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를 염두에 둔 조국의 미래를 구상하고 설계하라"고 말한다. 한국이 지닌 에너지로 이들과 화합해 '동방의 등불'로 다시 한번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말이다. 학력 및 약력 임양택 교수는 1971년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ia State University에서 74년과 78년에 각각 경제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78년부터 79년까지 미국 Union University에서 경제학 조교수를 역임했고, 79년부터 본교 경제금융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임 교수는 현재 한국경제학회, 한국국제경제학회, 한국재정학회, 한국북방학회 이사, 기술경제학회, 도산아카데미 연구원, 경제분과 위원장, 흥사단민족통일운동본부 정책연구위원장,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논문은 국내에 45편, 국외 15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는 '제 3의 통일방안(매일경제신문사,1993)', '비전 없는 국민은 망한다(매일경제신문사,1995)', '21세기 아시아의 비전과 전망(중국 사회과학원,1999)' 등 국내 18편과 국외 3권이 있다. 올해 제19회 백남학술상을 수상했고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명예 주지사직에 임명된 바 있다.

2005-01 15

[교수]지적 재산권 권위자 법학과 윤선희 교수

지난 18일 한국과 유럽연합 간에 관세와 비관세 장벽의 철폐, 서비스무역 자유화, 투자확대, 정부조달, 지적재산권 문제 등 광범위한 분야에 관한 자유무역 협정(FTA) 회의가 있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제 3의 물결 즉, 지식 정보화 사회답게 지식 경제의 가치가 보다 부각되고 있는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정일 것이다. 이러한 지적재산권에 대한 세계적 사회적 관심과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교 윤선희(법대·법학과) 교수는 01년도 연구업적 우수교수상 수상 및 한국소프트웨어저작권협회(SPC)산하 SCS인증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으며 국내 지적재산권법 분야 최고의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윤 교수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는 지적재산권 분야를 피곤한 학문이라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좋아서 시작했고, 산업발전의 속도에 발 맞춰 지적재산권법을 마련하는 것은 곧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는 평소의 철학과 소신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다. 실무로서가 아니라 이론으로 산업발전에 기여하는 길을 찾다 지적재산권이 눈길을 끌었고 일본 도시샤(同智社)대학 법학부 입학을 시작으로 고베(神戶) 대학에서 법학 석사 박사학위를 밟으며 굶어죽기 좋은 학문이라는 비아냥에도 내가 좋아서 하는 공부다. 교수가 되겠다거나 이걸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했으면 아예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자신의 소신을 지켜나갔다고 회고한다. 기술보다 법이 앞서간 탓에 정작 우리 국민들보다는 정부를 위한 법을 만들고, 운영해왔다고 말하는 윤 교수. 그는 현재 우리나라 지적 재산권에 대해 그는 우리 실정과 이익을 따져보기 보다는 미국 등 외국 선진국의 눈치를 보느라 각종 협약에 불쑥 가입한 정부의 정책 때문에 자국민을 보호하는데 소홀하게 돼버렸다며 정부는 자국민 우선적으로 보호해야하고 지적 재산권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나 생각도 선진화돼야한다고 권고했다.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MP3 공유 P2P '소리바다'와 '냅스터'(Napster) 문제에 대해 음악을 다운받고 공유한 국민들을 모두 범법자몰 수는 없다며 초기 단계에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이 있었지만 상업적 가치를 갖게 되면 산업발전에 역행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인터넷이 보편화된 현 시점에서는 저작권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했다. 대학가에 만연해 있는 불법복사와 복제에 대해서도 윤 교수는 "학생들이 내 책을 꼭 사서 볼 필요는 없다. 저술활동은 일종의 봉사라고 생각한다. 돈을 벌려고 책을 쓰지 않았지만 그 책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이 투여됐는지는 알아야한다. 그렇게 공부한 지식을 나중에 사회에 환원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자국의 이익을 위해 공부했으면 한다"고 후학들에게 당부했다. 학력 및 약력 윤선희 교수는 88년 일본 도시사(同志社大學)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고베(神戶) 대학에서 법학 석사학위(90년)와 박사학위(93)를 받았다. 도쿄(東京)대학 법학부, 일본지적재산연구소 등에서 연구했으며 특허행정정책자문위원회 정책자문위원, 한국산업재산권법학회 총무이사, 한국비교사법학회 이사, 한국지적소유권학회 이사,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한일법학회 이사 등을 역임했다. 2001학년도 연구업적 최우수교수로 선정된 윤 교수는 국내 40편, 국외 14편의 논문이 있으며 저서로는 〈지적 재산권법〉(세창출판사), 〈국제계약법 이론과 실무〉(법률출판사), 〈영업비밀개설〉(법경출판사), 〈특허법 上〉(공역. 한빛 지적소유권센터), 〈무체 재산권법 개론〉(역서. 법경출판사), 〈산업재산권법원론〉(법문사. 2002) 등 7권이 있다.

2005-01 15

[교수]‘원천기술 100%에 도전’ 공과대 전전컴 권오경 교수

텔레비전 모니터가 점점 커지고 평면으로 바뀌면서 우리는 예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실감나는 영상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대형 평면 텔레비전은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이라는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권오경(공과대·전전컴) 교수는 지난 30여 년 동안 PDP를 비롯한 LCD 회로 설계에서 독보적인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권 교수가 평생을 공학인의 삶을 걷게 된 계기는 지난 80년 금성전기(현 LG전자) 기술연구원 재직 시절 국내에 원천기술이 부족한 것을 절감하고 나서부터였다. 한국의 전자산업이 기술선진국들의 횡포에 막혀 늘 후진국으로 머물러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는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부품을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해 원천기술을 쌓겠다는 오기로 미국 유학을 결심한 권 교수는 스탠포드대학 유학 후 92년 모교로 돌아와 오로지 연구 활동에만 전념한 결과 지금까지 특허출원 46건, 등록된 특허 96건과 국내외 논문 44편, 학술대회 발표논문 100여 편을 발표하는 등 왕성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권 교수가 현재 주력하고 있는 분야는 반도체 소자 설계 및 제조 공정으로서, 가정용 대형 디지털 텔레비전에 쓰이는 PDP와 컴퓨터에 주로 쓰이는 디스플레이 장치인 LCD의 구동회로 및 구동방식을 설계하는 것이다. 그는 특히 LCD 구동방식 및 구동회로 설계와 PDP 구동용 소자 개발 및 구동회로 설계는 상용화에도 성공하면서 그 기술을 인정받고 있다. 권 교수가 이끌고 있는 전자시스템집적연구실(display.hanyang.ac.kr)은 99년 국가지정연구실(NRL)로 선정될 정도로 그 연구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이론을 바탕으로 설계된 반도체 소자 및 회로를 직접 마이크로칩으로 제작, 측정함으로써 이론과 실제를 병행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지난 5월 2001년도 연구업적 최우수 교수상으로 빛을 발하기도 했다. 빈약한 원천기술의 한계를 딛고 연구 개발과 후학양성에 온 힘을 기울이는 권 교수. 그의 교육철학 역시 기초교육이 튼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올바른 기초교육이 공학발전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수식 암기 위주의 교육이 아닌 개념 이해를 바탕으로 물리나 수학 등을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교육 철학이다. 학력 및 약력 권오경 교수는 1978년 본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86년과 88년에 스탠포드대학(Stanford University)에서 전기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80년부터 83년까지 (주)금성전기 기술연구소 연구원, 83년부터 92년까지 스탠포드대학 Electronics Laboratories 연구조교, Texas Instruments 반도체 공정설계센터(Semiconductor Process & Design Center) 책임연구원을 역임한 바 있으며 92년부터 현재까지 본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5-01 08

[교수]‘행정도 서비스’최병대(사회대·행정) 교수

이제는 명실 공히 지역분권시대다. 올해로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지 14년이 되었지만 갖가지 비리와 부정은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행정 서비스에 대한 마인드 부족과 자치단체장들의 그릇된 정치적 편향성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일반론이다. 이에 자신의 행정 경험과 학문적 원리를 통해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니 최병대(사회대·행정)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최 교수는 여러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지방자치' 안정화를 위해 적절한 감시와 견제 수단을 통한 개선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최 교수는 92년 미국 Akron 대학에서 도시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2001년 2월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근무하면서 지방자치와 지방행정 그리고 도시행정과 관련한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30여 회의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또한 서울시 기획예산실과 정책기획실에서 근무하는 등 실무와 이론에 정통한 관료출신 학자로 불린다. 최 교수는 교직 활동과 함께 현장 중심의 연구 활동을 병행한다. 그런 노력으로 지난 1999년 설립된 국무총리실 산하 지방이양추진실무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 공로를 인정받아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부패방지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지난해부터는 서울시의 청렴계약 옴부즈맨으로 활동 중이다. 서울시가 국제투명성기구의 청렴계약제(Integrity Pact)의 일부와 독특한 옴부즈맨을 도입해 만든 이 제도는 자치단체가 건설공사의 입찰과 계약체결, 계약이행과정에서 담합이나 뇌물수수와 같은 부정·부패행위를 사전에 차단하는데 목적이 있다. 시민단체 추천으로 합류한 최 교수의 부패행위 방지를 위한 또 한번의 활약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최 교수는 애써 싹 틔운 지방자치를 정착시키고 활성화하기 위해선 제도적 뒷받침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주민소환제 도입, 지방재정 감시강화, 지방의회 의원 유급제 도입 등이 그것이다. 그는 이를 위해 시정에 참여하는 것 이외에도 지속적인 칼럼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 중요성과 현재 나타나는 폐해를 환기시켜 왔다. 또한 자치단체장들의 정치적 행보에 유감을 표시하며 정치와 행정의 명확한 분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방 자치 행정은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무게 주심을 둬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관료들의 경직성과 고압적 자세에 익숙해 왔다. 최 교수는 주민들과 시민단체의 요구에 귀 기울이는 낮은 자세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이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과거 통치적 개념의 '거번먼트'(government) 대신에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거버넌스'(governance) 개념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는 최 교수는 각종 부정부패와 후진적 행정 제도의 개혁과 극복을 통해서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일컬어지는 지방자치 확립을 위해 오늘도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학력 및 약력 최병대 교수는 77년 한양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82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87년 미국 Akron 대학에서 행정학 석사를, 92년 같은 대학에서 도시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82년부터 85년까지 서울시 기획예산실에서 근무했으며 92년 한양대 행정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을 거쳐 92년 10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책임연구원, 도시경영연구부장, 기획조정실장, 부원장 직무대리, 시정개혁연구지원단장, 시민평가지원단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97년에는 서울시 정책기획관으로 잠깐 근무했으며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 연구조사위원과 지방이양추진실무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다. 한국지방자치학회 상임이사와 대학국토도시계획학회, 한국행정학회, 한국정책학회 이사를 역임했고, 60여 편의 논문과 연구보고서가 있으며 올해 대통령 표창과 서울정책인대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는 서울시 청렴결백제 옴부즈맨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