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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 23

[문화][신간] 유성호 교수 『단정한 기억』 출간

▲단정한 기억 (저자 유성호 | 교유서가) 유성호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등단 20년 만에 펴낸 첫 산문집 『단정한 기억』이 출간됐다. 칼럼과 비평적 에세이, 생활 에세이 등이 두루 묶여있는 이번 자전적 산문집은 시 쓰기를 지향했던 문학청년이 어떻게 비평에 전념하는 학자로 서게 됐는지, 연구과정에서 만난 근대 문인들에 대한 소회와 종교적 세계관까지 다양하게 아우르는 에세이들로 포진됐다. 이 책은 유 교수가 아버지를 그리워했던 유년, 중학생 때 백일장에서 상을 받으며 문학청년의 길에 들어서게 된 이야기, 기억의 고고학자가 되겠노라 마음먹고 근대 문학의 정전을 파헤치며 연구자가 되고 교육자가 되기까지의 진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단정한 기억』은 총 5부 구성됐다. 1부 ‘뜨겁고도 쓸쓸했던’, 2부 ‘기억의 계보학’, 3부 ‘소멸하지 않는 흔적들’, 4부 ‘고유한 빛이자 빚으로’, 5부 ‘부재하며 현존하는’을 주제로 기술됐다. 『단정한 기억』 저자 유성호 / 2019-09-16 / 교유서가 / 1만4천원. 292쪽

2019-09 05

[교원활동브리핑][한국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산독본 '고성사에서의 겨울 나기와 문답식 학습법' 연재

9월 5일자 <한국일보>에는 국어국문학과 정민교수의 ‘다산독본’ 78번째 글이 실렸습니다. 정 교수는 이번 글에서 다산이 전남 강진군 고성사에서 아들과 함께 겨울을 나며 공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산은 “공부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모르는 것을 물어라. 내가 대답해 주마. 그리고 그 질문과 대답을 남김없이 기록으로 남겨라.”며 배우는 이의 질문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아들 또는 제자들과 다산이 주고받은 다양한 질문과 그 답은 ‘여유당전서’에 기록돼 있습니다. 이러한 다산의 문답법은 스승이 제자의 눈높이에서 무엇이 궁금한지를 잘 알 수 있고, 제자 입장에서는 문답을 통해 공부의 방법을 확실히 익힐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본 고성사의 혜장스님도 제자들에게 문답법을 적용하여 논어를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9041160089443?did=ZU&dtype=&dtypecode=&prnewsid=

2019-09 05

[교원활동브리핑][조선일보] 국어국문학과 정민교수, 세설신어 '세재비아(世財非我)' 편 기고

9월 5일자 <조선일보>에는 국어국문학과 정민 교수의 연재글인 세설신어(世設新語) ‘세재비아(世財非我)’편이 실렸습니다. 세재비아는 천주교 교리서 ‘칠극(七克)’ 2장 ‘해탐(解貪)’에 나오는 말입니다. “세상의 재물은 나의 재물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모든 재산은 잠시 나를 거쳐가는 것일 뿐 천년만년 누릴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사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04/2019090403008.html?utm_source=naver&utm_medium=original&utm_campaign=news

2019-08 30

[문화][신간] 정민 교수 『다산독본: 파란(波瀾) 1·2』 출간

▲다산독본: 파란(波瀾) 1·2 (저자 정민 | 천년의상상)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쓴 젊은 날의 다산 정약용 평전 『다산독본: 파란(波瀾) 1·2』가 출간됐다. 이번에 두 권으로 낸 책은 마흔 살까지의 다산을 다룬 평전이다. 특히 다산과 천주교의 관계에 집중했다. 다산 정약용이 직접 쓴 글과 로마 교황청 문서, 조선 천주교 관련 연구 기록 등을 토대로 그려낸 다산의 청년 시절 벗들과의 우정과 배신, 유학과 서학 사이에서의 번민, 정조의 총애와 천주를 향한 믿음, 형님들의 죽음과 유배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했던 ‘인간 다산’을 곡진하게 풀어 냈다. 정 교수는 2006년 낸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으로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를 본격 시작해 지금까지 ‘다산의 재발견(2011)’, '삶을 바꾼 만남(2011)', ‘다산 증언첩(2017)’, ‘다산의 제자 교육법(2017)’ 등 다산 관련 책 일곱 권을 썼다. 『다산독본: 파란(波瀾) 1·2』는 총 2권으로 구성됐다. 1권 1장 ‘소년 시절’, 2장 ‘정조와의 만남’, 3장 ‘다산의 또 다른 하늘, 천주교’, 4장 ‘다산은 신부였다’, 5장 ‘남인과 천주교’, 6장 ‘조선 천주교회의 성장과 좌절’, 2권 7장 ‘격돌과 충격’, 8장 ‘신도시의 꿈과 밀고’, 9장 ‘배교와 금정 시절’, 10장 ‘전향 선언’, 11장 ‘목민관 다산’, 12장 ‘닫힌 문 앞에서’ 등이 있다. 『다산독본: 파란(波瀾) 1』 저자 정민 / 2019-09-05 / 천년의상상 / 1만7천5백원. 364쪽 『다산독본: 파란(波瀾) 2』 저자 정민 / 2019-09-05 / 천년의상상 / 1만7천5백원. 384쪽

2019-08 30

[교원활동브리핑][한겨레]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산, 정조와 천주교' 관련 인터뷰

8월 30일자 <한겨레>에서는 '다산, 정조와 천주교'에 대한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를 게재했습니다. '모던한 감각으로 무장한 고전학자'로 불리는 정 교수가 쓴 다산 정약용(1762~1836) 평전이 나왔습니다. 다산에 관련된 서적을 쓰면서 10년 넘게 다산의 자료와 사투를 벌여온 정 교수가 이번엔 40살 이전까지 '젊은 다산'에 대한 평전을 써냈는데요. <파란: 정민의 다산독본>은 다산의 글, 로마교황청 문서, 조선 천주교 관련 연구 기록과 논문들을 치밀하게 겹쳐 읽으며 다산이 글로 남기지 않은 진실을 추적합니다. 특히 천주교와 다산의 관계를 밝힌 대목은 논란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천주교학과 유학의 공존, 이 가운데 다산을 배치시킬 수 있어야 한다. 다산이 만년에 천주교인으로 다시 돌아온 것과 그의 경학 연구 사이에 특별한 모순 관계가 없다는 가설이 대전제다. 이렇게 보면 다산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율배반의 인간이 아니라 그 시대를 전신으로 받아들여 치열하게 진실을 살다 간 영혼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07766.html

2019-08 30

[교원활동브리핑][조선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산독본: 파란' 관련 인터뷰

8월 30일자 <조선일보>에서는 '다산독본: 파란'에 대한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와의 인터뷰를 게재했습니다. 정 교수는 최근 '정민의 다산독본: 파란1·2'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2006년부터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을 시작으로 다산 정약용(1762~1836) 연구를 본격 시작한 정 교수는 '다산증언첩' '다산의 재발견' '삶을 바꾼 만남' 등 다산 관련 책 일곱 권을 썼습니다. 이번에 두 권으로 낸 책은 마흔살까지의 다산을 다룬 평전인데요. 특히 다산과 천주교의 관계에 집중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정치가·행동가로서의 젊은 시절 다산을 들여다보니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면서 "권모술수에 능하고 추진력·돌파력도 대단한 '정치가 다산'이 천주교라는 문제와 결부되어 사회 변혁의 흐름을 어떻게 올라타고 휩쓸려갔는지 이해해야만 만년의 다산을 온전히 그려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앞으로 유배기와 해배(解配) 후 시기를 짚어 4~5권 정도로 책을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기사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30/2019083000183.html

2019-08 29

[교원활동브리핑][한국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산과 혜장 스님 교유... 잊힌 차문화 중흥 기폭제가 되다' 기고

8월 29일자 <한국일보>에서는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다산 연재본을 게재했습니다. 다산이 만덕사에서 혜장 스님과 만나 '주역'을 두고 하루 밤 토론을 벌인 뒤,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렬한 쏠림을 느껴 막역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혜장이 밤중에 몰래 주막집을 찾기도 하고, 다산이 혜장에게 편지를 보내 고성사에서 만나자고 연통을 넣거나, 반대로 혜장이 승려를 보내 다산을 청해오기도 했다. 한번 만나면 며칠씩 토론에 토론을 거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고 난 얼마 뒤 다산은 혜장에게 걸명시(乞茗詩)를 지어 보냈다. 원래 제목은 '혜장상인에게 부쳐 보내 차를 청하다(寄贈惠藏上人乞茗)’란 시다. 이 시는 뜻하지 않게 조선 후기 차문화사에 큰 전환을 이끌어낸 작품이 되었다. 세 해 뒤인 1808년 다산은 만덕사 너머의 귤동 초당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후 매년 직접 수백근의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또 그의 독특한 구증구포(九蒸九曝), 또는 삼증삼쇄(三蒸三晒) 방식의 제다법이 인근의 대둔사와 보림사 등으로 퍼져나가면서, 종내는 초의차로 이어지는 차문화 중흥의 디딤돌을 놓았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8281193378604

2019-08 29

[교원활동브리핑][조선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훼인칠단(毁人七端)' 기고

8월 29일자 <조선일보>에서는 '훼인칠단(毁人七端)'이라는 제목의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정 교수는 "남을 베고 찌르는 말이 난무한다. 각지고 살벌하다. 옳고 그름을 떠나 언어의 품위가 어쩌다 이렇게 땅에 떨어졌나 싶다. '칠극(七克)' 권 6의 '남을 해치는 말을 경계함(戒讒言)' 조를 읽어 본다"라며 현 세태를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훼인칠단(毁人七端)'에 대해 "남을 헐뜯는 데 일곱 가지 단서가 있다. 까닭 없이 남의 가려진 잘못을 드러내는 것이 첫째다. 듣기 좋아하는 것이 둘째다. 까닭 없이 전하고, 전하면서 부풀리는 것이 셋째다. 거짓으로 증거 대는 것이 넷째다. 몰래 한 선행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다섯째다. 드러난 선행을 깎아 없애는 것이 여섯째다. 선을 악이라 하는 것이 일곱째다. 그 해로움은 모두 같다." 남을 비방하려고 잘못을 부풀리고, 과장해서 보태며, 거짓으로 증거 대고, 좋은 점을 깎아 내려, 사실을 호도하고 진실을 왜곡한다. 한번 이 덫에 걸리면 헤어날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8/2019082803396.html

2019-08 22

[교원활동브리핑][한국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종교와 나이 뛰어넘어... 다산, 진정한 교유 대상을 만나다' 기고

8월 22일자 <한국일보>에서는 다산에 대한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연재본을 게재했습니다. 정 교수는 강진의 유배 생활에서 함께했던 제자 황상의 사촌인 황인태와의 일화를 말하며 "황인태의 푸념(중인으로써의 신분의 제약)을 듣고, 다산은 넌지시 '칠극'의 한 단락을 끌어와 그에게 취몽의 삶을 버리고, 깨달음의 길로 함께 나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덕담을 건넸다. 이것을 암묵적 포교 행동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어쨌거나 다산은 배교를 선언하고 쫓겨온 귀양지 강진에서도 의식의 밑자락에 여전히 천주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강진의 큰 절 대둔사에 새로 부임해 온 학승 '혜장'에 대해 말하며 "소문에 그는 대단한 학승(學僧)으로, 나이 서른에 이미 대둔사의 강회에서 주맹(主盟)을 맡아 100명이 넘는 승려를 앉혀 놓고 강의해 단숨에 그들을 압도했다는 풍문이었다. 이런 혜장을 찾은 다산은 기고만장하던 혜장의 기염을 짧은 질문 하나로 격파하고 통과해 버렸다. 이후 혜장은 기운을 누그러뜨려 겸손해지겠다며 제 호를 아암(兒菴)으로 고쳤다. 그리고는 다산 앞에서 고분고분한 아이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8211045067919

2019-08 22

[교원활동브리핑][조선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소구적신(消舊積新)' 기고

8월 22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소구적신(消舊積新)'이라는 제목의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정 교수는 "'칠극(七克)'은 예수회 신부 판토하(Didace De Pantoja·1571~1618)가 1614년 북경에서 출판한 책이다. 한문으로 천주교 교리를 쉽게 설명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해 조선의 많은 지식인이 이 책을 통해 천주교인이 되었다. 서문에서 말했다. "대저 마음의 병이 일곱 가지요, 마음을 치료하는 약이 일곱 가지다. 핵심은 모두 묵은 것을 없애고 새것을 쌓는 것에 불과하다." 이어 그는 교만함(傲)은 겸손으로 이기고, 질투(妬)는 어짊과 사랑으로 극복하며, 탐욕(貪)은 베풂으로 풀고, 분노(忿)는 인내로 가라앉힌다. 욕심(饕)은 절제로 막으며, 음란함(淫)은 정결로 차단하고, 게으름(怠)은 부지런함으로 넘어서야 한다며, 7장으로 나눠 그 방법을 구체화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예화가 신선하고 설명이 알기 쉬워 심신 수양서로 알고 읽다 보면 그 안에서 어느새 신앙이 싹터 있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21/2019082103260.html

2019-08 17

[교원활동브리핑][세계일보] 유성호 국어국문학과 교수, '자기훼손의 언어를 넘어서' 기고

8월 17일자 <세계일보>에서는 '자기훼손의 언어를 넘어서'라는 제목의 유성호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글을 게재했습니다. 유 교수는 "자신의 본원적 가치를 침탈하려는 폭력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는 태도와 행위를 총칭해 우리는 저항이라고 부른다. 이상화, 김소월, 한용운 등이 보여준 가열한 저항의 언어는 이러한 궤에서 살펴져야 한다. 저항의 맥락을 키운 건 제국이 저지른 폭력성이었고, 그러한 간난신고 의 삶이 오히려 혼을 울리는 명편을 써내는 토양이 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설은 일제말기의 정신사적 파행이 저항의 맥락을 줄기차게 형성했다는 것으로 증명되거니와 그 역사적 실재는 지금도 우리의 어엿하고도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유 교수는 "삶의 세목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기비하의 무의식을 넘어서야 한다. 그럼으로써 최근 벌어진 한·일 갈등의 상황에 맞서, 민족의 연속성과 정체성을 크게 사유하면서 상황논리를 가장한 자기훼손의 언어를 천천히 극복해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www.segye.com/newsView/20190816508122

2019-08 15

[교원활동브리핑][조선일보] 정민 국어국문학과 교수, '문슬침서(捫虱枕書)' 기고

8월 15일자 <조선일보>에서는 '문슬침서(捫虱枕書)'에 대한 글을 게재했습니다. 정 교수는 '문슬침서(捫虱枕書)'에 대해 "왕안석(王安石)은 두보(杜甫)의 시 중 '주렴 걷자 잠자던 백로가 깨고, 환약을 빚는데 꾀꼬리 우네(鉤簾宿鷺起, 丸藥流鶯囀)'란 구절을 아껴 뜻이 고상하고 묘해 5언시의 모범이 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다가 스스로 '청산에서 이 잡으며 앉아 있다가 꾀꼬리 울음소리에 책 베고 자네(靑山捫虱坐, 黃鳥枕書眠)'란 구절을 얻고는 자신의 시도 두보만 못지않다며 자부했다고 한다. 섭몽득(葉夢得)의 '석림시화(石林詩話)'에 나온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정 교수는 "왕안석과 조식의 시에 나오는 '문슬(捫虱)'은 이를 잡는다는 말이다. 전진(前秦)의 소년 왕 맹(王猛)이 대장군 환온(桓溫)을 찾아가 알현하고, 천하 일을 유창하게 담론하는 한편으로 이를 잡으며 여유만만하고 거침없는 태도를 보였다는 데서 처음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기사 링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8/14/201908140324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