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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 23

[동문][동행한대] 故 정순애 동문, 한양에 대한 사랑을 기부로 새기다. (2019년 겨울호)

▲ 故 정순애 동문 (간호학 74) 한양에 대한 사랑, 기부로 깊이 새기다 故 정순애 (간호학 74)동문 2019년 6월 13일, 故 정순애 한양대병원 간호사가 생전에 남긴 유언에 따라 한양대학교와 한양대학교병원에 각각 2억 원의 발전기금 전달식이 진행됐다. 1978년부터 2015년 퇴직할 때까지 37년 동안 한양대학교병원에 몸 담았던 故 정순애 간호사는 암 투병 말기에 자신의 유산이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 쓰이길 바란다는 뜻을 남겼다. 한양대 간호학과에서 함께 공 부하고, 많은 시간을 한양대병원에서 함께 근무한 최정순(간호학 73) 동문과 박경복(간호 학 73) 동문을 만나 故 정순애 간호사의 한양대와 한양대병원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성실하고 반듯하게 일했던 간호사 시절 故 정순애 동문은 1974년 한양대 간호학과에 입학한 후 졸업과 함께 바로 한양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대의 시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0여 년을 한양대와 함께 지내온 셈이다. 몸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살뜰하게 살피던 효심은 간호사라는 직업적 자세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하는 모습을 최정순 동문은 아직도 기억한다. “간호사로 근무하는 동안, 정말 성실했어요. 옆에서도 누구나 인정할 만큼 근면하게 일했죠. 환자들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어요. 자기 자리를 떠난 적이 없을 만큼 반듯하게 일하던 사람이라 어디가 아프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2011년에 유방암이 발병하자 故 정순애 동문은 수술과 항암 치료를 받고 1년 만에 복직을 했다. 동기들도 차츰 퇴직을 준비하던 시기라, 이때 같이 그만두고 쉬면 어떠냐는 제안을 했는데도 본인이 거부했다. 자신은 병원에서 아직 일을 더 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방암 말기였으니까 치료는 했다고 하지만 몸 상태가 예전 같을 수가 없죠. 걱정이 되어서 저희가 퇴직을 권유했는데도 듣지 않았어요. 그만큼 한양대병원과 환자들에 대한 소명의식이 확고했어요.” 2015년 2월 퇴직을 하고 난 뒤, 故 정순애 동문은 할 일을 마쳤다는 듯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전에 모아온 재산을 정리하면서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큰 금액의 기부를 결심한 것은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고 가장 자신답게 살아온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몸에 밴 검소함과 후배에 대한 지극한 사랑 故 정순애 동문은 외투 한 벌로 겨울을 날 정도로 평소 검소하게 생활해왔다. 박경복 동문은 한 번도 고인이 허투루 돈을 쓴 것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기부금을 결심할 때 모아둔 재산을 보고 한 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함께 살던 어머니가 편찮으시니 병원과 집만 오가는 생활을 했어요. 그래도 미혼으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이 그렇게 큰 금액을 모아뒀을 지는 몰랐어요. 저희도 나중에 알고 우리가 알고 있던 이상으로 참 착실하게 살았구나하고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간호부 팀장으로 근무하면서도 성실한 태도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환자를 대할 때 차등을 두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이런 바른 모습은 후배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유독 따르는 후배가 많았던 것은 사람을 챙기는 것에도 마음을 잘 썼기 때문이었다. “선배들에게도 깍듯했지만 후배들에게 마음을 많이 썼어요. 후배들이 뭐가 부족하고 뭐가 필요한지를 잘 알아챌 정도로 세심하게 살폈어요. 선배로서 자신이 뭘 도와줘야 하는지를 제때제때 아는 선배였죠. 그래서 후배들과 관계가 좋을 수밖에 없었어요.” 후배와 환자를 향한 사랑의 실천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은 故 정순애 동문에게 간호사라는 직업은 천직이었고, 한양대병원이 집과 같은 곳이었다고 기억한다. “대학을 들어왔지만 고등학교 다닐 때처럼 다른 데 한 눈 파는 일 없이 수업을 들었어요. 졸업하자마자 다른 데를 볼 것도 없이 한양대병원으로 취업을 했고요. 이런 생활을 하면서 동기들끼리 서로 애착도 강하고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남달랐죠. 고인도 한양대병원이 최고의 직장이라고 자주 말했어요.”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었기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옆에 있었던 최정순 동문과 박경복 동문에게 故 정순애 동문은 후배와 병원을 위해 기부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직접 전했다. 한양대에는 간호학과 발전과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한양대병원에는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동 건립에 힘을 보탰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다. “고인에게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은 자신의 전부나 다름없는 곳이었어요. 자신의 기부금이 후배들과 환자들을 위해 쓰이길 원했는데 그 뜻이 잘 전달되어 저희로서도 감사한 마음입니다. 마지막까지 사랑을 실천하고 간 고인을 많은 분들이 기억해주셨으면 합니다.” 이러한 故 정순애 동문의 뜻을 기리기 위해 한양대에서는 현재 한창 공사 중인 간호학부 미래교육관에 ‘정순애 홀’을 조성할 예정이다. 평생 사랑을 실천해온 故 정순애 동문은 앞으로도 한양대와 한양대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2019-10 18

[리뷰][동행한대] 변화를 위한 한걸음, 열다섯번째 ‘동행’ (2019년 가을호)

▲ 동행한대 2019년 가을호 (통권 제15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9년 가을호(통권 15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여름호는 △동문 기부자 인터뷰 △ 교내 기부 캠페인 소식 △한양대 주요 뉴스 △발전기금 소식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이번 호에는 국내 최초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한양대 병원에 설립하여 한양대 발전과 함께한 김성윤(의학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김 동문은 13년부터 꾸준한 기부를 이어왔으며, 올해 1월 의과대학 발전기금으로 3억 원을 기부하였다. 또한 그는 00년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수상받으며, 03년 대통령 표창을 받고, 올해 5월 김성윤 LAB을 개관하는 등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학교를 빛내는 이로 자리매김하였다.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을 목표로 앞으로 더 많은 뒷받침이 되어 목표에 도달하길 원한다는 말을 전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30년 가까이 장학회를 운영하며, 올해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은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보물산 대표) 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 동문은 ''어려울 때 도움을 받는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것이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다.''고 말하며, 자신의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고 전하였다. 또한 힘든 상황을 겪고 있는 동문들에게 지금의 어려움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경험이될 것이라며, 현재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고 조언하였다. 다음으로는 졸업 후, 미국에서 모교인 한양대로부터 부름을 받고 자원환경공학과로 돌아온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이 동문은 자원환경공학과 발전 기금을 위한 모금 사업을 진행 중이며, 최근 학과 발전기금을 기부하였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던 이 사업은 올해 벌써 두 배 가까이 모였다고 한다. 작은 힘이 모여 큰 목표를 이룬다는 진리를 이번 모금 사업을 통해 깨달았다고 하며, 후배 및 제자들이 자신의 야성을 깨워 더 큰 모험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조언하였다. 이어서 미주 지역 동문을 만나기 위한 한양국제재단 설립 소식과 한양대 ERICA의 캠퍼스 혁신파크 선도사업 선정, 19년도 5급 행정고시 기술직 최종 14명 합격 소식을 전하며, 이 외에도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이 실려있다. ▶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 보기

2019-10 18

[교수][동행한대] 이승원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자원환경공학과 100주년을 바라보며 실천하는 기부(2019년 가을호)

▲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자원환경공학과 100주년을 향한 마음으로 이승원(자원환경공학 87) 자원환경공학과 교수 미국에서 모교인 한양대로부터 부름을 받고 자원환경공학과로 돌아온 이승원 교수는 뿔뿔이 흩어져 수업을 받고 강의를 하는 학생들과 교수들이 한데 뭉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원환경공학과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모금사업은 거기에서부터 출발했다. 십시일반의 힘, 이승원 교수는 작은 힘이 모여 큰 목표를 이룬다는 진리를 이번 모금사업을 통해 더욱 깨닫고 있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올해 벌써 두 배 정도가 모인 것 같습니다. 작게 모아 크게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Q1. 몸 담고 계신 자원환경공학과에 최근 학과 발전기금을 기부하셨습니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1. 2년 전 부임해서 자원환경공학과 강의를 하다 보니 강의실과 연구실 등 학과 공간이 4개 건물에 나눠져 있어 학생과 교수, 선배와 후배 간에 서로 접촉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런 것이 뭐 중요할까 생각했지만,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공간의 분리가 소통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구나.’를 많이 느꼈습니다. 또 과거에는 수업이 일방향으로 진행되었지만 지금은 토론식의 쌍방향 수업이 이뤄져야 하는데 현재의 강의실로 그런 수업이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론식 수업보다 실용적인 교육이 필요할 때도 많고요.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환경도 바뀔 필요가 있지요. 발전기금을 통해 그런 공간이 형성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Q2. 자원환경공학과 설립 80주년을 맞아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발전기금 모금사업을 진행 중인데요. 어떤 모금사업인지요? A2. 자원환경공학과는 1939년 한양대 개교와 함께 시작한 학과입니다. 지난 10월 17일, 학과 설립 80주년 기념 행사에서 많은 동문들이 모여 그 동안 해온 일들을 되돌아보고, 20년 후인 100주년 때는 우리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자원환경공학관(가칭) 건립은 20년 안에 우리가 이뤄내고 싶은 미래입니다. 이번 발전기금 모금사업을 통해 장기적으로는 2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모아 자원환경공학관을 건립하고, 단기적으로는 학과를 위한 작은 공간이라도 하나하나 넓혀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Q3. 학과 교수님들과 동문들이 모금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현재 모금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A3. 학번 별로 기부금을 모으는데 현재는 80년대 학번이 주축이 되어 모금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90년대, 2000년대 학번이 이끌어 나가겠지요. 기부 방식은 몇 년 전부터 자원환경공학과에서 운영해 오고 있는 ‘십시일반 장학금’처럼 할 수 있는 만큼의 금액을 지속적으로 기부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일 년에 1억 원 정도를 목표로 했는데 올해 벌써 두 배 정도가 모인 것 같습니다. 작게 모아 크게 이룬다는 의미를 다시 깨닫고 있습니다. 저는 학과장으로서 교수님들의 기부와 학생들의 재능기부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Q4. 기부란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평소 기부나 나눔에 대해 가지고 계셨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A4. 어릴 적, 저희 어머니께서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안동 시내에 버려진 것들을 주워 고물상에 팔아 번 돈으로 ‘깡통장학금’을 만들어 운영하셨습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부활동을 하셨지요. 연세가 드셔서 이제는 더 이상 하기 힘드셨던지 얼마 전 저에게 장학금 기부 내역 장부를 건네주시면서 그 동안 모아 놓은 돈도 모두 장학금으로 나가도록 조치를 해놨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나를 위해 좀 더 써주지 뭘 저렇게 남을 위해 돈을 모으나’하고 서운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그렇게 기부를 하고 나눔을 행하셨던 것이 제 삶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제가 모금사업을 기획하고 열심히 동참할 수 있는 것도 어머니에게 받은 긍정적인 영향 덕분이겠지요. Q5.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를 전공하고, 다시 같은 학과에서 후배를 제자로 가르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드실 것 같습니다. 후배(제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5. 한양대를 상징하는 동물이 사자입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사자처럼 용맹한 청춘을 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요즘 친구들은 시대가 그렇게 만든 부분도 있지만 미래에 대한 걱정이 너무 큰 것 같습니다. 1학년 때부터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으로만 진로를 결정하는 친구들이 많은데요. 자신의 야성을 깨워 더 큰 모험으로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2019-10 18

[동문][동행한대] 이경록 효봉물산 대표,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2019년 가을호)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봉물산 대표 기부는 선한 영향력을 실천하는 방법 이경록(자원공학 80) 효봉물산 대표 30년 가까이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장학회를 운영할 정도로 오랫동안 나눔을 실천해 온 이경록 대표는 올해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게 되면서 한양대 선후배들을 만날 기회가 잦아지자 마음에 계속 담아두었던 결심을 실행했다. 지난 4월, ROTC 재학생 후배들을 위한 발전기금 1억 원을 학교에 기부한 것이다. 나의 도움이 다른 도움을 불러일으킨다는 선한 영향력에 대한 믿음은 그를 꾸준한 기부천사로 만들고 있다. ''저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거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제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Q1. 한양대 ROTC 동문회장을 맡고 계신데요, 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요? A1. 동문회장 자리는 1년씩 돌아가며 순임제를 하고 있는데, 올해는 22기 차례라 제가 동문회장이 되었습니다. ROTC 동문회는 대학 동문 모임이지만 군대 모임이기도 해서 우애와 유대감이 매우 강합니다. 매달 만나 친목을 다지는 활동을 주로 하지만 최근에는 재능기부를 하는 동문들에게 한학이나 민간요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또 동문회 집행부에서 한 달에 한 번 밥퍼 등 봉사활동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Q2. ROTC 발전기금 용도로 기부를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A2. 자주 방문하지는 못했지만 모교에 대한 애정은 늘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마침 올해 ROTC 동문회장을 맡아 오랜 만에 모교를 찾게 되면서 그 마음을 실천한 것뿐이고요. 거기에 이유를 하나 더 보태자면 우리 동문회에서도 기부 문화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도 들어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ROTC 동문회장이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일을 하면서 우리 동문회가 학교와 함께 걸어간다는 느낌을 공유하고 싶은 것이지요. Q3. 광성장학회를 운영하시면서 소년소녀가장이나 탈북 청소년들을 돕고 있으신데요. 어떤 동기로 장학회를 시작하셨는지요? A3. 운영 중인 광성장학회는 1990년에 설립해 어느덧 29년차가 되었습니다. 부친께서는 한국전쟁 시기에 이북에서 내려오셔서 어렵고 힘든 생활 끝에 재산을 모으셨습니다. 이북5도청에서 하는 장학재단에도 관여를 하셨을 만큼 사회공헌에 관심이 많았던 부친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아들인 제가 유지를 받들자는 마음으로 광성장학회를 만들었습니다. 대개 장학금이라고 하면 성적을 보게 마련인데, 저는 성적보다는 어려운 상황을 우선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입니다. Q4. 기부는 대표님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대표님께서 생각하는 기부의 가치가 궁금합니다. A4. 사실 저는 부친이 고생하시면서 생활을 잘 일궈내셨기 때문에 학창 시절에도 돈에 크게 구애 받지 않고 학교를 다녔습니다. 요즘말로 ‘금수저’라고 할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부의 가치를 일찍 깨달은 것은 나눔을 실천하는 이들이 사회가 양극화 되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어려운 사람을 도울 거라는 선한 영향력을 믿고 있습니다. 제 기부가 그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계속 해나가고 있습니다. Q5. 오랜 만에 모교를 방문하면서 한양대의 변화를 한 눈에 보셨을 텐데요. 기부자로서 한양대에 전하고 싶은 말이나 바라는 점이 있으시다면? A5. 제가 80학번으로 입학할 당시와 비교할 때 지금의 한양대 위상은 너무나 높아졌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대학이 되었습니다. 특히 공과대학의 위상은 국내 최고 수준이기도 하죠. 정말 대단한 성과입니다. 이 같은 한양대의 성장이 졸업생에게는 축복과 같지요. 졸업생 가운데 한 명으로서 학교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Q6. ROTC 발전기금이나 장학회 장학금 등 어려운 학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힘든 상황에서도 학업을 유지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6. 저는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손가락도 각각 길이가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그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길이가 짧다고 불필요한 존재도 아니고 길이가 길다고 더 잘난 존재도 아닙니다.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게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자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상실감과 열등감을 느끼지 않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겪는 어려움이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경험이라고 믿으면서 현재의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2019-10 18

[동문][동행한대] 김성윤내과의원의 김성윤 원장, 한양의대의 더 큰 발전을 바라다 (2019년 가을호) (1)

▲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한양 의대, 더 큰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국내 최초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한양대 병원에 설립했던 김성윤 원장은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의과대학의 발전과 함께한 동문이다. 2013년 익명으로 첫 기부를 시작해 조용하게 기부를 이어오던 김성윤 원장이 올해 1월 3억 원이라는 큰 기부를 또 한 번 실천했다. 한양대 의과대학이 지난 50년 간 국내 의료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만큼, 앞으로도 더욱 큰 걸음으로 나아가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번 기부에 담았다. 모교에 대한 지극한 애정, 김성윤 원장은 자신의 기부를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일뿐이라 말한다. ''올해 5월 24일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는데,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어요. 후배들이 좋은 상황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Q1. 올해 1월 의과대학 발전기금으로 3억 원을 기부하셨는데요. 이렇게 큰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한양대의 교훈이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교훈으로만 여기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한양대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제 직장이었기도 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20여 년 전, 병원을 그만 둘 때는 ‘다시는 한양대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나는 한양대에 서운함이 많았는데 한양대는 여전히 날 잊지 않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학교로부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고, 저도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기부를 했습니다. Q2. 2015년에 바이오메디컬센터 건립기금, 2016년에 의과대학 발전기금 등 꾸준히 기부를 해오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2013년에 하신 첫 기부는 1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익명으로 하셨습니다. 익명을 원하셨던 이유가 있으신지요? A2. 1975년 한양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고 레지던트까지 마친 후, 198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류마티스는 정형외과의 영역이었지요. 1989년 한양대 병원에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열었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떠나긴 했지만 병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계속 있었지요. 그래서 류마티스 전문병원에 힘을 보태고 싶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고 조용히 기부를 했어요. 이번에 다 드러나 버렸네요.(웃음) Q3. 기부와 나눔에 대한 원장님의 평소 생각도 궁금합니다. A3. 미국 병원에 있을 때, 한쪽 벽에 ‘밀리언달러 트리’라는 게 있었어요. 병원에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나무 잎사귀에 새겼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이렇게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의사라는 직업은 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부나 나눔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보면 재능이나 노력 봉사 등 다양한 기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발전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Q4. 지난 5월 의과대학 내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습니다. 직접 한양대에서 강의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공간을 후원해주신 소감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4.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김성윤 LAB도 그렇고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얼굴과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제가 아들에게 그랬죠. “나중에 나 죽거든 따로 묘지나 묘비를 세우지 말고 여기 와서 묵념을 해라.”고요. 이곳이야말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니까요. Q5. 한양대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후배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A5. 후배나 제자들에게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입학한 해가 1969년입니다. 그 시절은 제게 가장 힘든 시기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힘들면서도 좋은 이유는 가능성 때문이지요. 제가 나아가려고 하는 꿈에 도달하려면 힘들게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꿈이 있었으니까 너무 행복한 시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지금이 힘들지만 가장 좋은 시기다.”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Q6. 2000년에는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는데요. 이처럼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학교를 빛내는 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 원장님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A6. 한양대 병원에 처음으로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세운 공이 인정되어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받고, 이희호 여사님을 오래 치료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설립할 때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서울대 병원도 세브란스 병원도 하지 못한 게 뭘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길이었지요. 미국을 건너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새롭게 개척한다는 것은 길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젊은 시절, 그런 오기와 마음가짐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그러한 도전을 한양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성과였지요. Q7. 벌써 한양대에 네 번째 기부를 하셨는데요. 기부를 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7. 기부는 처음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하고 나면 계속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돈이 생기면 ‘뭘 더 사야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부를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변화했어요. 이런 것도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자세의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가지 변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장려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가 주는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모교의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니만큼, 기부를 하고 난 후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우리 세대들이 더 나서야지요. Q8. 한양대 의과대학에 중요한 획을 그으신 한 분으로서, 앞으로 한양대 의대가 어떻게 발전해나가기를 바라시는지요? A8. 지난해가 한양대 의과대학이 생긴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지닌 의과대학이 국내에 몇 없지요. 지난 5월 참석한 ‘의대 5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한양대 의과대학이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을 목표로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양대 의과대학에는 훌륭한 교수진과 의료진이 많으니,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뒷받침이 되어 그 목표에 꼭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2019-07 15

[리뷰][동행한대] 변화를 위한 한걸음, 열네번째 ‘동행’ (2019년 여름호)

▲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 (통권 14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통권 14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여름호는 △동문 기부자 인터뷰 △ 교내 기부 캠페인 소식 △한양대 주요 뉴스 △발전기금 소식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이번 호에는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박화영(성악, (주)인코코 회장) 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박 동문은 14년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하고, 17년엔 한양글로벌인재 특강을 통해 후배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올해에는 한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아 모교와의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박 동문은 이번 기부를 통해 성악과 후배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다른 잠재 기부자들을 향한 독려의 말을 전하였다. 또 다른 기부자로는 기계공학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모교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욱(기계공학 96) 기계공학부 교수의 인터뷰를 담았다. 최근 박 교수는 기계관 건립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월 100만 원씩, 총 1억 원의 기부를 약정하였다. 기계공학부 동문과 힘을 모은 이 캠페인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해 시작되었다. 이번 기부 외에도 박 교수는 12년부터 기계공학부를 위해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였다. 기부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훨씬 풍족하게 해주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며, 기부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기부를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만족으로 생각해 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다음으로는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에 재학 중인 이유민(실내건축디자인 19) 학생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동문은 입학 후 입학식 특별공연에 출연하여 받은 출연료 전액을 학교에 기부하였다. 이번 기부는 이 동문에게 생애 처음 번 돈으로 생애 첫 기부를 한다는 의미 깊은 활동이었다. 이 동문은 자신의 선택을 보고 기부를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턱을 낮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기부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조언하였다. 교내 기부 캠페인 소식으로는 지난 5월 22일 서울캠퍼스 노천극장에서 열린 ‘85~88학번 동기회 30년 터울 후배사랑 점심나눔 캠페인’을 소개한다. 선배들의 후배들을 위한 점심 식사 대접은 세대를 넘어 선후배 모두 한양인이라는 연대 의식을 고취하기 충분했다. 학생 나눔 홍보대사 ‘한올 서포터즈’에 대한 소식도 전달되었다. 한올 서포터즈는 매월 기부 이벤트를 진행하는 재학생 기부 서포터즈로 캠퍼스 곳곳에 기부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한양의 ‘사랑의 실천’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한올’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2019 이공계 대학 평가에서 한양대가 종합 2위를 차지한 소식과. QS 세계대학평가 2020에서 150위를 차지한 소식을 전하며, 이 외에도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이 실려있다. ▶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 보기

2019-07 15

[동문][동행한대] 박화영 인코코 회장, 기부는 당연한 사회적 의무입니다 (2019년 여름호)

▲ 박화영(성악 卒) (주)인코코 회장 기부는 당연한 사회적 의무입니다. 박화영(성악 卒) (주)인코코 회장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주)인코코 박화영 회장은 지난 해 11월 모교인 한양대에 20억 원의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했다. 박화영 회장이 기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는 확고하다. 기부는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사회적 의무 중 하나라는 것. 이번 기부는 거기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앞으로 후배들의 꿈을 응원하고, 모교 성장에 함께하겠다는 시작의 의미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기부를 하고 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 제가 졸업한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의미이지요.’’ Q1. 미국에 거주하시면서도 한국의 모교인 한양대에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하셨습니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몇 해 전, 뉴욕대학을 다니는 딸에게 들은 말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의 장학기금이 너무 적다고 말해 궁금해서 어느 정도냐고 물었는데 제가 듣기에 상당한 금액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버드 같은 대학은 장학기금의 규모가 훨씬 더 크더군요. 미국의 많은 대학들은 기부금을 펀드로 운영하며 그 돈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한 내용을 알고 나니, 문득 모교인 한양대 생각이 났습니다. ‘한양대에는 어느 정도의 기금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죠. 학교의 운영은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기부금이 꾸준히 들어와야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능하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임덕호 전 총장님과 김종량 이사장님이 미국 동문 행사에 왔다가 저희 회사를 방문해주셨고, 이런 계기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Q2. 평소 미국에서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나눔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2. 미국 생활 초기에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의료보험조차 없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청구된 치료비는 가난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병원에 솔직하게 치료비를 낼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처지를 듣던 병원 담당자가 저에게 서류를 보내더니 거기에 저희 가족의 경제적 상황을 쓰라고 하더군요. 2주가 지난 뒤, 병원에서 운영하는 자선기금을 통해 어머니 치료비가 감면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실 미국은 세금 등 제도적인 부분에서부터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기부문화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 탄탄하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자연스럽게 기부를 당연한 사회적 의무라 생각하고 시작했고요. 뿌리교육재단에 박화영 장학금을 만들어서 매년 5명의 한인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힘든 가정을 돕는 패밀리터치에 기부를 하는 등 10년 전부터 기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기부는 혜택을 받은 사람이 다시 기부를 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그 선순환의 힘을 믿어야 기부를 통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Q3. 2014년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올해 한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으셨는데요. 모교와의 꾸준한 인연이 회장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A3. 지난 35년 동안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면서 한양대와의 인연은 거의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미국에서 총장님과 이사장님을 만나면서 한양대와 인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동문들과 교류도 많이 생겼지요. 학교에서 준 자랑스러운 한양인상과 명예공학박사 학위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격려로 여기고,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기부를 통해 한양대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기부를 하고 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 제가 졸업한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의미이지요. Q4. 2017년 한양글로벌인재 특강을 통해 후배들을 만나셨습니다. 당시 강연에서 하셨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을까요? A4.특강 제목이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음악으로 성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막상 미국에서 공부해보니 이 땅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언어적 소통도 힘들었지만 문화적 차이가 더 큰 벽이었습니다. ‘나에겐 아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구나.’하고 절망도 했지요. 음악 공부만 했지 경제적인 공부나 활동을 해본 적 없던 제가 어떻게 가족을 위해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나 막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에 없던 제품인 ‘붙이는 매니큐어’라는 아이템을 생각해냈고,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학 공부까지 하게 되었죠. 그런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좌절은 가치 있는 좌절이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패와 좌절이 없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00% 승률을 가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죠.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좌절을 그대로 남기면 ‘손실’이 됩니다. 대신 실수라고 생각하고 극복하면 ‘자산’이 되지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좌절을 자산으로 만듭니다. 모든 건 자기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죠. 미래를 꿈꾸는 우리 후배들이 좌절에 굴복하지 말고 극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건넨 말이었습니다. Q5. 모교에 전달한 회장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5. 음악 전공자이면서도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학자처럼 기계를 제작하고 특허를 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처음에는 제 기부금이 공학도에게 쓰이길 원했지요. 생각이 바뀐 건 지난 2월, 한양대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음악대학을 오랜만에 들러보고는 마음이 찡했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시설을 갖춘 연습실이나 콘서트홀이 없이 공부하는 게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 음악대학에 필요한 건물을 지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요. 음악대학 동문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시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하면 더 아름다운 기부가 될 테니까요. Q6. 마지막으로 기부를 망설이시는 다른 잠재 기부자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6. 많은 분들이 기부는 돈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부는 왠지 큰 금액을 해야 한다고 여기지요. 하지만 기부는 준비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둥도 필요하고 못도 필요하지요. 기둥을 기부해야 기부가 아니라 못을 기부해도 기부를 한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돈이 없어 기부를 못하고 돈을 많이 벌면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기부를 할 형편이 안 된다는 생각 대신 내 형편만큼 기부를 하면 됩니다. 백 원이든 천 원이든 자신의 상황에 따라 기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부가 모여 계속 선순환이 되면,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미래를 만들 수 있겠지요.

2019-07 15

[기획][동행한대] 나눔 홍보대사 '한올 서포터즈', 캠퍼스 곳곳에 기부문화 전파해 (2019년 여름호)

▲ 한올 서포터즈 우리는 나눔 홍보대사! ‘한올 서포터즈’입니다 캠퍼스 곳곳에 기부문화 전파하는 홍보대사 개강맞이 '올포유 개강 이벤트'를 비롯해 봄맞이 사진 촬영 이벤트 '한올은 봄을 싣고', 그리고 '곰 모양 비누 제작 이벤트'를 통한 수익금 기부까지 캠퍼스 내에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올 서포터즈' (이하 '한올'). 학교 대외협력처의 재학생 나눔 서포터즈로서 캠퍼스 곳곳에 한양의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 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한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월 기부 이벤트 진행하는 기부 서포터즈 올해로써 4기가 된 한올 단원들은 매월 기부 이벤트를 기획하여 교내에 기부문화를 전파하는 나눔 홍보대사이다. “‘한올’은 2016년 창단된 대외협력처 소속 서포터즈입니다. 기부와 나눔 홍보대사로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쉽고 재밌게 참여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동문기업 탐방, 동문행사 지원 등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지수, 정보시스템학 17) 한올 단원들은 매년 초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선발되며 본인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자기소개서와 나눔과 기부 이벤트 기획 아이디어를 토대로 평가받는다. “면접시간은 보통 30분 내외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기획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요.” (이지연, 철학 17) 우리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에 맞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지연 단원은 이러한 선발과정이 현재 진행 중인 행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사랑의 실천’, 우리가 앞장섭니다 우리 학교는 ‘사랑의 실천’을 교훈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에게 기부가 낯선 것은 사실이다. 한올 4기 강승민 학우에게 한올 활동을 진행하며 느꼈던 점들을 물어보았다. “직접 기획한 활동을 알리고 재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에 참여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는 한올 단원이라는 마음가짐 덕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강승민, 자연환경공학 17) 한양인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랑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올 단원들은 이미 서로에게 가족 이상의 존재들이다. 이들에게는 기부문화 전파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폴라로이드 사진 이벤트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저희 단원들이 사자탈을 직접 착용하였는데요, 무거운 탈을 쓴 채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던 게 기억이 납니다.” (김동현, 경영학 14) “매월 이벤트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저희가 준비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저희가 한 활동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김민경, 응용미술교육학 18) 기부는 쉽고 즐거운 것! 한올 단원들은 매 학기 장학금과 활동 단복 등의 지원을 받지만 한올 단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나눔과 기부 홍보대사라는 자부심과 보람이다. “2학기에도 매달 게릴라 기부와 나눔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부라는 것이 어렵고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흥미로운 이벤트로 찾아뵙겠습니다.” (조유진, 경영학 17) 지난 5월 20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곰 세 마리 비누 만들기 행사’에는 총 100명이 넘는 재학생들이 참가하였으며 제작한 비누 판매 수익금 전액은 성동구 다문화 가정센터에 기부되었다. 기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은 매월 열리는 한올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이 조유진 단원의 설명이다. 한올 단장 차종은 학생 역시 기부가 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거나 나눔을 실천하고 싶어도 주저하고 있는 재학생들에게 작은 참여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저희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부담 갖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나눔부터 하나씩 시작해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차종은, 응용시스템전공 18) 실 한 올 한 올이 모여 옷 한 벌을 이루듯, 작은 기부를 모아 따뜻한 나눔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한올 단원들은 계속하여 캠퍼스 내 기부문화를 전파할 것이다. 앞으로도 ‘사랑의 실천’은 그들의 삶이고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2019 상반기 한올 서포터즈 주요 활동] 2019.03 한양인을 위한 올포유 개강 이벤트 (장소: 생활과학대 앞) 한올 페이스북 및 카카오톡 SNS를 통한 간식 증정 2019.04 한올은 봄을 싣고 (장소: 본관 앞) 사자탈 및 봄꽃을 활용한 봄맞이 사진촬영 2019.05 곰 세 마리 비누만들기 행사 (장소: 한마당) 곰 모양 비누 제작 및 판매, 수익금은 전액 성동구 다문화가정센터에 기부

2019-07 15

[학생][동행한대] 이유민 실내건축디자인 학생, 처음의 가치를 기부에 새기다 (2019년 여름호)

▲ 이유민(실내건축디자인 19) 학생 ‘처음’의 가치를 기부에 새기다 이유민(실내건축디자인 19) 학생 생애 처음 번 돈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해 기부를 선택한 이가 있다. 실내건축 디자인전공 신입생 이유민 학생이다. 이유민 학생은 지난 2월 개최된 입학식의 특별공연에 출연한 뒤 받은 출연료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다. 앞으로도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기부가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이유민 학생에게 이번 기부는 또렷한 흔적을 남기는 강렬한 만남이었다. ‘’제 선택을 보고 기부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턱을 낮췄으면 좋겠어요. 기부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예요.’’ Q1. 입학식 특별공연에 출연해서 받은 출연료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는데요.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나요? A1. 출연료로 66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처럼 기부를 해보자 생각했죠. 할아버지께서도 우리 대학 원자력공학과 58학번 동문이신데, 모교에 대한 애정이 강하셔서 가족모임에서도 학창 시절 이야기를 곧잘 하세요. 한양대 입학을 결심한 것도 할아버지 영향이 있었죠. 제가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가 꾸준히 기부를 하신다는 점인데,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봐와서인지 저도 언젠간 기부를 하게 될 거란 막연한 생각은 있었어요. 출연료는 제가 생애 처음 제 힘으로 번 돈이니만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기부가 떠올랐어요. 부모님도 권하셨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부를 선택할 수 있었어요. Q2. 당시 입학식에서 참가하신 공연은 어떤 공연이었는지요? A2. 연극영화과 재학생 선배들과 신입생 다섯 명이 함께 뮤지컬 공연을 했어요. 한양대에서 합격 문자가 왔을 때, 입학식 공연에 참여하겠냐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입학 전에 신입생 시절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쌓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죠.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도 이런 공연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나름 큰 도전이었어요. 한 달의 연습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나와서 연습을 했고, 공연을 앞두고는 하루 종일 연습을 했어요. 연습 자체가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낯선 도전이라 힘들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학교 측에도 감사드립니다. Q3. 신입생이니까 아무래도 출연료를 받고 나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선뜻 기부를 선택한 게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A3.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소소하게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죠. 그런 의미에서 66만 원은 저에게 큰돈이었어요. 하지만 결코 쉽게 쓸 수가 없었어요. 뭔가를 사는 행위는 잠깐은 즐거울지 몰라도 오래 기억되지는 않잖아요. 학교에서 공연을 해서 받은 돈이니만큼 학교에 기부를 하는 게 더 의미가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다른 기부자들이 하는 금액에 비해서는 약소한 금액일텐데, 저는 학생이니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생애 처음 번 돈으로 생애 첫 기부를 한다는 데 의미를 뒀죠. 다른 데 쓰지 않고 기부를 선택한 건 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쓰임도 이보다 큰 의미로 쓰일 수 없을 거니까요. Q4. 주변에서 이유민 동문님의 기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친구들은 알고 있나요? A4. 아직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몰라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아마 뉴스레터에 제가 실린 걸 보면 알게 되겠죠. 부끄럽고 쑥스럽긴 하지만 친구들에게 ‘이런 적은 금액도 기부가 되는 구나.’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 선택을 보고 기부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턱을 낮췄으면 좋겠어요. 기부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예요. Q5. 기부를 하기 전과 기부를 하고 난 후에 뭔가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A5. 학교생활을 하면서 기부의 쓰임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게 교내의 기부 공간들이에요. 기부자의 이름이 들어간 공간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 후배들에게 이런 공간을 기부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마도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그런 꿈을 꾸게 되었다는 점이 기부가 준 가장 큰 변화예요. Q6. 앞으로도 기부를 계속 하고 싶은 의향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방식의 기부일까요? A6. 기회가 된다면 해외 봉사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아직 신입생이라 하고 싶은 게 많아 꿈을 확실히 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제 삶은 기부와 나눔이 평행선처럼 함께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부와 나눔만큼 돈을 가치 있게 쓰는 일도 없을 테고, 제 삶에 의미를 주는 일도 드물 거니까요.

2019-07 15

[교수][동행한대] 박성욱 기계공학부 교수,기부는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2019년 여름호)

▲ 박성욱(기계공학 96) 기계공학부 교수 기부는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박성욱(기계공학 96) 기계공학부 교수 박성욱 교수는 최근 기계공학부에서 추진 중인 기계관 건립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월 100만원씩, 총 1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 공부를 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기까지 한양대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다는 박성욱 교수는 이에 보답하기 위한 방법이자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택으로 기부를 택했다고 한다. 그에게 기부란 어떤 소비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쓰임이다. ‘’월 100만 원이면 좋은 양복 한 벌 사 입을 수 있는 금액이지만, 기부를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어떤 소비의 영역과도 비교가 안 되는 만족감입니다.’’ Q1. 기계관 건립기금 모금 캠페인에 1억 원의 기부를 약정하셨습니다. 먼저 기계관 및 관련 모금 캠페인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1. 기계관 건립에 대한 논의는 기계공학부 동문회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의 위상에 맞는 독립된 건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동문들이 힘을 모아 기계관을 설립하자고 의견을 모았죠. 이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사실이고, 그런 점에서 공학 교육도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습니다. 기존의 전달식 교육은 점차 PBL(Problem-Based Learning, Project Based Learning)이라는 문제기반학습과 프로젝트학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공간은 그런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면이 많지요. 기계관은 이러한 교육 패러다임에 맞게 설립될 것입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의 도약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2. 매월 분할해서 납부를 한다 해도 1억 원은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부를 결심하게 되셨는지요? A2. 제가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뭔가를 시작할 때 계산부터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기계관이 건립될 때까지 얼마가 걸릴까 계산해보니 대략 7년 정도일 것 같고, 제가 그 기간 동안 월 100만 원씩 내면 1억 원이 되겠더라고요.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제가 한양대로부터 받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 입학해서 박사 과정까지 한양대에서 배웠고, 지금도 모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니까요. 박사후과정으로 미국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을 빼면 20여 년 동안 한양대를 다녔습니다. 한양대의 변화를 직접 두 눈으로 봐왔죠. 그런데 제가 수업을 받던 때와 지금의 교육환경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 점이 늘 안타까웠는데 기계관을 짓는다고 하니 미미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한 번에 큰 금액을 낼 만큼 여유가 되지 않으니 매월 내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Q3. 이번 기부 외에도 2012년부터 기계공학부를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시작하셨나요? A3. 기부에 대한 큰 철학이 있었다기보다 부담 없이 조금씩 학교를 위해 뭔가 해보자는 마음으로 월 1만 원씩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10만 원을 기부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상을 받으면 상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게 제 자신의 만족감 때문이었습니다. 모교에서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환원하자는 마음이었죠. Q4. 재학 당시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교수님께 큰 영향을 준 인연이 있나요? A4. 저는 사실 학부 때만 해도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학생이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도교수이신 이창식 교수님을 만난 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제 꿈에 교수라는 직업은 없었습니다. 교수는 정말 남달리 똑똑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항상 묵묵하게 연구에 몰두하며 제자들에게 자극을 주시는 이창식 교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즐겁고 재미있게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Q5. 기부를 즐겁게 하시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기부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경험자로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5. 직접 기부를 해보기 전에는 기부를 해서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돈은 그저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부를 해보니, ‘이래서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부란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월 100만 원이면 좋은 양복 한 벌 사 입을 수 있는 금액이지만, 기부를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어떤 소비의 영역과도 비교가 안 되는 만족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부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02 08

[동문][사랑, 36.5°C]어렵게 내디딘 모교기부의 첫걸음이 마음 속 무거운 짐을 덜어줍니다

권선홍 교수는 1972년 한양대학교 고시반 공채 1기로 입학해 1976년 외무고시 1호 합격자가 된 자랑스러운 동문이다. 그는 대학 4년과 석사 2년을 합한 6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그 수혜를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평생 안고 살면서도 첫걸음을 떼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정년퇴임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야 시작한 그의 기부는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 1호 기부자가 되면서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행정고시반 장학금으로 300만 원을 선뜻 쾌척하며 그 동안 마음만 있었던 어려운 한 걸음을 뗀 것이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권선홍(72 법학) 부산외국어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외무고시 1호 합격자이십니다.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사법고시가 아니라 외무고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을 둘러싼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 시절엔 한국학이라는 용어도 생소하던 시절이라 진로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한양대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고시반 장학생 선발시험이 있으니 함께 응시해보자고 권유했어요. 사실 그 당시엔 대학 갈 형편이 못돼, 고시가 뭔지도 모른 채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준다는 말에 응시를 했죠. 다행히 합격해 남들처럼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제 적성과는 맞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2학년 1학기 때 한대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학술상에 응모했다가 인문사회분야의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죠. 그것을 계기로 한국학 공부로 전과하고 싶어 사학과 학과장님과 여러 차례 면담하며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여의치가 않았어요. 결국 고시반에 남기로 했지만 나중에 학문의 길로 나가려면 사법고시보다는 어학을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외무고시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학년 2학기부터 외무고시로 진로를 바꾸었어요.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 1호 기부자이십니다. 기부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시반 동기들 중에는 이미 장학금 되돌려주기 운동에 동참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지요. 그동안 생활하다 보니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천 단위, 억 단위의 기부자들도 많잖아요. 그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금액이라고 생각하니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어요.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정년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방법을 찾던 차에 마침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 소식을 들었어요. 고시반 장학금의 수혜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금 캠페인이라 더욱 뜻깊은 것 같습니다. 교수님도 장학금 수혜자이십니다. 장학금이 교수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제가 전기도 없던 시골 출신인데다 경제적으로도 대학갈 형편이 못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한양대학교 고시반 공채 1기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1972년 당시 장학금 외에도 생활비를 매달 15,000원씩 받았는데 공장 노동자들의 한 달 봉급과 맞먹는 수준이었어요. 고시반 학생들이 이런 파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합격생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모교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 자리에 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권동문은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공부한 고시반 출신 선후배 동문들! 우리가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이 어려운 후배들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됩니다.' 라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실 것 같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젊은이들은 누구나 자기의 세대가 제일 어려운 세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도 지독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클 것입니다. 제 막내아들도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절박함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요즘말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는 말밖에 못해 늘 미안하지요. 자신이 좋아하거나 일생을 바칠 만한 목표를 정하고 20~30년 정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 고수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취업 준비 등으로 힘든 일이 많겠지만 너무 경쟁에 매몰되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교 기부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에게 모교에 대한 기부는 학창시절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였습니다. 엄청난 혜택을 받으며 공부를 했으니 최소한이라도 되갚아야 하는 거잖아요. 저로서는 부산 총동문회와 지난해 11월 창립 20주년인 한양산악회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던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였지요. 그럼에도 기부를 계속 미루다가 어렵게 첫발을 뗀 느낌입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시작하고 보니 조금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제 정년퇴임하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지 못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름대로 기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부의 어려운 첫걸음을 떼셨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정년퇴임을 앞두고 뒤늦게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캠페인의 1호 기부자가 되었습니다. 소액기부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동문들께서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공부한 고시반 출신 선후배 동문들의 마음은 비슷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이 어려운 후배들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동행한대 2017년 WINTER (제8호) 이북 보기

2018-02 08

[동문][사랑, 36.5°C] 큰 마음보다 살뜰한 맘으로 자주 나누고 싶어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교통사고. 그날 이후 주변의 교통사고로 휴학한 후배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임영란 동문은 그들을 위해 도서구입비 100만 원을 기부하기로 한다. 딸의 이런 마음은 자식을 잃을 뻔했던 아찔한 경험을 한 아버지를 움직였다. 같은 부모로서 세월호 가족의 슬픔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는 부친 임재호 씨는 단원고 출신 학생들과 교통사고 피해 학생들을 위해 1,000만 원을 기부하며, 딸의 깊은 마음에 자식 가진 아비의 진한 마음을 더했다. 새해부터는 대중모금 캠페인 ‘Club 동행한대’의 후원자로도 나선 임영란 동문, 그에게 기부란 큰 맘 먹고 ‘한턱 쏘는’ 행위가 아니다. 그랬다면 아직 시작도 못했을 일, 일상 속에서 커피 한 잔 값을 아끼는 살뜰한 마음으로 아픈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글 편집실/사진 홍승진 ▲ 임영란(05 컴퓨터교육학) 동문 지난해 말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통원치료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경과는 어떠신지요? 임영란_ 졸업 후 임용고사를 거쳐 현재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지난 해 10월 말, 출장길이었는데 신호대기 중 갑자기 뒤차가 와서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 현장에서 강한 충격을 느끼기는 했지만 외상도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다음날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근육이 놀랐다며 5일치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해 주어서 좀 참으면 괜찮아지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호전되지 않다가 결국 수업 중에 심한 두통으로 쓰러지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뇌진탕과 편타손상이라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경황이 없었을 텐데 교통사고가 기부를 결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영란_ 이번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우스갯소리로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라는 말을 실감했어요. 몸도 아팠지만 가해차량 운전자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배상을 받기 위해 직접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도 공부하고 많은 사례와 판례들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보다 더 억울한 피해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특히 쉽게 합의를 했다가 나중에 큰 후유증에 시달리며 결국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도 있더라고요. 사실 저도 정확한 배상을 받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 치료를 꾸준히 받아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공무원이라 병가 중에도 월급이 나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 사회에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12월 월급의 반은 그들을 위해 기부하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휴학한 후배들을 위한 도서구입비’라는 특이한 용도로 기부를 하셨습니다. 임영란_ 교통사고가 기부의 계기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교통사고를 당한 후배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다면 생활비나 학비를 지원했을 테지만 소액기부였기 때문에 어떤 용도로 기부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대학 다닐 때 전공서적 구입비용이 늘 부담이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비록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본 기억이 있는 후배라면 나중에 또 누군가를 도울 줄 아는 선배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담아 보았습니다. 기부하실 때 아버님의 지원도 있었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은요? 임영란_ 아버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제가 재수를 결정했을 때도, 임용고사 준비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도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 주셨어요. 현재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동안 일과 가족을 챙기시느라 여행 한 번 마음 편하게 다녀오신 적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 회갑기념으로 1월에 가족끼리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치료기간이 길어지게 되어 결국 여행을 취소하게 되었어요. 죄송한 마음에 여행적금으로 모은 돈을 회갑선물로 드렸더니 그 돈을 선뜻 단원고 출신 학생들에게 기부하자고 하셨어요. 학창시절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임영란_ 학창시절 ‘한양어린이학교’라는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을 했어요. 한양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소아암환아들에게 교육봉사를 하는 동아리로 SK, 굿네이버스 등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좀 더 다양한 교육활동들을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 후에는 동아리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후배사랑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다가 2017년에 ‘한양어린이학교 후배사랑 장학기금’을 만들었어요. 사실 이 기금을 만들면서 후배들을 위해 모교에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 임동문은 '이번 기부는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본 기억이 있는 후배라면 나중에 또 누군가를 도울 줄 아는 선배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시작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버님은 기업가로서 평소에도 지역사회에 기부를 많이 실천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님의 기부가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임재호_ 제 영향이라고 하기는 쑥스럽습니다. 사고 후유증이 심해져 많이 놀랐을 텐데도 그 와중에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대견하지요. 제 사업장 인근에 단원고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원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거웠어요. 마침 딸아이가 자기 모교에 기부를 한다고 하니 단원고 출신의 학생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워커홀릭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일만 하다 죽겠구나 라는 생각에 뒤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해 작년에 졸업했습니다. 대학 동기들 중 딸 또래의 친구들이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본격적인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금전적인 기부 외에도 직접 현장에 나가는 봉사활동도 참여할 계획입니다. 사업장 인근에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이 많거든요. 이번 기부를 계기로 2018년 1월부터는 ‘Club 동행한대’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기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동문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임영란_ 한 달에 다섯 잔의 커피를 참는다면 ‘Club 동행한대’ 1구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저도 커피를 무척 좋아하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는 날도 있어요. 그런데 ‘Club 동행한대’ 후원자가 된 이후로는 ‘이런 날은 한 구좌 개설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업무 스트레스까지 줄어들더라고요. 커피 한 잔 값의 큰 힘을 여러분도 실천해 보셨으면 합니다. 동행한대 2017년 WINTER (제8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