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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 18

[동문][동행한대] 김성윤내과의원의 김성윤 원장, 한양의대의 더 큰 발전을 바라다 (2019년 가을호) (1)

▲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한양 의대, 더 큰 발전을 바라는 마음으로 김성윤(의학 69) 김성윤내과의원 원장 국내 최초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한양대 병원에 설립했던 김성윤 원장은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오를 만큼 의과대학의 발전과 함께한 동문이다. 2013년 익명으로 첫 기부를 시작해 조용하게 기부를 이어오던 김성윤 원장이 올해 1월 3억 원이라는 큰 기부를 또 한 번 실천했다. 한양대 의과대학이 지난 50년 간 국내 의료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온 만큼, 앞으로도 더욱 큰 걸음으로 나아가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길 바라는 마음을 이번 기부에 담았다. 모교에 대한 지극한 애정, 김성윤 원장은 자신의 기부를 아주 작은 ‘사랑의 실천’일뿐이라 말한다. ''올해 5월 24일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는데,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어요. 후배들이 좋은 상황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Q1. 올해 1월 의과대학 발전기금으로 3억 원을 기부하셨는데요. 이렇게 큰 기부를 결심하신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한양대의 교훈이 ‘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저 교훈으로만 여기고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가 되어 보니, 이제야 그 의미를 알겠더군요. 한양대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낸 곳이기도 하지만 제 직장이었기도 해서 좋았던 기억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20여 년 전, 병원을 그만 둘 때는 ‘다시는 한양대에 발을 디디지 않겠다.’고까지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최근에 그 생각이 바뀌었어요. 지난 해,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이름과 얼굴이 새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 ‘나는 한양대에 서운함이 많았는데 한양대는 여전히 날 잊지 않고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학교로부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었고, 저도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마음에 기부를 했습니다. Q2. 2015년에 바이오메디컬센터 건립기금, 2016년에 의과대학 발전기금 등 꾸준히 기부를 해오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2013년에 하신 첫 기부는 1억 원이라는 큰 금액을 익명으로 하셨습니다. 익명을 원하셨던 이유가 있으신지요? A2. 1975년 한양대 병원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하고 레지던트까지 마친 후, 1983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류마티스는 정형외과의 영역이었지요. 1989년 한양대 병원에 국내 최초의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열었고,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떠나긴 했지만 병원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계속 있었지요. 그래서 류마티스 전문병원에 힘을 보태고 싶어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하고 조용히 기부를 했어요. 이번에 다 드러나 버렸네요.(웃음) Q3. 기부와 나눔에 대한 원장님의 평소 생각도 궁금합니다. A3. 미국 병원에 있을 때, 한쪽 벽에 ‘밀리언달러 트리’라는 게 있었어요. 병원에 기부를 한 사람들의 이름을 나무 잎사귀에 새겼는데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나도 이렇게 기부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의사라는 직업은 돈이 아니어도 얼마든지 기부나 나눔을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보면 재능이나 노력 봉사 등 다양한 기부를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발전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Q4. 지난 5월 의과대학 내에 김성윤 LAB이 개관했습니다. 직접 한양대에서 강의도 하셨기 때문에 이런 공간을 후원해주신 소감도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A4. 감회가 정말 새롭죠. 제 기부가 이렇게 좋은 방향으로 쓰일 줄은 몰랐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합니다. 김성윤 LAB도 그렇고 의과대학 명예의 전당에 제 얼굴과 이름이 새겨져 있어서, 제가 아들에게 그랬죠. “나중에 나 죽거든 따로 묘지나 묘비를 세우지 말고 여기 와서 묵념을 해라.”고요. 이곳이야말로 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니까요. Q5. 한양대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후배들을 만나셨을 텐데요. A5. 후배나 제자들에게 자주 해주셨던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제가 입학한 해가 1969년입니다. 그 시절은 제게 가장 힘든 시기면서 가장 좋았던 시기였습니다. 힘들면서도 좋은 이유는 가능성 때문이지요. 제가 나아가려고 하는 꿈에 도달하려면 힘들게 노력할 수밖에 없는데, 그때는 꿈이 있었으니까 너무 행복한 시기예요. 그래서 학생들이나 후배들에게 “지금이 힘들지만 가장 좋은 시기다.”라고 말을 하게 됩니다. Q6. 2000년에는 총동문회에서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2003년에는 대통령 표창을 받으셨는데요. 이처럼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학교를 빛내는 분으로 자리매김을 하기까지 원장님의 인생철학이 궁금합니다. A6. 한양대 병원에 처음으로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세운 공이 인정되어 자랑스런 한양인상을 받고, 이희호 여사님을 오래 치료하면서 대통령 표창을 받았습니다. 류마티스 전문병원을 설립할 때는 ‘다른 곳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하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서울대 병원도 세브란스 병원도 하지 못한 게 뭘까?’ 생각하다가 선택한 길이었지요. 미국을 건너간 것도 그것 때문이었습니다. 뭔가 새롭게 개척한다는 것은 길을 만든다는 것이지요. 젊은 시절, 그런 오기와 마음가짐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의 그러한 도전을 한양대에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결코 이루지 못할 성과였지요. Q7. 벌써 한양대에 네 번째 기부를 하셨는데요. 기부를 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7. 기부는 처음 시작하기는 힘들지만, 하고 나면 계속 더 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돈이 생기면 ‘뭘 더 사야지’하는 마음이 아니라 ‘기부를 해야지’하는 마음으로 변화했어요. 이런 것도 중독이라고 해야 하나요?(웃음) 한 번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해야 한다는 자세의 변화는 분명히 있습니다. 또 한가지 변화라면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를 장려한다는 점입니다. 제가 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가 주는 여러 가지 긍정적 변화를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잖아요. 모교의 미래를 함께하는 것이니만큼, 기부를 하고 난 후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요즘은 젊은 세대들도 기부를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아는데,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 우리 세대들이 더 나서야지요. Q8. 한양대 의과대학에 중요한 획을 그으신 한 분으로서, 앞으로 한양대 의대가 어떻게 발전해나가기를 바라시는지요? A8. 지난해가 한양대 의과대학이 생긴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이렇게 긴 역사를 지닌 의과대학이 국내에 몇 없지요. 지난 5월 참석한 ‘의대 50주년 기념식’에서 우리 한양대 의과대학이 글로벌 100대 의과대학을 목표로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한양대 의과대학에는 훌륭한 교수진과 의료진이 많으니,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뒷받침이 되어 그 목표에 꼭 도달하기를 바랍니다.

2019-07 15

[리뷰][동행한대] 변화를 위한 한걸음, 열네번째 ‘동행’ (2019년 여름호)

▲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 (통권 14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통권 14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여름호는 △동문 기부자 인터뷰 △ 교내 기부 캠페인 소식 △한양대 주요 뉴스 △발전기금 소식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이번 호에는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박화영(성악, (주)인코코 회장) 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박 동문은 14년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하고, 17년엔 한양글로벌인재 특강을 통해 후배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올해에는 한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아 모교와의 교류를 지속하고 있다. 박 동문은 이번 기부를 통해 성악과 후배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가졌으면 한다며, 다른 잠재 기부자들을 향한 독려의 말을 전하였다. 또 다른 기부자로는 기계공학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 공부하고, 모교의 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박성욱(기계공학 96) 기계공학부 교수의 인터뷰를 담았다. 최근 박 교수는 기계관 건립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월 100만 원씩, 총 1억 원의 기부를 약정하였다. 기계공학부 동문과 힘을 모은 이 캠페인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해 시작되었다. 이번 기부 외에도 박 교수는 12년부터 기계공학부를 위해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였다. 기부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훨씬 풍족하게 해주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말하며, 기부를 어렵게 생각하는 이들에게 기부를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만족으로 생각해 달라는 말을 전하였다. 다음으로는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에 재학 중인 이유민(실내건축디자인 19) 학생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 동문은 입학 후 입학식 특별공연에 출연하여 받은 출연료 전액을 학교에 기부하였다. 이번 기부는 이 동문에게 생애 처음 번 돈으로 생애 첫 기부를 한다는 의미 깊은 활동이었다. 이 동문은 자신의 선택을 보고 기부를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턱을 낮췄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기부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조언하였다. 교내 기부 캠페인 소식으로는 지난 5월 22일 서울캠퍼스 노천극장에서 열린 ‘85~88학번 동기회 30년 터울 후배사랑 점심나눔 캠페인’을 소개한다. 선배들의 후배들을 위한 점심 식사 대접은 세대를 넘어 선후배 모두 한양인이라는 연대 의식을 고취하기 충분했다. 학생 나눔 홍보대사 ‘한올 서포터즈’에 대한 소식도 전달되었다. 한올 서포터즈는 매월 기부 이벤트를 진행하는 재학생 기부 서포터즈로 캠퍼스 곳곳에 기부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도맡고 있다. 한양의 ‘사랑의 실천’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한올’의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2019 이공계 대학 평가에서 한양대가 종합 2위를 차지한 소식과. QS 세계대학평가 2020에서 150위를 차지한 소식을 전하며, 이 외에도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이 실려있다. ▶ 동행한대 2019년 여름호 보기

2019-07 15

[동문][동행한대] 박화영 인코코 회장, 기부는 당연한 사회적 의무입니다 (2019년 여름호)

▲ 박화영(성악 卒) (주)인코코 회장 기부는 당연한 사회적 의무입니다. 박화영(성악 卒) (주)인코코 회장 미국에서 성공한 기업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주)인코코 박화영 회장은 지난 해 11월 모교인 한양대에 20억 원의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했다. 박화영 회장이 기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태도는 확고하다. 기부는 사회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당연한 사회적 의무 중 하나라는 것. 이번 기부는 거기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앞으로 후배들의 꿈을 응원하고, 모교 성장에 함께하겠다는 시작의 의미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기부를 하고 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 제가 졸업한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의미이지요.’’ Q1. 미국에 거주하시면서도 한국의 모교인 한양대에 발전기금 기부를 약정하셨습니다. 이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A1. 몇 해 전, 뉴욕대학을 다니는 딸에게 들은 말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의 장학기금이 너무 적다고 말해 궁금해서 어느 정도냐고 물었는데 제가 듣기에 상당한 금액이라 깜짝 놀랐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하버드 같은 대학은 장학기금의 규모가 훨씬 더 크더군요. 미국의 많은 대학들은 기부금을 펀드로 운영하며 그 돈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혜택을 받을 기회가 많을 수밖에 없죠. 그러한 내용을 알고 나니, 문득 모교인 한양대 생각이 났습니다. ‘한양대에는 어느 정도의 기금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죠. 학교의 운영은 학생들의 등록금만으로 꾸려나갈 수 없습니다. 기부금이 꾸준히 들어와야 미래를 위한 투자가 가능하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임덕호 전 총장님과 김종량 이사장님이 미국 동문 행사에 왔다가 저희 회사를 방문해주셨고, 이런 계기로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Q2. 평소 미국에서도 꾸준히 기부를 실천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의 나눔 활동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으며, 어떤 마음으로 출발하셨는지 궁금합니다. A2. 미국 생활 초기에 어머니가 편찮으셨는데 의료보험조차 없었습니다. 치료를 마치고 청구된 치료비는 가난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병원에 솔직하게 치료비를 낼 돈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 처지를 듣던 병원 담당자가 저에게 서류를 보내더니 거기에 저희 가족의 경제적 상황을 쓰라고 하더군요. 2주가 지난 뒤, 병원에서 운영하는 자선기금을 통해 어머니 치료비가 감면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실 미국은 세금 등 제도적인 부분에서부터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기부문화가 활성화될 수밖에 없는 배경이 탄탄하게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또한 자연스럽게 기부를 당연한 사회적 의무라 생각하고 시작했고요. 뿌리교육재단에 박화영 장학금을 만들어서 매년 5명의 한인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힘든 가정을 돕는 패밀리터치에 기부를 하는 등 10년 전부터 기부를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기부는 혜택을 받은 사람이 다시 기부를 하게 되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그 선순환의 힘을 믿어야 기부를 통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Q3. 2014년 총동문회로부터 ‘자랑스러운 한양인상’을 수상하시고, 올해 한양대 명예공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으셨는데요. 모교와의 꾸준한 인연이 회장님께 어떤 의미인지요? A3. 지난 35년 동안 한국을 떠나 미국에서 살면서 한양대와의 인연은 거의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2013년 미국에서 총장님과 이사장님을 만나면서 한양대와 인연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덕분에 동문들과 교류도 많이 생겼지요. 학교에서 준 자랑스러운 한양인상과 명예공학박사 학위는 그동안 열심히 살았다는 격려로 여기고, 앞으로는 제가 할 수 있는 기부를 통해 한양대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현재 살고 있는 미국에서 기부를 하고 있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지만 제가 태어난 대한민국, 제가 졸업한 모교의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할 수 있다는 건 더 큰 의미이지요. Q4. 2017년 한양글로벌인재 특강을 통해 후배들을 만나셨습니다. 당시 강연에서 하셨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을까요? A4.특강 제목이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음악으로 성공하기 위해 미국으로 갔지만, 막상 미국에서 공부해보니 이 땅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감이 들었습니다. 언어적 소통도 힘들었지만 문화적 차이가 더 큰 벽이었습니다. ‘나에겐 아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구나.’하고 절망도 했지요. 음악 공부만 했지 경제적인 공부나 활동을 해본 적 없던 제가 어떻게 가족을 위해 생활을 꾸려나가야 하나 막막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세상에 없던 제품인 ‘붙이는 매니큐어’라는 아이템을 생각해냈고, 그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학 공부까지 하게 되었죠. 그런 제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지금 여러분이 하는 좌절은 가치 있는 좌절이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실패와 좌절이 없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습니다. 100% 승률을 가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겠죠. 경제적으로 따졌을 때, 좌절을 그대로 남기면 ‘손실’이 됩니다. 대신 실수라고 생각하고 극복하면 ‘자산’이 되지요.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좌절을 자산으로 만듭니다. 모든 건 자기 자세에 달려 있는 것이죠. 미래를 꿈꾸는 우리 후배들이 좌절에 굴복하지 말고 극복하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건넨 말이었습니다. Q5. 모교에 전달한 회장님의 기부금이 어떻게 쓰이길 원하시는지요? A5. 음악 전공자이면서도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공학자처럼 기계를 제작하고 특허를 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기에 처음에는 제 기부금이 공학도에게 쓰이길 원했지요. 생각이 바뀐 건 지난 2월, 한양대를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음악대학을 오랜만에 들러보고는 마음이 찡했습니다. 후배들이 좋은 시설을 갖춘 연습실이나 콘서트홀이 없이 공부하는 게 마음이 쓰이고 안타까웠지요. 그래서 이번에 다시 방문했을 때 음악대학에 필요한 건물을 지으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드렸습니다. 음악을 공부하는 후배들이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요. 음악대학 동문들이 함께 힘을 보태주시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하면 더 아름다운 기부가 될 테니까요. Q6. 마지막으로 기부를 망설이시는 다른 잠재 기부자 분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6. 많은 분들이 기부는 돈이 많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부는 왠지 큰 금액을 해야 한다고 여기지요. 하지만 기부는 준비된 사람만이 하는 게 아닙니다. 건물을 지을 때 기둥도 필요하고 못도 필요하지요. 기둥을 기부해야 기부가 아니라 못을 기부해도 기부를 한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돈이 없어 기부를 못하고 돈을 많이 벌면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기부를 할 형편이 안 된다는 생각 대신 내 형편만큼 기부를 하면 됩니다. 백 원이든 천 원이든 자신의 상황에 따라 기부는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부가 모여 계속 선순환이 되면,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미래를 만들 수 있겠지요.

2019-07 15

[기획][동행한대] 나눔 홍보대사 '한올 서포터즈', 캠퍼스 곳곳에 기부문화 전파해 (2019년 여름호)

▲ 한올 서포터즈 우리는 나눔 홍보대사! ‘한올 서포터즈’입니다 캠퍼스 곳곳에 기부문화 전파하는 홍보대사 개강맞이 '올포유 개강 이벤트'를 비롯해 봄맞이 사진 촬영 이벤트 '한올은 봄을 싣고', 그리고 '곰 모양 비누 제작 이벤트'를 통한 수익금 기부까지 캠퍼스 내에 기부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한올 서포터즈' (이하 '한올'). 학교 대외협력처의 재학생 나눔 서포터즈로서 캠퍼스 곳곳에 한양의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 정신을 전파하고 있는 '한올'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매월 기부 이벤트 진행하는 기부 서포터즈 올해로써 4기가 된 한올 단원들은 매월 기부 이벤트를 기획하여 교내에 기부문화를 전파하는 나눔 홍보대사이다. “‘한올’은 2016년 창단된 대외협력처 소속 서포터즈입니다. 기부와 나눔 홍보대사로서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부를 쉽고 재밌게 참여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동문기업 탐방, 동문행사 지원 등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손지수, 정보시스템학 17) 한올 단원들은 매년 초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선발되며 본인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자기소개서와 나눔과 기부 이벤트 기획 아이디어를 토대로 평가받는다. “면접시간은 보통 30분 내외로 마무리됩니다. 저는 재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기반으로 기획 아이디어를 발표했는데 이 부분을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아요.” (이지연, 철학 17) 우리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그에 맞는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지연 단원은 이러한 선발과정이 현재 진행 중인 행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얘기한다 ‘사랑의 실천’, 우리가 앞장섭니다 우리 학교는 ‘사랑의 실천’을 교훈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학생들에게 기부가 낯선 것은 사실이다. 한올 4기 강승민 학우에게 한올 활동을 진행하며 느꼈던 점들을 물어보았다. “직접 기획한 활동을 알리고 재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았기에 참여 학생들에게 정성을 다하였습니다. 기부와 나눔을 실천하는 한올 단원이라는 마음가짐 덕에 임하는 자세가 달랐던 것 같습니다.” (강승민, 자연환경공학 17) 한양인이라면 누구나 알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랑의 실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올 단원들은 이미 서로에게 가족 이상의 존재들이다. 이들에게는 기부문화 전파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폴라로이드 사진 이벤트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요.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저희 단원들이 사자탈을 직접 착용하였는데요, 무거운 탈을 쓴 채로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던 게 기억이 납니다.” (김동현, 경영학 14) “매월 이벤트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많은 학생들이 저희가 준비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습니다. 저희가 한 활동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할 수 있었습니다.” (김민경, 응용미술교육학 18) 기부는 쉽고 즐거운 것! 한올 단원들은 매 학기 장학금과 활동 단복 등의 지원을 받지만 한올 단원들이 느끼는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나눔과 기부 홍보대사라는 자부심과 보람이다. “2학기에도 매달 게릴라 기부와 나눔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기부라는 것이 어렵고 부담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흥미로운 이벤트로 찾아뵙겠습니다.” (조유진, 경영학 17) 지난 5월 20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곰 세 마리 비누 만들기 행사’에는 총 100명이 넘는 재학생들이 참가하였으며 제작한 비누 판매 수익금 전액은 성동구 다문화 가정센터에 기부되었다. 기부를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학생들은 매월 열리는 한올 이벤트에 참가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라는 것이 조유진 단원의 설명이다. 한올 단장 차종은 학생 역시 기부가 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거나 나눔을 실천하고 싶어도 주저하고 있는 재학생들에게 작은 참여부터 시작하라고 권한다. “저희도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부담 갖지 말고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나눔부터 하나씩 시작해보자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차종은, 응용시스템전공 18) 실 한 올 한 올이 모여 옷 한 벌을 이루듯, 작은 기부를 모아 따뜻한 나눔을 만들어내겠다는 일념으로 활동을 하고 있는 한올 단원들은 계속하여 캠퍼스 내 기부문화를 전파할 것이다. 앞으로도 ‘사랑의 실천’은 그들의 삶이고 자부심이기 때문이다. [2019 상반기 한올 서포터즈 주요 활동] 2019.03 한양인을 위한 올포유 개강 이벤트 (장소: 생활과학대 앞) 한올 페이스북 및 카카오톡 SNS를 통한 간식 증정 2019.04 한올은 봄을 싣고 (장소: 본관 앞) 사자탈 및 봄꽃을 활용한 봄맞이 사진촬영 2019.05 곰 세 마리 비누만들기 행사 (장소: 한마당) 곰 모양 비누 제작 및 판매, 수익금은 전액 성동구 다문화가정센터에 기부

2019-07 15

[학생][동행한대] 이유민 실내건축디자인 학생, 처음의 가치를 기부에 새기다 (2019년 여름호)

▲ 이유민(실내건축디자인 19) 학생 ‘처음’의 가치를 기부에 새기다 이유민(실내건축디자인 19) 학생 생애 처음 번 돈을 의미 있게 쓰기 위해 기부를 선택한 이가 있다. 실내건축 디자인전공 신입생 이유민 학생이다. 이유민 학생은 지난 2월 개최된 입학식의 특별공연에 출연한 뒤 받은 출연료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다. 앞으로도 삶의 선택지 중 하나로 기부가 들어가 있을 것이라고 말할 만큼 이유민 학생에게 이번 기부는 또렷한 흔적을 남기는 강렬한 만남이었다. ‘’제 선택을 보고 기부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턱을 낮췄으면 좋겠어요. 기부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예요.’’ Q1. 입학식 특별공연에 출연해서 받은 출연료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는데요.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나요? A1. 출연료로 66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돈이 들어와서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 돈을 의미 있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할아버지처럼 기부를 해보자 생각했죠. 할아버지께서도 우리 대학 원자력공학과 58학번 동문이신데, 모교에 대한 애정이 강하셔서 가족모임에서도 학창 시절 이야기를 곧잘 하세요. 한양대 입학을 결심한 것도 할아버지 영향이 있었죠. 제가 할아버지를 존경하는 이유 중 하나가 꾸준히 기부를 하신다는 점인데, 어릴 때부터 그런 모습을 봐와서인지 저도 언젠간 기부를 하게 될 거란 막연한 생각은 있었어요. 출연료는 제가 생애 처음 제 힘으로 번 돈이니만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기부가 떠올랐어요. 부모님도 권하셨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부를 선택할 수 있었어요. Q2. 당시 입학식에서 참가하신 공연은 어떤 공연이었는지요? A2. 연극영화과 재학생 선배들과 신입생 다섯 명이 함께 뮤지컬 공연을 했어요. 한양대에서 합격 문자가 왔을 때, 입학식 공연에 참여하겠냐는 내용이 있었거든요. 그걸 보고 입학 전에 신입생 시절을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추억을 쌓을 수 있겠구나 생각을 했죠.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도 이런 공연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는 나름 큰 도전이었어요. 한 달의 연습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나와서 연습을 했고, 공연을 앞두고는 하루 종일 연습을 했어요. 연습 자체가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낯선 도전이라 힘들면서도 재미있었어요.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이잖아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준 학교 측에도 감사드립니다. Q3. 신입생이니까 아무래도 출연료를 받고 나서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선뜻 기부를 선택한 게 쉬운 결정만은 아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A3.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소소하게 사고 싶은 것들이 많았죠. 그런 의미에서 66만 원은 저에게 큰돈이었어요. 하지만 결코 쉽게 쓸 수가 없었어요. 뭔가를 사는 행위는 잠깐은 즐거울지 몰라도 오래 기억되지는 않잖아요. 학교에서 공연을 해서 받은 돈이니만큼 학교에 기부를 하는 게 더 의미가 클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지만 다른 기부자들이 하는 금액에 비해서는 약소한 금액일텐데, 저는 학생이니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생애 처음 번 돈으로 생애 첫 기부를 한다는 데 의미를 뒀죠. 다른 데 쓰지 않고 기부를 선택한 건 참 잘 했다고 생각해요. 어떤 쓰임도 이보다 큰 의미로 쓰일 수 없을 거니까요. Q4. 주변에서 이유민 동문님의 기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궁금하네요. 혹시 친구들은 알고 있나요? A4. 아직 가족 외에는 아무도 몰라요.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아마 뉴스레터에 제가 실린 걸 보면 알게 되겠죠. 부끄럽고 쑥스럽긴 하지만 친구들에게 ‘이런 적은 금액도 기부가 되는 구나.’라는 사실을 알려줄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회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 선택을 보고 기부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의 턱을 낮췄으면 좋겠어요. 기부는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 가운데 하나예요. Q5. 기부를 하기 전과 기부를 하고 난 후에 뭔가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A5. 학교생활을 하면서 기부의 쓰임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게 교내의 기부 공간들이에요. 기부자의 이름이 들어간 공간을 볼 때마다 ‘나도 언젠가 후배들에게 이런 공간을 기부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마도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그런 꿈을 꾸게 되었다는 점이 기부가 준 가장 큰 변화예요. Q6. 앞으로도 기부를 계속 하고 싶은 의향이 있나요? 있다면 어떤 방식의 기부일까요? A6. 기회가 된다면 해외 봉사에도 참여하고 싶어요. 아직 신입생이라 하고 싶은 게 많아 꿈을 확실히 정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제 삶은 기부와 나눔이 평행선처럼 함께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기부와 나눔만큼 돈을 가치 있게 쓰는 일도 없을 테고, 제 삶에 의미를 주는 일도 드물 거니까요.

2019-07 15

[교수][동행한대] 박성욱 기계공학부 교수,기부는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2019년 여름호)

▲ 박성욱(기계공학 96) 기계공학부 교수 기부는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박성욱(기계공학 96) 기계공학부 교수 박성욱 교수는 최근 기계공학부에서 추진 중인 기계관 건립기금 모금 캠페인을 위해 월 100만원씩, 총 1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했다. 학부부터 박사 과정까지 공부를 하고 모교의 교수가 되기까지 한양대에서 받은 것이 너무 많다는 박성욱 교수는 이에 보답하기 위한 방법이자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선택으로 기부를 택했다고 한다. 그에게 기부란 어떤 소비와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는 쓰임이다. ‘’월 100만 원이면 좋은 양복 한 벌 사 입을 수 있는 금액이지만, 기부를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어떤 소비의 영역과도 비교가 안 되는 만족감입니다.’’ Q1. 기계관 건립기금 모금 캠페인에 1억 원의 기부를 약정하셨습니다. 먼저 기계관 및 관련 모금 캠페인에 대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1. 기계관 건립에 대한 논의는 기계공학부 동문회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의 위상에 맞는 독립된 건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동문들이 힘을 모아 기계관을 설립하자고 의견을 모았죠. 이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는 사실이고, 그런 점에서 공학 교육도 패러다임이 바뀌는 중요한 시기에 서 있습니다. 기존의 전달식 교육은 점차 PBL(Problem-Based Learning, Project Based Learning)이라는 문제기반학습과 프로젝트학습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공간은 그런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면이 많지요. 기계관은 이러한 교육 패러다임에 맞게 설립될 것입니다. 한양대 기계공학부의 도약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Q2. 매월 분할해서 납부를 한다 해도 1억 원은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어떻게 이런 기부를 결심하게 되셨는지요? A2. 제가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뭔가를 시작할 때 계산부터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기계관이 건립될 때까지 얼마가 걸릴까 계산해보니 대략 7년 정도일 것 같고, 제가 그 기간 동안 월 100만 원씩 내면 1억 원이 되겠더라고요.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제가 한양대로부터 받은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1996년에 입학해서 박사 과정까지 한양대에서 배웠고, 지금도 모교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으니까요. 박사후과정으로 미국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을 빼면 20여 년 동안 한양대를 다녔습니다. 한양대의 변화를 직접 두 눈으로 봐왔죠. 그런데 제가 수업을 받던 때와 지금의 교육환경에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 점이 늘 안타까웠는데 기계관을 짓는다고 하니 미미하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한 번에 큰 금액을 낼 만큼 여유가 되지 않으니 매월 내겠다고 약속드렸습니다. Q3. 이번 기부 외에도 2012년부터 기계공학부를 위해 꾸준히 기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 어떤 마음으로 기부를 시작하셨나요? A3. 기부에 대한 큰 철학이 있었다기보다 부담 없이 조금씩 학교를 위해 뭔가 해보자는 마음으로 월 1만 원씩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10만 원을 기부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상을 받으면 상금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순수하게 제 자신의 만족감 때문이었습니다. 모교에서 받은 혜택을 조금이나마 환원하자는 마음이었죠. Q4. 재학 당시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교수님께 큰 영향을 준 인연이 있나요? A4. 저는 사실 학부 때만 해도 공부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던 학생이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해서 지도교수이신 이창식 교수님을 만난 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까지 제 꿈에 교수라는 직업은 없었습니다. 교수는 정말 남달리 똑똑하고 인품이 훌륭한 사람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항상 묵묵하게 연구에 몰두하며 제자들에게 자극을 주시는 이창식 교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즐겁고 재미있게 연구를 하기 시작했고, 덕분에 교수로 후배들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Q5. 기부를 즐겁게 하시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기부를 어렵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경험자로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A5. 직접 기부를 해보기 전에는 기부를 해서 즐겁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돈은 그저 욕구를 채우는 수단으로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기부를 해보니, ‘이래서 사람들이 기부를 하는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기부란 거창한 게 아니라 소소한 만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월 100만 원이면 좋은 양복 한 벌 사 입을 수 있는 금액이지만, 기부를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을 풍족하게 합니다. 어떤 소비의 영역과도 비교가 안 되는 만족감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부는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02 08

[동문][사랑, 36.5°C]어렵게 내디딘 모교기부의 첫걸음이 마음 속 무거운 짐을 덜어줍니다

권선홍 교수는 1972년 한양대학교 고시반 공채 1기로 입학해 1976년 외무고시 1호 합격자가 된 자랑스러운 동문이다. 그는 대학 4년과 석사 2년을 합한 6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다. 그 수혜를 언젠가는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부채감을 평생 안고 살면서도 첫걸음을 떼기가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정년퇴임을 앞둔 나이가 되어서야 시작한 그의 기부는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 1호 기부자가 되면서 무거웠던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행정고시반 장학금으로 300만 원을 선뜻 쾌척하며 그 동안 마음만 있었던 어려운 한 걸음을 뗀 것이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권선홍(72 법학) 부산외국어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한양대학교 외무고시 1호 합격자이십니다. 법학을 전공하셨는데 사법고시가 아니라 외무고시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국을 둘러싼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한국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그 시절엔 한국학이라는 용어도 생소하던 시절이라 진로를 찾기가 어려웠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한양대학교에 장학금을 지원하는 고시반 장학생 선발시험이 있으니 함께 응시해보자고 권유했어요. 사실 그 당시엔 대학 갈 형편이 못돼, 고시가 뭔지도 모른 채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준다는 말에 응시를 했죠. 다행히 합격해 남들처럼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지만 제 적성과는 맞지가 않았습니다. 그러다 2학년 1학기 때 한대신문사에서 주최하는 학술상에 응모했다가 인문사회분야의 최우수상을 수상하게 되었죠. 그것을 계기로 한국학 공부로 전과하고 싶어 사학과 학과장님과 여러 차례 면담하며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여의치가 않았어요. 결국 고시반에 남기로 했지만 나중에 학문의 길로 나가려면 사법고시보다는 어학을 좀 더 공부할 수 있는 외무고시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2학년 2학기부터 외무고시로 진로를 바꾸었어요.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 1호 기부자이십니다. 기부를 결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시반 동기들 중에는 이미 장학금 되돌려주기 운동에 동참하는 친구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지요. 그동안 생활하다 보니 여유가 없기도 했지만, 사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어요. 천 단위, 억 단위의 기부자들도 많잖아요. 그들에 비하면 형편없이 작은 금액이라고 생각하니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어요.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정년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더 늦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방법을 찾던 차에 마침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 소식을 들었어요. 고시반 장학금의 수혜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모금 캠페인이라 더욱 뜻깊은 것 같습니다. 교수님도 장학금 수혜자이십니다. 장학금이 교수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요. 제가 전기도 없던 시골 출신인데다 경제적으로도 대학갈 형편이 못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한양대학교 고시반 공채 1기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1972년 당시 장학금 외에도 생활비를 매달 15,000원씩 받았는데 공장 노동자들의 한 달 봉급과 맞먹는 수준이었어요. 고시반 학생들이 이런 파격적인 지원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합격생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모교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 자리에 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권동문은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공부한 고시반 출신 선후배 동문들! 우리가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이 어려운 후배들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됩니다.' 라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많이 느끼실 것 같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 젊은이들은 누구나 자기의 세대가 제일 어려운 세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요즘 젊은이들도 지독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클 것입니다. 제 막내아들도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그 절박함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을 알면서도 요즘말로 ‘최선의 노력을 다 하라’는 말밖에 못해 늘 미안하지요. 자신이 좋아하거나 일생을 바칠 만한 목표를 정하고 20~30년 정도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그 분야에서 세계 최고 고수가 되어주길 바랍니다. 또한 취업 준비 등으로 힘든 일이 많겠지만 너무 경쟁에 매몰되지 말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교 기부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생각이 바뀐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저에게 모교에 대한 기부는 학창시절 혜택을 받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였습니다. 엄청난 혜택을 받으며 공부를 했으니 최소한이라도 되갚아야 하는 거잖아요. 저로서는 부산 총동문회와 지난해 11월 창립 20주년인 한양산악회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던 것도 그러한 생각에서였지요. 그럼에도 기부를 계속 미루다가 어렵게 첫발을 뗀 느낌입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으니 어렵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시작하고 보니 조금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제 정년퇴임하면 경제적으로 더 여유롭지 못할 수도 있지만, 훨씬 더 가벼운 마음으로 나름대로 기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부의 어려운 첫걸음을 떼셨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어렵게 느끼시는 분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정년퇴임을 앞두고 뒤늦게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캠페인의 1호 기부자가 되었습니다. 소액기부임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동문들께서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인터뷰에 응하게 되었습니다. 장학금 지원을 받으며 공부한 고시반 출신 선후배 동문들의 마음은 비슷하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십시일반 모은 기부금이 어려운 후배들에게는 매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동행한대 2017년 WINTER (제8호) 이북 보기

2018-02 08

[동문][사랑, 36.5°C] 큰 마음보다 살뜰한 맘으로 자주 나누고 싶어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교통사고. 그날 이후 주변의 교통사고로 휴학한 후배들이 눈에 들어왔다는 임영란 동문은 그들을 위해 도서구입비 100만 원을 기부하기로 한다. 딸의 이런 마음은 자식을 잃을 뻔했던 아찔한 경험을 한 아버지를 움직였다. 같은 부모로서 세월호 가족의 슬픔을 그 누구보다 이해하는 부친 임재호 씨는 단원고 출신 학생들과 교통사고 피해 학생들을 위해 1,000만 원을 기부하며, 딸의 깊은 마음에 자식 가진 아비의 진한 마음을 더했다. 새해부터는 대중모금 캠페인 ‘Club 동행한대’의 후원자로도 나선 임영란 동문, 그에게 기부란 큰 맘 먹고 ‘한턱 쏘는’ 행위가 아니다. 그랬다면 아직 시작도 못했을 일, 일상 속에서 커피 한 잔 값을 아끼는 살뜰한 마음으로 아픈 이들의 마음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 글 편집실/사진 홍승진 ▲ 임영란(05 컴퓨터교육학) 동문 지난해 말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통원치료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경과는 어떠신지요? 임영란_ 졸업 후 임용고사를 거쳐 현재 고등학교 수학교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지난 해 10월 말, 출장길이었는데 신호대기 중 갑자기 뒤차가 와서 추돌하는 사고가 있었어요. 사고 현장에서 강한 충격을 느끼기는 했지만 외상도 없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죠. 다음날 통증이 심해 병원에 갔더니 근육이 놀랐다며 5일치 약과 물리치료를 처방해 주어서 좀 참으면 괜찮아지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도 호전되지 않다가 결국 수업 중에 심한 두통으로 쓰러지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뇌진탕과 편타손상이라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더군요. 경황이 없었을 텐데 교통사고가 기부를 결심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임영란_ 이번 교통사고를 겪으면서 우스갯소리로 ‘호의를 베풀면 호구가 된다’라는 말을 실감했어요. 몸도 아팠지만 가해차량 운전자의 비양심적인 행동으로 마음고생이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배상을 받기 위해 직접 자동차 손해배상 보장법도 공부하고 많은 사례와 판례들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보다 더 억울한 피해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특히 쉽게 합의를 했다가 나중에 큰 후유증에 시달리며 결국 학업을 중단한 학생들도 있더라고요. 사실 저도 정확한 배상을 받는 것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현재 치료를 꾸준히 받아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고 공무원이라 병가 중에도 월급이 나오는 것에 감사함을 느껴 사회에 조금의 도움이 되고자 12월 월급의 반은 그들을 위해 기부하자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휴학한 후배들을 위한 도서구입비’라는 특이한 용도로 기부를 하셨습니다. 임영란_ 교통사고가 기부의 계기였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교통사고를 당한 후배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제가 큰 금액을 기부할 수 있었다면 생활비나 학비를 지원했을 테지만 소액기부였기 때문에 어떤 용도로 기부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대학 다닐 때 전공서적 구입비용이 늘 부담이었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비록 적은 금액이라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본 기억이 있는 후배라면 나중에 또 누군가를 도울 줄 아는 선배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조금 담아 보았습니다. 기부하실 때 아버님의 지원도 있었습니다. 아버님과 함께 기부를 하게 된 배경은요? 임영란_ 아버지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입니다. 제가 재수를 결정했을 때도, 임용고사 준비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을 때도 항상 저를 믿고 응원해 주셨어요. 현재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동안 일과 가족을 챙기시느라 여행 한 번 마음 편하게 다녀오신 적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 회갑기념으로 1월에 가족끼리 유럽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제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치료기간이 길어지게 되어 결국 여행을 취소하게 되었어요. 죄송한 마음에 여행적금으로 모은 돈을 회갑선물로 드렸더니 그 돈을 선뜻 단원고 출신 학생들에게 기부하자고 하셨어요. 학창시절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임영란_ 학창시절 ‘한양어린이학교’라는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을 했어요. 한양대학교병원에 입원한 소아암환아들에게 교육봉사를 하는 동아리로 SK, 굿네이버스 등 기업들의 후원을 받아 좀 더 다양한 교육활동들을 진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졸업 후에는 동아리 졸업생들이 중심이 되어 후배사랑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원하다가 2017년에 ‘한양어린이학교 후배사랑 장학기금’을 만들었어요. 사실 이 기금을 만들면서 후배들을 위해 모교에 기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 임동문은 '이번 기부는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본 기억이 있는 후배라면 나중에 또 누군가를 도울 줄 아는 선배로 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담아 시작했습니다' 라고 말했다. 아버님은 기업가로서 평소에도 지역사회에 기부를 많이 실천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님의 기부가 아버님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임재호_ 제 영향이라고 하기는 쑥스럽습니다. 사고 후유증이 심해져 많이 놀랐을 텐데도 그 와중에 기부를 하겠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대견하지요. 제 사업장 인근에 단원고가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원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마음이 무거웠어요. 마침 딸아이가 자기 모교에 기부를 한다고 하니 단원고 출신의 학생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3~4년 전까지만 해도 지독한 워커홀릭이었습니다. 이렇게 살다간 일만 하다 죽겠구나 라는 생각에 뒤늦게 대학공부를 시작해 작년에 졸업했습니다. 대학 동기들 중 딸 또래의 친구들이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며 본격적인 기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해에는 금전적인 기부 외에도 직접 현장에 나가는 봉사활동도 참여할 계획입니다. 사업장 인근에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가정이 많거든요. 이번 기부를 계기로 2018년 1월부터는 ‘Club 동행한대’ 후원자가 되셨습니다. 기부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동문들에게 한말씀 해주신다면? 임영란_ 한 달에 다섯 잔의 커피를 참는다면 ‘Club 동행한대’ 1구좌를 개설할 수 있습니다. 저도 커피를 무척 좋아하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커피 한 잔 마실 여유가 없는 날도 있어요. 그런데 ‘Club 동행한대’ 후원자가 된 이후로는 ‘이런 날은 한 구좌 개설할 수 있겠다’ 싶으니까 업무 스트레스까지 줄어들더라고요. 커피 한 잔 값의 큰 힘을 여러분도 실천해 보셨으면 합니다. 동행한대 2017년 WINTER (제8호) 이북 보기

2018-01 25

[동문][희망, 100℃] 30년 전 각인된 한양인의 DNA가 여전히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뛰고 있다

참석자 수 600명 육박, 밴드 가입 1,200명 돌파, 발전기금 모금액 3억 원 돌파. 지난해 10월 성황리에 개최된 ‘한양87 홈커밍데이’가 쓴 놀라운 기록들이다. 역대 최고의 기록들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입소문이 번지면서 동문 선배들 사이에서 “도대체 87학번 준비위원장이 누구였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2017년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인 필옵틱스의 대표 한기수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준비위원장으로서의 왕성한 활동은 물론, 스스로 1억 원이라는 통 큰 기부를 실천하며 모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글 편집실/사진 홍승진 ▲ 한기수(87 물리학) 필옵틱스 대표이사 대기업이라는 안전지대 밖으로, 창업 그리고 상장 한기수 동문은 삼성SDI에 입사하여 10년간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자동화설비 제조사인 필옵틱스를 창업했다. 2017년에는 코스닥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쳐 기업의 성장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선택이었지만, 직장인으로서 대기업이라는 안전지대를 떠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직장인들에게 입사 5년, 10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미래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죠. 그런데 입사 10년차가 가까워질 즈음, 10년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의 10년 후 모습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10년 후에는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입사 10년차 되던 해에 사표를 썼다. 퇴사 후 중소기업에 재입사해 중소기업의 생태계도 배우며 필옵틱스를 설립하기까지 4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2008년 창업을 했으니 올해로 딱 10년째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10년, 경영인으로 10년이다. 직장인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경영자는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직도 설계 실무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제가 엔지니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특히 초창기부터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예전보다 판단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더군요.” 좀 더 냉철해지고 판단력이 좋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판단기준이 단순해졌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다. 사업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큰 판단 기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판단’ 못지않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경영자로서 늘 긴장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양87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 역대급 기록을 남기다 이렇듯 바쁘게 살았으니 졸업 후 학교와의 교류는 어려운 일이었다. 모교를 다시 찾은 소감에 대해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어 놀랐다’는 말을 했을 정도이다. 지하철이 연결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니 그만큼이나 오래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다시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학교 측으로부터 ‘87학번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졸업 후 학교와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반가웠습니다. ‘준비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부담스러웠지만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없으니 행사 인사말이나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요.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어요. 행사를 준비하는 100일간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다만, 우리가 알아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더군요. (웃음)” 87학번들이 주체가 되는 행사였기 때문에, 동기들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위원장을 맡은 후 제일 먼저 한 일도 동기들을 밴드에 가입시키는 일이었다. 87학번 동문이 3,600명 정도 되는데 밴드에 가입한 인원이 무려 1,200명에 이르렀다. 전체 동문의 3분의 1이 가입한 셈이다. 행사 계획, 발전기금 모금 관련 게시물에는 하루에 수백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참여율이 높았다. 한기수 동문은 일일이 챙겨 읽다가 노안이 찾아왔다며, 진담 반 농담 반 그간의 고생을 에둘러 말했다. 행사 당일 참석 인원이 600명에 달했고, 뒤풀이에 합류한 동문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참석자 수는 훨씬 많았다. “이번 행사의 성공은 100일간 동기들이 내 일처럼 나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학교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듯이 참여하는 행사였다면 동기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성취감은 덜했겠죠.” 발전기금 모금 3억 원 돌파, 87학번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 87학번 홈커밍데이가 남긴 역대급 기록 중 모교 발전기금 모금을 빼놓을 수가 없다. 무려 3억 원이 넘는 기금이 모금되었는데, 홈커밍데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였다. 얼마나 많은 동문들의 참여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기수 동문은 그 공을 모두 동기들에게 돌리며, 기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87학번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동기들이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해주면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매칭기금’ 방식을 활용해 보았어요. 예를 들어 동기들이 1,000만 원을 기부하면, 제가 같은 금액을 보태서 2,000만 원을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금을 하다 보니 3억 원이나 모았어요. 다시 생각해 봐도 동기들의 호응과 참여가 없었다면 3억 원 모금이 가능했을까 싶어요.” 워낙 성공적인 행사였기에 준비위원장으로서의 소감도 남다를 법한데, 그는 ‘나의 일상이 홈커밍데이 전과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행사를 마친 후에도 꾸준히 동기들과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오는 3월에는 87학번 동기회도 정식으로 출범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 한기수 대표이사는 학교에서 청년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한 ‘차세대 청년기업 육성기금’에 기부를 했다. 창업선배로서의 어려움이 반영된 마음으로 학교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창업 프로그램 지원 속에서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해보라는 당부의 뜻이다. 너무 오랫동안 모교 발전에 무심했다는 자책감 한기수 동문은 홈커밍데이 모금에 보탠 1억 원 이외에도, 재학생들의 창업교육 지원에 써달라며 1억 원을 기부했다. 또한 창업교육 지원과 물리학과 장학금으로 5억 원이 넘는 기부를 약정했다. 그는 모교의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이런 기회들이 더욱 많은 동문들에게 주어지기를 희망했다. “동문이라면 누구나 모교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바쁘게 살면서도 한양대 관련 기사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입시철이면 대학 순위에 은근히 신경을 쓰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관심이 바로 기부로 연결되기는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모교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선뜻 학교에 연락하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한기수 동문은 오랫동안 모교 발전에 무심했다는 자책과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 제안이 왔을 때도, 모교가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처럼 반가웠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하게 된 이유가, 창업 선배로서 창업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제가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못합니다. (웃음) 오히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도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먼저 눈이 갑니다. 실제로 업무해결 능력도 뛰어나더군요.” 그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불행한 일이 ‘일의 선택권’을 가질 수 없는 점이었다며, 청년창업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창업 프로그램을 활용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일찍 해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양인의 DNA가 각인된 선배로서, 모교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홈커밍데이를 계기로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한양인의 DNA가 30년 만에 깨어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힘차게 뛰노는 것이 느껴진다며, 이는 3,600명 동기들의 한결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너무 오랫동안 모교 발전에 무심했다는 미안함은 이제 접어도 되지 않을까. 동행한대 2017년 WINTER (제8호) 이북 보기

2017-11 15

[교수][사랑, 36.5°C]우리가 올린 벽돌 한 장이 글로벌 한양의 주춧돌이 되길 바라며

젊었을 때 현실보다는 관념과 이상에 치우쳤다는 강봉구 교수는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 자신의 무력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공부에 몰입한 것도 아니었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앞장 서 피켓을 든 기억도 없이 살아온 것이 부채로 남아 언제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짐을 덜고자 백만 원, 이백만 원 시작한 기부가 어느 새 천만 원을 채우는 사이 사회적 채무의식은 보람으로, 한양인의 자부심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강봉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Q. 처음 발전기금을 기부하신 것이 2011년이던데요, 교원으로 재직하시던 시점인지요? A.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연구위원으로 2000년 3월 부임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비정년트랙교원, 2011년 정년트랙교원이 되었으니 어느새 7년째 교수로서 한양대에 몸을 담고 있네요. 신분을 떠나서 한양대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도 얻는 등 많은 혜택을 얻었으니, 제 기부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Q. 학생 때와 교원이 되었을 때 학교를 보는 시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지요? A. 학생은 교육서비스의 수혜자로 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교원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학교는 노동과 자기실현의 장이기도 하죠. 그래서 교원이 된 후에는 타대학과의 경쟁이나 글로벌 한양을 실현하기 위한 학교의 위상에 더욱 민감해진 것 같습니다. Q. 교원으로서 그런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의 기부가 정말 절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A. 제 기부내역을 보시면 많은 부분이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한 것입니다. 교원으로서 한양대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위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반성하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2008년도에 설립자 김연준 박사님께서 작고하셨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제 나이 그때 오십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물 여섯 약관의 나이에 기술공학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립을 고민하고 학교를 세우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나이에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이 앞섰을 뿐, 개선을 위한 비전과 실천이 따르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10만 원, 20만 원 작은 금액부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큰 금액을 목표로 하면 영영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 작은금액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늦으면 안될 것 같다는 조급함도 한몫했지요. Q. 작은 금액이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흐르니 제법 큰 금액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A. 가족들에게 상의를 하거나 알리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외협력팀에서 보내는 감사편지를 본 아내가 알게 되었죠. 핀잔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당신도 그런 일을 할 줄 아느냐며,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더 크게 기부하라고 한술 더 떠 응원해 주더군요. Q.현재도 매월 급여에서 일정금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계십니다. 일시납이 아닌 정기납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저 역시 봉급생활자입니다. 많은 금액을 한 번에 내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소액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세월의 힘을 입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목표액을 정하고, 그것을 기부할 수 있는 시간안에서 나눠 내는 거죠. 이런 방식이 좋은 것은 기부든 봉사든 습관화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습관으로 몸과 마음에 체화되면 그때는 기부가 생활이 될 수 있거든요. Q.교수님의 그런 마음이 한양대에 어떤 변화를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A. 우리 대학의 가장 큰 지향점이 ‘글로벌 한양’입니다. 글로벌 한양의 주체는 학생들이죠. 학생들의 글로벌 시야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글로벌봉사단이나 해외 연구학습 인프라 조성 등 학생들이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지적으로 성장한 학생들로부터 즉, 새로운 세대로부터의 변화가 글로벌 한양의 실현을 더 앞당길 테니까요. Q.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A. 나이가 들면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 안에는 가진 것, 향유하는 것을 나누고 정리하여 이루어내는 단촐한 삶도 포함되어 있죠. 미국의 경우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자유경쟁의 보장과 법치라는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성취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공동체에 대한 감사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거부들은 교육과 대학에 기부합니다. 가장 보람 있는 기부는 모교에 대한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교의 발전을 통해 우리사회의 성숙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소액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올린 벽돌 한 장이 한양대를 세계 100대 명문대학에 진입시키는 밑받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문들의 기부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장기모금 캠페인도 있었으면 합니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

2017-11 15

[교수][희망, 100℃] 한양대 의대의 글로벌 비상, 내 원대한 꿈이 되다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 꿈이었다는 하충식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그러나 그는 그 오랜 꿈을 접었다. 2011년 한양대학교와 의료협약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학 설립을 위해 마련한 돈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발전에 기부하면서 그의 꿈은 한양대 의대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20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약정한후 지금껏 누적 기부액 26억 원을 꾸준히 기부하며, 이제 하충식 이사장의 꿈은 한양대 의과대학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새로운 꿈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하충식 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한양대 의과대학이 내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다 하충식 이사장은 ‘지방대 의대’ 출신이라는 뿌리 깊은 학력 차별의 꼬리표를 끊기 위해 평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4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한양대 동문이 아님에도 한양대의 발전을 위해 200억 원의 발전기금을 약정했다. 이 돈은 평생의 꿈이었던 의과대학 설립 자금이었다. 요즘은 ‘한양대 의대의 발전이 곧 나의 꿈’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하충식 이사장이 한양대 의과대학을 이처럼 각별하게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향인 경남에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어요. 경남은 의료환경과 교육환경이 제일 열악한 지역으로 손꼽히는데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140억 원을 들여 한 지방대학을 인수해 의과대학 설립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포기했다. 전국에 41개의 의과대학이 있는데, 그가 또 설립한다면 42번째 의대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42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충식 이사장은 농담처럼 ‘어느 세월에 최고의 의대로 키우겠느냐’며 차라리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을 발굴하고 더 발전시키는 방법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1년 한양대학교 협력병원으로 지정되고,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결심을 굳혔다. 2015년에는 한양대와 의료임상, 교육, 연구협력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병원 이름도 ‘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앞으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교수 30여 명을 비롯한 우수한 인력들이 배치될 예정이다. 또한 아시아의 의료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한양대학교 한마음국제의료원’을 신축 중이다. 완공되면 200여 명의 의사가 상주하게 되는데 이는 의과대학 1개가 만들어지는 것과 맞먹는 효과라고 한다. 그러니 한양대 의과대학이 하충식 이사장의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가 글로벌 대학으로 비상하는 데 우리 의과대학이 든든한 날개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나의 기부가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부금과 별도로 매년 2천만 원씩 총 3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창원사랑 한마음병원 장학기금’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장학기금은 경남 출신의 한양대 재학생들을 위해 사용된다. 현재 한마음창원병원에는에는 한양대 출신 교수가 여럿 재직 중인데, 이분들 역시 후배들을 위해서 매달 5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다. 여기에 병원에서 좀 더 보태 매년 약정된 금액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충식 이사장은 한양대에만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그가 졸업한 모교에도 매년 지속적인 기부를 하고 있어 이를 모두 포함하면 연평균 20억 원을 기부금으로 내고 있다. ‘부러운’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필요한 사회 “거기 이사장님이 억수로 훌륭하신 분이라예. 창원 사람치고 그 양반 도움 안 받은 사람이 없을낍니더.” 창원중앙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한마음창원병원으로 가자고 했을 때 택시기사가 한 말이었다. 하충식 이사장은 경남지역민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2011년에는 국민이 추천하고 정부가 포상하는 제1회 국민추천포상에 선정되어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평소 근검 절약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지역민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는 공로였다. “60~70년대엔 거지가 아니더라도 춘궁기에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 집에 들어오는 사람 빈 그릇으로 보내지 마라, 사람 괄시하면 못 쓴다’고 가르치셨어요.” 이런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턴 시절에도 명절이면 사비를 털어 병원 미화원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94년 개원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1년째 매일 아침마다 직원들과 함께 병원과 주변 거리를 청소하며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국내 최장시간 자원봉사 인증을 받은 이력도 있다. 경남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복구입비, 수학여행비 지원금을 매년 4억 원씩 지원하고 있다. 파도 파도 미담 투성이니 요즘말로 ‘파파미’가 따로 없다. ▲ 하충식 이사장은 경남지역민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평소 근검 절약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지역민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여 희망과 감동을 주고 있다.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는 자린고비 하충식 이사장은 자린고비로도 유명하다. 십 수 년 간 조심조심 타던 자동차가 수명을 다해 몇 해 전에는 차를 바꿨다. 이 차도 2,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더 이상은 과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골프는 아예 배우지도 않았고 배드민턴을 좋아한다. 진료를 보는 병원동과 달리 행정동 복도에는 형광등을 반만 켜두어 늘 어두컴컴하다. 이사장실은 물론, 회의실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 2대로 여름을 났다. 뽁뽁이를 유리창에 붙여 냉난방비를 아끼고 있다. 이렇게 지독한 자린고비라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단다. 남을 도울 때는 돈을 물 쓰듯 쓸 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기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답이 다소 진부하다 생각을 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온 얼굴에 하회탈 같은 웃음주름살이 퍼진 표정으로 기부를 할 때의 행복함이 어떤 건지 대신 말해주었다. “기부나 남을 돕는 행위가 ‘내 주머니 털어서 비우는 것’ 같지만 궁극에는 10배로 채우는 행위입니다. 그간 기부를 통해 얻은 깨달음입니다. 사실, 우리 병원의 성장도 기부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한마음창원병원이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병원이기도 하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병원이기도 합니다.” 하충식 이사장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13대를 이어간 경주 최 부잣집 같은 부자를 꿈꾼다. 이웃과 나누고 절제할 줄 아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면 대를 잇는 ‘하 부잣집’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

2017-11 08

[리뷰][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 풍요로운 가을과 함께하는 일곱번째 '동행'

▲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통권 제7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통권 제7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봄호는 △희망, 100°C △사랑, 36.5°C △Focus on △발전기금 News △HYU News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희망, 100°C'에서는 한양대 동문이 아님에도 20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약정한 하충식(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이사장의 인터뷰를 담았다.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 꿈이었다는 그는 2011년 한양대학교와 의료협약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오랜 꿈을 접었다. 대학 설립을 위해 마련한 돈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발전에 기부하면서 그는 한양대 의과대학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새로운 꿈과 함께 하고 있다.하충식 이사장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 36.5°C'에서는 강봉구(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교수와 한은순(90 경기지도학) 사회과학대학 행정팀 직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강 교수는 자신의 기부는 한양대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도 얻는 등 많은 혜택을 얻었으니,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강 교수는 소액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세월의 힘을 입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시작은 미약하나 습관으로 몸과 마음에 체화되면 그때는 기부가 생활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한은순 씨는 내가 받은 도움의 손길을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 건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회인이 되었다. 또한 그 약속을 실천하며 가족을 이루었고,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금까지 모교이자 직장인 한양대학교에 1,800만 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기부해 왔다. 한은순 씨는 기부를 한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우리 딸, 우리 남편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공덕으로 시작한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FOCUS-ON' 에서는 자신들의 성공 뒤에 언제나 한양대가 있음을 기억하며, 꾸준한 기부를 통해 글로벌 한양의 초석을 함께 다지고 있는 동문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기 위해, 특정한 공간에 기부자의 이름을 남기는 네이밍 도네이션에 대해 소개한다.<동행한대> 2016년 1호에 소개한 네이밍 도네이션의 뒤를 이어 새로운 공간의 네이밍 도네이션의 철학을 공유한다. 이어서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을 담은 '발전기금 News', 네이처 인덱스 2017 이노베이션(Nature Index 2017 Innovation)’에서 논문당 특허 피인용지수(Normalized Lens influence metric) 부문 국내 대학 중 1위, 세계대학 중 23위를 차지한 소식을 담은 'HYU News'가 실려있다.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통권 제7호) 이북 보기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 보기 이북 전체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