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8건
뉴스 리스트
게시판 리스트 컨텐츠
2018-01 25

[동문][희망, 100℃] 30년 전 각인된 한양인의 DNA가 여전히 우리의 머리와 가슴 속에서 뛰고 있다

참석자 수 600명 육박, 밴드 가입 1,200명 돌파, 발전기금 모금액 3억 원 돌파. 지난해 10월 성황리에 개최된 ‘한양87 홈커밍데이’가 쓴 놀라운 기록들이다. 역대 최고의 기록들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입소문이 번지면서 동문 선배들 사이에서 “도대체 87학번 준비위원장이 누구였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2017년 코스닥에 상장된 기업인 필옵틱스의 대표 한기수 동문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준비위원장으로서의 왕성한 활동은 물론, 스스로 1억 원이라는 통 큰 기부를 실천하며 모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글 편집실/사진 홍승진 ▲ 한기수(87 물리학) 필옵틱스 대표이사 대기업이라는 안전지대 밖으로, 창업 그리고 상장 한기수 동문은 삼성SDI에 입사하여 10년간 근무하다가 퇴사한 후, 자동화설비 제조사인 필옵틱스를 창업했다. 2017년에는 코스닥 상장까지 성공적으로 마쳐 기업의 성장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적인 선택이었지만, 직장인으로서 대기업이라는 안전지대를 떠나기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직장인들에게 입사 5년, 10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갑니다. 너무 바쁘다 보니 미래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죠. 그런데 입사 10년차가 가까워질 즈음, 10년 먼저 입사한 선배들이 줄줄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보며 나의 10년 후 모습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역시 10년 후에는 회사를 떠나야 할 수도 있는데, 그때 뭔가를 새로 시작하는 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입사 10년차 되던 해에 사표를 썼다. 퇴사 후 중소기업에 재입사해 중소기업의 생태계도 배우며 필옵틱스를 설립하기까지 4년 정도의 준비기간이 필요했다. 2008년 창업을 했으니 올해로 딱 10년째가 되었다. 직장인으로 10년, 경영인으로 10년이다. 직장인이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경영자는 ‘새로운 일을 찾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직도 설계 실무에서 손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제가 엔지니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달라졌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특히 초창기부터 함께 일했던 직원들은 예전보다 판단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더군요.” 좀 더 냉철해지고 판단력이 좋아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판단기준이 단순해졌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표현했다. 사업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큰 판단 기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빠른 판단’ 못지않게 ‘현명한 판단’을 위해, 경영자로서 늘 긴장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한양87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 역대급 기록을 남기다 이렇듯 바쁘게 살았으니 졸업 후 학교와의 교류는 어려운 일이었다. 모교를 다시 찾은 소감에 대해 ‘지하철이 연결되어 있어 놀랐다’는 말을 했을 정도이다. 지하철이 연결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니 그만큼이나 오래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다시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다. 지난해 학교 측으로부터 ‘87학번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졸업 후 학교와 교류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뜻밖의 제안이었지만 반가웠습니다. ‘준비위원장’이라는 직함이 부담스러웠지만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없으니 행사 인사말이나 준비하면 된다고 해서 덜컥 수락을 했지요.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었어요. 행사를 준비하는 100일간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은 정말 하나도 없었어요. 다만, 우리가 알아서 준비해야 할 일들이 많더군요. (웃음)” 87학번들이 주체가 되는 행사였기 때문에, 동기들의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준비위원장을 맡은 후 제일 먼저 한 일도 동기들을 밴드에 가입시키는 일이었다. 87학번 동문이 3,600명 정도 되는데 밴드에 가입한 인원이 무려 1,200명에 이르렀다. 전체 동문의 3분의 1이 가입한 셈이다. 행사 계획, 발전기금 모금 관련 게시물에는 하루에 수백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릴 정도로 참여율이 높았다. 한기수 동문은 일일이 챙겨 읽다가 노안이 찾아왔다며, 진담 반 농담 반 그간의 고생을 에둘러 말했다. 행사 당일 참석 인원이 600명에 달했고, 뒤풀이에 합류한 동문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참석자 수는 훨씬 많았다. “이번 행사의 성공은 100일간 동기들이 내 일처럼 나서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학교가 차려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듯이 참여하는 행사였다면 동기들이 느끼는 자부심과 성취감은 덜했겠죠.” 발전기금 모금 3억 원 돌파, 87학번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 87학번 홈커밍데이가 남긴 역대급 기록 중 모교 발전기금 모금을 빼놓을 수가 없다. 무려 3억 원이 넘는 기금이 모금되었는데, 홈커밍데이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였다. 얼마나 많은 동문들의 참여가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기수 동문은 그 공을 모두 동기들에게 돌리며, 기금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87학번의 자취를 남기고 싶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동기들이 적극적으로 모금에 참여해주면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매칭기금’ 방식을 활용해 보았어요. 예를 들어 동기들이 1,000만 원을 기부하면, 제가 같은 금액을 보태서 2,000만 원을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모금을 하다 보니 3억 원이나 모았어요. 다시 생각해 봐도 동기들의 호응과 참여가 없었다면 3억 원 모금이 가능했을까 싶어요.” 워낙 성공적인 행사였기에 준비위원장으로서의 소감도 남다를 법한데, 그는 ‘나의 일상이 홈커밍데이 전과 후로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행사를 마친 후에도 꾸준히 동기들과 모임을 가지고 있으며, 오는 3월에는 87학번 동기회도 정식으로 출범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 한기수 대표이사는 학교에서 청년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한 ‘차세대 청년기업 육성기금’에 기부를 했다. 창업선배로서의 어려움이 반영된 마음으로 학교에서 지원하는 다양한 창업 프로그램 지원 속에서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해보라는 당부의 뜻이다. 너무 오랫동안 모교 발전에 무심했다는 자책감 한기수 동문은 홈커밍데이 모금에 보탠 1억 원 이외에도, 재학생들의 창업교육 지원에 써달라며 1억 원을 기부했다. 또한 창업교육 지원과 물리학과 장학금으로 5억 원이 넘는 기부를 약정했다. 그는 모교의 발전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쁘다며, 이런 기회들이 더욱 많은 동문들에게 주어지기를 희망했다. “동문이라면 누구나 모교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바쁘게 살면서도 한양대 관련 기사가 나오면 그냥 지나치질 못하고, 입시철이면 대학 순위에 은근히 신경을 쓰게 되지요. 하지만 이런 관심이 바로 기부로 연결되기는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에도 모교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선뜻 학교에 연락하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한기수 동문은 오랫동안 모교 발전에 무심했다는 자책과 후배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홈커밍데이 준비위원장 제안이 왔을 때도, 모교가 따뜻한 손을 내미는 것처럼 반가웠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기부를 하게 된 이유가, 창업 선배로서 창업의 어려움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사실 제가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은 못합니다. (웃음) 오히려 한창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에 도서관에 틀어박혀 공부만 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회사에서 직원을 채용할 때도 호기심이 많은 친구들에게 먼저 눈이 갑니다. 실제로 업무해결 능력도 뛰어나더군요.” 그는 직장인으로서 가장 불행한 일이 ‘일의 선택권’을 가질 수 없는 점이었다며, 청년창업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지원하는 창업 프로그램을 활용해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실패하는 경험을 일찍 해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양인의 DNA가 각인된 선배로서, 모교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계속 찾아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는 홈커밍데이를 계기로 기억 속에서 잠자고 있던 한양인의 DNA가 30년 만에 깨어나 머리와 가슴 속에서 힘차게 뛰노는 것이 느껴진다며, 이는 3,600명 동기들의 한결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 너무 오랫동안 모교 발전에 무심했다는 미안함은 이제 접어도 되지 않을까. 동행한대 2017년 WINTER (제8호) 이북 보기

2017-11 15

[교수][사랑, 36.5°C]우리가 올린 벽돌 한 장이 글로벌 한양의 주춧돌이 되길 바라며

젊었을 때 현실보다는 관념과 이상에 치우쳤다는 강봉구 교수는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했던 젊은 날 자신의 무력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공부에 몰입한 것도 아니었고,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고자 앞장 서 피켓을 든 기억도 없이 살아온 것이 부채로 남아 언제나 마음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 마음의 짐을 덜고자 백만 원, 이백만 원 시작한 기부가 어느 새 천만 원을 채우는 사이 사회적 채무의식은 보람으로, 한양인의 자부심으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강봉구 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Q. 처음 발전기금을 기부하신 것이 2011년이던데요, 교원으로 재직하시던 시점인지요? A.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연구위원으로 2000년 3월 부임했습니다. 그러다 2007년 비정년트랙교원, 2011년 정년트랙교원이 되었으니 어느새 7년째 교수로서 한양대에 몸을 담고 있네요. 신분을 떠나서 한양대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도 얻는 등 많은 혜택을 얻었으니, 제 기부는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 해도 될 것 같습니다. Q. 학생 때와 교원이 되었을 때 학교를 보는 시각이 다를 것 같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지요? A. 학생은 교육서비스의 수혜자로 학교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할 수 있는 입장이라면, 교원은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학교는 노동과 자기실현의 장이기도 하죠. 그래서 교원이 된 후에는 타대학과의 경쟁이나 글로벌 한양을 실현하기 위한 학교의 위상에 더욱 민감해진 것 같습니다. Q. 교원으로서 그런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교수님의 기부가 정말 절실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A. 제 기부내역을 보시면 많은 부분이 개교기념일을 앞두고 한 것입니다. 교원으로서 한양대의 발전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위해 내가 한 일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반성하게 되는 시점이기 때문이죠. 2008년도에 설립자 김연준 박사님께서 작고하셨을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제 나이 그때 오십이었습니다. 그런데 스물 여섯 약관의 나이에 기술공학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립을 고민하고 학교를 세우셨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나이에 사회현실에 대한 불만이 앞섰을 뿐, 개선을 위한 비전과 실천이 따르지는 못했거든요. 그래서 10만 원, 20만 원 작은 금액부터 기부를 시작했습니다. 너무 큰 금액을 목표로 하면 영영 시작할 수 없을 것 같아 작은금액부터 시작하여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늦으면 안될 것 같다는 조급함도 한몫했지요. Q. 작은 금액이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흐르니 제법 큰 금액이 되었습니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A. 가족들에게 상의를 하거나 알리지 않고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외협력팀에서 보내는 감사편지를 본 아내가 알게 되었죠. 핀잔을 들을까 걱정했는데, 당신도 그런 일을 할 줄 아느냐며,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더 크게 기부하라고 한술 더 떠 응원해 주더군요. Q.현재도 매월 급여에서 일정금액을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계십니다. 일시납이 아닌 정기납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저 역시 봉급생활자입니다. 많은 금액을 한 번에 내기엔 상황이 녹록치 않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소액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세월의 힘을 입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목표액을 정하고, 그것을 기부할 수 있는 시간안에서 나눠 내는 거죠. 이런 방식이 좋은 것은 기부든 봉사든 습관화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습관으로 몸과 마음에 체화되면 그때는 기부가 생활이 될 수 있거든요. Q.교수님의 그런 마음이 한양대에 어떤 변화를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A. 우리 대학의 가장 큰 지향점이 ‘글로벌 한양’입니다. 글로벌 한양의 주체는 학생들이죠. 학생들의 글로벌 시야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글로벌봉사단이나 해외 연구학습 인프라 조성 등 학생들이 해외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지적으로 성장한 학생들로부터 즉, 새로운 세대로부터의 변화가 글로벌 한양의 실현을 더 앞당길 테니까요. Q.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A. 나이가 들면서 회자정리(會者定離)의 필요성을 느낍니다. 그 안에는 가진 것, 향유하는 것을 나누고 정리하여 이루어내는 단촐한 삶도 포함되어 있죠. 미국의 경우 개인의 사회적 성취는 자유경쟁의 보장과 법치라는 사회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뛰어난 성취는 자신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회 시스템 속에서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공동체에 대한 감사와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의 거부들은 교육과 대학에 기부합니다. 가장 보람 있는 기부는 모교에 대한 기부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의 수준이 그 사회의 수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교의 발전을 통해 우리사회의 성숙에 기여한다는 생각으로 소액부터 시작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올린 벽돌 한 장이 한양대를 세계 100대 명문대학에 진입시키는 밑받침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문들의 기부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중장기모금 캠페인도 있었으면 합니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

2017-11 15

[교수][희망, 100℃] 한양대 의대의 글로벌 비상, 내 원대한 꿈이 되다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 꿈이었다는 하충식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그러나 그는 그 오랜 꿈을 접었다. 2011년 한양대학교와 의료협약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대학 설립을 위해 마련한 돈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발전에 기부하면서 그의 꿈은 한양대 의대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20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약정한후 지금껏 누적 기부액 26억 원을 꾸준히 기부하며, 이제 하충식 이사장의 꿈은 한양대 의과대학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새로운 꿈으로 진화하고 있다. 글. 편집실 / 사진. 홍승진 ▲ 하충식 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한양대 의과대학이 내 꿈을 실현시켜 줄 것이다 하충식 이사장은 ‘지방대 의대’ 출신이라는 뿌리 깊은 학력 차별의 꼬리표를 끊기 위해 평생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며 살아왔다고 한다. 4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로, 한양대 동문이 아님에도 한양대의 발전을 위해 200억 원의 발전기금을 약정했다. 이 돈은 평생의 꿈이었던 의과대학 설립 자금이었다. 요즘은 ‘한양대 의대의 발전이 곧 나의 꿈’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닌다. 하충식 이사장이 한양대 의과대학을 이처럼 각별하게 생각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고향인 경남에 국내 최고의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어요. 경남은 의료환경과 교육환경이 제일 열악한 지역으로 손꼽히는데 이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140억 원을 들여 한 지방대학을 인수해 의과대학 설립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포기했다. 전국에 41개의 의과대학이 있는데, 그가 또 설립한다면 42번째 의대가 생기는 것이다. 이는 42등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충식 이사장은 농담처럼 ‘어느 세월에 최고의 의대로 키우겠느냐’며 차라리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을 발굴하고 더 발전시키는 방법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2011년 한양대학교 협력병원으로 지정되고, 깊은 신뢰관계가 형성되면서 결심을 굳혔다. 2015년에는 한양대와 의료임상, 교육, 연구협력에 대한 업무협약을 맺고 병원 이름도 ‘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앞으로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전임교수 30여 명을 비롯한 우수한 인력들이 배치될 예정이다. 또한 아시아의 의료 허브가 되겠다는 야심찬 목표로 ‘한양대학교 한마음국제의료원’을 신축 중이다. 완공되면 200여 명의 의사가 상주하게 되는데 이는 의과대학 1개가 만들어지는 것과 맞먹는 효과라고 한다. 그러니 한양대 의과대학이 하충식 이사장의 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가 글로벌 대학으로 비상하는 데 우리 의과대학이 든든한 날개가 될 것이라 기대합니다. 나의 기부가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부금과 별도로 매년 2천만 원씩 총 3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정한 ‘창원사랑 한마음병원 장학기금’도 포함되어 있다. 이 장학기금은 경남 출신의 한양대 재학생들을 위해 사용된다. 현재 한마음창원병원에는에는 한양대 출신 교수가 여럿 재직 중인데, 이분들 역시 후배들을 위해서 매달 5만 원씩 기부를 하고 있다. 여기에 병원에서 좀 더 보태 매년 약정된 금액을 만들어 가고 있다. 하충식 이사장은 한양대에만 기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까지 그가 졸업한 모교에도 매년 지속적인 기부를 하고 있어 이를 모두 포함하면 연평균 20억 원을 기부금으로 내고 있다. ‘부러운’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필요한 사회 “거기 이사장님이 억수로 훌륭하신 분이라예. 창원 사람치고 그 양반 도움 안 받은 사람이 없을낍니더.” 창원중앙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한마음창원병원으로 가자고 했을 때 택시기사가 한 말이었다. 하충식 이사장은 경남지역민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2011년에는 국민이 추천하고 정부가 포상하는 제1회 국민추천포상에 선정되어 국민포장을 받기도 했다. 평소 근검 절약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지역민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여 국민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었다는 공로였다. “60~70년대엔 거지가 아니더라도 춘궁기에는 밥을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어머니께서는 ‘내 집에 들어오는 사람 빈 그릇으로 보내지 마라, 사람 괄시하면 못 쓴다’고 가르치셨어요.” 이런 밥상머리 교육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인턴 시절에도 명절이면 사비를 털어 병원 미화원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1994년 개원과 함께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21년째 매일 아침마다 직원들과 함께 병원과 주변 거리를 청소하며 국가기록원으로부터 국내 최장시간 자원봉사 인증을 받은 이력도 있다. 경남의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교복구입비, 수학여행비 지원금을 매년 4억 원씩 지원하고 있다. 파도 파도 미담 투성이니 요즘말로 ‘파파미’가 따로 없다. ▲ 하충식 이사장은 경남지역민들 사이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인물로도 정평이 나있다. 평소 근검 절약정신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매년 수억 원을 기부하고 지역민을 위한 봉사를 실천하여 희망과 감동을 주고 있다. 돈을 물 쓰듯 펑펑 쓰는 자린고비 하충식 이사장은 자린고비로도 유명하다. 십 수 년 간 조심조심 타던 자동차가 수명을 다해 몇 해 전에는 차를 바꿨다. 이 차도 2,000만 원을 넘지 않는다. 더 이상은 과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골프는 아예 배우지도 않았고 배드민턴을 좋아한다. 진료를 보는 병원동과 달리 행정동 복도에는 형광등을 반만 켜두어 늘 어두컴컴하다. 이사장실은 물론, 회의실도 에어컨 대신 선풍기 2대로 여름을 났다. 뽁뽁이를 유리창에 붙여 냉난방비를 아끼고 있다. 이렇게 지독한 자린고비라는 소리를 들어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단다. 남을 도울 때는 돈을 물 쓰듯 쓸 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삶에서 기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답이 다소 진부하다 생각을 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온 얼굴에 하회탈 같은 웃음주름살이 퍼진 표정으로 기부를 할 때의 행복함이 어떤 건지 대신 말해주었다. “기부나 남을 돕는 행위가 ‘내 주머니 털어서 비우는 것’ 같지만 궁극에는 10배로 채우는 행위입니다. 그간 기부를 통해 얻은 깨달음입니다. 사실, 우리 병원의 성장도 기부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한마음창원병원이 우리나라에서 기부를 가장 많이 하는 병원이기도 하지만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병원이기도 합니다.” 하충식 이사장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13대를 이어간 경주 최 부잣집 같은 부자를 꿈꾼다. 이웃과 나누고 절제할 줄 아는 그의 삶의 방식이라면 대를 잇는 ‘하 부잣집’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동행한대 2017년 AUTUMN (제7호) 이북 보기

2017-11 08

[리뷰][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 풍요로운 가을과 함께하는 일곱번째 '동행'

▲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통권 제7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통권 제7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봄호는 △희망, 100°C △사랑, 36.5°C △Focus on △발전기금 News △HYU News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희망, 100°C'에서는 한양대 동문이 아님에도 200억 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약정한 하충식(한양대학교 한마음창원병원 이사장) 이사장의 인터뷰를 담았다. 의과대학을 설립하는 것이 평생 꿈이었다는 그는 2011년 한양대학교와 의료협약을 맺은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오랜 꿈을 접었다. 대학 설립을 위해 마련한 돈을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발전에 기부하면서 그는 한양대 의과대학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새로운 꿈과 함께 하고 있다.하충식 이사장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부자가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 36.5°C'에서는 강봉구(한양대학교 아태지역연구센터 교수) 교수와 한은순(90 경기지도학) 사회과학대학 행정팀 직원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강 교수는 자신의 기부는 한양대를 통해 지적으로 성장하고 좋은 일자리도 얻는 등 많은 혜택을 얻었으니, 어느 정도 그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강 교수는 소액이라도 꾸준히 한다면 세월의 힘을 입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시작은 미약하나 습관으로 몸과 마음에 체화되면 그때는 기부가 생활이 될 수 있다고 전한다. 한은순 씨는 내가 받은 도움의 손길을 반드시 다른 이들에게 건네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회인이 되었다. 또한 그 약속을 실천하며 가족을 이루었고, 가족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금까지 모교이자 직장인 한양대학교에 1,800만 원 이상의 발전기금을 기부해 왔다. 한은순 씨는 기부를 한다는 거창한 생각보다 우리 딸, 우리 남편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공덕으로 시작한다면 망설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FOCUS-ON' 에서는 자신들의 성공 뒤에 언제나 한양대가 있음을 기억하며, 꾸준한 기부를 통해 글로벌 한양의 초석을 함께 다지고 있는 동문들의 숭고한 뜻을 기억하기 위해, 특정한 공간에 기부자의 이름을 남기는 네이밍 도네이션에 대해 소개한다.<동행한대> 2016년 1호에 소개한 네이밍 도네이션의 뒤를 이어 새로운 공간의 네이밍 도네이션의 철학을 공유한다. 이어서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을 담은 '발전기금 News', 네이처 인덱스 2017 이노베이션(Nature Index 2017 Innovation)’에서 논문당 특허 피인용지수(Normalized Lens influence metric) 부문 국내 대학 중 1위, 세계대학 중 23위를 차지한 소식을 담은 'HYU News'가 실려있다.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통권 제7호) 이북 보기 동행한대 2017년 가을호 보기 이북 전체 리스트

2017-07 26

[리뷰][동행한대 2017년 여름호] 싱그러운 여름과 함께하는 여섯번째 '동행'

▲ 동행한대 2017년 여름호(통권 제6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7년 여름호(통권 제6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봄호는 △희망, 100°C △사랑, 36.5°C △Focus on △발전기금 News △HYU News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희망, 100°C'에서는 창업지원단 발전기금과 총장전략기금으로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한 유현오(97 섬유공학(院), 한양대학교 창업지원단장) 동문과 나눔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하는 황인수(58 건축공학, 성일건설 회장) 동문 의 인터뷰를 담았다. 기부를 ‘사회적 투자’로 정의하는 유 동문은 이번 기부는 ‘교육에 대한 투자’였다고 한다. 유 동문은 창업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자신과 같은 창업 성공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고, 제2, 제3의 젊은 유현오가 나와 다시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을 실행하라고 조언한다. 황 동문은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생각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내가 시작해야 다른 사람들도 시작한다는 황 동문의 의지는 모교 건축관 건립의 주춧돌이 되었고, 최근 총장전략기금 1억 원 기부까지 이어졌다. 황 동문은 부족함을 기억하는 세대도 자신의 세대가 마지막일 거라며, 그렇기에 더욱 나눔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 36.5°C'에서는 이희성(98 경제금융학) · 고정인(06 경영학) 동문 부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최근 자신들이 졸업한 경영대학의 발전을 위해 각각 100만 원의 발전기금을 기부한 이희성·고정인 동문 부부. 먼저 기부를 결심한 남편의 마음에 선뜻 뜻을 함께해 준 고정인 동문은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찬 응원이 되는 선(善)한 시간의 축적이길 바란다고 한다. 'FOCUS-ON' 에서는 85학번 동기회의 모교지원사업 발자취를 소개한다. 후배 사랑 실천의 진원지로 불리며 한양대의 자랑이 된, 85학번 동기회의 지칠 줄 모르는 3년 간의 뜨거운 내리사랑 현장과 함께 하영판(85학번 동기회 사무총장) 동문의 미니 인터뷰를 담았다. 이어서 취약계층 고시반 학생들의 장학금, 고시 준비 지원금을 지원하는 기부 모금 캠페인인 ‘파워엘리트 [나무그늘] 캠페인’에 대한 소개와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을 담은 '발전기금 News', 2017 세계 대학 평가 학과별 순위 발표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양대의 모습을 담은 'HYU News'가 실려있다. 동행한대 2017년 여름호(통권 제6호) 이북 보기 동행한대 2017년 여름호 보기 이북 전체 리스트

2017-07 26

[동문][사랑 36.5℃]비움으로써 채워지는 기부문화, 한양대의 따뜻한 전통이 되길 (1)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 자연스럽듯, 물질도 많은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흘러내려야 사회가 순환된다. 결국 물질의 순환을 돕는 건 사람의 마음인지라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방향이 중요하다. 최근 자신들이 졸업한 경영대학의 발전을 위해 각각 100만 원의 발전기금을 기부한 이희성·고정인 동문 부부. 먼저 기부를 결심한 남편의 마음에 선뜻 뜻을 함께해 준 고정인 동문은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힘찬 응원이 되는 선(善)한 시간의 축적이길 바란다고 한다. ▲ 이희성(98 경제금융학) & 고정인(06 경영학) 부부 Q 두 분 모두 한양대를 다니셨지만 학번과 학과가 다르던데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이희성_ 제가 회계사반 조교를 했었어요. 그때 게시판 Q&A에 아내가 시험 관련 질문을 한 적이 있었죠. 그리고 회계사반 시험을 보러 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았어요. 조교생활이 끝나고 2008년 아내가 회계사반에 들어왔는데 이름이 익숙해 생각해 보니 그때 그 학생이더군요. 같이 회계사반에서 공부하다 아내가 다니던 교회에 함께 다니게 되었고, 아내가 2차 시험을 끝내고 고향에 내려가기 전에 제가 고백을 했죠. Q 특별히 공인회계사 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정인_ 어떤 삶을 살까 고민한 적이 있었는데요. 회사생활이 즐겁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을 많이 벌어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는 것도 즐거울 것 같았고요. 그때는 막연히 경영자에 대한 그런 이미지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사업을 하자 생각했고,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경영자가 되기 위한 직업군을 찾다 그 베이스가 될 수 있는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준비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나누는 일을 생각한 게 놀랍네요. 그런 맥락에서 <Club 동행한대> 캠페인을 통해 기부를 결심하신 건지요? 고정인_ 아직 많이 벌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남편이 성과급을 받아 함께 기부하는 게 어떨까 제안을 했죠. 이번이 아니면 시작을 못할 것 같아 그러자 했어요. 이희성_ 회계사반에서 공부할 때 여러 면에서 경제적인 혜택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받은 것을 후배들에게 꼭 돌려주자 다짐했었습니다. 한양대 회계사 동문회 ‘디딤돌’에는 그해 합격한 사람들이 소정의 돈을 모아 후배들에게 지원해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합격하면 그것 말고도 꼭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자고 다짐했었죠. Q 남편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셨는데 망설임은 없었나요? 고정인_ 저희도 아직 신혼이라 돈 쓸 데가 많긴 한데요. 교회의 영향을 받아 평소에 기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 시작 전에 교회에서 하는 봉사활동의 성과를 영상으로 보여 주는데 그때마다 저도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가장 쉬운 게 돈으로 하는 기부가 아닌가 생각해요. Q 이번 기부 외에도 개인적으로 계획 중인 봉사활동이 있을까요? 이희성_ 아내와 함께 교회 푸른나눔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희가 가진 회계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적기업에 회계 컨설팅을 해주는 일이었죠. 둘 다 바빠서 자주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틈틈이 참여하려고 합니다. 또한 장모님께서 장기기증 서약을 하셨는데, 아내와 함께 이 문제 역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Q 경영대학 발전기금으로 기부를 하셨는데 특별히 사용되었으면 하는 데가 있을까요? 이희성_ 저희도 집이 부유한 건 아니라 학교의 도움이 없었다면 시험 준비가 쉽지 않았을 거예요. 요즘은 꿈을 이루는 데도 돈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조금만 도와주면 올라갈 수 있는 후배들을 종종 보곤 하는데, 그들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고정인_ 전에 어떤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이 선하다고 믿는 사람이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도움을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저희뿐 아니라 한양대에 기부를 하시는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우리 주변에 서로를 돕고자 하는 의지가 있구나, 그런 사람들과 같이 살고 있구나 느끼고, 그 마음을 후배들과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희성_ 저는 선배들에게 받은 사랑과 지원이 아래로 계속 흐르길 바랍니다. 그래서 그것이 문화가 되고 전통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학교를 나와 일을 하다 보니 성장하는 데에 학교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만일 다른 학교를 다녔다면 지금 이룬 것들도 어쩌면 접어야 하는 꿈이 되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린시절의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후배들에게 여러분의 관심이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7 25

[동문][희망, 100℃] 부족한 세대의 기억이 나눔의 시작이 되다

모든 게 부족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을 살아낸 황인수 회장은 무엇보다도 젊은 세대가 가진 게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 생각이 기부의 시작이었다. 내가 시작해야 다른 사람들도 시작한다는 황 회장의 의지는 모교 건축관 건립의 주춧돌이 되었고, 최근 총장전략기금 1억 원 기부까지 이어졌다. 부족함을 기억하는 세대도 자신의 세대가 마지막일 거라며, 그렇기에 더욱 나눔의 중요성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한다. ▲ 성일건설 회장 황인수(58 건축공학) 동문 현장과 강의실을 오가며 몸에 밴 공부 사실 한양대 입학은 황인수 회장의 선택이 아니었다. 타 대학 낙방 후 교육자인 형님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잘 살려면 건축이 필요하다며 한양대 건축학과를 추천하였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어렵지 않게 장학금도 받으며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 학교 공부만 해서는 현장을 알 수 없다는 생각에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그때부터 학과공부에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강의실에서 배운 이론을 현장에서 바로 체득하고, 현장에서 알고 싶었던 것을 강의실에서 배우며 공부가 몸에 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현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4학년이 되면서 설계도를 그리게 되었고, 현장감독을 하면서 나이에 비해 빠른 경력을 쌓았다. 이 경력으로 군 입대 후에는 공병대로 자대배치를 받았고, 군 생활 중 신일토건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그때 알았어요. 내가 정말 좋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신일토건에 다니면서 굵직굵직한 공사를 많이 했지요. 한창 일에 재미가 붙고 건설시장 체계를 알 즈음 창업을 했습니다. 그때 내 나이 서른셋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이론들과 내가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들이 남들보다 빠르고 성공적인 출발선이 되어 주었죠.” 행동이 가장 강한 설득력 삼십대, 남들은 직장을 얻고 일을 알아갈 때쯤 사회적으로 이미 안정기에 접어들었던 황 회장은 다른 고민을 시작했다. 내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안정을 선(善)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때 삶의 지표로 세운 것이 바로 ‘최선을 다하는 생활, 봉사하는 생활’이라는 쉽지 않은 좌우명이다. 당시 서울지구 JC특우회 회장이었던 그는 새벽에는 현장을 돌고 오후에는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충북 단양의 한 시골에 일본 JC에서 지원해 온 치과의사들과 협력해 무의촌 무료진료를 시작했다. 또한 소득증대사업으로 발을 짜 판매하는 방식으로 낙후부락이었던 마을을 자립부락으로 만들며 놀라운 기적을 함께 이루어내기도 했다. “아마 저희 세대가 부족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부족함은 불편한 일이지만, 제 경우 돈을 쓸 데와 안 쓸 데를 구분하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었던 환경이 되었죠. 한 마을을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근본이 저는 기부와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인색함이란 있을 수 없죠.” 정신없이 현장을 오가면서도 그의 봉사하는 삶은 중단되는 일이 없었다. 서울남산로터리클럽 회장을 하며 중국 연변에 의료봉사활동을 추진하였고, 재작년엔 네팔에 도서관을 건립하여 현재 도서기증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10년 동안 한양대 동문 부회장을 하며 동문회관 건립기금 모금에도 솔선수범하였다. 늘 남을 독려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행해야 설득력을 가진다는 황 회장은 동문회관 건립기금 모금현장에서에서 5,000만 원을 기부하였다. 동문회장이 먼저 시작하니 줄줄이 기부가 이어졌고, 그 자리에서만 10억 원을 모금한 일화는 아직도 유명하다. ▲ 황인수 동문은 "아마 저희 세대가 부족함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제게 부족함은 돈을 쓸 데와 안 쓸 데를 구분하는 현명함을 기를 수 있었던 환경이 되었죠. 한 마을을 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스스로 일어서게 하는 근본은 기부와 봉사입니다." 라고 말한다. 가까운 곳의 어려움을 챙기는 성일장학재단 기부나 봉사를 시작하는 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지 말라는 황인수 회장은 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 도와줄 데가 생긴다고 말한다. 그때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성일건설의 경우 2007년부터 사단법인 성일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 중이다.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를 정하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건설시장이 위축되면서 생활이 어려워진 현장 소장이나 하급직원의 자녀들을 추천받아 1년에 10명 안팎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세월이 10년 흐르다 보니 장학금 혜택을 받은 학생들도 이젠 꽤 많아졌다. 그 수가 많아진 만큼 잘 된 학생들의 소식도 종종 들려온다. 한 번은 사법고시에 합격했다며 한 학생이 인사를 온 적이 있었다며, 일찍이 많은 것을 이루었던 자신에게 인생의 즐거움이란 이렇게 곳곳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는 것이라고 한다. 황인수 회장은 결혼을 하면서 아내에게 몇 가지 약속을 하였다. 그중 하나가 책을 사는 것 외에는 돈을 아껴 쓰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집을 샀고, 아이들을 교육했고, 후일엔 후배들을 위해 쓰면서 한양대 발전의 터닝포인트를 만들어 왔다. 그것은 단순히 현재의 후배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 그들의 아이들을 위한 또 다른 시작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 시작을 나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한다면 더 좋지 않겠냐며, 황인수 회장은 호탕하게 웃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7 25

[동문][희망, 100℃] 세상을 바꾸는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교육입니다

창업지원단 발전기금과 총장전략기금으로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기부했지만, 그는 ‘남을 돕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기부를 ‘사회적 투자’로 정의하는 유현오 단장은 이번 기부는 ‘교육에 대한 투자’였다고 한다. 창업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자신과 같은 창업 성공 스토리가 널리 알려지고, 제2, 제3의 젊은 유현오가 나와 다시 창업을 꿈꾸는 이들을 인큐베이팅 하는 생태계를 만들고 싶었다. 그의 기부는 그러한 선순환의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 ▲ 한양대학교 창업지원단장 유현오(97 섬유공학(院)) 동문 자신에게 정의를 외쳐라 젊은 세대의 꿈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가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다는 유현오 단장은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외치길 당부한다. 자신을 향한 정의는 무엇일까?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다. 바로 그 도전들을 실행하라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줄곧 자신의 인생을 어른들이 결정해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흔한 모습이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었다면 이젠 자신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야 한다. 그래서 실패를 빨리 경험하고 강한 젊음을 만드는 과정을 몸소 겪어야 한다고 말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면 자리가 날 때가 있죠. 거기에 누가 앉느냐? 바로 노약자들이죠. 건강한 사람들은 보통 서서 갑니다. 똑똑한 젊은 친구들이 안정적인 직장만 찾는 세태는 위험합니다. 중소 벤처기업에 가서 회사를 키우고 나아가 자신의 회사를 일구는 도전의식이 없다면 나라도 건강하게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건강한 창업 풍토가 잘 조성되어 있는 곳이 바로 한양대학교라고 강조한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외치지만, 그 혁명을 얼마나 잘 준비하고 있을까? 한양대처럼 오픈된 플랫폼을 완비하고 있지 않다면 4차 산업혁명도 결국 남의 일이 될 수밖에 없다. ▲ 유현오 동문은 "젊은 세대의 꿈이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가 대부분인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외치세요. 젊음, 그 특정한 시기에만 할 수 있는 도전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 도전들을 실행하세요." 라고 말한다 교육은 가장 수익이 높은 투자 유현오 단장이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유도 그 플랫폼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막상 창업지원단에 부임해 보니 재정이 넉넉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기부를 해서라도 창업지원단을 구글 캠퍼스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오피스 인테리어부터 경직된 이미지를 버리고 구성원들이 유연한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창업지원단의 빅 픽처(Big Picture)는 유 단장의 비즈니스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 많다. 일명 ‘하유미팩’이라 불렸던 하이드로겔 마스크팩을 생산·판매하는 ‘제닉’을 창업하고 매각하기까지 그가 겪었던 비즈니스의 우여곡절은 그 자체로 성공 케이스이다. “사업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5년 간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지지 않았죠. 제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를 수 있게 된 후, 교회 내의 사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멘토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발전해서 한 달에 한 번 개최되는 포럼이 되었고, 이 포럼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2013년에는 창업자가 닮고 싶은 롤 모델 1위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이번에 한양대로 오게 된 것도 그때 느꼈던 보람과 류창완 전임 글로벌기업가센터장님의 ‘너 같은 사람 하나 더 만들어 보자’라는 독려가 컸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가치 있는 일 평균수명이 100세 이상이 되면서 퇴직 이후의 인생 2막이 그만큼 길어졌다. 퇴직 이후에도 이젠 창업은 필수가 된 셈이다. 그러니 미리 공부하자는 게 유 단장의 조언이다. 스스로가 한양대에서 석사와 박사를 마쳤고, 졸업 후 창업을 했던 까닭에 학교에서의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다. 학교에서의 공부가 실제 창업을 준비하고 경험하는 실효성 있는 과정이 되려면, 커리큘럼과 인적자원, 하드웨어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그의 기부금이 쓰일 것이다. 유 단장은 본인이 ‘성공한 창업자’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주위에 알린다. 대부분의 성공한 기업가들이 자신의 성공을 알리지 않는 반면, 사업의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야기들은 너무 흔하다. 그러니 젊은 세대들이 창업을 두려워할 수밖에…. 그래서 더욱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널리 알려서, 사업을 하면 돈도 벌 수 있고, 명예도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위인처럼 살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유현오 단장은 ‘창업은 세상을 바꾸는 일이고, 그 가치 있는 일에 어렵게 번 돈을 쓰며 행복을 느끼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한정화 경영대학 교수가 본인에게 학교로 올 것을 권유하며 했던 말처럼, ‘훗날 하늘나라에 갔을 때 하느님께 그냥 놀다 왔다는 말은 하지 말자’는 것이 그가 인생 제2막을 살고 있는 이유라고 말했다. 동행한대 2017년 Summer (제 6호) 이북 보기

2017-05 29

[행사]Club 동행한대 기부감사 이벤트 ‘Movie Night’ 성황리 개최

한양대학교는 12일(금) CGV 왕십리점에서 ‘제2회 Club 동행한대 기부 감사 행사, Movie Night’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번 행사는 80여 명의 기부자와 가족들이 참석해 샌드위치로 간단한 식사를 하며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을 관람하는 시간을 가졌다. 본 행사에 참석한 기부자들을 위해 한양대학교 재학생 나눔서포터즈 ‘한올’에서는 일회용 투명컵에 과일을 담은 컵과일 선물과 폴라로이드 촬영 이벤트 등을 진행했다. 행사에 참석한 이영무 총장은 “경제가 어렵고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도 모교를 잊지 않고 후배를 위해 따뜻한 정성을 모아주셔서 감사하다”라며 “학교의 모든 교직원도 동문의 가슴에 한양의 자부심을 새길 수 있도록 더 좋은 환경과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행사에 참여한 정동현 동문(영어교육 04)은 “학교에서 이렇게 소액 기부자까지 챙겨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며 “좋은 행사를 마련해주셨는데 준비한 노력에 비해 참여자가 적어 아쉽지만 다음에는 더 많은 기부자와 동문이 참여해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한편, 생활이 어려운 재학생들의 생활비를 지원해주기 위한 장학금 조성을 목표로 2016년부터 시작된 대외협력처 소액 모금캠페인 ‘Club 동행한대’는 지난 1년 동안 약 400여 명의 동문과 한양 가족이 참여해 2억 원에 가까운 금액을 모금하는 성과를 달성했다. ▲대외협력처 직원들이 참석자 명단을 확인하며 참석자들의 입장을 돕고 있다. ▲재학생 나눔서포터즈 한올 학생들이 이영무 총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참석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행사에 참석한 이영무 총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7-04 21

[리뷰][동행한대 2017년 봄호] 따뜻한 봄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다섯번째 '동행'

▲ 동행한대 2017년 봄호(통권 제5호) 한양대 대외협력처는 발전기금 뉴스레터 ‘동행한대’ 2017년 봄호(통권 제5호)를 발간했다. 이번 동행한대 봄호는 △희망, 100°C △사랑, 36.5°C △PAY IT FORWARD △Focus on △발전기금 News △HYU News △기부 Report △이달의 기부자 △기부 안내 등을 소개했다. '희망, 100°C'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방법으로 모교에 기부를 해온 이범택(섬유공학 72, ㈜크린토피아 회장) 동문의 인터뷰를 담았다. 최근 노후화된 한양예술극장의 리모델링을 위해 3억 원을 쾌척하고 진행에 부족한 예산의 추가적인 기부까지 약정한 이 동문은, 후배들이 젊음의 특권을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선배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동문은 기부와 나눔을 망설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만큼’ 나누자고 조언한다. '사랑, 36.5°C'에서는 신정식(경영학부 명예교수) 동문과 국가대표 체조선수 박민수(스포츠산업학과 13) 동문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신 동문은 퇴임 이후 지금까지 1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을 가꾸어 가는 일이 생의 큰 화두라고 말하는 그는, 의미 있는 “웰 에이징” 실천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 동문은 졸업과 동시에 모교 운동부 발전기금으로 3,000만 원을 기부했다. 졸업 후 실업팀과 계약하자마자 함께 뛰던 후배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들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다는 그의 인터뷰가 '사랑, 36.5°C'의 두번째 이야기로 실려 있다. ‘PAY IT FORWARD’에서는 해외대학의 기부문화를 소개한다. 7억 5,000만 달러(약 8,700억 원)의 기부금을 바탕으로 설립됐으며 전액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단일 장학 프로그램 중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스탠퍼드 대학교의 ‘나이트-헤네시 장학프로그램’에 대한 내용이 실렸다. ‘Focus on’에서는 대중모금캠페인 <Club 동행한대>의 2016년 진행성과를 정리 하고, 함희혁(전자통신공학 83) 동문, 이빈(영미언어문화학과 08) 동문 등 기부자들의 미니 인터뷰를 담았다. 이어서 ‘2017 졸업생 새 출발 축하 행사’ 개최 현장과 다양한 발전기금 소식을 담은 '발전기금 News', 2017 세계 대학 평가 학과별 순위 발표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양대의 모습을 담은 'HYU News'가 실려있다. 동행한대 2017년 봄호(통권제5호) 이북 보기 동행한대 2017년 봄호 보기 이북 전체 리스트

2017-04 20

[동문][사랑, 36.5°C] 당신의 정 묻은 손이 누군가에게 삶을 지탱해 주는 동력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사람이, 혹은 종교가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그가 가는 길에 긍정적인 발자국을 남기게 한다면 그 발자국은 뒤에 오는 다른 이들에게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졸업과 동시에 본인이 몸 담았던 모교 운동부를 위해 발전기금 3,000만 원을 쾌척한 박민수 동문은 자신의 시작에 거창한 의미가 담기는 것이 조심스럽다. 어렸을 때부터 몸과 마음에 익힌 자신의 신념대로 그저 행했을 뿐이다. ▲박민수 (13 스포츠산업학과) 동문 Q 졸업과 동시에 모교 운동부 발전기금으로 3,000만 원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고등학교 시절 시합에 나가 한양대 선수들의 실력을 보고 놀란 적이 많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한양대 선수들만의 단합된 모습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도 꼭 한양대에 진학하고 싶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졸업생이 되었습니다. 운동부에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열심히 땀 흘리며 좋은 성적을 많이 거뒀는데, 그런 추억들이 모교에 대한 애정으로 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졸업을 하고 실업팀과 계약하자마자 함께 뛰던 후배들이 가장 먼저 생각났고, 그들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 계약금의 일부를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Q 본인에게 매우 의미 있는 돈이었을 텐데,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은 제가 한양대에서 운동을 했기 때문에 좋은 조건으로 실업팀에 갈 수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흔쾌히 동의해 주셨습니다. 사실 부모님께서도 오래 전부터 기부나 봉사활동을 하셨고, 제게도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권하신 분들이라 이번 일에도 이견은 없었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봉사활동을 하면서 마음만 아파하는 동정심도 가진 사람이 부리는 오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른 이들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봉사활동을 해오셨네요? 네, 거창한 의미로 해석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종교를 통해 선교나 고아원 등의 봉사활동을 일찍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고등학교 시절 장학재단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다 보니 더 좋은 기회들이 저절로 찾아왔던 것 같아서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기부는 다른 사람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지만 기부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선순환의 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박민수 동문이 좋은 예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완벽하지 않잖아요. 저 역시 개인으로서나 운동선수로서나 많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가슴 깊이 찌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순한 기쁨이나 즐거움이라고 표한하기 어려운… 그 경험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망설이지 말았으면 합니다. 물질이 주는 행복감보다 더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Q 박민수 선수의 기부금이 운동부실의 발전에 어떻게 사용되었으면 합니까? 사실 운동을 하려면 집안의 경제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가정 형편이 어렵다면 선수 생활을 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장학금으로 사용되었으면 하고, 일부는 후배들이 단체복을 구입하는 데 사용되었으면 합니다. 선수들의 소속감이나 단합된 모습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시각적인 수단이니까요. Q 기부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기부가 모두에게 필수는 아닙니다. 누군가 강요해서 할 수도 없는 일이죠. 하지만 미루다가 나중에 아쉬움을 남기지 마시고, 일단 저지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어렵다면 기부 약정을 통해 조금은 강제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독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힘든 사람들끼리 서로 손잡고 사는 게 조금은 짐을 더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 박민수 동문은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은 없잖아요? 기부는 힘든 사람들끼리 손을 잡고 짐을 덜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고 말한다. Q 앞으로의 포부와 후배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4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됩니다. 하루 7시간 이상 훈련을 하느라 많이 힘들지만, 꿈이 있기에 이 모든 시간들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힘들더라도 후배들도 큰 꿈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잘 견디어 냈으면 합니다.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 좋은 결과로 되돌아오니까요.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

2017-04 20

[교수][사랑, 36.5°C] 기부는 삶의 아름다운 소명입니다

삶을 어느 정도 살아왔다면, 앞으로 살아갈 시간에 대한 욕심보다는 남은 삶에 대한 아름다운 관리가 필요하다. 그런의미에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 누군가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기부만큼 “웰 에이징”의 본뜻을 의미 있게 실천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삶을 가꾸어 가는 일이 생의 큰 화두라는 신정식 명예교수, 정년퇴임 이후 이제는 기부자로서 한양과 함께 하고 있는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Q 퇴임하신 이후 지금까지 1억 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을 기부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기부를 시작하셨는지 궁금합니다. 1962년 처음 강단에 선 후 2002년 정년퇴임을 하기까지,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양과 함께 하였습니다. 한양에서 보낸 수많은 계절들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었습니다. 회계학교수로서 이론과 실무를 연계한 다수의 논문을 써 우리나라 회계제도의 글로벌화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주로 공인회계사제도를 강조하는 기조에서 학생들을 교육하였고, 그 결과는 오늘날의 한양대 경영대학의 수준을 유지하는 데 작은 도움이나마 되었다고 봅니다. 후반 16년은 대학본부의 행정에 참여하여 격동기의 대학경영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일에 기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젊은 날 한양에 쏟았던 애정이, 나이가 들면서 한양의 발전에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책무로 다가왔습니다. ▲ 신정식 경영학부 명예교수 Q 기부에 대한 가족들의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했을 텐데요, 가족들은 선뜻 동의하셨나요? 가족들과 먼저 상의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일단 실행하고 나중에 가족들에게 얘기를 하는 편인데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특히 아내는 누군가를 돕는 일에 저보다 더 열성적입니다. 지금도 노인복지관 등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공연 봉사 활동을 통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사회봉사나 기부를 실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Q 한양대 이외에도 개인적으로 하시는 다른 기부나 봉사활동이 있을까요? 제가 공인회계사이기 때문에 협동주택공동체나 종친회 등 비영리 단체의 회계감사를 무료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 권유로 시작했는데 제가 가진 재능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이 금전적 기부와는 또 다른 보람을 줍니다. 비영리 단체의 경우 대부분 살림이 넉넉하지 않아 저처럼 전문성이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그런 면에서 기부의 또 다른 방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기부를 하시는 데 있어 교수님만의 철학이 있습니까? 저는 방울방울 떨어지는 낙숫물이 섬돌에 구멍을 뚫는다는 말을 믿습니다. 큰 금액을 쾌척하시는 분들의 마음도 물론 높이 평가해야 하지만, 소액 기부자의 수를 늘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기부문화의 중심이 된다면, 아마 기부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 활성화 될 것입니다. 우리대학은 동문 수 대비 기부 인원이 아직 많지 않은데, 동문들이 소액 기부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캠페인을 실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전문지식으로 무장된 기부금 조성전문팀을 대학기구 내에 독립적으로 설치운영 하는 것도 하나의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입니다. 또한 기부를 받는 기관의 기부금회계를 투명하게 공시하는 것도 참여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Q 교수님의 기부금이 한양대에 어떤 변화를 만들기를 원하십니까? 기업은 짧은 기간에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만, 대학은 하루아침에 위상을 높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대학을 한 단계씩 도약시켜야 합니다. 지속적인 투자 즉, 선진연구시설과 유능한 교수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지요. 설립자이신 故 김연준 박사님은 철저하게 검약하시며 사랑을 실천하셨던 분입니다. 오직 한양대학을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뿐이셨죠. 설립자님의 뜻이 실현되는 데에 저의 작은 기부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신정식 경영학부 명예교수는 “나눔을 실천하면 우리사회의 품격이 성숙해지고 우리가정이 따뜻해지고 개인의 위상이 더 높아집니다. 기부를 통해 세상에 온 존재의 이유를 느끼는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말한다. Q 기부를 망설이는 다른 분들에게 독려의 말씀을 하신다면? 기부를 하는 데에 금액의 크기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액수가 크든 적든 기부하겠다는 용기 있는 결심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 시작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심했다면 망설이지 말고 바로 실천하시기를 권합니다. 나눔을 실천하면 우리사회의 품격이 성숙해지고 우리가정이 따뜻해지고 개인의 위상이 더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 시작이 주는 삶의 변화를 경험해 보실수 있습니다. 날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세상에 온 존재의 이유를 느끼는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기부문화는 글로벌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그 바탕이 정착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들의 작은 결심과 실천이 그 기부문화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동행한대 2017년 SPRING (제5호) 이북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