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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6 인터뷰 > 동문

제목

0퍼센트의 기적을 이루다 푸근함과 칼 같은 성격을 동시에 가진 그

삼성 라이온즈 류중일 감독

HYU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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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EpWO

내용

지난 11월 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두산의 뜨거웠던 한국시리즈 7차전은 흡사 한 편의 드라마였다. 1승3패로 밀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이 마지막 3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둔 순간 구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고, 사상 최초 3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역사도 탄생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으로 거둔 삼성의 ‘한국 1등’의 쾌거. 그 중심에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83·체육) 감독이 있었다.

 

에디터 양효선(진행), 최미현(글) | 사진 성균

 

   
▲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83·체육) 감독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대만 타이중에서 열릴 아시아시리즈 준비로 한창인 류 감독.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일정을 위해 매서운 눈빛으로 맹훈련 중이었다. 

 

“다음 주에 대만 출정을 앞두고 있어 다들 예민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와중에 제가 우승했답시고 멋지게 포즈 잡긴 좀 그러네요. 하지만 한양대 동문들을 만나는 귀한 자리이니만큼 당연히 시간을 내야죠.”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세라 조심스레 촬영을 마친 후, 차분히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에서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사상 첫 통합 3연패, 프로야구 최강팀, 0퍼센트의 기적. 모든 것이 그가 이끄는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연일 방송에서는 팀을 승리로 이끈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떠들어댔다. ‘형님 리더십’이라 불리는 그의 지도력. 류중일 감독은 그저 젊은 감독이기에 붙여주는 말이 아니겠느냐며 겸손히 말한다.


“예전 감독님들과는 달리 코치나 선수들과 나이 차가 크지 않아 ‘형님 같다’고 말하는 거 같아요. 제가 완벽하지 않으니 참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건 당연한 거고. 저만의 노하우라면 믿어주고 응원해주는거랄까요. 부진한 친구라도 잠재력을 믿어주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 다들 제 몫을 다해준 거라 생각합니다.” 선수들에 대한 그의 믿음은 한국시리즈에서 빛을 발했다. 1승 3패로 벼랑끝에 몰린 상황. 제아무리 강한 삼성이라지만 두산에 먼저 3승을 내줬을때 삼성의 우승 가능성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대 3패 후 결과를 뒤집은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팀이 흔들릴 때도 원칙을 깨지 않은 뚝심을 보여줬다.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경기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박한이 선수가 5차전에서 역전 결승타를 치더니 6차전에서는 3점 홈런으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삼성이 기적의 드라마를 이뤄낸 것이다. 이번경기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지만 특히 류중일 감독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감독이 되면서 가졌던 초심을 되새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를 하는 매 순간순간이 어찌 좋기만 할까요. 하지만 그때마다 화를 내기보다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다독이자고 결심했죠. 그런데 올해는 살짝 흔들렸어요. 짜증도 내고 화가 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거든요. 마인드 컨트롤의 실패죠, 실패. 잠자리에 누워서는 ‘아, 내가 왜 그랬지 초심을 잃으면 안 되는데’ 후회하고 고민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에게 고백했어요. ‘참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다. 초심을 잃을 뻔했는데 너희 덕분에 지킨 것 같다’ 이렇게요. 다들 이해해주더군요. 미안하죠, 정말.” 경기 도중 언성 한두 번 높이지 않기가 쉽지 않을 텐데 짜증 섞인 말투 한번에 초심을 떠올리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인간미 넘치는 형님답다.

 

집요하리만큼 강했던 야구에 대한 애착


류중일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 유격수로만 13시즌을 뛰었다. 1999년 은퇴 후 이듬해부터 삼성에서 코치로 활동, 2001년부터는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아 감독이 되기까지 11년간 두 개의 업무를 동시에 해왔다. 평생 유격수만 한 터라 알아야 할 것도 해내야 할 것도 많았던 시절. 틈만 나면 상대를 막론하고 질문을 던져대곤 했다. ‘잘 만하면 질문을 하고 끝났다 싶으면 또 물어보는 통에 밤늦도록 못 자는 날이 많았다’는 배터리 코치였던 현 KT 조범현 감독과의 일화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럴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지,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지’ 궁금한 것은 파고 또 파들어 갔다. 감독에게도 마찬가지. 선동렬 감독이 삼성을 이끌던 시절, 투수 교체 등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적어두었다가 왜 그랬는지를 알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의 이러한 집요함은 이후 그가 감독이 됐을 때 삼성 야구의 틀을 지키면서도 팀을 한층 더성장시킬 수 있는 기초가 됐다.


“선수 시절, 다저스 스프링 캠프를 갔었는데 수비 코치, 투수 코치 등을 초빙해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그 사람의 지도 방식이나 노하우를 메모해 제 스타일로 만들었죠. 코치 때도 무조건 선배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어요. 내 생각과 다르면 왜 그런지를 물어보고 확인했습니다. 많은 감독님을 모시면서 그분들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기도 했고. 그러면서 저만의 야구를 정리한 거죠. 덕분에 감독이 된 후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성장하듯이 찬찬히 다져진 땅, 현재 주어진 것을 완수한 후에야 다음단계로 넘어갔던 도전들. 이러한 작은 것들이 모여 지금의 그를 이끌었다. 누구도 평가 절하할 수 없는 3년 2010년 12월 30일, 그가 감독직을 제안받던 날이다. 류중일 감독은 당시를 두려움으로 기억한다. 항상 상위였던 게다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던 팀을 이어받았으니,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자리였다. 또 선동렬감독의 유산을 받은 ‘운 좋은 감독’이라 부르며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야구인들이 적지 않았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런 평가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심리적인 압박감이 오죽했을까.

 

   


4강 진출도 못 할까 봐 술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전력이 좋은 팀이라 하더라도 사령탑이 흔들리면 순식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듯이 전임 감독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그 위에 자신의 색을 조금씩 입혀나가기 시작했다.


선수와 코치로 삼성에서만 보낸 시간이 24년이었다. 그만큼 내부 사정과 선수 사정에 능통했다. 프로에 입문한 후로 오랜 세월 삼성의 야구를 지켜봤고 그 중심에 있었으니 그 내공이 어디 갈 리 없다. 게다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성격 탓에 선수들은 형님 섬기듯 그를 신임했다. 그렇게 류중일감독은 사령탑 첫 시즌부터 인상적인 지도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1년 첫해, 삼성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어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4승1패로 누르고 5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 하지만 선동렬 감독이 만들어놓은 전력으로 우승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좋은 선수가 많아 우승이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억울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극복할 수밖에. 2012년 삼성이 다시 정상에 올랐다. 모두가 류중일 감독을 주목했다. 선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러나 여전히 의구심을 내비치는 이들이 있었으니 심정이 오죽했을까.


“아이고, 마음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하지만 제가 넘어야 할 산인데 어떡해요. ‘노력하면 언젠가 알아주겠지’ 하고 억눌렀죠. 그래서 올해는 ‘생애 최고의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특히 더 욕심을 냈어요. 욕심내니까 성질도 부리게 되고 그랬죠 뭐. 승리했을 때, 와 정말 좋았죠. 물론 앞으로 부담감이 더 커지겠지만.”


감독이 된 후로 이어졌던 승리의 함성들. 사상 최초의 통합 3연패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한국팀 최초로 아시아시리즈까지 제패했다. 2012년 아시아시리즈와 올 초 WBC 외에는 모두 정상을 밟은 셈이다. 운도 따랐겠지만 선수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뒤 조직 문화를 변화시킨 그의 숨은 힘 덕분이다. 어느 누가 류중일 감독의 지휘력을 부정할 수 있으랴.

 

자신감과 자만심의 차이를 아는 것


“시행착오요? 지금껏 살면서 시행착오라고 할 만큼의 큰 도전을 한 적이 별로 없어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하면서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니까. 경북고등학교에 이어 한양대에 입학했고 그 후로 삼성에서만 있었으니. 후보 선수도 한 적이 없어요.”


굴곡 없이 살아온 삶이라 내세울 것이 딱히 없다고 말하는 류중일 감독. 하지만 그 곧았던 길이 쉽게 얻어졌을 리 없다. 아홉 살 어린 시절, 그가 던지는 볼에서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의 글러브와 배트 선물이 야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야구였지만 하나를 시작하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 탓에 늘 남보다 두 배로 노력하던 선수였다. 승부욕 또한 강해 각종 대회에서도 지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는 그. 대학시절에는 남들 다 하는 연애 한 번 해본 적도, 젊은 치기에 술 마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힘들 때도 지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한길만 바라봤다. 오로지 야구가 그의 전부였다. 절제와 노력,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그런데 이것이 그다지 큰
노력이나 도전은 아니었단다. 그 마인드부터 확실히 남다르다.

 

   


“대학 때 미팅이나 엠티 한 번 못 가보고, 아 정말 아쉬워요. 봄에는 합숙훈련하느라 바빴고 학기 중에는 학교 시합이 늘 있었으니. 또 여름방학에는 국가대표로 미국행, 겨울에는 대만이나 쿠바행 이렇게 4년 내내 운동만 했거든요. 학교에 대한 추억이라고 하면 캠퍼스를 뛰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워낙 넓기도 하고 또 오르막과 내리막이 엄청나잖아요. 아이고, 어찌나 힘들던지. 돌이켜보면 조금 놀아볼 걸 싶은데.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겠죠? 이거 참 아이러니하네.” 그리고 성공의 시작에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 있었다. “대학 시절 학교 야구팀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신경을 써주셨던 김종량 이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런 도움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요.”

 

 

   
▲ 2013 한국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두산에 7대3으로 승리한 삼성. 경기 종료 후 류중일감독에게 샴페인을 뿌리고 헹가래 치고 있는 삼성 선수들과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을 맞이하고 있는 류중일 감독. 감독상을 수상한 류중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삼성구단 제공)

 

철부지 시절부터 야구를 해온 그에게 야구는 그야말로 삶 전부다. 올해로 쉰 살이니 40년 인생을 오로지 공과 함께한 셈이다. 그런 그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자만심을 경계하라’. 지금까지 그가 굳건히 지켜온 인생관이다. 자신감은 갖되 자만심은 버리라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달라요. 자신감은 ‘최선을 다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고 자만심은 ‘너쯤이야’란 생각이죠. 자만심을 갖게 되면 일순간 무너질 수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선지 그는 자질이 부족해도 늘 노력하는 선수를 좋아한다. 열심히 하는 이들을 북돋아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언론이 늘상 말하는 푸근한 리더십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감독이 됐을 때 느낀 두려움은 이겨냈지만, 올해 성적이 좋았던 만큼 내년 역시 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터. 이미 아시아시리즈와 내년도 삼성 운영계획으로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특히 아시아시리즈 출전을 앞둔 지금, 부상 선수들이 많을 뿐 아니라 오승환, 장원삼 선수의 변수가 있어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지난해 아시아시리즈에서 대만 라미고 몽키스에게 자존심을 구긴 만큼 이번에는 꼭 명예 회복을 할 생각이다. 또 당시의 패배 때문에 붙지 못했던 일본 최강인 요미우리와의 경기도 노려볼 요량이다. 아시아 최강 자리를 두고 요미우리와 붙을 한국의 삼성. 그리고 뒤에서 따스한 카리스마로 경기를 진두지휘할 류중일 감독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 인터뷰는 아시아시리즈가 열리기 전인 11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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