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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7 인터뷰 > 동문

제목

어둠 속에서 빛을 이끌다

시각장애인합창단 지휘자 유인곤 동문(작곡.88)

김예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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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XU7R

내용

그것은 나의 역할이었다

 

막이 오르고, 단원들은 손을 맞잡아 서로를 의지한 채 무대에 오른다. 노래가 시작되자 피아노 반주를 놓칠 새라 부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 서로에게 귀를 기울인다. 단원들의 손은 덩달아 바빠진다. 점자 악보를 따라가려면 쉬지 않고 손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한 곡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눈물과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한 곡의 노래를 위해, 어둠 속에서 고군분투했을 이들의 노력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으리라. 쉽고 짧은 노래여도 되련만, 열 곡이 넘는 어려운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합창은 끝이 난다. 긴장으로 굳었던 단원들의 얼굴에 그제서야 미소가 번진다. 단원들에게 있어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은 빛나는 별이자, 눈부신 태양이다.

 

돌고 돌아서, 다시 지휘자의 길로


에파타 시각장애인 합창단의 구성원은 2명의 정안인(비시각장애인) 지휘자와 1명의 정안인 반주자, 그리고 22명의 시각장애인 단원들이다. 단원 중 두 명은 사람의 형체를 희미하게 가늠할 수 있는 약시이고, 그 외에는 모두 낮과 밤조차 구분이 불가능한 전맹인이다. 1988년 성당을 떠나는 신부님을 위해 시각장애인 신도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던 모임이 어엿한 합창단이 되었고, 어느 새 27년의 시간이 흘렀다. 유인곤 동문이 합창단원을 처음 만났던 때는, 우리 대학 작곡과 3학년이던 1990년이었다. 유 동문은 여느 대학생들처럼 방황하고 고민하는 젊은이였고, 음악을 사랑하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가끔 밥을 얻어 먹곤 했던 선배의 손에 이끌려 에파타 합창단을 찾아가게 되었고, 함께 하자는 제안에 결국 에파타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게 됐다. 유 동문은 작은 모임과 다를 바 없었던 합창단의 틀을 만들었고, 단원들을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 동문과 에파타 합창단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덜컥 에파타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지만, 당시의 유 동문은 국방의 의무를 앞둔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었다. 겨우 모양새를 갖춘 에파타 합창단을 뒤로 한 채, 유 동문은 군대로 떠났다. 유 동문은 그 때의 약속을 생생히 기억했다. "제가 떠날 때, 단원들을 붙잡고 기어이 약속을 받아냈어요. 제발 흩어지지 말고 함께 모여있어 달라고요. 제대하고 돌아오면 다시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함께 있어달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군대를 갔습니다." 그러나, 제대 후 유 동문은 에파타 합창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학교 생활을 해야 했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어여쁜 자녀들도 낳았다. 하지만, 십여 년이 흘러도 자꾸만 그 때의 약속이 떠올랐다. 제대 후 에파타 합창단으로 돌아와 함께 노래하겠다는 약속이 잊혀지지 않았다. 결국 15년이 지나서야, 유 동문은 다시 에파타로 돌아가 그 약속을 지키게 된다. 처음 약속을 했던 단원들 중 다섯 명이 여전히 유 동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으로 읽어, 마음으로 하는 노래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에파타 합창단은 여러 준비 단계를 거쳐야 한다. 노래를 정하면, 유 동문은 모든 파트를 직접 부르고 녹음한다. 녹음 파일은 악보계를 담당하는 시각장애인 단원에게 먼저 전달되어, 점자 악보로 만들어진다. 합창단 내에서도, 장애의 정도나 단원들의 성향에 따라 노래를 배우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글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TTS 프로그램을 통해 가사를 숙지하는 분들도 있고, 반드시 카세트테이프로 들어야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볼 수 있다면, 악보 한 장이면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부르는 일도 쉽지 않죠." 단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연습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연습 시간은 3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단원들은 상대적으로 체력과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동문은 연습 시간만큼은 악독한 지휘자로 변한다. "언제나 단원들에게 화내고 잔소리를 합니다. 칭찬할 때보다 혼낼 때가 더 많아요. 그러면 단원들도 짜증내고, 투정부리죠.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겨우 연습하고, 노래하면서 지금까지 왔네요."

 

"매 순간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가장 힘든 순간을 꼽을 수가 없어요.제가 힘든 것이 아니라 단원들이 언제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다들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노래를 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는 것도 이 분들은 생계를 잠시 내려놓고 오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연습 장소로 오는 모든 과정까지도 모두 위험 투성이죠. 이 분들은 인생이, 삶이 모험인 분들이에요." 그래도 단원들은 노래를 멈출 수 없고, 유 동문은 지휘를 멈출 수가 없다. 그들의 부족한 노래 한 곡에도 눈물 흘리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때 마다, 그들은 노래하는 의미와 보람을 얻는다. 그것은 동정이나 연민의 눈물이 아니다. 음악적 아름다움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과 노래를 통해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노래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두려워하지 않을 것


손을 높이 치켜 들고, 허공을 힘차게 가르는 지휘자를 꿈꿨다. 한 때는 그것이 유 동문의 꿈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는 작곡가가 되기를, 그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한껏 들어 올린 손은 이내 조심스레 내려오고 만다. 그리고 조용히 단원들 옆에 서서 함께 노래를 한다. 그것이 유 동문이 하는 지휘다. 지금 유 동문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 줄 새로운 지휘자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 그는 새로운 지휘자를 맞이 할 준비가 돼있다. "단원들의 부족함을 안아줄 새로운 지휘자가 나타나 저를 어서 밀어내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합창단을 위한 새로운 지원자가 끊임없이 나타나, 새로운 에파타의 단원이 된다면 언제나 기꺼이 그들에게 저의 자리를 내어놓고 싶습니다."

 

   

 

끝으로 유 동문은 후배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희망했다. "제가 대단한 성공을 했다거나,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아니기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참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인생을 산 선배로서, 살아보니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이나 결혼, 친구 등 인생의 중요한 일들과 마주칠 때, 나에게 맞는 역할을 고민하게 되죠. 그럴 때마다 후배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길 바래요. 때로는 원치 않는 역할을 맡아야 하거나, 고되고 힘든 일들에 마주칠 때도 있겠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인생의 진정한 맛과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 역할을 한다면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마주친다 해도, 나의 역할과 자리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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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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