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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08 인터뷰 > 학생 >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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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부의 나라 찾은 `애국가의 후예` 미구엘 익태 안 기옌

"한국과 스페인 잇는 교두보 역할 하고파"

박용일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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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LBlZ

내용
   
 

 지난 달, 각종 일간지에는 애국가 작곡자, 안익태 선생의 외손자 미구엘 익태 안 기옌(Miguel Eaktai Ahn Guillen·25)군이 본교 국제대학원에 입학한다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본교 외국인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 지난 달 최종 선발된 미구엘군은 오는 3월부터 2년 동안 본교 국제학대학원 한국학과에서 석사학위 과정을 이수할 예정이다. 애국가를 핸드폰 벨소리로 사용하며, 자신이 한국에 온 이유를 묻는 질문에 뿌리를 찾아 왔다고 답하는 미구엘. 할아버지의 조국과 자신의 조국 모두 소중하기에, 두 나라를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그를 만나보았다.

 

 - 입국한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 최근 어떻게 생활하고 있나?

 

 스페인에서 생필품을 가지고 오지 않아 그것들을 사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그 외에는 2000년 한국어 강습을 와서 사귄 친구들을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외국생활을 많이 경험해 본 탓인지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 이번이 첫 방한이 아닌 것으로 안다. 이번 방문 후 한국이 달라졌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가?

 

   
 

 1980년, 서너 살 즈음 할머니,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그 당시 압구정동 아파트에 살았다. 어머니가 방송국에서 일을 하시게 되어 왔다. 그 당시 만나서 놀던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한다. 그 당시 어머니께 백 원만 달라고 조르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웃음) 그 때만 하더라도 한국말을 꽤 했다. 그 이후에 3번 정도 한국을 더 방문했는데, 2000년 여름에 경희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러 왔었고, 그 해 10월 스페인 건축의 거장 가우디 작품 전시회와 관련해서 할머니와 같이 왔었다. 할머니는 2001년에 올림픽공원에 할아버지 동상이 세워진다고 해서 왔었지만, 나는 그때 오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이다. 한국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달라졌다는 느낌보다는 언제나 포근한 느낌이 든다.

 

 - 스페인에서 변호사의 신분인 것으로 알려졌다. 안정된 직장을 두고 한국까지 공부하러 온 이유가 있다면.

 

 내가 살던 마요르카에는 많은 변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수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사회적으로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스페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경쟁이 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오전에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했고, 오후에는 대학에서 강사로 일을 했다. 이러한 스페인 생활을 버리고 온 이유는 한국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싶어서이다. 나의 꿈은 국제 변호사가 되어 한국과 스페인을 이어주는 교두보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역할이라고 본다.

 

 - 마요르카에는 안익태 박물관 건립이 추진중이고 '안익태 거리'가 있다고 들었다. 현지에서 안익태 선생을 보는 시각은 어떤가?

 

 스페인에서는 안익태 선생님을 MAESTRO AHN이라고 부른다. 마요르카에 안익태 박물관은 아직은 없다. 현재 한국정부가 이 문제와 관련해 마요르카 지방정부와 협상을 진행중이다. 마요르카 지방에서도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워낙 좋기 때문에 박물관 건립에 있어서 적극적이다. 마요르카에서 할아버지의 명성은 대단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우선 마요르카에 그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동양인이 없었기 때문에 외모적으로 우선 눈에 띄셨다. 또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셨고, 마요르카에서 교향악단까지 만드셨기 때문에 마요르카에서 할아버지의 명성은 대단하다. 할아버지의 여권번호는 001번이었다. 한국정부에서 발급해준 첫 번째 여권이다. 이것도 자랑스러운 일이다.(웃음) 할아버지는 스페인에서도 집을 살 여유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첫 번째 집을 사고 싶다고 스페인에서 집을 사시지 않았다. 그만큼 한국을 사랑하셨다.


 - 안익태 선생의 후손으로서 한국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 역시 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한다. 한국사람들은 할아버지에 대해 존경심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만, 그에 대해 너무나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이 부분이 항상 아쉽다. 할아버지는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애국자였다고 할머니로부터 들었다. 조만간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자서전을 한국에서 출판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책을 통해서라도 할아버지의 애국심, 그 세세한 부분까지도 사람들이 많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 한국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할 것이라고 들었다. 학업 후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국제관계학 전공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국제관계학도 전공하여 국제 변호사로 한국과 스페인을 위해 일하고 싶다. 공부를 하다가도 괜찮은 조건의 직업이나 제안이 들어온다면 한국에서 일할 생각도 가지고 있다. 혹시 한국에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UN이나 국제단체 일원으로서 한국과 스페인, 더 넓게는 동아시아와 남아메리카를 잇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통역 : 이민호, 사회대 정외과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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