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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2/22 인터뷰 > 교수 > 매거진

제목

"건축은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담는 그릇"

시청 앞 광장 복원 주도하는 공과대학 건축공학부 서 현 교수

김자영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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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iQAS

내용

 사소한 짧은 글 하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다는 상상을 해 보았는가? 하루에도 수 백, 수 천의 기사들이 넘쳐나는 신문 속에서 내 삶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야기할 글을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중요한 것은 훌륭한 글이 아니라 변화와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에 있다. 고교 시절, 신문에 실린 '현대 건축의 반항아들'이란 기사를 읽고서 건축학자로서의 삶을 결심했던 한 청년은 지금 서울에 사라진 시민의 '광장'을 복원하는 꿈을 품고 시청 앞에 섰다. 서울캠퍼스 건축공학부 서현 교수의 이야기이다.

 

 광장에 '자동차' 아닌 '사람'이 걷게 하라

 

   
 

 서울시는 지난 달 28일 '시청 앞 광장 설계 공모전' 당선작을 발표했다. 당선 주인공은 인터시티 건축사 사무소와 함께 기획안을 출품한 서현 교수. 지난해 붉은 악마들이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던 공간, 겨울 내내 촛불시위로 달궈졌던 그 광장이 이제 '빛의 광장'으로 다시 태어나려고 한다. 서 교수가 제안한 빛, 유리, 모니터로 구성된 '빛의 광장' 건립안은 참신한 아이디어로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시각 뒤에는 부정적 시각도 존재하기 마련인 법. 광장 조성에 반대하는 시각은 대체로 두 가지 입장에 서 있다. 광장 건립 자체에 대한 반대와, 서 교수의 '빛의 광장' 설계안에 대한 반대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서 교수의 입장은 단호하고도 명쾌하다.

 

 "저는 광장 조성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광장 조성 후 교통 혼잡을 우려합니다. 하지만 실제 교통광장은 구조상 상습적인 교통 혼잡과 정체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기형적 지역입니다. 이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이 사회가 가진 공정성의 문제입니다. 자동차 소유 유무를 떠나 교통광장은 모든 시민의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기존의 교통광장은 보행인을 무시한 차량 중심의 광장이었습니다. 횡단보도가 하나도 없는 이곳에서 보행자들은 길을 건너기 위해 미로 같은 지하도를 이용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이곳을 '사람'들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서 교수는 광장 복원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을 세상이 공평해지고 있다는 증거로 들고 싶다고 덧붙인다. 공평한 세상을 꿈꾸는 그의 의지는 '빛의 광장' 설계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시청 앞 광장은 그 단어 그대로 시청을 전제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사회를 짓눌렀던 권위와 패권의 정치가 쇠퇴하면서 성장한 시민사회의 힘은 이제 관료제의 상징에 시민의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선 전화와 초고속통신망 등 첨단 테크놀로지의 보급은 관료제에 의존하지 않는 시민사회의 힘을 자극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2년 월드컵을 통해 드러난 '우리는 하나다'라는 공동체의식이 시민사회 형성을 더욱 가속화시켰구요. 단군이래 처음으로 한국을 세계 중심에 세운 근거가 바로 이 두 가지 테크놀로지와 공동체의식입니다. 이러한 현대 한국의 시민사회를 묘사할 가장 큰 두 가지 특징을 공간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빛의 광장'입니다."

 

 도시는 역사가 축적된 공간

 

 서 교수의 '빛의 광장' 기획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새롭게 들어설 광장이 주위에 위치한 전통 사적과 역사적 유산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근거를 든다. 사적 제124호 지정된 덕수궁,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조성되었던 원구단 등 각종 전통 사적지 곁에 조성될 현대식 '빛의 광장'은 결코 조화롭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 그러나 지금 광장을 점유하고 있는 수많은 차량의 물결은 과연 얼마나 전통에 부응하고 있단 말인가?

 

   
 

 "이 공간은 1926년 지금의 시청 건물 준공, 1974년 지하철 1호선 개통과 함께 한 태평로의 확장과 대한문 후퇴 이전, 1976년 플라자호텔 준공, 1999년 원구단공원 조성 등의 사건에 의해 이루어져 왔습니다. 이렇듯 시청 앞 광장은 시대가 흐르는 동안 계속해서 그 시대의 모습들이 차곡차곡 쌓여왔습니다. 2003년의 모습이 여기에 새겨진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건물은 한 순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만, 도시는 각 시대의 역사가 쌓여 형성됩니다. 그것이 바로 건강한 도시의 모습입니다."

 

 '모든 시대의 건축가들은 그 시대의 모습을 파리시에 남겨 둬야 할 책임을 지닌다'라는 자크 시라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서 교수는 건축이란 그 시대의 문화와 정신을 담는 그릇이라 역설한다. 따라서 건축은 기술만이 아닌 예술과 철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현재 우리 시대의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는 건축물이 무엇이냐 질문했더니 서 교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포스코 센터'를 소개한다.

 

 "제가 항상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정신이 건축을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코 센터는 의미 있는 건축물입니다. 우선 투명성이라는 기업의 이상이 그대로 건물에 녹아있습니다. 투명성을 강조를 위해 건물 외벽은 유리로 구성되고, 로비는 시민들에게 개방됩니다. 이제 우리 사회에도 이만큼의 투명성을 구현하는 기업이 나타난 것입니다. 물론 기업의 자신감 없이는 불가능하겠죠. 투명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복잡한 기술도 요구됩니다. 포스코 센터는 그 한계를 넘어 우리에게 기술적 자신감도 심어주었습니다. 기업의 자신감과 기술의 자신감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관찰과 상상력으로 미래를 열자

 

   
 

 지금까지 우리나라 건축물의 아름다움이란 예쁜 기와와 처마선만을 주목하는 과거 지향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서현 교수는 포스코 센터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미래지향적 건축물들을 돌아볼 것을 권고한다. 서울의 구심점이 되는 남산타워를 비롯해 병풍을 닮은 힐튼호텔까지 우리 주변에도 훌륭한 건물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 같은 서 교수의 의지는 1998년 그의 저서『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전문가 1백 명이 선정한 90년대의 책, 문화관광부 추천도서 등 화려한 수사를 얻은 이 책은 건축의 대중화를 이끈 '바이블'과도 같은 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일단 이 책은 건축이 감상의 대상이라는 전제를 가집니다. 어떤 사람의 특수한 감수성은 특정한 영역에만 지정되어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어떤 그릇을 가져다 주어도 가득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 열린 것이어야 합니다. 처음 미술품을 보고서 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음악을 듣고도 건축물을 보고도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기본적인 감수성과 거기에 많은 건물들을 본 경험이 첨부된다면, 건물을 감상하고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회색 콘크리트로 규격화 된 건물들로 꽉 채워진 도시에서 의미를 지닌 건축물을 찾아낸다는 것은 어린 시절 가슴 떨리던 보물찾기를 연상케 한다. 지금 그 보물찾기 놀이를 서 교수는 은근히 제안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이와 같을지 모른다. 우리는 모두 무수한 의미들을 찾기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지는 아닌지. 그런 의미에서일까? 스승으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잠언을 부탁했더니 서 교수는 삶의 가장 중요한 힘으로 '관찰과 상상력'을 꼽는다.

 

 "우선 적극적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대상으로 인해 내가 받는 감성을 고민하고 나아가 '나라면 어떻게 하겠다'라는 상상력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찰과 상상력은 인간의 존재 의무인 동시에 적극적인 생존의지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도 항상 변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양인 모두가 삶을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상상력을 키워 이 세상의 주역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학력 및 약력

   
 
 서현 교수는 1986년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동 대학원 건축학과 공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2년 미국 콜럼비아대학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다시 받았다. 대한건축학회, 미국건축가협회(AIA) 회원으로 활동 중이며 대표 저서로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등 다수가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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