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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3/08 인터뷰 > 교수 > 매거진

제목

`유한한 인간의 무한한 창작`

전통공예 대중화 앞장서는 디자인대학 금속디자인과 추원교 교수

박용일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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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jQAS

내용

 '이제 보자기는 나이가 든 사람들에게조차 아련한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대대로 살아온 척박한 고향을 떠나면서 눈물로 멨던 보자기, 옷가지를 쌌던 보자기는 한번도 생각하지 않는다. 어려운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예쁜 보자기는 좋은 데에 쓰려고 장농 밑에 곱게 간직하던 마음을 잊고 산 것이다.' - 저서 우리의 공예문화 中

 

 국내 '금속공예 박사 1호'로 불리며 한국공예학회장직 맡고 있는 디자인대 추원교 교수가 오늘, 우리에게 전통공예를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많은 학자들에 의해 공예연구는 미술사적 관점에서 논의되었고 이제 거의 체계화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민족적 정체성이 담긴 공예품에 대한 문화적 관점의 평가는 소홀하였다는 것이 추 교수의 생각이다.


 한국의 미는 추억의 너머에

 

   
 

 근대화 50년, 다른 나라에 비해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변화는 엄청났다. 50년 동안의 변화는 우리에게 지난 5백년 동안 간직하던 모습을 짐작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제 전통가옥을 보기 위해서는 한옥마을이나 민속촌을 가야한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사용하셨던 책과 물건들은 불편하다, 오래되었다는 말과 함께 버려졌고 어머니, 할머니께서 사용하시던 장신구와 생활용품은 필요없다, 촌스럽다는 말과 함께 폐기되었다. 이제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한국의 미를 찾는 것은 추억의 저편에만 있다.

 

 "요즘은 전통공예품을 너무 모르고 사용합니다. TV 사극을 보면 여인네들이 비녀를 꼽고 나옵니다. 몇 년 전 어떤 드라마에서 대원군의 부인이 비녀를 꼽고 나왔는데, 버섯 형태의 비녀를 꼽고 나왔습니다. 그건 보통 주모나 남정네를 기다리는 여인들이 사용하는 건데 말이죠. 이것은 모르기도 모를뿐더러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생각해 봐도 조상들 물건을 가지고 있는 집이 많지 않습니다. 돌아가시면 그 분이 보시던 책 하나, 젓가락 한 짝도 후손들이 제대로 보존하지 않습니다. 어떤 설명보다 그분이 쓰셨던 물건들이 피붙이로서의 유대감을 더 느낄 수 있게 하는데도 말이죠."

 

   
 

 '금속공예박사 1호'로 불리는 추 교수의 관심영역이 어느 날 갑자기 금속공예에서 전통공예로 변한 것은 아니다. 작가로서의 창작도구가 협의의 금속공예라면, 그가 품은 지적 호기심의 대상은 광의의 전통공예이다. 생활 감정이 듬뿍 담겨있는 미술이자 민족적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술이 바로 공예라고 주장하는 추원교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민속공예품인증 심사위원,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심사위원 등 지금까지 그가 두루 역임한 직책들만을 보더라도 민속공예에 대한 그의 애착은 쉽게 읽을 수 있다.


 우리시대 공예를 말한다

 

 '공예'라는 말은 과거부터 생활쓰임새 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사용된 용어다. 대량생산이 일반화되기 전, 수공품들은 사용함에 있어 이왕이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인식아래 정성껏 제작되었다. 과거 공예라는 말은 쓰임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을 추가하는 것, 즉 디자인에 앞서 쓸모를 강조한 말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산업화와 함께 공예의 의미에도 변화가 생겼다. 공예 수공품의 대량생산은 공예의 본래 정의에 '아름다움을 강조한 디자인'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추가시켰다. 공예의 본래적 의미인 쓰임보다 강조되는 아름다움에 대해 작가로서의 그의 입장은 분명했다.

 

 "오브제라고 불리는 '보는 공예'는 이제 시대적인 흐름입니다. 이것을 굳이 좋다, 나쁘다 라고 평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공예의 특징이었던 쓰임과 아름다움은 대량생산과 디자인이라는 단어로 해결되었고 이제 공예는 예술 표현방식의 하나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바라만 보는 공예라고 해서 공예가 아니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이것은 근대 미학이론의 발전과 함께 공예의 범위가 외연적으로 확대된 결과입니다. 쉽게 말해,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전통적 의미의 공예라면 기계적 제작 방식에서 강조되는 것은 디자인이라는 확대된 의미의 공예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공예개념의 외연적 확대와 함께 자신의 작품세계가 금속이라는 소재에 제한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금속 공예작가이기에 작품 제작에 있어 모든 생각을 금속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다는 것. 두 차례의 개인전시회와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그의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아름다운 돌, 뼈, 화석, 대리석, 유리 등 그의 소재는 무궁무진하기만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구분 짓는 것을 좋아하죠. 금속공예가, 도예가, 서양화가, 동양화가처럼 말입니다. 앞에 붙은 단어들은 예술가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주된 방식일 뿐입니다. 서양화가가 먹을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다고 해서 그가 잘못되거나, 아마추어적이지 않습니다. 금속, 섬유, 먹, 물감 등은 예술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저는 제 작품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소재를 고민하고, 그것을 사용하죠. 이것은 예술가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작·업·일·상' 유한한 인간의 무한한 창작

 

 '많은 작품을 하되 다작이 중요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작업을 하되 서둘러서 마무리하지 말고, 기능과 아름다움을 생각하되 너무 의식하거나 과대한 수식을 피하자. 작품은 제작하고 싶은 것만을 제작하되 거기에는 거짓 없는 순수함을 가득 채우자. 또한 작품이 금전이 된다거나 작품으로 가져올 어떤 허망도 갖지 말고 작품에만 최선을 다하여 훗날 본인이 언제 보더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들자. 작품의 내면에는 본인의 서정과 갈망들을 표현하되, 이 땅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작품 하나, 하나가 생명보다 오래 가고, 소중한데, 한 순간의 자만과 허위로 그 공을 헛되게 말라.'

 

   
 

 추 교수가 대학원에 들어오는 모든 학생들에게 당부하며 전하는 글이다. 자신이 작품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학생들에게 전해주기 위함이다. 천 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만들었기에 그에게는 수적으로도 많지만 어느 작품도 애착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공예만으로 먹고 살 수 없어 교수가 됐다는 그는 이제 대중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가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다행입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우리 공예에 대한 관심이 아직 남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도 작품 활동은 계속하겠지만, 그것과 함께 책이나 여러 방식을 통해 우리 공예문화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기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몇 년을 바라본 계획이 아니라 평생을 걸쳐 해 나갈 겁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학력 및 약력

   
 
 추원교 교수는 1973년 한양대 미대를 졸업하고 1976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양여자대학, 조선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하며 1990년 본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회의 개인작품전을 비롯해 다수의 초대전과 단체전에 참가했다. 디자인 대전 심사위원, 한국기능경기대회 심사장, 한국디자인협의회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공예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 해에는 장애인기능경기대회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국내 논문 14편을 비롯해 대표 저서로 『귀금속 공예』와 『우리의 공예문화』가 있다.


사진 : 이재룡 학생기자 ikikata@i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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