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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9 인터뷰 > 교수 > 매거진

제목

`지휘자는 무대위의 요리사`

한양의 맥박을 찾아서 42

이세형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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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j67R

내용

 

   

 

 

 조화가 중요한 오케스트라 지휘는 요리와 비슷

 "한국서 가장 깨끗한 음 '수원사운드' 만들겠다"

 

 오는 7월 마지막 연주회를 끝으로 뉴욕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하 뉴욕필)의 음악감독겸 상임지휘자의 자리를 물러나는 쿠르트 마주어(Kurt Masuer)가 지난 91년 세계적인 뉴욕필의 상임지휘를 맡게 됐을 때 뉴욕 시민들은 이 독일 태생의 지휘자가 자유분방한 뉴요커들의 음악적 취향을 과연 충족시켜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

 

 베를린과 빈 필하모닉과 함께 세계 3대 오케스트라로 손꼽히는 뉴욕필을 10년 넘게 이끌어오면서 간혹 비평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마주어가 뉴욕필의 연주력을 크게 향상시켰다는데에는 큰 이견이 없는 듯 하다. 이제 그는 뉴욕필을 거쳐간 구스타프 말러, 브루노 발터, 레너드 번스타인, 주빈 메타 등 전임 지휘자들처럼 이미 '위대한 지휘자들'의 반열에 올랐다.

 

 한국서 가장 깨끗한 음, '수원 사운드' 만든다

 

   
 

 지난 해 2월 음대 관현악과 박은성 교수가 '스타 지휘자' 금난새 씨의 뒤를 이어 수원시립교향악단(이하 수원시향)의 상임지휘를 맡게 됐을 때 수원시민들은 마주어가 뉴욕필을 맡았을 때처럼 큰 관심을 가졌을까.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는 인구 1백만명의 지방 도시 오케스트라를 160년 전통을 자랑하는 뉴욕필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지만 시민들의 관심과는 별개로 박 교수가 수원시향에 가지는 애정은 각별하다.

 

 "사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수원시향 측의 상임지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단원들을 비롯한 수원시향 관계자들이 거의 협박조(?)로 강권하길래 그 진심에 감동해 맡게 됐습니다. 부임한 뒤 제가 단원들에게 그랬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깨끗한 음, 이름하여 '수원 사운드'를 만들어보자고 말입니다. 단원들이 잘 따라주고 있고 저 또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가 상임지휘자로 부임한 후 수원시향은 예전에 비해 연주력이 크게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의 깨끗함에 있어서는 수원시향이 국내 최고라고 자부한다는 박 교수는 2년후 쯤이면 '수원 사운드'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 오케스트라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오케스트라로 발돋음하려면 연주력 등 음악적인 요소는 물론 재정, 홍보, 전통 등 모든 제반 사항들이 충족되어야한다. 무엇보다도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고, 삶 속에서 즐길 수 있는 국민들의 문화적 수준이야말로 오케스트라가 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이다. 박 교수는 이를 '민도(民度)'라고 표현했다.

 

 오케스트라의 수준은 곧 국민의 문화적 수준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유럽에서 가진 한 연주회를 떠올렸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지휘를 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박 교수는 어서 빨리 공연을 정리하고 단원들과 실컷 술잔을 기울였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하지만 박 교수의 뒷풀이는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객석의 커튼콜이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커튼콜은 무려 10여분이나 계속됐다. 지휘자가 무대로 몇 번이나 불려나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지휘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관객들에 대한 원망스러움이 앞섰습니다. 대충 끝내지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객석에서 감동적인 표정으로 박수를 치는 관객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감동하고 말았지요. 그때 절실히 느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깊이있게 이해하고, 연주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관객들의 애정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나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3대 교향악단중의 하나인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를 맡아 지휘자로서 독보적인 경력을 쌓은 박 교수가 지방 교향악단에 불과(?)한 수원시향을 맡자 주변에서 의외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박 교수는 문화적 환경이 열악한 지방 도시의 현실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음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지역 문화발전에 교향악단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부임하지마자 골목길이나 종합병원 등 시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연주자들을 이끌고 찾아갔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정기연주회를 열면 이제 빈 객석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박 교수는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영하는 교향악단이니만큼 시민들이 좀 더 양질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폭풍우가 치고, 칠흑같이 어두웠던' 유학시절

 

 69년 음대를 졸업하자마자 국립 교향악단의 수석 단원으로 입단한 박 교수의 음악인생은 그때까지만해도 거칠게 없어보였다. 지휘자로서의 삶도 전도유망했다. 하지만 자신감 하나만을 가지고 한국인 최초로 입학한 비엔나 국립음악원에서의 유학시절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끝이 없는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데 폭풍우가 치고, 칠흑같은 어둠으로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정도로 힘들고 어려웠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오트마르 수위트너(Otmar Suitner) 교수에게 사사한 박 교수는 독일어 과목 하나 인정받은 것을 제외하고 음대의 모든 교과과정을 다시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나이도 어렸고, 솔직히 한국에서 주목을 많이 받았던 터라 지나치게 자신만만했었습니다. 게다가 수위트너 교수님 같은 대가가 저를 제자로 삼으셨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겠죠.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는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도 힘듭니다. 오죽하면 졸업을 하는데도 기쁜 감정은 안 느껴지고 눈물만 나더군요."

 

 이렇게 어려운 시절을 같이 보낸 박 교수의 동료들은 현재 대부분이 유럽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음악감독이나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박 교수 역시 유럽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수위트너 교수도 유럽에서 활동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러나 그는 스승의 권유를 뿌리치고 귀국했다. 박 교수 개인의 음악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조화가 중요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는 '요리사'

 

 박 교수는 처음부터 지휘를 하더라도 한국에서 해야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비록 자신은 당시의 낙후된 교육여건 때문에 외국에서 공부했지만 후배들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믿었고 그 역할을 자임했다. 지금의 국내 여건은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는 박 교수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이 지방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다수 활약하고 있다며 정말 근사하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순수 'Made in Korea' 지휘자는 드물다며 아직도 갈길이 멀다고 말한다. 일본만 해도 순수 국내파 지휘자들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 비추어본다면 더더욱 그렇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번스타인(Bernstein)이나 카랴얀(Carajan)이 무아지경에 빠진 듯 머리칼을 휘날리며 두팔을 내젓는 모습에서 누구나 감히 범접하기 힘든 카리스마를 느끼게 된다. 저마다 음악적 자존심이 강한 1백여명에 이르는 단원들을 이끌며 같은 곡을 연주하더라도 늘 새로운 느낌을 창조해야하는 지휘자에게 카리스마는 어쩌면 가장 필요한 요소인지 모른다. 매서운 눈매에서 '홀로 걷는' 사람만의 카리스마가 묻어나는 박 교수에게 지휘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할까요. 제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대단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김치찌개, 라면, 게장 등이 저의 주종목이지요.(웃음) 오스트리아에서 공부할 땐 유럽에서 가장 김치를 맛있게 만드는 사람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오케스트라는 악기를 가지고 음악을 재료로 해서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냅니다. 요리에서 양념의 양, 불의 온도, 재료의 크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처럼 오케스트라도 연주자들간의 조화가 무엇보다 중요하지요. 지휘자는 말하자면 요리사인 셈입니다."

 

 지휘자가 된 후 열흘에 한번 꼴로 지휘를 했다는 박 교수는 1주일에 4개의 다른 교향악단을 가지고 6번 지휘를 한적도 있다며 아마도 1주일 지휘횟수로는 세계기록일 것이라고 웃어 넘겼다. 박 교수의 수원시향은 올해 창단 20주년을 맞아 정기연주회 12회, 특별공연 8회 등 20여회의 공연일정이 잡혀 있다. 게다가 KBS 교향악단의 객원지휘까지 맡고 있는 박 교수는 12월에 있을 수원시향의 헨델의 '메시아' 전곡 연주회까지 지휘봉을 손에서 놓을 날이 없을 듯 하다.

 

 이세형 학생기자 sehyung@ihanyang.ac.kr


 박은성 교수 학력 및 경력

 

   
 

 박은성 교수는 1969년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졸업하고 1981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음악원에서 지휘로 디플롬(Diplom)을 받았다. 77년 잘츠부르크 썸머아카데미 파이널콘서트 지휘자, 81년 국립교향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지휘, 84년 서울시립청소년교향악단 상임지휘자, 92년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아틀랜타 올림픽(1996년) 문화축전, 카네기홀 100주년 기념 초청공연 등 30여편의 오페라와 발레 작품을 지휘했다. 2000년부터 KBS 교향악단 수석 객원지휘자, 2001년부터 수원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지휘자협회 회장, 국립오페라단 이사, 국제문화교류회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93년부터 음대 관현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박 교수는 대통령표창과 한국음악상(지휘부분)을 수상했으며 2001학년도 연구업적 최우수교수상(2002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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