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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9 인터뷰 >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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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W 꿈꾸는 사람들]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세상을 바꾸다

김미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사단법인 장애인법연구회 기획이사(식품영양학 88)

사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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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HSet

내용
올해 6월, 김미연 동문이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Committee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이하 CRPD) 위원으로 선출됐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한국 여성 최초의 진출인 데다 NGO 출신이 드물어 국내외적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지난 1994년 그는 불모지와 다름없었던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애 여성 인권운동을 시작했고, 2006년에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 여성을 위한 조항을 집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CRPD 위원으로서 그 협약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국가별 보고서를 심사하고 권고하는 위치에 올랐다.
글. 이슬비 사진. 안홍범
 
▲ 김미연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사단법인 장애인법연구회 기획이사(식품영양학 88)


감히 세상이 나를 거부해!


졸업한 지 30년 만에 모교를 찾은 김미연 위원. 올해 한양대에 들어온 딸의 입학식에 참석한 것을 빼면 졸업 후 첫 방문이다.
“캠퍼스가 정말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다닐 때는 가정대학(현 생활과학대학)에만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건물을 거의 벗어나지 못하고 지냈죠. 당시 제 소원이 중앙도서관에 앉아서 공부해보는 것이었는데 아쉽게도 결국 못 이루고 졸업했어요. 그땐 장애인이 접근하기 굉장히 어려웠는데, 지금은 많이 달라졌죠?”
오랜만에 찾은 모교의 풍경이 어리둥절한 듯 김미연 위원은 학교의 변화부터 묻는다.
그는 생후 11개월에 소아마비를 앓고 평생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를 얻었다.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장애인을 위한 인권운동을 시작했지만, 정작 원래의 꿈은 훌륭한 식품영양사가 되는 것이었다.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꿈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졸업 후 여러 군데 이력서를 냈어요. 그런데 서류 심사는 다 통과하는데 이상하게 면접에서 줄줄이 떨어지더라고요.”
취업이 어렵지 않던 시절이라 동기들 대부분 취직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세상의 벽을 느꼈다고 그는 고백한다.
“불편한 것들이야 많았지만 차별을 느끼며 살진 않았는데 처음으로 세상이 나를 거부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감히 세상이 나를 거부해?’였어요. 누군가 당시 이런 제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비웃었겠지만, 어쩌면 그 마음이 지금의 저를 여기까지 이끈 출발점이었을 거예요.”

 

식품영양사의 꿈 접고 여성 장애인 인권운동의 길로


김미연 위원은 오랜 꿈이었던 식품영양사의 꿈을 접고 스스로 장애인 인권운동 단체를 찾아가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즈음 장애인 관련 잡지사의 무보수 객원기자로도 활동하며 장애인 여성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열악한 환경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10년, 20년 동안 바깥세상을 구경해보지 못한 이들이 태반이었다.
“저도 하루 종일 물 한잔 마시지 못한 채 고3 시절을 견딜 만큼 장애인으로서 불편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들의 삶과는 비교하기 힘들었어요. 그들의 삶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받아들이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그렇게 여성 장애인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여성 장애인의 권리를 대변하는 사람도, 관련 커뮤니티도 전무했다.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활동가가 없으니 여성 장애인을 위한 정책은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1994년 12월, 이런 문제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모여 김 위원을 포함한 4명이 여성 장애인 인권운동 모임을 만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애인 인권운동의 시작이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 여성 조항을 넣어라


이후 김미연 위원은 장애인의 권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여성문화공동체를 설립하고 국내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을 이끌었다. 1990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장애인을 보호하는 법이라곤 ‘심신장애자법’ 하나밖에 없었지만, 장애인 권리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현재는 장애 관련법이 14개나 만들어졌다. 김 위원의 활동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국제적 활동도 활발했는데 특히 2006년 채택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장애 여성을 위한 조항을 집어넣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한국정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얻은 성과다. 국제사회의 내로라하는 장애 여성 인권운동의 리더들을 이끌고 한목소리를 냈다.
“2002년 유엔에서 장애인권리협약 초안을 발표했는데 장애인 여성 관련 조항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당시 한국은 이미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장애인 아동과 여성을 별도의 챕터로 다루고 있었어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안에 장애 여성이 보호받을 수 있는 조항이 필요하다는 이슈를 내놓은 것이 바로 우리나라 여성 장애인들이에요.”
국가별 정부의 지지를 받아야 하는 일이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장애인 정책은 대부분 예산이 드는 일인 데다 여성 장애인에게 맞는 정책을 별도로 세우려면 더 많은 예산이 필요했기에 각 나라의 정부로서는 해당 이슈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상당한 우여곡절 끝에 여성과 아동을 다루는 별도의 조항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 넣었고, 이는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 됐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10개에 달하는 유엔 인권협약 중 유일하게 장애 여성 관련 조항과 젠더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국가에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4년마다 유엔에 보고서를 내야 합니다. 앞으로 저는 CRPD 위원으로서 이 보고서를 심의하고 이행을 권고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18명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는 CRPD는 장애인권리협약에 가입한 177개 당사국이 4년마다 제출하는 각국의 보고서를 심사해 협약의 이행 여부를 평가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99개국의 지지를 얻어 당선이 확정된 김미연 위원은 2019년 1월 취임해 2022년 말까지 4년간 활동하게 된다.
2006년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안건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정부의 협약 이행을 꾸준히 모니터링한 그가 이제는 CRPD 위원으로서 해외 여러 나라의 보고서를 심의하는 위원이 된 것이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해온 그는 유엔 내에서도 무척 이례적인 이력으로 조명받고 있다.

 
▲ 김미연 동문이 한양대 장애학생인권위원회 학생들과 함께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김유선(경제금융학 16), 이정인(경영학 17) 학생, 김미연 동문, 정명철(경영학 15), 이탄(경영학 16) 학생
 

끊임없이 부딪쳐 이겨본 경험을 쌓는 것


이날 김미연 위원은 한양대 장애학생인권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후배들의 고민을 경청하며 든든한 선배의 면모를 보여줬다.
“저는 거창하게 ‘장애 여성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그저 제 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했을 뿐이에요. 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몸부림이 결국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해요. 한순간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지난 30년을 뒤돌아보면 변화한 것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가 재학 중일 당시만 해도 학교에는 장애인을 위한 양변기도 없었고, 도서관에 갈 수도 없었다.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주저앉았더라면 지금도 여전히 후배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며 생활해야 했을지 모른다.
“후배님들도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훈련을 하며 이겨본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사회에 나가면 훨씬 더 단단한 장벽에 직면하게 될 텐데 그렇게 이겨본 경험이 큰 힘이 됩니다.”
4명으로 시작한 여성 장애인 권리운동에서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에 이르기까지, 그의 행보가 만들어낸 대단한 성과는 결국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출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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