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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1/29 한양뉴스 > 교수 >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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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사무라이는 없다 - 윤상인

윤상인 (국제문화대·일어일문학) 교수

인터넷 한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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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Ab3X

내용
   
 

 영화<라스트 사무라이>를 봤다. 헐리우드가 ‘동양’을 소재로 만든 영화를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나로서는 조금은 별스러운 선택이었다. 지난 12월 초순 뉴욕에 갔을 때 이 영화가 한참 ‘뜨고’ 있는 것을 목도한 지라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하는 궁금증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헐리우드가 선택한 ‘동양적’ 소재가 사무라이라는 사실이었다. 순종적인 여성성을 표상해 온 게이샤(일본의 기녀)라면 몰라도 서슬 퍼런 일본도를 휘두르는 호전적인 무사 집단에 조명을 맞춘 것은 의외였다. 더군다나 일본경제가 미국을 송두리째 집어삼킬 태세로 군림하던 197,80년대에, 사무라이는 그로테스크하고 호전적인 경제대국 일본의 표상으로 <타임>이나 <뉴스위크>와 같은 시사잡지의 표지를 장식하지 않았던가. 이쯤 되면 헐리우드 판 동양물에 약방의 감초 격으로 등장하던 오리엔탈리즘의 안부가 궁금해지는 것이 솔직한 반응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일단 달랐다. 픽션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을 적절하게 섞어가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몰입시켜가는 에드워드 즈윅 감독의 이야기 방식은 현란했다. 줄거리인즉, 아메리카 원주민 학살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북전쟁의 영웅 알그렌 대위가 일본 황군의 군사고문으로 불려가지만, 정작 토벌대상인 반란군의 사무라이 정신에 감화되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다”라는 자기변혁의 실감은 어느 누구에게나 진한 감동을 불러온다. 서양인에게는 모든 것이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아시아의 한쪽 끝에 위치하는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내부가 바뀌고 새살이 돋는 영적 체험에 대한 간증의 형식을 띄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이 영화는 관음증적 오리엔탈리즘으로 버무린 기존 서양영화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주장할 만 하다. 서양인들이 지어내는 동양이야기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는 것은 남자(서양) 대 여자(동양)의 불평등 성적(권력)관계였지만,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남자 대 남자의 수평적 구도(알그렌 대위와 가츠모토) 속에서 내러티브의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색다르다. 따라서 한 세기 이상 <나비 부인(Madam Butterfly)>의 후예로서의 자기정체성을 강요당해왔던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라스트 사무라이>는 그간의 불쾌한 기억에 대한 정신적 보상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일본열도가 이 영화에 대해 최상의 찬사로 화답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허나 가시의 존재를 알아야 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법. 앞에서 말한 몇 가지 미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곰곰이 되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를 적지 않게 내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영화를 본 후 여러 느낌이 한꺼번에 교차했다. 그 중에서도 오랫동안 내내 뇌리에서 맴도는 것은 ‘왜 지금 무사도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무사도를 체계화하여 세상에 알린 것은 니토베 이나조(新渡戶稻造 1862-1933)였다. 일찍이 서양에 유학하여 세계 사정에 밝았던 그는 일본에는 비록 서양의 기독교와 같은 종교윤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에 대신하는 엄격한 정신윤리로서 무사도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외에 알리기 위해 영문저서 Bushido를 출판했다. 메이지 정부도 충군애국, 멸사봉공을 기본 덕목으로 삼는 무사도를 아직 근대국가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일본인들을 ‘국민’으로 통합하기 위한 통치이데올로기로 이용했다. 무사도 역시 근대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인문학의 도움을 받아 발굴 혹은 창안된 전통 중의 하나였다. 무사도의 세례가 없었다면 제로전투기에 몸을 싣고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 전함에 돌진한 가미가제(神風) 특공대 신화도 성립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가 만든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가 무사도에 대한 경의를 숨기지 않고, 오늘날 일본인들 사이에서 거의 사어(死語)화되다시피 한 무사도나 사무라이(侍)와 같은 말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사태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냉전 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게 된 미국인들의 자신감 표출로 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일본문화에 매료된 감독 개인의 일본취향(Japonisme)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라 할지라도 그리 간단히 넘길 문제는 아니다. 이 영화를 만든 즈윅 감독은 영화감독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 역사 인물로는 1877년 서남(西南)전쟁을 일으킨 사이고 다카모리를 흠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실제로 사무라이 집단의 우두머리 가츠모토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모델로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 톰 크루즈보다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하는 가츠모토가 메이지 정부에 항거하여 궐기한 후 자결한, 그리고 악명 높은 정한론(征韓論)을 주창한 사이고 다카모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즈윅 감독의 낭만적 자포니슴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견 사나이의 모험과 자아회복의 서사시로 읽혀지는 이 영화는 실제로는 더 없이 정치적인 함의로 가득 찬 이야기이다. 알그렌 대위는 사무라이와의 만남을 통해 자기혁신이라는 은혜만을 입은 것은 아니다. 전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란 눈의 사무라이 알그렌 대위는 메이지천황을 알현하는 자리에서 일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양적 표준이 아니라 일본 고유의 전통적 가치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지고지존의 천황이 그러했듯이 많은 일본인은 파란 눈의 영웅적인 미국인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 틀은 영화 속 뿐만 아니라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텍스트 그 자체가 지니는 본질적 속성인 것이다. 이것을 변이된 오리엔탈리즘이라 칭해도 무방할 것 같다.


 즈윅 감독에게 있어서 일본은 하나의 문화적 비전이다. 깊은 고산에 홀연히 나타난 아름다운 마을, 복사꽃이 만발하고 더없이 순수하기만 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가츠모토의 영지는 흡사 중국시인 도연명에 의해 그려진 이상향 도원경(桃源境)을 방불케 한다.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최후의 전투장면일 것이다. 황군의 신식무기 앞에 속절없이 산화하는 사무라이들의 주검 위로 만개한 벚꽃이 흩날리는 장면은 즈윅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였을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내 기억이 맞는다면) 알그렌 대위의 모노로그에 의하면 마지막 전투가 있던 날은 1877년 5월 27일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배경은 사츠마 번 등이 있었던 일본의 남단 규슈 지방이고 영화의 로케도 남부 히메지(姬路)에서 이루어졌다. 일본의 언론매체들은 3월이 되면 벚꽃전선에 관한 예보를 한다. 규슈에 벚꽃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데 3월 말이면 만개한 벚꽃이 모두 자취를 감추며 일본의 최북단 홋카이도라도 5월 27일에 벚꽃을 찾아보기는 불가능하다. 봄을 알리는 꽃인 벚꽃이 이 영화에서는 초여름에 만개하여 사무라이의 죽음에 입회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허술함은 ‘사람은 사무라이, 꽃은 벚꽃’이라고 하는 무사도 이데올로기에 대한 맹목적 낭만화의 결과이다.

 

 아무리 용기와 충성과 명예가 소중하다고 믿는다치더라도 일본도 하나만으로 총탄의 빗속을 뛰어드는 일본인을 오늘날 찾아보기란 지난한 일에 속한다. 사무라이는 없다. 그것은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제목을 붙인 감독 스스로 말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본인들의 정신윤리로 여겨져 온 사무라이 정신을 ‘마지막(last)’으로 체현한 것은 미국인 알그렌 대위였다. 이 대목에서, 대다수의 일본인들이 이 영화에 보내는 지지와 공명에 이 점에 대한 고려도 들어 있을지 하는 궁금증이 다시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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