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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2 한양뉴스 > 교수 > 매거진

제목

[Column] 한 영국 대학의 입학시험

홍종호(경제금융학부) 교수

인터넷 한양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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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yang.ac.kr/surl/BusW

내용

'한 사람이 백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20년 전 영국의 명문 케임브리지 대학교 입학시험에 나온 에세이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한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 한 문장이 지금도 나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가 대한민국 땅에 태어나 대학에 들어가려고 4지선다 시험문제를 풀고 있을 즈음, 지구 반대편에서는 내 나이 또래의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이 질문에 답을 쓰는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나아가 사교육이 판을 치고 동시에 학력저하를 개탄하는 한국 교육의 암담한 현실이, 또한 기업은 해외로 도망치듯 가버리고 이익집단의 자기 몫 챙기기만이 난무하는 한국 경제의 출구 없는 방황이 내 머리를 어지럽힌다.

 

   
 

 언제쯤 한국의 청소년들은 '한 사람이 백 사람을 이끌 수 있는 비결'에 대해 밤새워 고민해 보는 학창시절을 누리고, 언제쯤 한국 경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잘 먹고 잘 사는' 문제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참다운 리더십을 경험해 볼 수 있을까?

 

 꼭 외국 대학의 입학시험 문제를 기준으로 우리의 입시 제도를 재단하자는 것이 아니다. 각국이 처한 교육여건에 따라 입시제도는 다를 수 있고, 당연히 평가기준과 방식도 상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너무나 뒤틀려져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 접촉점을 찾기조차 힘들어져 버린 우리의 교육현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학군 때문에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는 나라, 신도시 개발의 전제조건이 학원단지 유치인 나라, 중등학교 교실이 '참교육'의 산실이기는커녕 '잠교육'의 현장인 나라, 대학입학을 위해 학생을 문제풀이 기술자로 전락시키는 나라, 바다 건너 떨어져 사는 기러기 가족이 마구 생겨나는 나라, 한국 교육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모든 교육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다. 교육문제야말로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전통, 의식 등 모든 문제의 결집체인데 왕도가 있을 수 없다. 현상과 진단을 통해 분명한 문제점으로 드러난 것에 대해서는 과감히 인정하고 고쳐보자는 것이다. 급격한 사교육의 공교육 대체, 각종 교육규제의 만연, 학력저하와 인성교육 부재의 동시 발생, 이미 한국 교육에 실재(實在)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쯤 됐으면 금단의 열매처럼 간주되고 있는 평준화의 실효성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공론의 장에 부쳐야 하지 않을까.

 

 이제 교육관료, 교육학자, 교사, 노조, 심지어 학부모에 이르기까지 교육계를 구성하는 모든 이해당사자들도 자신의 주장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한국 교육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미래인 이 땅의 어린이와 청소년을 볼모로 잡는 비극적인 교육환경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는 사람이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사람만이 최고의 경쟁력이자 자산인 나라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경제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리더십의 몫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경제리더십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일관되게 실천하는 지도자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워낙 정치 이슈가 오랫동안 시대를 독점하다시피 해서 그런 것인지 자타가 공인하는 '정치 전문가'는 많았으나 '전문가 정치'를 실현할 경제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역대 미국 대선에서 가장 큰 선거 이슈는 단연 일자리 창출이었다고 하는데….

 

 왜 한국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일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일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일자리를 만들고 싶어도 간섭하고 못살게 구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이 이러한 참담한 현실에 메스를 들이대지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노동시장이 경직되면 될수록 이미 기득권을 확보하고 있는 노조는 좋을지 모르지만 새로 노동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청년들에게는 오히려 나쁜 것임을 우리 학생들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그간의 전개과정이야말로 우리나라에 경제리더십이 얼마나 부재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편의 우울한 블랙 코미디라고 생각한다. 손해는 하나도 보지 않고 이익만 보는 거래가 세상에 어디 있는가? 손해를 만회하는 그 이상의 이익이 생겨난다면 이를 적극 수용하면서 대안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 아니겠는가? 국가경제는 아랑곳없이 자신의 생존전략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일부 정치인과 이익집단의 행태가 한국경제의 주름살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가감 없이 스스로를 드러낼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국제 경제 환경에 내던져진 대한민국에 있어 국가적인 경제리더십의 역할은 막중할 수밖에 없다. 20년 전 영국의 한 대학 입학시험에 출제된 문제를 통해 한 사람이 백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백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분명한 명제를 가슴에 새기는 지혜를 이 정부가 가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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