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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 19

[동문]문혜준 동문, ‘제20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서 장원

▲문혜준 동문 (사진= 아시아뉴스통신) 문혜준 동문이 최근 충남 공주에서 개최된 ‘제20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 일반부 장원을 수상했다. 올해로 20회를 맞는 박동진 판소리 명창 명고대회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창으로 손꼽히는 국가무형문화재이자 제5회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故 인당 박동진 명창을 기리기 위한 대회로 유명하다. 문혜준 동문은 한양대학교 국악과 졸업 및 동대학원 졸업, 제31회 동아콩쿠르 일반부 판소리 금상도 수상한 충주시립우륵국악단의 젊은 실력파 예인이다.

2015-10 07

[학생]무대가 좋아서, 소리가 좋아서

슬럼프를 극복하고 끝내 수상의 영광을 안다 흔히 판소리를 떠올리면 폭포 아래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각혈을 하고 득음의 경지에 이르는 모습을 떠올린다. 실제 소리꾼들의 모습은 어떨까. 제31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분에서 금상을 수상한 문혜준(일반대학원 국악전공 석사과정)씨의 겉모습은 영락없이 다소곳한 여대생이었지만, 그 속은 소리를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소리꾼이었다. 여름이면 깊은 산 속 절에 들어가 계곡 옆에서 소리연습을 했다는 문 씨의 소리이야기를 들어본다. 끝없는 도전, 결국 해내다 동아국악콩쿠르는 우리나라 국악계에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권위 있는 대회다. 남자 참가자의 경우 금상 입상 시 병역혜택이 주어지며, 우리대학 학부생이 대회에서 수상할 경우 학교에서 4년 장학금을 지급한다. 이러한 혜택을 통해 대회의 규모와 권위에 대해 짐작 가능하다. 문 씨 역시 소리꾼으로서 오랜 시간 이 대회를 준비해왔다. 우리대학 학부생 시절에도 수상을 노려왔지만 번번히 운이 따르지 않았다.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또 대회를 준비하면서 그녀는 소리꾼으로서 기본인 ‘발성’부터 다시 시작했다. 소리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인데 문 씨는 줄곧 가슴에서 소리가 난다는 평을 들었다. “발성을 바꾸는 건 호흡 자체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학부생 때도 알고 있었지만 고치지 못했죠. 이번 대회를 목표로 발성을 고치려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 문혜준(일반대학원 국악전공 석사과정) 씨는 빼어난 소리 실력으로 제31회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 부분에서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올해 6월 열린 제31회 동아국악콩쿠르는 약 8개월 전 지정곡을 공개하던 예년과 달리, 3개월 전 지정곡을 공개해 연습할 시간이 다소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열심히 준비해 온 그녀를 하늘도 도왔던 것일까. 문 씨의 경우 다행히 예선 지정곡인 ‘흥보가’ 중 도승이 집터를 가리키는 대목과 ‘수궁가’ 중 ‘말을 허러니 허오리다’가 익숙한 곡이자 본인에게 잘 맞는 곡이었다. 판소리의 경우 한 곡을 완전히 배우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며, 각자의 목소리에 맞는 곡조가 있기 때문에 본인에게 맞는 지정곡이 출제되는 것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문 씨는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던 이유로 ‘연습을 실전처럼, 실전을 연습처럼 행한 것’을 꼽았다. “많은 무대와 경연에 섰지만 이번 대회에도 역시나 떨렸어요.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 곡 자체에 집중했고, 연습 때처럼 곡에 몰입하자 어느새 긴장이 풀렸습니다. 사실 개인사정으로 대회 직전까지도 대회를 포기할까 생각했어요. 그 때마다 제 곁을 지켜준 어머니와 발성과 발음의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고쳐주신 조주선 교수(음대 국악)님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국악소녀에게 찾아온 슬럼프 문 씨가 처음 국악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어린 시절 우연히 나가게 된 동요 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노래를 정식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보통 성악의 길을 걷는 친구들이 많았지만 초등학교 사물놀이 반에서 장구를 치며 국악에 관심이 많았던 문 씨는 국악의 길을 선택했다. 그 후 국립국악중·고등학교를 거쳐 우리대학에 진학한 문 씨는 오직 소리만 바라보며 학창시절을 보냈다. ▲ 문혜준 씨는 지난 25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무대가 좋았고, 소리가 좋았기에 슬럼프를 극복하고 계속 소리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소리만 바라보며 쉬지 않고 달려온 그녀에게도 슬럼프는 찾아왔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 대학에 와서는 각종 대회, 소리만 바라보며 쉬지 않고 달려왔어요. 대학교 3학년 때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이 곳까지 온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 막연히 쉬고 싶었어요. 어떤 동기가 없었죠. 하지만 소리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어요. 무대가 좋았고, 노래하는 것이 좋았으니까요. 슬럼프는 그렇게 잦아들었던 것 같아요.” 문 씨는 어린 시절부터 막연하게 우리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였다. 국악중고교를 진학했기에 만날 수 있는 사람도, 만나게 되는 사람의 범위도 한계가 있었을 터. 국악하는 사람 말고 다른 사람도 만나고 싶어 종합대학인 우리대학을 목표로 공부했다. 학부를 넘어 대학원까지 우리대학에 진학한 문 씨가 말하는 우리대학 국악과의 장점은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장학금제도가 잘 되어있는 것도 있지만, 국악의 전통을 지키고 명맥을 이어가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에요. 최근 전통 국악에 변화를 준 창작 국악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 역시 전통을 기본으로 가지고 있을 때 파생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우리대학은 전통 국악에 대한 기본 개념을 확실히 익힐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전통을 널리 알리고 싶다 소기의 성과를 올리고 만족할 법도 하지만 문 씨는 소리 연습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가까운 목표로는 내년 4월, 국립 국악원이 주최하는 ‘온나라 국악경연대회’를 겨냥하고 있다. 단기 목표가 있어야 동기가 되어 연습에 박차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 씨의 최종 목표이자 꿈은, 다소 막연하지만 해외에서 소리를 하는 것이다. “’무형문화재가 되겠다’ 같은 말은 아직 꿈꿀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위치에요. 하지만 동시대의 소리꾼들 중에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소리꾼이 되고 싶습니다. 또 해외에 나가 한국의 소리를 알리고, 외국인들에게 소리를 가르치는 그런 큰 꿈도 꾸고 있습니다.” 끝으로 문 씨는 젊은 국악인으로서 본인의 역할과 철학에 대해 말했다. “최근 국악의 대중화를 위해 국악을 리메이크하고 밴드처럼 나오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한 명의 젊은 국악인으로서 그 분들의 철학과 노력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너무 전통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국악이 대중들에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에요. 전혀 어렵지 않은 것처럼 꾸미는 것은 반대해요. 전통의 본질을 버리지 않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 젊은 국악인으로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 문혜준 씨는 지난 25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전통의 본질을 버리지 않고 대중들에게 알리는 것이 젊은 국악인으로서 본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ko@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