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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 17 헤드라인

[동문]나는 매일 성장하는 1번 타자

성장은 비단 나이를 먹고 체형이 커지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 단어 안에는 한 사람의 세계가 폭넓어진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을 것. 박해민 동문은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로만 뛴 데다 수비가 약점으로 취급되던 선수였다. 2012년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해 신고(육성) 선수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2군만 해도 이미 자신만큼 치고 수비하는 선수들이 수두룩해 보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3년 연속 도루왕에 국내 최정상급 외야수로 평가받으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동안 그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취재 미디어전략센터 / 사진 손초원 ▲삼성 라이온즈 박해민 선수(스포츠과학부 08) 신고 선수로 프로에 입문하다 무더위가 온몸을 덮치던 지난여름, 삼성 라이온즈가 원정경기차 찾은 잠실야구장에서 박해민 동문을 만났다. 201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박해민 동문은 특히 도루와 수비 능력이 뛰어난 국내 대표 1번 타자로 통한다. 2014년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팀 우승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꾸준히 능력을 향상시키며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했다. 뛰어난 낙구 판단과 빠른 발을 활용한 넓은 수비 범위가 빛을 발하며 외야 수비에서도 국내 최정상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이제 많은 2군 및 신인 선수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는 박해민 동문이지만 처음부터 빛을 발했던 것은 아니다. "2012 KBO 드래프트 나갈 당시 대학 선수 중 타격 성적(4할 2푼 9리)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 때문에 쉽게 뽑힐 줄 알았고, 프로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었는데 지명이 되질 않았죠." 고등학교 때까지 내야수(2루수)로만 뛰던 그는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후 야구부 감독 및 코치진들에게 외야수로 전향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내야수로 뛰기에는 송구 등의 수비 문제가 지적된 것. 내야수라는 포지션에 애착이 많았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했다. “외야수를 쉽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어려운 포지션에 적응하기 위해 새벽 넘어서까지 연습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4년 동안 매일 갈고 닦았지만, 전문가들에게 그는 타격이 좋을 뿐 나머지 부분에서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외야 수비는 대학교 들어서야 전향했고, 도루는 대학 통산 7개에 불과했으니까. 하지만 드래프트 직후, 그의 가능성을 본 삼성 라이온즈는 그에게 신고(육성) 선수로 입단하라는 제안을 보낸다. ‘신고 선수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1군 주전의 열쇠- 주루와 수비 신고 선수는 쉽게 말해 연습생으로 신고만 되어 있을 뿐, 정식 등록 인원에는 포함되지 않는 비정규직이다. 리그 최저 연봉을 보장받지 못하며 당장 언제 퇴출당할지 알 수 없다. 박해민 동문은 그런 악조건을 뛰어넘어 2014년 1군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2군 코치님들이 제게 강조하신 건 주루와 수비였어요. 그래야 제가 프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거였죠. 그때부터 타격이나 다른 부분도 열심히 했지만, 특히 주루와 수비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악조건을 뛰어넘으며 1군 주전으로 발돋움한 박해민 선수 경기 후에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는 대학 때와는 달리 프로에서는 일주일에 여섯 번은 경기에 나서고, 매일 훈련을 했다. 그는 직접 부딪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프로 세계에 맞게 만들어나갔다. 시간과 땀이 쌓일수록 요령이 보였고, 그럴수록 두 눈 앞에는 프로야구의 더 넓은 길이 보였다. 람보르미니가 되기까지 박해민 동문은 야구 인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손꼽는다. 우승 외에 2014년이 각별한 이유는 또 있다. 그해 비로소 팀의 주전 외야수이자 1번 타자로 발돋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14년 36개 도루를 기록한 그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팬들은 그가 람보르기니처럼 빠르게 질주한다며 ‘람보르미니’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 당시 김평호 코치님이 도루 요령을 세심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요령을 터득할 수 있었어요. 가르쳐주신 내용을 실전에 적용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했습니다. 도루를 잘하려면 상대 투수의 버릇을 유심히 관찰해야 해요. 그리고 변화구 때 뛰는 게 시간적으로 조금 더 여유가 있으니 그 타이밍을 파악하려고 애쓰죠. 도루할 때는 그저 ‘한 베이스 더 나가면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중요한 건 내 기록이 아닌 팀의 승리니까요.” ▲박해민 선수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도루왕에 오르며 국내 최고의 리드오프로 성장했다. 수비 역시 마찬가지다. 외야 전향 직후 ‘수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따랐지만 대학 때도 프로에서도 그는 묵묵히 연습에 매진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에게 날아오는 타구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기만 해도 대략 어느 방향으로 공이 오겠다는 감이 생겼다. 매일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다 야구선수들은 무더위는 물론 주변 모든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모든 것이 컨디션과 직결되니까 말이다. 박해민 동문이 컨디션을 유지하는 비결은 간단했다. “잠을 많이 자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그래야 몸이 충분히 회복될 수 있거든요. 그 밖에는 체력 보강 차원에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요.” 충분한 수면을 취하며 컨디션 유지에 힘쓰는 건 물론 리그 일정 때문이지만, 올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지난 8월부터 열린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야구 국가대표로 선발됐기 때문이다.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떠오른다는 그는 특히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당시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한 학교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야구에 대한 고민이 많던 때에 당시 감독님과 코치님들을 만나 외야수라는 자리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든 측면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인간적으로 잘 챙겨주셨죠. 프로 세계에 대한 조언도 해주셨고요.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한양대 야구부 자체가 대학 야구의 명문이잖아요? 학교 측 지원이 워낙 좋았고 야구부 시설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 훈련과 경기에만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된 박해민 선수는,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대학 시절 자신을 지도하고 보살펴준 감독 및 코치진, 그리고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지원한 학교 측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태극마크는 쉽게 오르기 힘든 만큼 어떤 선수나 동경하는 일일 테다. 그는 자신이 주전이라 생각하진 않는다며 대주자로 나가든, 대수비로 나가든 최선을 다해 우승에 일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남보다 빠르게 뛰어 베이스를 훔치고, 한 발 앞서 수비하며, 더 정교하게 타격하고자 노력한다. 마치 노력만이 자신의 가장 큰 무기라는 듯이. 때문에 그의 이름 앞에는 람보르미니라는 별명 외에도 허슬 플레이를 하는 선수, 항상 노력하는 선수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 역시 그 수식이 마음에 드는 눈치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에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팬 분들도 그런 제 모습을 좋아해주시고요.” 그의 몸은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초등학교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하지만 성장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야구를 대하는 그의 성실함은 ‘그’라는 세계를 좀 더 넓고 여유롭게 만들었다. 앞으로 그의 세계는 얼마나 더 넓어질까. 그리고 그 안에는 얼마나 매혹적인 야구의 이야기들이 펼쳐질 것인가. 그곳에서 그는 오늘도 변함없이 온몸으로 부딪쳐가며 야구와 이 세계를 배워나가고 있다.

2017-09 12

[학생]삼성 1차 지명 최채흥 학생 “멋진 모습 보여드릴 것”

▲최채흥 학생(사진: 삼성라이온즈) 한양대 투수 최채흥(생활스포츠학 14) 학생이 삼성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다. 9월 11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된 ‘2018 KBO 리그 신인드래프트’에 참석한 최 학생은 지난 6월에 열린 1차 지명 회의에서 삼성라이온즈의 지명을 받고 계약금 3억5000만원, 연봉 2700만원에 계약했다. 스포츠Q 9월 12일 자 기사에 따르면, 이날 열린 신인드래프트에서 최 학생은 “내 데뷔전 모습을 상상하면 7이닝 1실점 3탈삼진 정도다”라고 말해 장내를 웃게 했다고. 이어 그는 “일단 기대도 많이 해주시고 우려도 많은데 야구 선수는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밝혔다고 전했다. 삼성라이온즈는 최 학생에 대해 “부드러운 투구 자세를 바탕으로 부상 위험이 낮고 릴리스 포인트가 일정하고 투구 감각이 좋은 편”이라며 “타자와 적극적인 승부를 할 줄 아는 선수로서 성격이 차분하고 감정 기복이 거의 없다는 게 강점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최채흥 학생은 대학 4년 동안 49경기에서 254이닝을 던지며 23승 10패, 평균자책점 1.95의 성적을 올렸다. 올 시즌엔 7경기 5승 2패 평균자책점은 2.51을 기록했다.

2016-12 09

[동문]삼성 라이온즈 성의준 동문, 10일 ‘화촉‘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로 활약하고 있는 성의준 동문(생활스포츠학 08)이 오는 10일 낮 12시 쉐라톤서울팔래스호텔에서 화촉을 밝힌다. 동갑내기 예비 신부 김경화 씨는 대구에서 영어강사로 재직 중이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지인의 소개로 만나 6년간의 연애를 거쳐 부부의 연을 맺는다. 결혼을 앞둔 성 동문은 "오랜 연애를 마치고 결혼을 하게 돼 기쁘다. 앞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더욱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야구하여 팀에 도움되는 선수가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12월 10일 쉐라톤서울팔래스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삼성 라이온즈의 성의준 동문(생활스포츠학 08) (이미지: 삼성 라이온즈)

2013-12 06

[동문]0퍼센트의 기적을 이루다 푸근함과 칼 같은 성격을 동시에 가진 그

지난 11월 1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두산의 뜨거웠던 한국시리즈 7차전은 흡사 한 편의 드라마였다. 1승3패로 밀려 벼랑 끝에 몰린 삼성이 마지막 3경기를 모두 잡아내며 기적 같은 역전승을 거둔 순간 구장은 함성으로 가득 찼고, 사상 최초 3년 연속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역사도 탄생했다. 2011년부터 3년 연속으로 거둔 삼성의 ‘한국 1등’의 쾌거. 그 중심에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83·체육) 감독이 있었다. 에디터 양효선(진행), 최미현(글) | 사진 성균 ▲ 삼성 라이온즈의 류중일(83·체육) 감독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대만 타이중에서 열릴 아시아시리즈 준비로 한창인 류 감독. 승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음 일정을 위해 매서운 눈빛으로 맹훈련 중이었다. “다음 주에 대만 출정을 앞두고 있어 다들 예민해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와중에 제가 우승했답시고 멋지게 포즈 잡긴 좀 그러네요. 하지만 한양대 동문들을 만나는 귀한 자리이니만큼 당연히 시간을 내야죠.”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방해가 될세라 조심스레 촬영을 마친 후, 차분히 앉아 인터뷰를 진행하는 모습에서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사상 첫 통합 3연패, 프로야구 최강팀, 0퍼센트의 기적. 모든 것이 그가 이끄는 삼성 라이온즈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시리즈 우승 후 연일 방송에서는 팀을 승리로 이끈 류중일 감독의 리더십에 대해 떠들어댔다. ‘형님 리더십’이라 불리는 그의 지도력. 류중일 감독은 그저 젊은 감독이기에 붙여주는 말이 아니겠느냐며 겸손히 말한다. “예전 감독님들과는 달리 코치나 선수들과 나이 차가 크지 않아 ‘형님 같다’고 말하는 거 같아요. 제가 완벽하지 않으니 참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건 당연한 거고. 저만의 노하우라면 믿어주고 응원해주는거랄까요. 부진한 친구라도 잠재력을 믿어주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 다들 제 몫을 다해준 거라 생각합니다.” 선수들에 대한 그의 믿음은 한국시리즈에서 빛을 발했다. 1승 3패로 벼랑끝에 몰린 상황. 제아무리 강한 삼성이라지만 두산에 먼저 3승을 내줬을때 삼성의 우승 가능성을 점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역대 3패 후 결과를 뒤집은 경우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팀이 흔들릴 때도 원칙을 깨지 않은 뚝심을 보여줬다.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경기 내내 부진한 모습을 보이던 박한이 선수가 5차전에서 역전 결승타를 치더니 6차전에서는 3점 홈런으로 상황을 역전시켰다. 삼성이 기적의 드라마를 이뤄낸 것이다. 이번경기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선사했지만 특히 류중일 감독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감독이 되면서 가졌던 초심을 되새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경기를 하는 매 순간순간이 어찌 좋기만 할까요. 하지만 그때마다 화를 내기보다는 선수들을 응원하고 다독이자고 결심했죠. 그런데 올해는 살짝 흔들렸어요. 짜증도 내고 화가 나 소리를 지르기도 했거든요. 마인드 컨트롤의 실패죠, 실패. 잠자리에 누워서는 ‘아, 내가 왜 그랬지 초심을 잃으면 안 되는데’ 후회하고 고민하고. 경기가 끝난 후에 선수들에게 고백했어요. ‘참 수고했다, 그리고 고맙다. 초심을 잃을 뻔했는데 너희 덕분에 지킨 것 같다’ 이렇게요. 다들 이해해주더군요. 미안하죠, 정말.” 경기 도중 언성 한두 번 높이지 않기가 쉽지 않을 텐데 짜증 섞인 말투 한번에 초심을 떠올리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인간미 넘치는 형님답다. 집요하리만큼 강했던 야구에 대한 애착 류중일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선수 시절 유격수로만 13시즌을 뛰었다. 1999년 은퇴 후 이듬해부터 삼성에서 코치로 활동, 2001년부터는 수비, 주루 코치를 맡아 감독이 되기까지 11년간 두 개의 업무를 동시에 해왔다. 평생 유격수만 한 터라 알아야 할 것도 해내야 할 것도 많았던 시절. 틈만 나면 상대를 막론하고 질문을 던져대곤 했다. ‘잘 만하면 질문을 하고 끝났다 싶으면 또 물어보는 통에 밤늦도록 못 자는 날이 많았다’는 배터리 코치였던 현 KT 조범현 감독과의 일화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럴땐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좋은지, 이 상황에서는 어떻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지’ 궁금한 것은 파고 또 파들어 갔다. 감독에게도 마찬가지. 선동렬 감독이 삼성을 이끌던 시절, 투수 교체 등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적어두었다가 왜 그랬는지를 알아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의 이러한 집요함은 이후 그가 감독이 됐을 때 삼성 야구의 틀을 지키면서도 팀을 한층 더성장시킬 수 있는 기초가 됐다. “선수 시절, 다저스 스프링 캠프를 갔었는데 수비 코치, 투수 코치 등을 초빙해 지도를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도 그 사람의 지도 방식이나 노하우를 메모해 제 스타일로 만들었죠. 코치 때도 무조건 선배들의 노하우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어요. 내 생각과 다르면 왜 그런지를 물어보고 확인했습니다. 많은 감독님을 모시면서 그분들의 장점을 내 것으로 만들기도 했고. 그러면서 저만의 야구를 정리한 거죠. 덕분에 감독이 된 후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치 성장하듯이 찬찬히 다져진 땅, 현재 주어진 것을 완수한 후에야 다음단계로 넘어갔던 도전들. 이러한 작은 것들이 모여 지금의 그를 이끌었다. 누구도 평가 절하할 수 없는 3년 2010년 12월 30일, 그가 감독직을 제안받던 날이다. 류중일 감독은 당시를 두려움으로 기억한다. 항상 상위였던 게다가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던 팀을 이어받았으니, 우승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자리였다. 또 선동렬감독의 유산을 받은 ‘운 좋은 감독’이라 부르며 그의 능력을 의심하는 야구인들이 적지 않았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런 평가가 있었을 정도였으니 심리적인 압박감이 오죽했을까. 4강 진출도 못 할까 봐 술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전력이 좋은 팀이라 하더라도 사령탑이 흔들리면 순식간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더 이상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지금까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듯이 전임 감독의 장점은 받아들이고 그 위에 자신의 색을 조금씩 입혀나가기 시작했다. 선수와 코치로 삼성에서만 보낸 시간이 24년이었다. 그만큼 내부 사정과 선수 사정에 능통했다. 프로에 입문한 후로 오랜 세월 삼성의 야구를 지켜봤고 그 중심에 있었으니 그 내공이 어디 갈 리 없다. 게다가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 성격 탓에 선수들은 형님 섬기듯 그를 신임했다. 그렇게 류중일감독은 사령탑 첫 시즌부터 인상적인 지도력을 보여줬다. 그리고 2011년 첫해, 삼성을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어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한국시리즈에서 SK를 4승1패로 누르고 5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것. 하지만 선동렬 감독이 만들어놓은 전력으로 우승했다는 말이 나돌았다. 좋은 선수가 많아 우승이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억울했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극복할 수밖에. 2012년 삼성이 다시 정상에 올랐다. 모두가 류중일 감독을 주목했다. 선 감독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러나 여전히 의구심을 내비치는 이들이 있었으니 심정이 오죽했을까. “아이고, 마음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하지만 제가 넘어야 할 산인데 어떡해요. ‘노력하면 언젠가 알아주겠지’ 하고 억눌렀죠. 그래서 올해는 ‘생애 최고의 시리즈를 만들겠다’는 각오로 특히 더 욕심을 냈어요. 욕심내니까 성질도 부리게 되고 그랬죠 뭐. 승리했을 때, 와 정말 좋았죠. 물론 앞으로 부담감이 더 커지겠지만.” 감독이 된 후로 이어졌던 승리의 함성들. 사상 최초의 통합 3연패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한국팀 최초로 아시아시리즈까지 제패했다. 2012년 아시아시리즈와 올 초 WBC 외에는 모두 정상을 밟은 셈이다. 운도 따랐겠지만 선수들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파악한 뒤 조직 문화를 변화시킨 그의 숨은 힘 덕분이다. 어느 누가 류중일 감독의 지휘력을 부정할 수 있으랴. 자신감과 자만심의 차이를 아는 것 “시행착오요? 지금껏 살면서 시행착오라고 할 만큼의 큰 도전을 한 적이 별로 없어요.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하면서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니까. 경북고등학교에 이어 한양대에 입학했고 그 후로 삼성에서만 있었으니. 후보 선수도 한 적이 없어요.” 굴곡 없이 살아온 삶이라 내세울 것이 딱히 없다고 말하는 류중일 감독. 하지만 그 곧았던 길이 쉽게 얻어졌을 리 없다. 아홉 살 어린 시절, 그가 던지는 볼에서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의 글러브와 배트 선물이 야구 인생의 시작이었다. 그렇게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야구였지만 하나를 시작하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 탓에 늘 남보다 두 배로 노력하던 선수였다. 승부욕 또한 강해 각종 대회에서도 지지 않으려 필사적이었다는 그. 대학시절에는 남들 다 하는 연애 한 번 해본 적도, 젊은 치기에 술 마시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도 없다. 힘들 때도 지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탓하며 한길만 바라봤다. 오로지 야구가 그의 전부였다. 절제와 노력, 그것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 그런데 이것이 그다지 큰 노력이나 도전은 아니었단다. 그 마인드부터 확실히 남다르다. “대학 때 미팅이나 엠티 한 번 못 가보고, 아 정말 아쉬워요. 봄에는 합숙훈련하느라 바빴고 학기 중에는 학교 시합이 늘 있었으니. 또 여름방학에는 국가대표로 미국행, 겨울에는 대만이나 쿠바행 이렇게 4년 내내 운동만 했거든요. 학교에 대한 추억이라고 하면 캠퍼스를 뛰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워낙 넓기도 하고 또 오르막과 내리막이 엄청나잖아요. 아이고, 어찌나 힘들던지. 돌이켜보면 조금 놀아볼 걸 싶은데. 그런데 열심히 살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겠죠? 이거 참 아이러니하네.” 그리고 성공의 시작에 도움이 되었던 사람이 있었다. “대학 시절 학교 야구팀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신경을 써주셨던 김종량 이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런 도움이 있었기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니까요.” ▲ 2013 한국프로야구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두산에 7대3으로 승리한 삼성. 경기 종료 후 류중일감독에게 샴페인을 뿌리고 헹가래 치고 있는 삼성 선수들과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을 맞이하고 있는 류중일 감독. 감독상을 수상한 류중일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삼성구단 제공) 철부지 시절부터 야구를 해온 그에게 야구는 그야말로 삶 전부다. 올해로 쉰 살이니 40년 인생을 오로지 공과 함께한 셈이다. 그런 그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는 ‘자만심을 경계하라’. 지금까지 그가 굳건히 지켜온 인생관이다. 자신감은 갖되 자만심은 버리라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비슷한 듯하지만 달라요. 자신감은 ‘최선을 다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고 자만심은 ‘너쯤이야’란 생각이죠. 자만심을 갖게 되면 일순간 무너질 수 있으니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선지 그는 자질이 부족해도 늘 노력하는 선수를 좋아한다. 열심히 하는 이들을 북돋아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감독이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언론이 늘상 말하는 푸근한 리더십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처음 감독이 됐을 때 느낀 두려움은 이겨냈지만, 올해 성적이 좋았던 만큼 내년 역시 그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터. 이미 아시아시리즈와 내년도 삼성 운영계획으로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다. 특히 아시아시리즈 출전을 앞둔 지금, 부상 선수들이 많을 뿐 아니라 오승환, 장원삼 선수의 변수가 있어 상황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지난해 아시아시리즈에서 대만 라미고 몽키스에게 자존심을 구긴 만큼 이번에는 꼭 명예 회복을 할 생각이다. 또 당시의 패배 때문에 붙지 못했던 일본 최강인 요미우리와의 경기도 노려볼 요량이다. 아시아 최강 자리를 두고 요미우리와 붙을 한국의 삼성. 그리고 뒤에서 따스한 카리스마로 경기를 진두지휘할 류중일 감독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 인터뷰는 아시아시리즈가 열리기 전인 11월 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이뤄졌습니다.

2013-03 13

[동문]야구 대통령, 야구보다 인성을 먼저 주문하다

사랑한대 2012년 9,10월호 [한양 People] 상징 동물은 사자, 대표색은 파란색.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우리 대학의 닮은 점이다. 그것이 인연이 됐던 것일까? 파란색 유니폼을 입고 대학 최고의 유격수로 활약하던 류중일 동문(체육대학 체육학·83)은 프로에서도 파란색 유니폼을 입었다. 25년 동안 삼성에서만 선수와 코치로 활약한 류 동문은 지난해 처음으로 삼성의 지휘봉을 잡았다. ‘초보 감독’이라며 주변에서는 걱정했지만, 류 동문은 이러한 걱정을 단숨에 잠재웠다. 정규 시즌 우승과 한국 시리즈 우승에 이어 국내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까지 제패한 것이다. 올해도 삼성을 선두로 이끌며 지난해 성공이 ‘비기너스 럭(Beginner’s luck)’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감독’ 성공 신화를 써가고 있는 류 동문의 야구 인생을 <사랑한대 H>가 담았다. 형님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다 류중일 동문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다. 선수, 코치, 감독생활까지 모두 삼성에서 보낸 ‘26년 삼성맨’이다. 지난해 처음 감독이 된 뒤 ‘형님 리더십’을 발휘하며 선수들을 이끌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신뢰를 바탕으로 삼성 라이온즈만의 룰을 지키며 선수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건넸다. “13년 선수생활을 포함해서 계속 한 팀에서 꾸준히 자리를 잡아왔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선수들에게 자부심과 긍정의 힘을 강조하게 됩니다.” 리그 최강을 자랑하는 불펜의 힘과 촘촘한 수비력, 득점 기회를 놓치지 않는 집중력이 삼성의 강점. 류 동문의 격려를 등에 업고 삼성은 가장 틀이 잘 잡힌 팀이 됐다. 류 동문이 선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먼저 사람이 되라”는 것, 바로 ‘인성’이다. 인성이 뒷받침돼야 실력도 따라온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후배들이 사회에 나가서 ‘역시 한양대 출신은 다르다’는 말을 들으려면 무엇보다 마음이 곧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제 삼성 라이온즈 선수들은 강력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홍보대사, 실종아동찾기 캠페인 등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야구 못한다고 욕먹는 것은 내가 책임지겠다. 대신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는 모범을 보여라.” 형처럼 때로는 대신 책임을 지고, 때로는 충고도 잊지 않는 것. 이것이 류 동문의 ‘형님 리더십’이다. ‘야구 대통령’ 류중일 ‘야신’, ‘야왕’ 등 감독에게도 별명을 붙이는 게 유행일 무렵 그는 ‘야통(야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년 신임 감독으로 팀을 잘 이끌자 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프로야구 감독은 하루라도 속 편한 날이 없는 자리다. 야구는 열 번 중 세 번만 성공해도 잘했다고 말하는 스포츠다. 따라서 승리를 위해서는 몇 번 안 되는 기회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위한 작전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류 동문은 “감독은 분위기를 잡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팀이 연승 혹은 연패를 할 때 고민이 가장 깊어진다고 한다. 연승할 때는 좋은 선수단 분위기를 어떻게 이어나갈지, 연패할 때는 패배의식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지가 큰 관건. 팀의 분위기가 곧 승패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옛날 류중일이 감독이었을 때 선수들이 참 인성도 좋고 근성이 있었다.” 류 동문이 훗날 가장 듣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그는 선수들에게 “우승도 좋지만, 무엇보다 열심히 하자”고 주문한다. 야구로 한국과 아시아를 제패한 감독이지만 무엇보다 ‘팬’을 위한 야구를 하는 것이 그의 목표이다. 팀의 승패에 따라 팬들도 울고 웃는다. “응원하는 팀이 져서 밥을 안 먹는 팬들도 많이 봤다”며 단 한 명의 팬이라도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류 동문의 야구다. ▲ 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우승을 견인한 류중일 감독은 포스트시즌 최우수 감독상까지 거머쥐었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라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야구 안 하죠(웃음)”라고 답했다. 남들 같은 대학생활의 추억이 없는 것이 아쉽다는 류 동문. 당시 그는 야구 국가대표가 되어서 세계무대에 서는 것만이 목표였다고 한다. “엠티도 못 가보고 데이트도 못해봤어요. 축제 때 주점도 열고 어깨동무하며 교가도 부르고. 그런 낭만이 없는 게 좀 아쉽죠.” 하지만 그 대신 운동에만 매진한 탓에 운동부 사람들과는 많은 추억을 남겼다. 당시에는 야구, 축구, 럭비 등 총 8개 운동부가 같은 건물을 썼다. 류 동문은 신입생 때 얼굴을 모르니 아무에게나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다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인사를 받던 사람이 다른 체육부 동기였던 것. “저도 인사 많이 받았으니 됐죠, 뭐(웃음).” 힘든 시기를 함께 넘긴 운동부 사람들과는 지금까지도 절친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 인생 선배로서 류 동문은 후배들에게 “꾸준히 봉사하라”는 조언을 남겼다. 봉사를 통해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나오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었다는 그는 그 이후로 지금도 가족과 함께 자주 시설을 찾고 선수들에게도 봉사활동을 권장하고 있다. 그는 재학생 후배들에게도 꾸준한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 약자들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프로야구에서도 ‘사랑의 실천’ 정신을 전하고 있는 류 동문이었다. 거기에 덧붙여 류 동문은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짐 애보트’의 예를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오른손이 없던 그는 후천적 노력으로 메이저리그에까지 오른 야구선수다. 투수였던 애보트는 오른 팔목에 글러브를 걸치고 공을 던졌다. 수비 시 잽싸게 글러브로 바꿔 끼고 공을 받았다가, 다시 글러브를 오른손으로 걸치면서 왼손으로 송구를 했다. 서울올림픽에서 미국대표로도 활약한 그는 은퇴한 뒤 전국을 돌며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강연을 이어나가고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류 동문의 의지가 선수들에게 전해진 덕일까. 인터뷰 당일 열린 경기에서 초반 4-0으로 크게 지고 있던 삼성은 후반에 뒷심을 발휘하며 9-4로 역전승을 거두었다. ▲ 류중일 동문 류중일 동문은 1983년 우리 대학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잠실야구장 첫 번째 홈런의 주인공이기도 한 류 동문은 졸업한 뒤 1987년 삼성라이온즈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프로야구 최고의 유격수로 거듭났다. 이후 삼성에서 은퇴한 뒤 코치생활을 시작, 감독이 되기까지 26년 동안 한 팀에만 몸담았다. 지난해 프랜차이즈 감독으로는 최초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팀을 이끌었다. 나아가 국내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까지 제패했다. 올해도 좋은 활약을 이어나가고 있는 류 동문은 오늘도 팬을 위한 야구를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