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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 26 헤드라인

[동문]전통 예술의 명맥을 잇는 혁신 연출가

거침없는, 실험적인, 상식을 깨는 무대. 윤한솔(사회학과 90) 연출가의 무대에 따라오는 수식어다. 윤 동문은 전통 예술을 파격적이고 첨예한 구성의 현대 예술로 재탄생 시킨다. 전공 공부보다 예술 동아리 활동이 더 좋았던 그는 사회 현상을 날카롭게 담아 이야기하는 '연극 연출가'가 됐다. 최근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 장기 공연을 성황리에 마친 윤한솔 동문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시대 속으로 사라져가는 예술의 현대적 해석 윤 동문은 지난 2014년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데모 버전> 공연을 극단 '그린피그'의 무대에 올렸다. ‘전통은 재미가 없다’는 인식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공연은 판소리 <적벽가>의 한 대목을 다루며 1980년도 광주민주항쟁을 이야기 한 작품이다. 그는 이 공연을 위해 판소리를 직접 배웠다. “판소리를 맛깔스럽게 하기 위해 전라도 사투리를 배우기도 하고 민요와 창법까지 공부했어요.” 사실적이고 신선한 공연으로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 공옥진 선생의 병신춤을 재해석한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 장기 공연이 막을 내렸다. 연출가 윤한솔 동문(사회학과 90)은 전통 유지를 위해 새로운 창조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후 윤 동문은 전통을 공유할 수 있는 다음 장르를 고민했다. 한국무용가 고(故) 공옥진 여사의 ‘병신춤’을 선보이기로 했다. ‘병신춤’은 한국무용에 서민적인 해학과 개성을 더한 1인 창무극이다. 왜 많은 한국무용 중 공옥진의 병신춤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그는 “제도적으로 계승할 수 없었다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답했다. “전통무용이 아닌 창작무란 이유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가 취소됐어요. 대중에게 가장 가깝게 있던 전통 공연이 그 계보를 잇지 못하고, 전수자 역시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는 고(故) 공옥진의 병신춤을 현대 장르로 재해석해 선보이기로 했다. ▲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을 공연한 배우들의 모습. 공옥진의 수제자를 자처하는 7명의 배우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공옥진의 춤을 익히는 과정과 사건들을 무대 위에서 펼친다. (그린피그 극단 제공) 윤 동문은 관객들이 더 쉽게 즐기기 위해 색다른 연결 매체를 고안했다. ‘키넥트 센서(Kinect sensor)’를 공연에 도입했다. 키넥트 센서는 동작 인식 카메라로 움직임을 감지하고 데이터로 처리한다. 센서를 장착한 배우들은 스크린 위 공옥진 선생님의 실제 춤 영상을 보고 게임처럼 병신춤을 배운다. 한국 전통 무용을 관람객들이 재미있게 접근하게끔 하는 의도였다. 이 기술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해 센서 기술을 영상팀과 함께 고민했다. 기술과 함께 유튜브와 같은 유통경로도 갖췄다. “이렇게 접근성이 쉬워지면 전도율이 높아져 장르가 견고해지겠죠. 그렇게 되면 전통에 대한 가치와 존중이 더 높아지리라 생각합니다.” 실험적 장르로의 변곡점, 그 이후 연출 첫 시작부터 그의 무대는 실험적이거나 과감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단순히 ‘유명한 연출가’가 되고 싶었다. 2000년도 공연 예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결정한 후 떠난 미국 뉴욕(New York)에 9∙11 테러가 터졌다. 살던 곳에서 불과 2~3분만 걸으면 분진을 볼 수 있었다. “그러한 내전이 일어나는 이유가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이전에는 나 자신에게 한번도 해보지 않은 질문을 하기 시작했죠.” 학부생 때는 손대지 않았던 전공책을 뒤늦게 읽기 시작해 유학 내내 사회학까지 공부했다. 작업 스타일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일을 계기로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그만의 작품 세계가 형성됐다. 그는 공연의 내용뿐 아니라 공연 이후의 사회적 영향도 고려한다. 관객들이 공연의 메시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끔 공연을 섬세하게 연출한다. “전통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과 함께 작품 안에 다루는 장애, 권력 관계에 대한 질문, 여성이나 장애를 묘사하는 방법들의 맥락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그는 연극을 통해 관객들에게 건강하고 생산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윤한솔 동문은 연출가를 꿈꾸는 한양대 후배들에게 사물과 사건, 그리고 스스로와의 ‘관계 맺음’을 토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드물게 학생들에게 ‘롤모델’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뜨끔한다"며 웃음을 보인 그는 연출가를 목표로 하는 후배들에게 많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극 연출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분명히 갖기 위해선 특별한 사물이든 사건을 충분히 경험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윤 동문이 준비 중인 다음 작품은 ‘이주와 정주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혁신적인 무대로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5-10 20

[동문]72초 웹 드라마, 알지 못했기에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것을 향한 끊임 없는 에너지" 빠른 비트를 배경으로, 주인공 도로묵 씨의 속사포 나레이션과 함께 72초의 짧은 리얼 다큐 드라마가 시작된다. 지난 5월 ‘나는 혼자 사는 남자다’라는 제목으로 포털 사이트 네이버에 처음 업로드 된 이후 각종 대기업의 러브콜이 쇄도하고 72초 드라마 포맷을 패러디한 영상도 잇따랐다. 1분 남짓한 짧고 임팩트 있는 웹 드라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연출가는 바로 우리대학 ERICA캠퍼스 프랑스언어문화학과 99학번 진경환 동문이다. ▲ 진경환 동문(프랑스언어문화 99)은 무대 공연에서 이제는 모바일 전문 영상 제작으로 주 영역을 옮겼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추구한다는 근본적인 방향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짧지만 임펙트 강한 웹드라마, 72초 TV드라마 진경환 동문(프랑스언어문화 99)은 무대 공연에서 이제는 모바일 전문 영상 제작으로 주 영역을 옮겼지만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추구한다는 근본적인 방향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72초 드라마 제작사 ‘72초TV’는 2010년 진 동문을 포함한 7명의 사람이 모여 만든 ‘인더비’라는 예술창작 집단에서 출발했다. 초기에는 실험적인 창작공연을 시도하는 공연전문 업체로 출발했으나, 모바일 시장의 성장에 맞춰 무대공연 대신 모바일 맞춤형 영상제작으로 관심을 돌리게 됐다. “모바일 사용 시간이 훨씬 길어졌지만, 모바일 맞춤형 드라마는 없더군요. 물론 TV드라마를 모바일로 볼 순 있지만 그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72초드라마’ 콘텐츠는 진 동문이 프랑스 유학 시절 재밌게 봤던 ‘Bref’라는 짧은 시트콤에서 영감을 받았다. 까날플루스(Canal +)채널은 저녁 6시부터 유료로 전환되는데 그 직전에 상영되는 짧은 드라마가 바로 ‘Bref’이다. 72초 티비는 2년간의 준비기간을 가지고 시범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이후 영상을 본 네이버와 CJ에서 협업을 제안했고 2015년 5월 드디어 공식 웹 드라마가 네이버TV에 업로드 됐다. 방영 직후 72초 드라마의 인기는 삽시간에 퍼졌다. 재밌다, 신선하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각종 대기업의 의뢰로 제작된 광고와 부산경찰서와 콜라보로 제작한 성범죄방지, 불량식품 근절 캠페인이 이어졌다. ▲ 진경환 동문은 72초 드라마 시즌1과 시즌2에서 주인공 도로묵 역할을 맡아 직접 연기를 선보였다. 오는 11월 방송 예정인 "두여자"에서는 연출에 주력하고 있다. 진 동문은 72초 드라마에서 각본, 연출, 편집 등 대부분의 작업을 도맡는다. 시즌1-2에서는 직접 연기까지 선보였다. “이야기 구성과 아이디어가 저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 테스트 영상에서도 제가 직접 연기를 해요. 정식 드라마는 배우 섭외를 하려고 했지만 적당한 사람이 없어 자진해서 했습니다.” 72초드라마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과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의 속마음을 리얼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혼자 사는 남자의 리얼한 일상, 누군가와 둘이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미용실에 갔을 때, 중국집에서 짬뽕을 시킬 때 혼자 상상했을 법한 이야기가 리드미컬하게 전개된다.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 사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저희는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공감을 중요한 포인트로 보면 오히려 이야기의 특색이 없어지니깐요.” 72초TV는 시즌2까지 총 16편의 영상을 선보였다. 지난 10월 5일부터 ‘오구실’이라는 두 번째 드라마가 시작됐다. 이 외에도 72초 뉴스와 사람들의 속마음을 소재로 한 “두 여자”라는 세 번째 시리즈를 구상 중이다. ▲ 누르면 72초드라마 시즌1로 연결됩니다. (출처 : 72초TV) 학창시절,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을 쫓다 언제나 수면이 부족한 상태라고 푸념하지만 자신이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기에 그 또한 싫지 않다는 진 동문. 문득 그의 학창시절이 궁금해졌다. “저는 학과 공부에는 큰 흥미가 없었어요. 대신 평소 관심 있었던 공연 분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죠. 뮤지컬, 콘서트 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이후 직접 공연기획 회사까지 만들었습니다.” 이후 진 동문은 2007년 에르스무스 제단에서 하는 장학제도를 통해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은 보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인정받아 한국인 중 유일하게 2년 전액장학금을 받고 유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진 동문에게 유학생활은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었던 최초의 여행이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유학생활을 통해 타인의 기준에 연연하는 것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 전까지 저 또한 남과 나를 저울질 하며 살고 있었어요. 하지만 외딴곳에 혼자 떨어지자 그전까지 있었던 기준들은 사라지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죠. 사실 무난한 선택은 훗날 안 좋은 결과로 돌아올지도 모르고 엉망으로 끝났던 선택은 더 나은 결과가 될지 모르는 일이에요. 그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기회가 된다면 후배들도 혼자 여행 해보길 바래요." 진 동문은 유학생활을 마치고 모교로 돌아와 유럽공연예술 수업을 시작했다. 교단에 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처음이라 주저했지만 이제는 학생들과 교류하며 얻는 즐거움이 훨씬 크다. “여섯 학기에 접어들면서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어요. 후배들에게 내가 알던 것을 공유하고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학생들로부터 자극 받을 수 있어 즐겁습니다.“ 이런 진 동문의 뒤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다. 바로 우리대학 김호영 교수(국문대 프랑스언어문화)이다. 김 교수는 학부시절부터 진 동문을 눈 여겨 봤다. 진 동문이 공연예술 쪽에서 일한다는 걸 알고 장학제도를 추천하고 본교 수업을 제안 한 것 역시 김 교수였다. “제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건 김호영 교수님이세요. 학부시절 들었던 학과수업, 2년간의 유학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과 현재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것도 교수님 덕분입니다.” 무엇이든 의문을 가지는 태도를 키우길 바라 ▲ 진경환 동문은 "수동적으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단 언제나 처해진 상황에 의문을 가지고 저항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누군가는 ‘모르는 것은 할 수 없고 새로운 것은 어려운 것’이라 받아들인다. 하지만 진 동문에겐 새로운 것은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저는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새롭게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재미있고 개성 있는 거죠. 알지 못하니까 가능한 거라고 생각해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고민하는 진 동문. 과거 공연기획사를 만들어 연출제작 피디로 활동한 바 있고 김창완, 심수봉 콘서트를 연출감독 하기도 했다. 유학 후에는 우연한 기회로 리쌍의 ‘TV를 껐네’ 뮤직비디오를 연출, 영상제작도 함께 했다. 진 동문은 창작자로서 언제나 저항하는 자세를 가질 것을 조언했다. “주어진 것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왜요?'하고 의심하고 저항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능동적인 에너지가 모여 자신의 사고를 형성하는데 큰 도움이 될 거에요." 덧붙여 안정적인 것을 쫓는 사회 풍토에 대해서도 입을 뗐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 안정적인 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돼요. 주어진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 오히려 더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을 만들지도 몰라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50년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세상은 그 변화의 주기가 더 짧아질 것입니다.” 진 교수는 앞으로 연출에 주력할 예정이다. “학생들도 가르쳐야 되고 기획도 해야 돼 앞으로는 연기는 그만할 생각이에요. 하지만 연기 이외에 촬영, 아이디어 구상, 연출 등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함께 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수정 기자 sj930212@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2014-11 05

[동문]관객이 주인공이 되는 연극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 드라마를 보다 보면 항상 답답한 순간이 있다.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은 항상 30c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벽을 치고 답답해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관객이지 배우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배우가 되어 직접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있다면 어떨까? 토론연극(Forum Theatre)을 통해 가능하다. 항상 답답했던 당신을 위해 소개한다. 토론연극을 통해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연출가, 김현정 겸임교수(예술체육대·연영)의 <찌로와 칠호>다. 꼬리표가 달린 외국인 노동자 연극 <찌로와 칠호>는 작은 가구 공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과 사건을 그리고 있다. 자신의 나라에서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한국행을 택한 외국인 노동자 ‘찌로’. 소위 ‘지잡대’를 나온 데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해 취업에 매번 실패하는 한국인 노동자 ‘칠호’. 이외에도 노동자를 관리하는 한국인 관리자와, 한국인 경리직원, 그리고 조선족 노동자와 귀화한 외국인 노동자까지, 다양한 등장인물이 함께 일하는 가구 공장은 서로 간의 불신과 오해들이 겹쳐 갈등이 쌓여있다. 각자의 꿈을 이해 받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깊은 상처들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갈등이 공연 내내 점점 고조되면서 극에 달하고, 결국 갈등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연극은 끝이 난다. 이 연극은 다소 무거운 소재를 주제로 삼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는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에 거론되고 있지만, 쉽게 다룰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소재를 다루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외국인 노동자를 사람이 아닌 하나의 기계로, 소모품으로 판단하는 작태를 보며 문제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우리사회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그들의 국적에 따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국적이 일종의 꼬리표가 되는 거죠.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공론화시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막상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를 연극으로 풀어내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문제에 대해 어떻게 극을 풀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그런 상황을 경험해본 적도 없었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결국 김 교수가 고안해 낸 해결책은, ‘칠호’를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의 20대를 대변하는 인물을 연극에 등장시킴으로써, <찌로와 칠호>를 단순히 외국인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구성해 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보통의 연극과 달리, <찌로와 칠호>는 결말이 없다. 기획된 연극이 진행되는 시간은 40분 정도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연극의 스토리가 극에 치달았을 때 끝난다. <찌로와 칠호>에 마무리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이 공연이 관객의 참여를 통해 종결되기 때문이다. 갈등의 최고점에서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과 배우들의 토론을 통해 수정방향이 정해지고, 수정방향을 제시한 관객이 직접 배우가 되어 극을 수정해 나간다. 김 교수는 이런 방식의 장점에 대해 설명한다. “이런 참여를 통해 현실의 문제점에 대해 공감할 수 있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직접 연극에 참여해보면 자신이 생각했던 대로 스토리를 이끌어 나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게 된다. 공연을 보면서 느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직접 참여했지만, 막상 마음먹은 대로 행동을 해도 다른 등장인물의 반응에 따라 오히려 더 갈등을 증폭시키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밖에서 보던 것과, 직접 연극에 들어와서 참여하는 것은 다릅니다. 생각한대로 극이 흘러가지 않죠. 결국 매번 결말이 바뀌고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에 정해진 결말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번 바뀝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는 있습니다. 불합리한 상황을 바꾸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거죠.” <찌로와 칠호>의 연극 구성 방식인 ‘토론연극’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토론연극’은 브라질의 연극이론가 아우구스토 보알(Augusto Boal)의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방법론에 기초하고 있다. ‘억압받는 사람들의 연극’ 방법론은 관객이 극의 주체가 되어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바꿔볼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는 연극 방식을 말한다. 이를 기초로 한 ‘토론연극’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연극 형식 중 하나로 관객과의 소통을 극대화하고 깊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찌로와 칠호> 공연은 16일에 시작돼, 벌써 세 번의 공연이 진행됐다. “생각보다 관객들의 반응도 너무 좋고, 참여도 활발해서 정말 기쁩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다. “주 관객층이 외국인 노동자다 보니, 연극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다는 점이에요. 저희가 이해를 돕기 위해 평소보다 말을 천천히 하고 있지만, 관객들의 한국어 수준에 따라 이해도가 크게 달라져서, 되도록이면 액션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래로 향하는 연극 이번 연극은 김 교수가 속해 있는 극단 ‘해’와의 공동작업을 통해 탄생했다. 극단 ‘해’는 1997년 결성된 이래로 교육연극 및 치유연극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집단으로, ‘토론연극’을 주된 작업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 “논문 주제를 고민하던 중에 극단 ‘해’의 토론연극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어요. 연극을 통해 많은 가치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흥미로워서 바로 워크샵에 참가했는데, 그 후 토론연극에 관해 논문도 쓰고 활동도 참가하다 보니 어느덧 극단 ‘해’와 함께하게 됐죠.” 이후 김 교수는 학교폭력에 관한 내용을 담은 <양들의 침묵>시리즈, 양성(兩性)문제에 관한 토론연극 <궁(宮), 금(禁), 해(解)>, 기지촌 여성 문제에 관한 <숙자 이야기>등,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를 담은 토론연극 공연들을 제작해왔고, 연극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김교수는 연출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도 한마디 조언을 전했다. “우선, ‘내가 즐거워야 한다’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안돼요. ‘나만 즐거워서는 안 된다”가 더 중요합니다. 즉,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연극을 통해 뭔가 유의미한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의식을 가지고 연출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10월 16일에 시작된 공연 일정은, 12월 7일 서울 시청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릴 예정이다. 서울시와의 공조를 통해 진행되는 2달간의 일정은 이렇게 마무리 되지만,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문제가 지방에서 더욱 심각한 만큼, 지방에서의 공연추진도 계획되고 있다. 신경 쓰지 않으면 누구나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 <찌로와 칠호>가 전하는 바는 명확하다. “이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 정우진 기자 wjdnwls@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권요진 기자 loadingman@hanyang.ac.kr

2014-10 22

[동문]예술은 인권이다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길" 과거 피겨스케이팅, 수영, 리듬체조 등의 스포츠는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끄는 종목은 아니었다. 연습 환경이 척박했던 탓에 좋은 선수가 나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녹록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계속된 애정과 노력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낸 선수들 덕에 우리는 피겨 스케이팅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수영 경기에 집중하게 됐다. 연출가 남인우(연영.93) 동문 역시 아동청소년극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노력으로 아동청소년극 불모지인 한국에서 세계의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는 ‘가믄장아기’를 탄생시켰다. 검은 나무 그릇으로 자란 '가믄장아기' 이야기 거지부부가 결혼해 딸 셋을 낳았다. 검은 나무 그릇으로 셋째 딸을 먹여 살린 부부는 셋째를 '가믄장아기'라 불렀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차츰 부를 쌓아 부자가 된 아버지는 어느 날 세 딸에게 누구 덕에 먹고 사는가를 물었다. 첫째와 둘째는 부모 덕에 먹고 산다고 답하지만 가믄장아기는 스스로 행복을 가꿔갈 것이라는 의미로 자기의 배꼽 밑 자궁 덕이라고 답하고, 화가 난 아버지는 셋째 딸을 집에서 내쫓는다. 가믄장아기는 제주도의 구비신화 '삼공본풀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가믄장아기가 탄생하면서 시련을 겪고 역경을 이겨내는 줄거리의 연극은 단순하지만 배우들이 무대에 올라가 있는 70분 동안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2003년 서울 및 강화 지역 복지시설에서 처음으로 순회공연을 시작한 가믄장아기는 일본 오키나와 세계아동청소년 연극축제(International Festival OKINAWA for Young Audience)의 초대를 시작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제 아동청소년연극제(International Kinder und Jugend theater festival), 호주, 오스트리아, 카메룬 등 세계 각지의 청소년극 축제에 초대받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아동청소년극이 꾸준하게 공연되는 일이 거의 없는 국내에서도 가믄장아기는 십 년이 넘는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았다. 가믄장아기가 여타의 아동극과 달리 명확한 교훈을 주는 대신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은 관객층을 청소년에서 성인까지 아우를 수 있는 매력이다. 타인, 특히 남자에게 도움을 얻어 살아가는 여성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여성 주인공인 가믄장아기의 모습 또한 틀에서 벗어났다. 이는 남 동문이 삼공본풀이의 매력을 느끼고 극화 작업에 착수하게 된 계기기도 하다. 처음 가믄장아기에 관한 평론을 쓴 연극 석학 파트리스 파비스(Patrice Pavis)는 연극이 갖고 있는 간결성과 역동성에 주목했다. 배우 넷과 소품 몇 개만이 올라가는 무대는 가믄장아기의 일생이라는 대서사시를 한 두개의 이미지로 응축시킨다. 노래와 춤, 악기연주까지 섭렵한 배우들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역동적인 무대를 꾸민다. 남 동문은 극중 연극적 상상력이 가미된 장면들을 설명했다. “비바람을 뚫고 걸어나가는 장면을 표현하기 위해 두 명의 배우가 걸어가는 한 배우의 옷자락을 마구 흔들어요. 그럼 바람이 부는 거에요.” 막대기를 들고도 총이라 하면 총이 되는 연극의 특성을 극대화한 표현들은 관객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줬다. 모두가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남 동문은 학부 시절 처음으로 청소년들과 함께 연극을 만들었다. "97년 즈음 학교에서 폭력이나 오토바이 절도로 보호감찰 대상이 된 비행청소년들과 연극을 하는 봉사활동을 했어요. 연극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다 보니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무서운 겉껍데기가 벗겨지고 연극을 좋아하는 조그만 꼬마들만 남았어요. 짧은 일정이었지만 연극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됐죠." 그 날을 계기로 아동청소년극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남 동문은 해외의 연극들에 매료돼 직접 연출에 나선다. 1948년 제 3회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 선언은 다음과 같은 조항을 포함한다. "모든 사람은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하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의 진보와 그 혜택을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 대학생인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문화생활은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청소년들이 문화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성인에 비해 한정적이다. "예술은 인권의 문제에요. 누구나 차별 받지 않아야 하는데 공연을 보러 온다는 것 자체가 정보력이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에요. 덴마크는 모두가 헬싱키로 가서 공연을 볼 수 없으니 극단들이 직접 순회 공연을 하러 가요. 예술을 소비가 아닌 청소년의 권리와 인권의 문제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남 동문은 예술을 향유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봉고차에 소품을 싣고 찾아가는 연극 상영을 하기도 했다. 노력이 늘 순탄하게 결실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아동청소년극에 대한 편견 탓에 대중과 평론가들은 작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아동극이 개미와 베짱이, 이솝 우화처럼 교훈을 주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해서 극의 예술적인 가치를 인정받기가 힘들죠. 하지만 예술은 남을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남 동문이 세계 각지의 페스티벌을 다니며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아동극 선진국에서는 아동극과 성인극의 구별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청소년 대상 상연을 상상도 할 수 없는 동성애, 성매매, 마약, 폭력 등의 주제도 무대에 올려요. 아동극인만큼 관객을 만나는 극의 태도 차이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아동극도 예술이라고 전제하기 때문에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보여주고 생각하게 만들죠." 남 동문은 국내에서 아동청소년극이 꽃을 피우며 당연하게 향유되기 위해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첫째는 역시 예술가들이 좋은 작품을 만드는 거에요. 그리고 둘째는 좋은 작품들을 기반으로 국가의 도움을 통해 청소년들이 예술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되는 거에요. 스웨덴의 경우는 18세 미만에게는 값을 받지 않아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예술을 권리적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죠."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기를 연출가로서의 최종적인 목표에 대해 묻자, 남 동문은 잠시 대답을 멈췄다. "그러고 보니 최종적인 목표에 대해선 생각을 안 해봤네요. 그런 건 없어요.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찾는 거죠." 그러나 남 동문은 곧 자신이 하고 싶은 바에 대한 답을 이어갔다. "저에게 정체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아요. 책도 쓰고, 방송 진행자도 했고, 판소리극, 어린이극, 성인극, 국악에 관현악극까지 합친 극을 만드니까요. 전 영화도 찍고 싶고 안무도 짜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어요. 제 목표가 있다면, 예술을 좋아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서 형태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모두 도전해보는 것이에요." 다양한 극 연출가로 이름을 날린 남 동문은 대학 4년 동안 배우나 기획의 직책을 맡은 적은 있었으나 연출을 해 본적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연출가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 역시 실무 경험보다는 마음가짐에 관한 이야기였다. "연출을 잘하려면 타인의 삶에 관심이 많아야 됩니다. 당장 학점이나, 스펙이나 연출의 경험에 연연해 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을 하길 바랍니다. 사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기 떄문에 학생들에게 인문학 책을 자주 권해요. 연출가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 사람,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하는 것입니다." 학력 및 약력 남인우 동문은 우리대학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 석사를 수료했다. 연극 <사천가>, <억척가>, <달도달도 밝다>, <재주많은 다섯 친구>, <소년이 그랬다> 등을 연출했다. 소리꾼 이자람씨와 함께한 <사천가>와 <억척가>는 시카고 월드뮤직페스티벌, 뉴욕 APAP 아트마켓, 아비뇽페스티벌 등에 초청되었으며 프랑스 최고 권위 극장인 리옹 국립민중극장에서는 전석 매진을 기록하였다. 2012년 <재주많은 다섯 친구>로 서울어린이연극상 연출상을, 2004년 <가믄장아기>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현재 극단 북새통의 예술감독 겸 상임연출가로 활동 중이다. 최정아 학생기자 shaoran007@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조유미 사진기자 lovelym2@hanyang.ac.kr

2014-03 20

[동문]<인생> 제 3막. '도전'

오페라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고전적인 의상, 오케스트라, 성악가, 불어. 이 단어들은 오페라를 한 층 더 어렵고 ‘오래된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오페라는 ‘즐거운 것’이라고 말하는 연출가가 있다. 어려운 오페라가 아닌 ‘영화처럼 펼쳐진 오페라’를 만드는 김숙영 동문(연영∙박사과정 수료). 김 동문은 오늘도 ‘펼쳐진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하고 도전한다. 원작을 고집하지만, 도전은 멈추지 않는다 지난 3월 7일, 3일간 공연 끝에 막을 내린 오페라 <라보엠(La boheme)>은 ‘영화같이 펼쳐진 오페라’라는 극찬을 받았다. 기존 오페라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들이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으면서 ‘오페라는 어렵다’는 편견을 깬 것. 이번 <라보엠>의 평과 다르게 김 동문은 ‘원작을 고집하는 연출가’로 유명하다. 원작을 고집하는 연출가가 작품에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이 다소 어색하다. 김 동문이 원작을 고집하는 방법은 ‘당시 만들어진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지금 시대에 옮겨와도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고전이에요.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당시 써진 그대로 본다고 단순히 옛날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죠.” 김 동문은 현대의 감각에 기술적인 면에서 ‘옛 것’이라고 느끼지 않을 연출을 꿈꿨다. 원작의 배경을 바꾸거나, 바느질 하는 여자를 다방 레지로 직업을 바꾸는 것 같이 원작을 ‘훼손’하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원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경, 인물의 성격, 직업보다 인물의 내면이나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야기의 현장감과 사실감을 살려 작품에 감정이 더 몰입하도록 하고 싶었죠.” 37세, 인생 2막이 시작되다 김 동문은 성악과를 졸업하고 남편의 해외 연수로 미국에 갔다. 김 동문이 오페라와 뮤지컬을 공부한 계기는 ‘두 딸의 반응’ 때문이었다. 싱가폴 오페라단에서 활동을 할 때였다. “어느 날 딸들하고 오페라를 보고 얼마 후 뮤지컬을 보게 됐어요. 아이들은 뮤지컬에 반해 일주일 내내 뮤지컬 이야기만 하더라고요. 아이들에게 뮤지컬이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엄마 음악은 재미 없는데 뮤지컬은 재미있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이 충격이었어요. 당시 오페라 가수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딸들을 보면서 관객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만족에 성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김 동문이 고민에 빠져있을 때 예술계에 종사하는 유럽인들을 만나게 됐다. 김 동문은 유럽인들이 뮤지컬을 ‘예술’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당시 한국에서는 뮤지컬을 오페라보다 하위 예술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였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오페라와 뮤지컬의 경계도 거의 없었다. 김 동문은 뮤지컬의 고장 미국에서 뮤지컬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오페라를 재미없어 하던 두 딸에게 ‘오페라는 재미있다’라는 것을 알려주려면, 오페라와 다른 뮤지컬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오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오페라만 연구 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은 뮤지컬이었다. 쉽지 않기에 '도전'이다 김 동문은 다시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두 딸 아이의 엄마로서, 여자로서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유학은 그 나라의 문화와 생활과 사람을 배우고 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김 동문은 애리조나 주에서 공부 하기로 선택했다. 하지만 김 동문의 유학생활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당시 애리조나 주는 인구의 80%가 백인인데다,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김 동문이 입학한 애리조나 주립대학에 동양 여성이 입학하고 졸업한 것도 김 동문이 최초였다. 음악 역사를 가르치던 교수는 동양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김 동문은 단 한번도 결석한 적이 없었고, 과외 점수를 인정하는 과제는 무엇이든 제출했다. 시험기간이면 2주 전부터 두 시간만 자가며 공부했다. 결국 음악 역사 수업에서 A를 받았지만 교수는 동양인인 김 동문이 1등을 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추가 과제를 내줬다. 최종 성적이 나오기 이틀 전, 교수가 F학점을 통보한 것. 김 동문이 제출한 과제 중 한 문장이 다른 논문을 표절했다는 것이다. 김 동문은 교수를 찾아가 F학점만은 거둬달라며 무릎까지 꿇었다. 연구실에서 나온 김 동문은 계단 구석에 앉아 울었다. 모든 상황이 서러웠다. 김 동문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차별을 넘어 오페라∙뮤지컬 공연학 석사를 취득했다. 3년만의 졸업, 그녀의 졸업 학점은 4.0만점에 3.93이었다. 동양 여자, 김숙영이 도전하는 법 김 동문이 미국에서 유학할 당시, 미국에서는 동양 여자가 뮤지컬 배우를 하기란 굉장히 힘들었다. 영어로 연기를 잘 해낼 수 없을 것이고, 제작진과 배우들 간 원활한 의사소통이 힘들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동양 여자가 할 수 있는 배역도 많지 않았다. 작품 중 못생긴 동양여자 역할이나 푼수 같은 역할들뿐이었다. 김 동문은 뮤지컬 캐스팅에서 번번히 떨어지자 그녀가 잘 부를 수 있는 노래로 공연을 열어 100명이 넘는 음악감독과 연출가들을 초대했다. “제 노래를 들어보지도 않고 ‘동양 여자’에 대한 편견으로 배역을 맡을 수 없다는 것에 정말 화가 났어요. 제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직접 공연을 열 수 밖에 없었죠.” 김 동문의 첫 작품은 뮤지컬 <록키 호러 픽쳐쇼(Rocky Horror Picture Show)>. 김 동문의 노래 실력을 본 연출가가 김 동문을 위해 작품에 없는 배역을 새로 만들었다. 김 동문은 연습 시간이 아니더라도 모든 연습에 참여해 다른 배우들의 연습을 참관했다. 물론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다. 영어로 대사를 아무리 열심히 외워도 리허설 무대에 서면 금세 대사를 잊었다. “영어로 대사를 외우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꼼꼼히 외워도 리허설 무대에만 서면 대사를 자꾸 잊더라고요. 딱 100배만 더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안될 때 억울해 하자고 다짐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계속 해보니까 불가능한 것 만은 아니더라고요.” 김 동문의 성실함을 본 연출가는 어떤 배역이더라도 김 동문을 무대에 세웠다. 이후 <시크릿가든>, <사운드 오브 뮤직>, <왕과 나> 등의 작품에서 배우로서뿐 만 아니라 음악감독, 의상, 조연출 등으로 활약했다. 2010년 애리조나 뮤지컬 어워드(Arizona Musical Award)에서 베스트 뮤지컬상 및 음악부분 특별상을 수상했다. 마침내 미국은 그녀의 능력을 인정했다. 아직도 도전은 남아있다 이제 막 무대를 끝마친 김숙영 동문. 그러나 여전히 바쁘다. 다음 작품은 오페라 <박쥐>. 싱가포르 오페라단에서 <박쥐> 연출을 맡아줄 것을 제의했다. 내년에 공연할 작품들도 이미 계획돼 있다. “연출뿐 만 아니라 대본도 쓰고 있습니다. 아주 훌륭한 창작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김 동문은 후배들에게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늦은 나이에 유학을 선택하고 끊임 없이 새로운 도전을 해온 김 동문의 조언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김 동문은 한국에서 많은 작품들을 연출하면서도 우리대학 연극영화과 박사과정에 등록해 올해 수료했다. 이미 3개(음악학, 오페라∙뮤지컬, 음악연출)의 석사학위가 있음에도 김 동문은 배우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김 동문은 ‘오페라를 즐겁게 하는 연출가’가 되고 싶어한다. “나중에는 오페라 소극장을 운영하고 싶어요. 오페라는 공연장이 커서 관객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데, 가까이에서 극과 음악과 연기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싶거든요. 관객들을 정말 즐겁게 만들 수 있는 연출가가 되고 싶어요. 단순히 재미있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 오페라를 보고 관객들이 공감하고, 기억에 남아 즐거움을 주고 싶은 연출가가 되고 싶습니다.” 학력 및 약력 김숙영 동문(연영∙박사과정 수료)은 우리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음악대학원에서 음악학 석사를 수료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성악가로는 드물게 뮤지컬∙오페라 공연학과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음악연출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미국에서 뮤지컬 <록키호러쇼(Rocky Horror Show)>, <왕과 나> 등에 출연하며 뮤지컬 배우로 활동했다. 2010년 애리조나 뮤지컬 어워드(Arizona Musical Award)에서 베스트 뮤지컬상 및 음악부분 특별상을 수상하며 음악감독, 조연출, 배우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1년 한국에 귀국한 후 오페라 <운수 좋은 날>, <라 트라비아타(La Trabiata)>, <라보엠(La boheme)> 등 10여개가 넘는 작품을 연출했다. 작년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서울경제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싱가포르에서 오페라 <박쥐>를 연출할 계획이다. 제 민 학생기자 ashton17@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박보민 사진기자 marie91@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