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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 08

[동문]시흥시립합창단 신임 지휘자에 송성철 동문

경기 시흥시는 지난 12월 28일 시흥시청 부시장실에서 올해부터 시흥시립합창단을 이끌어갈 신임 지휘자 송성철 동문(작곡 92)에 대한 위촉식을 가졌다. 이번 시흥시립합창단 지휘자 모집 공모에는 전국에서 17명이 응시했다. 그 중 우수한 실력을 갖추고 단원과 소통할 수 있는 송성철 동문을 최종 선발했다. 임기는 2년간이다. 송성철 동문은 한양대학교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만하임 국림음대 작곡과와 지휘과 석사학위를 수여받았으며, 파주시립예술단 지휘자와 성남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송 동문은 “시흥시립합창단은 발전가능성이 무척 크다”며 “앞으로 더욱 발전하는 시흥시립합창단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 2015년 7월 남‧여 혼성으로 창단한 시흥시립합창단은 41명의 젊은 음악인들로 구성돼 있으며, 시민 참여형 뮤지컬 「1721 호조벌」, 합창뮤지컬 「소원택시」 등 다양한 장르의 합창음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며 시민들로부터 호응을 얻고 있다. ▲경기 시흥시립합창단 신임 지휘자로 위촉된 송성철 동문(왼쪽) (사진= 중도일보)

2018-01 24

[학생]마음을 담아 소리를 내다

하모니카에는 억지가 없다. 작은 호흡에도 소리가 난다. 박종성(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 씨가 하모니카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이유다.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 '세계 하모니카 대회' 등 10군데가 넘는 곳에서 수상의 영예를 안고, 한양대에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는 박종성(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 씨를 만났다. 내 삶의 든든한 버팀목, 하모니카 하모니카는 크기가 작아 휴대하기 좋고, 들숨과 날숨으로 간편하게 연주할 수 있는 자그마한 관악기다. 이 악기와의 만남은 박 씨의 초등학교 시절, 피아노 교사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시작됐다. “여러 악기를 연주해봤지만, 하모니카를 불 때 제일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 제 모습이 좋았죠. 하모니카 선생님과의 추억들도 꽤 많아서, 평생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하모니카와 함께 하고 싶었어요.” 박 씨는 처음 참가한 2002년 아시아-태평양 하모니카 대회에서 청소년 트레몰로 독주 부문 금상을 수상하며 부각을 나타냈다. “제가 상을 받을 때 최광규 선생님의 우는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선생님의 사랑에 처음으로 보답한 느낌이었어요. 좋은 연주자가 되면 선생님께 음악으로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고등학교 시절 작곡 공부를 시작했다. “연주 곡 대부분이 다른 악기의 곡을 편곡해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수준을 높이기 위해 하모니카만을 위한 곡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박종성 씨는 "하모니카를 부는 그 순간이 진실된 나의 모습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과 하모니카 전공으로 입학하며 국내 대학 하모니카 1호 전공자가 됐다. 단과대학 전체 수석으로 졸업 후, 꾸준히 대회에 참가한 박 씨는 ‘2005년 세계 하모니카 독일대회 트레몰로 독주 3위’, ‘2006년 일본음악 연주제 1위’ 등 좋은 성과를 냈다. 한편, 이 과정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뒤따랐다. 하모니카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악기라는 점에서 생긴 편견 때문이었다. “하모니카로 뭐 먹고 사냐는 둥, 할아버지가 부르는 거 아니냐는 둥 처음엔 오기가 생겨 그 편견을 깨려고 했어요. 지금은 좋은 연주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려질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2009년 세계 하모니카 대회 트레몰로 독주 1위’을 석권한 박 씨는 당시 자작곡 ‘런 어게인(Run Again)’을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어머니의 별세와 함께 다른 좋지 않은 일이 겹치며 슬럼프에 빠진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곡이다. 이외에도 자작곡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니까’는 박 씨가 특히 아끼는 곡이다. “여러 사건이 해결 안 된 시점에서 지인에게 터놓고 고민을 이야기하던 중 영감을 받았어요. ‘뭐 어때? 너 마음이 제일 중요하지’라는 말에 힘을 얻었고, 30분 뒤 이 곡을 완성시켰죠.” ▲KBS 더 콘서트 하모니카 연주영상 끝없는 도전과 지휘공부의 시작 각종 영화음악,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등의 드라마음악, ‘2016 전주세계소리 축제’ 참가 등 박 씨는 꾸준히 다양한 장르의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하모니카는 여러 장르에 잘 어울려요. 덕분에 고등학교 시절엔 클래식 작곡 공부, 대학교 때는 재즈, 탱고, 펑크, 국악 등 다양한 장르를 공부할 수 있었죠.” 장르에 우열을 가릴 수 없다는 박 씨는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장르와 공부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작곡 공부를 통해 곡을 만드는 원리를 깨달았고 연주적으로 도움을 받았다는 박 씨는 더 높은 이상을 꿈꿨다. 그 과정 속에서 지휘를 알게 됐고, 현재 한양대 음악대학원에서 최희준 교수(관현악과) 사사로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자와 듣는 귀, 카리스마가 전부인 줄 알았는데 지휘는 이론, 역사, 인간의 심리, 무대 음향 등 모든 것을 다 알아야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같은 교수님 밑에서 박사과정도 공부할 예정이에요. 이제는 지휘자로서 콩쿨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부산 조수미 스페셜콘서트에 게스트로 참가한 박종성 씨(왼쪽). (출처: 박종성 페이스북) 영원히 무대 위 행복한 연주자가 되길 이토록 뛰어난 연주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박 씨는 “무대에서 즐겁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 전과 후 청중들의 모습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무대 위에서 박 씨가 느끼는 행복이 고스란히 청중들한테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여전히 음악공부를 지속하는 그의 모습은 하모니카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취미가 일이 될 경우 즐기기 어렵다’는 말의 반례를 보여준다. 작은 악기가 만든 기적에서, 또 다른 음악세계를 내보일 박 씨의 행보가 기대된다. 글/ 정민주 기자 audentia1003@hanyang.ac.kr 사진/ 이진명 기자 rha925@hanyang.ac.kr

2016-06 15

[동문]타인을 통해 소리 내는 조용한 조율자, 오페라 예술을 완성하다

오페라 무대 아래, 객석에선 잘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 핏(Orchestra pit)으로 무대 위 연기자, 악기 연주자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조용히 팔을 휘저으며 웅장한 오케스트라와 아름다운 아리아를 조율하는 ‘오페라 지휘자’가 있기 때문. 수 없이 많은 소리를 조율해야 하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는 것이 오페라 지휘자의 숙명이다. ’지휘자는 자신의 소리를 타인을 통해 내는 직업’이라는 자세로 17년 째 활동하고 있는 국내 유일 오페라 전문 지휘자 양진모 동문(작곡과 85)을 만났다. 조용한 조율자, 오페라 예술을 완성하다 ▲ 양진모 동문(작곡과 85)과 지난 3일 '예술의 전 당'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페라 전문 지휘자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양 동문 일반적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오페라의 지휘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오페라 지휘자는 연주만 조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 “오페라에선 오케스트라뿐만 아니라 성악가들의 노래와 언어적 표현, 무용 팀까지 종합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해요.” 양 동문은 오페라의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오페라 지휘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언어’라 말한다. 단순 기악이 아닌 언어를 통해 대사를 전달하는 과정이 오페라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 “언어가 어떻게 감각적으로 표현됐는지, 작곡가가 음악을 통해 언어를 어떻게 전달하고자 했는지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표현해 내는 것이 오페라 지휘자가 해야 할 일이에요.” ’지휘자는 자신의 소리를 타인을 통해 내는 직업’이라는 양 동문. 지휘자가 돋보여선 안 된다는 뜻이다. “지휘자를 영어로 ‘마에스트로’라고 해요. ‘권위’를 상징하는 단어지만 ‘군림’을 뜻하지는 않아요. 그런 의미에서 협력적 리더가 돼야 하죠.” 양 동문은 오페라의 전 요소가 고루 어울리는 무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때문에 아름다운 소리를 위해서는 오케스트라, 성악가와의 소통은 필수다. 특히 오페라는 미술, 음악, 무용 등 예술의 여러 장르가 하나의 무대 위에 올라가는 만큼 완성이 쉽지 않다. 하지만양 동문은 구성원 모두를 공동의 작업자로 생각하며 17년 째 오페라의 길을 걷고 있다. ’하고 싶다’는 끈을 놓지 않는 것 “집안에서 반대가 굉장히 심했어요. 정말 어렵게 입학했죠.” 집안의 반대에도 자신이 하고 싶은 지휘 공부를 위해 한양대 작곡과로 입학한 양 동문. “대학 때는 하고 싶은 것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됐단 생각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지휘자 공부의 일환으로 음대 소속 합창단인 ‘콘서트 콰이어’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했고 관현악과 학생들과 챔버 오케스트라를 꾸리기도 했다. “결국 어떤 일을 하든지 열정을 갖는 게 제일 중요해요. ‘하고 싶다’는 끈을 놓지 않고 계속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그러면 현실적인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돼요.” 양 동문도 현실적인 문제로 졸업 후 잠시 교편을 잡은 적이 있다. 하지만 곧 이탈리아 유학을 택했다. 열정은 현실을 이기기 때문. “지금 당장 얼마나 잘하고 못하냐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누가 ‘끝까지 끊을 놓지 않는가’. 그 싸움인 것 같아요.” 밀라노의 베르디 국립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난 양 동문은 당시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살았던 때라고 회상한다. “생각해보면 대학 시절과 유학 시절에 가장 열심히 살았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그 설렘만으로도 기뻤거든요.” 오페라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유학시절의 경험 때문이다. “원래 오페라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유학 시절 처음 같이 일을 했던 지휘자가 오페라 전문이었어요. 그의 밑에서 일하면서 많이 배웠죠.” 그리고 지난 2000년, 양 동문은 예울음악무대의 초청을 받아 국립중앙극장 소극장에서 조르다노의 <5월의 마리아> 지휘를 맡게 된다. 이 무대를 계기로 현재까지 국내 유일의 오페라 전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오페라를 좋아하고 오페라를 따라가자 자연히 길이 생겼다는 양 동문이다. ▲ 양진모 동문의 지휘 아래 지난 3일 예술의 전당에서 <국립 오페라 갈라> 공연이 진행됐다. (출처 :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지휘자로서의 여정 “한국인의 정서에 극 음악이 잘 맞아요. 그렇지만 국내에선 오페라 시장이 활성화되지 못했죠. 이에 반해 뮤지컬은 많은 관객이 찾고 있어요. 뮤지컬이 오페라에서 파생된 만큼 오페라도 대중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양 동문은 한국인의 정서가 ‘어우러짐’을 중요시한다고 했다. 오페라는 ‘작품’을 뜻하는 라틴어 ‘Opus’의 복수형으로 ‘여러 작품이 한데 어우러져 있다’는 뜻이다. 그 이름에서부터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장르라는 게 양 동문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그의 손을 거친 오페라 작품은 60여 편. 모든 공연이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다양하고 의미 있는 오페라 콘텐츠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해에는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라는 작품을 한국에서 초연했어요. 오페라 책에서나 봤던 공연이라 굉장히 즐겁게 준비했죠." 더 많은 이들이 오페라를 찾는 날까지 대중화를 위해 노력하겠단 양 동문. 그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 양진모 동문은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선 여정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글/ 박성배 기자 ppang1120@hanyang.ac.kr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 최민주 기자 lovelymin12@hanyang.ac.kr

2016-05 10

[동문]‘국내 유일 오페라 전문 지휘자’, 양진모 동문

머니투데이 5월 10일자 <국내 유일 오페라 전문 지휘자 양진모의 오페라 감상 ‘꿀팁’> 기사에는 한양대 음악대학 작곡과 85학번 동문인 양진모 지휘자가 소개됐다. ▲ 코레아나 클래시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동시에 ‘국내 유일’ 오페라 전문 지휘자인 양진모 동문. 한양대 음악대학 작곡과에서 지휘를 전공했다. (이미지출처: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양 동문은 한양대에서 지휘를 전공한 후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 시에나 키지아나 아카데미와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에서 오케스트라 지휘과 과정을 졸업했으며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오페라 지휘를 맡았다. 실력을 인정 받아 지난 2014년에는 제7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에서 지휘 부문 예술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는 양진모 코레아나 클래시카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인 동시에 ‘국내 유일’ 오페라 전문 지휘자다. 그에게 붙여진 최고의 수식어에 걸맞게 양 동문은 무려 17년 동안 오페라를 전문적으로 지휘한 베테랑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에는 5월 6일 개막한 ‘제7회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국립오페라단의 갈라프로그램 지휘자로 관객들에게 풍성한 무대를 선사한다. 기사에는 오랫동안 오페라와 삶을 같이한 그가 알려주는 ‘오페라 쉽게 감상하는 방법’이 설명돼 있다. 그가 추천하는 방법은 가장 먼저 사전정보 파악이다. 줄거리와 배경들을 미리 숙지하면 오페라를 보며 느끼는 감동이 배가 된다는 것. 다음에는 여러 영상을 찾아보길 권했다. 같은 극이라도 버전에 따라 무대를 비교해보는 재미, 그리고 취향에 맞는 오페라를 찾을 수 있다. 이밖에도 입문자들이 감상하면 좋을 오페라, 오페라에서 높치지 말아야할 관전 포인트, 한국 오페라 시장과 관객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 등을 풀어놨다.

2015-06 10

[동문]함께 노래하는 한양인의 꿈

보다 많은 이들이 합창을 통해 성장할 수 있기를 우리대학 교양강좌인 대학합창은 모든 학생들이 졸업하기 전, 꼭 한 번 수강하고 싶어할 만큼 매우 인기가 높다. 대학합창 수업은 우리대학 교가를 배우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수업을 듣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교가를 불러봄으로써, 학생들은 한양이라는 이름의 자부심을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긴다. 함께 노래하는 시간 속에서 나이도, 전공도, 살아온 삶도 모두 다른 학생들은 한양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다. 대학합창을 지도해 오며 음악으로 하나되는 한양을 만들어 온 김진성 동문(작곡.75)은 이제 ‘함께한대 동문합창단’의 지휘자가 돼 더 큰 한양 가족을 만드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려 한다. 합창의 매력을 알려주는 선생님 김진성 동문은 1997년부터 지금까지 대학합창 교과목을 통해 많은 학생들에게 합창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대학합창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이 음악을 배우는 것, 정서적으로 건강해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도 학생들을 서로 많이 만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컴퓨터나 핸드폰, 스마트폰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기계와 더 친해졌잖아요. 기계를 배제하고 사람들간의 소통을 지향하고 싶었으니까요.” 수강생들은 수업과 별도로 각 조별 연습 시간을 가져야 하고 지휘자와 반주자도 직접 선정해 4부합창을 완성시켜야 한다. “처음에는 학년도, 전공도, 성별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서로 어색하고 어려워하죠. 평가를 받기 위해, 공연을 완성시키기 위해 나아가는 가는 과정 속에서 때로는 부딪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 협동하려는 마음이 싹트는 것 같아요.” 처음 대학합창 강의가 개설됐을 때는 지금처럼 남학생과 여학생을 분리하지 않고 수강신청을 받다보니 160명 규모의 수업에 여학생이 20명뿐인 적도 있었다. 수업을 위해서는 혼성합창을 해야하므로 지금은 남학생과 여학생의 수가 같도록 성별에 따라 수강신청을 분리했지만 김 동문은 합창을 하고 싶어하는 남학생들을 그냥 둘 수만은 없었다. 김 동문은 더 많은 학생들이 합창에 참여할 수 있도록 2001년도에 대학합창 수업을 듣던 남학생들을 모아 남성합창단을 창단했다. 이 남성합창단은 작년 가을, 우리대학 중앙동아리로 승격되었고 현재는 숙명여대나 이화여대 합창단과 함께 공연을 하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남성합창단을 만들면 대학합창의 인기를 등에 업고 학생들이 굉장히 많이 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여학생이 없다는 것 떄문에 처음에는 학생들이 잘 모이지 않았죠.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합창단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제는 제가 손을 떼려고 해도 많은 사람이 저보고 떠나지 말라고 하네요.” 학교와 동문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되어 대학합창을 강의하는 동시에 김 동문은 음대 동문회 사무국장과 동문회장을 역임하며 동문 네트워크 형성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동문회 활동을 하다보니까 막연히 동문이라는 이름으로 회비만 내게 하고 사람들 사이의 유대관계를 만들어주지 못하는 것이 항상 아쉬웠어요. 성공한 동문들이 학교에 많은 기여를 하는 것도 좋지만 학교를 계속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전부터 동문합창단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는데, 이번에 함께한대에서 합창단 단원들을 먼저 선발하고 저에게 지휘를 부탁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몸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함께한대 단장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고 계세요.” 함께한대 동문합창단(이하 ’동문합창단’)은 동문 봉사 네트워크인 함께한대에서 동문들을 모아 새롭게 시작하는 합창단이다. 68학번부터 대학원 재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이루어진 단원 90여명이 함께하고 있다. 단원들은 이번달 20일 백남음악관에서 열릴 함께한대 창립총회 공연과 10월에 있을 동문 자선모금행사 공연을 준비해 나가며 조금씩 합창단의 틀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지금은 2주에 한 번씩 ITBT에 위치한 다솜채플실에서 연습을 진행하지만 합창단의 틀이 갖추어지면 더욱 멋진 무대를 위해 매주 연습을 할 계획이다. 아직 시작단계인 만큼 김 동문의 어깨가 더욱 무거울 터. 하지만 김 동문은 합창의 힘을 믿기에 도전이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 “합창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잖아요.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피아노 선율에 맞춰 노래를 하니까 말이에요.” 김 동문은 대학합창을 오랫동안 강의한 경험을 바탕으로 동문합창단의 첫걸음을 이끌어가고자 한다. “아직 시작단계이지만 모두가 음악에 대한 열정과 학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합창단의 앞날은 희망적입니다. 앞으로는 함께한대가 봉사단체이니 만큼 그 뜻에 따라 봉사하는 기회를 많이 만드려고 합니다. 이 합창단이 계속된다면 동문들에게 소속감을 주면서 만남의 장이 되는 모임이 될 거에요. 더 나아가 학교와 동문의 가교 역할을 하는 단체, 그리고 한양대학교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합창은 나의 생명 작곡과에서 합창을 전공하고 합창 지휘를 계속 해온 김 동문은 “합창은 자신의 생명”이라고 했다. “지휘를 하다보니 이것이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느님께서 주신 귀한 재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저는 합창 지휘라는 저의 달란트를 생명처럼 여기고 그 안에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아요. 지금까지 대학합창 수업을 해오면서 학생들이 합창의 묘미를 알아가는 것이 굉장히 보람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어요.” 김 동문은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한양이라는 이름에도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우리 학교 설립자이신 김연준 박사께서는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릴 만큼 가곡 작곡을 많이 하셨어요. 그 분으로 인해서 우리 음악대학의 역사가 짧지만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고요. 그런 한양 음대에 대한 자부심을 저는 항상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합창 수업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교가를 가르치고, 종강연주회의 마지막에 교가를 부르는 것으로 한 학기 수업을 마무리합니다. 그래서 합창을 통해서 학생들도, 동문들도 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김 동문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창을 경험하고 이를 통해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합창단을 이끌어 간다. “무대는 거룩한 곳이고 무대에 서는 것은 관중을 통해서 자신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그래서 어린 중·고등학생들도 합창을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학교에서 합창대회를 거의 하지 않지만 합창을 통해서 지휘하는 사람은 리더의 경험을 할 수 있고 합창에 참여하는 모두가 각자의 파트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되거든요. 또 사람은 감정이 무뎌지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람들의 감정을 깎아내리고 있잖아요. 저는 그래서 사람들이 합창을 통해서 배려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갖게 되고, 더 나아가 자신의 감정을 풍부하게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 김 동문은 아마도 자신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제일 인사를 많이 받는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매 학기마다 서울캠퍼스와 ERICA 캠퍼스에서 대학합창을 강의하며 학생들을 만난 시간도 벌써 20년을 바라보고 있다. 대학합창을 거쳐간 학생들은 합창을 학창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졸업한 뒤에도 합창의 아름다움을 찾아 다시 동문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다. 김 동문의 지휘 아래 우리 모두가 함께 부르는 한양의 노래는 오늘도 아름답게 울려퍼질 것이다. 함께한대 동문합창단에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함께한대 사무국(02-2220-0198)으로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정진훈 기자 cici0961@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박설비 기자 sbi444@hanyang.ac.kr

2015-05 07

[동문]어둠 속에서 빛을 이끌다

그것은 나의 역할이었다 막이 오르고, 단원들은 손을 맞잡아 서로를 의지한 채 무대에 오른다. 노래가 시작되자 피아노 반주를 놓칠 새라 부원들은 잔뜩 긴장한 채 서로에게 귀를 기울인다. 단원들의 손은 덩달아 바빠진다. 점자 악보를 따라가려면 쉬지 않고 손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노래가 이어질수록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한 곡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관객석에서는 눈물과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한 곡의 노래를 위해, 어둠 속에서 고군분투했을 이들의 노력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으리라. 쉽고 짧은 노래여도 되련만, 열 곡이 넘는 어려운 노래를 부르고 나서야 합창은 끝이 난다. 긴장으로 굳었던 단원들의 얼굴에 그제서야 미소가 번진다. 단원들에게 있어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은 빛나는 별이자, 눈부신 태양이다. 돌고 돌아서, 다시 지휘자의 길로 에파타 시각장애인 합창단의 구성원은 2명의 정안인(비시각장애인) 지휘자와 1명의 정안인 반주자, 그리고 22명의 시각장애인 단원들이다. 단원 중 두 명은 사람의 형체를 희미하게 가늠할 수 있는 약시이고, 그 외에는 모두 낮과 밤조차 구분이 불가능한 전맹인이다. 1988년 성당을 떠나는 신부님을 위해 시각장애인 신도들이 모여 노래를 불렀던 모임이 어엿한 합창단이 되었고, 어느 새 27년의 시간이 흘렀다. 유인곤 동문이 합창단원을 처음 만났던 때는, 우리 대학 작곡과 3학년이던 1990년이었다. 유 동문은 여느 대학생들처럼 방황하고 고민하는 젊은이였고, 음악을 사랑하는 학생이었다. 어느 날 가끔 밥을 얻어 먹곤 했던 선배의 손에 이끌려 에파타 합창단을 찾아가게 되었고, 함께 하자는 제안에 결국 에파타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게 됐다. 유 동문은 작은 모임과 다를 바 없었던 합창단의 틀을 만들었고, 단원들을 기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 동문과 에파타 합창단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덜컥 에파타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지만, 당시의 유 동문은 국방의 의무를 앞둔 대한민국의 대학생이었다. 겨우 모양새를 갖춘 에파타 합창단을 뒤로 한 채, 유 동문은 군대로 떠났다. 유 동문은 그 때의 약속을 생생히 기억했다. "제가 떠날 때, 단원들을 붙잡고 기어이 약속을 받아냈어요. 제발 흩어지지 말고 함께 모여있어 달라고요. 제대하고 돌아오면 다시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함께 있어달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군대를 갔습니다." 그러나, 제대 후 유 동문은 에파타 합창단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처럼 학교 생활을 해야 했고, 졸업 후 취업을 하고 직장인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어여쁜 자녀들도 낳았다. 하지만, 십여 년이 흘러도 자꾸만 그 때의 약속이 떠올랐다. 제대 후 에파타 합창단으로 돌아와 함께 노래하겠다는 약속이 잊혀지지 않았다. 결국 15년이 지나서야, 유 동문은 다시 에파타로 돌아가 그 약속을 지키게 된다. 처음 약속을 했던 단원들 중 다섯 명이 여전히 유 동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으로 읽어, 마음으로 하는 노래 한 곡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에파타 합창단은 여러 준비 단계를 거쳐야 한다. 노래를 정하면, 유 동문은 모든 파트를 직접 부르고 녹음한다. 녹음 파일은 악보계를 담당하는 시각장애인 단원에게 먼저 전달되어, 점자 악보로 만들어진다. 합창단 내에서도, 장애의 정도나 단원들의 성향에 따라 노래를 배우는 방식이 천차만별이다. "글자를 음성으로 읽어주는 TTS 프로그램을 통해 가사를 숙지하는 분들도 있고, 반드시 카세트테이프로 들어야만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볼 수 있다면, 악보 한 장이면 충분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가사를 외우고, 노래를 부르는 일도 쉽지 않죠." 단원들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일요일마다 모여 연습 시간을 갖는다. 하지만 연습 시간은 3시간을 넘기기 힘들다. 단원들은 상대적으로 체력과 집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 동문은 연습 시간만큼은 악독한 지휘자로 변한다. "언제나 단원들에게 화내고 잔소리를 합니다. 칭찬할 때보다 혼낼 때가 더 많아요. 그러면 단원들도 짜증내고, 투정부리죠.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겨우 연습하고, 노래하면서 지금까지 왔네요." "매 순간이 매우 힘들기 때문에 가장 힘든 순간을 꼽을 수가 없어요.제가 힘든 것이 아니라 단원들이 언제나 힘들고 어렵습니다.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다들 어렵게 생계를 이어나가시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노래를 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내는 것도 이 분들은 생계를 잠시 내려놓고 오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연습 장소로 오는 모든 과정까지도 모두 위험 투성이죠. 이 분들은 인생이, 삶이 모험인 분들이에요." 그래도 단원들은 노래를 멈출 수 없고, 유 동문은 지휘를 멈출 수가 없다. 그들의 부족한 노래 한 곡에도 눈물 흘리는 관객들의 모습을 볼 때 마다, 그들은 노래하는 의미와 보람을 얻는다. 그것은 동정이나 연민의 눈물이 아니다. 음악적 아름다움은 더욱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과 노래를 통해 누군가에게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노래하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두려워하지 않을 것 손을 높이 치켜 들고, 허공을 힘차게 가르는 지휘자를 꿈꿨다. 한 때는 그것이 유 동문의 꿈이었다. 아름다운 선율을 그리는 작곡가가 되기를, 그 음악을 이끄는 지휘자가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한껏 들어 올린 손은 이내 조심스레 내려오고 만다. 그리고 조용히 단원들 옆에 서서 함께 노래를 한다. 그것이 유 동문이 하는 지휘다. 지금 유 동문은 자신의 자리를 대신해 줄 새로운 지휘자를 기다리고 있다. 언제든 그는 새로운 지휘자를 맞이 할 준비가 돼있다. "단원들의 부족함을 안아줄 새로운 지휘자가 나타나 저를 어서 밀어내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합창단을 위한 새로운 지원자가 끊임없이 나타나, 새로운 에파타의 단원이 된다면 언제나 기꺼이 그들에게 저의 자리를 내어놓고 싶습니다." 끝으로 유 동문은 후배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기를 희망했다. "제가 대단한 성공을 했다거나,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아니기에,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참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인생을 산 선배로서, 살아보니 누구에게나 자신에게 맞는 역할과 각자에게 주어진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직업이나 결혼, 친구 등 인생의 중요한 일들과 마주칠 때, 나에게 맞는 역할을 고민하게 되죠. 그럴 때마다 후배들이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이길 바래요. 때로는 원치 않는 역할을 맡아야 하거나, 고되고 힘든 일들에 마주칠 때도 있겠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인다면 그 안에서 인생의 진정한 맛과 의미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연 이 역할을 한다면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마주친다 해도, 나의 역할과 자리라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고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예랑 기자 ys2847@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사진/이명지 기자 jk6180@hanyang.ac.kr

2014-03 20

[동문]지휘는 도구에 불과하다

어느 단체든 리더의 역할은 중요하다. 음악에서도 마찬가지다. 목관악기, 타악기, 금관악기, 현악기 등 수많은 악기들이 모여 이루는 오케스트라의 리더인 지휘자. 음악은 지휘자에 의해 생사가 갈린다. 손짓으로 선율에 생명을 불어 넣는 지휘자. 조정수 동문(관현악 96)을 만났다. 최근 자신의 이름을 건 '조정수 아트홀' 개관과 함께 분주한 요즘이지만, 커피를 내리는 그의 모습에는 특유의 예술가적 여유가 묻어났다. 운명을 따라 음악의 길을 따르다 조정수 동문은 제도권 교육에서 벗어나 순수한 자신의 꿈을 위해 남들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인생의 갈림길 모티브가 등장하는 로버트 프로스트(Frost)의 '걸어 보지 못한 길' 이 촉발제가 됐다. "사회 전체가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교육을 거부했습니다. 한 번뿐인 삶을 귀중히 여기고 싶었죠." 무엇을 할 지 고민하던 그는 베를리오즈(Berlioz)의 삶을 접하게 된다. 베를리오즈는 부모님의 반대로 음악을 하지 못하고 의과대학에 진학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다시 음악대학에 진학해 현재 '근대 오케스트레이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그가 만든 관현악법은 현대 음악인들의 교본으로 여겨진다. 조 동문은 그때를 '운명'이라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에는 음악에 조예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면에 흐르는 본질은 막을 수 없었죠.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잠재적으로 음악 쪽으로 길이 트여있었다고 믿어요. 관현악 과를 전공했지만 전반적인 음악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지휘자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조정수 동문은 우리대학 졸업 후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대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Celibidache)의 지휘를 보러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첼리비다케는 상류층의 문화로 알려진 클래식의 대중화와 세계화에 현격한 공을 세운 지휘자다. 조 동문은 첼리비다케는 만나지 못했지만 스승을 통해 국립프랑스관현악단 비공개 리허설을 매주 참관 할 수 있는 특혜를 얻었다. 당시 국립프랑스관현악단의 지휘자는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Svetlanov). 예브게니는 1972년 레닌상, 1975년 글린카상을 받은 러시아 대표 지휘자다. 예브게니의 지휘에 매료된 조 동문은 그의 수제자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 그를 따라다녔고 결국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됐다. "은사님을 만나 음악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과 해석, 연주자를 위한 바톤(지휘봉) 테크닉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철저하게 완벽함을 추구하는 스승님은 온전한 시대적 사조와 그에 알맞은 몸짓 호흡을 강조하셨습니다. 밤 낮을 가리지 않는 뜨거운 열정, 수많은 연주곡과 함께 한 인내의 시간이었습니다." '조정수 아트홀', 예술의 대중화를 꿈꾸다 지난 2일. 조 동문은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조정수 아트홀'을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고양시 시민들과 한국 최고의 가야금 연주가 황병기, 전 통일부 장관 이재정, 서울시립교향악단 고문 오병권, 색소포니스트(Saxphonist) 심상종이 참석했다. 황병기 씨는 "본 아트홀은 음악을 통해 주변과의 교감을 목표로 하는 조정수 지휘자의 혼이 담긴 장소처럼 느껴진다"며 "앞으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해 새로운 예술 문화를 창출할 수 있길 바라고 시민들도 많은 관심과 후원 부탁 드린다"며 축사를 전했다. 이어 이재정 씨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아트홀을 연다는 것은 큰 도전이며, 지하에 위치한 아트홀이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정열을 의미한다"며 "음악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진실과 아름다움의 표현이다.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적 힘이 순수한 열정을 만들어내어 새로운 역사를 쓰길 기대한다"고 아트홀 개관을 축복했다. 개관식은 심삼종 씨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설립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장소 섭외부터 인테리어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존재했다. 이에 아트홀 개관 소식을 들은 주민들이 솔선수범해 전등을 교체해 주고 세탁기 등 기본적인 물품을 지원했다. 또한 조 동문의 수제자들이 아트홀 인테리어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그가 주변의 도움까지 받아 가며 아트홀을 개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오로지 '대중과 예술을 나누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 대중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는 대규모 콘서트홀이 아니면 접하기 어렵다. 아트홀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 향유의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아트홀 개관의 궁극적 목표다. 아트홀에서는 덕양 혼성합창단, 덕양 소년소녀합창단 사업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월 1회 국내외 다양한 장르의 최고 아티스트를 초청하는 하우스 콘서트도 계획 중이다. 이달 26일에는 '금빛 악기로 만나는 새봄'이라는 주제로 심삼종 섹소포니스트의 연주가 열리고, 4월 23일에는 '봄의 노래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클라리네티스트 안종현과 함께 하우스 콘서트를 진행한다. 꿈의 '본질'을 찾아라 조정수 동문의 꿈은 우리 민족 음악을 서양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것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0년 조 동문은 국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로 있을 때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를 지휘했다. 윤선도의 연작시를 음악화한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난 작품으로 국악관현악사에 길이 남을 역사라고 평가됐다. 또한 <어부사시사>는 민속 악기와 양악기를 배합한 관현악 형태인 배합관현악으로 구성됐다. 또한 국악기의 선율을 장구가 아닌 팀파니로 대체하고, 독창과 합창, 남성부와 여성부를 적절히 대비시키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고려했다. 특히 국악기만을 고집하지 않은 악기 편성에서 보여준 음악에 대한 열린 의식을 높이 평가받았다. "우리에게 친숙한 아리랑과 도라지와 같은 곡들로 시작해 우리음악의 세계화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조정수 동문은 "악보와 무대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이고 싶다"고 한다.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수준급 요리 실력을 가지고 있다. 요리에 관해 묻자 요리와 지휘의 본질은 같다고 대답했다. "요리와 음악, 두 가지는 저에게 본질적으로 같은 의미입니다. 두 가지 모두 제 삶에서 우정과 사랑을 나누는 한 방편일 뿐이죠. 만약 제가 이익을 쫓는다면 요리와 음악 사이의 중요성을 저울질하겠지만, 제 꿈과 신념을 실천하는 도구로서는 두 가지 모두 부족함이 없습니다. 저는 대중들에게 한식의 한 상차림처럼 편하게 즐기게 할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습니다. 또한 삶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삶의 의지를 준 희망을 전하는 지휘자로 불리고 싶고요." 학력 및 약력 조정수 동문은 1996년 우리대학 관현악 과를 졸업했다. 그는 소련의 전설적인 지휘자 예브게니 스베틀라노프(Svetlanov)의 마지막 제자로서 음악을 완성한 마에스트로다. 브뤼셀 왕립음악학교, 파리고등음악원, 국립 말메종 음악원 등에서 수석으로 학업을 마치고 국제 콩쿨 클래스를 이수했다. 또한 파리 라흐마니노프 음악원 지휘과 교수를 역임했고 국립국악고등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단국대학교 등 주요대학 지휘과에 출강하고 있으며 'Korea Conducting Academy' 대표이사로 유능한 지휘자 양성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국립국악관현악단, 서울시립교향악단, 서울심포니오케스트라, 서울내셔널 오케스트라 등 국내외 유수교향악단에서 객원지휘자로 활동했다. 음악저널의 차세대연주자 수상, 한국예술비평협회로부터 "한국을 이끌 오늘의 젊은 지휘자"로 선정돼 수상하기도 했다. 최슬옹 학생기자 kjkj3468@hanyang.ac.kr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김용현 사진팀장 ssamstar@hanyang.ac.kr 박보민 사진기자 marie91@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