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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 23 중요기사

[기획]임명섭·최선진 교수, 올해 부임한 최연소 전임교원을 찾아!

교수라는 단어에서 원숙함과 노련함 등이 떠오른다. 원숙함이란 단순히 시간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여기 한양대 학생들에게 각 분야의 지식을 전해줄 젊은 교수들이 모였다. 지난 9월 부임한 전임교원중 최연소인 만 32세로 임용된 임명섭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와 최선진 신소재공학부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교수가 되겠다 마음먹은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교수신문(2017.12.04)에 따르면 2017년 하반기 기준 전국 대학 신임 교수의 평균연령은 41.2세다. 전임교원이라는 직업을 이루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교수로의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임명섭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는 만 32세의 나이에 전임교원으로 부임했다. 현재 임 교수는 모터 설계 연구를 하고있다. 임명섭 미래자동차공학과 교수 : 학부생(기계공학부 05) 때 기계공학을 전공했습니다. 공학자로서 나만의 지식적 무기를 갖고 싶어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어요. 전기·전자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전자 전공 석사과정을 마친 후 박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현장과 실무가 궁금해 졸업 후 현대모비스 연구소에서 일하기도 했어요. 연구에 대한 욕심이 더 생기던 중 지인의 권유로 전임교원에 지원했습니다. 최선진 신소재공학부 교수 : 과거 꿈이 교사였을 정도로 교육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교육대학원에 갈까 했지만 학부(신소재공학부 06) 연구생을 하던 중 공학 연구의 매력에 빠졌죠. 전기·전자공학 전공으로 대학원에 진학해 초소형 정밀기계 기술(MEMS)를 연구했습니다. 이후 바이오 센서에 대한 관심이 생겨 박사 과정과 박사 후 연구원을 밟았습니다. 교육과 연구 둘 다 할 수 있는 전임교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대학원부터 계속 품었습니다. 전임교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요? 임명섭 교수 : 크게 두 번 있었던 것 같아요. 전임교원 임용과정도 물론 어렵지만, 그에 앞선 박사과정 졸업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는 것이 첫 번째로 힘든 시기였어요. 두 번째는 엔지니어로서 롤모델이자 멘토였던 은사님이 돌아가셨을 때입니다. 제가 고민과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자주 찾아가고 심적으로 의지하던 분이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최선진 교수 : 각 학위 과정부터 전임교원 지원까지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이 있었어요. 단적으로 석사과정 첫 연구 때는 어떤 주제부터 시작을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번뜩 들지 않았거든요. 박사과정의 졸업과 전임교원에의 임용도 혹여 안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한 켠에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막막했지만 이루고 싶은 목표를 생각하며 오다 보니 어느새 그 꿈이 현실로 다가온 것을 느꼈습니다. 이번 학기에 학부 강의도 많이 가르치고 계시는데,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임명섭 교수 : 전자기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가장 기초가 되는 과목이지만 하면 할수록 어려운 분야에요. 얼마 전에 학생들과 말을 나눠보니 제가 꼼꼼하게 가르친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수업 내용이 많다는 것을 순화한 표현이겠죠? (웃음) 강의에서 학생들이 대답도 잘하고, 손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개인 상담도 많이 하러 옵니다. 강의실에서는 가르쳐주는 사람이자 수업이 끝나고는 코치이자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최선진 교수 : 늘 그렇듯 수업에서 학생들은 참 조용합니다. 가끔은 설명을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를 때가 많아요. 그래도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이 다가와 준다는 게 느껴집니다. 이제는 질문에 대답해주는 학생들도 꽤 있어요. 따로 질문도 하고 거리낌 없이 찾아와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학생들이 편하게 느끼는 게 아닌가 해요. ▲최선진 서울캠퍼스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나노 바이오 센서 연구를 하고있다. 최 교수는 지난 9월 만 32세의 나이로 전임교원에 부임했다. 전임교원을 꿈꾸는 후배 학부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임명섭 교수 :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학문 분야와 연구 주제를 물어보면 아마 잘 모를 거예요. 석사과정을 밟는 사람들도 막상 무슨 연구를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저는 학교, 단과대학과 교수님 홈페이지를 많이 들어가 보라고 권장해요. 봐도 잘 모르는 용어들과 내용이겠지만 연구 주제와 연구 범위 등을 봤을 때 직감적으로 재밌겠다 싶은 것들을 살펴보세요. 그리고 지도교수님과 상담하면서 점차 관심 분야를 좁혀가는 것이 첫 출발입니다. 최선진 교수 : 학업적인 부분은 말 안 해도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는 걸 잘 알 거예요. 이외에 다방면에서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연구 자체는 물론,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능력도 중요해요. 비단 교육자로서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도 많기 때문에 갖춰야 할 능력이죠.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마음 속에 목표를 늘 품고 있으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전임교원은 단순히 나이로 평가되지 않는다. 경력보다 연구 능력과 실적 등이 우선시 된다. 과거와 다르게 ‘어리다’라는 단어에 부정적 선입견 장벽도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다. 임 교수는 자동차, 로봇에 들어가는 모터 설계 연구를 해왔다. 현재는 최근 중요시되고 있는 감성 기술적 측면을 연구 중이다. 감성 기술이란 감성을 제품설계에 반영시키는 기술이다. 모터의 소음과 진동도 제어해야해 전자기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기계적 시각도 필요한 복합 분야다. 임 교수는 “향후 모터를 포함한 자동차 시스템에도 접목해 연구를 진행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사람의 숨 속에 있는 화학 가스를 측정해 질병을 예측하는 연구를 했다. 혈액의 정보가 숨을 통해 나오기 때문에 질병을 감지할 수 있다. 최 교수는 "나노 소재를 이용한 바이오 센서와 환경을 감지하는 연구를 계속 진행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글/ 김현섭 기자 swiken1@hanyang.ac.kr 사진/ 김주은 기자 coram0deo@hanyang.ac.kr

2019-03 25 중요기사

[학생]불가능을 가능으로, 평범한 대학생의 도전 인생 (2)

“거창한 계기는 없었어요. 우연히 한 잡지를 읽었는데, 고비 사막을 완주한 해병대 예비역 3명의 이야기가 있었어요. 굳이 사막에 가서 고생한 이유가 궁금했죠.” 유동현(전기생체공학부 1) 씨는 세계 4대 극지마라톤 시작 3개월 전 대회 소식을 접하면서 바로 출전 준비에 들어갔다. 평발에 과거 무릎 수술, 막대한 대회 참가비. 걸리는 게 많았지만 직접 경험해야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 지난해 4월 아프리카 사하라, 나미비아 사막 레이스를 시작으로 몽골 고비 사막, 악명 높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을 거쳐 12월 남극 마라톤까지 완주했다. 그는 만 22세의 나이로 최연소 그랜드슬램에 올랐다. 꿈 같은 1년간의 대장정 대회 출전자는 각각 250km에 달하는 4개 지역 사막의 6개의 스테이지, 총합해서 대략 1000km를 걷는다. 1년 동안 4개의 사막을 완주하는 ‘세계 4대 극지마라톤’이 지난 2008년에 만들어진 뒤, 완주에 성공한 사람은 총 78명이다. 그리고 지난해 열린 극지마라톤에서 가장 어린 나이로 완주 기록을 세운 유동현(전기생체공학부 1) 씨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 아직 마음은 사막에 있는 유동현(전기생체공학부 1) 씨. 경험했던 대자연이 아직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며“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그 때가 생각나요. 갑자기 일어나서 뛰고 싶어요."고 말했다. “처음 아프리카에 내려서 대회 집결지로 이동하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도움 주신 분들이 많아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부담도 됐지만 기분은 좋았습니다.” 유동현 씨는 출발 전 당시를 회상하면서 부풀었던 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회에 참가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사막 마라톤 출전은 440만 원, 남극 마라톤까지 출전하려면 1460만 원의 참가비가 추가로 필요했다. 학교 선배와 군대 전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여러 기업에도 후원지원서를 냈다. 그렇게 여러 곳에서 유 씨를 응원하는 도움의 손길이 십시일반 모여 600만 원으로 첫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출전 비용으로 충당하고 남은 금액으로 40여 가지의 필수 장비를 마련했다. “마라톤 경력도 없고 완주한다는 보장도 없어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그러나 잘 알지도 못하는 한 젊은이의 도전을 응원해준 감사한 분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 사하라 사막 레이스 직후 다리가 보라색 점이 생기면서 마비됐 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다. (유동현 씨 제공) 고되지만 값진 경험의 길 4개 지역의 사막 레이스 거리는 각각 250km에 달한다. 출전자는 식량과 각종 장비를 든 배낭을 메고 일주일 안에 완주해야 한다. 250km의 거리를 80km, 40km, 10km 씩 몇 구간으로 나눠 달리는데, 80km구간은 서두르지 않으면 추운 밤까지 뛰어야 한다. 자신이 악조건이라고 생각했던 유 씨는 다른 참가자들을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레이스 최종 구간인 남극마라톤을 뛸 때는 시각장애인 친구, 한쪽 다리를 잃은 마라토너가 있었어요. 저는 달리면서 힘들어하고 불평도 했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여유로웠어요.” 일흔이 넘는 노인, 몸이 불편한 사람, 엘리트 선수들, 재력가. 이들 모두 똑같이 힘든 환경, 공평함 속에서 함께 도우며 생활한다. “노인이 무거운 가방을 메고 꿋꿋이 완주하는 모습에 누구나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는 그는 1등이 중요한 레이스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동했다. 또 각국에서 참가자들이 모이다 보니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유 씨는 저녁 시간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식사를 하며 각국의 소식과 그들의 생각에 대해 들었던 것이 좋았다고 말했다. “지친 와중에도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 에너지가 넘쳐서 덩달아 힘을 얻었어요. 다녀와 보니 갈 때 체력뿐 아니라 나라마다 간단 한 상식과 외국어는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 유동현 씨는 마라톤을 통해 소중한 인연들도 얻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비사막 마라톤에서 완주한 후 친구들과 찍은 기념 사진을 찍은 모습, 함께 합숙한 텐트 메이트들과 한 컷, 가장 고단했던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함께한 친구와 포옹하는 모습, 남극으로 가는 배를 타기 직전 종합 등수 1위 친구와 찍힌 사진. (유동현 씨 제공) ‘사람들이 왜 이런 걸 할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했던 마라톤. 그는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얻었다”고 말했다. “평소에 당연히 여기던 것들이 없어지니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됐어요. 환경부터 사람까지. 내리막길을 내려올 땐 절 지원해주신 분들이 떠올랐어요. 나중에는 절 도와준 분들처럼 꿈은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도전을 꺼리는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도전하는 삶 현재 그는 다시 학교로 돌아와 학업에 열중하고 있다. 그렇지만 새로운 도전은 멈추지 않을 예정이다.“올해 철인삼종경기와 여름방학 때 미국 자전거 횡단을 계획 중이에요. 미국 자전거 횡단 대회는 7월 여름에 있는데 아침잠을 줄여가며 수영을 하고 자전거로 통학하며 틈틈이 준비 중이에요.” ▲ 사하라 사막 횡단 도중 유동현 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유동현 씨 제공) 마지막으로 유동현 씨에게 마라톤이 어떤 의미가 됐는지 물었다. “일상이 됐어요. 마라톤을 벗어나서도 마라톤 하기 전과 후의 나를 보면 스스로 달라진 제 모습이 보여요. 마라톤은 피니쉬 라인이 언제든 있어요. 속도가 빠르든 느리든 어찌 됐든 포기하지 않고 달리면 끝에 도달해요. 전에는 포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그의 밝고 당찬 대답에서 단단해진 내면을 볼 수 있었다. 글/ 김민지 기자 melon852@hanyang.ac.kr 사진/ 이현선 기자 qserakr@hanyang.ac.kr